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 8주_고・탐] 인도 철학의 인간관 (2)_서울대 인문학연구원/남아시아센터장 강성용 교수 특강
인도 철학의 인간관 (2)
읽기 자료
Karin Preisendanz, "Soul, Body and Person in Ancient India"
특강을 위한 읽기 자료 이해와 질문
프라이젠단츠(Preisendanz)의 해설 논문은 많이 어려운 글이기에
지난 9/24일 수업 노트를 잘 살펴보고 또 본문을 찬찬히 읽어야 한다.
이번 토론방에서는 여러분이 독해하는 와중에
i) 그래도 스스로 이해, 공감 혹은 본인에게 영감이 되는 부분을 적시하며
동료 수강생들에게 자기 말로 풀어보고, 이어서
ii) 다시 가장 납득하기 어렵거나 의아하고 난해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어서
강성용 선생님께 제시할 질문으로 풀어 본다.
i) 누가 인도에 대해서 얼만큼 아냐고 물었을 때 나는 카스트제도, 타지마할, 힌두교 등 인도를 관통하고 있는 종교와 문화, 종교와 건축, 종교와 인간 사회 등에 대해 두루뭉술하게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인도로부터 시작된 동양철학에 영향을 받아 불교의 기본 교리 역시 형성되었음을 역사적 맥락으로 이해할 뿐이었지만 그 이상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무엇인가 고대 인도에 대한 철학과 역사를 알려준다면 나는 이를 수용하기 위해 개척되지 않은 사고의 방향, 익숙하지 않음 등을 이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할 것이다. 프라이젠단츠(Preisendanz)의 해설 논문은 이러한 측면에서 고대 인도 사상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체화하여 받아들이는지 쉽진 않지만 섬세하게 이를 설명해주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개인과 우주에 대한 상상에 빠지면 나는 신비로움을 느낀다. 조화롭게 순행하는 자연에서 신비와 경외감을 느껴지며 동시에 전에 없던 새로운 자극, 변화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독특한 특성에 이질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인간은 태어나서 그저 각자의 ‘좋음’에 지배를 받고 동시에 자기반성을 하는 독특한 존재이다. 한편 우파니샤드 철학에선 이런 인간 개개인의 내재적 특징인 ‘자아’를 우주의 신비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범아일여의 가르침을 말하고 있었다. 아트만은 살아 숨쉬는 실체이고 브라흐만은 우주의 근본적 원리이다. 그리고 우주의 시공간의 세분화로 인해 각 개인의 영혼이 탄생하는 것이다. 우주의 섭리로 살아 숨쉬는 영혼을 바라보게 되면 인간 역시 조화로운 눈과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범아일여의 섭리를 조금은 이해한 것 같다. 하지만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 애초에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자아’가 세상과 충돌하여 인간은 삶을 올바르게 수용하지 못해 고통과 번민이 발생하게 된다고 이해하였다. 하지만 어느순간 범아일여의 깨달음을 얻고 개인에 대한 집착과 관심에서 벗어나는 경우 인간은 해탈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우파니샤드의 교리는 세상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는 인도인들에게 나침반이자 깨달음을 통한 자유가 되었을 것 같다.
ii) 한 국가에서 탄생한 고유 사상은 분명 그 국가에서 공유하고 있는 국민들의 관심사, 특히 직면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될 경우 모두 정확한 시선으로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왜 고대 인도인들은 우주적 근본을 소우주적인 존재인 각 개인의 자아와 연결시켜 해탈에 이르고자 노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해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면에서 인도인들은 때론 난관과 좌절이 흩어져 있는 현세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 지, 아니라면 이 난관과 고난을 정면으로 부딪혀 거기서 발생하는 아픔, 번민 등의 감정과 현실 세계를 적극 극복해나가려 했던 것인 지 궁금합니다.
글을 읽을 수록 인도인들은 추상적인 'soul'의 가치에 대해 굉장히 집착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혼은 나를 움직이지 않을 없게 만드는, 자아의 원천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에너지는 절대적이지 않고 내재적인 성격과 환경이 뒤섞여가며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원천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인들은 atman을 통해 개인의 살아 숨쉬는 vital soul을 이해하고 이를 우주적인 존재와 계속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뵙니다. 이런 자아의 성찰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오며 모두가 가진 각기의 영혼에도 공통된 본질이 읻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가져보았고 결국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은 신적인 존재의 가르침 뿐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범현실적인 현상에 대한 경외감, 깨닫고자 하는 욕구 등의 한 차원 높은 열망이 세상에 만연하는 충돌과 번민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한 차원 높은 믿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한편, 내가 곧 우주라는 통찰을 주는 우파니샤드의 내용은 현대 과학과 서로 대척점에 있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세상, 더 편리한 세상, 상상 속의 것들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 중심적인 현대 과학의 거대한 흐름을 고대 인도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비판할 지 궁금해졌습니다.
고대의 인도사람들이 현대 과학의 결과물들, 진행과정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저도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우파니샤드의 내용이 현대 과학과 서로 대척점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연에서 영혼과 비슷한 모습을 찾았던 것처럼, 지금 과학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것들에서도 영혼과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고대의 사람들의 통찰과 현대의 관찰 결과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치되거나 어우러질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i) 각각의 의미를 이해해보기 급급해 깊은 해석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soul’로 번역되는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인도 철학의 개념들을 규명하는 과정이 어려우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vital soul’, ‘free soul’, ‘breathe’등의 의미로 각각 가깝게 대응되면서 어떤 면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띄고, 또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맥으로 상통한다고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중 asu의 의미를 파악할 때에 이승에 남아 살도록 해주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vital soul’· ‘body soul’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존재성을 띈다는 측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육체의 생명을 뜻하는 개념들(prana, ayus등) 보다는 확실히 추상적인 층위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논문에 소개된 다른 개념들 또한 이처럼 다양한 층위로 해석되었지만 asu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렇다면 우리 전통 안에서 이 개념에 (그나마 가까이) 해당하는 것은 어떤 말로 번역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처음 했기에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굳이 대응시켜보자면 ‘넋’, ‘혼’과 같은 단어를 쓰는 맥락과 유사하지 않을까 합니다..ㅎㅎ ‘넋이 나갔다’, ‘혼이 빠졌다’라고 할 때에 육체와 구분되는 정신의 영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상태는 곧 육체의 좌절을 이끌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한 atman은 인도 철학에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동물과 식물에게까지 확장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포함해 인도 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질, 운명을 대자연과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으로 본다고 느꼈습니다. 이와 함께 종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은, 먼저 이 모든 영혼에 관련된 개념들이 결국 사후세계를 그만큼 의식하고 또는 두려워했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합니다. 또한 이 때문에,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었듯 atman, purusa, jiva가 해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도덕적 기여의 측면과 연결된다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보았습니다.
ii) 사실 논문을 제대로 이해한 지 확신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오래 고민해보게 되었던 내용은 atman과 asu의 관계입니다. 전자가 더욱 추상적이고 후자보다 총체적인 개념인 것은 알겠으나 atman이 대응되는 counscious, self와 asu가 대응되는 free soul의 차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또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재님의 의견 잘 읽었습니다:)
추상적인 단어를 그것도 외국어로 읽다보니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재님처럼 우리말에 해당하는 말을 생각해보니 혼, 백, 귀 같은게 떠올랐습니다!
*재님 의견하고 비슷하게, 저도 읽으면서 되게 비슷한 추상적인 단어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마 이러한 soul에 관심이 많았기에, 디테일이 조금씩 다른 여러 단어들이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을 영어들을 통해 추상적인 표현들로 적혀있다보니 이해하는데 어려웠다. 솔직하게 말해 읽으면서도 내용 정리가 잘 되지 않았고, 내용 이해보다는 눈으로 글을 읽는 듯한 느낌만 계속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해한 것들에 대해 확신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이해한 정도만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우선 이 글은 인도 종교관련 문헌들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에 대한 탐구가 중심이 되고 있다. Asu, manas, prana, atman과 같은 용어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으며 각각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들이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다른 지에 대해 밝혀나가고 있다. 이를 논의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부분이 바로 ‘영혼’이었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영혼과 관련되어 있는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와 관련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Asu는 생명과 연관된 영혼으로 manas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며 prana의 경우는 숨으로써 육체적인 것과 연관이 좀 더 있는 용어이며 atman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asu와 prana의 관계였던 것 같다. 이 둘의 구분에서 정신과 육체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었다. asu라는 것은 삶과 죽음에 관계없이 죽더라도 존재한다. 즉 육체가 끝나더라도 지속되는 존재인 것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추상성의 측면에서 정신에 좀 더 가깝다. 하지만 prana의 경우는 숨인데, 숨이란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으로써 이를 일종의 관찰가능한 영혼의 존재로 표현되고 있는 듯하다. (breath-soul) 그렇다고 이 두 개념이 완전히 별개 라기보다는 ‘vital soul’의 측면에서는 유사성이 있다. 이에 대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찾아보니 베다 시대에서 브라흐마나 시대로 변하면서 asu라는 말은 prana라는 말로 대치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영혼의 존재를 추상적으로 논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부분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나름의 체계적이고 깊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위대로 이해했을 때 궁금한 점이 생긴다. Asu는 육체와 관계없이 계속 존재하는 것이지만 prana의 경우에는 육체가 사라지게 되면 관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개념이 유사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숨이라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직역했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생겼다고 생각하긴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이 담고 있는 미묘한 의미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더 나아가 불교의 개념에서 추가적으로 asu에 드러난 영혼의 영속성의 특성을 숨 이외에 구체적으로 육체 등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것들로 제시한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추가적으로 인도 내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과 논리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했는지 궁금하다. 지난 시간에 자이나교와 석가모니의 불교의 차이가 인상깊었고 흥미로웠다. 이것처럼 죽음, 정신, 육체, 영혼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자료에 제시된 것과 다른 견해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도 불교에서 각 개념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머릿 속에 뒤죽박죽 정리가 안된 각 단어들에 대해 정확하게 배워보고 싶다.
글 잘 읽었습니다 *균님. 영혼의 다양한 용어들에 대해 해석을 해주신 부분이 좋았습니다. asu와 atman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균님의 해석을 읽고 다시 논문을 읽으니 조금이나마 느낌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균님의 정리 잘 읽었습니다. 영혼과 삶, asu와 prana의 관계에 대한 정리는 논문을 이해하기에 어려워했던 저에게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어진 글을 읽으면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Pythagoras and Plato derived their sublime theories from the same fountain with the Sages of India.”
“…supposedly universal hope for survival after death may even be considered as a major motivation behind the assumption of an immoral ”soul“.”
피타고라스, 플라톤이 했던 주장들이 인도에서 하는 이야기와 맞닿아 있고 그 내용이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즉 동양에서 생각했던 것들이나 서양에서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에는 같은 것이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비슷한 내용을 다른 수업에서 배워서 그런지, 이 부분이 크게 다가왔다.
어느 순간부터 동양과 서양이 결을 달리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동양의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서양의 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보니 오히려 너무 거리를 두고 완전 다른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번 주에 읽은 글에서도, 듣고 있는 다른 수업에서도 동양과 서양은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질은 같은 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글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한 핵심 단어에 대해서 어떤 해석들이 있었는지 제시하면서, 어떤 이유로 이런 해석은 안 되는지, 이런 해석으로 바라보게 되면 어떤 문제점이 생기는지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이렇게 한 핵심 단어에 대해서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에도 놀랐지만, 다양한 해석 중에서 차례차례 하나씩 왜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지 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이야기의 주제와, 흐름은 파악할 수 있어도 글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다. 큰 이야기의 내용을 알아도 이야기하는 방식은 경험에 따라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면 관련 종교 경험이 없는 사람이면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런 해석은 이래서 안 돼~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아, 안 되는 구나’이해는 하지만, 그냥 그러고 넘어갈 뿐이다. 잘 안 와 닿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낯선 단어들이 많았고, 다루고 있는 내용조차 생소해서 내용을 추론해서 읽어나가는 것이 꽤나 힘이 들었다. 또 이해를 한다고 해서 이게 무슨 말인데?라는 의문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 답답했다. 또한, 지금까지 계속 적혀있는 글자를 넘어서 텍스트를 보는 연습을 했는데, 너무나도 관련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이번에는 그 과정이 어려웠다. 저번 특강에서 관련된 사실들을 이야기해주셨는데, 이번 특강에서도 관련된 새로운 배경지식들을 습득해 더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에 가까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
*현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여러 주에 걸쳐 다양한 고전을 배우면서 서양과 동양의 고전이 완전히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철학적 논의가 시작되는 본질이 비슷하다는 점이 놀랍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 주제인 인도철학은 생소한 내용이고 알고 있는 지식도 부족하다보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매우 아쉬운 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에서 이에 대해 더 자세하고 쉬운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ㅎㅎ 코멘트 감사합니다:)
1. (p. 154) free soul에 대응하는 water는 태초부터 존재하던 것으로, 이러한 대응 도식은 죽은 이후에도 사적이고(personal) 의식이 있는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생존에 대한 욕구가 표현된 것이라는 게 기억에 남는다. 문화권에 관계없이 불멸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한 곳에 고정된 상태로 지속하기 보다는 순환하면서 지속하는 요소로서의 물을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시간에 배운 soma의 순환도가 떠올랐다. 과거 인도 불교 철학 강의에서, 오온 중 ‘식’은 윤회의 주체이자 오온의 담지자로서 업을 가진 채 순환한다는 것을 공부한 적이 있다. 인도 철학의 핵심적인 키워드로 ‘순환’을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보았다.
또한 자연물에 인간의 영혼을 대응시켜 설명하는 방식 자체로부터, 인도 고대 사상과 다른 문화권 사상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에서는 자연물을 세상의 기본 요소라고 보고 미시 세계는 그러한 자연물로 구성된 것이라 설명했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 성선을 주장하는 맹자와, 성무선악을 말하는 고자의 논쟁에서 ‘물’의 성질(아래로 흐름, 길을 터주면 그 쪽으로 흐름)이 인용되었다. 인간에게는 그 스스로를 자연(혹은 세계)과 동일시하고 그로부터 본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보편적으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고대에는 “atman”이라는 용어가 어떤 인지적이거나 심적인 기능을 내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후대 종교, 철학적 전통에서는 아트만의 특성이나 본성을 말할 때에 의식(consciosness)개념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앞선 설명으로부터 아트만이 타자(the Other)와 구별되는 한 사람의 심리-생리적 복합체를 일컫는 경우에 사용하는 용어였기에 “자아(the Self)”라는 번역어를 선택했다고 이해했다. 서구의 “자아” 개념은 고정적이며 불변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시도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하는데, 아트만의 ‘바람과 같은 존재(wind-like entity)’로서의 성질은 이와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아”라는 번역어의 사용이 후대 학자들이 아트만의 개념을 혼동하는 데에 영향을 준 것인지, 아니면 시대가 변함에 따라 “atman”의 용법이 달라진 것인지 궁금했다.
한글로 읽기에도 어려운 개념이 많이 나왔고, 용어에도 혼돈이 왔다. 그래서 글을 전반적으로 이해했다기 보다는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과 연결지을 수 있는 부분들에만 초점을 읽고 읽은 느낌이 들어 아쉽다. 내일 강연에서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자료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받고 싶다.
1)
체계적으로 연결지어 이해하지 못하고 한 문장씩 이해하기에 급급한 읽기였지만, 이번 읽기 자료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컨대 'soul'일 것이다. 문득 생각해보면 서양 고대 철학에도, 혹은 더 오래된 유대교 교리에도 영혼이라는 개념은 등장한다. 사람의 내면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동서양을 막론하여 인정하고 이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만, 이번 읽기자료와 지난 수업에서 느낀 인도 철학에서의 고민은 그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온 점은, 서양철학에서의 영혼은 내면, 육체는 외면을 구성한다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는데, 인도철학에서의 영혼은 본문에 나온 'vital soul (=body soul)'처럼, 인간의 육체활동을 지배하는, 인간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육체의 활동, 그리고 내면에서의 영혼의 활동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가 인간이며 숨을 쉬고, 눈꺼풀을 움직이고, 부러진 곳을 치료하는 인간을 움직이는 모터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영혼이라는 개념이 'soul'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free soul, body soul 등 명칭과 역할이 세분화 되어있었고, 오히려 영혼이 인간을 구성하는 속성이 아니라 인간보다 더 높은 차원의 무언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영혼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영혼과 관련된 활동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수업에서 살펴본 요가, 그리고 고행도 그 예시가 될 것 같다.
개인의 경험을 조금 덧붙이자면, 나는 작년 1월 인도사람들의 삶이 보고 싶어 계획 없이 3주 동안 남인도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다. 그 때 사람들을 보며 든 생각 중 하나는 먹는 건 건강에 하등 안좋은 것만 먹으면서(튀겨먹는 기술이 발달해있어 비만율이 높다), 명상이나 요가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할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체감상 무교가 한 마을에 한 명도 없는 느낌이었는데, 인도인들의 영성이 이렇듯 발달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면 그러한 행위들이 오래 전부터 이어진 영혼과 인간 자신, 초월적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2)
사실 내용이 많이 어려워 천천히 읽었지만 본문에 등장하는 개념들에 대한 이해와 구조화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asu와 body soul, vital soul간의 관계가 정확히 어떠한지, atman, prana 등의 개념은 위 개념들과 함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구조화된 설명을 통해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빈님의 의견 잘 읽었습니다:)
저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이 비슷하게 혼을 이야기하고 있고, 죽음 이후에 영원히 기억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었구나, 등과 같은 공통적인 부분에 대해 관심있게 봤는데, *빈님처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음에 집중하고 바라볼 수 도 있을 것 같네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을 영빈님의 의견을 읽고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빈님이 남인도에서 겪으신 경험이 정말 궁금합니다! 특히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대 인도도 그렇게 폐쇄적이면서 영적인 사회였을지 알고 싶어집니다. 코멘트 감사합니다.
i)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하나일까, 분리될까?’, ‘인간을 인간으로서 규정짓는 것은 신체일까, 영혼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논의되는 철학적 주제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에 대한 사유는 여러 사상과 종교의 근본이 되어왔는데, 인도고대철학 역시 그러하다. 이번 읽기자료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내용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된 논의이다.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인도인들은 영혼과 신체 중 영혼(soul)에 방점을 두었다. 이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들과 해당 구절에서 핵심적으로 사용된 용어들을 통해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아수(asu)’, ‘마나스(manas)’, ‘프라나(prana)’는 모두 인간의 영혼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본래 아수와 마나스가 죽음과 삶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점차 인간의 구성 요소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이 발전함에 따라 ‘아트만(Atman)’이야말로 불멸하는 근원이자 본질이라고 설명되어 왔다. 아트만은 고대 인도인들이 참자아라고 여겼던 것으로 신체는 멸하더라도 아트만은 죽지 않고 영원불변한다고 여겼다. 반면, soul을 일컫는 여러 용어들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인도인들은 인간의 육체를 그저 물질적인 것으로 여겼던 듯하다. ‘asu’가 없으면 육체가 버려진다는 표현 등에서 이들이 육체적인 것보다는 영혼적인 것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ii)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번 수업에서 배웠던 것이 제가 접한 인도 철학의 전부였기 때문에 이번 읽기자료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연속적으로 나오는 용어들이 너무나 생소해서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사이의 미묘한 구분점을 찾는 것에 노력을 많이 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asu, manas, prana, atman에 대해서 충분히 와닿지 않아 이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더 듣고 싶습니다. 또한 asu는 body soul이라는 해석과 free soul이라는 해석이 모두 존재하고, 궁극적으로는 free soul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이해를 했는데 이 논의를 이어가는 과정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아 어떤 논쟁과 사유를 거쳐 최종적으로 atman의 개념에 이르게 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i) 고대 인도인들이 영혼 중에서도 ‘free soul’이 아닌 ‘vital soul’에 해당하는 것들을 일반적인 vital soul과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하고, 또 각각의 요소에 이름을 붙여 각각을 ‘soul’로 이해한 것, 그리고 각각의 영혼을 소우주인 인간을 설명하는 데 뿐만 아니라 대우주를 설명하는 데에도 비유지어 사용한 점이 인상깊었다. 언뜻 보기에는 플라톤의 영혼 삼분설과도 비슷하면서 (우주:사람 @ 고대 인도 ~ 국가:사람 @ 플라톤), 올바른 인간이 아닌 그냥 살아있는 인간을 설명하는 영혼이라는 점, 그리고 한 영혼이 가지는 여러 기능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기능을 관장하는 여러 가지 영혼을 생각한 점이 서로 달라서 흥미롭게 읽었다. ‘Vital soul’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각각의 기능을 관장하는 영혼들이지만, 이들은 나를 ‘나’로 만드는 영혼인 ‘free soul’과는 다르다. 고대 인도 사람들은 왜 이런 종류의 영혼을 생각한 것일까? 아마 논문의 서론에서 말하듯 사람들은 '영혼'이라는게 있다고 생각하고 관찰들과 연결지어 이것의 속성을 고민하지, 영혼이 무엇인지 그 속성을 정의한 뒤에 이것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ii) 고대 인도인들은 먹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큰 주제에서는 다소 벗어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논문의 중간 지점에서부터 의문이 들어서 뒷 부분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토론글에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눈을 가리거나 귀를 가리고서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만, 완전히 금식하고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숨쉬는 것 만큼은 중요하지 않지만, 적어도 보고 듣는 것 보다는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인도인들은 오늘날 전해지는 노래나 기도문에서 ‘영혼’이나 ‘우주’와 관련된 개념으로 ‘숨’, ‘시각’, ‘청각’, ‘생각’, ‘말하기’는 등장시켰지만 왜 ‘먹기’나 ‘미각’을 언급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하다. 고대 인도인들은 먹기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화된 vital soul이 (eating soul?) 따로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먹는 것은 vital soul보다는 free soul의 의지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관련된 사료가 있는지 궁금하다.
먹기, 미각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해봤는데 상범님의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그에 대한 언급이 왜 없는지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며 생각하는것과 먹는것과의 차이를 생각해보니,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중 육체노동의 필요성에서 차이가 떠올랐습니다. 먹는 것은 앞의 세가지와는 다르게 누군가의 고된 육체노동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것 같습니다. 먹을 것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농사를 짓는 것, 채집을 하는 것, 사냥을 하는 것, 낚시를 하는 것 모두 보고 듣고 말하기에 비해서는 더 힘든 육체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먹기, 미각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에 이런 육체노동의 필요성이 영향을 준것은 아닌지 저도 궁금하네요.
*범님의 게시글을 보니 먹기와 미각에 대한 인도인들의 철학관에 대해서 궁금해졌습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미각이 주는 역할이 굉장히 크지만 vital soul, atman에 이르기까지엔 중요한 기능을 하진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엄격히 먹는 것을 조절하는 수행의 과정이 대두되어 vital soul에는 제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되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자이나교와 (석가모니) 불교의 사상적 차이에 대해 살핀 것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인간과 그 고통, 나아가 죄를 어떻게 씻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상이한 인식이 흥미로웠다. 이번 글은 보다 포괄적으로 인도철학에서 영혼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다양한 용어와 용례를 통해 살피면서 이러한 사상적 흥미의 기반을 제공한다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학우들이 느끼겠지만, 사실 원문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는 물론 대다수가 인도차이나 근방에 대한 지정학 내지 역사/문화적 지식이 부족해 매우 압축적으로 요약된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무척 고된 작업이었다.
atman이 존재하는 육신과 밀접한 숨으로써 실체라면, 브라흐만은 창조이다. 창조는 다시금 절대적인 근본 원리이며 이러한 근본 원리가 파생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은 그 본질에서 벗어나 섭리와 원리에서 벗어나 개인의 욕망과 아집에 휘둘리면 그 자아가 고통과 번민을 낳는 것이고, 그 반대로 본질에 맞는 행동과 시각으로 세상을 살게 되면 소위 말하는 '지천명'의 보다 능동적인 버전이 될 것이라 해석했다.
한편 위의 코멘트 중에서 보다 추상적인 영혼의 측면에서 숨을 의미하는 의미로 영혼을 규정하는 단어의 변천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러한 제시가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약간의 궁금증이 생겼다. 결국에 육신의 원동력이 되는 영혼이 브라흐만을 따라, 내지 그러한 최고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면 육체는 부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후대로 넘어가면서 어떤 사상 내지 인식의 변화가 있었길래 보다 육신과 가까운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의 차원이 영혼의 자리를 차지(?)했는지 궁금해졌다. 영혼에 대한 면밀한 글의 해석은 일면 인도철학이 물질 이상의 형이상학 존재에 매몰된 것으로 자칫 우리를 호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철학의 발전이 고리타분한 심신론에 대해 어떤 입장을 전개하고 또 수정해나갔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어쩌면 AI와 인공지능, 그리고 영원을 살 수 있는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기본적인 사유의 틀로 이원론, 일원론, 그리고 기능주의 등과는 사뭇 다른 (물론 고대 사상이니 논리적 정합성이야야 많이 떨어지겠지만;;)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인도 철학이 심신론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줄지도 모른다는 *범님의 코멘트가 흥미로웠습니다. 고대 사상들이 논리적으로 정합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정합성을 엄밀히 지키는 현대 사상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을 짚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 심리철학을 배우면서,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아직 해명되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을 느꼈는데, 고대 인도 철학의 영혼 개념으로부터 이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산스크리트어 단어들을 영어로 해석한 것을 다시 한국어 의미로 생각해보며 읽다 보니 제가 제대로 읽고 있는지 확신을 갖기 힘든 글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해한 바로는 고대어인 asu, prana, atman 등과 같은 단어들이 현대 언어로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통해 고대 인도인이 지닌 생명과 육체,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살펴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당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힘을 soul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보고, 듣고, 생각을 하고, 숨을 쉬고, 오래 살고, 우리의 몸이 살아있게 하는 모든 힘들이 어떠한 soul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Soul, 우리말로 직역하면 영혼이 되지만 단순히 정체 불명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느껴져 이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숨(breath)을 vital soul로 우리의 몸이 살아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본 점도 인상깊었습니다. 당시에 관찰을 토대로 이러한 soul 개념을 정립해 나갔다고 생각해보면, 보고 듣고 움직이는 것을 못하더라도 죽음에 이르지는 않으나 숨을 쉬지 못하면 쉽게 죽기 때문에 숨을 생명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힘으로 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Soul의 개념은 육체와 생명현상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떠나서도 유지되는 Free soul인 asu, atman을 통해 우리의 존재는 불멸한다고 본 것입니다. 고대의 인도인들도 마찬가지로 결국 미지의 죽음 뒤에 현재의 삶 비스무리한 것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앞선 일리아스 강의에서도 죽음이란 무엇인지, 죽음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저눈 우리의 정신이나 자아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우리의 몸에서 우연한 진화의 산물로 생겨난 물리 화학적인 현상이고, 우리의 몸이 생명 활동을 멈추게 되면 우리의 존재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존재와 자아를 가능케 하고 죽음 뒤에도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인 soul, 영혼의 존재에 대해 재미있다고 생각은 하나 아쉽게도 항상 크게 와 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의 의견일 뿐 아직 인간의 존재성이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떠한 것도 분명하게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인도 철학에서 말하는 soul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진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죽음에 이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숨'이 멎는 것을 보고 soul 개념을 이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이미 호흡이라는 생명활동의 물리적 과정을 배운 입장에서 숨과 soul이 잘 연결되지 않는 느낌을 받아 *진님께서 마지막에 남겨주신 코멘트에 공감이 됩니다. 오늘 수업에서 이에 대해 더 배우고 논의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대 인도에서의 영혼, 육체 그리고 사람’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 논문은 조금 난해한 논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껏 여러 논문들을 읽어와서 논문 읽기에 나름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혼(soul)이라는 단어가 수차례 언급되는데, 영혼이라는 단어가 인도철학에서는 육체와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느껴졌다. 지금껏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많지만 영혼에 대해서, 그리고 영혼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렴풋하게, 만약 영혼이라는 게 정말로 있다면 생명의 원천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었다. 이 점에서 인간의 여러 살아있는 현상을 일으키는 원천을 ‘영혼’으로 표현한 인도철학이 조금 더 와닿았다. 지난 교수님의 강의 내용에 이어서 이번 논문을 통해 인도철학에 대해 살펴보니, 지난 시간에도 그렇고 이번 논문내용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내가 평소에 하고 있던 생각과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갔다. 지난 시간에는 사람을 때리거나 찌르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상상만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이라고 보는 인도철학의 관점이 공감되고 또 인상깊었는데, 이렇게 영혼이 한 인간의 모든 현상을 주체하는 존재라고 보는 관점도 꽤 공감이 갔다. 그러나 인도철학적 관점에서는 영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듯한데,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러한 존재가 정말로 실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언제까지나 종교적인 차원에서 국한되어서 생각해야 할 것인지 굉장히 궁금하다. 또한 soul이라는 용어 외에도 정말 많은 용어 (asu, atman, prana 등)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용어들도 어떤 관계인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고 싶다.
*민님의 코멘트 중 과학적인 근거에 대한 부분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이 생각났는데, 틀렸다고도 증명할 수 없는 한 믿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런 현상 중 대중적인 것을 종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존재가 정말 실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하신 점이 인상깊었고 공감되었습니다. 평소 영혼의 존재를 믿느냐고 물어본다면 없다고 답할 것 같지만, 막상 인터넷에 떠도는 전생체험을 해본다거나, 귀신을 무서워한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그 존재를 완벽히 부정하는 것인지 저 스스로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수민님과 코멘트 달아주신 승범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더더욱 이런 '영혼'의 실재와 이 개념을 언젠가는 증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궁금해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i) 고대에 asu, prana 등으로 나뉘던 ‘영혼’은 이후 atman이란 단어에 의해 밀려난다. atman은 vital soul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consciousness 역시 atman의 핵심 개념이었다고 하니,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신은 없지만 아마 atman은 기존의 asu, prana, ayus 등 ‘영혼’들을 통튼, 그 의미들이 모두 들어간 단어였던 것 같다. 다른 단어들이 그랬듯 atman 역시 그 어원이나 정확한 기의는 논쟁 대상이지만, ‘concrete wind-like entity’(p150)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만은 동의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번 김헌 교수님의 책에서 읽었던 ‘프쉬케’란 단어가 생각났다. ‘혼백’이란 뜻의 ‘프쉬케’는 바람이 빠져나가는 소리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했다. 고대 인도도 고대 그리스도 영혼을 숨결, 생명, 즉 vital soul로 봤다는 뜻이다. 영혼과 (물리적)생명은 떼놓을 수 없고, 영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고 본 것이다(비록 mental soul만을 가리키는 manas 같은 단어가 이전에 존재하기는 했지만).
읽다 보니 한국 문화의 ‘영혼’과는 어떻게 대응될지가 궁금해졌다. 한국어에도 영혼, 정신, 혼백, 넋 등 여러 단어가 있지만 그중 ‘영혼’이 atman과 soul의 대응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의미가 통합적이고, 또 일상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한국어 ‘영혼’의 경우 atman이나 프쉬케와는 달리 숨결과 관련된 의미는 없어 보인다. ‘영혼’은 거의 오롯이 정신적인 것만을 가리킨다. 즉 psyche-soul, individuation soul인 것이다. 영혼뿐 아니라 정신, 혼백, 넋 등 다른 단어들 중에서도 vital soul이란 의미가 들어간 단어는 없는 것 같다. 그나마 ‘기력’이란 단어가 떠오르지만, 여기에는 psyche-soul의 의미가 부족하다. vital soul인 동시에 consciousness이기도 했던 atman이란 단어를 가졌던 고대 인도와 달리 한국 문화는 정신과 육체를 별개로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한데,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했고 또 어떤 문화적 차이를 낳았을지 궁금했다. 어려웠지만 재미있게 읽은 논문이었다.
ii) 여쭤보고 싶었던 것은, asu, prana, manas 등 영혼(의 각 역할)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단어들이 사용되다가 atman을 사용하는 시기로 넘어오면서 어떠한 변화들이 있었는가였다. 언어가 변하면 화자들의 관념도 변하기 마련인데, vital soul, mental soul, perceptive soul... 등 영혼을 여러 개로 나눠 생각했던 것에는 고대 인도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고, 저것들이 통합되어 atman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게 된 것 역시 변화한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그 변화가 궁금했다. 또 여러 단어로 나뉘어 사용되던 시기에는, 그 각기 다른 영혼들을 모두 별개로 본 것인지 역시 궁금했다. p133의 passage (3)처럼 아예 별개로 나열하고 있는 예문도 있는데, 그렇다면 저것들 중 일부만 지닌 사람도 있다고 보았는지, 저것들을 모두 갖추어야만 온전히 살아있다고 본 것인지 알고 싶었다.
*우님께서 한국어 개념을 예시로 들어 설명해주신 게 인상 깊어 댓글 남깁니다. 글을 읽으면서 "무슨 영
혼 개념이 이렇게 많아!" 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심지어 "~soul"의 형태로 수식하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정신적 현상을 가리키는 고유한 말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ㅎㅎ. 그리고 이런 말들에 대응해서 논문의 개념을 꼼꼼히 분석해주신 것도 이해를 돕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한국 문화에서 사용하는 영혼에 대한 용어 및 맥락들을 함께 설명해주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우님!
논문에서 설명되는 soul이 한국 문화에서는 어떻게 대응될지 살펴보신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용어가 영혼밖에는 없지 않나 싶었는데, 지우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정신, 혼백, 넋 등의 단어들이 있었네요. 이런 개념들과 논문에서 등장한 개념들을 비교해보면 두 문화에서 어떻게 죽음을 대하는지, 어떻게 정신적인 부분을 설명하고자 했는지 등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이 글을 얼마나 이해하며 읽었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 30퍼센트도 이해를 못 한것 같다고 답할 것이다. 영어로 생소하고 추상적인 개념들과 단어들을 읽어내다보니, 한 문장을 읽어내면 그 전에 읽었던 문장을 계속해서 까먹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글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지점은, 우리 모두가 직관적으로 무엇인지 인식하지만 정확히 그 실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하지 못할 '영혼'에 대해 인도철학과 종교적 관점에서 세세하게 다뤘다는 것이다.
'영혼'하면 나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은 '나의 몸 속에 담긴 생명의 혼'과 같은 느낌이다. '육체' 속에 '영혼'이라는 본질이 담겨 나의 몸이 움직이고 숨을 쉬는 것이며, '영혼'이 빠져나가면 나의 육체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식의 직관이 스친다. 이는 논문에서 소개하는 'asu' 즉, 'vital soul' 혹은 'body soul'에 가깝다. 논문에는 이외에도 atman, prana, manas, caksus 등등 영혼의 다양한 측면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이런 영혼의 개념들은 단순히 인간에 한정되지 않고 자연이나 세계의 원리까지 확장된다. 심지어 그 의미조차 하나의 고정된 것으로 지칭할 수 없다는 느낌을 논문을 읽는 내내 받았다. 우리가 흔히 영혼이라고 하면 느끼는 'free soul'을 계속해서 고정된 실체가 아닌 바람에 비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흥미로웠던 내용은 인도철학에 대해 쇼펜하우어가 매우 심취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근대 문학사와 철학을 비롯한 많은 학문에 쇼펜하우어가 미친 영향이 매우 대단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심리학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쇼펜하우어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심리학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 이전에 이미 '억압'이라는 무의식적 기제를 잘 설명한 사람이다. 또한, 쇼펜하우어가 서양사상에서 '영혼'이라고 퉁쳐서 하나로 이해되던 것을 '의지와 지성'으로 나누어 설명하였고, 그곳에서 프로이트나 융 등의 정신분석학이 파생되어 나왔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정신분석학의 많은 이론들이 사장되었고 현재 심리학계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며 모든 것을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생리적 반응으로 설명하려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에게 체계적인 '심리적' 모델이 있음을 주장한 '정신분석학'은 대단하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쇼펜하우어'가 있었고,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더 뒷 배경에는 '인도철학'이 존재한다. 이점이 매우 신기했다. 쇼펜하우어가 자아 혹은 영혼을 '의지와 지성'이라는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었던 점은, 논문에서 계속 다루고 있듯 고대 인도철학이 우리의 영혼을 다양한 측면으로 나누려고 했던 시도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것이 아닐까?
나의 인생에서 도대체 인도철학이 무슨 역할을 하고 왜 이런 어려운 걸 알아야 하는지 솔직히 회의적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 학문은 정말 다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 내가 전공하고 있는 과목의 저 깊은 뿌리에조차 인도철학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또한, p.147 도표에서 manas는 'thinking'에, prana는 'respiration'에, caksus와 srotra는 각각 'sight', 'hearing'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심리학의 하위분야인 각각 '인지', '신경', '지각' 등과 어느정도 매칭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지나치게 그 쪽으로 치우쳐서 과도한 해석을 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2)
논문에서 '영혼', '자아' 등의 다양한 개념과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고 있음은 이해했지만, 정확히 그래서 그 용어들이 뭘 말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 부분을 강연에서 잘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다.
저는 인도철학은 물론이고 심리학도 잘 알지 못해서 쇼펜하우어가 언급된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었는데, *현 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정신분석학의 뿌리에 인도철학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은 보통 아예 다른 것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학문들이 정말 다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이래서 (고전을) 공부하라고 하는구나'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i)
‘영혼’이라는 개념에는 무수히 많은 측면이 있다.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엄밀히 따지자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해설 논문은 영어 단어로 ‘soul’이라 표현하는 것이 인도의 고전에서, 문헌과 맥락에 따라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vital soul”과 “free soul”의 차이에 관심이 갔다. “vital soul”은 좀 더 물질적인 것과 가까운 영혼으로 이해했고 “free soul”은 보통 영혼이란 말을 쓸 때 생각하는, 사라지지 않는, 좀 더 영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시에서 비유의 대상이 자연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영혼을 자연에 비유한 것을 보며 시에서의 비유의 대상은 어떻게 선정되는 것일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비유의 대상이 되려면 최소한 관찰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 것 같다. 영혼의 측면들을 자연의 요소들에 비유한 사람들이 현대과학이 보여주는 전기 신호가 흐르는 신경세포의 모습, 수정란이 인간이 되어가는 발생 과정, 망원경으로 본 우주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면 어떤 비유를 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과거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측면의 영혼을 생각할 때, 실제 세상에 대한 관찰은 그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니 사람을 세상을 관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생각하는 장치 정도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하던 생각을 공부하는 우리는 그것과 우리가 보는 지금의 세상에 대한 관찰을 결합하여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다른 학우들은 영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보통 어떤 책을 읽을 때 내가 처음 하는 일은 책의 목차를 읽는 것이다. 읽는 것이 논문이라면 가장 앞부분의 요약을 유심히 읽어본 뒤 논문을 읽기 시작한다. 이번에 읽은 해설 논문에서는 목차나 소제목, 요약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배경지식이 지난번 강성용 교수님의 강의와 읽기자료 정도가 전부인 나에게는 그래서 더 읽기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ii)
이 글을 읽는 게 쉽지 않고 읽더라도 글자와 문장만 읽을 뿐 머릿속에 개념을 구성해나가기는 어려웠다. 강의를 통해 자연에 비유되는 여러 가지 측면의 영혼들, 그 개념의 차이와 구분, 그리고 그 논의의 진행과정에 대해 이해를 쌓고 싶다. 또, 3장에서 영혼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 이유, 배경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였는데, 그중 사회적인 배경과 맥락이 특히 궁금해졌다.
비유를 위해서는 최소한 관찰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하지만 또 어느 정도 이상 관찰가능해지면 비유가 불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정확하게 알아갈수록 비유의 필요성은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해불가한 생명과 자아를 이해하기 위해 영혼이란 것을 상정했듯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비유에 기대는 것인데, 과학의 발전과 함께 영혼이 사라지고 신이 사라진 것처럼 세상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될수록 비유는 힘을 잃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을 속속들이 관찰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비유의 대상 즉 아직 알지 못하는 뭔가를 찾으려 하지 않을까요? 또 '사람은 세상을 관찰하는 장치'라는 말씀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인상깊었다. 역동적이고 생생한 비유라서 그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산스크리트어나 힌두어를 모르다 보니 이 생각이 의미가 있는가 싶다. 언어를 모르니 아무리 분석해도 어렵고, 사실 독일 책에 영어로 쓴 에세이인데 출판방식부터 난해하다. 배경지식과 내용은 다른 출처로부터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나, 주석을 읽어도 어감과 connotation을 종잡을 수 없어 이해한 척 글을 쓰기 꺼려진다. 에세이에 등장하는 개념들을 인용하는 영상 자료가 있는지 궁금하다. 단어의 의미에 대해 억양과 표정, 말투로부터 더 와닿는 직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범씨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언어적인 장벽이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겉으로만 직역하는 느낌이라 미묘한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직관적으로 많이 와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수업 시간을 통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개념에 대한 설명, 사실상 글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단어나 표현들이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초에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설명하기에도 까다로웠을 것이고 무엇보다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soul 이라 하면 영혼, 영혼이라 하면 육체와는 구분되고 정신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인간의 본질..과 같은 무언가라고 여겨왔었는데, 우리가 관찰할 수 있고 규명할 수 있는 일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저렴하게(?) 표현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 강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시체의 옆을 지키며 부패 과정을 관찰하던 수행방식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이는 지구 한 편에서 시신의 변화 과정을 상세히 관찰하고 기록하여 왜 이러한 변화가 생기는지를 알아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을 동안, 다른 한 편에서는 그것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수련하고 있었다는 점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엔 단순히 '신기하다'에서 그쳤었지만, 이번 논문까지 읽고 나니 새삼 그들에게 있어 혼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 것 같다. 논문에는 soul을 논하며 갖가지 단어들이 등장한다. body soul, free soul, vital soul, asu, atman 등, 여러 단어가 하나의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기도 하고, 하나의 큰 개념은 비슷해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여러 개의 세부개념들로 나뉘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들이 얼마나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오래 연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의 생각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고,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에 대해 확실한 설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님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난 수업시간에 배운 것과 더불어 봤을 때 영혼을 참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같이 잘 배워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