[2020-2: 3주_고・탐] 동아시아 전통의 인간관 (1)_『공부란 무엇인가』
김민정2021-01-20 16:54
1기 정*호
나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의 의미에 답하기 위해선 내가 지향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공부와 지금의 공부 또한 다르다.
과거의 나는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비판적인 지식인이 되고 싶었다. 부조리한 문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에게 있어 한국은 더없이 갑갑한 나라였다. 나는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 환멸을 느꼈다. 공부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자기수련의 과정이었다. 만약 나의 최종적인 목표에 다가가는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고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 역시 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모순적인 공부였다. 나는 노예로 살아가는 사회를 혐오하며 공부를 시작했지만 결국은 나 역시 입시를 위한 목표지향적인 공부를 하고 있었다. 경제학이나 법학보다는 문학에 끌리는 본능을 제어하고 학생기록부의 스토리를 위해 감성을 희생했다. 나이브하게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다면 내가 뜻하는 공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에 왔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비판적인 사색가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에는 똑똑하고 능력 있지만 속물적인 노예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대학의 공부 역시 길들이기의 연속이라고 느껴졌다. 근대적 교육이 요구하는 성실의 내면화도 그렇거니와 지식인 네트워크의 매너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룰들은 달갑지 않았다.
사실 대학에 대한 불만보다 근본적으로 인생의 형상을 설정하고 이에 다가가기 위한 삶이 억압적이라고 느꼈다. 내가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나는 이제 열정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기를 바란다. 나에게 공부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함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의 삶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전적으로 공부를 책에 의존하는 책벌레였던 과거와 달리 인생에 뛰어들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공부로 받아들이는 현재의 나이다. 이와 같은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조건들을 간파하고 종속되지 않음으로써 능동적으로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각이 공부의 목적이다.
고전을 비롯한 탐구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고전은 우리 삶의 조건들로 고착화되어버린 이데올로기를 깨부수는 작업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우선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테제들은 고전에서 기원한 것이 대부분이다. 직접 읽어봐야지 허점을 간파하기 쉬워진다. 이에 더해 고전이 인생에 대한 귀중한 직관을 제공하기도 한다. 좋은 글을 읽는 것이 깊이 있는 내면을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사실 작품성이 뛰어난 고전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즐겁다.
나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의 의미에 답하기 위해선 내가 지향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공부와 지금의 공부 또한 다르다.
과거의 나는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비판적인 지식인이 되고 싶었다. 부조리한 문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에게 있어 한국은 더없이 갑갑한 나라였다. 나는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 환멸을 느꼈다. 공부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자기수련의 과정이었다. 만약 나의 최종적인 목표에 다가가는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고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 역시 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모순적인 공부였다. 나는 노예로 살아가는 사회를 혐오하며 공부를 시작했지만 결국은 나 역시 입시를 위한 목표지향적인 공부를 하고 있었다. 경제학이나 법학보다는 문학에 끌리는 본능을 제어하고 학생기록부의 스토리를 위해 감성을 희생했다. 나이브하게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다면 내가 뜻하는 공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에 왔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비판적인 사색가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에는 똑똑하고 능력 있지만 속물적인 노예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대학의 공부 역시 길들이기의 연속이라고 느껴졌다. 근대적 교육이 요구하는 성실의 내면화도 그렇거니와 지식인 네트워크의 매너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룰들은 달갑지 않았다.
사실 대학에 대한 불만보다 근본적으로 인생의 형상을 설정하고 이에 다가가기 위한 삶이 억압적이라고 느꼈다. 내가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나는 이제 열정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기를 바란다. 나에게 공부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함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의 삶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전적으로 공부를 책에 의존하는 책벌레였던 과거와 달리 인생에 뛰어들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공부로 받아들이는 현재의 나이다. 이와 같은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조건들을 간파하고 종속되지 않음으로써 능동적으로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각이 공부의 목적이다.
고전을 비롯한 탐구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고전은 우리 삶의 조건들로 고착화되어버린 이데올로기를 깨부수는 작업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우선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테제들은 고전에서 기원한 것이 대부분이다. 직접 읽어봐야지 허점을 간파하기 쉬워진다. 이에 더해 고전이 인생에 대한 귀중한 직관을 제공하기도 한다. 좋은 글을 읽는 것이 깊이 있는 내면을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사실 작품성이 뛰어난 고전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즐겁다.
김민정2021-01-20 16:54
1기 박*슬
올 여름에 샌들을 사러 신발 가게에 갔다. 신발 가게의 주인 분께서 “전공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자유전공학부 사람들이라면 전공이 뭐냐는 질문에 “자유전공학부”라는 답을 했을 때 따라올 질문이 귀찮아서 진입한 전공을 이야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같은 이유에서 “철학과”라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는 “철학? 철학해서 취직은 어떻게 하게.” 라고 말씀하셨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 또한 겉으로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철학과를 선택하였으나, 속으로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까지는 공부는 의무였다. 그리고 나는 공부하는 것을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 정말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멋진 4년을 보낸 후 취직을 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공부라도 4년보다 더 길게는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과목 ‘윤리와 사상’에 대한 단순한 흥미로부터 철학을 선택했다. 철학과의 강의로부터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강의가 다루는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철학이라는 과목이 대상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들은 첫 전공 수업은 ‘서양 근대 철학’이었다. <성찰>에 드러나는 데카르트의 생각을 논증으로 구성해보고, 전제와 결론을 검토하는 과정은 정말로 흥미로웠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하는 법, 개념에 대해 명확히 정의내리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법 등은 지금껏 배워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한 공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세상에 얽힌 문제들을 탐구해나가는 철학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공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나에게 공부란 끝이 정해져있는 과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공부를, 책 1부의 제목이기도 한 ‘지적 성숙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목표했던 과제를 완수하는 것만이 공부의 목적인 것은 아니었다. 강의를 듣고, 자료를 찾고, 또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한층 성숙해졌고 지금도 성숙해지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재밌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목표도 생겼다. 책에 등장하는 표현 중에 정말 공감 가는 것이 있어 이를 조금 바꾸어 써보자면, 나는 “세상의 모순을 직시하되, 그에 대해 모순 없는 주장을 펼치는(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란 그런 것이다. 세상의 모순을 직시하기 위해서 다방면의 글을 읽고, 사회에서 직접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모순 없는 글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이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
나에게 공부란 알고지낸지 15년 만에 친해진 친구이다. 지금까지도 공부를 안 해온 것은 아니지만, 왜 공부해야하는 지에 대해 알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 대학에 들어온 이후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밥 먹는 것보다 자주 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맹목적으로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신발 가게 주인 분의 질문으로부터 내렸던 결론은, 굳이 “철학해서 취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청춘을 보내는 대학에서, 즐거운 일들을 많이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동아리에 들어가고, 보고 싶은 공연을 보고, 방학에는 여행도 다니는 것에 더해서 전공과목까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니 대학교는 고등학교보다 훨씬 좋은 공간이고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설령 철학해서 취직을 못하더라도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로부터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도 들었다.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공부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담긴 부분, 공감이 갔던 부분들에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 이런 저런 공부를 하다가 또 ‘아 공부하기 싫다’ 하는 생각이 들면, 이 책을 꺼내고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올 여름에 샌들을 사러 신발 가게에 갔다. 신발 가게의 주인 분께서 “전공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자유전공학부 사람들이라면 전공이 뭐냐는 질문에 “자유전공학부”라는 답을 했을 때 따라올 질문이 귀찮아서 진입한 전공을 이야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같은 이유에서 “철학과”라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는 “철학? 철학해서 취직은 어떻게 하게.” 라고 말씀하셨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 또한 겉으로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철학과를 선택하였으나, 속으로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까지는 공부는 의무였다. 그리고 나는 공부하는 것을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 정말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멋진 4년을 보낸 후 취직을 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공부라도 4년보다 더 길게는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과목 ‘윤리와 사상’에 대한 단순한 흥미로부터 철학을 선택했다. 철학과의 강의로부터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강의가 다루는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철학이라는 과목이 대상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들은 첫 전공 수업은 ‘서양 근대 철학’이었다. <성찰>에 드러나는 데카르트의 생각을 논증으로 구성해보고, 전제와 결론을 검토하는 과정은 정말로 흥미로웠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하는 법, 개념에 대해 명확히 정의내리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법 등은 지금껏 배워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한 공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세상에 얽힌 문제들을 탐구해나가는 철학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공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나에게 공부란 끝이 정해져있는 과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공부를, 책 1부의 제목이기도 한 ‘지적 성숙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목표했던 과제를 완수하는 것만이 공부의 목적인 것은 아니었다. 강의를 듣고, 자료를 찾고, 또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한층 성숙해졌고 지금도 성숙해지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재밌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목표도 생겼다. 책에 등장하는 표현 중에 정말 공감 가는 것이 있어 이를 조금 바꾸어 써보자면, 나는 “세상의 모순을 직시하되, 그에 대해 모순 없는 주장을 펼치는(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란 그런 것이다. 세상의 모순을 직시하기 위해서 다방면의 글을 읽고, 사회에서 직접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모순 없는 글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이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
나에게 공부란 알고지낸지 15년 만에 친해진 친구이다. 지금까지도 공부를 안 해온 것은 아니지만, 왜 공부해야하는 지에 대해 알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 대학에 들어온 이후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밥 먹는 것보다 자주 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맹목적으로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신발 가게 주인 분의 질문으로부터 내렸던 결론은, 굳이 “철학해서 취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청춘을 보내는 대학에서, 즐거운 일들을 많이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동아리에 들어가고, 보고 싶은 공연을 보고, 방학에는 여행도 다니는 것에 더해서 전공과목까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니 대학교는 고등학교보다 훨씬 좋은 공간이고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설령 철학해서 취직을 못하더라도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로부터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도 들었다.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공부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담긴 부분, 공감이 갔던 부분들에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 이런 저런 공부를 하다가 또 ‘아 공부하기 싫다’ 하는 생각이 들면, 이 책을 꺼내고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김민정2021-01-20 16:59
1기 송*우
저도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제 전공을 소개할 때마다 '그럼 취직은...' 하고 얼버무리는 눈빛들을 항상 봐왔기 때문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저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스스로를 좋아하면서도 그런 시선에 아직 완전히 당당하지는 못한데, 예슬 님은 그런 마음가짐을 얻으셨다니 부럽기도 합니다.
굳이 '철학해서 취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당연한데도 왠지 크게 와닿았습니다. 대학이 취업하는 곳이야?라고 물으면 다들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어쩐지 공부에는 취직이라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들 하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을 전공하면 취업에서 불리해지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할 당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취업 직전까지 한철 써먹고 버리는 공부보다는 저를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할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슬 님처럼 공부를 좀더 사랑하고 공부에 좀더 당당한 마음가짐을 얻는 것 역시 하나의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제 전공을 소개할 때마다 '그럼 취직은...' 하고 얼버무리는 눈빛들을 항상 봐왔기 때문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저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스스로를 좋아하면서도 그런 시선에 아직 완전히 당당하지는 못한데, 예슬 님은 그런 마음가짐을 얻으셨다니 부럽기도 합니다.
굳이 '철학해서 취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당연한데도 왠지 크게 와닿았습니다. 대학이 취업하는 곳이야?라고 물으면 다들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어쩐지 공부에는 취직이라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들 하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을 전공하면 취업에서 불리해지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할 당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취업 직전까지 한철 써먹고 버리는 공부보다는 저를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할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슬 님처럼 공부를 좀더 사랑하고 공부에 좀더 당당한 마음가짐을 얻는 것 역시 하나의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9
1기 권*수
제가 철학과를 전공하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한지는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문의 우위를 논한다는게 너무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전공을 선택함에 있어서 무시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예슬님께서도 그런 고민이 있으셨을텐데 그럼에도 '하고 싶은' 공부, 그리고 '재밌는' 공부를 추구하고자 마음먹으신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찾으신게 부럽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신념이 흔들리지 않고 하고픈 공부 끝까지 멋지게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철학과를 전공하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한지는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문의 우위를 논한다는게 너무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전공을 선택함에 있어서 무시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예슬님께서도 그런 고민이 있으셨을텐데 그럼에도 '하고 싶은' 공부, 그리고 '재밌는' 공부를 추구하고자 마음먹으신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찾으신게 부럽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신념이 흔들리지 않고 하고픈 공부 끝까지 멋지게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9
1기 김*범
목표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슬님은 이미 세상의 모순을 직시하실 수 있는 것 같아서 존경스러워요. 저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고, 신발 가게에서의 대화와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잘 모르는 분들, 그리고 친지 분들도 "물리학과 갔으면 공부 잘했겠네? 근데 물리 공부해서 어디에 써먹나..." 같은 흐름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책만 읽고서는 공부가 즐겁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정말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는데, 비슷한 일을 겪으신 예슬님의 결론을 보고 좀 더 공부할 용기를 얻어갑니다. 좋은 코멘트 감사해요!
목표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슬님은 이미 세상의 모순을 직시하실 수 있는 것 같아서 존경스러워요. 저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고, 신발 가게에서의 대화와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잘 모르는 분들, 그리고 친지 분들도 "물리학과 갔으면 공부 잘했겠네? 근데 물리 공부해서 어디에 써먹나..." 같은 흐름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책만 읽고서는 공부가 즐겁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정말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는데, 비슷한 일을 겪으신 예슬님의 결론을 보고 좀 더 공부할 용기를 얻어갑니다. 좋은 코멘트 감사해요!
김민정2021-01-20 16:59
1기 장*균
글 잘 읽었습니다!! 신발 가게에서 겪으신 일이 정말 공감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주변의 시선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참 어려웠습니다. 특히 진로에 있어서 조금더 현실에 맞춰진 생각들을 할 때도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뭔가 항상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더라도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다보니 도전할 용기도 쉽게 생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슬님도 비단 신발 가게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이런 내적인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것들을 이겨내고 정말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참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도 이번에 느끼신 용기를 잊지 마시고 예슬 님만의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신발 가게에서 겪으신 일이 정말 공감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주변의 시선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참 어려웠습니다. 특히 진로에 있어서 조금더 현실에 맞춰진 생각들을 할 때도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뭔가 항상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더라도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다보니 도전할 용기도 쉽게 생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슬님도 비단 신발 가게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이런 내적인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것들을 이겨내고 정말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참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도 이번에 느끼신 용기를 잊지 마시고 예슬 님만의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겠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9
1기 권*현
글 잘 읽었습니다:)
샌들가게 이야기는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저도 전공을 선택했을 때 가족, 친구들도 그 전공으로 뭐해먹고 살래,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으로 끝이고 먹고 살 일을 생각해야지 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예슬님의 글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것은 예슬님의 결론이었습니다. 철학으로 먹고 살 필요가 없다!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제 전공으로 먹고 살 수 있음을 보이려고만 노력했는데 예슬님의 결론을 읽으면서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본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샌들가게 이야기는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저도 전공을 선택했을 때 가족, 친구들도 그 전공으로 뭐해먹고 살래,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으로 끝이고 먹고 살 일을 생각해야지 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예슬님의 글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것은 예슬님의 결론이었습니다. 철학으로 먹고 살 필요가 없다!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제 전공으로 먹고 살 수 있음을 보이려고만 노력했는데 예슬님의 결론을 읽으면서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본것 같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9
1기 박*정
글의 첫 문단이 너무 공감되어 코멘트 남깁니다. 저도 언제부터인가 자유전공학부라고 소개하는 일보다는 진입한 전공의 학생으로 소개하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예슬님의 글을 보고 철학을 전공하고 싶다던 고등학교 친구가 생각났어요. 그 때 다들 취직은 어떻게 하려고, 철학은 교양으로 공부해, 하며 뜯어말렸었는데, 한편으로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현실과 타협한다고 하고 싶었던 것을 잠시 미뤄둔 사람으로서, 또 아직까지는 맹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재밌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예슬님이 부럽기도 하고 언젠가는 예슬님처럼 재밌게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의 첫 문단이 너무 공감되어 코멘트 남깁니다. 저도 언제부터인가 자유전공학부라고 소개하는 일보다는 진입한 전공의 학생으로 소개하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예슬님의 글을 보고 철학을 전공하고 싶다던 고등학교 친구가 생각났어요. 그 때 다들 취직은 어떻게 하려고, 철학은 교양으로 공부해, 하며 뜯어말렸었는데, 한편으로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현실과 타협한다고 하고 싶었던 것을 잠시 미뤄둔 사람으로서, 또 아직까지는 맹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재밌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예슬님이 부럽기도 하고 언젠가는 예슬님처럼 재밌게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민정2021-01-20 16:55
1기 이*현
부끄럽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한 때는 성적표에 적힌 숫자 몇 개를 보고 공부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저 교과서와 문제집에 쓰여 있는 글자들을 잘 읽고 소화해서 문제를 잘 맞히면 그만이었다. 대개 내가 공부를 한답시고 해야 할 일들은 1번이냐 5번이냐를 잘 풀어내고, 선생님이 말한 내용들을 정리해서 예쁘게 답안지에 옮겨 적는 것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공부해라”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이는 대체로 위에 적어둔 저 일들을 잘 해내라는 뜻과도 일맥상통했다. 만약 공부가 진정으로 이런 것들을 지칭하는 거라면, 그래도 꽤 괜찮게 공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막연히 이런 것들이 ‘진정한’ 공부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왔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배우고 익히면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며. 답답한 고3 생활을 버텼다. 그러나 대학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오히려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교수님으로 바뀌고, 성적은 학점으로 바뀌었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하는 일들은 비슷했다. <공부란 무엇인가?> 책에서 이를 잘 설명해주는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는데, “학점을 따려고 필기 내용을 달달 외운 뒤, 시험 때가 되면 토사물 뱉듯이 뱉어놓고 내용을 잊어먹으려거든” 이라는 부분이었다. 아주 뜨끔했다. 물론 몇몇 수업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텍스트를 읽고 발제 및 토론하는 수업이나, 논문들을 읽고 실험을 진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업 등등이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수업들이 진정한 ‘공부’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본질적으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런 것들이 내가 진짜로 배우고 싶어 하는 것들인가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자의든 타의든 공부에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비록 그 방법이 그다지 흥미롭고 재미있지 않더라도 ‘공부’라고 불리는 그것을 끝까지 참고 해냈던 것 같다. 그러다 막상 대학에 오니 정확히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하는지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때그때 새로운 지식을 얻고 수업을 듣는 일들은 흥미로웠지만, 한 학기가 지나면 그뿐이었다. 교수님들이나 선배들이나 대체로 ‘공부’를 계속한다고 하면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그런 것인데, 진짜 문제는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쓸 것인지 이다. 만일 공부라는 것이 정말 대학원에 가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일이라면, 나랑은 잘 안 맞는 일 같기도 하다.
세상에 널리 쓰일 공부를 하고 싶다. 정확히는, 세상에 널리 쓰일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고등학생 때부터 법학도의 꿈을 꾸었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어 사회 내의 많은 범죄들을 수사하고 더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왜’냐고 묻던데, 사실 잘 모르겠다. 멋있어 보여서? 거창한 계기나 명분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꿈의 방향은 일정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모의재판 대회에서 직접 사건을 분석해보고 변론해보는 활동을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고 짜릿할 수가 없었다. 팀원들과 사건에 대해 몇 시간씩 떠들고, 생각해보고, 이렇니 저렇니 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나중에 이런 일을 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이를 위해 지금 뭘 공부하고 있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뒤적이고, 강력 범죄가 어땠다는 둥 기사를 찾아 읽으며, 범죄 관련한 수업도 찾아 들었다. 근데 이게 공부인가? 시원치 않았다. 막상 대학에 와보니, 검사가 되겠다고 말하면 속물 소리를 듣는다. 보다 솔직히는, 공부가 뭔지도 모르는데 막연히 검사가 되고싶다고 꿈꾸는 내가 속물이 아닐까 스스로도 의심하게 된다.
적다보니 글이 참 두서없어졌다. 꿈은 거창한데, 여전히 헤메고 있다. 대학에 와서도 여전히 한 학기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공부 비슷한 것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공부는 아니라고 생각만 하는 중이다. 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건데? 아니, 애초에 공부가 뭔데? 대학에 와서도 난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도 길을 잃고 헤매는 밤이다. 다만 오늘 할 일들에 충실할 뿐.
부끄럽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한 때는 성적표에 적힌 숫자 몇 개를 보고 공부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저 교과서와 문제집에 쓰여 있는 글자들을 잘 읽고 소화해서 문제를 잘 맞히면 그만이었다. 대개 내가 공부를 한답시고 해야 할 일들은 1번이냐 5번이냐를 잘 풀어내고, 선생님이 말한 내용들을 정리해서 예쁘게 답안지에 옮겨 적는 것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공부해라”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이는 대체로 위에 적어둔 저 일들을 잘 해내라는 뜻과도 일맥상통했다. 만약 공부가 진정으로 이런 것들을 지칭하는 거라면, 그래도 꽤 괜찮게 공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막연히 이런 것들이 ‘진정한’ 공부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왔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배우고 익히면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며. 답답한 고3 생활을 버텼다. 그러나 대학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오히려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교수님으로 바뀌고, 성적은 학점으로 바뀌었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하는 일들은 비슷했다. <공부란 무엇인가?> 책에서 이를 잘 설명해주는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는데, “학점을 따려고 필기 내용을 달달 외운 뒤, 시험 때가 되면 토사물 뱉듯이 뱉어놓고 내용을 잊어먹으려거든” 이라는 부분이었다. 아주 뜨끔했다. 물론 몇몇 수업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텍스트를 읽고 발제 및 토론하는 수업이나, 논문들을 읽고 실험을 진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업 등등이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수업들이 진정한 ‘공부’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본질적으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런 것들이 내가 진짜로 배우고 싶어 하는 것들인가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자의든 타의든 공부에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비록 그 방법이 그다지 흥미롭고 재미있지 않더라도 ‘공부’라고 불리는 그것을 끝까지 참고 해냈던 것 같다. 그러다 막상 대학에 오니 정확히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하는지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때그때 새로운 지식을 얻고 수업을 듣는 일들은 흥미로웠지만, 한 학기가 지나면 그뿐이었다. 교수님들이나 선배들이나 대체로 ‘공부’를 계속한다고 하면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그런 것인데, 진짜 문제는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쓸 것인지 이다. 만일 공부라는 것이 정말 대학원에 가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일이라면, 나랑은 잘 안 맞는 일 같기도 하다.
세상에 널리 쓰일 공부를 하고 싶다. 정확히는, 세상에 널리 쓰일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고등학생 때부터 법학도의 꿈을 꾸었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어 사회 내의 많은 범죄들을 수사하고 더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왜’냐고 묻던데, 사실 잘 모르겠다. 멋있어 보여서? 거창한 계기나 명분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꿈의 방향은 일정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모의재판 대회에서 직접 사건을 분석해보고 변론해보는 활동을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고 짜릿할 수가 없었다. 팀원들과 사건에 대해 몇 시간씩 떠들고, 생각해보고, 이렇니 저렇니 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나중에 이런 일을 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이를 위해 지금 뭘 공부하고 있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뒤적이고, 강력 범죄가 어땠다는 둥 기사를 찾아 읽으며, 범죄 관련한 수업도 찾아 들었다. 근데 이게 공부인가? 시원치 않았다. 막상 대학에 와보니, 검사가 되겠다고 말하면 속물 소리를 듣는다. 보다 솔직히는, 공부가 뭔지도 모르는데 막연히 검사가 되고싶다고 꿈꾸는 내가 속물이 아닐까 스스로도 의심하게 된다.
적다보니 글이 참 두서없어졌다. 꿈은 거창한데, 여전히 헤메고 있다. 대학에 와서도 여전히 한 학기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공부 비슷한 것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공부는 아니라고 생각만 하는 중이다. 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건데? 아니, 애초에 공부가 뭔데? 대학에 와서도 난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도 길을 잃고 헤매는 밤이다. 다만 오늘 할 일들에 충실할 뿐.
김민정2021-01-20 17:01
1기 조*준
글 잘 읽었습니다.
공부의 사전적인 정의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입니다.
사실 공부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학문을 위한 공부와 기술을 위한 공부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사람 몸을 다루더라도 의학에서의 공부와 생물학에서의 공부는 상당히 다릅니다.
대학에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 연구자 학문을 위한 공부 하시는 분들이니 대학에서 말하는 공부는 학문을 위한 공부에 상당히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학문을 위한 공부도, 기술을 위한 공부도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의사가 생물학자처럼 사람의 몸에 대해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고 수술을 한다면 환자 열의 아홉은 살아남기 힘들 것입니다.
사실 기술을 위한 공부에 가까운 법학을(실무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학문을 위한 공부인 대학 수업을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기술적으로 들어야 하는 현실이 이상하긴 하지만, 꼭 기술을 위한 공부가 '진정한 공부'가 아니리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꼭 기술을 학문처럼 공부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공부의 사전적인 정의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입니다.
사실 공부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학문을 위한 공부와 기술을 위한 공부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사람 몸을 다루더라도 의학에서의 공부와 생물학에서의 공부는 상당히 다릅니다.
대학에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 연구자 학문을 위한 공부 하시는 분들이니 대학에서 말하는 공부는 학문을 위한 공부에 상당히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학문을 위한 공부도, 기술을 위한 공부도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의사가 생물학자처럼 사람의 몸에 대해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고 수술을 한다면 환자 열의 아홉은 살아남기 힘들 것입니다.
사실 기술을 위한 공부에 가까운 법학을(실무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학문을 위한 공부인 대학 수업을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기술적으로 들어야 하는 현실이 이상하긴 하지만, 꼭 기술을 위한 공부가 '진정한 공부'가 아니리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꼭 기술을 학문처럼 공부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김민정2021-01-20 17:01
1기 남*범
저도 세상에 널리 쓰일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굉장히 공감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업만 듣는 것으로는 정말 공부한 것인지 의문이 든 다는 점에도 정말 공감합니다. 대학에 와서 강의에서 직접적으로 진정하게 무언가를 배운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공과대학인 만큼 수식 위주의 암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런걸 외워서 시험을 쳐 봤자 사회에 나가서는 책 보면서 식 베껴쓰게 될 텐데, 내가 새로운 생각을 얻은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찾았는데, 친구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전공이든 교양이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토론하는 시간에 얻은 것이 수업 내내 얻은 것보다 큰 느낌이었습니다. 서로 모르는 것과 헷갈리는 것을 짚어주는 사이에 이 개념이 어떤 문제 때문에 만들어졌고, 어떤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논리의 전개를 해보며 제가 공부하는 내용이 왜 필요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수현님도 공부를 하고 나서 그것을 왜 하고있는지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지시면 좀 더 확신을 가지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세상에 널리 쓰일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굉장히 공감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업만 듣는 것으로는 정말 공부한 것인지 의문이 든 다는 점에도 정말 공감합니다. 대학에 와서 강의에서 직접적으로 진정하게 무언가를 배운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공과대학인 만큼 수식 위주의 암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런걸 외워서 시험을 쳐 봤자 사회에 나가서는 책 보면서 식 베껴쓰게 될 텐데, 내가 새로운 생각을 얻은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찾았는데, 친구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전공이든 교양이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토론하는 시간에 얻은 것이 수업 내내 얻은 것보다 큰 느낌이었습니다. 서로 모르는 것과 헷갈리는 것을 짚어주는 사이에 이 개념이 어떤 문제 때문에 만들어졌고, 어떤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논리의 전개를 해보며 제가 공부하는 내용이 왜 필요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수현님도 공부를 하고 나서 그것을 왜 하고있는지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지시면 좀 더 확신을 가지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민정2021-01-20 17:02
1기 김*교
세상에 널리 쓰일 '일'을 하고 싶다는 것에 정말 공감하였습니다.
저도 무엇인가 직장을 가지기 위한 배움을 대학생때 많이 했던 것 같아 비슷한 고민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다양한 학우들이 저와 비슷한 부류의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고 같은 점은 무엇인지 관찰하면서 저를 좀 더 세밀하게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공부를 바라보게 된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무엇인가 계속 지식을 채우고 내 꿈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채우는 것 역시 공부지만, 다양한 시각, 지식을 접하면서 그것과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 어느 부분에서 중요한 가치를 살피는 지를 면밀히 살피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의견을 공유하고 싶어 글을 적었습니다.
세상에 널리 쓰일 '일'을 하고 싶다는 것에 정말 공감하였습니다.
저도 무엇인가 직장을 가지기 위한 배움을 대학생때 많이 했던 것 같아 비슷한 고민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다양한 학우들이 저와 비슷한 부류의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고 같은 점은 무엇인지 관찰하면서 저를 좀 더 세밀하게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공부를 바라보게 된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무엇인가 계속 지식을 채우고 내 꿈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채우는 것 역시 공부지만, 다양한 시각, 지식을 접하면서 그것과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 어느 부분에서 중요한 가치를 살피는 지를 면밀히 살피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의견을 공유하고 싶어 글을 적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5
1기 심*범
말하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말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논어』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자면 이와 같다고 한다. 이 구분 위에서 대학을 바라보며 그렸던 공부는 호기심의 해소였다면, 대학에서의 공부는 말하지 않는 바를 늘려가는 과정이다. 판단의 유보는 끝을 모르며 배를 불리웠다. 참으로 동경했던 모습과, 고등학생 때만 해도 악마시했던 담배가 공존하는 양태가 그 시작이라 할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분별하기 어려워진다. 인간관계도 그러했고, 심리학이든, 정치학이든, 하다못해 라틴어를 공부해도 옳은 것을 옳다고 짚어내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기에 조심스러워졌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모습을 언뜻 강단 위에 선 수많은 선생님들이 강조하고 또 장려한다는 사실이다. 전공과 교양의 구분이 무색하게, 대학은 스스로 가르치는 자의 양성이라고 했던가. 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1학년의 그 『국가』에 나온 Aporia의 무게감이 졸업을 앞둔 더더욱 짓누른다. 시작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다만 거기에 그치기에는 너무 무료할까 싶어 기왕 공부하게 된 김에 발견하게 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는 사람이 되면 좋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참 야속하게도, 문제를 포착하고 해답을 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어떤 답안도 완벽하지 못함을 알기에 스스로를 더 가르칠 수 있을텐데, 그러면 자포자기를 하지 않는다는데, 이런 판단유보는 점점 허무주의로 빠질 듯 위태롭다.
이렇게 지독한 판단유보가 공부를 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이고, 또 그 결과물일테다. 대략 리뷰 논문만 봐도 드러나지 않던가. 이 공부의 기틀은 누가 세웠고, 어느 방법론이 흥하다 이쪽으로 넘어가고, 그런데 요즘은 발상의 전환으로 주제도 확장했다는… 그런 클리셰들. 굳이 인식론을 갖고 놀자면 플라톤의 그 유명한 episteme는 인간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바이고, 우리의 지식과 앎은 현상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앞으로의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욱더 예리하게 미워해야 할 대상을 고르고, 더욱 적절하게 대상에 맞춰서 그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 남아있다. 다만 대학원을 꿈꾸고 있는 지금, 예정된 3여년의 공부가 졸업을 앞둔 학부생의 허무주의에 물들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공부의 이유와 결과물에 대한 질문과 답안의 연속, 속되게 표현하자면 메타 공부라는 시각이 다시금 필요한 시점이다. 공부의 허무주의를 다루고, 그러면서도 더 깊고 끝없는 공부를 이어나가는 게 앞으로 걸어가야하는 공부의 모양이 아닐까 싶다.
말하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말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논어』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자면 이와 같다고 한다. 이 구분 위에서 대학을 바라보며 그렸던 공부는 호기심의 해소였다면, 대학에서의 공부는 말하지 않는 바를 늘려가는 과정이다. 판단의 유보는 끝을 모르며 배를 불리웠다. 참으로 동경했던 모습과, 고등학생 때만 해도 악마시했던 담배가 공존하는 양태가 그 시작이라 할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분별하기 어려워진다. 인간관계도 그러했고, 심리학이든, 정치학이든, 하다못해 라틴어를 공부해도 옳은 것을 옳다고 짚어내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기에 조심스러워졌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모습을 언뜻 강단 위에 선 수많은 선생님들이 강조하고 또 장려한다는 사실이다. 전공과 교양의 구분이 무색하게, 대학은 스스로 가르치는 자의 양성이라고 했던가. 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1학년의 그 『국가』에 나온 Aporia의 무게감이 졸업을 앞둔 더더욱 짓누른다. 시작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다만 거기에 그치기에는 너무 무료할까 싶어 기왕 공부하게 된 김에 발견하게 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는 사람이 되면 좋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참 야속하게도, 문제를 포착하고 해답을 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어떤 답안도 완벽하지 못함을 알기에 스스로를 더 가르칠 수 있을텐데, 그러면 자포자기를 하지 않는다는데, 이런 판단유보는 점점 허무주의로 빠질 듯 위태롭다.
이렇게 지독한 판단유보가 공부를 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이고, 또 그 결과물일테다. 대략 리뷰 논문만 봐도 드러나지 않던가. 이 공부의 기틀은 누가 세웠고, 어느 방법론이 흥하다 이쪽으로 넘어가고, 그런데 요즘은 발상의 전환으로 주제도 확장했다는… 그런 클리셰들. 굳이 인식론을 갖고 놀자면 플라톤의 그 유명한 episteme는 인간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바이고, 우리의 지식과 앎은 현상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앞으로의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욱더 예리하게 미워해야 할 대상을 고르고, 더욱 적절하게 대상에 맞춰서 그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 남아있다. 다만 대학원을 꿈꾸고 있는 지금, 예정된 3여년의 공부가 졸업을 앞둔 학부생의 허무주의에 물들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공부의 이유와 결과물에 대한 질문과 답안의 연속, 속되게 표현하자면 메타 공부라는 시각이 다시금 필요한 시점이다. 공부의 허무주의를 다루고, 그러면서도 더 깊고 끝없는 공부를 이어나가는 게 앞으로 걸어가야하는 공부의 모양이 아닐까 싶다.
김민정2021-01-20 16:55
1기 박*민
내가 생각하는 공부. 나에게 공부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한마디로 ‘무엇인가를 배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래서 진정한 공부는, 자신이 스스로 직접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가고 모르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우리에게 매기는 채점도 공부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지적으로 성장했는지, 얼마나 배웠는지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겠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이 나의 공부를 통해서 얼마나 성장하였는지에 집중하고 싶다.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 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중략)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pg. 41) 라는 구절이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처럼, 세상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작가의 말처럼 세상이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혼동스러워져, 이를 구분하는 가치 판단을 내리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판단,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첫번째 의미의 공부인 것 같다. 이러한 지식을 쌓았다고 해서 그치지 않고 ‘나’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 생각하는지 사색하고 또 나만의 고유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들과 언론의 갑론을박하는 수많은 의견 속에서 나는 맥없이 휩쓸리고 말게 될 테니까. 나도 종종 뉴스 기사의 댓글에서 사람들의 부딪치는 주장을 읽으며 도대체 어느 주장이 맞는 말인지 고민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더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고 다짐한다.
즉, 공부란 나 자신이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나의 자기발전을 위한 배움이다. 요즘 여러 자기계발 책이 정말 많이 나오면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기계발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므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 나에게는 배움, 공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번째 의미로의 공부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해소해주는 통로인 것 같다. 전공 공부에 신경쓰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흥미있는 분야에 힘쏟고 공부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뭐든지 시험 대상이 아니면 조금은 가벼워지고 또 재밌어지곤 하니까. 예를 들어, 나는 동물 다큐나 질병 다큐, 역사 다큐, 시사 토론, 세계 여행/문화 프로그램 같은 것들에 흥미가 많다. 이렇게 가볍고 때로는 진지하게 무언가에 몰두할 때 재미를 느낀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을 텐데, 그것에 관심을 갖고 또 열중할 때 그것도 공부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게 혹은 너무 무겁게만 생각한다면 그만큼 무언가에 열중하기 싫어지는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거기에 몰두할 때 즐겁다면, 그것도 우리에겐 충분히 공부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부. 나에게 공부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한마디로 ‘무엇인가를 배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래서 진정한 공부는, 자신이 스스로 직접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가고 모르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우리에게 매기는 채점도 공부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지적으로 성장했는지, 얼마나 배웠는지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겠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이 나의 공부를 통해서 얼마나 성장하였는지에 집중하고 싶다.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 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중략)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pg. 41) 라는 구절이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처럼, 세상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작가의 말처럼 세상이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혼동스러워져, 이를 구분하는 가치 판단을 내리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판단,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첫번째 의미의 공부인 것 같다. 이러한 지식을 쌓았다고 해서 그치지 않고 ‘나’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 생각하는지 사색하고 또 나만의 고유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들과 언론의 갑론을박하는 수많은 의견 속에서 나는 맥없이 휩쓸리고 말게 될 테니까. 나도 종종 뉴스 기사의 댓글에서 사람들의 부딪치는 주장을 읽으며 도대체 어느 주장이 맞는 말인지 고민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더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고 다짐한다.
즉, 공부란 나 자신이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나의 자기발전을 위한 배움이다. 요즘 여러 자기계발 책이 정말 많이 나오면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기계발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므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 나에게는 배움, 공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번째 의미로의 공부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해소해주는 통로인 것 같다. 전공 공부에 신경쓰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흥미있는 분야에 힘쏟고 공부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뭐든지 시험 대상이 아니면 조금은 가벼워지고 또 재밌어지곤 하니까. 예를 들어, 나는 동물 다큐나 질병 다큐, 역사 다큐, 시사 토론, 세계 여행/문화 프로그램 같은 것들에 흥미가 많다. 이렇게 가볍고 때로는 진지하게 무언가에 몰두할 때 재미를 느낀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을 텐데, 그것에 관심을 갖고 또 열중할 때 그것도 공부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게 혹은 너무 무겁게만 생각한다면 그만큼 무언가에 열중하기 싫어지는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거기에 몰두할 때 즐겁다면, 그것도 우리에겐 충분히 공부일 것이다.
김민정2021-01-20 17:03
1기 송*우
공부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누구는 모르는 게 상책이라고 하고 누구는 아는 게 힘이라고 한다'며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모순이 아니냐고 하는 글을 봤는데, 그 글을 보면서 어떤 상황에 전자가 옳고 어떤 상황에 후자가 옳은지를 판단하는 법을 배우는 게 공부이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공부는 둘 중에 옳은 게 뭔지를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상황에 따라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는 유연함을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얘기지만 공부가 가치관의 정립이라면, 교육을 만드는 기득권의 가치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는 공부를 독립적인 행위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공부는 거의 항상 누군가로부터의 배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강성훈 교수님이 교육과 세뇌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화두를 던지기도 하셨는데, 그런 관점에서 '나만의 고유한 가치관'이 정말 가능할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공부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누구는 모르는 게 상책이라고 하고 누구는 아는 게 힘이라고 한다'며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모순이 아니냐고 하는 글을 봤는데, 그 글을 보면서 어떤 상황에 전자가 옳고 어떤 상황에 후자가 옳은지를 판단하는 법을 배우는 게 공부이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공부는 둘 중에 옳은 게 뭔지를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상황에 따라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는 유연함을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얘기지만 공부가 가치관의 정립이라면, 교육을 만드는 기득권의 가치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는 공부를 독립적인 행위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공부는 거의 항상 누군가로부터의 배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강성훈 교수님이 교육과 세뇌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화두를 던지기도 하셨는데, 그런 관점에서 '나만의 고유한 가치관'이 정말 가능할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김민정2021-01-20 17:04
1기 이*일
솔직하고 공감가는 글이었던 것습니다!
세상의 모순이나 스스로에 대한 모순으로 엮여져 있는 것이 세상이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결국 그런 모순 속에서 정확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정보들을 쌓아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더욱 느껴지는 상황들인 것 같습니다.
나의 하나의 선택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고 앞으로의 선택이 나를 만들어가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스스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솔직하고 공감가는 글이었던 것습니다!
세상의 모순이나 스스로에 대한 모순으로 엮여져 있는 것이 세상이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결국 그런 모순 속에서 정확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정보들을 쌓아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더욱 느껴지는 상황들인 것 같습니다.
나의 하나의 선택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고 앞으로의 선택이 나를 만들어가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스스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김민정2021-01-20 17:04
1기 김*교
'나도 종종 뉴스 기사의 댓글에서 사람들의 부딪치는 주장을 읽으며 도대체 어느 주장이 맞는 말인지 고민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더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고 다짐한다.'
제가 생각하는 배움의 필요성과 정말 유사한 것 같아 많이 공감가서 글을 남깁니다. 일전에 유튜브를 통해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배움과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배움과 경험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 무엇이 마음에 안들고 무엇이 맘에 드는 지 면밀히 깊게 나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공대에 있으면서 대중, 산업의 흐름에 제 관심분야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항상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민 역시 누리면서 보다 정말 필요한 공부를 해보려합니다.
많이 공감돼서 답글을 적었습니다.
'나도 종종 뉴스 기사의 댓글에서 사람들의 부딪치는 주장을 읽으며 도대체 어느 주장이 맞는 말인지 고민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더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고 다짐한다.'
제가 생각하는 배움의 필요성과 정말 유사한 것 같아 많이 공감가서 글을 남깁니다. 일전에 유튜브를 통해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배움과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배움과 경험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 무엇이 마음에 안들고 무엇이 맘에 드는 지 면밀히 깊게 나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공대에 있으면서 대중, 산업의 흐름에 제 관심분야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항상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민 역시 누리면서 보다 정말 필요한 공부를 해보려합니다.
많이 공감돼서 답글을 적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5
1기 이*빈
내가 생각해온 공부는 적어도 3년 전까지는 그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였다. 높은 점수에서 오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한 과정이 공부였다.
또한 대학교 진학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세상을 바라보며 공부에 대한 생각도 바뀐 것 같다.
요즘 세상을 보면 느껴지는 것은 속된말로 ‘못배운 티 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이 비단 학업 수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지식이 없어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식을 축적하는 공부는 했으나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이 틀린사람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공부’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지식을 통해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리했다. 지식을 얻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공부가 그저 수단만이 된다면 ‘목적을 이룬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점수, 지위 등을 위한 수단만으로서의 공부가 미래의 나를 겸손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도 의문이 든다.
따라서 배워서 새로운 것을 아는 것, 그리고 더욱 폭넓게 사고하며 다른 사람과 사회를 더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된 공부가 정말 의미있는 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대학에서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나의 공부를 돌이켜보면, 나의 공부도 그저 한 학기를 버티고 학점을 얻어가기 위한 일종의 스킬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따라서 앞으로의 공부는 점수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 그리고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얕잡아 보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나의 역량을 활용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
내가 생각해온 공부는 적어도 3년 전까지는 그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였다. 높은 점수에서 오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한 과정이 공부였다.
또한 대학교 진학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세상을 바라보며 공부에 대한 생각도 바뀐 것 같다.
요즘 세상을 보면 느껴지는 것은 속된말로 ‘못배운 티 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이 비단 학업 수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지식이 없어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식을 축적하는 공부는 했으나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이 틀린사람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공부’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지식을 통해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리했다. 지식을 얻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공부가 그저 수단만이 된다면 ‘목적을 이룬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점수, 지위 등을 위한 수단만으로서의 공부가 미래의 나를 겸손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도 의문이 든다.
따라서 배워서 새로운 것을 아는 것, 그리고 더욱 폭넓게 사고하며 다른 사람과 사회를 더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된 공부가 정말 의미있는 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대학에서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나의 공부를 돌이켜보면, 나의 공부도 그저 한 학기를 버티고 학점을 얻어가기 위한 일종의 스킬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따라서 앞으로의 공부는 점수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 그리고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얕잡아 보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나의 역량을 활용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
김민정2021-01-20 17:05
1기 송*재
지식을 축적하는 공부는 했으나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이 틀린 사람들이 있다는 대목에서 크게 공감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욱 나쁘고 무서운 일이 될 수 있는데, 이 또한 지적 변화를 꾀하고 세상을 보는 감수성과 섬세함을 갖추는 진정한 공부가 아닌,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지식을 축적하는' 부류의 공부만 했기에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또한 이번 기회로 공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볼 수 있었지만 막상 지금의 내가 하는 공부는 그와 멀리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됐다는 점에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지식을 축적하는 공부는 했으나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이 틀린 사람들이 있다는 대목에서 크게 공감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욱 나쁘고 무서운 일이 될 수 있는데, 이 또한 지적 변화를 꾀하고 세상을 보는 감수성과 섬세함을 갖추는 진정한 공부가 아닌,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지식을 축적하는' 부류의 공부만 했기에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또한 이번 기회로 공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볼 수 있었지만 막상 지금의 내가 하는 공부는 그와 멀리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됐다는 점에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5
1기 권*수
사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진부하고 지루한 내용이지 않을까?’였다. 그러나 이 생각은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바로 사라졌고, 오히려 앞으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무한 경쟁 속에서 입시생과 취업 준비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간다. 나는 이 표현에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학교를 다닐 날보다 다닌 날이 더 많아지는 현시점에서 자연스레 진로에 대한 고민이 늘어났다. ‘앞으로 무엇을 하지?’라는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왜 공부를 하지?’,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목표로 달려왔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답을 찾지 못했고 오늘도 그저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조금 더 솔직히 고백해보자면,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그저 ‘행복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좇으면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 편이라고 합리화했다.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합리화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나를 향해 하는 말인 것 같았고, 유머로 풀어낸 비판이 아주 날카롭게 느껴져서 책을 읽으면서 ‘아프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등의 교과목을 달달 외우고, 문제의 정답을 맞혀서 시험을 잘 보면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온 후에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학점이 좋으면 공부를 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는 것이 많으면 공부를 잘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을 보고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섣불리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공부’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나 자신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치르면서 나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경쟁적인 교육에 환멸을 느꼈다. 학교에서의 모든 행동들이 점수로 평가되고, 내 점수보다 등수가 더 중요한 교육체계에서는 틀린 답을 말하면 안 된다. ‘틀린다’는 것은 내 점수가 낮아진다는 것이고, 점수가 낮아지면 등수가 낮아지고, 이는 곧 공부를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틀리면 안 돼’라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교수님들께서 ‘틀려도 좋으니 적극적으로 대답해달라’, ‘틀리면서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셔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공부는 ‘정답을 찾는 것’이 되어버렸다.
강의를 듣고 배운 지식을 달달 외워서 시험날 전부 토해버리는 식의 공부에 갑갑함을 느껴 세미나 수업을 찾았다. 교수님을 비롯한 다른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은 꽤나 재미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러나 세미나 수업에서조차 난 여전히 정답을 찾고자 하고 틀린 말을 할까 봐 불안해한다. 내 의견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생각해내지 못할 때는 머릿속이 텅텅 비어있는 느낌을 받으면서 ‘왜 나는 아는 게 없지?’라고 속으로 물으며 이내 ‘공부해야지’라고 다짐을 한다. 공부라는 것이 아직은 내게 그다지 즐거운 존재는 아니지만, 바라건대 앞으로 하게 되는 공부들이 외적 요소에 얽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순수한 배움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진부하고 지루한 내용이지 않을까?’였다. 그러나 이 생각은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바로 사라졌고, 오히려 앞으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무한 경쟁 속에서 입시생과 취업 준비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간다. 나는 이 표현에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학교를 다닐 날보다 다닌 날이 더 많아지는 현시점에서 자연스레 진로에 대한 고민이 늘어났다. ‘앞으로 무엇을 하지?’라는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왜 공부를 하지?’,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목표로 달려왔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답을 찾지 못했고 오늘도 그저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조금 더 솔직히 고백해보자면,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그저 ‘행복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좇으면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 편이라고 합리화했다.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합리화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나를 향해 하는 말인 것 같았고, 유머로 풀어낸 비판이 아주 날카롭게 느껴져서 책을 읽으면서 ‘아프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등의 교과목을 달달 외우고, 문제의 정답을 맞혀서 시험을 잘 보면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온 후에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학점이 좋으면 공부를 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는 것이 많으면 공부를 잘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을 보고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섣불리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공부’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나 자신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치르면서 나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경쟁적인 교육에 환멸을 느꼈다. 학교에서의 모든 행동들이 점수로 평가되고, 내 점수보다 등수가 더 중요한 교육체계에서는 틀린 답을 말하면 안 된다. ‘틀린다’는 것은 내 점수가 낮아진다는 것이고, 점수가 낮아지면 등수가 낮아지고, 이는 곧 공부를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틀리면 안 돼’라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교수님들께서 ‘틀려도 좋으니 적극적으로 대답해달라’, ‘틀리면서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셔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공부는 ‘정답을 찾는 것’이 되어버렸다.
강의를 듣고 배운 지식을 달달 외워서 시험날 전부 토해버리는 식의 공부에 갑갑함을 느껴 세미나 수업을 찾았다. 교수님을 비롯한 다른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은 꽤나 재미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러나 세미나 수업에서조차 난 여전히 정답을 찾고자 하고 틀린 말을 할까 봐 불안해한다. 내 의견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생각해내지 못할 때는 머릿속이 텅텅 비어있는 느낌을 받으면서 ‘왜 나는 아는 게 없지?’라고 속으로 물으며 이내 ‘공부해야지’라고 다짐을 한다. 공부라는 것이 아직은 내게 그다지 즐거운 존재는 아니지만, 바라건대 앞으로 하게 되는 공부들이 외적 요소에 얽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순수한 배움이었으면 좋겠다.
김민정2021-01-20 16:55
1기 장*균
고등학교 때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잘 모르겠다. 순전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내게 주어진 할 일들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학생 때의 공부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을 잘 흡수하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재미없어 보여도 내가 해야할 것들이 정해져있고 그것들을 하나씩 해내는 것에 오는 만족감, 그리고 이와 더불어 따라온 결과에서 나온 성취감 덕분에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이제는 공부라는 존재가 내 머리 속에서 희미해진 존재가 되었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랐다. 수업부터 내가 정할 수 있었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어떤 활동들을 하느냐에 따라 학교 생활이 달라졌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어쩌면 고등학교 때 마음 한 구석에서 열망했던 ‘자유’라는 것을 맛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수업의 방식도, 각종 과제들도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주어진 것을 열심히 공부하고 외워 시험만 보는 수동적인 공부방식에 익숙했던 나는 새로운 방식이 너무나도 낯설었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전처럼 정해지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하다보니 이전과 같은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나는 수동적인 공부에서 능동적인 공부로 나아가기 위해 어려움과 시행착오들을 많이 겪었다.
이 책은 마치 이런 나의 경험을 알고있는 것처럼 좀 더 능동적인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에 입학한 상황 혹은 비단 학교 생활이 아니더라도 인생에 있어서 해야할 공부, 생각, 방법, 그리고 이를 위한 동기부여를 담고있다. 이런 면에서 내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이 책은 오랜만에 다시 ‘공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에 대해 새롭게 생각했던 것처럼 공부 역시 내가 살아가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까지 내게 공부가 주어진 과제를 처리하는 것이었고, 대학에 입학해 적응하기 시작했을 때는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내가 더 배우기 위해 더 찾아서 노력하는 것이 공부였다면 지금의 내게 공부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에 집중하여 시도해보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졸업은 점점 다가오고 있고 사회로 진출할 시기도 얼마 안 남았다. 나에게 수업이라는 것의 존재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홀로서기를 준비할 때이다.
고등학교 때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잘 모르겠다. 순전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내게 주어진 할 일들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학생 때의 공부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을 잘 흡수하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재미없어 보여도 내가 해야할 것들이 정해져있고 그것들을 하나씩 해내는 것에 오는 만족감, 그리고 이와 더불어 따라온 결과에서 나온 성취감 덕분에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이제는 공부라는 존재가 내 머리 속에서 희미해진 존재가 되었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랐다. 수업부터 내가 정할 수 있었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어떤 활동들을 하느냐에 따라 학교 생활이 달라졌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어쩌면 고등학교 때 마음 한 구석에서 열망했던 ‘자유’라는 것을 맛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수업의 방식도, 각종 과제들도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주어진 것을 열심히 공부하고 외워 시험만 보는 수동적인 공부방식에 익숙했던 나는 새로운 방식이 너무나도 낯설었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전처럼 정해지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하다보니 이전과 같은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나는 수동적인 공부에서 능동적인 공부로 나아가기 위해 어려움과 시행착오들을 많이 겪었다.
이 책은 마치 이런 나의 경험을 알고있는 것처럼 좀 더 능동적인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에 입학한 상황 혹은 비단 학교 생활이 아니더라도 인생에 있어서 해야할 공부, 생각, 방법, 그리고 이를 위한 동기부여를 담고있다. 이런 면에서 내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이 책은 오랜만에 다시 ‘공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에 대해 새롭게 생각했던 것처럼 공부 역시 내가 살아가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까지 내게 공부가 주어진 과제를 처리하는 것이었고, 대학에 입학해 적응하기 시작했을 때는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내가 더 배우기 위해 더 찾아서 노력하는 것이 공부였다면 지금의 내게 공부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에 집중하여 시도해보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졸업은 점점 다가오고 있고 사회로 진출할 시기도 얼마 안 남았다. 나에게 수업이라는 것의 존재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홀로서기를 준비할 때이다.
김민정2021-01-20 17:06
1기 송*재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대했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부분이 매우 와닿았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대학에서의 공부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공부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고 이 책을 읽고 나서와는 또 다른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대했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부분이 매우 와닿았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대학에서의 공부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공부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고 이 책을 읽고 나서와는 또 다른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7:06
1기 박*슬
저도 대학에 들어와서 맛본 공부에서의 '자유'가 처음엔 너무 낯설었습니다. 교양과목 공부를 하면서 "모의고사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고, 친구에게 우스개 소리로 전공과목 과외를 받고싶다는 이야기도 했었습니다. 저 역시 '떠먹여주는 공부'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혼자 책과 인터넷을 보며 가이드라인 없이 공부하는 것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이제는 이런 공부 방법에 조금은 익숙해졌고, 성균님의 말처럼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해 정말로 홀로설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점차 익혀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능동적인 공부를 하며 겪는 여러 시행착오들이, 앞으로 삶에 놓일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학에 들어와서 맛본 공부에서의 '자유'가 처음엔 너무 낯설었습니다. 교양과목 공부를 하면서 "모의고사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고, 친구에게 우스개 소리로 전공과목 과외를 받고싶다는 이야기도 했었습니다. 저 역시 '떠먹여주는 공부'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혼자 책과 인터넷을 보며 가이드라인 없이 공부하는 것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이제는 이런 공부 방법에 조금은 익숙해졌고, 성균님의 말처럼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해 정말로 홀로설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점차 익혀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능동적인 공부를 하며 겪는 여러 시행착오들이, 앞으로 삶에 놓일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정2021-01-20 16:55
1기 권*현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공부라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한 공부라는 것은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알려주시는 내용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정리하며, 시험 문제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라고 지칭되는 그것들을 하는 과정들이 즐거웠다. 즉, 주입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문제를 맞히는 것을 공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을 입학해서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 수업을 듣기도 하고, 다른 수업을 듣기도 하면서 공부라는 것,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한 나의 생각은 계속해서 변해왔다. 철학과 관련된 책을 감명 깊게 읽었을 때에는 공부라는 것이 고매한, 귀중한 어떤 것을 추구하는 대단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 해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거이었다가, 대학 생활이 너무 힘들 때에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스펙에 불과해, 내가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것이었다가, 아니면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기도 했다.
이 수업을 듣는, 지금의 나에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보다 낮게 평가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티비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한 수능 만점자들의 인터뷰를 잠깐 봤다. 대학에 들어가고 달라진 점에 대해서 대학교 사람들을 보니까 자신의 역량에 맞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고, 자신은 수능만점자라고 과대평가 받았고 그에 대해서 자만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역량에 맞게 평가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부분만 봐서 뒷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 부분만 듣고 공부를 해야 하는 나만의 이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역량이 있다면, 자신의 역량에 비해 평가를 낮게 받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였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결국 공부라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하고, 그 보다 낮은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는 여전히 나에게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일단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을 하면 언젠가는 내가 잘 하게 되거나, 잘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제1전공을 동양사학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인식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하고, 그들과 함께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자를 처음 배울 때, 글자를 따라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글자 모양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학업적인 공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것 같다.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해보고, 나의 환경을 바꿔보기도 하고, 체력을 길러보기도 하는 노력들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공부라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한 공부라는 것은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알려주시는 내용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정리하며, 시험 문제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라고 지칭되는 그것들을 하는 과정들이 즐거웠다. 즉, 주입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문제를 맞히는 것을 공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을 입학해서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 수업을 듣기도 하고, 다른 수업을 듣기도 하면서 공부라는 것,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한 나의 생각은 계속해서 변해왔다. 철학과 관련된 책을 감명 깊게 읽었을 때에는 공부라는 것이 고매한, 귀중한 어떤 것을 추구하는 대단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 해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거이었다가, 대학 생활이 너무 힘들 때에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스펙에 불과해, 내가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것이었다가, 아니면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기도 했다.
이 수업을 듣는, 지금의 나에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보다 낮게 평가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티비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한 수능 만점자들의 인터뷰를 잠깐 봤다. 대학에 들어가고 달라진 점에 대해서 대학교 사람들을 보니까 자신의 역량에 맞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고, 자신은 수능만점자라고 과대평가 받았고 그에 대해서 자만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역량에 맞게 평가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부분만 봐서 뒷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 부분만 듣고 공부를 해야 하는 나만의 이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역량이 있다면, 자신의 역량에 비해 평가를 낮게 받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였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결국 공부라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하고, 그 보다 낮은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는 여전히 나에게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일단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을 하면 언젠가는 내가 잘 하게 되거나, 잘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제1전공을 동양사학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인식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하고, 그들과 함께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자를 처음 배울 때, 글자를 따라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글자 모양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학업적인 공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것 같다.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해보고, 나의 환경을 바꿔보기도 하고, 체력을 길러보기도 하는 노력들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김민정2021-01-20 17:07
1기 이*현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지금까지, 꽤 오래 *현씨와 알고 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공부하고 계신 전공으로의 진입 문제를 두고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공부란 무엇일까라는 주제는 우리가 술잔 앞에서 지금껏 꽤 많이 나눠왔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잘 하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현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런 여러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예전 언젠가 말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도전하고 노력하는 *현씨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공부를 찾아 매진하고 달려드는 그런 모습이 제게 영감이 되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시든, 어떤 일을 하시든 친구로서 언제나 응원하고 싶습니다.
다만, 글 마지막에서도 언급하셨듯, 밥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셔서 건강 관리를 좀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들을 잘 해내려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길, 친구로서 부탁합니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지금까지, 꽤 오래 *현씨와 알고 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공부하고 계신 전공으로의 진입 문제를 두고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공부란 무엇일까라는 주제는 우리가 술잔 앞에서 지금껏 꽤 많이 나눠왔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잘 하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현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런 여러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예전 언젠가 말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도전하고 노력하는 *현씨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공부를 찾아 매진하고 달려드는 그런 모습이 제게 영감이 되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시든, 어떤 일을 하시든 친구로서 언제나 응원하고 싶습니다.
다만, 글 마지막에서도 언급하셨듯, 밥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셔서 건강 관리를 좀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들을 잘 해내려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길, 친구로서 부탁합니다.
김민정2021-01-20 16:55
1기 김*현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갖추어야할 자세와 연습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책에서 말하는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과 답은 찾지 못했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발화가 될 수 있듯이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는 것 또한 의도된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런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채워야할 부분인 것 같다.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돌아봐도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초의 나에게 공부란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 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공부를 하는 이유는 모르는 것을 배울 때 시야가 넓어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중학교 말과 고등학교의 나에게 공부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시험의 대상이 되는 지식을 익히고 그를 바탕으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는 것이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공부였던 것 같다.
그런 시기를 거쳐 대학에 왔고 원한다면 공부를 안 하고 뛰쳐나갈 수 있는 나이와 환경이 되었다. 이런 상황의 내가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공부를 왜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지금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2학년이 되어 처음 배우던 전공 수업들에 여전히 현실과는 동떨어진, 너무 이상적인 가정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느꼈었다. 그래도 전공책의 각 단원의 첫 장에 있는 가스터빈, 자동차 사진과 같은 기계공학의 결과물들의 사진을 보면서 지금 배우는 내용들이 사진에 나오는 것들을 만드는 지적인 기초가 될 것이란 생각으로 수업에 대한 흥미를 찾으려 했었다. 그때 시작한 전공수업에 대한 스스로의 동기부여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지금 배우는 것들이 나중에 내가 만들 것들의 기초가 될 것이란 생각이 공부를 하게 만든다.
이런 공부의 이유를 갖고 있는 나에게 공부란 어떤 현상을 이해하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그 현상을 관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 후에 현상을 해석하는 다양한 이론과 관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풀거나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를 시도하는 것이 지금 하는 공부의 다음 단계의 공부라 생각한다.
공부의 과정에는 적당한 순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2학년 초에 우리학교의 교수님들은 어떤 논문을 쓰시는지 궁금해서 내가 속한과의 교수님들 논문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때는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라 논문을 읽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4학년이 된 지금은 배경지식이 쌓여서 그런지 다른 지적인 성장이 있었는지 몰라도 최소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관련된 논문들은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학년 초에 어디서부터 자료 조사를 해야 할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엄두가 안 나던 상황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배웠는지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로 공부를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그동안의 시간을 거친 공부와 배움이 나를 나아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때, 공부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적당한 순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순서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그런 거 없이도 공부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나를 돌아볼 때는 배경이 되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적당한 순서가 지켜질 때 흥미를 잃지 않고 공부를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공부의 이유와 공부에서 지켜지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안 풀린 문제를 찾아 풀고 새로운 관점을 얻는 과정이자 그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 공부인 것 같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갖추어야할 자세와 연습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책에서 말하는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과 답은 찾지 못했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발화가 될 수 있듯이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는 것 또한 의도된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런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채워야할 부분인 것 같다.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돌아봐도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초의 나에게 공부란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 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공부를 하는 이유는 모르는 것을 배울 때 시야가 넓어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중학교 말과 고등학교의 나에게 공부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시험의 대상이 되는 지식을 익히고 그를 바탕으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는 것이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공부였던 것 같다.
그런 시기를 거쳐 대학에 왔고 원한다면 공부를 안 하고 뛰쳐나갈 수 있는 나이와 환경이 되었다. 이런 상황의 내가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공부를 왜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지금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2학년이 되어 처음 배우던 전공 수업들에 여전히 현실과는 동떨어진, 너무 이상적인 가정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느꼈었다. 그래도 전공책의 각 단원의 첫 장에 있는 가스터빈, 자동차 사진과 같은 기계공학의 결과물들의 사진을 보면서 지금 배우는 내용들이 사진에 나오는 것들을 만드는 지적인 기초가 될 것이란 생각으로 수업에 대한 흥미를 찾으려 했었다. 그때 시작한 전공수업에 대한 스스로의 동기부여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지금 배우는 것들이 나중에 내가 만들 것들의 기초가 될 것이란 생각이 공부를 하게 만든다.
이런 공부의 이유를 갖고 있는 나에게 공부란 어떤 현상을 이해하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그 현상을 관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 후에 현상을 해석하는 다양한 이론과 관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풀거나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를 시도하는 것이 지금 하는 공부의 다음 단계의 공부라 생각한다.
공부의 과정에는 적당한 순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2학년 초에 우리학교의 교수님들은 어떤 논문을 쓰시는지 궁금해서 내가 속한과의 교수님들 논문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때는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라 논문을 읽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4학년이 된 지금은 배경지식이 쌓여서 그런지 다른 지적인 성장이 있었는지 몰라도 최소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관련된 논문들은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학년 초에 어디서부터 자료 조사를 해야 할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엄두가 안 나던 상황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배웠는지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로 공부를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그동안의 시간을 거친 공부와 배움이 나를 나아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때, 공부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적당한 순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순서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그런 거 없이도 공부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나를 돌아볼 때는 배경이 되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적당한 순서가 지켜질 때 흥미를 잃지 않고 공부를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공부의 이유와 공부에서 지켜지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안 풀린 문제를 찾아 풀고 새로운 관점을 얻는 과정이자 그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 공부인 것 같다.
김민정2021-01-20 17:08
1기 남*범
목적의식을 갖고 계획적으로 공부를 하시는 것 같아 신기하고 부럽습니다. 또한 본인 스스로 흥미를 만들어내시는 점을 본받고 싶습니다.
공부에 순서가 있다는 점에도 공감이 됩니다. 저도 이전에 너무 어려워서 포기한 교과목을 재수강하니 너무나 쉽고 재밌게 와닿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받아들이는 정보와 아이디어들이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분명한 경우도 많지만, 배경 지식을 먼저 최대한 습득하고자 하는 방식이 재미면에서도, 효율면에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생각이 깊은 글 감사합니다.
목적의식을 갖고 계획적으로 공부를 하시는 것 같아 신기하고 부럽습니다. 또한 본인 스스로 흥미를 만들어내시는 점을 본받고 싶습니다.
공부에 순서가 있다는 점에도 공감이 됩니다. 저도 이전에 너무 어려워서 포기한 교과목을 재수강하니 너무나 쉽고 재밌게 와닿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받아들이는 정보와 아이디어들이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분명한 경우도 많지만, 배경 지식을 먼저 최대한 습득하고자 하는 방식이 재미면에서도, 효율면에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생각이 깊은 글 감사합니다.
김민정2021-01-20 16:56
1기 이*일
김영민 교수님의 “공부란 무엇인가”는 공부 자체와 연구의 길을 가는 과정 중에서 얻을 수 있고 알게 된 것들, 공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과 공부를 계속해나가기 위한 동기력을 부여할 수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주신 글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논설문에 대한 part에서는 논설문에 대한 관찰이 흥미로웠다. 모순된 사람, 모순된 사람들의 모순들로 엮여진 사람들에 대한 질문과 관찰 속에서 모순되지 않는 문장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논설문이라고 관찰하신 것이. 책의 중간<척추 기립근을 세우기 위해서>에서도 공부를 함으로 자신이 어제보다는 더욱 나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하셨고, 이렇게 지식이 쌓이면 더욱 섬세한 인식을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게 하며, 이러한 섬세함이 대화에 사용되어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말을 상대에게 이해시키도록 하며, 상대를 이해하려고 할 수 있게 된다라는 지향점을 말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논설문에 대한 관찰과 (학문적, 사회적) 대화를 위한 섬세함이 엮여 모순된 사회와 사람에 대한 섬세한 질문과 이해에 대한 시도가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물론 무용한 것이라고 평가되는 것들에도 동기력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수많은 담론과 토론들이 하나의 더 나은 지향점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런 방법이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있어서 공부라는 것은 항상 목표 지향적인 배움이였다고 생각이 된다. 물론 목표 없는 공부가 있겠느냐만은, 더 구체화를 한다면 유용한 것에 초점을 두었다고 생각이 된다. 지금까지 한 공부는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컸으며, 또한 공부로 얻은 지식이나 가치 판단의 기준들로 나/집단/사회이 얻게 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한 것도 나의 공부의 원동력이었다.
또한 공부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 체계에 내가 발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 쌓이고 체계가 잡힌 곳은 자기가 하고 싶은 순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걷고 있는 나는 어떻게 보면 그곳에서의 지식 체계를 받아들이는 중에 있으며, 거기서의 언어를 배워가는 단계인 것이다. 특히 공학 분야에서의 지식 체계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아마 대부분의 학분이 그러할 것이듯이) 방법 중 쌓아나가게 된 것이고, 그 곳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생긴 (공학적)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그 답을 그 지식 체계라는 커다란 블록 조형물의 블럭의 모양으로 녹여 틀을 만들어 그 위,아래,옆에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공부란 또한 실제 그 자체로도 즐거움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물론, 책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은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라는 말에서 보듯이 좀 힘들다 하는 것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대부분 힘든 것이 내가 공부를 잘 하고 있다는 지표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세상을 보는 시야와 관점이 생기게 되는 것도 공부의 즐거움이다. 내가 만족할만한 공부가 된 시야들과 관점은 또 다른 질문들과 어려움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 중에는 내가 당면한 문제들을 쪼개고 쪼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문제들의 해결책을 보여주기도 하는 통찰력을 얻어가는것도 공부이다. 이 공부는 학교 과정을 통한 공부를 포함하여 여러 시야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든지, 어떤 원리를 배우게 되는 순간에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김영민 교수님의 “공부란 무엇인가”는 공부 자체와 연구의 길을 가는 과정 중에서 얻을 수 있고 알게 된 것들, 공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과 공부를 계속해나가기 위한 동기력을 부여할 수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주신 글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논설문에 대한 part에서는 논설문에 대한 관찰이 흥미로웠다. 모순된 사람, 모순된 사람들의 모순들로 엮여진 사람들에 대한 질문과 관찰 속에서 모순되지 않는 문장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논설문이라고 관찰하신 것이. 책의 중간<척추 기립근을 세우기 위해서>에서도 공부를 함으로 자신이 어제보다는 더욱 나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하셨고, 이렇게 지식이 쌓이면 더욱 섬세한 인식을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게 하며, 이러한 섬세함이 대화에 사용되어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말을 상대에게 이해시키도록 하며, 상대를 이해하려고 할 수 있게 된다라는 지향점을 말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논설문에 대한 관찰과 (학문적, 사회적) 대화를 위한 섬세함이 엮여 모순된 사회와 사람에 대한 섬세한 질문과 이해에 대한 시도가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물론 무용한 것이라고 평가되는 것들에도 동기력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수많은 담론과 토론들이 하나의 더 나은 지향점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런 방법이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있어서 공부라는 것은 항상 목표 지향적인 배움이였다고 생각이 된다. 물론 목표 없는 공부가 있겠느냐만은, 더 구체화를 한다면 유용한 것에 초점을 두었다고 생각이 된다. 지금까지 한 공부는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컸으며, 또한 공부로 얻은 지식이나 가치 판단의 기준들로 나/집단/사회이 얻게 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한 것도 나의 공부의 원동력이었다.
또한 공부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 체계에 내가 발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 쌓이고 체계가 잡힌 곳은 자기가 하고 싶은 순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걷고 있는 나는 어떻게 보면 그곳에서의 지식 체계를 받아들이는 중에 있으며, 거기서의 언어를 배워가는 단계인 것이다. 특히 공학 분야에서의 지식 체계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아마 대부분의 학분이 그러할 것이듯이) 방법 중 쌓아나가게 된 것이고, 그 곳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생긴 (공학적)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그 답을 그 지식 체계라는 커다란 블록 조형물의 블럭의 모양으로 녹여 틀을 만들어 그 위,아래,옆에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공부란 또한 실제 그 자체로도 즐거움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물론, 책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은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라는 말에서 보듯이 좀 힘들다 하는 것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대부분 힘든 것이 내가 공부를 잘 하고 있다는 지표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세상을 보는 시야와 관점이 생기게 되는 것도 공부의 즐거움이다. 내가 만족할만한 공부가 된 시야들과 관점은 또 다른 질문들과 어려움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 중에는 내가 당면한 문제들을 쪼개고 쪼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문제들의 해결책을 보여주기도 하는 통찰력을 얻어가는것도 공부이다. 이 공부는 학교 과정을 통한 공부를 포함하여 여러 시야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든지, 어떤 원리를 배우게 되는 순간에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김민정2021-01-20 16:56
1기 송*재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 느낀 것은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난 공부라는 것을 잘 해온, 또 잘 하는 사람인데 왜 공부란 무엇인가를 알기 두려워하는 마음이 든 것일까? 여기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초중고 12년 동안 공부는 내게 자신감이었고, 자부심이었고 대부분의 날들엔 피할 수 없는 숙제였지만 또 곧잘 하는 특기였다. 그럼에도 항상 왠지 모를 의구심, 정확히 말하면 ‘찔림’의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그저 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듣고 문제집을 열심히 풀고, 그 내용을 말하고 써가며 외운 다음 시험시간에 덤벙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녕 모든 어른들이 칭찬해주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내가 원하는 상급학교로 갈 수 있게 해주고, ‘좋은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줄 만한 것이었는가? 항상 뭔가 이상했다. 그저 이렇게 내가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모르는 과정을 통해 성적을 받고 뿌듯해하면 되는 것일까?
대학에 와서도, 꽤 오랜 시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교수님의 말씀과 전공책의 내용을 외우고 시험지에 ‘토해내는’ 과정은 중고등학교 때의 서술형 시험과 차이가 없었다. 아마 공부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다르지 않았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2학년 2학기, 이제 정말 학점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성적만을 위한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지금의 공부가 조금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한두 번 더 곱씹고 이해하고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확실한 것은 왜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지, 과연 그게 맞는지, 반대로 모호한 것은 왜 모호하게 서술한 것인지 그 이면의 의미를 알기위해 수업을 듣고 복습을 하고 논문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그러자 이제야 내가 ‘공부’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위와 같은 생각은 그저 조금 발전한 고등학생의 마인드가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되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식을 더 잘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지적 변화를 이루는 것, 그렇게 더 나은 것을 꿈꾸고 세상에 아주 작은 변화라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내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호한 지식과 발언으로 남을 현혹하고, 똑똑한 척 가장하는 헛똑똑이가 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지, 공부를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크게 배운 기회였다. 이렇게 배우고 더 고민하다보면 교수님의 인터뷰 제목처럼 ‘배움의 순간도 사랑처럼, 의외의 순간에 오는 것’이라는 걸 불현 듯 몸소 느끼게 될 날이 오길 바라본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 느낀 것은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난 공부라는 것을 잘 해온, 또 잘 하는 사람인데 왜 공부란 무엇인가를 알기 두려워하는 마음이 든 것일까? 여기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초중고 12년 동안 공부는 내게 자신감이었고, 자부심이었고 대부분의 날들엔 피할 수 없는 숙제였지만 또 곧잘 하는 특기였다. 그럼에도 항상 왠지 모를 의구심, 정확히 말하면 ‘찔림’의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그저 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듣고 문제집을 열심히 풀고, 그 내용을 말하고 써가며 외운 다음 시험시간에 덤벙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녕 모든 어른들이 칭찬해주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내가 원하는 상급학교로 갈 수 있게 해주고, ‘좋은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줄 만한 것이었는가? 항상 뭔가 이상했다. 그저 이렇게 내가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모르는 과정을 통해 성적을 받고 뿌듯해하면 되는 것일까?
대학에 와서도, 꽤 오랜 시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교수님의 말씀과 전공책의 내용을 외우고 시험지에 ‘토해내는’ 과정은 중고등학교 때의 서술형 시험과 차이가 없었다. 아마 공부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다르지 않았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2학년 2학기, 이제 정말 학점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성적만을 위한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지금의 공부가 조금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한두 번 더 곱씹고 이해하고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확실한 것은 왜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지, 과연 그게 맞는지, 반대로 모호한 것은 왜 모호하게 서술한 것인지 그 이면의 의미를 알기위해 수업을 듣고 복습을 하고 논문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그러자 이제야 내가 ‘공부’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위와 같은 생각은 그저 조금 발전한 고등학생의 마인드가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되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식을 더 잘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지적 변화를 이루는 것, 그렇게 더 나은 것을 꿈꾸고 세상에 아주 작은 변화라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내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호한 지식과 발언으로 남을 현혹하고, 똑똑한 척 가장하는 헛똑똑이가 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지, 공부를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크게 배운 기회였다. 이렇게 배우고 더 고민하다보면 교수님의 인터뷰 제목처럼 ‘배움의 순간도 사랑처럼, 의외의 순간에 오는 것’이라는 걸 불현 듯 몸소 느끼게 될 날이 오길 바라본다.
김민정2021-01-20 16:56
1기 김*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공부는 그게 아니면 할 게 없어서 하는 것이었다. 또래들이 좋아하던 게임에는 큰 흥미가 없어서 일주일에 1시간 정도만 하고도 질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또 지독히도 싫어해서, 축구공을 들고 집 앞에 찾아와 놀자고 외치던 친구들은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때문에 어린 내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은 장판 위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거나 책상에 틀어박혀 문제집을 푸는 것뿐이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뻔하다. 학교 성적이 잘 나오고 공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중2가 되자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자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입시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운 좋게도 영재학교에 진학했지만, 그 이후의 공부에는 의무감이 개입했다. 처음에는 좋은 고등학교에 일반고 수준의 수업료를 내며 다닐 수 있어서 학비가 싸다고 좋아만 했다. 그러나 훌륭한 시설과 장비를 사용할 때마다 내가 세금을 사발채로 들이키고 있다는 사실이 뼈를 세게 때렸다. 가끔은 이공계가 내 적성이 맞는지,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세금 낭비에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의미 없이 뺏은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황할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문제를 풀고 실험하고 보고서를 썼다.
대학에 와서 새내기 때는 오히려 의무로 수강해야 할 전공 과목이 없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교양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때 들었던 교양 인공지능 강의가 대학생활과 내 공부를 크게 바꾸었다. 먼저, 인공지능이라고 할 때는 딥러닝 등의 최신 기술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는데, 이 강의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연구된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컨텍스트가 필요했다는 것이 이제야 보인다. 그리고 그 해 여름방학부터는 이 교양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 연구실에서 스핀오프한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강의에서 배운 지식은 최신 연구에는 한참 뒤쳐진 것이었음을 깨달았고, 최신 연구결과를 재현하고 더 개선시킬 궁리를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더라도 만들라는 프로그램만 짜면 급여는 나왔겠지만, 다른 연구자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그 위에 작은 돌을 하나 올려놓는 작업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이때가 최근 1년간 가장 공부를 열심히 즐겁게 한 시기였던 것 같다.
나는 사람에게 공부의 기능이 기계학습에서의 선학습(pretraining)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선학습은 기계학습 모델을 내가 풀려는 데이터에 학습시키기 전 다른 데이터에 먼저 학습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종류의 (카카오프렌즈와는 무관한) 이미지를 분류하도록 먼저 학습시킨 모델을 가져다가 우리집에 있는 라이언과 어피치 인형 사진을 구분하게 학습시킨다면 처음부터 라이언과 어피치 사진으로만 학습시킨 모델에 비해 더 나은 성능을 보인다. 물론 선학습이 도입된 것은 사람이 공부하는 것에서 따온 것이지만 그 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에는 오히려 기계의 쪽이 낫다. 요즘 ‘핫한’ 자연어 생성 모델인 GPT-3에서 ‘P’가 선학습된(pretrained)의 약어다. GPT-3은 온라인에서 수집한 수많은 텍스트들을 오랜 시간 선학습한 모델에 불과하지만, 자연어 처리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예시만 보여주면 다른 작업도 잘 수행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언어 모델들이라면 새로운 작업을 가르치기 위해서 방대한 데이터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GPT-3은 그렇지 않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문제 해결의 연속이고, 잘 살기 위해서는 문제를 잘 풀어야 된다. 그리고 공부는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문제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준다. Hopefully.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공부는 그게 아니면 할 게 없어서 하는 것이었다. 또래들이 좋아하던 게임에는 큰 흥미가 없어서 일주일에 1시간 정도만 하고도 질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또 지독히도 싫어해서, 축구공을 들고 집 앞에 찾아와 놀자고 외치던 친구들은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때문에 어린 내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은 장판 위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거나 책상에 틀어박혀 문제집을 푸는 것뿐이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뻔하다. 학교 성적이 잘 나오고 공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중2가 되자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자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입시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운 좋게도 영재학교에 진학했지만, 그 이후의 공부에는 의무감이 개입했다. 처음에는 좋은 고등학교에 일반고 수준의 수업료를 내며 다닐 수 있어서 학비가 싸다고 좋아만 했다. 그러나 훌륭한 시설과 장비를 사용할 때마다 내가 세금을 사발채로 들이키고 있다는 사실이 뼈를 세게 때렸다. 가끔은 이공계가 내 적성이 맞는지,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세금 낭비에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의미 없이 뺏은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황할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문제를 풀고 실험하고 보고서를 썼다.
대학에 와서 새내기 때는 오히려 의무로 수강해야 할 전공 과목이 없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교양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때 들었던 교양 인공지능 강의가 대학생활과 내 공부를 크게 바꾸었다. 먼저, 인공지능이라고 할 때는 딥러닝 등의 최신 기술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는데, 이 강의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연구된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컨텍스트가 필요했다는 것이 이제야 보인다. 그리고 그 해 여름방학부터는 이 교양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 연구실에서 스핀오프한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강의에서 배운 지식은 최신 연구에는 한참 뒤쳐진 것이었음을 깨달았고, 최신 연구결과를 재현하고 더 개선시킬 궁리를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더라도 만들라는 프로그램만 짜면 급여는 나왔겠지만, 다른 연구자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그 위에 작은 돌을 하나 올려놓는 작업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이때가 최근 1년간 가장 공부를 열심히 즐겁게 한 시기였던 것 같다.
나는 사람에게 공부의 기능이 기계학습에서의 선학습(pretraining)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선학습은 기계학습 모델을 내가 풀려는 데이터에 학습시키기 전 다른 데이터에 먼저 학습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종류의 (카카오프렌즈와는 무관한) 이미지를 분류하도록 먼저 학습시킨 모델을 가져다가 우리집에 있는 라이언과 어피치 인형 사진을 구분하게 학습시킨다면 처음부터 라이언과 어피치 사진으로만 학습시킨 모델에 비해 더 나은 성능을 보인다. 물론 선학습이 도입된 것은 사람이 공부하는 것에서 따온 것이지만 그 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에는 오히려 기계의 쪽이 낫다. 요즘 ‘핫한’ 자연어 생성 모델인 GPT-3에서 ‘P’가 선학습된(pretrained)의 약어다. GPT-3은 온라인에서 수집한 수많은 텍스트들을 오랜 시간 선학습한 모델에 불과하지만, 자연어 처리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예시만 보여주면 다른 작업도 잘 수행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언어 모델들이라면 새로운 작업을 가르치기 위해서 방대한 데이터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GPT-3은 그렇지 않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문제 해결의 연속이고, 잘 살기 위해서는 문제를 잘 풀어야 된다. 그리고 공부는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문제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준다. Hopefully.
김민정2021-01-20 17:10
1기 박*원
저는 외국에서 특례입학을 통해서 이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얘기하길, "특례입학은 너무 큰 우대다"라는 주장에 저도 그렇게 선뜻 반대를 못하겠더라구요. 저는 2년이 지난 지금조차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히 내가 서울대에 다닌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여러 번 되묻게 되죠. 하지만, 그러면 항상 돌아오는 말이, "당연하지, 넌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에 재학중인거야" 였습니다. 상범님이 느끼셨던 것처럼 내가 과연 나보다 훨씬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하고싶은 사람의 자리를 꿰찬건 아닌지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건지라는 의문도 가끔 듭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기에 와있고, 이제와서 이걸 내려놓을 수도 없는 법이니, 더욱더, 세금을 잡아먹는 만큼, 앞으로 큰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시다.
저는 외국에서 특례입학을 통해서 이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얘기하길, "특례입학은 너무 큰 우대다"라는 주장에 저도 그렇게 선뜻 반대를 못하겠더라구요. 저는 2년이 지난 지금조차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히 내가 서울대에 다닌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여러 번 되묻게 되죠. 하지만, 그러면 항상 돌아오는 말이, "당연하지, 넌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에 재학중인거야" 였습니다. 상범님이 느끼셨던 것처럼 내가 과연 나보다 훨씬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하고싶은 사람의 자리를 꿰찬건 아닌지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건지라는 의문도 가끔 듭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기에 와있고, 이제와서 이걸 내려놓을 수도 없는 법이니, 더욱더, 세금을 잡아먹는 만큼, 앞으로 큰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시다.
김민정2021-01-20 17:10
1기 김*현
영재학교에서 의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에게 입시 절차에 대한 지원을 최소화 하는 것이 올바른가를 주제로 하는 교내 토론에서 학교가 나에가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묻던, 의대에 진학한 친구가 생각나서 글에 언급된 공부에 대한 의무감이 인상적 이였습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선학습과도 같다는 시각도 공감이 가는 부분 이였습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어떻게 나에게 올지 모르는 문제들의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공부를 계속하게 만드는 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신 분이 지금의 공부가 선학습과도 같다고 느낀 경험은 어떤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영재학교에서 의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에게 입시 절차에 대한 지원을 최소화 하는 것이 올바른가를 주제로 하는 교내 토론에서 학교가 나에가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묻던, 의대에 진학한 친구가 생각나서 글에 언급된 공부에 대한 의무감이 인상적 이였습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선학습과도 같다는 시각도 공감이 가는 부분 이였습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어떻게 나에게 올지 모르는 문제들의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공부를 계속하게 만드는 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신 분이 지금의 공부가 선학습과도 같다고 느낀 경험은 어떤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김민정2021-01-20 17:10
1기 박*진
받으신 혜택을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와 같이 큰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았다고 하셨지만 어찌 되었든 아무나 원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그 혜택을 받기 위한 노력과 실력을 갖추셨다고 생각하니까요!
공부의 기능이 pretraining과 같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공부해오셨고, 그것을 토해낼 분야도 찾아가시는 것 같아서 앞으로 좋은 성과를 내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받으신 혜택을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와 같이 큰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았다고 하셨지만 어찌 되었든 아무나 원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그 혜택을 받기 위한 노력과 실력을 갖추셨다고 생각하니까요!
공부의 기능이 pretraining과 같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공부해오셨고, 그것을 토해낼 분야도 찾아가시는 것 같아서 앞으로 좋은 성과를 내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6
1기 남*범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인턴과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일 매일 쫓기듯이 로봇을 만지작거리고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 공학에 몸담고 있으니 연구라는 것이 공부만큼 중요하게 다가온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공부란 선배 연구자들의 연구내용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참고해가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연구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1년을 살아보니 굉장히 목적지향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연구에 필요한 것, 알고 싶은 것만 찾아보게 되었고, 학교 수업들은 학점을 채우기 위해 부차적으로 선정하였다. 이를 겪고 난 뒤 나는 분명히 전공에 대한 전문성을 얻었지만,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일을 위한 공부를 하니 마음 속에 공허함이 남았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줄어들고 자기관리에 소홀해지게 되었다. 라이프아카데미도 새로운 공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참가하게 되었고, 이를 발판으로 답을 찾아나가고 있다.
졸업을 하면 의무적인 공부에서 해방된다. 이미 의무교육에서는 해방되었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받는 교육기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이후로도 나는 전공 밖으로, 세상과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부란, 세상의 여러 가지 이치를 생각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뜻한다. 그 과정에서 나와는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하고, 논의를 통해 합의도 하며, 이를 정리한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할 수도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면 머릿속에는 지식과 더불어 직관과 논리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가 생긴다. 공부를 마쳤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설명이라는 과정이 공부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관련 개념을 생성하고 그들을 논리적으로 잇는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공부의 목표점이다. 따라서, 나는 공부할 때 정의와 논리 구조를 집요하게 따지는 성격이다. 공부한 내용에 대해서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바닥부터 글을 쓰는 연습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공부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여담으로, 난 암기에 재능이 없으며 수학 문제에서는 계산 실수를 수도 없이 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초, 중, 고, 대학교에 다닌 십 수년 동안 주입식 단순 암기, 계산 시험, 결과론적인 성적과 학점 줄 세우기에 특히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어느 정도 고통에 대한 내성이 만들어졌다. 김영민 교수가 역설한 공부를 위한 체력이 왜곡된 방식으로 생겨버린 것 같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인턴과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일 매일 쫓기듯이 로봇을 만지작거리고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 공학에 몸담고 있으니 연구라는 것이 공부만큼 중요하게 다가온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공부란 선배 연구자들의 연구내용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참고해가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연구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1년을 살아보니 굉장히 목적지향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연구에 필요한 것, 알고 싶은 것만 찾아보게 되었고, 학교 수업들은 학점을 채우기 위해 부차적으로 선정하였다. 이를 겪고 난 뒤 나는 분명히 전공에 대한 전문성을 얻었지만,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일을 위한 공부를 하니 마음 속에 공허함이 남았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줄어들고 자기관리에 소홀해지게 되었다. 라이프아카데미도 새로운 공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참가하게 되었고, 이를 발판으로 답을 찾아나가고 있다.
졸업을 하면 의무적인 공부에서 해방된다. 이미 의무교육에서는 해방되었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받는 교육기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이후로도 나는 전공 밖으로, 세상과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부란, 세상의 여러 가지 이치를 생각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뜻한다. 그 과정에서 나와는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하고, 논의를 통해 합의도 하며, 이를 정리한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할 수도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면 머릿속에는 지식과 더불어 직관과 논리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가 생긴다. 공부를 마쳤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설명이라는 과정이 공부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관련 개념을 생성하고 그들을 논리적으로 잇는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공부의 목표점이다. 따라서, 나는 공부할 때 정의와 논리 구조를 집요하게 따지는 성격이다. 공부한 내용에 대해서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바닥부터 글을 쓰는 연습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공부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여담으로, 난 암기에 재능이 없으며 수학 문제에서는 계산 실수를 수도 없이 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초, 중, 고, 대학교에 다닌 십 수년 동안 주입식 단순 암기, 계산 시험, 결과론적인 성적과 학점 줄 세우기에 특히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어느 정도 고통에 대한 내성이 만들어졌다. 김영민 교수가 역설한 공부를 위한 체력이 왜곡된 방식으로 생겨버린 것 같다.
김민정2021-01-20 17:13
1기 박*민
목적 지향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승범 님의 의견에 상당히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위로 아닌 위로를 한번 건네 보자면, 사회에서 정해놓은 교육 체계,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 절차를 밟아 나가다 보면 공부의 성격이 어쩔 수 없는 목적 지향적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 승범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고민일거야’ 하는 위로인 것이지요. 다른 분들께서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담고 있는 의견이 많으니,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서 또다른 의미를 한번 만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말씀을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목적 지향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승범 님의 의견에 상당히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위로 아닌 위로를 한번 건네 보자면, 사회에서 정해놓은 교육 체계,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 절차를 밟아 나가다 보면 공부의 성격이 어쩔 수 없는 목적 지향적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 승범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고민일거야’ 하는 위로인 것이지요. 다른 분들께서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담고 있는 의견이 많으니,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서 또다른 의미를 한번 만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말씀을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6
1기 김*교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
가장 똑똑한 사람이 공부를 하는게 맞는 걸까 혹은 공부를 통해 가장 커다란 변화를 누릴 수 있는 자가 공부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공부에 열심히다. 문득 내가 고등학교 학창시절 평일엔 기숙사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고 주말엔 나와서 다시 학원에가 내신과 대입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왜 이렇게 열심히 해야하지? 하는 의문과 함께 가지고 있던 의문이였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가 공부해온 과거를 찬찬히 살펴왔다.
어린시절엔 교육자이신 부모님의 영향이 굉장히 컸다. 가정이라는 가장 처음 접하는 공동체의 문화를 통해 공부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힘들고 고되지만 부모가 하는 것이기에 나도 당연히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공부의 댓가로 주어지는 500원, 1000원이라는 적절한 보상도 꽤나 공부의 동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중고등학생이 되고 내가 가장 쉽게 잘하는 것이 한국형 공부임을 알게 되었다. 문제제기보다는 제기된 문제의 정답에 접근하는 능력이 좋았다. 이과 과목에 그러한 두각이 잘 드러났고 이 능력에 대한 반복적인 훈련과 성장을 통해 서울대에 오게 되었다. 대학은 나에게 새로운 환경이라는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더이상 누군가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문제를 찾아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나가야한다. 여기서 처음으로 내가 생각하는 공부라는 것이 조금씩 잡혀나가기 시작하였다. 가장 자율적이면서 가장 자기다움을 개발하는 과정이 공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할 때 사회적인 이득, 경제적인 이득 역시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하에 스스로 동의되는 과정을 거친다면 이 역시 합당한 공부의 이유라고 난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공부는 '잘', '해결'하는 공부였다. 때문에 열심과 집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삶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사춘기 이후의 시절부터 왜 내가 하필 공부의 타겟으로 붇잡힌 것이지? 하는 가벼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면밀히 들여다보니 나에게 공부는 앎의 즐거움이 가장 본질적이었던 것 같다. 가능할 법한 것들을 상상하고,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공부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한 언어를 공부하고 문화를 향휴하는 과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가장 온전한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부가 내가 해오고 싶은 공부이다. '공부란 무엇인가'의 책의 중, 후반부에서 다룬 이야기의 주제인 '유학', 그리고 '생각의 정교화'는 내가 가지고 있던 공부의 가치관과 굉장히 유사하여 깊히 공감이 되었다. 이공계 진로의 최고로서 나도 한때 '유학'을 꿈 꾸었었고 그러한 나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유학을 위해선 분명 새로운 문화에 자신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하고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각인시켜야한다. 대학생 1학년 시절 휴학을 하고 1년간 무작정 미국에서 가서 살다온 기회가 있었는 데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공부는 정말 단순한 지식적 채워짐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더 세밀하게 바라보고, 나를 둘러썬 가치와 세계 역시 깊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러면서 다시 공부의 이유는 조금 변화하였다. 과거에 공부를 통해 지식을 알아갔다면, 이젠 공부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싶고 결과적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나'를 알아가고 싶다. 내가 세상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시기적절하게 다루어야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하고 깨닫고 느끼는 과정이 지금 나에게 가장 적합한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더 바라보고 글로, 언어로 표현하고 그러면서 내 생각을 직시하고 가다듬는 과정을 거치는 과정이 김영민 교수님이 책에서 말한 '생각의 정교화'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많이 공감되었다. 이렇게 책을 일고 공부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보니 중고등학교 시절의 공부의 이유인 더 나은 지식, 더 나은 성공은 내가 스스로 판단한 이유가 아닌 내 주변의 목표를 내가 그대로 답습했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
가장 똑똑한 사람이 공부를 하는게 맞는 걸까 혹은 공부를 통해 가장 커다란 변화를 누릴 수 있는 자가 공부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공부에 열심히다. 문득 내가 고등학교 학창시절 평일엔 기숙사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고 주말엔 나와서 다시 학원에가 내신과 대입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왜 이렇게 열심히 해야하지? 하는 의문과 함께 가지고 있던 의문이였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가 공부해온 과거를 찬찬히 살펴왔다.
어린시절엔 교육자이신 부모님의 영향이 굉장히 컸다. 가정이라는 가장 처음 접하는 공동체의 문화를 통해 공부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힘들고 고되지만 부모가 하는 것이기에 나도 당연히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공부의 댓가로 주어지는 500원, 1000원이라는 적절한 보상도 꽤나 공부의 동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중고등학생이 되고 내가 가장 쉽게 잘하는 것이 한국형 공부임을 알게 되었다. 문제제기보다는 제기된 문제의 정답에 접근하는 능력이 좋았다. 이과 과목에 그러한 두각이 잘 드러났고 이 능력에 대한 반복적인 훈련과 성장을 통해 서울대에 오게 되었다. 대학은 나에게 새로운 환경이라는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더이상 누군가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문제를 찾아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나가야한다. 여기서 처음으로 내가 생각하는 공부라는 것이 조금씩 잡혀나가기 시작하였다. 가장 자율적이면서 가장 자기다움을 개발하는 과정이 공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할 때 사회적인 이득, 경제적인 이득 역시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하에 스스로 동의되는 과정을 거친다면 이 역시 합당한 공부의 이유라고 난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공부는 '잘', '해결'하는 공부였다. 때문에 열심과 집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삶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사춘기 이후의 시절부터 왜 내가 하필 공부의 타겟으로 붇잡힌 것이지? 하는 가벼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면밀히 들여다보니 나에게 공부는 앎의 즐거움이 가장 본질적이었던 것 같다. 가능할 법한 것들을 상상하고,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공부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한 언어를 공부하고 문화를 향휴하는 과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가장 온전한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부가 내가 해오고 싶은 공부이다. '공부란 무엇인가'의 책의 중, 후반부에서 다룬 이야기의 주제인 '유학', 그리고 '생각의 정교화'는 내가 가지고 있던 공부의 가치관과 굉장히 유사하여 깊히 공감이 되었다. 이공계 진로의 최고로서 나도 한때 '유학'을 꿈 꾸었었고 그러한 나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유학을 위해선 분명 새로운 문화에 자신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하고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각인시켜야한다. 대학생 1학년 시절 휴학을 하고 1년간 무작정 미국에서 가서 살다온 기회가 있었는 데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공부는 정말 단순한 지식적 채워짐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더 세밀하게 바라보고, 나를 둘러썬 가치와 세계 역시 깊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러면서 다시 공부의 이유는 조금 변화하였다. 과거에 공부를 통해 지식을 알아갔다면, 이젠 공부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싶고 결과적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나'를 알아가고 싶다. 내가 세상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시기적절하게 다루어야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하고 깨닫고 느끼는 과정이 지금 나에게 가장 적합한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더 바라보고 글로, 언어로 표현하고 그러면서 내 생각을 직시하고 가다듬는 과정을 거치는 과정이 김영민 교수님이 책에서 말한 '생각의 정교화'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많이 공감되었다. 이렇게 책을 일고 공부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보니 중고등학교 시절의 공부의 이유인 더 나은 지식, 더 나은 성공은 내가 스스로 판단한 이유가 아닌 내 주변의 목표를 내가 그대로 답습했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김민정2021-01-20 17:16
1기 김*현
언제나 유학을 진로의 가능성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국에서 1년간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어떤 경험이 지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들을 수 있다면 저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의 첫 부분의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저도 늘 갖고 있는 질문이고 그만큼 크게 공감되는 질문이기에, 그에 대비되어 제가 해본 적 없는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에 흥미가 갑니다. 제가 짧게 생각했을 때 ‘누군가는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수에 제한이 있는가?’ 라는 질문의 답이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질문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그 바탕에는 어떤 전제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언제나 유학을 진로의 가능성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국에서 1년간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어떤 경험이 지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들을 수 있다면 저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의 첫 부분의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저도 늘 갖고 있는 질문이고 그만큼 크게 공감되는 질문이기에, 그에 대비되어 제가 해본 적 없는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에 흥미가 갑니다. 제가 짧게 생각했을 때 ‘누군가는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수에 제한이 있는가?’ 라는 질문의 답이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질문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공부는 누가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그 바탕에는 어떤 전제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김민정2021-01-20 17:16
1기 장*균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았던 글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공부이자 더 나아가는 공부를 위한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 씨는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 뿐만 아니라 공부를 통해 쌓은 것들을 어떻게 활용하여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있는 것같아 인상깊었습니다. 꼭 하고 싶은 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찾고 이뤄나가길 바라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았던 글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공부이자 더 나아가는 공부를 위한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 씨는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 뿐만 아니라 공부를 통해 쌓은 것들을 어떻게 활용하여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있는 것같아 인상깊었습니다. 꼭 하고 싶은 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찾고 이뤄나가길 바라겠습니다.
김민정2021-01-20 17:17
1기 심*범
생각의 정교화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 역시 포함한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제 경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고 꼬리를 물지 않는 것에 회의하게 되고 허무주의로 빠질까 말까 위태로운데, 이걸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와 연결시켰는지 궁금합니다.
생각의 정교화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 역시 포함한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제 경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고 꼬리를 물지 않는 것에 회의하게 되고 허무주의로 빠질까 말까 위태로운데, 이걸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와 연결시켰는지 궁금합니다.
김민정2021-01-20 16:56
1기 박*진
한 때 나는 스스로 공부를 잘한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고, 한 때는 공부가 적성에 맞다고 느꼈던 때도 있었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지금은 공부가 참 어려운 것 같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좋은 성적을 위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해왔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그 시절의 나에게는 공부란 그냥 해야 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시키고 주변 친구들도 열심히 하길래, 또 그때의 답이 정해져 있는 공부는 크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함께 공부를 계속해왔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어떤 전공으로 지원할 지 스스로 결정해야 될 때가 왔고, 그제서야 너무 공부를 관성적으로 해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와서 전공을 선택하고 여러 강의들을 한 학기가 지나고 남아있는 건 거의 없었다.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강의들을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요구되는 전공 필수과목을 듣기에도 벅차 나의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았다는 게 대학 시절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흥미가 가지 않는 답이 주어지지 않은 공부는 정말이지 어렵다.
하지만 이대로 공부를 접기에는 한때 잘했고, 한때 좋아했던 공부가 아쉬워 막연히 관심을 가져왔던 분야의 공부를 한번 더 대학원을 통해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학부과정동안 지금 전공들을 ‘전공’ 했다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남들을 따라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나의 선택으로 하는 공부가 될 것이다. 주체적으로 단순히 지식을 채워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갈 줄 알았을 때 비로소 나의 전공이고 그것을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입생 때 접하면 좋았을 이야기들이 많아서 약간은 아쉬웠지만, 공부는 대학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언제든 공부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김영민 교수님은 정말 공부라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나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한 때 나는 스스로 공부를 잘한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고, 한 때는 공부가 적성에 맞다고 느꼈던 때도 있었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지금은 공부가 참 어려운 것 같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좋은 성적을 위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해왔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그 시절의 나에게는 공부란 그냥 해야 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시키고 주변 친구들도 열심히 하길래, 또 그때의 답이 정해져 있는 공부는 크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함께 공부를 계속해왔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어떤 전공으로 지원할 지 스스로 결정해야 될 때가 왔고, 그제서야 너무 공부를 관성적으로 해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와서 전공을 선택하고 여러 강의들을 한 학기가 지나고 남아있는 건 거의 없었다.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강의들을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요구되는 전공 필수과목을 듣기에도 벅차 나의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았다는 게 대학 시절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흥미가 가지 않는 답이 주어지지 않은 공부는 정말이지 어렵다.
하지만 이대로 공부를 접기에는 한때 잘했고, 한때 좋아했던 공부가 아쉬워 막연히 관심을 가져왔던 분야의 공부를 한번 더 대학원을 통해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학부과정동안 지금 전공들을 ‘전공’ 했다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남들을 따라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나의 선택으로 하는 공부가 될 것이다. 주체적으로 단순히 지식을 채워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갈 줄 알았을 때 비로소 나의 전공이고 그것을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입생 때 접하면 좋았을 이야기들이 많아서 약간은 아쉬웠지만, 공부는 대학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언제든 공부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김영민 교수님은 정말 공부라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나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김민정2021-01-20 17:18
1기 박*진
저도 너무 늦기 전에 좀더 다양한 강의를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다양한 강의를 들어보지 못한 게 아쉽다는 효진 님의 말에 공감하였고, 또 저도 저의 공부의 이유가 지금껏 효진 님이 말하신 것과 비슷한 이유였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효진 님께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신 만큼, 그 결정이 더 용기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깊이 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길 응원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너무 늦기 전에 좀더 다양한 강의를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다양한 강의를 들어보지 못한 게 아쉽다는 효진 님의 말에 공감하였고, 또 저도 저의 공부의 이유가 지금껏 효진 님이 말하신 것과 비슷한 이유였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효진 님께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신 만큼, 그 결정이 더 용기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깊이 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길 응원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민정2021-01-20 17:18
1기 권*수
저도 고등학교의 공부가 너무나 수동적이었다는 생각에, 그리고 진짜 '하고싶은 공부'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자유전공학부를 택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과연 내가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네요. 저는 학교생활을 할수록 대학원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는데, 저와 달리 오히려 좋아했던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셨다는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고등학교의 공부가 너무나 수동적이었다는 생각에, 그리고 진짜 '하고싶은 공부'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자유전공학부를 택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과연 내가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네요. 저는 학교생활을 할수록 대학원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는데, 저와 달리 오히려 좋아했던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셨다는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민정2021-01-20 17:18
1기 권*현
글 잘 읽었습니다!
학부차원에서는 '전공'했다고 느끼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대학원까지 진학하고 효진님이 주체적으로 지식을 채우고 그에서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길을 응원합니다.
그냥 해야해서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원하고 즐거워서 하는 일을 우리 모두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토론을 통해서든, 앞으로 만날 무수한 공부의 기회를 통해서든!
글 잘 읽었습니다!
학부차원에서는 '전공'했다고 느끼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대학원까지 진학하고 효진님이 주체적으로 지식을 채우고 그에서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길을 응원합니다.
그냥 해야해서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원하고 즐거워서 하는 일을 우리 모두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토론을 통해서든, 앞으로 만날 무수한 공부의 기회를 통해서든!
김민정2021-01-20 17:18
1기 박*정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너무 공감되네요. 자유전공학부의 학생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메리트 중의 하나를 살리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아쉽고,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려서 다시 학교생활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이런 후회를 기회 삼아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관심이 있는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겠다는 선택을 한 효진님이 너무 멋있고, 저도 방향은 다르겠지만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만 했던 전과는 달리 좀 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너무 공감되네요. 자유전공학부의 학생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메리트 중의 하나를 살리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아쉽고,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려서 다시 학교생활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이런 후회를 기회 삼아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관심이 있는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겠다는 선택을 한 효진님이 너무 멋있고, 저도 방향은 다르겠지만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만 했던 전과는 달리 좀 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민정2021-01-20 17:18
1기 심*범
다들 그런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좋은 대학 가야된다고들 하니까. 괜한 경쟁심리를 곁들여서 열심히 공부하다 대학을 올라오니 그 누구도 공부를 하라고 시키지 않더라구요. 공부에 대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고, 그래야 사람이 자포자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 커다랗게 와닿습니다. 문제는 그러면 공부에 대한 목적의식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유지하느냐 인데...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들 그런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좋은 대학 가야된다고들 하니까. 괜한 경쟁심리를 곁들여서 열심히 공부하다 대학을 올라오니 그 누구도 공부를 하라고 시키지 않더라구요. 공부에 대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고, 그래야 사람이 자포자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 커다랗게 와닿습니다. 문제는 그러면 공부에 대한 목적의식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유지하느냐 인데...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6
1기 박*정
나는 공부가 싫다. 대학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앞만 보고 달려나가면 되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공부가 정말 싫었고, 성인이 된 지도 벌써 몇 년째인데 여전히 공부가 싫다. 졸업이 다가온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대학원에 간다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은데, 진심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절대로 대학원은 안 갈 것이다.
이렇게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구구절절 소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나온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고, 그 대상은 국어, 수학, 영어처럼 학문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외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는 그림 공부, 게임 공부, 그때그때 흥미가 생긴 분야에 대한 공부이다. 결국 내가 가진 호불호는 공부라는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배우는 대상에 대한 호불호였다.
하지만 골치 아프게도,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면서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공부만큼이나 칭찬을 많이 들었던데다 미래에는 취미 혹은 부업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그림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1학년 여름방학 때 수강했던 미술 교양 수업은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그림이었는데 일주일에 세 번씩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림만 그리니 한동안 정이 뚝 떨어졌었다. 그러면 지금은? 즐겁게 그림 공부를 하고 있나? 그것 역시 아니다. 마음먹고 그림을 그리려고 펜을 들지만, 결과물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으면 아직 20%밖에 진행이 되지 않았음에도 금방 내려놓는다.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왜 공부하려고만 하면 이렇게 힘이 드는지.
한동안 이 문제로 또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결국 문제는 단순했다: 적은 인풋으로 많은 아웃풋을 바라고 있다는 것.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 너무 가벼운 무게의 덤벨을 들면, 아무런 근육도 생기지 않습니다. ... 공부하는 중에 한없이 편하다는 느낌이 들면, 뭔가 잘못하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책에서 공부를 운동에 비유해 설명한 부분이다. 신기하게도, 이번 학기에 수강 중인 다른 수업의 OT 자료에서도 똑같은 내용이 나왔었다. 교수님은 그 슬라이드를 보여주시며 힘든 강의가 될 테니 잘 생각하고 수강하라며 엄포를 놓으셨었다. 그리고 이어진 슬라이드에서는 ‘힘들었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게 많은 수업이었다’는 학생들의 후기를 보여주셨다.
배움의 과정은 힘들지만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걸 꽤 오래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부딪혀 보기라도 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조금 해보다가 안되면 그냥 냅다 손을 놓아버렸었다.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되나보다, 하고 자포자기하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모면하자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결국 끊임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글의 초반에 공부를 더 하기는 싫으니 대학원만큼은 절대로 안 갈 것이라 말했었는데, 사실 대학원이 아닌 다른 어디에 가더라도 결국 모든 곳에 공부가 필요함을 안다. 취업준비에 대한 공부, 업무에 대한 공부, 창업에 대한 공부, 등등.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는데, 솔직히 하기 싫은 일을 즐기는 것은 지금의 내게는 무리다. 그냥 이 일도 지나가고 나면 더 발전한 내가 있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진심으로 이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글이 두서없어서 부끄럽지만, 그래서 공부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아마 지금으로서는 힘들더라도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답할 것 같다.
나는 공부가 싫다. 대학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앞만 보고 달려나가면 되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공부가 정말 싫었고, 성인이 된 지도 벌써 몇 년째인데 여전히 공부가 싫다. 졸업이 다가온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대학원에 간다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은데, 진심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절대로 대학원은 안 갈 것이다.
이렇게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구구절절 소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나온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고, 그 대상은 국어, 수학, 영어처럼 학문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외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는 그림 공부, 게임 공부, 그때그때 흥미가 생긴 분야에 대한 공부이다. 결국 내가 가진 호불호는 공부라는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배우는 대상에 대한 호불호였다.
하지만 골치 아프게도,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면서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공부만큼이나 칭찬을 많이 들었던데다 미래에는 취미 혹은 부업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그림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1학년 여름방학 때 수강했던 미술 교양 수업은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그림이었는데 일주일에 세 번씩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림만 그리니 한동안 정이 뚝 떨어졌었다. 그러면 지금은? 즐겁게 그림 공부를 하고 있나? 그것 역시 아니다. 마음먹고 그림을 그리려고 펜을 들지만, 결과물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으면 아직 20%밖에 진행이 되지 않았음에도 금방 내려놓는다.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왜 공부하려고만 하면 이렇게 힘이 드는지.
한동안 이 문제로 또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결국 문제는 단순했다: 적은 인풋으로 많은 아웃풋을 바라고 있다는 것.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 너무 가벼운 무게의 덤벨을 들면, 아무런 근육도 생기지 않습니다. ... 공부하는 중에 한없이 편하다는 느낌이 들면, 뭔가 잘못하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책에서 공부를 운동에 비유해 설명한 부분이다. 신기하게도, 이번 학기에 수강 중인 다른 수업의 OT 자료에서도 똑같은 내용이 나왔었다. 교수님은 그 슬라이드를 보여주시며 힘든 강의가 될 테니 잘 생각하고 수강하라며 엄포를 놓으셨었다. 그리고 이어진 슬라이드에서는 ‘힘들었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게 많은 수업이었다’는 학생들의 후기를 보여주셨다.
배움의 과정은 힘들지만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걸 꽤 오래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부딪혀 보기라도 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조금 해보다가 안되면 그냥 냅다 손을 놓아버렸었다.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되나보다, 하고 자포자기하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모면하자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결국 끊임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글의 초반에 공부를 더 하기는 싫으니 대학원만큼은 절대로 안 갈 것이라 말했었는데, 사실 대학원이 아닌 다른 어디에 가더라도 결국 모든 곳에 공부가 필요함을 안다. 취업준비에 대한 공부, 업무에 대한 공부, 창업에 대한 공부, 등등.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는데, 솔직히 하기 싫은 일을 즐기는 것은 지금의 내게는 무리다. 그냥 이 일도 지나가고 나면 더 발전한 내가 있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진심으로 이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글이 두서없어서 부끄럽지만, 그래서 공부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아마 지금으로서는 힘들더라도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답할 것 같다.
김민정2021-01-20 17:19
1기 이*현
글 잘 읽었고, 크게 공감합니다. 저 역시, ‘공부가 재미있다’는 여러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해야하니 할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한참 막막했던 적도 많습니다. 사실, 지금도 막막합니다. 어쩌면 저도 공부를 싫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버티듯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지치고, 힘듦을 경험하고 계신 것 같아서 더 와닿습니다. 그럼에도, 버티는 것 역시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다만 버틸뿐이라는 혜정님께 지금까지 너무 잘 해오셨다는 응원의 한 마디를 전하고 싶습니다 :)
글 잘 읽었고, 크게 공감합니다. 저 역시, ‘공부가 재미있다’는 여러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해야하니 할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한참 막막했던 적도 많습니다. 사실, 지금도 막막합니다. 어쩌면 저도 공부를 싫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버티듯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지치고, 힘듦을 경험하고 계신 것 같아서 더 와닿습니다. 그럼에도, 버티는 것 역시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다만 버틸뿐이라는 혜정님께 지금까지 너무 잘 해오셨다는 응원의 한 마디를 전하고 싶습니다 :)
김민정2021-01-20 17:20
1기 박*슬
공부 자체가 아니라 배우는 대상에 호불호가 있었다는 점에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게임을 정말 좋아해서, 유튜브에서 게임 '강의'를 보기도 하는데 그런 강의를 볼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설령 지금 공부하는 대상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공부의 과정이 조금 힘들더라도,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겠다는 것도 좋은 깨달음인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모든 일에는 공부가 필요하니, 저도 혜정님도 모든 공부의 대상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 자체가 아니라 배우는 대상에 호불호가 있었다는 점에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게임을 정말 좋아해서, 유튜브에서 게임 '강의'를 보기도 하는데 그런 강의를 볼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설령 지금 공부하는 대상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공부의 과정이 조금 힘들더라도,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겠다는 것도 좋은 깨달음인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모든 일에는 공부가 필요하니, 저도 혜정님도 모든 공부의 대상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7:20
1기 이*일
저도 책에서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라는 부분이 인상깊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힘들었던 것들이 되돌아보면 (다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나에게 변화와 힘을 만들어낸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버팀'의 마음가짐이 항상 앞으로 필요하다는 것에 되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가질 마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저도 책에서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라는 부분이 인상깊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힘들었던 것들이 되돌아보면 (다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나에게 변화와 힘을 만들어낸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버팀'의 마음가짐이 항상 앞으로 필요하다는 것에 되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가질 마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김민정2021-01-20 17:21
1기 박*진
공부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고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텐데 다들 똑같은 방법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한정적인 공부만을 해오다보니까 공부가 점점 싫어지는 것 같습니다. 말씀한 것 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될텐데 이때는 주어진 공부보다 자신만의 공부를 찾아가면서 재미를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하네요! 그 과정이 분명 힘들겠지만 한번에 큰 변화를 바라기보다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분명 변화한 나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공부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고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텐데 다들 똑같은 방법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한정적인 공부만을 해오다보니까 공부가 점점 싫어지는 것 같습니다. 말씀한 것 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될텐데 이때는 주어진 공부보다 자신만의 공부를 찾아가면서 재미를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하네요! 그 과정이 분명 힘들겠지만 한번에 큰 변화를 바라기보다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분명 변화한 나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6
1기 송*우
내게 가장 부족한 것 한 가지를 꼽는다면 섬세함이다. 항상 성격도 시야도 예민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다 완성된 것에 집요하게 디테일을 더하는 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살면서 많은 것들은 목표치에만 도달하면 그럴듯해 보였고 해결이 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충'을 내면화하며 자란 나는 요즈음 섬세함을 가장 동경한다. 목표치에 도달해서도 5만큼의 섬세함을 더 집요하게 얹는 일이 5만큼의 차이가 아니라 50, 100만큼의 차이를 벌린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감정과 저 감정을 구분할 줄 알고, 이 현상에서 저 현상을 짚어낼 줄 알고, 그 차이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내가 어떤 사람이 되건 그 능력이 바로 흔히들 말하는 ‘기본기’가 될 것이다.
<공부란 무엇인가>의 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 ‘이 책은 섬세함에 관한 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 역시 섬세함이구나, 그런 얘기를 하는 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읽으면서는 그게 아니라, 공부가 곧 섬세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섬세한 구별 없이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 대충 그쪽으로 날아가 봐, 그러다 보면 달에 도착하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해서 우주선을 달에 보낼 수는 없다.”(p83) 꼭 내게 말을 하는 것 같은 대목이었다. 공부는 섬세함을 기르는 방법 혹은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섬세함 그 자체이다. 안목을 기르고 단어 하나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집착적일 만큼 사소한 차이에 질문하는 그 태도가 바로 책에서 말하듯 ‘정신의 척추 기립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충 살지 않으려는, 세상을 흐린 이미지가 아니라 고화질로 보고 싶어 하는 태도. 학자가 되든, 화가가 되든, 회사원이 되든, 공부하는 사람만이 섬세할 수 있고 섬세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게 공부란 섬세함이다. 지금까지는 섬세한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 그동안 해온 공부가 조금 잘못돼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4학년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수업을 듣다 보면 가끔 놀란다. ‘어떻게 저런 질문을 하지?’ ‘어떻게 저걸 알아챘지?’ 놀라면서 다른 학생들의 놀라운 안목을 동경하고 왜 나는 저렇지 못할까 실망하곤 한다. 이전에는 그들과 나의 차이는 그냥 타고난 머리에 있다고, 나는 학문을 할 재목이 못 되는 거라고 여겼다. 물론 그것 역시 일부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게 부족한 것은 머리보다는 근력이었다. 예를 들어 수업을 무사히 따라가고 괜찮은 학점을 받는 데 드는 노력이 10이라면 10 정도의 힘은 낼 수 있지만, 더 알고 싶은 나머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12, 13까지 버티는 근력은 가지지 못한 것이다. 섬세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런 근력도 필요가 없다. 10까지만 배워도 자신이 답을 알았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멈추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학교생활이지만, 앞으로의 공부 목표는 근력, 즉 섬세함을 단련하는 것이다. 좋은 강의들을 듣고, 내가 아직 답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질문, 반문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 대학교에서 뭘 배웠느냐고 누가 물으면 그것 하나만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고 싶다.
책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공부는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걸 꿈꿀 수 있게 해준다. 눈앞의 흐린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믿게 해주는 것이 공부다. 그래서 섬세함은 곧 추가 선택지이기도 하다. A와 B만 볼 수 있는 사람과, A와 A‘ 사이의 간극까지도 볼 수 있는 사람은 잡을 수 있는 방향성부터가 다를 것이다. 내가 미래에 학문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되든 그런 섬세함만은 지닌 사람이고 싶다.
내게 가장 부족한 것 한 가지를 꼽는다면 섬세함이다. 항상 성격도 시야도 예민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다 완성된 것에 집요하게 디테일을 더하는 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살면서 많은 것들은 목표치에만 도달하면 그럴듯해 보였고 해결이 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충'을 내면화하며 자란 나는 요즈음 섬세함을 가장 동경한다. 목표치에 도달해서도 5만큼의 섬세함을 더 집요하게 얹는 일이 5만큼의 차이가 아니라 50, 100만큼의 차이를 벌린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감정과 저 감정을 구분할 줄 알고, 이 현상에서 저 현상을 짚어낼 줄 알고, 그 차이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내가 어떤 사람이 되건 그 능력이 바로 흔히들 말하는 ‘기본기’가 될 것이다.
<공부란 무엇인가>의 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 ‘이 책은 섬세함에 관한 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 역시 섬세함이구나, 그런 얘기를 하는 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읽으면서는 그게 아니라, 공부가 곧 섬세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섬세한 구별 없이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 대충 그쪽으로 날아가 봐, 그러다 보면 달에 도착하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해서 우주선을 달에 보낼 수는 없다.”(p83) 꼭 내게 말을 하는 것 같은 대목이었다. 공부는 섬세함을 기르는 방법 혹은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섬세함 그 자체이다. 안목을 기르고 단어 하나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집착적일 만큼 사소한 차이에 질문하는 그 태도가 바로 책에서 말하듯 ‘정신의 척추 기립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충 살지 않으려는, 세상을 흐린 이미지가 아니라 고화질로 보고 싶어 하는 태도. 학자가 되든, 화가가 되든, 회사원이 되든, 공부하는 사람만이 섬세할 수 있고 섬세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게 공부란 섬세함이다. 지금까지는 섬세한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 그동안 해온 공부가 조금 잘못돼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4학년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수업을 듣다 보면 가끔 놀란다. ‘어떻게 저런 질문을 하지?’ ‘어떻게 저걸 알아챘지?’ 놀라면서 다른 학생들의 놀라운 안목을 동경하고 왜 나는 저렇지 못할까 실망하곤 한다. 이전에는 그들과 나의 차이는 그냥 타고난 머리에 있다고, 나는 학문을 할 재목이 못 되는 거라고 여겼다. 물론 그것 역시 일부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게 부족한 것은 머리보다는 근력이었다. 예를 들어 수업을 무사히 따라가고 괜찮은 학점을 받는 데 드는 노력이 10이라면 10 정도의 힘은 낼 수 있지만, 더 알고 싶은 나머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12, 13까지 버티는 근력은 가지지 못한 것이다. 섬세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런 근력도 필요가 없다. 10까지만 배워도 자신이 답을 알았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멈추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학교생활이지만, 앞으로의 공부 목표는 근력, 즉 섬세함을 단련하는 것이다. 좋은 강의들을 듣고, 내가 아직 답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질문, 반문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 대학교에서 뭘 배웠느냐고 누가 물으면 그것 하나만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고 싶다.
책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공부는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걸 꿈꿀 수 있게 해준다. 눈앞의 흐린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믿게 해주는 것이 공부다. 그래서 섬세함은 곧 추가 선택지이기도 하다. A와 B만 볼 수 있는 사람과, A와 A‘ 사이의 간극까지도 볼 수 있는 사람은 잡을 수 있는 방향성부터가 다를 것이다. 내가 미래에 학문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되든 그런 섬세함만은 지닌 사람이고 싶다.
김민정2021-01-20 17:26
1기 조*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고, 디테일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학문과 공부에 있어 섬세함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저도 섬세한 안목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충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빠르게 잡는 능력이 뛰어나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비싼 현미경, 망원경에는 렌즈가 2개 달려 있습니다. 하나는 배율이 높고 성능이 좋은 '섬세한' 렌즈이고, 하나는 배율이 낮은 '대충 보는' 렌즈입니다. 대충 보는 렌즈는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섬세한 렌즈로만 시료를 보면 전체 모습을 보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릴 뿐더러 아주 작은 부분만 아주 디테일하게 보게 되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체에서 어디쯤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배율이 낮은 렌즈로 시료의 전체적인 모습과 흥미로운 지점들을 찾고, 그 지점들을 섬세한 렌즈로 찬찬히 관찰합니다.
이처럼 대충과 섬세함을 잘 조합한다면 전체적 맥락을 빠르게 이해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고, 디테일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학문과 공부에 있어 섬세함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저도 섬세한 안목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충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빠르게 잡는 능력이 뛰어나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비싼 현미경, 망원경에는 렌즈가 2개 달려 있습니다. 하나는 배율이 높고 성능이 좋은 '섬세한' 렌즈이고, 하나는 배율이 낮은 '대충 보는' 렌즈입니다. 대충 보는 렌즈는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섬세한 렌즈로만 시료를 보면 전체 모습을 보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릴 뿐더러 아주 작은 부분만 아주 디테일하게 보게 되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체에서 어디쯤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배율이 낮은 렌즈로 시료의 전체적인 모습과 흥미로운 지점들을 찾고, 그 지점들을 섬세한 렌즈로 찬찬히 관찰합니다.
이처럼 대충과 섬세함을 잘 조합한다면 전체적 맥락을 빠르게 이해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정2021-01-20 16:57
1기 조*준
유머라는 와사비가 듬뿍 든 통찰이 회전초밥처럼 서빙되는 듯한 책이었습니다. 알싸해진 코를 느끼며 글을 적어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부는 세상을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과는 왜 빨간지, 서울대 근처의 초밥 맛집은 어디인지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 모두 공부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관점에서, 제가 해오고, 하고픈 공부는 제가 해석하고, 탐구해보고 싶은 세상의 요소가 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세상의 거의 모든 요소가 흥미롭지마는, 지금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인간의 행동입니다. 우리가 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화학적, 생물학적, 궁극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분자생물학, 생물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 진화인류학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근본적 질문,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교수님의 "공부하는 이가 할 일은, 이 모순된 현실을 모순이 없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고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항해를 위해서는 배, 튼튼한 기립근, 돛, 노가 필요하듯이 공부를 위해서도 다양한 역량이 필요합니다. 또 아직 지식을 칩으로 머리에 박아넣을 수는 없으니 그러한 역량을 얻는 방법 또한 공부뿐이겠지요. 이를 위해서 고전을 읽고, 통계학 공부를 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공부 역시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 마치 항해를 위한 최첨단 모터를 찾기 위한 즐거운 항해를 떠나는 느낌입니다. 이외에도 남들에게 나의 의견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연습, 관습과 기대 사이에 불온한 생각을 지뢰처럼 숨겨놓는 연습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 걸까요? 사실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다"와 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공부는 어떠한지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세상을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면 거의 본능적인 느낌이 듭니다. 이유가 있어 한다기보단, 밥을 보면 먹고 싶듯이 무언가를 보면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식욕이 강한 사람처럼 탐구욕이 강한 사람인가보다 생각합니다.
또, 이왕 공부한다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염소가 4만원1이라는데, 몇권의 책값을 아껴 지구 반대편에 보냈다면2 지금쯤 염소 목장이 되어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공부를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며 살 계획이니, 어느 정도 책장에서 염소들의 무게를 느끼며 공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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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달빛, 염소 4만원
가을방학, 취미는 사랑
유머라는 와사비가 듬뿍 든 통찰이 회전초밥처럼 서빙되는 듯한 책이었습니다. 알싸해진 코를 느끼며 글을 적어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부는 세상을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과는 왜 빨간지, 서울대 근처의 초밥 맛집은 어디인지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 모두 공부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관점에서, 제가 해오고, 하고픈 공부는 제가 해석하고, 탐구해보고 싶은 세상의 요소가 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세상의 거의 모든 요소가 흥미롭지마는, 지금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인간의 행동입니다. 우리가 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화학적, 생물학적, 궁극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분자생물학, 생물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 진화인류학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근본적 질문,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교수님의 "공부하는 이가 할 일은, 이 모순된 현실을 모순이 없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고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항해를 위해서는 배, 튼튼한 기립근, 돛, 노가 필요하듯이 공부를 위해서도 다양한 역량이 필요합니다. 또 아직 지식을 칩으로 머리에 박아넣을 수는 없으니 그러한 역량을 얻는 방법 또한 공부뿐이겠지요. 이를 위해서 고전을 읽고, 통계학 공부를 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공부 역시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 마치 항해를 위한 최첨단 모터를 찾기 위한 즐거운 항해를 떠나는 느낌입니다. 이외에도 남들에게 나의 의견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연습, 관습과 기대 사이에 불온한 생각을 지뢰처럼 숨겨놓는 연습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 걸까요? 사실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다"와 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공부는 어떠한지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세상을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면 거의 본능적인 느낌이 듭니다. 이유가 있어 한다기보단, 밥을 보면 먹고 싶듯이 무언가를 보면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식욕이 강한 사람처럼 탐구욕이 강한 사람인가보다 생각합니다.
또, 이왕 공부한다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염소가 4만원1이라는데, 몇권의 책값을 아껴 지구 반대편에 보냈다면2 지금쯤 염소 목장이 되어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공부를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며 살 계획이니, 어느 정도 책장에서 염소들의 무게를 느끼며 공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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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달빛, 염소 4만원
가을방학, 취미는 사랑
김민정2021-01-20 17:24
1기 이*현
(본문에 대한 코멘트는 아니지만...ㅎㅎ) 옥상달빌 염소 4만원 노래를 참 좋아하고 즐겨듣던 사람으로서 너무 반가워서 코멘트 남깁니다. 전 가볍게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노래를 통해 책장에서 염소들의 무게를 느낀다고 하시는 형준님, 멋있고 응원합니다!!
(본문에 대한 코멘트는 아니지만...ㅎㅎ) 옥상달빌 염소 4만원 노래를 참 좋아하고 즐겨듣던 사람으로서 너무 반가워서 코멘트 남깁니다. 전 가볍게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노래를 통해 책장에서 염소들의 무게를 느낀다고 하시는 형준님, 멋있고 응원합니다!!
김민정2021-01-20 17:25
1기 김*범
회전초밥 가게 하나 차리셔도 되겠는데요? 코멘트에 공부에 대한 생각을 유우머와 함께 풀어주셔서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마치 식욕과 같이 "무언가를 보면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의견에 동감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나면 배가 부른것과 같이 마음껏 해석하고 탐구하다 보면 머리가 가득 찬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이 때가 '공부하기 싫다'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공부의 '기대 효과'를 굳이 쓰라고 한다면 공부하기 싫어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배를 채우는 것 만큼이나 무엇으로 배를 채울지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형준님은 필요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공부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찾으신 모양입니다. 편식을 고치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저한테도 공유해주세요.
회전초밥 가게 하나 차리셔도 되겠는데요? 코멘트에 공부에 대한 생각을 유우머와 함께 풀어주셔서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마치 식욕과 같이 "무언가를 보면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의견에 동감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나면 배가 부른것과 같이 마음껏 해석하고 탐구하다 보면 머리가 가득 찬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이 때가 '공부하기 싫다'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공부의 '기대 효과'를 굳이 쓰라고 한다면 공부하기 싫어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배를 채우는 것 만큼이나 무엇으로 배를 채울지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형준님은 필요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공부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찾으신 모양입니다. 편식을 고치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저한테도 공유해주세요.
김민정2021-01-20 17:25
1기 박*원
멋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저 또한 유머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냥 허울인 우스갯소리가 아닌 어떤 심오한 비유하고 싶은 의미가 있어야 재밌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과연 어떤 목적으로 할 것인지, 그 목적을 왜 이루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의 학자들이 공부할때는 어떤 궁극적인 진리를 찾을려고 공부를 했겠죠. 하지만, 그 지식이 시대를 거치며 변화되고 뒤틀려서 나중에는 관직에 임용될려고 또는 과거시험을 볼려고 공부하는 것처럼, 저희가 현대시대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공부가 과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멋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저 또한 유머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냥 허울인 우스갯소리가 아닌 어떤 심오한 비유하고 싶은 의미가 있어야 재밌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과연 어떤 목적으로 할 것인지, 그 목적을 왜 이루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의 학자들이 공부할때는 어떤 궁극적인 진리를 찾을려고 공부를 했겠죠. 하지만, 그 지식이 시대를 거치며 변화되고 뒤틀려서 나중에는 관직에 임용될려고 또는 과거시험을 볼려고 공부하는 것처럼, 저희가 현대시대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공부가 과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민정2021-01-20 16:57
1기 박*원
이 책을 읽고, 저는 제 학교 생활을 뒤돌아 보면서 과연 교수님이 말하셨던 공부의 생애주기에 속하는 이 20대라는 시간을 실제로 공부를 하는데 소비를 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제시하셨던 심오한 공부, 즉 시동이 오래 걸리는 공부는 안타깝게도 해본적이 없는 듯 합니다.
그럼, 그런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될까요? 능동성, 즉 내가 뭘 이룰려는 동기가 있어야 되는데, 이는 유교에서 얘기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처럼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저는 목표를 가진 적은 있습니다만, 지금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어떤 학업적인 목표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하지만,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목표는 가지고 있기때문에, 이번 학기가 끝나면 그 시험을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두번째는 자발성인데, 저는 질문을 받는거나 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불치하문, 누구에게나 어떤 질문이던 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쳐주는 지식배경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항상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공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노트나 달달 외우고 레포트를 내고 기말시험이나 보던 저에게 이 책은 어찌보면 머리를 방망이로 한 대 맞은 듯 했습니다. 그 한대가 불교에서 얘기하는 돈오를 가져다 줄지, 저의 뇌 어딘가에 박혀있는 돌 중에 하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 남는 책인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제 학교 생활을 뒤돌아 보면서 과연 교수님이 말하셨던 공부의 생애주기에 속하는 이 20대라는 시간을 실제로 공부를 하는데 소비를 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제시하셨던 심오한 공부, 즉 시동이 오래 걸리는 공부는 안타깝게도 해본적이 없는 듯 합니다.
그럼, 그런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될까요? 능동성, 즉 내가 뭘 이룰려는 동기가 있어야 되는데, 이는 유교에서 얘기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처럼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저는 목표를 가진 적은 있습니다만, 지금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어떤 학업적인 목표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하지만,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목표는 가지고 있기때문에, 이번 학기가 끝나면 그 시험을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두번째는 자발성인데, 저는 질문을 받는거나 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불치하문, 누구에게나 어떤 질문이던 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쳐주는 지식배경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항상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공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노트나 달달 외우고 레포트를 내고 기말시험이나 보던 저에게 이 책은 어찌보면 머리를 방망이로 한 대 맞은 듯 했습니다. 그 한대가 불교에서 얘기하는 돈오를 가져다 줄지, 저의 뇌 어딘가에 박혀있는 돌 중에 하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 남는 책인것 같습니다.
김민정2021-01-20 16:57
1기 강*진
빨리하고 놀아야지! 나는 목표가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놀때는 놀고 공부할때는 공부하는 학생이 되고싶었다.
고등학교에 온 이상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시간을 무의미 앉아있고 싶지않았다.
본 책들의 수와 공부 시간 대비 집중력으로 성적이 잘 나오는 효율적인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마치 인공지능의 목적함수를 성적으로 두고 하루하루 성적을 올려나갔던 것 같다.
문제를 풀면 바로바로 답지를 뒤져서 채점을 할 수 있고, 점점 성적이 향상되니까 좋아하던 게임을 하듯이 공부에 재미도 붙일 수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오게되면서 내가 바랬던 전공의 모습은 이상과 다르고, 나의 공부법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대학에 와서 주어진 자료 텍스트 자체의 해석 뿐만 아니라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 그에 대한 내 의견을 다른 사람앞에서 표현하는 것, 그리고 틀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한다는 기대로 공부를 정신의 척추 기립근으로 비유한 것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목표를 재설정하고 정보문화학이라는 전공을 복수전공하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었다. 최근 몇년간은 웹,서버,인공지능 등의 개발공부를 했는데
특히 지금은 인공지능 공부를 하면서 어떤 문제를 풀지 주도적으로 설정하고 known문제들의 히스토리를 통해 unknown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상태인 것 같다.
ask anything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최근에 엄청난 성능을 보여주는 GPT-3의 인공지능에게 무엇이든 물어보면 누구보다 더 전문적인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답은 100% 옳은 답은 아닐 수 있고 왜곡된 세계를 반영한 편향된 답일 수 있다. 어느 문제를 풀게 할 것인지, 세상에 필요한 답인지 판단하는데는 지혜로운 인간이 필요하다.
10년뒤의 공부와 시험의 목표는 한 축적된 지식을 제한된 기간동안 다 넣어놓고 시험기간에 잘 쏟아내는 사람을 양성하는 기존의 판도에서 벗어나 세상의 문제를 이롭게 풀 수 있게 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될 것 같다.
빨리하고 놀아야지! 나는 목표가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놀때는 놀고 공부할때는 공부하는 학생이 되고싶었다.
고등학교에 온 이상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시간을 무의미 앉아있고 싶지않았다.
본 책들의 수와 공부 시간 대비 집중력으로 성적이 잘 나오는 효율적인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마치 인공지능의 목적함수를 성적으로 두고 하루하루 성적을 올려나갔던 것 같다.
문제를 풀면 바로바로 답지를 뒤져서 채점을 할 수 있고, 점점 성적이 향상되니까 좋아하던 게임을 하듯이 공부에 재미도 붙일 수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오게되면서 내가 바랬던 전공의 모습은 이상과 다르고, 나의 공부법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대학에 와서 주어진 자료 텍스트 자체의 해석 뿐만 아니라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 그에 대한 내 의견을 다른 사람앞에서 표현하는 것, 그리고 틀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한다는 기대로 공부를 정신의 척추 기립근으로 비유한 것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목표를 재설정하고 정보문화학이라는 전공을 복수전공하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었다. 최근 몇년간은 웹,서버,인공지능 등의 개발공부를 했는데
특히 지금은 인공지능 공부를 하면서 어떤 문제를 풀지 주도적으로 설정하고 known문제들의 히스토리를 통해 unknown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상태인 것 같다.
ask anything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최근에 엄청난 성능을 보여주는 GPT-3의 인공지능에게 무엇이든 물어보면 누구보다 더 전문적인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답은 100% 옳은 답은 아닐 수 있고 왜곡된 세계를 반영한 편향된 답일 수 있다. 어느 문제를 풀게 할 것인지, 세상에 필요한 답인지 판단하는데는 지혜로운 인간이 필요하다.
10년뒤의 공부와 시험의 목표는 한 축적된 지식을 제한된 기간동안 다 넣어놓고 시험기간에 잘 쏟아내는 사람을 양성하는 기존의 판도에서 벗어나 세상의 문제를 이롭게 풀 수 있게 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될 것 같다.
동아시아 전통의 인간관 (1)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08월 26일 출간
토론 주제
<논어 에세이>를 통해서 동아시아 전통의 인간관을 살펴보기에 앞서,
김영민 교수님께서 학생들과 함께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당신의 제자들이기도한 서울대 학생들 또 전공 선택을 고민하는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함께 읽으며
애초 고전을 비롯한 탐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자포자기 하지 않는다"는 문구처럼,
김영민 교수님의 에세이들이 제기하는 물음들을 통해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공부, 여러분이 해오고 하고픈 공부, 여러분에게 공부란 어떠한지 돌이켜 보여 자신의 글을 적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