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 소주제 3] 『메타버스』 & 강원대 산업공학과 김상균 교수 특강
경제웅2021-04-17 00:49
중학교 1학년 때다. 시험이 끝난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들이 PC방에 데려갔다. 눅진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러 그대로 나가고 싶었다.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친구들은 능숙하게 내 앞 컴퓨터 전원을 켜고, 사용자명과 이메일 칸에 아무 문자나 쳐 넣은 뒤, 지폐 기계가 자리한 카운터 옆 구석을 가리켰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서든어택을 배우고 있었다.
이내 불편해진 것은 낯선 키 조작이나, 신난 친구의 입에서 내리 튀는 침방울, 가시지 않는 담배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좋은 총을 고르는 법을, 상대 머리를 더 정확하게 조준하는 법을, 그러면서 내 몸은 재빨리 숨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몇 번의 전투 끝에 재미를 못 붙이고 그냥 메이플스토리나 혼자 하겠다며 그만두었다(메이플월드에서도 주황버섯을 사냥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메타버스』가 소개하는 네 유형의 메타버스는 내가 감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었다. 가상세계의 고속 발달이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다. 현재는 게임 속에서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열리고, 정교한 그래픽에 손으로 쥐는 물건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수준이며, 머지않아 뉴럴링크 등을 통해 게임은 고도의 실재감을 부여받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더 현실적인 서든어택이 등장할 것이다. 뒤통수를 저격당한 얼굴의 파르르 떨리는 눈꼬리를, 단도로 상대의 심장 아래쪽을 푹 찌르는 촉감을 미세하게 구현해 내는 서든어택 말이다. 극단적으로 20XX년에 실제로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상황의 오감을 완벽하게 구현한 게임이 출시된다고 하면, 가상세계 속 윤리 문제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던지고 싶은 화두가 이것이다. 가상세계의 윤리는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
가상세계는 현실세계와 매우 닮아 있다. 그러나 현실세계가 아니다. 현실 윤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대로 적용함은 가상세계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적 여건이 안 돼서, 자연 법칙이 불허해서, 혹은 사회가 금지해서 현실세계에서 못 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상세계를 만들고 오간다. 현실세계에서 레이싱카를 몰고 도로를 질주하지 못하므로 레이싱 게임에서 질주하며 가로수를 들이박는다. 현실세계에서 장난으로 친구와 총싸움을 하지 못하므로 FPS 게임에서 친구에게 총부리를 겨누어 ‘킬’을 쌓는다. 현실세계에서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가상세계에서도 금하는 것은, 가상세계 고유의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빼앗는다.
가상세계 고유의 확장성의 기술적 한계는 운영자 내지 개발자가 정한다. 서든어택에서 아무 죄책감 없이 사람을 살해해도 되는 것은, 그렇게 운영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운영자가 설정한 규칙 아래서 자유롭게 상대를 쏘아 죽일 수 있다. 그러면 강간은 왜 안 되는가? 자유롭게 상대를 강간하는 게임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어디 있는가? 심지어 강간은 살인보다 형법상 경한 죄다. 하지만 ‘강간 게임’에는 강력하고 직관적인 거부감이 인다. 가상세계에서 통용되는 규칙은 그 규칙에의 규칙, 메타규칙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를 윤리라고 부른다면, 가상세계의 윤리는 현실세계가 아니라는 까닭만으로 운영자에게 전면 위임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가상세계의 일부인 게임세계의 윤리를 조정한다. 제32조제2항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게임물 제작을 금한다.
1. 반국가적인 행동을 묘사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현저히 손상시킬 우려
가 있는 것
2. 존비속에 대한 폭행·살인 등 가족윤리의 훼손 등으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
3.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
게 할 우려가 있는 것
그러나 가상세계에서 요청되는 어떤 윤리가 반드시 그와 상응하는 현실 윤리, 이를테면 위 법률 조항으로부터 연역되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가상세계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20YY년 현실세계의 국회가 위 조항을 폐지한다면, 뉴럴링크를 탑재한 ‘강간 게임’을 제작,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가?
법률이 없어도 인간으로서 복속하는 도덕이 이를 거부한다고 답할 수 있다. 그런데 첫째, 이미 상용화된 살인 게임들은 분명 현실 도덕과 상치됨에도 왜 거부하지 않는가? 둘째, 내가 ‘인간’이 아닌 게임은 어떤가?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동물이 아닌 제3의 생명체, 혹은 생명체조차 아닌 로봇이 1인칭인 메타버스에 들어간다면, 내가 ‘인간’ 도덕의 지배를 받아야 할 까닭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가상세계의 윤리는 현실세계의 윤리와는 독립적으로 정초될 필요가 있다.
책이 전망하는 대로 메타버스는 빠르게 확장되고, 가상세계에 상주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럴수록 책이 지적하는, 메타버스로 인해 ‘현실세계에서’ 벌어질 윤리적 문제―흥미롭게 읽은 ‘브레인 투어’ 등―말고도, 메타버스 자체 내의 윤리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내 불편해진 것은 낯선 키 조작이나, 신난 친구의 입에서 내리 튀는 침방울, 가시지 않는 담배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좋은 총을 고르는 법을, 상대 머리를 더 정확하게 조준하는 법을, 그러면서 내 몸은 재빨리 숨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몇 번의 전투 끝에 재미를 못 붙이고 그냥 메이플스토리나 혼자 하겠다며 그만두었다(메이플월드에서도 주황버섯을 사냥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메타버스』가 소개하는 네 유형의 메타버스는 내가 감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었다. 가상세계의 고속 발달이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다. 현재는 게임 속에서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열리고, 정교한 그래픽에 손으로 쥐는 물건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수준이며, 머지않아 뉴럴링크 등을 통해 게임은 고도의 실재감을 부여받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더 현실적인 서든어택이 등장할 것이다. 뒤통수를 저격당한 얼굴의 파르르 떨리는 눈꼬리를, 단도로 상대의 심장 아래쪽을 푹 찌르는 촉감을 미세하게 구현해 내는 서든어택 말이다. 극단적으로 20XX년에 실제로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상황의 오감을 완벽하게 구현한 게임이 출시된다고 하면, 가상세계 속 윤리 문제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던지고 싶은 화두가 이것이다. 가상세계의 윤리는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
가상세계는 현실세계와 매우 닮아 있다. 그러나 현실세계가 아니다. 현실 윤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대로 적용함은 가상세계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적 여건이 안 돼서, 자연 법칙이 불허해서, 혹은 사회가 금지해서 현실세계에서 못 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상세계를 만들고 오간다. 현실세계에서 레이싱카를 몰고 도로를 질주하지 못하므로 레이싱 게임에서 질주하며 가로수를 들이박는다. 현실세계에서 장난으로 친구와 총싸움을 하지 못하므로 FPS 게임에서 친구에게 총부리를 겨누어 ‘킬’을 쌓는다. 현실세계에서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가상세계에서도 금하는 것은, 가상세계 고유의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빼앗는다.
가상세계 고유의 확장성의 기술적 한계는 운영자 내지 개발자가 정한다. 서든어택에서 아무 죄책감 없이 사람을 살해해도 되는 것은, 그렇게 운영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운영자가 설정한 규칙 아래서 자유롭게 상대를 쏘아 죽일 수 있다. 그러면 강간은 왜 안 되는가? 자유롭게 상대를 강간하는 게임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어디 있는가? 심지어 강간은 살인보다 형법상 경한 죄다. 하지만 ‘강간 게임’에는 강력하고 직관적인 거부감이 인다. 가상세계에서 통용되는 규칙은 그 규칙에의 규칙, 메타규칙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를 윤리라고 부른다면, 가상세계의 윤리는 현실세계가 아니라는 까닭만으로 운영자에게 전면 위임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가상세계의 일부인 게임세계의 윤리를 조정한다. 제32조제2항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게임물 제작을 금한다.
1. 반국가적인 행동을 묘사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현저히 손상시킬 우려
가 있는 것
2. 존비속에 대한 폭행·살인 등 가족윤리의 훼손 등으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
3.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
게 할 우려가 있는 것
그러나 가상세계에서 요청되는 어떤 윤리가 반드시 그와 상응하는 현실 윤리, 이를테면 위 법률 조항으로부터 연역되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가상세계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20YY년 현실세계의 국회가 위 조항을 폐지한다면, 뉴럴링크를 탑재한 ‘강간 게임’을 제작,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가?
법률이 없어도 인간으로서 복속하는 도덕이 이를 거부한다고 답할 수 있다. 그런데 첫째, 이미 상용화된 살인 게임들은 분명 현실 도덕과 상치됨에도 왜 거부하지 않는가? 둘째, 내가 ‘인간’이 아닌 게임은 어떤가?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동물이 아닌 제3의 생명체, 혹은 생명체조차 아닌 로봇이 1인칭인 메타버스에 들어간다면, 내가 ‘인간’ 도덕의 지배를 받아야 할 까닭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가상세계의 윤리는 현실세계의 윤리와는 독립적으로 정초될 필요가 있다.
책이 전망하는 대로 메타버스는 빠르게 확장되고, 가상세계에 상주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럴수록 책이 지적하는, 메타버스로 인해 ‘현실세계에서’ 벌어질 윤리적 문제―흥미롭게 읽은 ‘브레인 투어’ 등―말고도, 메타버스 자체 내의 윤리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서강민2021-04-17 23:43
경제웅 학우님의 글 매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왜 서든어택과 같은 총기로 살인하는 게임은 많은데, 강간하는 게임은 없는가?'에 관해 논한 부분입니다. 형법상으로나 직관적으로나 살인은 자명하게도 강간보다 중한 범죄라는 것은 확인한데, 가상세계의 게임에서는 반대로 강간 게임은 안되는지 혼자 고민해봤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는
1. 두 게임 간에는 추구하는 목적이 다른 것 같습니다. FPS게임을 플레이 할때, 플레이어는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기 위해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 경험치, 승점을 얻기 위해 상대 플레이어를 맞추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못죽이니까, 가상 세계에서 사람을 죽이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FPS를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방적인 제 추측이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FPS 게임에서는 죽임의 방식이 너무나 단순한 것 같습니다. 실제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FPS에서는 사람이 너무나 쉽게 헤드샷 한방이나 몸통샷 두방이면 죽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게 가상 세계의 인간이 죽다보니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살인이라고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FPS를 즐겨하는 입장에서 단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 플레이어가 보이는 위치에 커서를 가져다 두고 마우스를 눌렀을 뿐, 게임 플레이 중 다른 지성체를 '죽인다는 인식'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간 게임은 직관적으로 너무나 큰 거부감이 드는 것이 신기하기는 한 것 같습니다.
또한, 가상세계의 윤리에 관해서는 현실세계의 법률처럼 확립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최종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세계에서는 권력이 집중된 국가의 통제를 받아 도덕규범을 어느 정도 선안에서 유지하고, 도덕규범에서 크게 벗어난 것을 법률로서 처벌하는데, 가상세계에서는 국가도 없고 순수히 자유로운 공간입니다. 물론 현재는 가상세계를 통제하고 있는 기업을 통제함으로써 가상세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상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기업의 숫자와 기업의 권한이 늘고, 가상세계가 어떠한 권력도 영향을 줄 수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 된다면, 마치 무정부상태인 야생처럼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야생에 도덕규범을 적용시키는 것이 무의미한것처럼, 가상세계에 윤리를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왜 서든어택과 같은 총기로 살인하는 게임은 많은데, 강간하는 게임은 없는가?'에 관해 논한 부분입니다. 형법상으로나 직관적으로나 살인은 자명하게도 강간보다 중한 범죄라는 것은 확인한데, 가상세계의 게임에서는 반대로 강간 게임은 안되는지 혼자 고민해봤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는
1. 두 게임 간에는 추구하는 목적이 다른 것 같습니다. FPS게임을 플레이 할때, 플레이어는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기 위해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 경험치, 승점을 얻기 위해 상대 플레이어를 맞추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못죽이니까, 가상 세계에서 사람을 죽이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FPS를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방적인 제 추측이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FPS 게임에서는 죽임의 방식이 너무나 단순한 것 같습니다. 실제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FPS에서는 사람이 너무나 쉽게 헤드샷 한방이나 몸통샷 두방이면 죽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게 가상 세계의 인간이 죽다보니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살인이라고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FPS를 즐겨하는 입장에서 단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 플레이어가 보이는 위치에 커서를 가져다 두고 마우스를 눌렀을 뿐, 게임 플레이 중 다른 지성체를 '죽인다는 인식'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간 게임은 직관적으로 너무나 큰 거부감이 드는 것이 신기하기는 한 것 같습니다.
또한, 가상세계의 윤리에 관해서는 현실세계의 법률처럼 확립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최종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세계에서는 권력이 집중된 국가의 통제를 받아 도덕규범을 어느 정도 선안에서 유지하고, 도덕규범에서 크게 벗어난 것을 법률로서 처벌하는데, 가상세계에서는 국가도 없고 순수히 자유로운 공간입니다. 물론 현재는 가상세계를 통제하고 있는 기업을 통제함으로써 가상세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상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기업의 숫자와 기업의 권한이 늘고, 가상세계가 어떠한 권력도 영향을 줄 수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 된다면, 마치 무정부상태인 야생처럼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야생에 도덕규범을 적용시키는 것이 무의미한것처럼, 가상세계에 윤리를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채미2021-04-19 13:56
제웅 학우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도 이때까지 인간을 죽이는 게임을 하며 즐거워 하는 사람들을 보고, 살인이란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적인 쾌락과 같은 것일까 생각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들어보자면, 유투브에서 한 유투버가 GTA라는 약탈과 폭행이 허용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단지 가상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사람을 때리고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며 너무나도 즐거워 하는 유투버를 보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과연 이러한 욕망의 실현을 가상현실과 현실세계를 제대로 구분해가며 행할 수 있을지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리얼돌 문제에 관한 이슈를 언급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리얼돌은 메타버스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을 하나의 인형으로 본다는 것에서 충분히 현실 세계와 구분하지 못하고 강간과 같은 성범죄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는데,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하지만 잠재적 살인자로 취급하지는 않는다며, 리얼돌도 이와 같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저는 이와 관련하여 과연 어디까지의 법적 규제가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정빈2021-04-21 18:23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왜 온라인 게임에서 이런 건 되고, 이런 건 안 되지? 그럼 앞으로 메타버스가 더 활성화되면 우리는 어떤 기준을 합의해야 할까? 에 대한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메타버스 세계가 점점 더 현실적으로 묘사될수록, 저는 그 안에서도 역시나 법과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페토란 게임을 플레이해보았을 때 인간 세계처럼 좋은 옷, 신발을 사입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만 보더라도 메타버스는 이미 현실의 질서를 일부 수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법과 질서란 것이 현실 세계에서 국가법으로 규정해야 하는 것인지, 메타버스 세계관 안에서만 적용되는 규칙을 운영자가 만드면 되는 것일지, 혹은 메타버스 내의 사용자끼리 대표자를 뽑아 새로운 법질서를 만들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뒤따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현실 세계에서 만든 규제법을 적용할 시,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의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의 책임을 지는 이는 현실의 플레이어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메타버스 세계관 안에서만 적용되는 규제법을 따른다고 한다면, 이에 대한 처벌의 책임은 현실 세계의 플레이어에게 부과되는 것인지, 메타버스 세계관 내의 아바타에게 부과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을 것입니다. 또 여기서 아바타에 대해 책임을 부과한다고 한다면, 제웅님의 질문처럼 아바타가 사람이 아닌 동물, 혹은 무생물이라고 했을 때 사람과 똑같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어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길 것입니다.
메타버스 세계가 점점 더 현실적으로 묘사될수록, 저는 그 안에서도 역시나 법과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페토란 게임을 플레이해보았을 때 인간 세계처럼 좋은 옷, 신발을 사입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만 보더라도 메타버스는 이미 현실의 질서를 일부 수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법과 질서란 것이 현실 세계에서 국가법으로 규정해야 하는 것인지, 메타버스 세계관 안에서만 적용되는 규칙을 운영자가 만드면 되는 것일지, 혹은 메타버스 내의 사용자끼리 대표자를 뽑아 새로운 법질서를 만들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뒤따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현실 세계에서 만든 규제법을 적용할 시,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의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의 책임을 지는 이는 현실의 플레이어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메타버스 세계관 안에서만 적용되는 규제법을 따른다고 한다면, 이에 대한 처벌의 책임은 현실 세계의 플레이어에게 부과되는 것인지, 메타버스 세계관 내의 아바타에게 부과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을 것입니다. 또 여기서 아바타에 대해 책임을 부과한다고 한다면, 제웅님의 질문처럼 아바타가 사람이 아닌 동물, 혹은 무생물이라고 했을 때 사람과 똑같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어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길 것입니다.
서강민2021-04-17 01:04
메타버스
내용 요약) 메타버스는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게임, 웹카페 등이 메타버스의 일종이다. 온 지구를 정복한 인간은 지구 밖 우주로,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IT 기업 뿐 아니라 의류, 화장품, 게임, 자동차, 물류, 스포츠 기업 역시 메타버스를 주축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으며, 메타버스를 빠르게 선점한 기업이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소개해주고 있다.
생각해볼 점)
1. 메타버스로 인해 현재 존재하는 직업, 단순노동자부터 시작해서 변호사, 의사,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까지, 미래에는 점차 없어질 직업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일자리 수는 감소하게 되고, 노동의 가치는 점점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미래에 새로 생겨날 직업은 어떤 것들이 있고, 이러한 암울한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2. 현재는 특정 국가에서 경제활동을 해서 얻은 이익 중 일부는 해당 국가의 조세법에 따라, 그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가상세계는 지배하고 있는 국가가 없으며, 일종의 미개척지이다. 그렇다면 가상세계에서 발생한 이익은 조세제도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3. 인공지능을 하나의 잘 짜여진 프로그램, 계산기, 기계라고 봐야할까? 아니면 사람이나 다른 동물처럼 사고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을 가진 개체로 봐야할까? 인공지능에게도 인권을 부여할 수 있을까?
4.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물질로서 있는 것을 존재의 정의로 받아들이면, 가상세계에 그저 데이터로 있는 무언가를 ‘존재’한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5. 현재의 기술로는 현실세계를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을 뿐 완전히 똑같이 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과 완전히 똑같이, 혹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고, 기아나 전쟁 등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한 가상현실을 만든다면, 가상현실에 사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6. 시간이 지나 메타버스가 확장됨에 따라 불평등(경제적 불평등 등등)은 어떤 양상을 그릴까? 이러한 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해 각 정부는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 할까?
기억거래소
내용요약) 현재 과학기술은 물질적 요소는 통제 가능하지만, 사람의 정신적 영역, 기억은 세밀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는 사람의 기억을 세밀하게 조작하고, 기억의 삭제, 생성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회사를 가정한다. 이 회사는 ‘불치병의 걸린 사람에게 행복한 꿈을 꾸면서 평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안락사 서비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여 고통을 겪게 하는 복수 서비스’, ‘죽은 뒤에도 컴퓨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후 서비스’ 등 다양한 기억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생각해볼 점)
1. 이 소설은 기억을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기억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기술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까? 현대 과학기술로는 정신적인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2. 이 소설에서 나오듯이 A라는 사람이 죽고, B라는 사람에게 A라는 사람의 기억을 덮어씌우고, 외형도 A와 완벽하게 똑같게 성형한다면, 이때 B라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A와 완벽하게 같아진다. 이때 B는 A일까? B일까?
3.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경제성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특정 기술이 경제성이 있으면 그 분야에 자본이 투입되어 연구가 활발해지고, 반대로 경제성이 없거나 적으면 자본이 몰리지 않아 그 분야는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오로지 경제성의 논리에 매몰된다면, 연구윤리 문제, 순수한 자연과학의 부진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4. 우리 주변에서는 많은 것들이 상품화 되어있다. 휴대폰, 책상, 식품은 물론이고, 어떤 나라는 사람의 ‘성’조차 상품화 되어있다. 반면, 아직 상품화되어 있지 않은 것들도 많다. 사람의 신체, 사람의 기억, 인간관계(친구, 연인, 가족 등), 종교, 사람의 감정(행복, 슬픔 등) 등이다. 상품화가 아직 안된 것들은 주로 1. 거래가 원천적으로,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거나 2. 사회 구성원이 윤리적으로 거래가능하다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상품화가 될 때 주는 이익과 비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용 요약) 메타버스는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게임, 웹카페 등이 메타버스의 일종이다. 온 지구를 정복한 인간은 지구 밖 우주로,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IT 기업 뿐 아니라 의류, 화장품, 게임, 자동차, 물류, 스포츠 기업 역시 메타버스를 주축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으며, 메타버스를 빠르게 선점한 기업이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소개해주고 있다.
생각해볼 점)
1. 메타버스로 인해 현재 존재하는 직업, 단순노동자부터 시작해서 변호사, 의사,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까지, 미래에는 점차 없어질 직업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일자리 수는 감소하게 되고, 노동의 가치는 점점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미래에 새로 생겨날 직업은 어떤 것들이 있고, 이러한 암울한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2. 현재는 특정 국가에서 경제활동을 해서 얻은 이익 중 일부는 해당 국가의 조세법에 따라, 그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가상세계는 지배하고 있는 국가가 없으며, 일종의 미개척지이다. 그렇다면 가상세계에서 발생한 이익은 조세제도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3. 인공지능을 하나의 잘 짜여진 프로그램, 계산기, 기계라고 봐야할까? 아니면 사람이나 다른 동물처럼 사고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을 가진 개체로 봐야할까? 인공지능에게도 인권을 부여할 수 있을까?
4.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물질로서 있는 것을 존재의 정의로 받아들이면, 가상세계에 그저 데이터로 있는 무언가를 ‘존재’한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5. 현재의 기술로는 현실세계를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을 뿐 완전히 똑같이 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과 완전히 똑같이, 혹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고, 기아나 전쟁 등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한 가상현실을 만든다면, 가상현실에 사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6. 시간이 지나 메타버스가 확장됨에 따라 불평등(경제적 불평등 등등)은 어떤 양상을 그릴까? 이러한 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해 각 정부는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 할까?
기억거래소
내용요약) 현재 과학기술은 물질적 요소는 통제 가능하지만, 사람의 정신적 영역, 기억은 세밀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는 사람의 기억을 세밀하게 조작하고, 기억의 삭제, 생성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회사를 가정한다. 이 회사는 ‘불치병의 걸린 사람에게 행복한 꿈을 꾸면서 평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안락사 서비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여 고통을 겪게 하는 복수 서비스’, ‘죽은 뒤에도 컴퓨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후 서비스’ 등 다양한 기억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생각해볼 점)
1. 이 소설은 기억을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기억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기술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까? 현대 과학기술로는 정신적인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2. 이 소설에서 나오듯이 A라는 사람이 죽고, B라는 사람에게 A라는 사람의 기억을 덮어씌우고, 외형도 A와 완벽하게 똑같게 성형한다면, 이때 B라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A와 완벽하게 같아진다. 이때 B는 A일까? B일까?
3.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경제성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특정 기술이 경제성이 있으면 그 분야에 자본이 투입되어 연구가 활발해지고, 반대로 경제성이 없거나 적으면 자본이 몰리지 않아 그 분야는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오로지 경제성의 논리에 매몰된다면, 연구윤리 문제, 순수한 자연과학의 부진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4. 우리 주변에서는 많은 것들이 상품화 되어있다. 휴대폰, 책상, 식품은 물론이고, 어떤 나라는 사람의 ‘성’조차 상품화 되어있다. 반면, 아직 상품화되어 있지 않은 것들도 많다. 사람의 신체, 사람의 기억, 인간관계(친구, 연인, 가족 등), 종교, 사람의 감정(행복, 슬픔 등) 등이다. 상품화가 아직 안된 것들은 주로 1. 거래가 원천적으로,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거나 2. 사회 구성원이 윤리적으로 거래가능하다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상품화가 될 때 주는 이익과 비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박건규2021-04-19 02:36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메타버스-3번 질문에 대해)
제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인공지능이 충분한 자격이나 수준을 갖춘다면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여기서 말하는 인공지능은 강인공지능 혹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준의 인공지능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봐도 예전에는 신분이 다른 노예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고, 피부색이 다른 존재가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는데, 신분, 인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학적 분류도 결국 나중에 허물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생물학적 분류가 신분/인종 차이보다 우대되고 영원할 것이라는 근거를 찾기 못했기에 그렇긴 합니다.) 어쩌면 인공지능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에 우리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괜히 우리가 가진 인간의 생물학적 육신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메타버스-5번 질문에 대해)
문득 소설 『기억 전달자』가 떠오르는 질문이었습니다. 뭔가 우리가 현실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거하려고 해도, 하나를 제거했을 때 잇따르는 것들을 전부 고려하지 못하기에 문제가 생가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마다 무엇을 제거하고 무엇을 남겨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다를 것이라는 점이겠죠. 다만 오히려 모두의 합의를 얻기보다 각자 개인별로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맞춤 제작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메타버스-3번 질문에 대해)
제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인공지능이 충분한 자격이나 수준을 갖춘다면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여기서 말하는 인공지능은 강인공지능 혹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준의 인공지능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봐도 예전에는 신분이 다른 노예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고, 피부색이 다른 존재가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는데, 신분, 인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학적 분류도 결국 나중에 허물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생물학적 분류가 신분/인종 차이보다 우대되고 영원할 것이라는 근거를 찾기 못했기에 그렇긴 합니다.) 어쩌면 인공지능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에 우리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괜히 우리가 가진 인간의 생물학적 육신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메타버스-5번 질문에 대해)
문득 소설 『기억 전달자』가 떠오르는 질문이었습니다. 뭔가 우리가 현실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거하려고 해도, 하나를 제거했을 때 잇따르는 것들을 전부 고려하지 못하기에 문제가 생가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마다 무엇을 제거하고 무엇을 남겨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다를 것이라는 점이겠죠. 다만 오히려 모두의 합의를 얻기보다 각자 개인별로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맞춤 제작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장연주2021-04-19 22:23
서강민 학우님 재밌는 코멘트 감사합니다!
메타버스 5번 질문에 대한 제 의견을 말해보자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한 가상현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예시처럼 기아나 전쟁은 당연히 없는 것이 좋은 세상이겠지만, 글쎄요, '불행', '슬픔',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것들이 우리 삶에 없다면 그 반대 개념인 행복이나 충만함 등의 감정도 큰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신의 아픔을 아니까 신뢰를 중시하고, 무관심의 쓰라림을 아니까 사랑을 소중히 하는 것처럼요! 결국 부정적인 것들이 하나도 없는 세계는 긍정적인 것들 역시 하나도 없는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메타버스 5번 질문에 대한 제 의견을 말해보자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한 가상현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예시처럼 기아나 전쟁은 당연히 없는 것이 좋은 세상이겠지만, 글쎄요, '불행', '슬픔',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것들이 우리 삶에 없다면 그 반대 개념인 행복이나 충만함 등의 감정도 큰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신의 아픔을 아니까 신뢰를 중시하고, 무관심의 쓰라림을 아니까 사랑을 소중히 하는 것처럼요! 결국 부정적인 것들이 하나도 없는 세계는 긍정적인 것들 역시 하나도 없는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리라2021-04-21 15:46
서강민 학우님이 제시해주신 흥미로운 질문들 덕분에 책을 더 깊이 이해해 볼 기회를 얻은 것 같습니다.
저는 “메타버스”와 관련한 질문 5번과 관련해 제 생각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현실과 똑같거나 혹은 현실 세계의 부정적인 것들이 제거된 가상현실의 구현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해당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우리가 그런 세계를 구현하지 못하고, 구현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역설적으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마치 ‘유토피아’와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아나 전쟁과 같이 ‘선(善)’의 영역과의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사라진다면, 행복이나 평화와 같은 긍정적인 요소가 과연 긍정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요? 또한, 구현해서 인류 모두가 이주한다고 했을 때, 해당 세계를 지탱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존재가 필요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요소에 대해 알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 나름의 권력을 가지고 사회를 재단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선의를 가지고 긍정적인 요소로 세상을 채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가상현실 역시 ‘현실’의 일부분일 뿐, 흔히 ‘완벽해 보이는’ 세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강민 학우님께서는 본인이 던지신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메타버스”와 관련한 질문 5번과 관련해 제 생각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현실과 똑같거나 혹은 현실 세계의 부정적인 것들이 제거된 가상현실의 구현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해당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우리가 그런 세계를 구현하지 못하고, 구현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역설적으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마치 ‘유토피아’와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아나 전쟁과 같이 ‘선(善)’의 영역과의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사라진다면, 행복이나 평화와 같은 긍정적인 요소가 과연 긍정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요? 또한, 구현해서 인류 모두가 이주한다고 했을 때, 해당 세계를 지탱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존재가 필요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요소에 대해 알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 나름의 권력을 가지고 사회를 재단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선의를 가지고 긍정적인 요소로 세상을 채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가상현실 역시 ‘현실’의 일부분일 뿐, 흔히 ‘완벽해 보이는’ 세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강민 학우님께서는 본인이 던지신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손지우2021-04-22 01:45
서강민 학우님의 흥미로운 코멘트 재미있게 읽었고 던지신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며 흥미로운 시간 또한 가질 수 있었습니다 :)
메타버스 - 3번 질문 : 답변 달아주신 박건규 학우님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으나 약간의 첨언을 해보자면, 인공지능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에 인간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위협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었고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중이나, 특히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등의 경우에는 이제 인간이 제어하고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의 수준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기사 등을 본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 인간이 위협을 느낌에 따라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인 박건규 학우님께서 말하신 육신 혹은 아직은 인공지능이 도달하지 못했다는 깊은 감정적 영역들에 있어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메타버스 - 5번 질문 : 박건규 학우님의 답변까지 보고 '개개인의 이상에 맞추어진 각자를 위한 완벽한 가상 세계'가 있다면 선택할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그저 가볍게 답해보자면 그것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률과, 해당 세계에 잔존하기 위해 필요한 현실에서의 재화가 들지 않는다는 조건, 그 내부가 내 변화하는 욕구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해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 그 안에서 존재할 '나'라는 존재에 데이터 삭제 등의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라는 조건 등이 갖추어진다면 현실이 아닌 해당 세계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가 가짜임을 안다면 진짜가 아니라는 허무함이 있지는 않을까?', '만약 현실을 오가며 해당 세계에서 살게 된다면 결국에는 그 가상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현실에서 더 힘들지 않을까?', '그로 인해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우울이 더 심화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 등 또한 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거래소 - 2번 질문 : 평소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 있는 질문이기도 하여 더욱 흥미로웠던 듯 합니다. 인간 각각이 개별성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 이유에 관한 주장은 여러가지가 있으며, 정신적인 부분이 개인의 기억과 경험 등을 근거로 만들어진 사고 체계를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주장 또한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각 개인의 유전 정보, 소위 기질이라고 하는 것 등 다양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했을 때 가정하신 경우처럼 기억을 삽입하고 외형을 성형한다 할지라도 정신적 착란을 줄 수는 있겠으나 온전히 'B가 A이다' 혹은 'B가 A가 되었다' 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외에도 '메타버스 - 4번 질문'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기에 여러 다른 학우님들의 의견 또한 궁금한 주제인 듯 싶습니다. 서강민 학우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한 궁금합니다.
메타버스 - 3번 질문 : 답변 달아주신 박건규 학우님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으나 약간의 첨언을 해보자면, 인공지능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에 인간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위협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었고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중이나, 특히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등의 경우에는 이제 인간이 제어하고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의 수준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기사 등을 본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 인간이 위협을 느낌에 따라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인 박건규 학우님께서 말하신 육신 혹은 아직은 인공지능이 도달하지 못했다는 깊은 감정적 영역들에 있어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메타버스 - 5번 질문 : 박건규 학우님의 답변까지 보고 '개개인의 이상에 맞추어진 각자를 위한 완벽한 가상 세계'가 있다면 선택할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그저 가볍게 답해보자면 그것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률과, 해당 세계에 잔존하기 위해 필요한 현실에서의 재화가 들지 않는다는 조건, 그 내부가 내 변화하는 욕구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해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 그 안에서 존재할 '나'라는 존재에 데이터 삭제 등의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라는 조건 등이 갖추어진다면 현실이 아닌 해당 세계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가 가짜임을 안다면 진짜가 아니라는 허무함이 있지는 않을까?', '만약 현실을 오가며 해당 세계에서 살게 된다면 결국에는 그 가상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현실에서 더 힘들지 않을까?', '그로 인해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우울이 더 심화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 등 또한 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거래소 - 2번 질문 : 평소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 있는 질문이기도 하여 더욱 흥미로웠던 듯 합니다. 인간 각각이 개별성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 이유에 관한 주장은 여러가지가 있으며, 정신적인 부분이 개인의 기억과 경험 등을 근거로 만들어진 사고 체계를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주장 또한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각 개인의 유전 정보, 소위 기질이라고 하는 것 등 다양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했을 때 가정하신 경우처럼 기억을 삽입하고 외형을 성형한다 할지라도 정신적 착란을 줄 수는 있겠으나 온전히 'B가 A이다' 혹은 'B가 A가 되었다' 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외에도 '메타버스 - 4번 질문'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기에 여러 다른 학우님들의 의견 또한 궁금한 주제인 듯 싶습니다. 서강민 학우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한 궁금합니다.
윤재빈2021-04-18 23:11
1. 카카오톡도 메타버스?
책을 읽는 중 카카오톡도 메타버스, 에어비엔비도 메타버스로 표현을 하는 점이 갸우뚱했다.
혹시 메타버스를 잘못 알고 있나 하는 생각에 네이버에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
<메타버스>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유니버스)’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메타)’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메타버스 세계는 그 동안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는데, 현재는 진보된 개념의 용어로서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된다.
<가상현실>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을 말한다. 머리에 장착하는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인 HMD를 활용해 체험할 수 있다.
---------------------------------------------------------------------------------------
사전적 정의와 기존의 나의 이해는 일치하였으나, 꼭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저자가 어떤 맥락에서 메타버스를 사용하고자 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배달의 민족같은 온라인 플랫폼들을 모두 메타버스라고 칭하는 것이 타당한 지 의문이 들었다. 다만 온라인 세계 자체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그것을 명명한 것에 대해서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앞으로 어쩌면 오프라인 공간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는 공간이 메타버스다. 이를 대상화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 메타버스의 가능성이 궁금하다.
메타버스의 미래에 관해 다양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가령 메타버스가 현실이 되면 우리가 사는 오프라인 세계는 그저 다양한 '서버' 중 하나의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직관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그런 상상이긴 하지만,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처럼 현실과 별개로 메타버스 상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만약 그런 세상이 온다면, 사람들은 오프라인을 포함해 다양한 메타버스 중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메타버스를 선택하여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메타버스 내부에서 거래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면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대규모의 자본이 유입되고 자체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최근 등장한 블록체인 기술이 그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도 실제로 Roblox에서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그리 먼 미래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86975&cid=59277&categoryId=59279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32177&cid=43667&categoryId=43667
+) 김상균 교수님이 출연하신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이 있어 공유합니다!
https://youtu.be/7YKdeuGrkW0
책을 읽는 중 카카오톡도 메타버스, 에어비엔비도 메타버스로 표현을 하는 점이 갸우뚱했다.
혹시 메타버스를 잘못 알고 있나 하는 생각에 네이버에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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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유니버스)’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메타)’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메타버스 세계는 그 동안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는데, 현재는 진보된 개념의 용어로서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된다.
<가상현실>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을 말한다. 머리에 장착하는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인 HMD를 활용해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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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정의와 기존의 나의 이해는 일치하였으나, 꼭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저자가 어떤 맥락에서 메타버스를 사용하고자 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배달의 민족같은 온라인 플랫폼들을 모두 메타버스라고 칭하는 것이 타당한 지 의문이 들었다. 다만 온라인 세계 자체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그것을 명명한 것에 대해서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앞으로 어쩌면 오프라인 공간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는 공간이 메타버스다. 이를 대상화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 메타버스의 가능성이 궁금하다.
메타버스의 미래에 관해 다양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가령 메타버스가 현실이 되면 우리가 사는 오프라인 세계는 그저 다양한 '서버' 중 하나의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직관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그런 상상이긴 하지만,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처럼 현실과 별개로 메타버스 상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만약 그런 세상이 온다면, 사람들은 오프라인을 포함해 다양한 메타버스 중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메타버스를 선택하여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메타버스 내부에서 거래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면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대규모의 자본이 유입되고 자체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최근 등장한 블록체인 기술이 그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도 실제로 Roblox에서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그리 먼 미래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86975&cid=59277&categoryId=59279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32177&cid=43667&categoryId=43667
+) 김상균 교수님이 출연하신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이 있어 공유합니다!
https://youtu.be/7YKdeuGrkW0
서강민2021-04-19 01:44
윤재빈 학우님의 의견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메타버스의 정의가 모호한 측면이 있어 혼란스러웠습니다. '온라인과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 메타버스라고 볼 수 있나?'라는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직관적으로 포켓몬고나 마인크래프트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메타버스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적해주신 카카오톡, 배달의민족은 조금 애매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라는 용어의 정의를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최대한 해석을 해보자면, 현실세계를 비슷하게 모방한 가상세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배달의 민족은 현실의 음식점을 가상세계로 모방한 메타버스의 일종이며, 카카오톡은 현실의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가상세계로 모방한 메타버스의 일종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라고 부르기 애매한 이유는, 마인크래프트나 포켓몬고는 3D 공간으로 현실의 공간과 거의 비슷하게 대응될 수 있는데,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정확히 현실세계에 비슷하게 대응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의견 정말 감사합니다!
저 역시 메타버스의 정의가 모호한 측면이 있어 혼란스러웠습니다. '온라인과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 메타버스라고 볼 수 있나?'라는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직관적으로 포켓몬고나 마인크래프트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메타버스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적해주신 카카오톡, 배달의민족은 조금 애매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라는 용어의 정의를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최대한 해석을 해보자면, 현실세계를 비슷하게 모방한 가상세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배달의 민족은 현실의 음식점을 가상세계로 모방한 메타버스의 일종이며, 카카오톡은 현실의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가상세계로 모방한 메타버스의 일종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라고 부르기 애매한 이유는, 마인크래프트나 포켓몬고는 3D 공간으로 현실의 공간과 거의 비슷하게 대응될 수 있는데,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정확히 현실세계에 비슷하게 대응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의견 정말 감사합니다!
이재용2021-04-21 21:31
글 매우 흥미롭게 읽고 특히 공유해주신 유튜브 또한 재밌게 봤습니다. 공유 감사합니다!
넓은 범위의 메타버스 정의에 따르면, 어떻게 보면 이렇게 댓글을 남기고 영상을 공유하는 이 자리도 하나의 메타버스가 되겠네요. 저 또한 메타버스를 '가상세계'에 국한되어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메타버스의 의미를 이렇게까지 확장하여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새 시대의 한 부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보니 그걸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번 토론에선 너무 광범위한 메타버스가 아닌 서강민 학우께서 언급한 '현실세계를 비슷하게 모방한 가상세계'에 대해서만 토론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메타버스를 그저 하나의 기술이 아닌 '신대륙'으로 표현하신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각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은데, 과연 미래에 재빈님 말씀대로 메타버스가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는, 또 하나의 현실이 된다면 과연 우리는 진짜 현실과 메타버스 공간 중 어느 곳에 집중해서 살아가게 될지, 어느 곳을 선택해서 살게 될지 궁금합니다.
넓은 범위의 메타버스 정의에 따르면, 어떻게 보면 이렇게 댓글을 남기고 영상을 공유하는 이 자리도 하나의 메타버스가 되겠네요. 저 또한 메타버스를 '가상세계'에 국한되어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메타버스의 의미를 이렇게까지 확장하여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새 시대의 한 부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보니 그걸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번 토론에선 너무 광범위한 메타버스가 아닌 서강민 학우께서 언급한 '현실세계를 비슷하게 모방한 가상세계'에 대해서만 토론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메타버스를 그저 하나의 기술이 아닌 '신대륙'으로 표현하신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각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은데, 과연 미래에 재빈님 말씀대로 메타버스가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는, 또 하나의 현실이 된다면 과연 우리는 진짜 현실과 메타버스 공간 중 어느 곳에 집중해서 살아가게 될지, 어느 곳을 선택해서 살게 될지 궁금합니다.
김재민2021-04-21 22:00
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 역시 생각보다 교수님께서 메타버스의 범주를 지나치게 넓게 잡은 것은 아닌지 싶었습니다. 사실상 모든 온라인 활동을 하나의 가상공간이자, 멀티페르소나가 기능하는 메타버스로 상정하신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앞서 서강민 학우가 한 지적과 유사한 맥락인 것 같아 이만 줄이겠습니다.
전 특히 2.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고 싶습니다. 협소한 의미에서 하나의 ‘서버’로 기능하는 메타버스 속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이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하여 현실과 긴밀히 관계된다면 어떤 사회 양상이 흘러갈지 궁금했습니다. 재빈님은 또다른 서버로서의 메타버스가 현실에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대등한 가치를 지닌 하나의 세계로서 상호간 침범할 수 없는 바운더리가 생기는 데 까지 발전할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특히 2.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고 싶습니다. 협소한 의미에서 하나의 ‘서버’로 기능하는 메타버스 속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이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하여 현실과 긴밀히 관계된다면 어떤 사회 양상이 흘러갈지 궁금했습니다. 재빈님은 또다른 서버로서의 메타버스가 현실에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대등한 가치를 지닌 하나의 세계로서 상호간 침범할 수 없는 바운더리가 생기는 데 까지 발전할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재빈2021-04-21 23:18
@김재민
김재민 학우님 질문 감사합니다.
당연하게도 메타버스는 오프라인 상에서 물리적으로 운영되는 서버이기 때문에, 둘 간의 관계는 종속적입니다.
그러나 종속성의 크기는 기술 발달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이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이 발달한 날이긴 하지만 여전히 메타버스 상에서 생활하기에는
인간이 재화를 생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합니다.
이에 저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발달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술이 발달해야 하고, 메타버스가 항상 유지될 수 있도록 전력 공급이 원활해야 할 것(및 기술의 안정성)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오늘날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 공간을 어느 정도는 경계를 느끼지 않듯이,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단지 게임 내 서버를 넘나들듯이 생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왠지 오프라인 서버는 만렙을 찍고 메타버스 서버에 부캐를 키우는 것 같네요.)
당연하게도 메타버스는 오프라인 상에서 물리적으로 운영되는 서버이기 때문에, 둘 간의 관계는 종속적입니다.
그러나 종속성의 크기는 기술 발달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이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이 발달한 날이긴 하지만 여전히 메타버스 상에서 생활하기에는
인간이 재화를 생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합니다.
이에 저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발달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술이 발달해야 하고, 메타버스가 항상 유지될 수 있도록 전력 공급이 원활해야 할 것(및 기술의 안정성)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오늘날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 공간을 어느 정도는 경계를 느끼지 않듯이,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단지 게임 내 서버를 넘나들듯이 생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왠지 오프라인 서버는 만렙을 찍고 메타버스 서버에 부캐를 키우는 것 같네요.)
박건규2021-04-19 02:21
나는 한 사람에게 여러 이름이 부여되는 사회가 올 수 있고, 이것이 유익한 측면이 상당히 있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 메타버스의 도래와 연관지어 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싶어 김상균 교수처럼 내 상상을 여러분들과 공유해보고 싶다.
내가 한 사람의 여러 이름을 옹호하는 첫째 이유로는 우선 개인이 단순히 ‘한 사람’으로 규정되기 힘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상균 교수가 113-114쪽에서 멀티 페르소나가 주목받는 현실을 소개한 것처럼, 사람들은 여러 공간에서 다른 성향을 보일 수 있다. 나는 여기에 더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후쿠야마나 비트겐슈타인처럼 학자가 본인의 학술적 논의를 스스로 번복하는 경우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전후를 구분하여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면 그 단절이 더 명확하지 않을까? (사실상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전기 연구’와 ‘후기 연구’라는 두 이름을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도 같다.) 물론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자신의 학문적 경력에 단절을 초래하므로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여성 학자들이 있는 것처럼 이러한 단절이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자신의 이전 경력과 논의들과 구분하여 새로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할 때는 새 이름을 갖는 것이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학자는 아니더라도, 조앤 K.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추리 소설을 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여러 이름을 가지는 것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김상균 교수가 348쪽에서 밴을 당하고도 쉽게 재가입이 가능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듯, 이전 시간이나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름을 썼다고 새로운 이름을 짓기만 하면 내가 한 잘못에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둘째로 내가 여러 이름의 사용을 옹호하는 이유는 특히 익명 사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때, 그 사람의 개인적 정보만 가지고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발화나 결과물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균 교수가 제시한 단편 『핑크빛 평등』에서 아바타들은 차별과 불평등을 온전히 없애기 위해 외양을 전부 통일하였고, 새로 짓는 이름에서도 개인적인 정보는 드러나지 않게 되어있다. 왜 그런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혐오를 멈추기 위해 모든 인간들이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회가 되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나는 차이가 존재하는 이상 인간 사회에서 차별을 본질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도 『핑크빛 평등』의 아바타들처럼 혐오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거부와 혐오를 근절할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보수를 지지하므로 진보 정당의 국회의원 말은 전부 무시하거나, 일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모든 일본인의 창작물을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논리적 오류 중 하나인 인신공격의 오류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 모든 이들이 그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가명을 사용한다고 하면, 우리는 ‘표지만을 보고 거르지’ 않고, 적어도 ‘내용물은 보고 거를 것이다’. 김상균 교수가 359쪽에 소개한 ‘후렌드’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상대의 신상정보를 따지지 않고 사귀고 소통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데, 거부나 혐오를 줄이기 위해 익명과 가명을 적극 활용한다면 더욱 유용할 것이다.
다만 익명의 사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익명의 사용이 과연 모든 혐오를 과연 근절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극단적으로 생각해, 익명을 지을 때 의미가 있는 단어(PC 측면에서 꼬투리가 잡힐 만한 단어 등)나 형식(특정 민족의 언어 등)을 택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익명의 사용으로 우리가 ‘표지’가 아닌 ‘내용물’을 보고 거른다 해도 편협한 누군가는 그 사람이 한 말의 일부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전체 논의를 듣지도 않을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말을 할 때마다 익명을 달리 사용하지 않는 이상 신상을 숨긴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나아가 위에서 말한 책임의 문제와 신분세탁의 문제를 여기서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인신공격의 오류를 완전히 피하려면 미래인들은 언어의 의미와 형식에서 자유로운, 난수로 된 익명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혐오하는 사람은 없다고 전제해야 할 것이고, 수비학자들과 음모론자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이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혐오와 거부를 근절하고자 음악가가 난수로 익명을 짓고 가사도 없는 노래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 [1]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해볼 때, 과연 우리는 메타버스 사회 속에서 자연스레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인가? 만일 한 사람이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게 되는 사회가 온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모두가 외양적으로 동일해져 평등의 가치를 구현한 『핑크빛 평등』의 아바타들은 과연 이상적인 대안일까?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미주
[1]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상적인 사례’에 가까운 음악가를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999999999’라는 익명을 사용하는 음악가는 아무런 가사도 없고 제목도 ‘X0004000X’처럼 의미를 찾기 힘든 음악을 만든다. 뮤직비디오까지 빈 화면이었으면 완벽히 ‘순수한’ 음악이 되었을 텐데 그 점은 아쉽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5fE7c5mlioY
내가 한 사람의 여러 이름을 옹호하는 첫째 이유로는 우선 개인이 단순히 ‘한 사람’으로 규정되기 힘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상균 교수가 113-114쪽에서 멀티 페르소나가 주목받는 현실을 소개한 것처럼, 사람들은 여러 공간에서 다른 성향을 보일 수 있다. 나는 여기에 더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후쿠야마나 비트겐슈타인처럼 학자가 본인의 학술적 논의를 스스로 번복하는 경우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전후를 구분하여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면 그 단절이 더 명확하지 않을까? (사실상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전기 연구’와 ‘후기 연구’라는 두 이름을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도 같다.) 물론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자신의 학문적 경력에 단절을 초래하므로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여성 학자들이 있는 것처럼 이러한 단절이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자신의 이전 경력과 논의들과 구분하여 새로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할 때는 새 이름을 갖는 것이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학자는 아니더라도, 조앤 K.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추리 소설을 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여러 이름을 가지는 것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김상균 교수가 348쪽에서 밴을 당하고도 쉽게 재가입이 가능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듯, 이전 시간이나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름을 썼다고 새로운 이름을 짓기만 하면 내가 한 잘못에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둘째로 내가 여러 이름의 사용을 옹호하는 이유는 특히 익명 사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때, 그 사람의 개인적 정보만 가지고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발화나 결과물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균 교수가 제시한 단편 『핑크빛 평등』에서 아바타들은 차별과 불평등을 온전히 없애기 위해 외양을 전부 통일하였고, 새로 짓는 이름에서도 개인적인 정보는 드러나지 않게 되어있다. 왜 그런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혐오를 멈추기 위해 모든 인간들이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회가 되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나는 차이가 존재하는 이상 인간 사회에서 차별을 본질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도 『핑크빛 평등』의 아바타들처럼 혐오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거부와 혐오를 근절할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보수를 지지하므로 진보 정당의 국회의원 말은 전부 무시하거나, 일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모든 일본인의 창작물을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논리적 오류 중 하나인 인신공격의 오류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 모든 이들이 그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가명을 사용한다고 하면, 우리는 ‘표지만을 보고 거르지’ 않고, 적어도 ‘내용물은 보고 거를 것이다’. 김상균 교수가 359쪽에 소개한 ‘후렌드’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상대의 신상정보를 따지지 않고 사귀고 소통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데, 거부나 혐오를 줄이기 위해 익명과 가명을 적극 활용한다면 더욱 유용할 것이다.
다만 익명의 사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익명의 사용이 과연 모든 혐오를 과연 근절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극단적으로 생각해, 익명을 지을 때 의미가 있는 단어(PC 측면에서 꼬투리가 잡힐 만한 단어 등)나 형식(특정 민족의 언어 등)을 택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익명의 사용으로 우리가 ‘표지’가 아닌 ‘내용물’을 보고 거른다 해도 편협한 누군가는 그 사람이 한 말의 일부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전체 논의를 듣지도 않을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말을 할 때마다 익명을 달리 사용하지 않는 이상 신상을 숨긴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나아가 위에서 말한 책임의 문제와 신분세탁의 문제를 여기서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인신공격의 오류를 완전히 피하려면 미래인들은 언어의 의미와 형식에서 자유로운, 난수로 된 익명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혐오하는 사람은 없다고 전제해야 할 것이고, 수비학자들과 음모론자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이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혐오와 거부를 근절하고자 음악가가 난수로 익명을 짓고 가사도 없는 노래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 [1]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해볼 때, 과연 우리는 메타버스 사회 속에서 자연스레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인가? 만일 한 사람이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게 되는 사회가 온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모두가 외양적으로 동일해져 평등의 가치를 구현한 『핑크빛 평등』의 아바타들은 과연 이상적인 대안일까?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미주
[1]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상적인 사례’에 가까운 음악가를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999999999’라는 익명을 사용하는 음악가는 아무런 가사도 없고 제목도 ‘X0004000X’처럼 의미를 찾기 힘든 음악을 만든다. 뮤직비디오까지 빈 화면이었으면 완벽히 ‘순수한’ 음악이 되었을 텐데 그 점은 아쉽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5fE7c5mlioY
이태민2021-04-19 22:40
박건규 학우님,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러 특성을 '이름'으로 발현하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견해가 흥미롭습니다. 저 역시 개인의 고유한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람을 기억할 때 그 사람의 이름부터 담아두려 하는 편입니다. 각종 아바타를 키울 수 있는 메타버스에서 '명명'의 행위는 중요한 아젠다임이 분명합니다.
말씀해주신 단편 『핑크빛 평등』을 읽으며, 저는 이를 평등의 역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등의 진정한 정의는 개인들 각각의 특성이 똑같이 존중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개인이 똑같은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핑크빛 평등』 에 제시된 세계에는 '평등'을 위해 개인의 고유성이 무시된 채로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다른 것이 바로 '이름'입니다. 다만 '레슬리'가 '다은'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이름조차 '성별을 추측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개명'해야합니다. 이 세계에서 명명 행위를 할 때만큼은 개인이 드러내고싶은 고유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전에 모든 가치들이 똑같이 존중받을 수 있는 '평등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지만요.
참신한 관점 감사합니다 !
말씀해주신 단편 『핑크빛 평등』을 읽으며, 저는 이를 평등의 역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등의 진정한 정의는 개인들 각각의 특성이 똑같이 존중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개인이 똑같은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핑크빛 평등』 에 제시된 세계에는 '평등'을 위해 개인의 고유성이 무시된 채로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다른 것이 바로 '이름'입니다. 다만 '레슬리'가 '다은'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이름조차 '성별을 추측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개명'해야합니다. 이 세계에서 명명 행위를 할 때만큼은 개인이 드러내고싶은 고유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전에 모든 가치들이 똑같이 존중받을 수 있는 '평등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지만요.
참신한 관점 감사합니다 !
장연주2021-04-19 22:14
내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SNS, 게임, VR 등이 메타버스라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구성하는 것들이고,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고 생각한 나 역시 이 우주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중임을 깨달았다. 이 책은 메타버스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각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구조로 돼 있는데, 가장 생각해볼 게 많았던 점은 호모 루덴스에 대한 것이었다. 책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편하게 전해주는 요소’로서 메타버스의 편리함을 설명하는데,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좋은 점인지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얕은 정보를 대량으로 소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개개인은 정보를 습득하는 데에 있어 오히려 주도권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짜뉴스 논란, 유튜브의 편향된 알고리즘 등 이미 여러 번 제기된 문제들로 이어진다.
그래서 난 이런 문제들보다는 살짝 다른 결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데, 그건 우리의 놀이 개발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점이다. 가령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미끄럼틀 위의 공간을 우리 편의 아지트로 할지, 적군의 성으로 할지, 술래가 올라오지 못하는 곳으로 할지 등을 주체적으로 정하면서 놀이의 규칙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게임은 이미 각각의 공간에 의미와 역할이 부여돼 있는 상태로 사람들에게 정해진 미션을 부여하기 때문에 규칙을 따를 뿐, 놀이 과정을 직접 개발할 일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일상 공간과 놀이를 위한 공간이 점점 분리돼 간다는 느낌도 든다. 가령 목욕탕이나 운동장, 집 마루 등의 일상 공간에서의 놀이는 사라지고 놀이공원, PC방, 방탈출카페 등 놀이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 점차 많아지면서 일상과 놀이의 분리가 심화돼 가는 것 같다. 놀이를 위한 공간이 너무 많아지게 되면 앞서 서술한 문제와 비슷한 맥락에서, 개인의 적극적 개입이 사라지기에 개인이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어지고, 창의적인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방향적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호모 루덴스란 단순히 놀 거리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 놀이를 적극 개발하여 주체적으로 즐기는 존재 아닐까?
그래서 난 이런 문제들보다는 살짝 다른 결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데, 그건 우리의 놀이 개발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점이다. 가령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미끄럼틀 위의 공간을 우리 편의 아지트로 할지, 적군의 성으로 할지, 술래가 올라오지 못하는 곳으로 할지 등을 주체적으로 정하면서 놀이의 규칙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게임은 이미 각각의 공간에 의미와 역할이 부여돼 있는 상태로 사람들에게 정해진 미션을 부여하기 때문에 규칙을 따를 뿐, 놀이 과정을 직접 개발할 일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일상 공간과 놀이를 위한 공간이 점점 분리돼 간다는 느낌도 든다. 가령 목욕탕이나 운동장, 집 마루 등의 일상 공간에서의 놀이는 사라지고 놀이공원, PC방, 방탈출카페 등 놀이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 점차 많아지면서 일상과 놀이의 분리가 심화돼 가는 것 같다. 놀이를 위한 공간이 너무 많아지게 되면 앞서 서술한 문제와 비슷한 맥락에서, 개인의 적극적 개입이 사라지기에 개인이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어지고, 창의적인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방향적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호모 루덴스란 단순히 놀 거리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 놀이를 적극 개발하여 주체적으로 즐기는 존재 아닐까?
강다솔2021-04-21 16:26
안녕하세요 연주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연주님처럼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디지털 세계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또한 연주님께서 제기해주신 문제에도 공감합니다. 디지털 세계가 주는 이익, 편리성 그것이 과연 이익이 될 것인가? 라는 부분은 정보 접근의 편리성을 더불어 방대한 정보 축적,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욕망에 대한 대안 세계 제시 등 여러 부분에 포괄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연주님께서 제시해주신 호모 루덴스의 정의도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놀이를 즐기는 존재로서 인간이 아니라 놀이를 주체적으로 개발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진정한 호모 루덴스이겠지요! 그런데 놀이 능력의 개발 저하는 비단 디지털 세계 때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김상균 교수님께서 마인크래프트 등 참여자들이 단순히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 만이 아니라 직접 도구나 세계 마을 등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창의성의 발현이 오히려 현실세계보다도 유용한 메타버스를 많이 제시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물리적 세계에서도 놀이 능력이 저하되는 경우는 많고, 연주님께서도 그런 예시를 많이 짚어주셨습니다.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현실 세계에서 개방된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너무 부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개방된 자연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강조하신 유현준 교수님의 논의가 많이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생각해보면 실내에서 놀 때는 뭔가 도구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한정적인 반면, 밖에 나가면 술래잡기를 하든, 나무를 타든, 돌을 쌓으며 놀든 주변이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놀 수 있고 그런 것들은 또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창의적인 놀이의 재료를 제공해줍니다.
또, 주체적으로 규칙을 만들어나가는 호모 루덴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기존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용인해주는 문화인 것 같습니다. 이런 문화가 현실에서보다 가상 세계에서 더 용이하게 때문에 또한 가상세계가 인간의 놀이 능력 개발에 긍적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런 문화가 가상세계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실 세계로 나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인 것 같습니다!
또, 연주님께서 제시해주신 호모 루덴스의 정의도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놀이를 즐기는 존재로서 인간이 아니라 놀이를 주체적으로 개발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진정한 호모 루덴스이겠지요! 그런데 놀이 능력의 개발 저하는 비단 디지털 세계 때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김상균 교수님께서 마인크래프트 등 참여자들이 단순히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 만이 아니라 직접 도구나 세계 마을 등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창의성의 발현이 오히려 현실세계보다도 유용한 메타버스를 많이 제시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물리적 세계에서도 놀이 능력이 저하되는 경우는 많고, 연주님께서도 그런 예시를 많이 짚어주셨습니다.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현실 세계에서 개방된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너무 부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개방된 자연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강조하신 유현준 교수님의 논의가 많이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생각해보면 실내에서 놀 때는 뭔가 도구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한정적인 반면, 밖에 나가면 술래잡기를 하든, 나무를 타든, 돌을 쌓으며 놀든 주변이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놀 수 있고 그런 것들은 또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창의적인 놀이의 재료를 제공해줍니다.
또, 주체적으로 규칙을 만들어나가는 호모 루덴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기존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용인해주는 문화인 것 같습니다. 이런 문화가 현실에서보다 가상 세계에서 더 용이하게 때문에 또한 가상세계가 인간의 놀이 능력 개발에 긍적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런 문화가 가상세계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실 세계로 나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인 것 같습니다!
강혜진2021-04-21 23:21
연주님이 짚어주신 문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더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만 주목해서 읽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놀이를 만들어내는 자원과 공간, 그것을 채우는 상상력에는 더 제약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어렸을 때 떨어진 잎들을 모아 음식을 만들어내던 사소한 순간들이 생각나는데 그때 더하게 되는 상상과, 내가 만들어내는 걸 가상의 공간에 완전히 구현해낼 수 있을 때 내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는 다를 것 같아요. 놀이를 위한 공간이 분리되고 있는 지점도 지적해주신 대로 그러한 한계가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 더 다양한 공간을 가상세계 속에서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간 자체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야외를 자유롭게 뛰어놀며 만들어내는 것과 가상세계 속 아바타가 뛰어다니며 찾아내는 것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또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험이 많기도 한 것 같아서요! 마지막 부분에는 호모 루덴스의 개념에서 놀이에 참여하는 태도를 짚어주셨는데, 제 생각에도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은 목적 없는 유희의 과정 속에 생겨나는 창의력을 놓고 생겨날 수 없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태민2021-04-19 22:23
이 책은 메타버스에 대해 개괄하고 있다. 메타버스로서의 이행, 4가지 유형, 개척 방향, 문제점을 다룬다. 내용의 깊이 면에 있어서 대중서와 전문서의 적절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현실의 사례들에 접목되어 공상이 주는 재미와 지식이 주는 지적 성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메타버스는 X세대가 제시했고, Y세대가 개척했으며, 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현 인류는 이미 메타버스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의식적, 무의석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메타버스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자, 앞으로 필연히 조우하게 될 미래의 이야기이다. 4가지 테마로 나뉘어진 메타버스의 유형은 이미 삶의 핵심으로 자리잡아 있다. 아날로그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된 것이 현재의 인간이고, 우리 사회이며, 내 모습이다. 메타버스의 사례들을 접하며, 책의 흐름대로 메타버스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가 없는 사회를 상상해보았다. 그 상상은 불편을 넘어 불합리를 느끼게 했다.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NPC의 인격 문제였다. 최근 AI, 로봇의 발달로 전자인격의 도입이 화두이다. 이들에게 인격을 부여해 인간과 같은 수준의 권리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우리는 공산품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내 옆에 놓인 필통에 인격을 부여해 필통을 거칠게 다루는 것은 범죄라는 발상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로봇과 AI, 책에 제시된 NPC는 이 필통과 무엇이 다른가? 이들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똑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인데, 우리는 '전자'인격만 이야기하고 있다. 필통에는 인격이 없는가? 차이점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느냐의 여부인 듯하다. 로봇, AI, NPC는 스스로 움직이는 반면, 필통은 그렇지 못하다. 혹은 감정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로봇 등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조차 인간이 설계한 부분이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로봇처럼 말이다. 전자인격은 이런 근원적인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의 도입부터 실행, 정도, 범위 등은 첨예한 대립을 예고할 수밖에 없다.
학우분들과 고민하고 싶은 부분은 다음이다. 호모 데우스인 인간은 과연 메타버스에서 유토피아를 구축할 수 있을까? 본 책의 뒷부분에서는 메타버스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들이 등장하고, <기억 거래소>에서의 헤븐 서버에는 하데스(지옥)가 등장한다. 무엇이든 가능한 이 세계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 마땅한가? 헤븐 서버에서 L의 어머니를 가둔 '초기 설립자'들이 진정 이 세계를 관장하는 '데우스'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호모'가 되는 것일까. 메타버스에서 진정한 유토피아를 구축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유토피아를 이루어야하며 또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진심으로 궁금한 점이 있다. <기억 거래소>는 픽션일까, 팩션일까. 어느 부분까지가 사실일까
메타버스는 X세대가 제시했고, Y세대가 개척했으며, 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현 인류는 이미 메타버스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의식적, 무의석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메타버스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자, 앞으로 필연히 조우하게 될 미래의 이야기이다. 4가지 테마로 나뉘어진 메타버스의 유형은 이미 삶의 핵심으로 자리잡아 있다. 아날로그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된 것이 현재의 인간이고, 우리 사회이며, 내 모습이다. 메타버스의 사례들을 접하며, 책의 흐름대로 메타버스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가 없는 사회를 상상해보았다. 그 상상은 불편을 넘어 불합리를 느끼게 했다.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NPC의 인격 문제였다. 최근 AI, 로봇의 발달로 전자인격의 도입이 화두이다. 이들에게 인격을 부여해 인간과 같은 수준의 권리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우리는 공산품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내 옆에 놓인 필통에 인격을 부여해 필통을 거칠게 다루는 것은 범죄라는 발상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로봇과 AI, 책에 제시된 NPC는 이 필통과 무엇이 다른가? 이들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똑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인데, 우리는 '전자'인격만 이야기하고 있다. 필통에는 인격이 없는가? 차이점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느냐의 여부인 듯하다. 로봇, AI, NPC는 스스로 움직이는 반면, 필통은 그렇지 못하다. 혹은 감정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로봇 등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조차 인간이 설계한 부분이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로봇처럼 말이다. 전자인격은 이런 근원적인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의 도입부터 실행, 정도, 범위 등은 첨예한 대립을 예고할 수밖에 없다.
학우분들과 고민하고 싶은 부분은 다음이다. 호모 데우스인 인간은 과연 메타버스에서 유토피아를 구축할 수 있을까? 본 책의 뒷부분에서는 메타버스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들이 등장하고, <기억 거래소>에서의 헤븐 서버에는 하데스(지옥)가 등장한다. 무엇이든 가능한 이 세계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 마땅한가? 헤븐 서버에서 L의 어머니를 가둔 '초기 설립자'들이 진정 이 세계를 관장하는 '데우스'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호모'가 되는 것일까. 메타버스에서 진정한 유토피아를 구축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유토피아를 이루어야하며 또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진심으로 궁금한 점이 있다. <기억 거래소>는 픽션일까, 팩션일까. 어느 부분까지가 사실일까
채수형2021-04-21 18:33
안녕하세요 태민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태민님과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AI에게줘야하는 주권성의 문제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책 호모데우스에서는 '신탁에서 주권으로'라는 챕터에서, 우리가 AI에게 신탁을 맡겨 도움을 얻었던 정도의 수준이었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AI스스로가 주권을 가지고 자기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AI가 갖고있는 그 주권성, 즉 태민님 댓글에서는 NPC의 인격과 관련해서 명확한 규제나 범위를 설계해 놓아야, AI 및 알고리즘이 내재되어 있을 미래 사회의 다양한 메타버스 공간의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거치고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고 나서야만, 다양한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미래의 메타버스가 유토피아를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태민님과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AI에게줘야하는 주권성의 문제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책 호모데우스에서는 '신탁에서 주권으로'라는 챕터에서, 우리가 AI에게 신탁을 맡겨 도움을 얻었던 정도의 수준이었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AI스스로가 주권을 가지고 자기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AI가 갖고있는 그 주권성, 즉 태민님 댓글에서는 NPC의 인격과 관련해서 명확한 규제나 범위를 설계해 놓아야, AI 및 알고리즘이 내재되어 있을 미래 사회의 다양한 메타버스 공간의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거치고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고 나서야만, 다양한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미래의 메타버스가 유토피아를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재민2021-04-20 00:25
김상균 교수님의 저서 <메타버스>는 현 시대 우리가 볼 수 있는 수 많은 메타버스의 논의에 관한 훌륭한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느낀 점을 정리해보자면, 우선 생각보다 메타버스 개념이 정말 광활한 개념임을 깨달았습니다. 작게는 휴대폰과 우리 사이의 소통도 메타버스고, 크게는 기술과 세계 차원의 연결이 하나의 메타버스 개념을 구성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저는 지난 2월, “ClubHouse”라는 새로운 메타버스 속에서 정말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1월 말에 가입해서 약 한달 동안 하루에 8시간 이상 클럽하우스에 빠져 살았어습니다. 그 경험 속에서,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 다시금 연결되고 소통할 뿐 아니라 정말로 새롭고 소통할 기회조차 없던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여전히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클럽하우스라는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인스타그램 등 SNS를 연결시켜둠으로써 우리의 말과 우리의 지위에 어느 정도 authenticity(진실성)을 부여하고, 그것이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 더 깊은 수준의 유대와 신뢰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볼점은, SNS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기만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메타버스란 기실 ‘진실과 허위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그 사이에 적당한 긴장이 부조화를 일으키는 경우 우리는 신뢰를 잃거나 흥미를 잃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어느 정도의 “거짓말” 혹은 “자기꾸밈”이 관습적으로 허용되는지, 메타버스 이용자끼리 실천적인 맥락에서 탐구해야 할 지점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한편으론 현실 역시 정확히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다는 점에서 제 견해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만, 한 번도 현실에서 마주하지 않은 사람과 처움 조우할 때 서로에게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진실성과 허위”에 대한 인정 한계치는, 현실에서 만난 우리 사이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도구적 메타버스(가상공간)의 실천 가능성과 정당성>
메타버스의 발전 단계를 인공지능과 비슷하게 선형적으로 구상해본다면, 아직 우리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기술과 담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메타버스는 현실을 위한 “실험과 체험의 장”으로서 도구적인 기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도구적인 메타버스의 효용은 그렇다면 무엇일지 한 번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메타버스의 논의가 너무 복잡다변하다보니, 지금의 논의는 가상공간으로서의 메타버스에 한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실에서 특정 정책이나 기술을 도입하기 전, 일종의 실험 등을 위해 가상공간을 도구적 메타버스로 활용하는 것에 우리는 그닥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도구적 메타버스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할지 사실 생각해보면 복잡한 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년에 단 하루, 살인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세상에 대한 영화, The Purge(2018)을 들어보셨습니까? 만약 현실의 법규나 사회규범과 완전히 유리된 가상세계를 구상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메타버스를 마구잡이로 찍어낸다면, 그 사회는 정당화될까요? 그 메타버스에 개입하는 현실세계의 우리에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이 모든 논의를 한 마디로 종합하자면, 메타버스가 현실세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도구적 수단이자 놀이공간으로서 활용되는 것에 그쳐야할까요, 아니면 미래에 그것과 대등한 중요성을 지니는 동등한 공간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간단히 느낀 점을 정리해보자면, 우선 생각보다 메타버스 개념이 정말 광활한 개념임을 깨달았습니다. 작게는 휴대폰과 우리 사이의 소통도 메타버스고, 크게는 기술과 세계 차원의 연결이 하나의 메타버스 개념을 구성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저는 지난 2월, “ClubHouse”라는 새로운 메타버스 속에서 정말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1월 말에 가입해서 약 한달 동안 하루에 8시간 이상 클럽하우스에 빠져 살았어습니다. 그 경험 속에서,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 다시금 연결되고 소통할 뿐 아니라 정말로 새롭고 소통할 기회조차 없던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여전히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클럽하우스라는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인스타그램 등 SNS를 연결시켜둠으로써 우리의 말과 우리의 지위에 어느 정도 authenticity(진실성)을 부여하고, 그것이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 더 깊은 수준의 유대와 신뢰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볼점은, SNS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기만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메타버스란 기실 ‘진실과 허위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그 사이에 적당한 긴장이 부조화를 일으키는 경우 우리는 신뢰를 잃거나 흥미를 잃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어느 정도의 “거짓말” 혹은 “자기꾸밈”이 관습적으로 허용되는지, 메타버스 이용자끼리 실천적인 맥락에서 탐구해야 할 지점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한편으론 현실 역시 정확히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다는 점에서 제 견해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만, 한 번도 현실에서 마주하지 않은 사람과 처움 조우할 때 서로에게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진실성과 허위”에 대한 인정 한계치는, 현실에서 만난 우리 사이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도구적 메타버스(가상공간)의 실천 가능성과 정당성>
메타버스의 발전 단계를 인공지능과 비슷하게 선형적으로 구상해본다면, 아직 우리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기술과 담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메타버스는 현실을 위한 “실험과 체험의 장”으로서 도구적인 기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도구적인 메타버스의 효용은 그렇다면 무엇일지 한 번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메타버스의 논의가 너무 복잡다변하다보니, 지금의 논의는 가상공간으로서의 메타버스에 한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실에서 특정 정책이나 기술을 도입하기 전, 일종의 실험 등을 위해 가상공간을 도구적 메타버스로 활용하는 것에 우리는 그닥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도구적 메타버스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할지 사실 생각해보면 복잡한 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년에 단 하루, 살인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세상에 대한 영화, The Purge(2018)을 들어보셨습니까? 만약 현실의 법규나 사회규범과 완전히 유리된 가상세계를 구상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메타버스를 마구잡이로 찍어낸다면, 그 사회는 정당화될까요? 그 메타버스에 개입하는 현실세계의 우리에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이 모든 논의를 한 마디로 종합하자면, 메타버스가 현실세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도구적 수단이자 놀이공간으로서 활용되는 것에 그쳐야할까요, 아니면 미래에 그것과 대등한 중요성을 지니는 동등한 공간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최서원2021-04-20 20:49
안녕하세요. 재민님! 재민님이 던진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해본 생각을 나누고 싶어 댓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메타버스를 ‘놀이공간’이나 ‘도구적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현실과 동등한 공간으로 지위를 인정받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인터넷 채팅이나 sns에서 현실세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만나, 가까워지고, 관계를 맺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현실의 친구와 온라인의 친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던 기성세대들처럼, 저희 역시도 메타버스는 현실과 어느정도는 동떨어진, 현실보다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추후에는 메타버스의 중요성이 현실을 뛰어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다만 이렇게 메타버스가 현실과 동등한 지위를 지니게 되는 데 비해 우리의 인식이 그 단계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메타버스 내에서의 규율을 세우지 못해 여러 문제가 유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강다솔2021-04-20 15:44
우선 고백하자면 나는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zoom 등 이미 메타버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세계를 그리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디지털 세계가 낯선 윗세대들의 이야기(‘텔레비전은 바보상자’나 ‘게임을 하면 폭력성이 높아진다’ 등등)를 들으면서 그걸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다양한 메타버스를 통해 긍정적 효과를 경험할 기회를 차단해버리지 않았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에게 김상균 교수님의 『메타버스』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많이 보여준,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특히 관계, 소통적 측면에서 현실세계의 소통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춰주고, 이것이 익명성이라는 미명 하의 폭력이 아니라 풍부한 학문적 논의, 인간적 관계의 발달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구체적 사례를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코로나 19를 통해 메타버스의 확장은 가속화되었으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된 것 같은데, 그런 만큼 메타버스의 긍정적 가능성들을 정확히 알아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메타버스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인데 그럼 그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며,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디지털 세계가 확장되면서 논란이 되었던 ‘잊혀질 권리’에 대해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현실세계에서는 쉽게 망각되는 것들이 디지털 세계에서는 정보로 남아 망각을 허용하지 않고, 그것이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속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며 생겨난 권리다. 잊혀지기를 원하는 정보와 데이터들이 그 가상세계를 사용하는 타인들에게 검색, 노출이 되지 않게 함으로써 부분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긴 하지만, 가상세계를 만들고 소유한 이들에게 여전히 그 데이터와 정보는 남아있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의 정보를 가지고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투표 여론에 영향을 주려고 시도한 사례 등을 보면 정보와 데이터가 얼마나 강력한 권력, 조작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1]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데이터들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할 것을 요구해야 할까? 그런다고 해도,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정보를 가진다면 그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김상균 교수가 제시한 브레인 투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등장하는 것 같은데, 정말 어려운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학우님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1] 지야 통, 『리얼리티 버블』, 코쿤북스, 2020, 358쪽.
다만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메타버스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인데 그럼 그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며,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디지털 세계가 확장되면서 논란이 되었던 ‘잊혀질 권리’에 대해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현실세계에서는 쉽게 망각되는 것들이 디지털 세계에서는 정보로 남아 망각을 허용하지 않고, 그것이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속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며 생겨난 권리다. 잊혀지기를 원하는 정보와 데이터들이 그 가상세계를 사용하는 타인들에게 검색, 노출이 되지 않게 함으로써 부분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긴 하지만, 가상세계를 만들고 소유한 이들에게 여전히 그 데이터와 정보는 남아있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의 정보를 가지고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투표 여론에 영향을 주려고 시도한 사례 등을 보면 정보와 데이터가 얼마나 강력한 권력, 조작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1]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데이터들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할 것을 요구해야 할까? 그런다고 해도,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정보를 가진다면 그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김상균 교수가 제시한 브레인 투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등장하는 것 같은데, 정말 어려운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학우님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1] 지야 통, 『리얼리티 버블』, 코쿤북스, 2020, 358쪽.
경제웅2021-04-20 20:49
다솔 님 안녕하세요!
비누에 붙은 헤어진 애인의 머리카락*처럼, 세상에는 남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저 역시 디지털 세계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활동이 풍화되지 않는 족적으로 남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잊힐 권리가 실질적으로 없다는 거요. 내 데이터가 표면상으로는 삭제되어도, 지적하신 대로 디지털 세계의 운영자에게는 남아있을 테니까요. 기업에게는 귀중한 자료인 소비자들의 데이터를 완전 폐기할 유인이 있을지 회의적이에요.
사람은 과거를 쇄신해가는 존재라고 믿어요. 지난날을 감추고, 지우고, 윤색하기도 하면서요. 디지털 세계는 그런 면에서 비인간적이에요. 내 옛 활동 하나하나의 기록이 현재로 인양되고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모르겠어요.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과거를 털어 어떻게든 먼지 하나라도 찾아내려 하는 요즈음의 사회상과 맞물려있는 듯해요.
잊힐 권리가 없다는 말은 '잊을 권리'가 없다는 말과 동의어예요. 생산성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집착은 공백을 불허하기 때문에 자꾸 더 많이 기억하게 만들고, 모든 게 기억되는 '과잉 기억'의 시대에 망각은 설 자리를 잃어요. 저는 오히려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망각이라고 생각해요. 어제의 부끄러운 잘못, 아픈 이별, 갖가지 정신적 외상을 한 조각씩 잊어버려야 오늘의 삶이 있고 내일의 꿈이 있으니까요. 무거워서 어떻게 안고 살겠어요. 그런데도 개인의 과거들을 옴짝달싹 못 하도록 포박하는 디지털 세계의 기록은, 사람에게 역기능이 크다고 봐요.
글 잘 읽었습니다 :)
* 에픽하이·아이유, 〈연애소설〉.
비누에 붙은 헤어진 애인의 머리카락*처럼, 세상에는 남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저 역시 디지털 세계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활동이 풍화되지 않는 족적으로 남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잊힐 권리가 실질적으로 없다는 거요. 내 데이터가 표면상으로는 삭제되어도, 지적하신 대로 디지털 세계의 운영자에게는 남아있을 테니까요. 기업에게는 귀중한 자료인 소비자들의 데이터를 완전 폐기할 유인이 있을지 회의적이에요.
사람은 과거를 쇄신해가는 존재라고 믿어요. 지난날을 감추고, 지우고, 윤색하기도 하면서요. 디지털 세계는 그런 면에서 비인간적이에요. 내 옛 활동 하나하나의 기록이 현재로 인양되고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모르겠어요.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과거를 털어 어떻게든 먼지 하나라도 찾아내려 하는 요즈음의 사회상과 맞물려있는 듯해요.
잊힐 권리가 없다는 말은 '잊을 권리'가 없다는 말과 동의어예요. 생산성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집착은 공백을 불허하기 때문에 자꾸 더 많이 기억하게 만들고, 모든 게 기억되는 '과잉 기억'의 시대에 망각은 설 자리를 잃어요. 저는 오히려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망각이라고 생각해요. 어제의 부끄러운 잘못, 아픈 이별, 갖가지 정신적 외상을 한 조각씩 잊어버려야 오늘의 삶이 있고 내일의 꿈이 있으니까요. 무거워서 어떻게 안고 살겠어요. 그런데도 개인의 과거들을 옴짝달싹 못 하도록 포박하는 디지털 세계의 기록은, 사람에게 역기능이 크다고 봐요.
글 잘 읽었습니다 :)
* 에픽하이·아이유, 〈연애소설〉.
양승훈2021-04-20 21:07
말씀하신 부분에 있어 우선 '잊혀질 권리'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데이터가 자유롭게 지워질 때와 지워지지 않을 때 중 언제 더 순기능이 클지입니다. 두 번째로, 지워질 수 있는 (혹은 지워져야 하는 데이터)를 누가 기준을 정할지 입니다.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아 생기는 순기능들은 명확한 것 같습니다. 비리나 범죄의 공모 사실이 데이터로 남아있는 덕분에 검거가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온라인 미투 사건들도 데이터가 남아 있었던 덕분에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온라인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 혹은 피해를 주었는데 자유롭게 이를 삭제할 수 있다면 상처와 피해사실만 남고 이를 벌할 수 있는 증거는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데이터를 지워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때의 순기능은 말씀하신 것처럼 일부 온라인 권력자들이 데이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과도한 권력을 방지할 수 있고 우리의 삶에 다시 망각이 제대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봤을 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직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순기능들이 커보입니다. 물론 점점 온라인에서 오고가는 데이터들이 커지고 우리 삶과 밀접해지면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도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충안으로 '지워져야 하는 데이터만 지우자' 혹은 '지워지지 말아야 할 데이터만 남기자' 라는 의견이 나올 수 있어 두 번째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워져야 한다 or not의 문제에서 그 데이터의 중요성은 어쩔 수 없이 사후에 결정될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지우지 말아야 할 것처럼 보이는 자료 외에도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준들을 어떤 주체에게 넘기는 순간 또 독재의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아직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제 생각에는 아직까지는 데이터를 해당 기업이 소유하고 일정 기간 동안 보유하고 있는 현 상태가 적절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제시 감사합니다.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아 생기는 순기능들은 명확한 것 같습니다. 비리나 범죄의 공모 사실이 데이터로 남아있는 덕분에 검거가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온라인 미투 사건들도 데이터가 남아 있었던 덕분에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온라인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 혹은 피해를 주었는데 자유롭게 이를 삭제할 수 있다면 상처와 피해사실만 남고 이를 벌할 수 있는 증거는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데이터를 지워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때의 순기능은 말씀하신 것처럼 일부 온라인 권력자들이 데이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과도한 권력을 방지할 수 있고 우리의 삶에 다시 망각이 제대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봤을 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직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순기능들이 커보입니다. 물론 점점 온라인에서 오고가는 데이터들이 커지고 우리 삶과 밀접해지면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도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충안으로 '지워져야 하는 데이터만 지우자' 혹은 '지워지지 말아야 할 데이터만 남기자' 라는 의견이 나올 수 있어 두 번째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워져야 한다 or not의 문제에서 그 데이터의 중요성은 어쩔 수 없이 사후에 결정될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지우지 말아야 할 것처럼 보이는 자료 외에도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준들을 어떤 주체에게 넘기는 순간 또 독재의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아직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제 생각에는 아직까지는 데이터를 해당 기업이 소유하고 일정 기간 동안 보유하고 있는 현 상태가 적절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제시 감사합니다.
문지수2021-04-21 22:29
다솔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도 디지털 세계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기에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인터넷의 기록은 잘 지워지지 않기에 무섭습니다. 제웅님께서 남겨주신 댓글처럼 디지털 공간에서는 잊혀질 권리;'잊을 권리'가 없기에 분명 '역기능'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록이 영영 남기에 만약 제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저를 추억할 기록물이 계속해서 남아있다는 점은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과 관련된 단편 소설 김초엽 작가의 '관내 분실'이 떠오릅니다. 소설에서는 '도서관'이라는 사이버 납골당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도서관은 고인과 관련된 데이터를 모아놓고, 이를 통해 신경을 구축하여 고인을 찾아온 사람에게 디지털화된 고인의 생전 모습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 누군가를 추억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생긴다면 지워지지 않는다는 디지털 데이터 특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해킹이나 정보 도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요ㅠㅠ.
부작용을 막는 방법에 대해서는 기록을 삭제하고 싶다면 완전히 삭제할 수 있게해주는 법안이나 제도가 생기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정부 부처, 혹은 공기업이 등장하면 부작용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이것과 관련된 단편 소설 김초엽 작가의 '관내 분실'이 떠오릅니다. 소설에서는 '도서관'이라는 사이버 납골당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도서관은 고인과 관련된 데이터를 모아놓고, 이를 통해 신경을 구축하여 고인을 찾아온 사람에게 디지털화된 고인의 생전 모습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 누군가를 추억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생긴다면 지워지지 않는다는 디지털 데이터 특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해킹이나 정보 도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요ㅠㅠ.
부작용을 막는 방법에 대해서는 기록을 삭제하고 싶다면 완전히 삭제할 수 있게해주는 법안이나 제도가 생기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정부 부처, 혹은 공기업이 등장하면 부작용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임채미2021-04-20 16:48
메타버스를 읽으면서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활동이 늘어난 상황과 연관지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웠던 것 몇 가지를 언급해보자면, 우선 SNS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를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SNS와 현실의 차이점은 반응이 더 즉각적이고 간단하며 기대감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인스타그램을 자주 사용하는 저로서는 많이 공감할 수 있었는데요, 게시물을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고 원하는 반응이 나왔을 때 마찬가지로 쾌락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SNS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연관성)을 미쳐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어, SNS에 무조건적인 부작용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메타버스라는 개념 자체가 흥미로웠는데, 인간의 활동 영역은 일반 동물들과 달리 매우 넓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면 권태로움을 느껴 새로운 장소로 떠나곤 합니다.(여행) 하지만 이와 같은 인간의 습성이 디지털 환경에서도 발현되어 메타버스를 넓히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인간의 활동 반경이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활발하게 확장되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심심할 때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며 끊임없는 컨텐츠를 갈구하는 것도 어쩌면 활동 영역이 넓어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본질적으로 깨닫게 된 것은 문과생으로서 무의식적으로 과학기술을 거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들 코딩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서 다가오는 변화와 소통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두려운 나머지 그것을 회피하고만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학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피하지 말고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손지우2021-04-22 02:07
안녕하세요 임채미 학우님. 채미님의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
특히 인간이 활동 반경이 넓은 습성때문에 여러 SNS 등을 방황하며 컨텐츠를 갈구하게 하는 것 같다는 관점이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더불어 저 또한 발달하는 과학기술에 대해 약간은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돌아볼 수 있었던 듯도 합니다. 채미님의 말씀처럼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쉽지만은 않겠으나 변화를 받아들이며 서서히 발맞춰 가고자 함께 노력해야 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인간이 활동 반경이 넓은 습성때문에 여러 SNS 등을 방황하며 컨텐츠를 갈구하게 하는 것 같다는 관점이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더불어 저 또한 발달하는 과학기술에 대해 약간은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돌아볼 수 있었던 듯도 합니다. 채미님의 말씀처럼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쉽지만은 않겠으나 변화를 받아들이며 서서히 발맞춰 가고자 함께 노력해야 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단2021-04-20 20:15
1. 그냥 인터넷, 디지털이랑 메타버스가 뭐가 달라? 라는 질문에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소재는 마인크래프트 같다. 나 역시 초등학생 때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했지만 ‘가상세계’라는 점에 빠져서 했다기보다는 그냥 먹이를 구하고 집을 짓고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게 재밌어서 했던 것뿐인데, 다른 이유로 이 게임이 유행을 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장소를 게임 속에서 경험해보고, 내가 경험해 본 장소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거나 간직하고 싶은 장소를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물론 실제로 그 장소를 경험해보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동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다양한 이유로 그 장소가 사라지거나 바뀌었을 때 마인크래프트의 진가가 발휘된다. 메타버스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기존의 문화를 보존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2.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학벌주의가 해체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학우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책에 나온 미네르바 스쿨은 오프라인 시설을 최소화하면서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하는 대학이다. 같은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끼리 똘똘 뭉치면서 학연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단지 같은 수업을 받아서가 아니라 같은 기숙사에서 자고 같은 식당에서 밥 먹고 같은 도서관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의도치 않게 온라인 수업이 오프라인을 대체할만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확인했고,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대부분의 강의는 온라인으로 계속 진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점점 오프라인 캠퍼스의 범위가 축소되고 대학은 인간관계를 맺는 교류의 장의 역할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주장은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일까?
2.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학벌주의가 해체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학우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책에 나온 미네르바 스쿨은 오프라인 시설을 최소화하면서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하는 대학이다. 같은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끼리 똘똘 뭉치면서 학연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단지 같은 수업을 받아서가 아니라 같은 기숙사에서 자고 같은 식당에서 밥 먹고 같은 도서관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의도치 않게 온라인 수업이 오프라인을 대체할만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확인했고,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대부분의 강의는 온라인으로 계속 진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점점 오프라인 캠퍼스의 범위가 축소되고 대학은 인간관계를 맺는 교류의 장의 역할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주장은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일까?
윤재빈2021-04-21 19:49
안녕하세요. 조단님. 두번째 질문에 답변을 남겨봅니다.
학벌주의는 과거에 비해 이미 많이 해체되었고 앞으로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명문대의 네임밸류에서 오는 후광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더이상 학벌이 모든 것의 결정요인이 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벌보다는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학습력, 그리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실행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계층이 나뉠 것입니다. 패스트캠퍼스나 클래스101같이 성인을 대상으로 직무를 교육시키는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고 실제로 그 과정을 거쳐서
학벌과 관련없는 직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업도 과거와 달리, 스타트업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유연한 혁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는 학벌이 중요한 요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학벌이 좋은 사람이 변화에 더 빠르게 대응하여 결국 구성원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학벌주의는 과거에 비해 이미 많이 해체되었고 앞으로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명문대의 네임밸류에서 오는 후광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더이상 학벌이 모든 것의 결정요인이 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벌보다는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학습력, 그리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실행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계층이 나뉠 것입니다. 패스트캠퍼스나 클래스101같이 성인을 대상으로 직무를 교육시키는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고 실제로 그 과정을 거쳐서
학벌과 관련없는 직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업도 과거와 달리, 스타트업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유연한 혁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는 학벌이 중요한 요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학벌이 좋은 사람이 변화에 더 빠르게 대응하여 결국 구성원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서원2021-04-20 20:42
이 책은 메타버스가 무엇인지와 현재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메타버스와 그 의미를 소개한다. 책을 읽으며 들게 된 생각은 크게 두가지 정도였는데, 먼저 저자가 제시한 새로운 메타버스가 있을 법하면서도 재밌다는 생각과, 현실과의 분리 불가능성에서 오는 메타버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중에서도 책 속 ‘증강현실’에 관한 소개 부분에서도 언급되었듯, 메타버스와 현실이 완벽히 분리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문제에서 우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해보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증강현실 게임 내에서는 주로 ‘익명성’이 보장된다. 우리가 주로 하는 온라인 게임에서는 이러한 익명성이 서로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비교적 위험성이 덜하지만, 증강현실 게임은 배경을 현실으로 두고 있기에 조금만 시도한다면 범죄가 손쉽게 일어날 수 있을텐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익명성을 없애게 된다면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표출할 수 있는 데에서 오는 메타버스의 장점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익명성과 자유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해야할까?
또, 메타버스 내에서의 권력 분포의 두려움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메타버스는 현실과 분리되기 어렵다. 이러한 메타버스를 관리하는 사람이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을텐데, 과연 그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혹은 메타버스를 통해 흘러간 개인정보가 부정적으로 활용되어 누군가에게 권력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잘 조절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면, GPS기반 게임에서 개인의 위치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관리자의 주도하에 메타버스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의 익명게시판 등에서는 게시판 관리자의 마음대로 특정 글이 지워지거나 특정인이 소외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충분히 문제되고 있는 일이지만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와 더욱 가까이 존재하기에 동일한 일이 발생할 때 권력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봐야할 것이다.
또, 메타버스 내에서의 권력 분포의 두려움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메타버스는 현실과 분리되기 어렵다. 이러한 메타버스를 관리하는 사람이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을텐데, 과연 그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혹은 메타버스를 통해 흘러간 개인정보가 부정적으로 활용되어 누군가에게 권력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잘 조절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면, GPS기반 게임에서 개인의 위치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관리자의 주도하에 메타버스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의 익명게시판 등에서는 게시판 관리자의 마음대로 특정 글이 지워지거나 특정인이 소외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충분히 문제되고 있는 일이지만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와 더욱 가까이 존재하기에 동일한 일이 발생할 때 권력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봐야할 것이다.
최민정2021-04-21 17:12
적어주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특히, 메타버스 내 권력 분포에 대해 공감했어요. 책을 읽으면서도 초단편 소설 속에서 나타난 달콤한 제안이 두려웠습니다. 남편 모르게 남편 얼굴을 배우로 볼지, 내가 관리하는 연예인 모르게 그 연예인의 숨기고 싶은 기억을 세상에 공개할 것인지를 당사자인 남편이나 연예인이 아닌 관련되어 있다해도 결국은 제3자인 사람이 결정하게끔 접근한다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정보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정보를 통제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 했을 때 해당 매체를 설계한 사람들에게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통제와 이용을 감시하는 다른 권력이 약하거나 부재한 상황에서, 일반 사람들과 통제권을 가진 사람 간의 '부'를 비롯한 핵심적인 자원의 격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단2021-04-22 01:39
서원 학우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원 학우님이 우려하신 대로 메타버스를 관리하는 사람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관리자들은 시스템을 관리하는 도중에 수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겁니다. 유명인의 연락처, 메신저, 앨범 등 개인정보까지 열람이 가능하게 되고 그것을 유포한다고 협박하며 유명인들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일도 최근 급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기관에서 개개인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정치적 목적으로의 민간이 사찰이 더욱 용이하게 되고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칠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윤리의 발전은 동반되어야 합니다. 윤리 없는 기술은 인류에게 독이 되면 독이 되었지 절대 약이 되진 않을 겁니다. 법적인 부분, 제도적인 부분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켜 이러한 논의를 지속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원 학우님이 우려하신 대로 메타버스를 관리하는 사람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관리자들은 시스템을 관리하는 도중에 수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겁니다. 유명인의 연락처, 메신저, 앨범 등 개인정보까지 열람이 가능하게 되고 그것을 유포한다고 협박하며 유명인들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일도 최근 급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기관에서 개개인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정치적 목적으로의 민간이 사찰이 더욱 용이하게 되고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칠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윤리의 발전은 동반되어야 합니다. 윤리 없는 기술은 인류에게 독이 되면 독이 되었지 절대 약이 되진 않을 겁니다. 법적인 부분, 제도적인 부분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켜 이러한 논의를 지속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승훈2021-04-20 20:44
메타버스의 발전과 인터넷은 많은 선진국, 신흥국들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남아시아, 아프리카에 위치한 식량 부족에 시달릴 정도의 저개발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지, 애초에 그 곳까지 확산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관심이 있어서 찾아보니 이전부터 페이스북, 구글 등이 다양한 노력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열기구를 통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게 하는 구상부터 작년 5월에는 2아프리카라는 프로젝트의 소식도 있다. 차이나모바일 등과 합작해 아프리카에 해저케이블을 설치하여 보급률과 인터넷의 속도를 높이는 프로젝트이다. 2024년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메타버스가 엄청난 하이테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부분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개발국에서 학교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교육과 급식. 미래의 동력인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할뿐 아니라 규칙적이고 영양가 있는 식단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정말 기초적인 수준의 인터넷이 보급되어 아이들이 먼 거리의 학교까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된다면 (교사가 닿지 못하는 작은 마을마다 공동 모니터 등을 설치하여) 교육의 문제는 일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급식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책 초반 부분에 나온 '즉각적 연결성' 이 부재하는 문제와 연결되는 부분인 것 같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하게 된 이유는 책에 나오는 부분에서 가장 크게 공감된 부분이 작가인 김상균 교수님께서 계속 강조한 '현실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번 주제심화세미나를 접하게 된 이후 신기하게 여기저기서 메타버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잘 몰랐던 부분인데 경영대 수업에서부터 심리학 관련 주제탐구세미나에서까지 계속 비대면, 가상세계, 메타버스의 이야기가 들린다.
작년부터 음식을 공부하던 중 식량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이렇게 非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에 괴리감이 든다. 우리는 현실세계의 한계를 느끼거나 현실 세계에 지루해져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고 있지만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어떤 현실세계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 조건도 갖추어지지 않아 죽는 사람들이 많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다양한 비대면 기술이 발달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퍼펙트 스톰 (다양한 자연재해) 으로 인해 평소보다도 심각한 식량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코로나19가 당장 우리에게만도 끔찍한 재앙이라 다른 세계 사람의 재앙까지는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실 세계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메타버스의 이야기에 처음에는 거부감도 들었다. 무엇보다 먹는다는 문제는, 식량이 안전하게 보급되어야 하는 문제에서는 메타버스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김상균 교수님의 책을 읽고 나니 메타버스가 내가 생각한 것 마냥 어떤 캡슐에 들어가거나 무거운 안경을 끼고 대단한 기술 속의 세계를 다루는 게 아니라 현실 세계를 확장시키고 현실 세계와 보완적인 관계의 또다른 세계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메타버스가 식량 문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나보다 조금 더 메타버스에 친숙하고 잘 하는 학우 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메타버스의 움직임들을 자유롭게 던져주시면 좋겠다.
관심이 있어서 찾아보니 이전부터 페이스북, 구글 등이 다양한 노력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열기구를 통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게 하는 구상부터 작년 5월에는 2아프리카라는 프로젝트의 소식도 있다. 차이나모바일 등과 합작해 아프리카에 해저케이블을 설치하여 보급률과 인터넷의 속도를 높이는 프로젝트이다. 2024년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메타버스가 엄청난 하이테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부분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개발국에서 학교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교육과 급식. 미래의 동력인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할뿐 아니라 규칙적이고 영양가 있는 식단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정말 기초적인 수준의 인터넷이 보급되어 아이들이 먼 거리의 학교까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된다면 (교사가 닿지 못하는 작은 마을마다 공동 모니터 등을 설치하여) 교육의 문제는 일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급식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책 초반 부분에 나온 '즉각적 연결성' 이 부재하는 문제와 연결되는 부분인 것 같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하게 된 이유는 책에 나오는 부분에서 가장 크게 공감된 부분이 작가인 김상균 교수님께서 계속 강조한 '현실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번 주제심화세미나를 접하게 된 이후 신기하게 여기저기서 메타버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잘 몰랐던 부분인데 경영대 수업에서부터 심리학 관련 주제탐구세미나에서까지 계속 비대면, 가상세계, 메타버스의 이야기가 들린다.
작년부터 음식을 공부하던 중 식량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이렇게 非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에 괴리감이 든다. 우리는 현실세계의 한계를 느끼거나 현실 세계에 지루해져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고 있지만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어떤 현실세계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 조건도 갖추어지지 않아 죽는 사람들이 많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다양한 비대면 기술이 발달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퍼펙트 스톰 (다양한 자연재해) 으로 인해 평소보다도 심각한 식량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코로나19가 당장 우리에게만도 끔찍한 재앙이라 다른 세계 사람의 재앙까지는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실 세계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메타버스의 이야기에 처음에는 거부감도 들었다. 무엇보다 먹는다는 문제는, 식량이 안전하게 보급되어야 하는 문제에서는 메타버스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김상균 교수님의 책을 읽고 나니 메타버스가 내가 생각한 것 마냥 어떤 캡슐에 들어가거나 무거운 안경을 끼고 대단한 기술 속의 세계를 다루는 게 아니라 현실 세계를 확장시키고 현실 세계와 보완적인 관계의 또다른 세계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메타버스가 식량 문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나보다 조금 더 메타버스에 친숙하고 잘 하는 학우 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메타버스의 움직임들을 자유롭게 던져주시면 좋겠다.
조용수2021-04-21 22:40
승훈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메타버스라는 말이 이상하게 각종 매체에서 많이 들려와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네요 ㅎ
저도 메타버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현재로서는 메타버스를 이용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타버스> 책 끝부분에 보면, 아무리 많은 상호작용을 메타버스 안에 넣고자 노력해도 메타버스에 담기지 못하는 현실의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메타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말씀해 주신 현실에서의 의식주 문제 해결이나 고품질 통신망의 보급 같은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런 진입장벽까지 담기에는 아직 메타버스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날 인류는 전 인구가 충분히 나누어 먹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것에는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문제도 큰 것 같은데, 이런 현실적인 문제까지 메타버스가 해결할 수 있을지는 고민해 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메타버스의 가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메타버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현재로서는 메타버스를 이용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타버스> 책 끝부분에 보면, 아무리 많은 상호작용을 메타버스 안에 넣고자 노력해도 메타버스에 담기지 못하는 현실의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메타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말씀해 주신 현실에서의 의식주 문제 해결이나 고품질 통신망의 보급 같은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런 진입장벽까지 담기에는 아직 메타버스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날 인류는 전 인구가 충분히 나누어 먹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것에는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문제도 큰 것 같은데, 이런 현실적인 문제까지 메타버스가 해결할 수 있을지는 고민해 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메타버스의 가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혜송2021-04-21 13:03
1. 메타버스에 법질서는 불필요하다?
현실 세계이든, 디지털 공간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이 이루는 사회의 생김새는 비슷하게 만들어진다. 김상균의 말을 인용하자면, “선과 악, 평화와 분쟁, 나눔과 독점이 공존한다.” 일례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라는 메타버스에서 감염병이 전파되었을 때, 감염자를 무료로 치료하고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선의 세력이 있는가 하면, 그 이면에서는 사기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악의 세력이 있었다.
현실 사회와 메타버스의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에서 현실의 법질서가 적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저자는 현실 세계에 피해가 없고, 구성원에게 모두 득이 되는 한에서 현실의 법과 규칙을 어겨도 된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놀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가상세계에 현실의 제도와 윤리가 적용되고 법치주의화 된다면, 메타버스는 놀이로서의 존재 목적을 잃을 것이다. 게임의 세계라면, 수백만 명을 죽이고 희열을 느끼는 것은 당연시된다.
그런데, 메타버스가 발전하여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수록, ‘메타버스에 법질서는 필요 없다’라는 당연한 생각은 위험해진다. 그 이유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무질서’와 ‘자유’로 규정된 디지털 지구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고 하나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와 현실의 융합을 경험하고 있다. 메타버스에서의 직업을 통해 실제 돈을 벌고, 현실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인그레스 메타버스에서라도 땅을 차지한다. 이뿐만 아니라, ‘스틸 뱅크시’의 사례에서처럼, 현실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메타버스라고 규정만 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메타버스에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속적으로 축적되면, 메타버스와 현실이 융합된 미래에는 질서, 윤리, 제도가 없어지지는 않을지언정, 적어도 현대의 법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저자가 소설에서 그리는 메타버스의 그림자인 『뷰튜브』, 『브레인 투어』, 『기억 거래소』에서 불법이 행해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묘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2. 디지털 지구에서 진화할 인류의 모습은?
나는 미래의 인류를 상상하며 사지가 퇴화하고 뇌만 발달한 기괴한 모습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메타버스》 거울 세계 부분을 읽으며 그 상상이 다시 떠올랐다. 효율성이 더해진 거울 세계에서 우리는 더이상 외식을 하러 밖에 잘 나가지 않으며, 수업 또한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이동의 필요성이 점차 줄고 있다. 미래에 우리는 욕구를 채우기 위한 최소한의 이동만을 할 것이며, 그 최소한의 이동량은 메타버스의 발달과 함께 계속 감소할 것이다. 심지어, 메타버스에 접속하기 위해서 써오던 엄지손가락조차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수백만 년 후의 인류가 사지를 갖고 있다면 오히려 이는 디지털 지구에 대한 적응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심리는 어떻게 진화할까? 메타버스에서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공격성을 표출함으로써 강한 자극과 전율을 느낀다. 그런데 이처럼 강한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게 되면 자극에 대해 반응이 오는 기준선이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그 자극에 ‘중독’되며, 더 큰 반응이 오지 않는 한 그 자극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만약 메타버스에서의 강한 자극에 인류가 여러 세대에 걸쳐 노출되게 된다면, 뇌의 뉴런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또, 저자가 우려하듯, 메타버스에서 NPC를 겁탈하는 등의 행위를 함에도 책임지지 않게 되고, 빼기가 없는 메타버스의 특성상 ‘손실’이 없어 대부분의 일에 책임을 질 필요조차 없다면, 책임 의식 또는 윤리의식을 느끼게 하는 뇌의 신경작용은 진화를 거듭한 후에도 과연 남아있을까?
현실 세계이든, 디지털 공간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이 이루는 사회의 생김새는 비슷하게 만들어진다. 김상균의 말을 인용하자면, “선과 악, 평화와 분쟁, 나눔과 독점이 공존한다.” 일례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라는 메타버스에서 감염병이 전파되었을 때, 감염자를 무료로 치료하고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선의 세력이 있는가 하면, 그 이면에서는 사기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악의 세력이 있었다.
현실 사회와 메타버스의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에서 현실의 법질서가 적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저자는 현실 세계에 피해가 없고, 구성원에게 모두 득이 되는 한에서 현실의 법과 규칙을 어겨도 된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놀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가상세계에 현실의 제도와 윤리가 적용되고 법치주의화 된다면, 메타버스는 놀이로서의 존재 목적을 잃을 것이다. 게임의 세계라면, 수백만 명을 죽이고 희열을 느끼는 것은 당연시된다.
그런데, 메타버스가 발전하여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수록, ‘메타버스에 법질서는 필요 없다’라는 당연한 생각은 위험해진다. 그 이유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무질서’와 ‘자유’로 규정된 디지털 지구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고 하나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와 현실의 융합을 경험하고 있다. 메타버스에서의 직업을 통해 실제 돈을 벌고, 현실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인그레스 메타버스에서라도 땅을 차지한다. 이뿐만 아니라, ‘스틸 뱅크시’의 사례에서처럼, 현실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메타버스라고 규정만 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메타버스에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속적으로 축적되면, 메타버스와 현실이 융합된 미래에는 질서, 윤리, 제도가 없어지지는 않을지언정, 적어도 현대의 법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저자가 소설에서 그리는 메타버스의 그림자인 『뷰튜브』, 『브레인 투어』, 『기억 거래소』에서 불법이 행해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묘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2. 디지털 지구에서 진화할 인류의 모습은?
나는 미래의 인류를 상상하며 사지가 퇴화하고 뇌만 발달한 기괴한 모습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메타버스》 거울 세계 부분을 읽으며 그 상상이 다시 떠올랐다. 효율성이 더해진 거울 세계에서 우리는 더이상 외식을 하러 밖에 잘 나가지 않으며, 수업 또한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이동의 필요성이 점차 줄고 있다. 미래에 우리는 욕구를 채우기 위한 최소한의 이동만을 할 것이며, 그 최소한의 이동량은 메타버스의 발달과 함께 계속 감소할 것이다. 심지어, 메타버스에 접속하기 위해서 써오던 엄지손가락조차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수백만 년 후의 인류가 사지를 갖고 있다면 오히려 이는 디지털 지구에 대한 적응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심리는 어떻게 진화할까? 메타버스에서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공격성을 표출함으로써 강한 자극과 전율을 느낀다. 그런데 이처럼 강한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게 되면 자극에 대해 반응이 오는 기준선이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그 자극에 ‘중독’되며, 더 큰 반응이 오지 않는 한 그 자극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만약 메타버스에서의 강한 자극에 인류가 여러 세대에 걸쳐 노출되게 된다면, 뇌의 뉴런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또, 저자가 우려하듯, 메타버스에서 NPC를 겁탈하는 등의 행위를 함에도 책임지지 않게 되고, 빼기가 없는 메타버스의 특성상 ‘손실’이 없어 대부분의 일에 책임을 질 필요조차 없다면, 책임 의식 또는 윤리의식을 느끼게 하는 뇌의 신경작용은 진화를 거듭한 후에도 과연 남아있을까?
김재민2021-04-21 22:15
상당히 잘 정리된 글 잘 읽었습니다, 혜송님. 저 역시 메타버스와 법과 사회승인규칙에 관하여 더 깊이 고민하고 싶었는데 그 부분이 참 어렵더라구요ㅠㅠ..
현실에서 승인되는 사회의 규범과 규칙은 , 사회의 일정한 제약과 물리적 조건에 따라 구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이루는 물적 기반이 상이한 이상, 새로운 사회 규범과 가치가 이제는 메타버스 속에서 허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하지 않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메타버스에선 법질서가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유로운 상황에서 법질서를 변증법적으로든 탐구할 것”이 요구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놀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메타버스라면, 사실상 우리의 뇌에 도파인을 자극할 수 있는 행위와 사고가 허용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며, 대다수 사람의 뇌는 범죄나 일탈 행위를 계획-모방-실천함에 있어 극도의 흥분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메타버스에서는 ‘약탈과 음해’가 일종의 default값으로 설정될 수 있지 않을까요? 뭐, 당장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의 메타버스에서도 상당 부분 거짓과 기만을 승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를 포장하고, 과시하고, 때론 거짓말을 쳐서 부캐를 만들더라도 그것이 메타버스적 성격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구성원 스스로 어느정도 인지하면서, 동시에 진실성을 보증하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모두 때로는 진실하고, 때로는 거짓을 자연스럽게 남발하지 않습니까. 현실 세계에서 거짓말이 꽤나 많은 상황에서 도덕적 비난을 초래한다는 점과 대비할때 이미 우리의 메타버스는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규칙과 규범을 어느정도 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현실과의 엄격한 분리가 어디까지 가능할지, 그리고 그 논의가 현실을 어느정도 변화시킬지 참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클럽하우스가 성행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 투자를 유치하는 금융사기행각이 다수 적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악”의 무리에 대한 경계와 제재 역시 끊임없이 고민할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종합하자면, 김상균 교수님이 말씀하셨듯, 현실이 더 앞선 우위에 놓일 수 있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유인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에서 승인되는 사회의 규범과 규칙은 , 사회의 일정한 제약과 물리적 조건에 따라 구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이루는 물적 기반이 상이한 이상, 새로운 사회 규범과 가치가 이제는 메타버스 속에서 허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하지 않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메타버스에선 법질서가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유로운 상황에서 법질서를 변증법적으로든 탐구할 것”이 요구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놀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메타버스라면, 사실상 우리의 뇌에 도파인을 자극할 수 있는 행위와 사고가 허용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며, 대다수 사람의 뇌는 범죄나 일탈 행위를 계획-모방-실천함에 있어 극도의 흥분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메타버스에서는 ‘약탈과 음해’가 일종의 default값으로 설정될 수 있지 않을까요? 뭐, 당장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의 메타버스에서도 상당 부분 거짓과 기만을 승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를 포장하고, 과시하고, 때론 거짓말을 쳐서 부캐를 만들더라도 그것이 메타버스적 성격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구성원 스스로 어느정도 인지하면서, 동시에 진실성을 보증하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모두 때로는 진실하고, 때로는 거짓을 자연스럽게 남발하지 않습니까. 현실 세계에서 거짓말이 꽤나 많은 상황에서 도덕적 비난을 초래한다는 점과 대비할때 이미 우리의 메타버스는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규칙과 규범을 어느정도 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현실과의 엄격한 분리가 어디까지 가능할지, 그리고 그 논의가 현실을 어느정도 변화시킬지 참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클럽하우스가 성행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 투자를 유치하는 금융사기행각이 다수 적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악”의 무리에 대한 경계와 제재 역시 끊임없이 고민할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종합하자면, 김상균 교수님이 말씀하셨듯, 현실이 더 앞선 우위에 놓일 수 있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유인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용수2021-04-21 15:07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메타버스가 최근에 나온 개념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에서 메타버스의 예시로 들어주는 다양한 사례들을 읽으며 우리가 이전부터 즐겨왔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 플랫폼 등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이 메타버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새삼스레 메타버스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코로나 19로 인한 오프라인 활동 제한, 가상현실/증강현실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 MZ 세대의 등장 등이 합쳐진 결과이다.
현재 메타버스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인터넷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웹은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론의 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부정적인 면은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있더라도 기술이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발전하는 기술이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은 물론 장점이 훨씬 많긴 하나 온라인 시장에서 나타나는 승자독식구조 현상, 의견 양극화와 어뷰징 문제 등 문제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메타버스도 기술이 발전하고 무르익음에 따라 지금에는 상상하기 힘든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면에서 지금은 다소 공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메타버스가 상용화되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짧은 소설의 형태로 책 중간중간에 끼워넣은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현재의 기술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이렇게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에 더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닌가 싶다.
학우분들과 논의하고 싶은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기업들은 해당 서비스로 발생하는 여러 윤리적 문제(프라이버시 침해 문제, 편향성 문제)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기업의 수익모델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광고가 주 수입원인 이들 기업에게 컨텐츠의 도덕적 가치는 의미가 크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윤리적인 면에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는 방법(유인책)이 있을까?
2. 최근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자 이동 경로와 접촉자 추적 조사를 진행하는 국가에서 프라이버시 vs 공공 안전의 논란이 생기고 있다. 코로나 19같은 위기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허용되는가? 만일 허용된다면, 그 경계는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현재 메타버스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인터넷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웹은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론의 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부정적인 면은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있더라도 기술이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발전하는 기술이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은 물론 장점이 훨씬 많긴 하나 온라인 시장에서 나타나는 승자독식구조 현상, 의견 양극화와 어뷰징 문제 등 문제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메타버스도 기술이 발전하고 무르익음에 따라 지금에는 상상하기 힘든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면에서 지금은 다소 공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메타버스가 상용화되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짧은 소설의 형태로 책 중간중간에 끼워넣은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현재의 기술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이렇게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에 더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닌가 싶다.
학우분들과 논의하고 싶은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기업들은 해당 서비스로 발생하는 여러 윤리적 문제(프라이버시 침해 문제, 편향성 문제)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기업의 수익모델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광고가 주 수입원인 이들 기업에게 컨텐츠의 도덕적 가치는 의미가 크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윤리적인 면에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는 방법(유인책)이 있을까?
2. 최근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자 이동 경로와 접촉자 추적 조사를 진행하는 국가에서 프라이버시 vs 공공 안전의 논란이 생기고 있다. 코로나 19같은 위기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허용되는가? 만일 허용된다면, 그 경계는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박리라2021-04-21 15:36
현실에서 증강현실이니 AI이니 하는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고, 이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환경의 조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흥선대원군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걱정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기술과 시각이 불러들일 생활의 편의보다는 디스토피아적 결말로 다가가는 사회의 모습이 먼저 그려지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의 추천사와 프롤로그를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먼저 받았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내가 접하는 많은 것들이 메타버스의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디지털 지구로 여행을 떠날 용기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새로운 영역이 일으킬 문제나 악영향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이기에 책을 읽으면서 메타버스의 세계가 제공하는 기술이나 환경적인 측면보다는 이와 관련한 한계점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가장 먼저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콘텐츠 제공자가 메타버스 세계 속 사람들의 상상력까지 주무를 수 있는 통제된 세상이 올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이렇게 정제된 언어로 정리해 본 생각은 아니지만, 이는 내가 평소에 글로 지어진 소설 속 세계를 먼저 접하고 나면 그 이후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 게임을 접하지 않으려고 하는 습관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콘텐츠 제작자가 화려하게 재가공하여 새롭게 구현해낸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는 사실을 거부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온전한 나의 힘’으로 만들어낸 세상이 강렬한 시각적 자료로 인해 처참히 무너져서 다시 이를 떠올리기 힘들게 되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은 내가 특정한 세계를 상상하여 머릿속에 구현하는 마치 ‘신’과 같은 능력을 빼앗기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만약, 모든 것이 메타버스 속 세계에서 구현이 이루어져 제작자가 제공하는 그대로의 세계만 상상할 수 있다면, 새로운 형태의 보이지 않는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부터 단계를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공간의 특성이나 성격을 받아들이게 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체계를 바꾸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조심스럽게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저자가 라이프로그와 관련하여 CJ 대한통운과 관련해 제시한 시선의 공유를 접할 때 설명하기 어려운 껄끄러움이 생겼는데, 이는 ‘불편함’과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배달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힘들게 짐을 옮기고 안전하게 집 앞까지 옮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이해하고 고마움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고마움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 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의 기만과 연민의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그 일이 힘들다는 것을 봐야지만 느껴질 수 있는 따듯한 마음이라면, 애초에 이를 따듯하다고 볼 수 있을까? 라이프로그는 서로의 삶을 관찰하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일부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를 지닌다. 그러나, 이를 기반으로 타인에 대해 어떤 감정-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내비친다는 것은 당사자들이 소외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라이프로그 세계를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겉으로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보이더라도 말이다.
메타버스로 구현되는 세계는 다채로우며, 새로운 지구 환경으로 우리를 초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부정적인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고 규제하는 신중한 발걸음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현실의 지구와 디지털 지구를 분리하고, 게임과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제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겠노라 다짐해도 같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인 이상 이와 같은 분리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콘텐츠 제공자가 메타버스 세계 속 사람들의 상상력까지 주무를 수 있는 통제된 세상이 올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이렇게 정제된 언어로 정리해 본 생각은 아니지만, 이는 내가 평소에 글로 지어진 소설 속 세계를 먼저 접하고 나면 그 이후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 게임을 접하지 않으려고 하는 습관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콘텐츠 제작자가 화려하게 재가공하여 새롭게 구현해낸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는 사실을 거부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온전한 나의 힘’으로 만들어낸 세상이 강렬한 시각적 자료로 인해 처참히 무너져서 다시 이를 떠올리기 힘들게 되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은 내가 특정한 세계를 상상하여 머릿속에 구현하는 마치 ‘신’과 같은 능력을 빼앗기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만약, 모든 것이 메타버스 속 세계에서 구현이 이루어져 제작자가 제공하는 그대로의 세계만 상상할 수 있다면, 새로운 형태의 보이지 않는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부터 단계를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공간의 특성이나 성격을 받아들이게 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체계를 바꾸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조심스럽게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저자가 라이프로그와 관련하여 CJ 대한통운과 관련해 제시한 시선의 공유를 접할 때 설명하기 어려운 껄끄러움이 생겼는데, 이는 ‘불편함’과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배달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힘들게 짐을 옮기고 안전하게 집 앞까지 옮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이해하고 고마움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고마움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 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의 기만과 연민의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그 일이 힘들다는 것을 봐야지만 느껴질 수 있는 따듯한 마음이라면, 애초에 이를 따듯하다고 볼 수 있을까? 라이프로그는 서로의 삶을 관찰하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일부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를 지닌다. 그러나, 이를 기반으로 타인에 대해 어떤 감정-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내비친다는 것은 당사자들이 소외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라이프로그 세계를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겉으로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보이더라도 말이다.
메타버스로 구현되는 세계는 다채로우며, 새로운 지구 환경으로 우리를 초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부정적인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고 규제하는 신중한 발걸음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현실의 지구와 디지털 지구를 분리하고, 게임과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제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겠노라 다짐해도 같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인 이상 이와 같은 분리는 어렵기 때문이다.
원재희2021-04-21 21:58
리라님의 글을 읽으면서 리라님이 메타버스를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저도 고민해본 적 없는 것들에 의문을 던져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싫어하고 기존의 것에 안주하는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이는 곧 리라님이 말씀하신 메타버스 속 세계관 조작에 대한 무의식적 순응으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라이프로깅 세계나 거울세계에서도 사용자(또는 참여자)가 자신의 채널 또는 행동, 회의 등을 주체적으로 창조해낸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은 역시 만들어진 세계관과 기능의 매뉴얼 속에서 정해진 규칙 아래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새로운 기능에 의해 새로운 행동이나 유행이 탄생하기도, 기능의 소멸에 의해 그것들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가령 인스타그램의 부메랑 카메라 기능이 생겨나면서 한때 짧은 순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 게시가 유행하기도 했던 것처럼요! 그러나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나서서 판을 깔아주어야 합니다. 정해진 규칙과 정형화된 세계관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 또는 그들의 아바타들이 모여있는 상황은 곧 카오스 상태로 변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는 바를 방지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과 같이, 이용자와 이용자 또는 이용자와 세계관 구축자 사이의 소통이 활발히,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지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주장에 힘을 실을 수도 있고, 운영자는 공개적인 장에서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고 다소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져가는 메타버스가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의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은 했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라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도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긴 하나, 자신의 라이프를 로깅하는 택배원들 또한 자신이 쓰는 글에 따라 자신에 대한 시선이 그런 식으로 변할 수도 있음을 직감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분들은 고객들에게 바라는 점, 듣고 싶은 말, 자신의 하루 일과, 오늘 벌어졌던 특이한 일 등 점점 택배원의 고충에서 벗어나 택배원이라는 직업 자체를 여러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홍보하며 긍정적이고 고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시지 않을까요? tvN에서 방영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반대의 면모, 고충, 나아가 의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일상들이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드라마는 엄밀히 라이프로깅 세계의 일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실 고증을 매우 잘 했다는 평을 받은 만큼 그에 가깝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뿐 아니라 최근 유튜브에 자신의 직업적 일상을 브이로그로 촬영하여 올리고 상당한 호응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직업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라이프로깅 세계는 직업인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올리는 사람 또한 알리고 싶은 생활의 면모를 특히 부각하여 보여줄 수도 있고요. 따라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싫어하고 기존의 것에 안주하는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이는 곧 리라님이 말씀하신 메타버스 속 세계관 조작에 대한 무의식적 순응으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라이프로깅 세계나 거울세계에서도 사용자(또는 참여자)가 자신의 채널 또는 행동, 회의 등을 주체적으로 창조해낸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은 역시 만들어진 세계관과 기능의 매뉴얼 속에서 정해진 규칙 아래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새로운 기능에 의해 새로운 행동이나 유행이 탄생하기도, 기능의 소멸에 의해 그것들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가령 인스타그램의 부메랑 카메라 기능이 생겨나면서 한때 짧은 순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 게시가 유행하기도 했던 것처럼요! 그러나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나서서 판을 깔아주어야 합니다. 정해진 규칙과 정형화된 세계관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 또는 그들의 아바타들이 모여있는 상황은 곧 카오스 상태로 변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는 바를 방지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과 같이, 이용자와 이용자 또는 이용자와 세계관 구축자 사이의 소통이 활발히,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지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주장에 힘을 실을 수도 있고, 운영자는 공개적인 장에서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고 다소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져가는 메타버스가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의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은 했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라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도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긴 하나, 자신의 라이프를 로깅하는 택배원들 또한 자신이 쓰는 글에 따라 자신에 대한 시선이 그런 식으로 변할 수도 있음을 직감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분들은 고객들에게 바라는 점, 듣고 싶은 말, 자신의 하루 일과, 오늘 벌어졌던 특이한 일 등 점점 택배원의 고충에서 벗어나 택배원이라는 직업 자체를 여러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홍보하며 긍정적이고 고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시지 않을까요? tvN에서 방영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반대의 면모, 고충, 나아가 의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일상들이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드라마는 엄밀히 라이프로깅 세계의 일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실 고증을 매우 잘 했다는 평을 받은 만큼 그에 가깝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뿐 아니라 최근 유튜브에 자신의 직업적 일상을 브이로그로 촬영하여 올리고 상당한 호응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직업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라이프로깅 세계는 직업인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올리는 사람 또한 알리고 싶은 생활의 면모를 특히 부각하여 보여줄 수도 있고요. 따라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엘리엇2021-04-22 14:31
박리라 학우님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라이프로그와 관련하여 느끼신 불편함에 저또한 굉장히 크게 공감을 합니다. 우리가 약자들에게 가지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오만은 한끗 차이인 것 같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자선행위를 하고 그로 인해 어려운 사람들이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주류 세상에서 이루어진다는 게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왔습니다.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어떤 방식으로 공감이 이루어져야 할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라이프로그와 관련하여 느끼신 불편함에 저또한 굉장히 크게 공감을 합니다. 우리가 약자들에게 가지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오만은 한끗 차이인 것 같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자선행위를 하고 그로 인해 어려운 사람들이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주류 세상에서 이루어진다는 게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왔습니다.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어떤 방식으로 공감이 이루어져야 할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민정2021-04-21 16:58
메타버스는 신세계였다. 책의 목차에서 언급된 단어조차 새로웠다. 게임도 안 하는 사람이라 그 흔한 게임과 거기서 나오는 용어조차 낯설었다. 나름 트렌드를 따라간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키오스크를 앞에 두고 서 계셨던 어르신의 마음이 이해됐다. 그래서인지 첫 파트에서 ‘인류는 디지털 지구로 이주한다’는 말이 조금은 무서웠다. 그때 2년 전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학과 밖에서도 계속 배우세요. 세상의 흐름을 알아야 해요.” 학과 수업이 아무리 좋아도, 배울 게 많아도 과거를 읽어내는 것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다르다고 강조하셨다. 그때만 해도 교육공학과는 알아도 줌으로 수업하는 세상을 꿈꾼 적도 없고 디지털 교과서로 수업을 준비하는 나를 상상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온 마인크래프트 대학, 가상현실 수업에 이미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와 함께 살아갈 생각으로 메타버스에 올라타야겠다는 압력을 느꼈다.
관련해서 읽었던, 2021 메타버스 트렌드 리포트를 공유한다.; http://www.openads.co.kr/content/contentDetail?contsId=6326
관련해서 읽었던, 2021 메타버스 트렌드 리포트를 공유한다.; http://www.openads.co.kr/content/contentDetail?contsId=6326
조민영2021-04-22 00:03
안녕하세요, 민정님!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공유해주신 2021 메타버스 트렌드 리포트도 너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좋은 정보 공유에 감사드립니다 ^_^)b
정말 이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민정님께서 몸소 체감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지만, 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한다는 것에 제가 이렇게 익숙해질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최근에는 마인크래프트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었던 저이기에 민정님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민정님의 코멘트 중, 메타버스에 올라타야겠다는 압력을 느꼈다고 하셨는데, 이 압력이 어쩔 수 없이 드는 압박감보다는 긍정적인 느낌이길 바랍니다. :) 바쁘실 텐데, 책 읽고 코멘트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이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민정님께서 몸소 체감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지만, 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한다는 것에 제가 이렇게 익숙해질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최근에는 마인크래프트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었던 저이기에 민정님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민정님의 코멘트 중, 메타버스에 올라타야겠다는 압력을 느꼈다고 하셨는데, 이 압력이 어쩔 수 없이 드는 압박감보다는 긍정적인 느낌이길 바랍니다. :) 바쁘실 텐데, 책 읽고 코멘트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정빈2021-04-21 17:52
몇 달 전 인상깊게 본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도구는 이용당하길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만 소셜 미디어는 사용되길 가만히 기다리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심리를 역이용해 그것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도구로 만들어낸 각종 디지털 도구들은 이제 일상 활동의 큰 일부가 되어 버렸다. 때때로 아이폰의 스크린 타임을 확인할 때면 깨어 있는 시간 중 거의 대부분을 현실이 아닌 디지털 세계에서 보낸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이미 디지털 세계를 현실과 엄격히 분리해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것 같지만 말이다. 때때로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스마트폰 안의 작고도 큰 세상이 오히려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의 플랫폼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우리의 의식과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학우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나는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이 사람들로 하여금 visual에 집착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그램은 visual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만드는 대표적 플랫폼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피드’만으로 한 사람의 생이 요약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그에 어울리는 이미지들로만 피드를 꾸미기도 한다. 카카오톡은 누군가를 프로필 사진과 배경 사진, 프로필 뮤직, 상태 메시지 한 줄로 파악하게 만든다. 역시나 여기서도 visualizing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사진 한 장에 자신의 센스나 지위, 관계, 취향을 담아내려 애쓰고 또 이를 전시하려는 습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나는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이 사람들로 하여금 visual에 집착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그램은 visual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만드는 대표적 플랫폼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피드’만으로 한 사람의 생이 요약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그에 어울리는 이미지들로만 피드를 꾸미기도 한다. 카카오톡은 누군가를 프로필 사진과 배경 사진, 프로필 뮤직, 상태 메시지 한 줄로 파악하게 만든다. 역시나 여기서도 visualizing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사진 한 장에 자신의 센스나 지위, 관계, 취향을 담아내려 애쓰고 또 이를 전시하려는 습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전윤창2021-04-21 21:52
안녕하세요 정빈님, 그 다큐 저도 봤어요!
그로스해킹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죠.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치밀하게 끌어당겨 판매하는 거대기업들이 메타버스 형태로 다가온다면 어떨런지 상상이 잘 안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묶어두는 수단으로 말씀하신 Visualizing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신호를 옷, 자동차, 집을 통해 드러내곤 했지만, 그걸 누구든 정말 간편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든 거죠. 소셜미디어 세상에서는 시간만 투자한다면 대중의 부러움을 사는 페르소나를 생성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실제로 사진을 찍기 위해 슈퍼카를 하루 렌트한다던지, 포토샵으로 공을 들여 외형을 바꾸는 등이 예가 될 수 있겠죠. 이 전시적 습성은 메타버스에서도 좋은 돈벌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일찌감치 경험했던 것이 이제는 제페토로 더 강력하게 돌아왔습니다.
사실 메타버스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된 것도 정빈님이 보셨다는 <소셜 딜레마> 때문입니다. 온라인 세상에서 주도권을 쥐고있는 기업들이 윤리 도덕적 성찰 없이 수익과 수치로 대중을 대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죠. 학교에서 일찍부터 이런 주제에 대해 다루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상현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디지털 세계는 현실세계와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장단점은 무엇인지 등을요.
그로스해킹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죠.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치밀하게 끌어당겨 판매하는 거대기업들이 메타버스 형태로 다가온다면 어떨런지 상상이 잘 안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묶어두는 수단으로 말씀하신 Visualizing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신호를 옷, 자동차, 집을 통해 드러내곤 했지만, 그걸 누구든 정말 간편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든 거죠. 소셜미디어 세상에서는 시간만 투자한다면 대중의 부러움을 사는 페르소나를 생성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실제로 사진을 찍기 위해 슈퍼카를 하루 렌트한다던지, 포토샵으로 공을 들여 외형을 바꾸는 등이 예가 될 수 있겠죠. 이 전시적 습성은 메타버스에서도 좋은 돈벌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일찌감치 경험했던 것이 이제는 제페토로 더 강력하게 돌아왔습니다.
사실 메타버스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된 것도 정빈님이 보셨다는 <소셜 딜레마> 때문입니다. 온라인 세상에서 주도권을 쥐고있는 기업들이 윤리 도덕적 성찰 없이 수익과 수치로 대중을 대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죠. 학교에서 일찍부터 이런 주제에 대해 다루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상현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디지털 세계는 현실세계와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장단점은 무엇인지 등을요.
박혜송2021-04-22 00:28
안녕하세요, 정빈님! 저도 책을 읽으며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메타버스에서 나타나는 '멀티 페르소나'부분과 관련하여 몇 가지 단상들이 떠올랐던 것 같아, 의견 남깁니다. 저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사람의 특정 단면 혹은 visual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김상균 교수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SNS에서 사람들은 현실의 나에서 추한 모습은 빼고, 이상적인 모습을 더한 특정 '페르소나'를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받는 칭찬들이 뇌의 안식처가 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SNS에서 사람들은 책에서도 지적되었듯 게시물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댓글과 좋아요를 하는 경우들이 많고, 반응과 칭찬은 주로 외면, 혹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sns 페르소나에 대해 이루어집니다 .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소셜 미디어에서 이루어지는 칭찬을 기반으로 한 소통 문화가 바람직하다고 있을지는 고민해볼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소셜 미디어에서, 진정성 여부가 의심되는 칭찬을 주고 받는 것이 본질적 의미의 소통과 교류를 증진하고 있는 것일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SNS에서 사람들은 책에서도 지적되었듯 게시물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댓글과 좋아요를 하는 경우들이 많고, 반응과 칭찬은 주로 외면, 혹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sns 페르소나에 대해 이루어집니다 .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소셜 미디어에서 이루어지는 칭찬을 기반으로 한 소통 문화가 바람직하다고 있을지는 고민해볼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소셜 미디어에서, 진정성 여부가 의심되는 칭찬을 주고 받는 것이 본질적 의미의 소통과 교류를 증진하고 있는 것일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서림2021-04-22 16:04
안녕하세요 정빈님! 저도 스마트폰 기록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저도 빅 플랫폼이 설계한 중독성에서 더이상 헤어나올 수 없는 수준까지 심각해졌다는 생각을 해요.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면서 무엇을 할지는 우선 접속한 후에 찾는다는 것이 플랫폼에 주도권을 뺏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플랫폼을 과연 현실의 공간처럼 신뢰할수는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드네요. 플랫폼은 결국 상업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가 결국 '볼 수 있는' 것은 플랫폼이 '보여주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자각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빅 플랫폼에서의 활동이 그저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채수형2021-04-21 18:05
새로운 세상인 메타버스에 대한 사례를 현대 사회 속 여러 예시들을 소개하면서 메타버스가 무엇이고, 어떤 종류들로 현존하며, 향후에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메타버스라는 말을 딱 들었을 때 증강현실이나, VR체험같은 것들만 떠올렸는데, 방탈출같은 것도 가상공간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되게 의외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현재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사람들이 대면으로 접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몇 년 전에 유행하던 포켓몬고와 같이 직접 밖에 나가서 움직여야하는 증강현실게임은 지금 상황에서는 위험한 것이 되어버렸다. 앞서 말한 방탈출카페 같은 공간도 역시 직접 가서 하는 놀이이기에 아무래도 코로나에 대한 위험의식 때문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가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코로나 상황에서 메타버스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어떠한 방안이 있을까?를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였다.
첫 번째로 오락분야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보았으며, 헌트어킬러라는 사례가 대안의 첫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헌트어킬러란 방탈출을 집에서 할 수 있도록 직접 택배로 단서들을 자택에 보내주어 추리하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물론 증강, 가상현실을 이용한 게임 같은 것도 오락분야에서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는 코로나로 인해 직접 외부장소를 못 가게 된 상황에서 안전하게 메타버스를 향유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두 번째로는 교육과 관련된 분야의 대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대안으로는 책에서 설명한 증강현실이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BMW가 기술교육을 증강현실로 사용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외에도 증강현실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코로나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공간의 제약을 없애준다는 메리트가 코로나시대 이후로 증폭되어 큰 장점으로 다가오고 있는 시대이기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에서 메타버스의 공간이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코로나블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는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어 놓았다. 영업시간이 제한되며 지인들을 편히 만나지도 못하고, 말로만 "코로나 사그라들면 한 번 만나자"고 말을 하며 많은 지인들과의 소통이 차단된 것이 사회적 우울감의 여러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메타버스는 이러한 우울감들을 조금씩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물론 지금의 메타버스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메신저를 활용하거나, 더 발전해서 줌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실제 만나는 것보단 소통이 막혀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VR이나 AR의 발전으로 소통다운 소통을 함으로써 코로나가 만연한 사회에 조금이라도 우울함을 벗어던질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장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 생각된다.
또한 메타버스가 항상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현실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는 역효과도 가진다는 점을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현실과 거울 세계 사이의 조화를 잘 찾는 것이 우리 미래사회의, 그리고 코로나 사태를 맞이한 현대사회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가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코로나 상황에서 메타버스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어떠한 방안이 있을까?를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였다.
첫 번째로 오락분야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보았으며, 헌트어킬러라는 사례가 대안의 첫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헌트어킬러란 방탈출을 집에서 할 수 있도록 직접 택배로 단서들을 자택에 보내주어 추리하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물론 증강, 가상현실을 이용한 게임 같은 것도 오락분야에서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는 코로나로 인해 직접 외부장소를 못 가게 된 상황에서 안전하게 메타버스를 향유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두 번째로는 교육과 관련된 분야의 대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대안으로는 책에서 설명한 증강현실이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BMW가 기술교육을 증강현실로 사용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외에도 증강현실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코로나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공간의 제약을 없애준다는 메리트가 코로나시대 이후로 증폭되어 큰 장점으로 다가오고 있는 시대이기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에서 메타버스의 공간이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코로나블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는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어 놓았다. 영업시간이 제한되며 지인들을 편히 만나지도 못하고, 말로만 "코로나 사그라들면 한 번 만나자"고 말을 하며 많은 지인들과의 소통이 차단된 것이 사회적 우울감의 여러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메타버스는 이러한 우울감들을 조금씩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물론 지금의 메타버스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메신저를 활용하거나, 더 발전해서 줌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실제 만나는 것보단 소통이 막혀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VR이나 AR의 발전으로 소통다운 소통을 함으로써 코로나가 만연한 사회에 조금이라도 우울함을 벗어던질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장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 생각된다.
또한 메타버스가 항상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현실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는 역효과도 가진다는 점을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현실과 거울 세계 사이의 조화를 잘 찾는 것이 우리 미래사회의, 그리고 코로나 사태를 맞이한 현대사회의 숙제가 될 것이다.
손지우2021-04-21 20:18
부끄럽지만 사실 ‘메타버스’라는 용어 자체가 필자에겐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들여다보니, 현대 우리 일상에 녹아있는 카카오톡, 에어비앤비 등부터 시작해 GTA 등을 비롯한 게임 등의 것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책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깊게 공감하며 고민해볼 수 있었던 듯 싶다.
메타버스는 많은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케 해주는 세계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특히 COVID-19로 인해 개인들간,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접촉 또한 감소하는 현 사회에서 사회적 연결에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는 메타버스 세계를 이용해 직접 보지 못할 지라도 타인과 소통함으로써 사회에 속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며, 필자의 말처럼 메타버스는 교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단이자 세계를 제공함으로써 현실의 끈을 좀 더 단단히 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 세계는 종종, 마찬가지로 언급되었듯, 소통의 효율성을 주는 대신 깊은 소통을 저해하고 이로 인한 피로감을 유발하며, 외에도 메타버스세상에서의 소유권 문제, NPC 및 인공지능의 인권 문제, 폭발하는 공격성 문제 등이 존재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 오프닝을 보면 저자가 “낙원으로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라는 단테 일리기에리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소 스스로가 느껴웠던, 그리고 책에서 제기되고 있는 메타버스 세상의 문제점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저자의 문제 제기는 ‘NPC 및 인공지능의 인권’에 관한 부분이었다. 필자는 주로 ‘메이플스토리’ 라거나 ‘테라’ 등의 RPG 게임을 즐기는데, 이러한 게임들을 즐기는 것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겠으나, 특히 게임의 중심 이야기 흐름을 담고 있는 ‘필수 퀘스트’들을 순서에 따라 해결하며 NPC들의 사연과 게임 전체의 플롯을 파악하는 것을 선호한다. 어쩌면 어렸던 시절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메이플스토리’를 인생의 첫 게임으로 시작하며 관련한 만화책을 읽었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을 모티브로 당시 출판되었던 만화책에서는 게임 속 있던 여러 캐릭터들의 삶과 모험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고, 분명 게임과 만화책 속의,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만들어진 것들임을 알면서도 뭔지 모를 친밀감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아이가 인형에 이름을 붙여주고 인격이 있다 믿으며 친구로 대하는, 인형은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입에 간식을 들이대는 마음과 마찬가지인 학령전기의 흔한 사고방식에 기반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건, 필자는 여전히 RPG 게임을 할 때마다 인물들의 사연이 재밌고, 자주 보는 NPC에게는 왜인지 정을 붙이는 듯도 하다. 이런 스스로의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탓인지, 처음 GTA라는 게임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남동생이 해당 게임을 하고 있기에 옆에서 흘끗 쳐다 보았던 것이 해당 게임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는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남동생의 캐릭터는 게임 속에서 여성을 폭행해 살해하고, 그 시체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그 차를 운전해 사람들을 치며 경찰들로부터 도망을 가고 있었다. 잔뜩 흥분해서 게임을 하며 일부러 도망가는 사람들을 더 차로 치려 격하게 운전을 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머리가 멍해졌던 것이 생생하다. 큰 충격에 무슨 이런 게임을 하는 거냐며 동생에게 소리를 쳤더니 동생은 ‘이건 그저 게임일 뿐인데 흥분하는 누나가 이상하다’라고 뚱해져 대답을 했었다. 동생의 도덕관 등에 대한 걱정도 되었을 테지만 그 순간 내가 느꼈던 불쾌감은 어쩌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대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뭐든지 내키는 대로 하려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역겨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보다 훨씬 발달한 현대의 메타버스는 점차로 정교하고 생생해지고 있다. 좁게는 NPC에게 휴머노이드에게는 할 수 없는 거침없는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그리해도 괜찮은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넓게는 어떤 세계관과 상호작용을 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한 저자의 질문에 대한 학우들의 답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메타버스는 많은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케 해주는 세계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특히 COVID-19로 인해 개인들간,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접촉 또한 감소하는 현 사회에서 사회적 연결에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는 메타버스 세계를 이용해 직접 보지 못할 지라도 타인과 소통함으로써 사회에 속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며, 필자의 말처럼 메타버스는 교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단이자 세계를 제공함으로써 현실의 끈을 좀 더 단단히 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 세계는 종종, 마찬가지로 언급되었듯, 소통의 효율성을 주는 대신 깊은 소통을 저해하고 이로 인한 피로감을 유발하며, 외에도 메타버스세상에서의 소유권 문제, NPC 및 인공지능의 인권 문제, 폭발하는 공격성 문제 등이 존재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 오프닝을 보면 저자가 “낙원으로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라는 단테 일리기에리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소 스스로가 느껴웠던, 그리고 책에서 제기되고 있는 메타버스 세상의 문제점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저자의 문제 제기는 ‘NPC 및 인공지능의 인권’에 관한 부분이었다. 필자는 주로 ‘메이플스토리’ 라거나 ‘테라’ 등의 RPG 게임을 즐기는데, 이러한 게임들을 즐기는 것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겠으나, 특히 게임의 중심 이야기 흐름을 담고 있는 ‘필수 퀘스트’들을 순서에 따라 해결하며 NPC들의 사연과 게임 전체의 플롯을 파악하는 것을 선호한다. 어쩌면 어렸던 시절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메이플스토리’를 인생의 첫 게임으로 시작하며 관련한 만화책을 읽었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을 모티브로 당시 출판되었던 만화책에서는 게임 속 있던 여러 캐릭터들의 삶과 모험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고, 분명 게임과 만화책 속의,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만들어진 것들임을 알면서도 뭔지 모를 친밀감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아이가 인형에 이름을 붙여주고 인격이 있다 믿으며 친구로 대하는, 인형은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입에 간식을 들이대는 마음과 마찬가지인 학령전기의 흔한 사고방식에 기반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건, 필자는 여전히 RPG 게임을 할 때마다 인물들의 사연이 재밌고, 자주 보는 NPC에게는 왜인지 정을 붙이는 듯도 하다. 이런 스스로의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탓인지, 처음 GTA라는 게임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남동생이 해당 게임을 하고 있기에 옆에서 흘끗 쳐다 보았던 것이 해당 게임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는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남동생의 캐릭터는 게임 속에서 여성을 폭행해 살해하고, 그 시체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그 차를 운전해 사람들을 치며 경찰들로부터 도망을 가고 있었다. 잔뜩 흥분해서 게임을 하며 일부러 도망가는 사람들을 더 차로 치려 격하게 운전을 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머리가 멍해졌던 것이 생생하다. 큰 충격에 무슨 이런 게임을 하는 거냐며 동생에게 소리를 쳤더니 동생은 ‘이건 그저 게임일 뿐인데 흥분하는 누나가 이상하다’라고 뚱해져 대답을 했었다. 동생의 도덕관 등에 대한 걱정도 되었을 테지만 그 순간 내가 느꼈던 불쾌감은 어쩌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대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뭐든지 내키는 대로 하려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역겨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보다 훨씬 발달한 현대의 메타버스는 점차로 정교하고 생생해지고 있다. 좁게는 NPC에게 휴머노이드에게는 할 수 없는 거침없는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그리해도 괜찮은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넓게는 어떤 세계관과 상호작용을 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한 저자의 질문에 대한 학우들의 답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최동익2021-04-21 22:01
안녕하세요, 손지우님. 사실 저도 ‘메타버스’라는 말이 낯설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미 일상에 꽉 차 있는 낯익은 세계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돌이켜보면, 저도 초등학생 때에는 게임 속 캐릭터들에게 쉽게 정을 줬었는데, 저만 그러지 않았다니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순수했다는 생각도 들어 여러모로 공감이 갔습니다.
GTA 사례를 들어주셨는데, 뭐든지 허락된다는 게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다만 게임도 영화처럼 심의 등급을 매기는 만큼 GTA가 초등학생이 즐기라고 만든 게임은 분명 아닐 텐데, 쉽게 접할 수 있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이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저의 경우에는 시각적 요소가 강해선지 게임을 영화와 비교해보게 됩니다. 영화도 때때로 논란이 되는 문제작들이 있지만 우리는 주로 그 세계의 창조자인 감독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관객의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영화를 다분히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입장이니까요. 반면 게임은 내가 해당 세계를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캐릭터를 움직이는 건 나이므로 조금은 더 책임의 여지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메타버스가 이후에 고도화되어서 인간과 꼭 닮은 모습의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두 가지 제약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메타버스 내의 데이터에 불과한 만큼 그에 대해 폭력을 가하더라도 현실에서 법적 처분을 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덕적 비난, 우려는 당연히 가능하겠으나 그 이상의 처분은 지나친 제약일 것 같습니다. 이상적이지만, 현실 세계의 사법 기관을 메타버스에도 넣어 가해자에게 메타버스 내에 국한하여 현실과 비슷한 수준의 처분을 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보다 나아가 인간과 같은 모습의 데이터에 대해서는, 제작사 등이 좀 더 엄격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형태의 데이터를 쓰고 싶다면 꼭 필요한 자리에 쓴다든가, 인간의 경우에는 그 자신의 존엄을 해칠 기능을 넣지 않는다든가 등의 제약을 정부 차원에서 권고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GTA 사례를 들어주셨는데, 뭐든지 허락된다는 게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다만 게임도 영화처럼 심의 등급을 매기는 만큼 GTA가 초등학생이 즐기라고 만든 게임은 분명 아닐 텐데, 쉽게 접할 수 있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이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저의 경우에는 시각적 요소가 강해선지 게임을 영화와 비교해보게 됩니다. 영화도 때때로 논란이 되는 문제작들이 있지만 우리는 주로 그 세계의 창조자인 감독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관객의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영화를 다분히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입장이니까요. 반면 게임은 내가 해당 세계를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캐릭터를 움직이는 건 나이므로 조금은 더 책임의 여지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메타버스가 이후에 고도화되어서 인간과 꼭 닮은 모습의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두 가지 제약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메타버스 내의 데이터에 불과한 만큼 그에 대해 폭력을 가하더라도 현실에서 법적 처분을 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덕적 비난, 우려는 당연히 가능하겠으나 그 이상의 처분은 지나친 제약일 것 같습니다. 이상적이지만, 현실 세계의 사법 기관을 메타버스에도 넣어 가해자에게 메타버스 내에 국한하여 현실과 비슷한 수준의 처분을 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보다 나아가 인간과 같은 모습의 데이터에 대해서는, 제작사 등이 좀 더 엄격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형태의 데이터를 쓰고 싶다면 꼭 필요한 자리에 쓴다든가, 인간의 경우에는 그 자신의 존엄을 해칠 기능을 넣지 않는다든가 등의 제약을 정부 차원에서 권고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동익2021-04-21 21:04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메타버스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여러 세계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로, ASF에 따르면 증강현실 세계 / 라이프로깅 세계 / 거울 세계 / 가상 세계로 분류됩니다. 저자는 풍부한 실례를 바탕으로 이러한 세계들이 어떻게 구현되어 왔는지 상세히 설명합니다. 또한 메타버스가 지니는 가치를 여러 방면에서 조망함으로써 디지털 세계가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무 목적 없이도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중 목적 없음에 대해서는 보다 할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따금 목적에 맞춰 자신 앞에 놓인 여러 선택지들을 숫자로 바꾸어 그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매깁니다. 당장 시급한 일에 몰두하다 보면 목적에 맞지 않아 후순위에 놓인 일들은 쉽게 잊힙니다. 인간관계로 친다면 가족끼리의 식사, 각자 바쁜 친구들이 그러하고 일상으로 친다면 봄바람이나 따스한 햇살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며 오히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들을 대하는 일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여러 목적들로 빼곡한 세상이지만, 기초를 이루는 본질들은 목적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를 목적을 바탕으로 좀 더 비교해보았습니다. 우선 현실 세계에 비해 메타버스에서는 제작자의 의도가 명확하게 반영되어 있곤 합니다. 특히 거울 세계에서 그러할 텐데, 책에서 예시로 들고 있는 ‘에어비앤비’나 ‘배달의 민족’ 같은 경우에는 각기 숙박과 식사를 담당합니다. 이는 현실의 숙박업소 중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에 레스토랑이 부대시설로 존재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호텔도 숙박을 주 기능으로 하지만, 현실에서 특정 목적을 담당하는 공간들은 스스로를 고급화하기 위해 종합적인 체험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간략하게 덧붙인다면 작년 ‘여기어때’가 ‘망고플레이트’를 인수한 점이나 흔히 대작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이 메인 스토리 외에 이것저것 여러 크고 작은 요소들을 추가하는 점도 이와 통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해당 목적을 이루는 데에 걸리는 시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가상 세계에서 특히 그러한데, 요즘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암호화폐도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암호화폐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주식에 관해 볼 수 있던 그래프를 똑같이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주식에 대해서는 일봉, 주봉, 월봉을 제공하는 반면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분봉, 10분봉, 1시간봉 등을 제공합니다.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 초단기간 성취에 대한 바람이 있었고 암호화폐 거래를 통해 해당 바람이 구현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증강현실 세계에 대한 장에서 끝 부분에 짧게 다뤄지는 ‘콩깍지’ 문제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SF작가 테드 창은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라는 작품에서 전기 자극을 통해 심미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장치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다룹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은 분명 우리 인간에게 있어 소중하지만, 지적되는 대로 만일 과학 기술이 발달해 아름다움이 지나치게 보편화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령 게임이 그러하고 암호화폐가 그러하듯이, 즉각적인 아름다움이 추구될 듯합니다. 렌즈만 끼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을 테고, 홀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위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시간이 지나며 쌓이는 가치들, 인간관계에서의 우정, 사랑 등이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또한 이렇게 미가 범람하게 된다면 인간 욕구에도 불구하고 반대급부로 심미적 판단을 막아주는 장치가 정말 개발되고 보편화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짧은 생각으로는 스포츠에서의 도핑 검사와 같은 형태로, 회사 면접 등과 같은 자리에서는 그러한 장치가 도입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중 목적 없음에 대해서는 보다 할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따금 목적에 맞춰 자신 앞에 놓인 여러 선택지들을 숫자로 바꾸어 그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매깁니다. 당장 시급한 일에 몰두하다 보면 목적에 맞지 않아 후순위에 놓인 일들은 쉽게 잊힙니다. 인간관계로 친다면 가족끼리의 식사, 각자 바쁜 친구들이 그러하고 일상으로 친다면 봄바람이나 따스한 햇살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며 오히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들을 대하는 일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여러 목적들로 빼곡한 세상이지만, 기초를 이루는 본질들은 목적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를 목적을 바탕으로 좀 더 비교해보았습니다. 우선 현실 세계에 비해 메타버스에서는 제작자의 의도가 명확하게 반영되어 있곤 합니다. 특히 거울 세계에서 그러할 텐데, 책에서 예시로 들고 있는 ‘에어비앤비’나 ‘배달의 민족’ 같은 경우에는 각기 숙박과 식사를 담당합니다. 이는 현실의 숙박업소 중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에 레스토랑이 부대시설로 존재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호텔도 숙박을 주 기능으로 하지만, 현실에서 특정 목적을 담당하는 공간들은 스스로를 고급화하기 위해 종합적인 체험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간략하게 덧붙인다면 작년 ‘여기어때’가 ‘망고플레이트’를 인수한 점이나 흔히 대작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이 메인 스토리 외에 이것저것 여러 크고 작은 요소들을 추가하는 점도 이와 통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해당 목적을 이루는 데에 걸리는 시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가상 세계에서 특히 그러한데, 요즘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암호화폐도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암호화폐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주식에 관해 볼 수 있던 그래프를 똑같이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주식에 대해서는 일봉, 주봉, 월봉을 제공하는 반면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분봉, 10분봉, 1시간봉 등을 제공합니다.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 초단기간 성취에 대한 바람이 있었고 암호화폐 거래를 통해 해당 바람이 구현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증강현실 세계에 대한 장에서 끝 부분에 짧게 다뤄지는 ‘콩깍지’ 문제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SF작가 테드 창은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라는 작품에서 전기 자극을 통해 심미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장치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다룹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은 분명 우리 인간에게 있어 소중하지만, 지적되는 대로 만일 과학 기술이 발달해 아름다움이 지나치게 보편화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령 게임이 그러하고 암호화폐가 그러하듯이, 즉각적인 아름다움이 추구될 듯합니다. 렌즈만 끼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을 테고, 홀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위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시간이 지나며 쌓이는 가치들, 인간관계에서의 우정, 사랑 등이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또한 이렇게 미가 범람하게 된다면 인간 욕구에도 불구하고 반대급부로 심미적 판단을 막아주는 장치가 정말 개발되고 보편화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짧은 생각으로는 스포츠에서의 도핑 검사와 같은 형태로, 회사 면접 등과 같은 자리에서는 그러한 장치가 도입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지수2021-04-21 21:12
책을 읽기 전, 메타버스라고 하면 먼저 3차원 가상세계를 떠올렸고, 가장 먼저 떠오른 예시는 심즈였다. 3차원으로 구현된 캐릭터들이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는 심즈는 거울 세계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카카오톡과 같은 단순한 디지털 기반 온라인 공간에 더해서 물리적으로 실재하지만 현실과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어 분리되어 있는 세계 역시 메타버스라고 설명한다. '상호작용'을 메타버스 정의의 중심으로 잡고, 폭 넓게 정의하여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특히 스틸 뱅크시의 사례는 독특했다. 메타버스 구현을 위해서 어떠한 인터넷, 기계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트 시리즈 호텔을 현실 속 물리적 공간내에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여 현실과 분리된 또 다른 세계로 만들었다. 이 역시 넓은 의미의 메타버스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도 메타버스라면, 전자책에 존재하는 책 속의 세계도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을까. 독자가 참여해서 스토리 전개를 바꿀 수는 없지만, 독자는 스토리를 받아들이며 머릿속으로 새로운 가상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구현되지 않았고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니 사람의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은 메타버스라고 칭할 수 없는 것일까? 이를 온전히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확실히 메타버스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너무 폭넓게 생각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관련하여 학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지금보다 더 진보한 메타버스가 도입되고, 일상에 스며들게 된다면, 벌어질 일들에 설렘보다는 걱정이 먼저 든다. 메타버스는 결코 물리적인 세계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끼게 도와주는 보조적인 도구일 것이다. 우리는 가상세계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 코로나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대면수업을 진행하게 만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인간은 육체를 사용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소아비만 수준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만은 여러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장기적으로 사람의 인적자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화 <월-E>에서 그린 미래의 인류의 모습을 현실성이 없다 여겼었는데, 비만 관련 시사를 접한 후 실현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도 아니겠거니 싶었다.
윤리적인 문제 역시 발생할 것이다. 책의 71쪽에서는 '메타버스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 세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증강현실이라는 이유로, 현실 세계에 실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메타버스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가 용인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롤 캐릭터로 구성된 K/DA라는 그룹의 캐릭터들이 음란물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관련된 사회적 합의도, 법규도 없기에 논란이 많다. 관련된 합의와 제도가 하루 빨리 정립되기를 바란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도 메타버스라면, 전자책에 존재하는 책 속의 세계도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을까. 독자가 참여해서 스토리 전개를 바꿀 수는 없지만, 독자는 스토리를 받아들이며 머릿속으로 새로운 가상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구현되지 않았고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니 사람의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은 메타버스라고 칭할 수 없는 것일까? 이를 온전히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확실히 메타버스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너무 폭넓게 생각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관련하여 학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지금보다 더 진보한 메타버스가 도입되고, 일상에 스며들게 된다면, 벌어질 일들에 설렘보다는 걱정이 먼저 든다. 메타버스는 결코 물리적인 세계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끼게 도와주는 보조적인 도구일 것이다. 우리는 가상세계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 코로나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대면수업을 진행하게 만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인간은 육체를 사용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소아비만 수준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만은 여러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장기적으로 사람의 인적자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화 <월-E>에서 그린 미래의 인류의 모습을 현실성이 없다 여겼었는데, 비만 관련 시사를 접한 후 실현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도 아니겠거니 싶었다.
윤리적인 문제 역시 발생할 것이다. 책의 71쪽에서는 '메타버스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 세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증강현실이라는 이유로, 현실 세계에 실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메타버스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가 용인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롤 캐릭터로 구성된 K/DA라는 그룹의 캐릭터들이 음란물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관련된 사회적 합의도, 법규도 없기에 논란이 많다. 관련된 합의와 제도가 하루 빨리 정립되기를 바란다.
윤서영2021-04-21 23:14
지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전자책 속의 세계는 메타버스일지에 대한 물음이 인상 깊었습니다. 책에서 제시되는 메타버스 개념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보니, 어디까지 경계를 그어 이를 정의해야 할지 약간의 의문이 남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소통, 공유,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해야 메타버스라 칭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말씀하신 대로 시각적으로든,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든, 무언가 실체를 구현해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메타버스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 세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라는 구절에 대한 지수님의 생각에 저 또한 동의합니다. 덧붙여 이용자가 메타버스 세계와 현실 세계를 동시에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결국 메타버스 안에서 사용자가 어떤 일을 겪는다면 그 사건이 현실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교육, 현실 세계에서의 사회적 파장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면, 메타버스가 확장되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도가 높아질수록 그 안에서의 합의와 제도 정립이 더욱 절실해보입니다.
전자책 속의 세계는 메타버스일지에 대한 물음이 인상 깊었습니다. 책에서 제시되는 메타버스 개념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보니, 어디까지 경계를 그어 이를 정의해야 할지 약간의 의문이 남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소통, 공유,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해야 메타버스라 칭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말씀하신 대로 시각적으로든,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든, 무언가 실체를 구현해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메타버스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 세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라는 구절에 대한 지수님의 생각에 저 또한 동의합니다. 덧붙여 이용자가 메타버스 세계와 현실 세계를 동시에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결국 메타버스 안에서 사용자가 어떤 일을 겪는다면 그 사건이 현실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교육, 현실 세계에서의 사회적 파장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면, 메타버스가 확장되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도가 높아질수록 그 안에서의 합의와 제도 정립이 더욱 절실해보입니다.
이은비2021-04-22 10:44
안녕하세요 지수님!
개인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은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신 부분이 흥미로워 댓글 달게 되었습니다.
저도 서영님과 같은 생각으로, 개인의 상상을 시각적인 요소로 온전히 구현할 수 있어야 메타버스라고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수님의 댓글을 읽고보니 가까운 미래에는 개인의 상상을 즉각적으로 메타버스로 구현할 수 있게끔 전환하는 장치(?)가 출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개개인이 형성한 메타버스에서 다양한 사용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현재보다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흥미로운 질문 던져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개인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은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신 부분이 흥미로워 댓글 달게 되었습니다.
저도 서영님과 같은 생각으로, 개인의 상상을 시각적인 요소로 온전히 구현할 수 있어야 메타버스라고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수님의 댓글을 읽고보니 가까운 미래에는 개인의 상상을 즉각적으로 메타버스로 구현할 수 있게끔 전환하는 장치(?)가 출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개개인이 형성한 메타버스에서 다양한 사용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현재보다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흥미로운 질문 던져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재용2021-04-21 21:18
생각해보면 난 살아오면서 정말 많고도 다양한 메타버스를 접했다. 특히 보다 현실적이고 자유롭게 게임속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전에 어쌔신 크리드 등의 게임을 즐겨했었다(특히 영화 반지의 제왕에 푹 빠져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게임을 찾기 위해 엄청난 서칭을 했었다). 게임 속에선 내 모든 행동에 있어 크게 제약이 되는 것이 없었고, 현실 속에선 갈 수 없는 곳들을 보고 여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항상 들었던 생각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뉴질랜드 등의 방대한 자연을 내 마음대로 누빌 수 있도록 그대로 게임 또는 가상현실을 구현하고 그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면 하는 것이었다.
메타버스 속의 법과 윤리는 메타버스를 우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가장 큰 주요 관심사이자 논쟁거리이다. 사람들은 메타버스의 가장 큰 매력으로 ‘현실과는 다른, 현실에서는 겪을 수 없는, 현실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다’를 뽑을 것이다. 영화 [인셉션]은 메타버스와는 약간 다르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꿈”이라는 인간의 무의식 세상으로의 접근을 자유자제로 통제하여 모든 것이 가능한 또다른 세상을 만든다는 것에 있어 메타버스와 매우 흡사하다. 특히 꿈은 우리의 뇌의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음과 동시에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 꿈에 빠져 현실과 구분하지 못해 현실에서 자살을 하거나, 꿈을 현실로 착각해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메타버스가 점점 현실 세계를 그대로 모방함과 동시에 모든 이벤트의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면 영화처럼 ‘메타버스’ 중독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발생할 것이다. 또한 현실에 있더라도 메타버스의 자유를 현실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착각에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메타버스를 통제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첫째, 만약 메타버스 중독으로 인해 현실에서 범죄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것이란 가정에 메타버스를 현실과 같은 수준으로 통제하게 된다면 메타버스의 존재 의미 자체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메타버스를 찾지 않게 될 것이고, 메타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 또한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소셜 네트워킹부터 시작해서 게임, 가상현실 등의 다양한 형태의 메타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모든 메타버스를 제재하는 법안 등을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메타버스 세상을 컨트롤하기엔 메타버스는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대중화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윤리적인 모습을 메타버스 내에서도 보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상균 교수님은 ‘메타버스는 메타버스를 만드는 이와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숙제’라고 책에서 언급하셨다. 메타버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쉽게도 이를 숙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메타버스의 판타지적인 면만 보고 메타버스를 누비는 사람들 또한 매우 많다. 이를 메타버스를 만드는 이들이 과연 어느 정도 막아설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유토피아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타버스가 결국엔 디스토피아로 치닫을 것인지 궁금하다.
메타버스 속의 법과 윤리는 메타버스를 우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가장 큰 주요 관심사이자 논쟁거리이다. 사람들은 메타버스의 가장 큰 매력으로 ‘현실과는 다른, 현실에서는 겪을 수 없는, 현실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다’를 뽑을 것이다. 영화 [인셉션]은 메타버스와는 약간 다르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꿈”이라는 인간의 무의식 세상으로의 접근을 자유자제로 통제하여 모든 것이 가능한 또다른 세상을 만든다는 것에 있어 메타버스와 매우 흡사하다. 특히 꿈은 우리의 뇌의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음과 동시에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 꿈에 빠져 현실과 구분하지 못해 현실에서 자살을 하거나, 꿈을 현실로 착각해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메타버스가 점점 현실 세계를 그대로 모방함과 동시에 모든 이벤트의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면 영화처럼 ‘메타버스’ 중독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발생할 것이다. 또한 현실에 있더라도 메타버스의 자유를 현실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착각에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메타버스를 통제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첫째, 만약 메타버스 중독으로 인해 현실에서 범죄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것이란 가정에 메타버스를 현실과 같은 수준으로 통제하게 된다면 메타버스의 존재 의미 자체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메타버스를 찾지 않게 될 것이고, 메타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 또한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소셜 네트워킹부터 시작해서 게임, 가상현실 등의 다양한 형태의 메타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모든 메타버스를 제재하는 법안 등을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메타버스 세상을 컨트롤하기엔 메타버스는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대중화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윤리적인 모습을 메타버스 내에서도 보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상균 교수님은 ‘메타버스는 메타버스를 만드는 이와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숙제’라고 책에서 언급하셨다. 메타버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쉽게도 이를 숙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메타버스의 판타지적인 면만 보고 메타버스를 누비는 사람들 또한 매우 많다. 이를 메타버스를 만드는 이들이 과연 어느 정도 막아설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유토피아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타버스가 결국엔 디스토피아로 치닫을 것인지 궁금하다.
탈퇴한 회원2021-04-22 10:46
재용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영화 인셉션 재밌게 봤었습니다. 인셉션과 메타버스의 유사한 특징들을 언급해 주시면서 메타버스의 역기능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메타버스라는 개념과 기술력이 지금은 매우 초창기 수준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들어와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기술이 발전할지, 또 그 기술이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과 발전 속도에 비해서 윤리나 규칙 체계는 아직 미비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또 말씀해주신 메타버스 중독으로 인한 현실에서의 범죄가능성도 있겠지만 메타버스가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부분으로 영향을 미칠 때에는 메타버스 안에서의 비윤리적인 행동이나 범죄 등도 매우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언급해주신대로 모든 메타버스를 일괄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법안 등은 사실 좀 힘들 수 있겠으나,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메타버스 전체를 아우르는 대원칙 정도의 틀은 사실 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원칙에는 무엇이 있을지, 어떻게 만들어가야할지는 우리가 고민해나가야할 부분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영화 인셉션 재밌게 봤었습니다. 인셉션과 메타버스의 유사한 특징들을 언급해 주시면서 메타버스의 역기능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메타버스라는 개념과 기술력이 지금은 매우 초창기 수준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들어와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기술이 발전할지, 또 그 기술이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과 발전 속도에 비해서 윤리나 규칙 체계는 아직 미비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또 말씀해주신 메타버스 중독으로 인한 현실에서의 범죄가능성도 있겠지만 메타버스가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부분으로 영향을 미칠 때에는 메타버스 안에서의 비윤리적인 행동이나 범죄 등도 매우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언급해주신대로 모든 메타버스를 일괄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법안 등은 사실 좀 힘들 수 있겠으나,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메타버스 전체를 아우르는 대원칙 정도의 틀은 사실 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원칙에는 무엇이 있을지, 어떻게 만들어가야할지는 우리가 고민해나가야할 부분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원재희2021-04-21 21:20
인간의 역사는 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들로 가득차있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런 것 같다. 특히 인간은 자신들의 '세계'를 확장시켜왔다. 아프리카 지역부터 나타난 최초의 인류는 점점 동쪽으로, 주변부로 이동하여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해나갔고, 15세기 즈음에는 새로운 대륙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고, 20세기부터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도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물리적 세계라는 틀을 깨고 '메타버스'라고 불리는 디지털 세계로까지 확장되었다. 현실의 물리적 세계에 비해 그 영역이 무한히 확장 가능하고, 여러 면에서 제한이 작다는 점에서 메타버스는 대단히 큰 가능성을 지니고, 유수한 기업들이 앞다투어 메타버스 관련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단어의 정의를 들었을 때 떠올랐던 이미지는 책에서 소개된 메타버스의 네 가지 종류 중 하나인 가상세계뿐이었다. 인터넷 게임조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는 그 가상세계가 매우 낯설고 멀게 느껴졌고 덩달아 메타버스 또한 나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그런데 '세계'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답게, 메타버스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다양한 종류와 면모를 내게 보여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런 것도 메타버스라고?'였다. 짧게나마 책에서 소개된 네 종류의 메타버스를 다양한 기준에 따라 분류 및 나열하며 그 특성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모두 저의 주관적 예측에 따른 분류 및 나열입니다.)
1) 현실 투영 vs 만들어진 세계
전자에는 증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 세계가 해당되고, 후자에는 가상현실 세계가 해당된다.
2) 현실에 영향을 주는 정도(현실과 상호작용 하는 정도)
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라이프로깅 세계<거울세계
3) 자아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정도
거울세계<라이프로깅 세계<증강현실 세계<가상세계
(위의 주관적 판단에 따르면 2와 3은 상호 반비례하는 듯함)
4)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사용되는 빈도
라이프로깅 세계>거울세계>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
5) 익명의 강도
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라이프로깅 세계>거울세계
6) 이용자 중 젊은 층의 비율
증강현실세계>라이프로깅 세계>가상세계>거울세계
7) 범죄 발생 가능성의 정도
라이프로깅 세계<거울세계<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
8) 상업적 이용의 활성화 정도
거울세계>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라이프로깅 세계
9) 공익적 목적에 의한 이용의 활성화 정도
거울세계>증강현실 세계>가상세계>라이프로깅 세계
10) 가장 수명이 길 것 같은 순서
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거울 세계>라이프로깅 세계
.
.
.
대강 10가지 정도로만 기준을 잡아 비교를 해보아도, 확연히 메타버스 내에서도 서로 다른 기준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층위에 놓여 묶이는 세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 주관에 따라 분류를 해본 것인데,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제가 정한 기준에 따른 분류의 결과와 생각이 같으신가요? 아니라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또다른 분류기준이 있다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현실 투영 vs 만들어진 세계
전자에는 증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 세계가 해당되고, 후자에는 가상현실 세계가 해당된다.
2) 현실에 영향을 주는 정도(현실과 상호작용 하는 정도)
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라이프로깅 세계<거울세계
3) 자아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정도
거울세계<라이프로깅 세계<증강현실 세계<가상세계
(위의 주관적 판단에 따르면 2와 3은 상호 반비례하는 듯함)
4)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사용되는 빈도
라이프로깅 세계>거울세계>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
5) 익명의 강도
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라이프로깅 세계>거울세계
6) 이용자 중 젊은 층의 비율
증강현실세계>라이프로깅 세계>가상세계>거울세계
7) 범죄 발생 가능성의 정도
라이프로깅 세계<거울세계<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
8) 상업적 이용의 활성화 정도
거울세계>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라이프로깅 세계
9) 공익적 목적에 의한 이용의 활성화 정도
거울세계>증강현실 세계>가상세계>라이프로깅 세계
10) 가장 수명이 길 것 같은 순서
가상세계>증강현실 세계>거울 세계>라이프로깅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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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10가지 정도로만 기준을 잡아 비교를 해보아도, 확연히 메타버스 내에서도 서로 다른 기준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층위에 놓여 묶이는 세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 주관에 따라 분류를 해본 것인데,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제가 정한 기준에 따른 분류의 결과와 생각이 같으신가요? 아니라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또다른 분류기준이 있다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윤창2021-04-21 21:42
메타버스가 새로운 세계라 경험치가 별로 쌓이지 않은 관계로 에세이를 쓸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댓글을 씁니다.
전반적으로 메타버스의 개념과 현재 진행방향을 톺아보기 좋은 책입니다. 필자는 특히 라이프로깅 챕터를 눈여겨 읽었습니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메타버스 속 라이프로깅은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주인공이 우연히 존 말코비치라는 배우(이름은 아마 스크린에서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빙의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고 이걸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빙의체험 상품을 판매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를 담았습니다. 말그대로 "존 말코비치 되기"인 것이죠. 영화에서는 존 말코비치를 한 번 경험한 사람들은 헤어나오지 못하고 금단 증상 비슷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간 한정으로 자기 신체에 묶여있는 감각 인지의 세계가 타인으로도 확장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강력한 경험에 시간과 자산을 쏟게 될 겁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대리여행자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어떤 컨텐츠를 제작할 필요 없이 Sender를 끼고 여행을 하면 Reciever를 낀 사람들이 집에 앉아 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겁니다. 더 극단적인 형태로 진행되면 다음과 같은 상상이 가능합니다.
책에도 등장한 <사이버펑크 2077>이 상상한 2077년은 BD, 브레인댄스라는 전자마약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브레인댄스는 임플란트를 장착한 사람의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과 감정 등의 다양한 정보를 녹화하여, 다른 사람이 신경 전달을 통해 그 사건을 동일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이는 상류층의 삶을 가상 체험하거나 전투 훈련, 포르노, 광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나무위키). 그리고 이런 기록물은 불필요한 감정이나 장면들이 섞여들어가기 마련인데, 이를 수정하는 편집자들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포르노 배우가 실제 정사를 즐기지 않았다고 하면, 편집자가 그 감정을 쾌감으로 조작하는 것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전자마약에 취해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는 이런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예고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BD 컨텐츠 중 포르노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초창기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했을 때도 수익화를 가장 먼저 시작한 것도 플레이보이였습니다. 당시 플레이보이의 보안은 세계 최고를 자랑했으며, 지금도 사용되는 많은 보안기술, 인터넷 수익모델이 플레이보이 사이트에서 시작됐다고 하죠. VR이 깨어나고 있는 지금도 포르노 업계가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VR컨텐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감각과 감정만 전달할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겁니다. 고도로 발달한 가상현실이 현실의 인간들이 매력을 먹어치우는 것은 아닐지 걱정됩니다.
마지막으로 잠깐 아쉬웠던 부분을 언급하며 끝내겠습니다. 워낙 다양한 면모를 다룬 탓에 다소 근거가 빈약해보이는 주장들이 종종 보였습니다. 라이프로깅 챕터 중에 메타버스에서는 외로움이 없다라는 주장이 등장하는데, 제시한 근거 2가지가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주장을 검증하는 것보다 제시한 화두에 더 집중해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있게 보는 주제입니다. 메타버스가 사람들을 외롭게 할까요? 사람들의 정서인식 발달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개인적으로 아직은 매우 회의적입니다. 지금의 메타버스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의사소통 방식이 편집되어 전송됩니다. 제페토나 포트나이트에서는 현실세계 정도의 감정 인식이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신호가 없고, 이는 발달에도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뇌는 특별하게 얼굴만 인식하는 방추상회라는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얼굴표정의 다양한 신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영역에서 이를 해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비언어적 메세지가 의사소통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메타버스는 사람들이 보내는 즉각적 감정의 신호를 편집해서 전송합니다. 제페토나 포트나이트에서 사람의 미세한 감정 신호는 매우 단순하게 전송됩니다. 추측입니다만, 이런 세계 속에 자란 사람이라면 타인의 정서에 매우 둔감할 수 있습니다. 즉, 연대에 필수적 요소인 공감 능력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우려됩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관련 연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군요..!
전반적으로 메타버스의 개념과 현재 진행방향을 톺아보기 좋은 책입니다. 필자는 특히 라이프로깅 챕터를 눈여겨 읽었습니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메타버스 속 라이프로깅은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주인공이 우연히 존 말코비치라는 배우(이름은 아마 스크린에서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빙의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고 이걸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빙의체험 상품을 판매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를 담았습니다. 말그대로 "존 말코비치 되기"인 것이죠. 영화에서는 존 말코비치를 한 번 경험한 사람들은 헤어나오지 못하고 금단 증상 비슷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간 한정으로 자기 신체에 묶여있는 감각 인지의 세계가 타인으로도 확장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강력한 경험에 시간과 자산을 쏟게 될 겁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대리여행자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어떤 컨텐츠를 제작할 필요 없이 Sender를 끼고 여행을 하면 Reciever를 낀 사람들이 집에 앉아 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겁니다. 더 극단적인 형태로 진행되면 다음과 같은 상상이 가능합니다.
책에도 등장한 <사이버펑크 2077>이 상상한 2077년은 BD, 브레인댄스라는 전자마약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브레인댄스는 임플란트를 장착한 사람의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과 감정 등의 다양한 정보를 녹화하여, 다른 사람이 신경 전달을 통해 그 사건을 동일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이는 상류층의 삶을 가상 체험하거나 전투 훈련, 포르노, 광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나무위키). 그리고 이런 기록물은 불필요한 감정이나 장면들이 섞여들어가기 마련인데, 이를 수정하는 편집자들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포르노 배우가 실제 정사를 즐기지 않았다고 하면, 편집자가 그 감정을 쾌감으로 조작하는 것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전자마약에 취해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는 이런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예고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BD 컨텐츠 중 포르노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초창기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했을 때도 수익화를 가장 먼저 시작한 것도 플레이보이였습니다. 당시 플레이보이의 보안은 세계 최고를 자랑했으며, 지금도 사용되는 많은 보안기술, 인터넷 수익모델이 플레이보이 사이트에서 시작됐다고 하죠. VR이 깨어나고 있는 지금도 포르노 업계가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VR컨텐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감각과 감정만 전달할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겁니다. 고도로 발달한 가상현실이 현실의 인간들이 매력을 먹어치우는 것은 아닐지 걱정됩니다.
마지막으로 잠깐 아쉬웠던 부분을 언급하며 끝내겠습니다. 워낙 다양한 면모를 다룬 탓에 다소 근거가 빈약해보이는 주장들이 종종 보였습니다. 라이프로깅 챕터 중에 메타버스에서는 외로움이 없다라는 주장이 등장하는데, 제시한 근거 2가지가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주장을 검증하는 것보다 제시한 화두에 더 집중해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있게 보는 주제입니다. 메타버스가 사람들을 외롭게 할까요? 사람들의 정서인식 발달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개인적으로 아직은 매우 회의적입니다. 지금의 메타버스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의사소통 방식이 편집되어 전송됩니다. 제페토나 포트나이트에서는 현실세계 정도의 감정 인식이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신호가 없고, 이는 발달에도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뇌는 특별하게 얼굴만 인식하는 방추상회라는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얼굴표정의 다양한 신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영역에서 이를 해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비언어적 메세지가 의사소통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메타버스는 사람들이 보내는 즉각적 감정의 신호를 편집해서 전송합니다. 제페토나 포트나이트에서 사람의 미세한 감정 신호는 매우 단순하게 전송됩니다. 추측입니다만, 이런 세계 속에 자란 사람이라면 타인의 정서에 매우 둔감할 수 있습니다. 즉, 연대에 필수적 요소인 공감 능력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우려됩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관련 연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군요..!
이엘리엇2021-04-21 21:44
책을 읽으며 블랙미러 시리즈, 헝거게임 등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서술하는 작품들이 떠올라 흥미로웠습니다. 책의 마무리도 그러하고, 저를 포함한 많은 학우분들의 반응도 보면 고도 과학기술의 발전이 디스토피아적 결말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러할 수밖에 없는게, 이미 우리는 이로 인한 부작용들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사생활 침해는 개인의 가장 프라이빗한 영역까지 침투하여 디지털 성범죄로 변모하였으며, 당장 신문물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주류에서 내쫓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까요?
저는 공유된 규칙인 '법'과 관련하여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는 개념들이 등장하고 실생활에 자리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빠르게 단축되고 있습니다. 특히 가상공간에서 새롭게 나타난 소재들은 우리의 흥미를 사로잡으며 유행처럼 번지고, 접근의 편리성을 근거로 빠르게 보급됩니다. 이들은 소위 '무법지대'에서 활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장 몇개월 전만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프지만 우리의 삶에서 타인의 권리를 고려하게 되는 가장 현실적인 유인이 법 체계인데,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문제가 쉽고 공공연하게 발생합니다. 국회선진화의 일환으로 2015년 도입된 패스트트랙 제도도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기능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더 빠른 미래를 생각했을 때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절차를 거쳐서 법을 제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미래에는 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이 제시될까요? 이와 관련하여 정치의 형태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학우님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저는 공유된 규칙인 '법'과 관련하여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는 개념들이 등장하고 실생활에 자리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빠르게 단축되고 있습니다. 특히 가상공간에서 새롭게 나타난 소재들은 우리의 흥미를 사로잡으며 유행처럼 번지고, 접근의 편리성을 근거로 빠르게 보급됩니다. 이들은 소위 '무법지대'에서 활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장 몇개월 전만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프지만 우리의 삶에서 타인의 권리를 고려하게 되는 가장 현실적인 유인이 법 체계인데,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문제가 쉽고 공공연하게 발생합니다. 국회선진화의 일환으로 2015년 도입된 패스트트랙 제도도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기능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더 빠른 미래를 생각했을 때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절차를 거쳐서 법을 제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미래에는 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이 제시될까요? 이와 관련하여 정치의 형태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학우님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문보설2021-04-21 21:51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주목한 점은 인터넷 공간의 발전이 인간의 합리성을 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항상 인터넷 커뮤니티를 볼 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갈수록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데 이 갈등의 당사자들이 서로를 향해 싸우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성향이 극단적인 커뮤니티를 보면… 어느 성향이냐를 떠나서 공통적으로 반대 입장을 혐오하면서 상대방을 지나치게 악마화하고 일반화하여, 의미있는 논의가 아니라 그냥 단체로 섀도 복싱을 하는 것 같은 행태를 자주 보인다. 그런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굉장히 거만한 부분이 웃기기도 했다. 왜냐하면 뭔가 상대의 구체적인 입장이 있어서 그걸 곡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상대방의 입장을 창조하는 것 아닌가 싶은 정도의 논리를 펼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들이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 기저에 어떤 심리가 있는지가 궁금했다. 평소에 어떤 환경에 노출되었길래 그렇게… 오만할 정도로 상대방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그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자기 입맛대로 생각하는지, 어떻게 상대방을 그렇게 쉽게 일반화할 정도의 통찰을 본인이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냥 내가 인간 이성을 과대평가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책에서 그러한 행태가 등장하게 된 나름의 배경을 찾은 것 같다. 우선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공격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누군가 괴롭히면서, 그것도 집단적으로 괴롭히면서 우월감과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뭐 의미있는 논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어떻게 되었건 자기 집단의 사람들을 선동해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리고 익명성이 보장되고, 비대면이기 때문에 좀 더 용감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통제감에 관한 부분인데, SNS상에서 자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쉽게 차단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여기에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우리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한다는 부분을 생각해 보면, 갈수록 사람들은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디지털 세상이 더 부추기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뭐 메타버스를 통해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은 소통이 가능하다고 해도 일단 사람들이 그 소통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갈수록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내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근거는 앞서 충분히 제시했기 때문에 소모적인 논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ㅠ)
또한 메타버스 내에서의 NPC,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과 비교했을 때 어떤 지위를 갖는지에 대한 부분도 오래 전부터 고민하던 부분 중 하나이다. 특히 나는 직관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 우리의 직관은 인공지능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할 수 없다는 쪽으로 향해 있지만 미래에 메타버스 등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더 친숙해지면서 이런 직관이 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도, 자유의지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이 어렵고 생물학적으로 이 부분에서 자유의지가 비롯되므로 자유의지를 가진다 라는 식으로 주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행동도 결정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더 설득력 있는 입장은 인공지능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 있는 틈이 있는 방법으로 자유의지를 정의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은 발제를 기대해 줬으면 좋겠다...(스포했나요?)
또한 메타버스 내에서의 NPC,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과 비교했을 때 어떤 지위를 갖는지에 대한 부분도 오래 전부터 고민하던 부분 중 하나이다. 특히 나는 직관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 우리의 직관은 인공지능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할 수 없다는 쪽으로 향해 있지만 미래에 메타버스 등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더 친숙해지면서 이런 직관이 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도, 자유의지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이 어렵고 생물학적으로 이 부분에서 자유의지가 비롯되므로 자유의지를 가진다 라는 식으로 주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행동도 결정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더 설득력 있는 입장은 인공지능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 있는 틈이 있는 방법으로 자유의지를 정의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은 발제를 기대해 줬으면 좋겠다...(스포했나요?)
탈퇴한 회원2021-04-21 21:52
책을 읽으면서 메타버스라는 개념으로 우리 삶에 적용, 설명할 수 있는 기술, 삶의 양식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는 메타버스를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새로운 세상 또는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가상 세계에서의 영역만이 아니라 실제의 물리적 세계와 가상 세계가 연동된 부분을 메타버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았다. 특히 지금 코로나 이후의 비대면의 삶에서 우리는 메타버스와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메타버스의 개념과 특징들을 접할수록 최근에 재밌게 보고있는 ‘피식 대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예시가 자꾸 떠올랐다. 피식 대학은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개그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는 각자의 세계관에서 때로는 비대면 소개팅 남자로, 때로는 05학번 선후배로 때로는 50대 산악회 회원들로 각자의 부캐들(멀티 페르소나)을 가지고 한 인물이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에피소드를 만들어 나간다. 피식 대학이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기존의 일방적 개그가 아닌 시청자들과의 쌍방의 소통으로 개그가 완성된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유튜브 주접 댓글이나 그 캐릭터들이 여는 새로운 유튜브 채널들, 그리고 인스타 라이브 방송 등으로 시청자들이 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유머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일종의 쌍방향 메타버스, 쌍방향 예술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코로나라는 비대면의 상황과 더불어 더욱 가속화되어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고, 그 모습과 변주 또한 다양하고 다채롭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만들어져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맞추어 어떤 문화가 만들어질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생각해볼 문제들]
1. 앞에서도 말했지만, 메타버스의 개념은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입니다. 메타버스의 활용이나 그 기술력이 정점이 있다고 했을 때 매우 초기 단계 정도라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앞으로 우리 삶에 미칠 영향력은 가히 상상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책에서 메타버스는 현실에 기반한 것들이 많은데, 메타버스 개념의 광범위함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러한 메타버스는 다른 부류로 구분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폭넓은 그 개념이 원래 가지는 의미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이건 예전부터 과학 기술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의 단순한 궁금증인데, 기억거래소와 같이 실제 다른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서 우리가 거기서 살아가는 것은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요...?
3. 점차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면서 영향력을 더해 갈 메타버스는 언젠가 현실 세계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도 많이 언급되었지만 메타버스에서의 윤리, 법 문제들은 그 플랫폼의 설립자나 그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과연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발 빠르게 대처가 가능할지도 의문이 들었고, 국가적 혹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에 관해 큰 범주의 원칙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없는지에 대해서 궁금점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메타버스의 개념과 특징들을 접할수록 최근에 재밌게 보고있는 ‘피식 대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예시가 자꾸 떠올랐다. 피식 대학은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개그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는 각자의 세계관에서 때로는 비대면 소개팅 남자로, 때로는 05학번 선후배로 때로는 50대 산악회 회원들로 각자의 부캐들(멀티 페르소나)을 가지고 한 인물이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에피소드를 만들어 나간다. 피식 대학이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기존의 일방적 개그가 아닌 시청자들과의 쌍방의 소통으로 개그가 완성된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유튜브 주접 댓글이나 그 캐릭터들이 여는 새로운 유튜브 채널들, 그리고 인스타 라이브 방송 등으로 시청자들이 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유머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일종의 쌍방향 메타버스, 쌍방향 예술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코로나라는 비대면의 상황과 더불어 더욱 가속화되어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고, 그 모습과 변주 또한 다양하고 다채롭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만들어져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맞추어 어떤 문화가 만들어질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생각해볼 문제들]
1. 앞에서도 말했지만, 메타버스의 개념은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입니다. 메타버스의 활용이나 그 기술력이 정점이 있다고 했을 때 매우 초기 단계 정도라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앞으로 우리 삶에 미칠 영향력은 가히 상상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책에서 메타버스는 현실에 기반한 것들이 많은데, 메타버스 개념의 광범위함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러한 메타버스는 다른 부류로 구분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폭넓은 그 개념이 원래 가지는 의미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이건 예전부터 과학 기술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의 단순한 궁금증인데, 기억거래소와 같이 실제 다른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서 우리가 거기서 살아가는 것은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요...?
3. 점차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면서 영향력을 더해 갈 메타버스는 언젠가 현실 세계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도 많이 언급되었지만 메타버스에서의 윤리, 법 문제들은 그 플랫폼의 설립자나 그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과연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발 빠르게 대처가 가능할지도 의문이 들었고, 국가적 혹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에 관해 큰 범주의 원칙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없는지에 대해서 궁금점이 들었습니다.
조성민2021-04-21 22:18
사람들은 메타버스 속에서 종종 현실의 자신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곤 한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닉네임 뒤에 숨어서 각종 욕설을 하거나 과격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현실 속에서는 소극적인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가상세계의 아바타를 자신과 다른 성별, 다른 나이, 혹은 다른 속성으로 선택하여 가상세계 속의 삶을 경험하기도 한다. 게임이 아니더라도 SNS속에서는 한 사람이 본 계정 외에 여러 부계정과 비공개 계정들을 운영한다. 메타버스 속에서 사람들은 현실의 육체와 정신의 제약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자신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나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현실 속 육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복수로 존재할 수 있는데, 개인은 이 모두를 자신으로 인지한다.
자아가 하나가 아닐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우선 사람들은 공간적, 사회적으로 제약된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자신과 똑같이 자유로운 속성을 가진 이들과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현실 세계보다 가상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얻는 사람들도 생겨서 가상 세계를 잘 살기 위해 현실 세계를 희생하는 사람도 발생할 것이다. 혹은 현실 세계와 굉장히 유사하며 현실세계의 감각을 완전히 모방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구분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가상 세계가 발전할수록 가상 세계 속의 질서와 법, 사회가 형성되며, 이는 현실 세계의 그것과 같을 수도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가상세계가 현실 세계를 대체할 수도 없으며, 가상 세계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가속화된 가상 세계의 발전과 사람들의 높아진 관심은 사람들의 의도와 다르게 가상 세계가 변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가상 세계, 메타버스가 향하는 방향이 1) 현실 세계의 확장 2) 현실 세계의 대체 중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를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자아가 하나가 아닐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우선 사람들은 공간적, 사회적으로 제약된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자신과 똑같이 자유로운 속성을 가진 이들과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현실 세계보다 가상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얻는 사람들도 생겨서 가상 세계를 잘 살기 위해 현실 세계를 희생하는 사람도 발생할 것이다. 혹은 현실 세계와 굉장히 유사하며 현실세계의 감각을 완전히 모방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구분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가상 세계가 발전할수록 가상 세계 속의 질서와 법, 사회가 형성되며, 이는 현실 세계의 그것과 같을 수도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가상세계가 현실 세계를 대체할 수도 없으며, 가상 세계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가속화된 가상 세계의 발전과 사람들의 높아진 관심은 사람들의 의도와 다르게 가상 세계가 변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가상 세계, 메타버스가 향하는 방향이 1) 현실 세계의 확장 2) 현실 세계의 대체 중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를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은비2021-04-21 22:56
<메타버스>의 서론에는 ‘콜포비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음성통화 이외의 소통방식을 활용하는 것을 선호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때는 보통 친숙하지 않은 상대와 소통할 때라고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배달 주문을 하는 경우가 있겠다. 실제 나의 가족 구성원 중 한 명도 전화로 포장 주문을 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오면 어떤 제품을 시킬 것이고, 얼마이고, 몇 분이 걸리는지 등을 확인하는 내용이 담긴 대본(?)을 작성한 이후에야 겨우 통화를 하곤 한다. 이를 보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메타버스에 익숙해져 공식적인 문의 상황이나 수업에서 의견을 말해야 할 때, 간략하게 포인트를 적어놓아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최근 ‘메타버스’가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을 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접하기는 했으나 부끄럽게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메타버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형태로 주위에 존재하며 배달 앱, 포켓몬고, 심지어 스노우와 같은 카메라 어플도 메타버스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메타버스는 조금씩 우리 주위에서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가 이를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 지금의 위상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특히 COVID 사태 이후 비대면 플랫폼의 확산으로, 이제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구분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메타버스가 긍정적인 작용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라이프로깅 세계와 같이 자신의 일상을 담아내고 이를 전시하는 공간에서 우리는 모두 ‘잘남’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는 인스타그램이나 일상 유튜브와 같이 많은 사용자가 접근하는 공간에서 심화되고, 일부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따라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릴 수 있는(책임감이 낮고 공감 능력 저하 가능) 비대면의 메타버스에서는 공격적인 성향을 띤 자들의 출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메타버스’가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을 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접하기는 했으나 부끄럽게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메타버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형태로 주위에 존재하며 배달 앱, 포켓몬고, 심지어 스노우와 같은 카메라 어플도 메타버스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메타버스는 조금씩 우리 주위에서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가 이를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 지금의 위상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특히 COVID 사태 이후 비대면 플랫폼의 확산으로, 이제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구분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메타버스가 긍정적인 작용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라이프로깅 세계와 같이 자신의 일상을 담아내고 이를 전시하는 공간에서 우리는 모두 ‘잘남’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는 인스타그램이나 일상 유튜브와 같이 많은 사용자가 접근하는 공간에서 심화되고, 일부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따라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릴 수 있는(책임감이 낮고 공감 능력 저하 가능) 비대면의 메타버스에서는 공격적인 성향을 띤 자들의 출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윤서영2021-04-21 22:59
오늘날 각종 IT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디지털 공간의 영향력과 그에 대한 의존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동안 나는 이러한 경향이 가져올 변화를 편의성, 생산성, 효율성과 같은 측면에서만 다소 단편적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메타버스’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접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메타버스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에 대해 시야를 보다 넓힐 수 있었다. 메타버스는 놀이, 소통, 탐험, 성취 등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현실 세계에서의 한계 일부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특히 단백질 구조 실험실인 폴드잇 플랫폼, 전염병 확산 시뮬레이션 사례를 보여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의 사례를 읽으면서, 메타버스에서의 상호작용이 단순히 즐거움과 어울림만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며 혁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메타버스에서의 데이터 소유, 이용 등에 대한 권리의 문제는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현재 빅데이터, AI 알고리즘 등에 기반한 다양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우리 생활 면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가운데, 개인정보 악용,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가 우려를 낳고 있다. 향후 메타버스가 더욱 확장된다면 이와 같은 데이터 관련 권리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사회적 논란과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메타버스의 활용 대상과 범위가 국경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정보 관련 법률과 규제가 국가별로 상이한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또한 메타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추가적인 수익 창출에 활용한다면, 그러한 기업의 활동과 그 정당성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노동 없는 미래”의 저자인 정치철학자 팀 던럽은, 데이터가 일종의 공유재이며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데이터세, 기본소득과 같은 방식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메타버스를 데이터 문제와 관련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메타버스에서의 데이터 소유, 이용 등에 대한 권리의 문제는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현재 빅데이터, AI 알고리즘 등에 기반한 다양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우리 생활 면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가운데, 개인정보 악용,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가 우려를 낳고 있다. 향후 메타버스가 더욱 확장된다면 이와 같은 데이터 관련 권리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사회적 논란과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메타버스의 활용 대상과 범위가 국경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정보 관련 법률과 규제가 국가별로 상이한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또한 메타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추가적인 수익 창출에 활용한다면, 그러한 기업의 활동과 그 정당성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노동 없는 미래”의 저자인 정치철학자 팀 던럽은, 데이터가 일종의 공유재이며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데이터세, 기본소득과 같은 방식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메타버스를 데이터 문제와 관련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
강혜진2021-04-21 23:04
메타버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들이 흥미로웠고, 특히나 기업들에 그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 지점들을 통해 더 넓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몇 가지 지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
첫번째로, 가상세계가 아이들의 난폭함과 무모함을 만들어내는 원흉은 아니라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 시기 아이들의 뇌와 호르몬의 영향 속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이 현실세계에서는 여러 제약에 의해 컨트롤될 수 있지만, 가상세계에서는 그런 제약들이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용기를 만들어내기에 결국 그 무모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김상균 교수님도 책 후반부에서 (1) 익명성으로 인한 책임감 저하 (2) 분리된 감각으로 인한, 상대방에 대한 공감 능력 감소 (3) 괴롭히는 입장에서의 적은 공포감 으로 인해 드러나는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지점에서 가상세계의 존재가 본래 존재하던 특징을 드러나게 만든 것뿐이기에 ‘원흉’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두번째로, 메타버스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결국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누구일까 하는 부분이다. 책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것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플랫폼이 여럿 존재하는데 메타버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미 우리가 접속하는 플랫폼 속에서 편집된 정보만을 접하고 있는데, 당장은 개인의 취향에 맞춘 집단과 또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한 유용함으로 느껴질 때가 많지만 어떤 면에서는 점점 우리가 이해하는 세상의 폭을 좁힐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충분한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한 자원의 존재에 따라 우리의 경험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지 않을까? 사실 단순히 수업 강의를 듣는 상황에서도 학비만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인터넷망과 접속기기가 필요하다 느껴지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이미 조금은 실감하게 되는 부분이지만, 더 고도화되는 가상세계 내부 감각 속에서 그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로, 가상세계가 아이들의 난폭함과 무모함을 만들어내는 원흉은 아니라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 시기 아이들의 뇌와 호르몬의 영향 속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이 현실세계에서는 여러 제약에 의해 컨트롤될 수 있지만, 가상세계에서는 그런 제약들이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용기를 만들어내기에 결국 그 무모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김상균 교수님도 책 후반부에서 (1) 익명성으로 인한 책임감 저하 (2) 분리된 감각으로 인한, 상대방에 대한 공감 능력 감소 (3) 괴롭히는 입장에서의 적은 공포감 으로 인해 드러나는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지점에서 가상세계의 존재가 본래 존재하던 특징을 드러나게 만든 것뿐이기에 ‘원흉’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두번째로, 메타버스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결국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누구일까 하는 부분이다. 책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것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플랫폼이 여럿 존재하는데 메타버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미 우리가 접속하는 플랫폼 속에서 편집된 정보만을 접하고 있는데, 당장은 개인의 취향에 맞춘 집단과 또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한 유용함으로 느껴질 때가 많지만 어떤 면에서는 점점 우리가 이해하는 세상의 폭을 좁힐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충분한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한 자원의 존재에 따라 우리의 경험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지 않을까? 사실 단순히 수업 강의를 듣는 상황에서도 학비만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인터넷망과 접속기기가 필요하다 느껴지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이미 조금은 실감하게 되는 부분이지만, 더 고도화되는 가상세계 내부 감각 속에서 그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하연2021-04-21 23:28
책을 읽으면서 메타버스의 개념과 다양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메타버스’라는 틀에서는 처음 접했지만, 평소 포켓몬고,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게임, VR체험, 다양한 온라인 SNS채널들을 사용하면서 이미 유저로서 어느 정도 경험을 해보았다는 것에 반가우면서도 신기했습니다. 기술의 발달과 플랫폼의 성장,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많은 것을 대신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과 올해만 봐도 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각각의 경험을 하고, 때로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즉 메타버스가 앞으로 우리의 삶에 점점 더 스며들고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란 말에 공감을 했습니다.
우리는 메타버스를 왜 이용할까?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인간은 사회성과 사교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옛날에는 현실공간에서만 사교했다면 이제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와 같은 SNS와 가상공간에서도 연결과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즉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가상공간에서는 나이, 성별, 직업 등의 차별이 없고, ‘직접 참여’하는 생생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 속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고요. 자신이 원하는 공간, 자신이 원하는 세계,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전에 읽었던 ‘넛지’(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저)를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인지적 효율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선택’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훨씬 넘쳐나는 정보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정보가 더 많아지면 그 정보를 합리적으로 깊이 고민해서 숙고해서 결정할 것 같은데, 사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직관적인 감정과 이미지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넛지’, 즉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메타버스가 보편화되면 일상 속에서도 관련 정보들이 가상/증강현실을 통해 비추어지면서 현재보다도 더 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인지적 효율성에 의존하는 선택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대기업이나 선택설계자의 ‘넛지’에 우리의 선택이 많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예를 들면 구글이나 네이버, 아마존 등이 우리의 검색어와 활동기록을 통해 맞춤형 광고를 띄워주면서 확증 편향 등),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 현재 메타버스는 아무래도 젊은층, 즉 Z세대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인층분들은 아직 접하지 못하셨거나 컨트롤러 등을 조종 및 조작하기 어렵다는 진입장벽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노인분들의 여가생활과 공간이 코로나19의 여파 등으로 더더욱 줄어들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메타버스가 이에 대한 새로운 여가와 힐링의 공간으로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인층이라는 새로운 세대도 유입시킴으로써 메타버스 또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더 넓은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메타버스가 모든 세대에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메타버스를 왜 이용할까?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인간은 사회성과 사교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옛날에는 현실공간에서만 사교했다면 이제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와 같은 SNS와 가상공간에서도 연결과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즉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가상공간에서는 나이, 성별, 직업 등의 차별이 없고, ‘직접 참여’하는 생생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 속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고요. 자신이 원하는 공간, 자신이 원하는 세계,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전에 읽었던 ‘넛지’(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저)를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인지적 효율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선택’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훨씬 넘쳐나는 정보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정보가 더 많아지면 그 정보를 합리적으로 깊이 고민해서 숙고해서 결정할 것 같은데, 사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직관적인 감정과 이미지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넛지’, 즉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메타버스가 보편화되면 일상 속에서도 관련 정보들이 가상/증강현실을 통해 비추어지면서 현재보다도 더 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인지적 효율성에 의존하는 선택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대기업이나 선택설계자의 ‘넛지’에 우리의 선택이 많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예를 들면 구글이나 네이버, 아마존 등이 우리의 검색어와 활동기록을 통해 맞춤형 광고를 띄워주면서 확증 편향 등),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 현재 메타버스는 아무래도 젊은층, 즉 Z세대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인층분들은 아직 접하지 못하셨거나 컨트롤러 등을 조종 및 조작하기 어렵다는 진입장벽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노인분들의 여가생활과 공간이 코로나19의 여파 등으로 더더욱 줄어들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메타버스가 이에 대한 새로운 여가와 힐링의 공간으로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인층이라는 새로운 세대도 유입시킴으로써 메타버스 또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더 넓은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메타버스가 모든 세대에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김혜민2021-04-21 23:52
하연님께서 제시해주신 의견처럼, 메타버스의 이용자 지평이 신세대에서 중장년층, 그리고 노년층까지 확대된다면 좋을 듯합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노인분들의 여가생활, 공간이 제한된 문제에 대해 메타버스를 통한 해결책을 강구해볼 수 있겠다는 의견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노화로 인해 활발한 신체활동을 조심하셔야하는 노인분들께서 메타버스를 통해 활발한 레포츠를 즐기는 등 현실 공간에서는 하기 어려운 활동들을 체험하시며 삶의 활력을 얻으실 수 있으신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우려점이 있다면, 첫째로는 노인분들의 기술 수용 의지의 문제가 있겠고, 둘째로는 노인분들의 이용 능력의 문제가 있겠습니다. 노인분들의 경우,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기를 어려워하시는 분들께서 대다수이시고, 그러하기에 새로운 기술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시고, 수용 자체를 회피하시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z세대라 불리는 20대초중반의 저와 학우분들에게 또한 새롭게, 낯설게 다가오는 메타버스 기술을 노인분들께서 심리적으로 수용하실 수 있으시게끔 만들어드릴 방법이 있을까요? 또, 메타버스는 (보이기에) 이용 상 진입장벽이 높아보입니다. 비교적 디지털 기기를 활발히 이용하는 z세대가 아니고서 메타버스 기술을 이용하는 데 노인분들께서는 큰 어려움을 느끼실 겁니다. 사실 노년층까지 가지 않더라도 중년층 정도만 하여도, 아니면 더 어린 20대후반 정도만 가더라도 이용에 어려움을 느낄 것으로 보입니다. 메타버스의 확산을 위해서는 전면적 디지털 교육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모든 이들이 메타버스에 올라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요? 코멘트인데 질문 폭탄이 되었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하연님 글 덕분에 메타버스에 대해 한층 더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어요!
박규리2021-04-22 00:03
우선 좋은 글 감사합니다! 2번 질문에 대해 저의 짧은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하연 님의 글을 읽으니 <벼랑 위의 포뇨>라는 영화에서 휠체어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들이 바닷속 마법의 세계(?)에서 힘차게 일어나 언덕을 뛰어다니시던 장면이 생각 납니다. 짚어주신 것처럼 메타버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토대로 다양성이 보장되는 이상적인 플랫폼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제안된 것처럼 과거 세대의 문화를 현 세대가 체험할 수 있는 가상 세계가 열린다면 세대 간의 소통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청년들이 전쟁이 지속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의 삶을 직접적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산전쟁기념관 같은 데에서 이루어지는 전쟁 체험이 가상 세계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면 조금은 노인 분들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할 부분에서 진심 어린 감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노인층을 유입하는 과정에서 메타버스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께서 이해하실 수 있도록 소개와 설명에 많은 노력을 들어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다른 소외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말씀해주신 메타버스의 긍정적인 측면은 살리고 부정적인 측면은 줄여가는 방향으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현인류가 최선을 다해야할 것 같다는, 조금은 원론적이고 식상한 생각이 듭니다.
서장원2021-04-22 00:22
하연님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중에서 1번 넛지에 관련한 논점이 흥미로워서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도 넛지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리적 요소가 개인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작은 변화가 개인의 선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신기해하면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연님의 의견처럼 메타버스를 통해 더 많은 정보가 개인에게 제공되고, 이와 동시에 더 많은 정도가 기업 혹은 메타버스 기술 공급자에게 전달됨에 따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 '넛지'로 인한 행위 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분명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것입니다. 기존의 광고는 다수에 대한 정보 전달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광고의 목적도 개인화될 것입니다. 또한,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정보 제공이나 추천 검색 기능이 강화되면, 정치적 의견의 양극화, 편중된 사고 등의 문제점도 유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 세금으로 인한 행위 변화가 초과부담이라는 말과 함께 비효율성을 높이는 개념으로 평가되곤 하는데, 일정 수준을 넘어선 넛지는 오히려 개인의 선택에 극단성을 초래하여 비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지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세금'과 같은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개인 정보에 대한 보호를 법제화하고, 행위 변화에 취학한 청소년, 노년층을 중심으로 광고의 제한 등을 통해 강제적인 넛지를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중에서 1번 넛지에 관련한 논점이 흥미로워서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도 넛지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리적 요소가 개인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작은 변화가 개인의 선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신기해하면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연님의 의견처럼 메타버스를 통해 더 많은 정보가 개인에게 제공되고, 이와 동시에 더 많은 정도가 기업 혹은 메타버스 기술 공급자에게 전달됨에 따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 '넛지'로 인한 행위 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분명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것입니다. 기존의 광고는 다수에 대한 정보 전달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광고의 목적도 개인화될 것입니다. 또한,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정보 제공이나 추천 검색 기능이 강화되면, 정치적 의견의 양극화, 편중된 사고 등의 문제점도 유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 세금으로 인한 행위 변화가 초과부담이라는 말과 함께 비효율성을 높이는 개념으로 평가되곤 하는데, 일정 수준을 넘어선 넛지는 오히려 개인의 선택에 극단성을 초래하여 비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지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세금'과 같은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개인 정보에 대한 보호를 법제화하고, 행위 변화에 취학한 청소년, 노년층을 중심으로 광고의 제한 등을 통해 강제적인 넛지를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박서원2021-04-22 01:1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으면서 하연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어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저 역시 가상공간은 차별이 없기에 사람들이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이점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불공정한 요소로 가득 차 있는데 가상공간은 애초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기에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도 하연님이 2번째 질문에서 언급해주셨던것 처럼 가상현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노인층분과 가상현실에 들어가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젋은 층 사이가 더 단절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모든 연령층을 포용할 수 있는 메타버스는 어떻게 만들어야할 지 고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노인층분들이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아서 사용하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설계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혜민2021-04-21 23:30
메타버스를 읽으며 요즘 코로나로 인해 물리적 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서 '메타버스'를 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처음 접할 때까지만 해도 미래를 위한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최근 K-pop 산업만 생각하더라도 유니버스를 통해서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AI를 통해서 구현하거나, 카카오톡 등의 플랫폼을 통해서 영상 팬사인회를 진행하는 등 메타버스가 우리의 공간에 점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다.
저번 주, 조 별 프로젝트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마스크를 벗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올까?'라는 말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메타버스가 일상에 침투하면 할수록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게임을 하면서 경험했듯, 메타버스를 이용하면 성별이나 지역, 나이에 대한 정보 없이 많은 인간관계를 새로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당연하지 않았던 일이 최근 트위터나 수많은 게임-특히 유저들 간 클랜을 만드는 게임들-을 통해서 생겨나고 있다. 이런 인간관계 형성은 시간이 갈수록 당연한 일이 되어갈 것인데, 문제는 이로 인한 수많은 문제점들 역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트위터 상에서 친해진 일명 '트친'들끼리 오프라인 상의 만남을 가졌다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리적인 세계에서 형성하는 전통적인 인간 관계의 형성은 겹지인이나 주변의 평판 등으로 어느정도 안정성을 보장했다면, 메타버스 상에서 형성된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마냥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또한 메타버스 상에서의 정보 수집 및 활용의 범위 역시도 중요하게 다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산하 레이블의 경우, 콘서트 티켓 양도를 제한하기 위해서 티켓 구입 시 팬들의 얼굴을 공개해야 하는 페이스 티켓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위버스 가입 시 작성했던 성/이름, 이메일 주소, 성별, 휴대전화번호가 유출된 적(2020년 1월 28일)이 있었고, 페이스 티켓을 위해서 찍은 사진이 티켓을 구입한 당일부터 적어도 콘서트 당일까지 폐기되지 않고, 그 사이에 유출되어 딥페이크 포르노 혹은 지인 능욕 등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위버스와 유사한 소통 플랫폼 '유니버스'가 AI를 통해서 가수들의 목소리를 재현해내는 기술을 도입하자, 이런 기술이 성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예방 방법도, 제지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메타버스를 우리의 생활 전반적으로 도입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메타버스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한 분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미리 예고된 산업혁명'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는다. 이런 기술들의 등장이 미리 예고된 만큼, 우리는 윤리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충분히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번 주, 조 별 프로젝트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마스크를 벗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올까?'라는 말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메타버스가 일상에 침투하면 할수록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게임을 하면서 경험했듯, 메타버스를 이용하면 성별이나 지역, 나이에 대한 정보 없이 많은 인간관계를 새로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당연하지 않았던 일이 최근 트위터나 수많은 게임-특히 유저들 간 클랜을 만드는 게임들-을 통해서 생겨나고 있다. 이런 인간관계 형성은 시간이 갈수록 당연한 일이 되어갈 것인데, 문제는 이로 인한 수많은 문제점들 역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트위터 상에서 친해진 일명 '트친'들끼리 오프라인 상의 만남을 가졌다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리적인 세계에서 형성하는 전통적인 인간 관계의 형성은 겹지인이나 주변의 평판 등으로 어느정도 안정성을 보장했다면, 메타버스 상에서 형성된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마냥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또한 메타버스 상에서의 정보 수집 및 활용의 범위 역시도 중요하게 다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산하 레이블의 경우, 콘서트 티켓 양도를 제한하기 위해서 티켓 구입 시 팬들의 얼굴을 공개해야 하는 페이스 티켓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위버스 가입 시 작성했던 성/이름, 이메일 주소, 성별, 휴대전화번호가 유출된 적(2020년 1월 28일)이 있었고, 페이스 티켓을 위해서 찍은 사진이 티켓을 구입한 당일부터 적어도 콘서트 당일까지 폐기되지 않고, 그 사이에 유출되어 딥페이크 포르노 혹은 지인 능욕 등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위버스와 유사한 소통 플랫폼 '유니버스'가 AI를 통해서 가수들의 목소리를 재현해내는 기술을 도입하자, 이런 기술이 성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예방 방법도, 제지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메타버스를 우리의 생활 전반적으로 도입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메타버스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한 분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미리 예고된 산업혁명'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는다. 이런 기술들의 등장이 미리 예고된 만큼, 우리는 윤리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충분히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지유2021-04-22 13:58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발생한 일은 정말 충격적이군요. 관련 기사를 보니 해당 사건의 연쇄살인범은 자살을 고민하는 여성을 쉬운 표적으로 여겨, 여성 8명과 남성 1명을 살해했고, 작년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으레 익명성의 가면을 쓴 온라인 상에서 사람들과 더 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보다 자유롭게 자기표현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이러한 온라인 관계가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신 것과 같이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기에 -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이웃들이기에 - 메타버스를 활용한 오프라인 범죄, 나아가 메타버스 상에서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일정한 규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혜민2021-04-21 23:32
책을 읽으며 저번 주제인 '도시공간'에서 다루었던 '공간의 확장'에 관한 논의가 떠올랐다. 공간 확장의 필요성을 언급하시며 도시 지하 공간의 활용을 그 방법으로 제시하신 유현준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 '더 이상 개척될 곳도 없는' 육지 공간 외로 인류는 어떤 공간을 추가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했었다. 국경에 한정되어 생각하다보니 용케 생각난 건 수공간이었다. 복잡한 이유는 없고, 공중은 인류가 개척하기에는 까마득해보였기에 수공간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이에 학우분들께 수공간 활용에 대한 질문을 드리며 수공간 활용이 효율적이지 않겠다는 잠정적 결론을 냈었다. 몇몇 학우분들께서 가상공간을 통한 공간확장도 언급해주셨었는데, 당시 다뤘던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을 읽으니 매우 반가웠다.
필자는 사촌동생들의 권유로 제페토 앱을 이용해본 적이 있다. 당시는 앱 등장 초기였어서 얼굴을 인식하여 내 캐릭터를 만들고, 소위 '현질'을 하여 캐릭터를 예쁘게 꾸며서 팔로워 및 방문자를 늘리는 게 다였는데, 다소 '초딩'스러운, 그리고 무의미해보이는 컨텐츠에 앱을 다운받은 날 바로 삭제했던 기억이 있다. 또, VR게임을 좋아하여 여러번 플레이해본 필자이기에,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낯선 것이 아니었다. 작가의 말대로 스마트폰도 하나의 메타버스이기도 하고.
메타버스는 새로운 공간을 무한대로 창조해낼 수 있다는 큰 강점을 가진다. 메타버스 내에서 나의 집을 창조해내고, 경제활동을 하고, 사교를 하는 등 나의 행동 반경도 무한정으로 늘릴 수가 있다. 또한, 현실과 벗어나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운 인물의 삶을 창조해낼 수 있다. 메타버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기술임에는 분명하다.
필자가 책을 읽으며 학우분들과 생각해보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메타버스는 현실을 보완하는 보조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사실 필자는 이에 회의적이다. 메타버스는 현실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영화 메트릭스처럼 뇌신경계를(?) 조종하여 현실에 대한 자각을 완전히 조종하는 것이 아닌 이상, 가상현실기기로 시청각(기술이 발달한다면 촉각까지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만)은 가상에 완전히 몰입되도록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신체는 현실에 존재하고, 우리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현실로 돌아와야할 때가 발생한다. 영화 레디 플레이원처럼 완전한 기술이 개발되어 매트릭스와 같은 사회가 펼쳐져서 가상으로 거주지를 멋지게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한다고하여도 생산 활동을 하고 이의 소득을 가지고 살아가야한다는 현실의 제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활과 신체능력의 한계(가령, 하늘을 나는 것)를 가상으로 극복해낼 수는 있어도, 현실의 자신은 그렇지 않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대면 조우를 욕망하게 될 수 있고, 이에 가상 공간에서의 인간관계는 궁극적으로는 현실공간으로의 이전을 바라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가상공간의 인물과 현실공간의 인물 간의 큰 간극이 발생하는 경우 간극을 극복하고 가상공간에서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에, 메타버스는 현실에서 자유로운, 현실과 동등한 지위의 공간으로 존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대한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 또, 무엇보다, 멋진 가상을 경험하고 현실을 마주하였을 때 느끼는 처절한 간극에서 오는 허탈함과 인지부조화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가능할지가 의문이다.
박지유2021-04-21 23:46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나에게 다소 낯설었지만, 책을 읽으며 이미 상당 정도 메타버스에 ‘이주’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메타버스’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다소 비판적인 논조의 정보들을 많이 접해왔던 것 같다. VR게임의 폭력성, SNS 익명성의 위험성, 멀티페르소나와 정체성 혼란의 문제, 데이터 소유권의 독점으로 인한 빅데이터 감시권력의 가능성 등의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메타버스’가 무한한 확장성과 가능성을 가지며, 일련의 도덕적, 연대적 가능성도 내포함을 알 수 있었다. 라이프로깅 세계에서 타인에 대한 높은 노출빈도는 호감도와 친밀감으로 이어지며, 브이로그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조엘을 추모하기 위한 ‘댓드래곤캔서’의 사례에서 보듯, ‘거울 신경 세포’가 바탕이 되는 거울세계 역시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알기 어려운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에 비해 높은 수평성, 포용성을 갖는다는 장점도 있다. 메타버스의 비약적인 성장과 더불어, 메타버스의 도덕적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나아가 메타버스를 통해 현실세계의 사회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 같다.
한편, 메타버스의 확장과 함께 ‘데이터 소유권’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개인 차원에서 데이터 소유권의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비화된다는 점에 대해 (책의 맥락과는 다소 멀어지는 감이 있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데이터 안보화'의 문제는 미중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예컨대 중국이 2017년 시행한 ‘인터넷안전법’에 따르면, ‘핵심정보 인프라 시설’ 관련 개인정보는 의무적으로 중국 현지 서버에 저장해야 하며, 중국 내 외국 기업이 데이터를 국외로 전송할 경우 중국 당국의 보안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2018년 애플은 중국 내 데이터센터를 건설했고, iCloud의 암호화 키도 중국 당국에 넘겨, 중국 내 애플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계정이 중국 국영 서버로 넘어가게 되었다. 데이터 안보의 문제는 미국에서도 중요한 화두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 제품의 백도어 탑재 의혹 등을 지적하며 전면적인 제재를 가했으며, 작년에는 위챗, 틱톡의 사용을 금지하고 틱톡 강제 매각을 시도하기도 했다. 미국은 작년 '클린 네트워크' 구상을 발표했는데, 중국 기업의 클라우드 사용을 금지하는 등 중국을 데이터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적시하고 있으며, '자유를 사랑하는' 국가와 기업의 가입을 촉구한 바 있다. 메타버스는 국가기밀정보의 보안 문제, 시민들의 개인정보 감시문제 등과 연계되며 점차 안보화되고, 나아가 현실세계의 지정학적 경쟁, 체제 및 규범경쟁 등과 연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배타적인 메타버스가 개발∙운영되고, 외교안보 논리에 따라 진영화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한편, 메타버스의 확장과 함께 ‘데이터 소유권’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개인 차원에서 데이터 소유권의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비화된다는 점에 대해 (책의 맥락과는 다소 멀어지는 감이 있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데이터 안보화'의 문제는 미중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예컨대 중국이 2017년 시행한 ‘인터넷안전법’에 따르면, ‘핵심정보 인프라 시설’ 관련 개인정보는 의무적으로 중국 현지 서버에 저장해야 하며, 중국 내 외국 기업이 데이터를 국외로 전송할 경우 중국 당국의 보안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2018년 애플은 중국 내 데이터센터를 건설했고, iCloud의 암호화 키도 중국 당국에 넘겨, 중국 내 애플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계정이 중국 국영 서버로 넘어가게 되었다. 데이터 안보의 문제는 미국에서도 중요한 화두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 제품의 백도어 탑재 의혹 등을 지적하며 전면적인 제재를 가했으며, 작년에는 위챗, 틱톡의 사용을 금지하고 틱톡 강제 매각을 시도하기도 했다. 미국은 작년 '클린 네트워크' 구상을 발표했는데, 중국 기업의 클라우드 사용을 금지하는 등 중국을 데이터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적시하고 있으며, '자유를 사랑하는' 국가와 기업의 가입을 촉구한 바 있다. 메타버스는 국가기밀정보의 보안 문제, 시민들의 개인정보 감시문제 등과 연계되며 점차 안보화되고, 나아가 현실세계의 지정학적 경쟁, 체제 및 규범경쟁 등과 연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배타적인 메타버스가 개발∙운영되고, 외교안보 논리에 따라 진영화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조민영2021-04-21 23:52
소위 '인터넷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정도로 인터넷 세상에 오랜 시간 머물러서 그런지,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큼 잘 알아서일까? 오히려 이러한 '새로운' 세상이 필연적으로 낳을 부작용들이 걱정되었다. 인터넷 세상은 지금도 무언가 하나를 올리면, 절대로 그것이 지워질 수 없는 공간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디든지 인터넷 상에 기록을 남기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사실 이 라이프 아카데미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나 책에 대한 코멘트를 작성하는 것도 인터넷에 남기려니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살짝 들기도 했다. 메타버스는 이러한 인터넷 세상보다도 훨씬 현실과 가깝고 넓은 범위의 세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작용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봤던 연극 <킬롤로지>가 생각났다. 특히 <킬롤로지>의 대사 중 “당신은 지금 희생자를 처형 중이에요. 심장에 총을 쏴요. 빠르고 정확하게. 그럼 1점. 배에 총알을 박아 천천히 죽이면? 100점. 머리에 비닐봉투를 씌워서 질식사시키는 동안 손가락과 발가락이 하나씩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망치질을 해요, 그럼 1000점!”이라는 대사가 생각났다. 잔인하게 플레이할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매커니즘을 가진 온라인 게임의 개발자가 한 말이었는데, 극중 이 게임을 플레이하던 어린이들이 현실에서도 친구('친구'라고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친구였던 사이이기 때문에 친구하고 하겠다.)나 친구의 반려동물을 잔인하게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극중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지만, 우리는 이것이 허구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처럼 메타버스를 살아가게 될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접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고,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봤던 연극 <킬롤로지>가 생각났다. 특히 <킬롤로지>의 대사 중 “당신은 지금 희생자를 처형 중이에요. 심장에 총을 쏴요. 빠르고 정확하게. 그럼 1점. 배에 총알을 박아 천천히 죽이면? 100점. 머리에 비닐봉투를 씌워서 질식사시키는 동안 손가락과 발가락이 하나씩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망치질을 해요, 그럼 1000점!”이라는 대사가 생각났다. 잔인하게 플레이할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매커니즘을 가진 온라인 게임의 개발자가 한 말이었는데, 극중 이 게임을 플레이하던 어린이들이 현실에서도 친구('친구'라고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친구였던 사이이기 때문에 친구하고 하겠다.)나 친구의 반려동물을 잔인하게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극중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지만, 우리는 이것이 허구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처럼 메타버스를 살아가게 될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접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고,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오서림2021-04-22 16:18
안녕하세요 민영님! 저도 사실 기록 결벽증처럼.. 로그를 지우는 습관이 있는데요. 물론 SNS도 선호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기록은 글, 텍스트를 매개로 하는데 그것이 전시되는 순간 어디로든, 누구에게로든 공개되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나의 의도와 달리 전달되거나 편파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논쟁적인 갈등의 양상을 살펴보면, 본질적인 문제는 회피하고 그저 서로 말꼬리를 잡거나 비난에 불과한 무의미한 언어들을 되풀이하고만 있는 것 같아요. 현실에서 여러 제약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메타버스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나를 볼 수 있고 만나고 싶지 않아도 부딪쳐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또한 그 속에서 무리가 형성되어 peer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도 큰 것 같구요.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해결할 수 있는 윤리적 기준이나 제도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은데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모두가 메타버스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서원2021-04-21 23:56
처음에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았다. 단순히 가상 현실이겠지 생각하고 게임을 아예 하지 않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메타버스는 증강현실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세계, 가상세계로 나뉘고,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게 되면서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개념은 극히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배민 등의 다양한 앱을 사용하고 있기에 나의 삶에 메타버스가 이미 스며들어 있던 것이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다양한 IT 기업들이 메타버스에 생각 이상으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엔터 기업도 여기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메타버스 세계사 현실세계를 얼만큼 대체될 확률도 매우 높아 보인다.
갑작스럽게 코로나 19로 외부와 소통이 단절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메타버스는 새로운 소통의 장, 새로운 휴식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업들이 메타버스와 관련이 있는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물리적으로 거리는 두고, 디지털에서 모이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나고 있다고 느꼈다. 메타버스 안에서는 사람들의 자신의 본체를 숨기고 가상현실의 독립적인 주체를 내세우기에 애초에 차별이 없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실에서 해소할 수 없는 불평등 문제를 이를 통해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인종, 성, 나이, 배경 등을 생각하지 않은 디지털 세계에서는 모두를 동등하게 볼 수 있어 어느 나라, 어느 시기보다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메타버스 세계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아직은 기술이 다 갖춰져 있고,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 만이 메타버스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메타버스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되는 것이다. 만약에 미래에는 모든 비즈니스, 돈 거래가 메타버스에서 진행이 되면 메타버스에 세계에 발을 디디지도 못한 사람과 메타버스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 사이의 부의 격차가 생기면서 결국 불평등은 지금보다 더 심화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혼동으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도 있을 것을로 보인다. 앞으로 메타버스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궁금하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다양한 IT 기업들이 메타버스에 생각 이상으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엔터 기업도 여기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메타버스 세계사 현실세계를 얼만큼 대체될 확률도 매우 높아 보인다.
갑작스럽게 코로나 19로 외부와 소통이 단절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메타버스는 새로운 소통의 장, 새로운 휴식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업들이 메타버스와 관련이 있는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물리적으로 거리는 두고, 디지털에서 모이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나고 있다고 느꼈다. 메타버스 안에서는 사람들의 자신의 본체를 숨기고 가상현실의 독립적인 주체를 내세우기에 애초에 차별이 없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실에서 해소할 수 없는 불평등 문제를 이를 통해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인종, 성, 나이, 배경 등을 생각하지 않은 디지털 세계에서는 모두를 동등하게 볼 수 있어 어느 나라, 어느 시기보다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메타버스 세계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아직은 기술이 다 갖춰져 있고,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 만이 메타버스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메타버스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되는 것이다. 만약에 미래에는 모든 비즈니스, 돈 거래가 메타버스에서 진행이 되면 메타버스에 세계에 발을 디디지도 못한 사람과 메타버스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 사이의 부의 격차가 생기면서 결국 불평등은 지금보다 더 심화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혼동으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도 있을 것을로 보인다. 앞으로 메타버스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궁금하다.
김하연2021-04-22 14:29
서원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현재에도 전자상거래, 온라인 비즈니스가 많은 만큼 앞으로 메타버스에서 점점 더 많은 거래와 비즈니스가 이루어질 것이란 내용에 동의합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비즈니스, 홍보, 마케팅이 들어서게 되어있기 때문이죠. 서원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격차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메타버스로의 접근을 쉽게 해주고, 다양한 재사회화 교육이 진행되면서 메타버스 내에서 통하는 법 - 적절한 규제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토의에서 어떻게 메타버스를 균형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리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박규리2021-04-21 23:57
( 본 글은 <블랙 미러> 중 <샌 주니페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것만큼이나 인간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일은 없다. 성취감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이지 않을까. 가장 대표적인 메타버스, 게임에서는 성취감이 아주 쉽게 주어진다. 쉬운 성취감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성취감에 대한 경험이 어려운 성취감을 향한 갈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 시장이 넓어지는 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이다. 지금 게임에서 구현 불가능한 것들이 더욱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더욱 강렬한 성취감을 선사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종일 누워서 VR에 몰두하는 세상은 어쩌면 정말로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성은 실패를 낳는다.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난다. 메타버스에서 나는 수많은 자아를 가질 수 있다. 책에서는 이것이 해리성 인격장애와는 구분된다고 했지만, 플랫폼과 컨텐츠에 따라 완전한 전환을 맞이할 수도 있는 메타버스 속에서 굳건한 자아와 건강한 자존감이 생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블랙 미러>의 <샌 주니페로>라는 에피소드에는 (스포일러 주의) 기억이 데이터로 저장되어 가상 세계에서 영생을 맞이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했지만, 만약에 히틀러나 전두환 같은 사람이 그 속에서 영생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떨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건, 과장 좀 덧붙여서 다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의 초반에 인용되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나는 메타버스의 미래가 두렵기만 하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것만큼이나 인간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일은 없다. 성취감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이지 않을까. 가장 대표적인 메타버스, 게임에서는 성취감이 아주 쉽게 주어진다. 쉬운 성취감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성취감에 대한 경험이 어려운 성취감을 향한 갈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 시장이 넓어지는 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이다. 지금 게임에서 구현 불가능한 것들이 더욱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더욱 강렬한 성취감을 선사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종일 누워서 VR에 몰두하는 세상은 어쩌면 정말로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성은 실패를 낳는다.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난다. 메타버스에서 나는 수많은 자아를 가질 수 있다. 책에서는 이것이 해리성 인격장애와는 구분된다고 했지만, 플랫폼과 컨텐츠에 따라 완전한 전환을 맞이할 수도 있는 메타버스 속에서 굳건한 자아와 건강한 자존감이 생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블랙 미러>의 <샌 주니페로>라는 에피소드에는 (스포일러 주의) 기억이 데이터로 저장되어 가상 세계에서 영생을 맞이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했지만, 만약에 히틀러나 전두환 같은 사람이 그 속에서 영생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떨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건, 과장 좀 덧붙여서 다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의 초반에 인용되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나는 메타버스의 미래가 두렵기만 하다.
문보설2021-04-22 12:03
박규리님 댓글 잘 읽었습니다.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이 메타버스 내에서 영생을 맞이하는 것은, 나쁜 사람들은 그런 좋은 것(영생)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우리의 직관에 크게 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막을 근거가 있을지도 의문스럽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뭔가 더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데 그걸 막는 것은 거의 사형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디지털 교도소가 생길까요? 그렇다면 갈수록 더 데이터 보존에 드는 비용이 커질 것 같고, 그때의 사회 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집니다.
이주영2021-04-22 00:04
Metaverse,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처음으로 VR이라는 단어를 접했던 때가 대략 2012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그저 어린 마음에 “우와 게임으로 나오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자연스럽게 VR 게임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었으며, 게임 분야를 넘어서서 건축, 의료,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으로 그 기대치를 높여가는 중이다. 사실 메타버스가 말하는 가상세계는 오히려 VR보다는 AR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을 떠나 타인과 소통하고, 생활하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완벽한 가상세계를 현시대에 한 획을 그은 천재들이 그려나가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든, 앞으로 메타버스가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세계의 개척과 전례가 없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인다.
지금 현재 아마존, 페이스북, 엔비디아 등 여러 기업에서 열을 올려 메타버스 산업에 투자하는 모습으로 보고 있으면 미개척지로 뛰어드는 콜롬버스를 연상케 한다. 미지의 세계, 또는 신대륙으로 이 메타버스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z세대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세계이지만, 이전 세대를 살던 이들에게 이 새로운 모험은 약간의 두려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메타버스의 큰 부흥을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 기존 세대들이 신대륙으로 발을 뻗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로 진출하는 인구가 그저 z세대에만 국한된다면 그 세계는 그저 ’젊은이들이 즐기는 게임 공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렵더라도 세대 간의 합의를 거친 후에 현실 세계에서의 일들을 메타버스 속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메타버스는 완벽한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무질서한 공간에 가깝다고 표현하고 싶다. 사이버 세상의 치명적인 단점인 해킹 문제와 개인정보 문제, 그리고 나아가 이 가상세계에 대한 관리자 권한을 AI가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상 세계도 하나의 세계인 만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상 세계 속에서 개인을 지켜주는 국가의 역할을 하는 이는 누가 될 것인가? 관리자 권한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권력 다툼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현재 메타버스 산업에 뛰어드는 기업들은 아마도 이 ’주도권‘을 목표로 하고 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껏 이루고 가꾸어온 사회를 다듬어 가상세계에서는 ’유토피아‘를 구현할 수 있을까?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처음으로 VR이라는 단어를 접했던 때가 대략 2012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그저 어린 마음에 “우와 게임으로 나오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자연스럽게 VR 게임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었으며, 게임 분야를 넘어서서 건축, 의료,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으로 그 기대치를 높여가는 중이다. 사실 메타버스가 말하는 가상세계는 오히려 VR보다는 AR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을 떠나 타인과 소통하고, 생활하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완벽한 가상세계를 현시대에 한 획을 그은 천재들이 그려나가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든, 앞으로 메타버스가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세계의 개척과 전례가 없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인다.
지금 현재 아마존, 페이스북, 엔비디아 등 여러 기업에서 열을 올려 메타버스 산업에 투자하는 모습으로 보고 있으면 미개척지로 뛰어드는 콜롬버스를 연상케 한다. 미지의 세계, 또는 신대륙으로 이 메타버스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z세대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세계이지만, 이전 세대를 살던 이들에게 이 새로운 모험은 약간의 두려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메타버스의 큰 부흥을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 기존 세대들이 신대륙으로 발을 뻗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로 진출하는 인구가 그저 z세대에만 국한된다면 그 세계는 그저 ’젊은이들이 즐기는 게임 공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렵더라도 세대 간의 합의를 거친 후에 현실 세계에서의 일들을 메타버스 속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메타버스는 완벽한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무질서한 공간에 가깝다고 표현하고 싶다. 사이버 세상의 치명적인 단점인 해킹 문제와 개인정보 문제, 그리고 나아가 이 가상세계에 대한 관리자 권한을 AI가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상 세계도 하나의 세계인 만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상 세계 속에서 개인을 지켜주는 국가의 역할을 하는 이는 누가 될 것인가? 관리자 권한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권력 다툼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현재 메타버스 산업에 뛰어드는 기업들은 아마도 이 ’주도권‘을 목표로 하고 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껏 이루고 가꾸어온 사회를 다듬어 가상세계에서는 ’유토피아‘를 구현할 수 있을까?
서장원2021-04-22 00:11
김상균 교수님의 <메타버스>는 처음 책을 보고 생각한 버스가 아니라 universe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기술과 SNS, 인터넷 세계에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메타버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새로운 공간’을 소개하는 이 책은 너무 흥미로운 논점들을 던져주었다. 교수님의 책은 메타버스를 증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 세계, 가상 세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과 문제점을 제시하였다. 이 중 라이프로깅 세계에 대한 설명이 내 눈길을 끌었고, 특히 내가 적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내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에 우리가 적는 일기와는 사뭇 다른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최근 브이로그를 즐겨보고, 인스타그램 눈팅(?)을 통해 주변 친구들의 일상을 보는 나로서 라이프로깅 세계에 대한 서술은 메타버스의 다른 세계들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라이프로깅 세계가 가져올 문제점들이 몇 가지 떠올라 학우들과 함께 공유해보고자 한다.
1) 라이프로깅 세계에서 ‘현실의 나-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이상적인 나=라이프로깅 세계’라는 명제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을 통해 타인과 소통·교류하는 라이프로깅 세계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거짓과 과장을 보태는 것이 아닐까?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편집하는 것이 개인의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오류를 발생시키지 않을까?
2) 사람들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라이프로깅 세계에 접속하여 활동한다. 기존에 일기를 작성하던 우리와 다르게 인간의 사회성이 강조되는 것 같다. 점점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성이 좋은 사람들을 선별하고 이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만연하다. 사회성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능력인 것인가? 사회성이 개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능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3) 더하여,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림과 동시에, 이 세계를 규율할 여러 제도적 정비가 필수적임을 느꼈다. 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세(전자적 용역 과세, 국제 부가가치세)와도 연관이 있다. 메타버스가 확대됨에 따라 효율적인 디지털 과세의 범위는 어느 정도일 것이며, (위의 4가지 세계 구별 중) 어떤 세계에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좋을까?
1) 라이프로깅 세계에서 ‘현실의 나-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이상적인 나=라이프로깅 세계’라는 명제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을 통해 타인과 소통·교류하는 라이프로깅 세계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거짓과 과장을 보태는 것이 아닐까?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편집하는 것이 개인의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오류를 발생시키지 않을까?
2) 사람들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라이프로깅 세계에 접속하여 활동한다. 기존에 일기를 작성하던 우리와 다르게 인간의 사회성이 강조되는 것 같다. 점점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성이 좋은 사람들을 선별하고 이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만연하다. 사회성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능력인 것인가? 사회성이 개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능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3) 더하여,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림과 동시에, 이 세계를 규율할 여러 제도적 정비가 필수적임을 느꼈다. 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세(전자적 용역 과세, 국제 부가가치세)와도 연관이 있다. 메타버스가 확대됨에 따라 효율적인 디지털 과세의 범위는 어느 정도일 것이며, (위의 4가지 세계 구별 중) 어떤 세계에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좋을까?
조성민2021-04-22 14:02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의견을 보태보자면, 1) 특정 부분만 편집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라이프로깅 메타버스가 그곳의 참여자들에게 주는 일종의 관습이 되고 있으며, 이는 어느 정도로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러한 라이프로깅 메타버스의 한계를 확실히 인지하고 사용한다면 현실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메타버스에서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여 '과몰입'한다면 그 때에는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것은 아마도 현실과 메타버스의 우선순위 가치가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서 현실의 인간관계가 약해지거나, 실제와 가상을 혼동을 한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서림2021-04-22 03:26
최근 디지털 에쓰노그래피라는 수업에서 스마트폰 self-documentation이라는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다. 어떤 니즈에서 어떤 앱들을 사용하며, 특정 앱의 사용 맥락은 무엇인지, 다양한 앱을 통해 충족, 불충족 되고 있는 자신의 니즈 등을 성찰하는 과제였다. 성찰의 과정에서 느낀 것은 내 생활이 스마트폰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시간 넘게 게임을 켜놓고 있었다든지, 1시간 단위로 나눈 시간대에 모두 카카오톡 사용 기록이 남아 있었다든지 하는 것이 어쩐지 낯뜨거웠다. 그리고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이렇듯 기술에 종속된 삶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핑계를 떠올리기도 했다.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는 언제나 목적성을 가지고 필요한 때에만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뚜렷한 니즈 없이 무의식적으로 여러 앱에 접속하고 종료하는 행동을 반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메타버스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메타버스는 그 자체로 현실세계와 동위 계층에 놓여 있는 것인데 현실세계와 비교하는 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는 몸이라는 물질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어쩌면 그러한 일이 근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현실세계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익명성과 멀티 페르소나가 가능하기 때문에 메타버스에서의 '자기'가 현실세계의 자기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도, 현실세계에 내가 존재하고 존재를 인식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메타버스는 물론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상상력을 펼치는 자유를 허용하지만, 그러한 자유를 실현하는 인간 존재의 주체성이 흔들려선 안된다. 특히 가상의 자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요소들을 거르는 필터가 아직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자기의식을 흐리는 문제부터 본질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메타버스와 현실세계가 그러한 세계의 존재를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상호 간 영향을 미친다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메타버스에서도 되풀이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특히 현대사회에는 계층, 세대, 젠더 갈등이 점점 더 심화되어 양극단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논쟁적인 양상은 메타버스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불투명해지면 완화될까? 내 의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메타버스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개인의 흔적만 목격할 수 있다. 하나의 예시로, AI 챗봇 ‘이루다’는 20대 여자 대학생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사실적인 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사용자의 대화 내용에 있어 성희롱, 성소수자 차별 등의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개인 정보 문제로 인해 서비스가 조기 종료되었다. 과연 이러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규제 또는 타협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아 개인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모두에게 상흔을 남기는 일들이 메타버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메타버스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메타버스는 그 자체로 현실세계와 동위 계층에 놓여 있는 것인데 현실세계와 비교하는 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는 몸이라는 물질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어쩌면 그러한 일이 근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현실세계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익명성과 멀티 페르소나가 가능하기 때문에 메타버스에서의 '자기'가 현실세계의 자기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도, 현실세계에 내가 존재하고 존재를 인식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메타버스는 물론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상상력을 펼치는 자유를 허용하지만, 그러한 자유를 실현하는 인간 존재의 주체성이 흔들려선 안된다. 특히 가상의 자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요소들을 거르는 필터가 아직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자기의식을 흐리는 문제부터 본질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메타버스와 현실세계가 그러한 세계의 존재를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상호 간 영향을 미친다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메타버스에서도 되풀이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특히 현대사회에는 계층, 세대, 젠더 갈등이 점점 더 심화되어 양극단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논쟁적인 양상은 메타버스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불투명해지면 완화될까? 내 의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메타버스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개인의 흔적만 목격할 수 있다. 하나의 예시로, AI 챗봇 ‘이루다’는 20대 여자 대학생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사실적인 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사용자의 대화 내용에 있어 성희롱, 성소수자 차별 등의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개인 정보 문제로 인해 서비스가 조기 종료되었다. 과연 이러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규제 또는 타협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아 개인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모두에게 상흔을 남기는 일들이 메타버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류성원2021-04-22 10:35
『메타버스』에서는 네 종류의 메타버스를 소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과 우려되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풍부한 예시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초단편소설과 미래에 대한 제언 덕분에 메타버스의 개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김상균 교수님께서 각 챕터의 끝에서 선보이신 초단편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증강현실 콩깍지’에서는 부부가 증강현실 렌즈를 구경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증강현실 렌즈를 착용하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 대신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유명연예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 단편소설은 증강현실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우리가 현실세계의 사람을 마음대로 바꾸어 봐도 되는가?’의 문제다. 지금까지의 증강현실 기술은 현실에 상상력을 한 숟갈 더하는 느낌이었다면, 미래에 더 많은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증강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과연 내가 나의 배우자의 얼굴을 증강현실 렌즈를 통해 유명 배우의 얼굴로 보며 살아간다면, 나는 누구와 결혼한 것일까? 또 다른 문제는 나만 보는 증강현실 세계에서 구해야 하는 동의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초단편소설의 끝에서 부부인 성철과 미주는 대리점 매니저에서 배우자 몰래 구입해도 된다는 문자를 받는다. 증강현실 렌즈를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서, 렌즈를 통해 자신 마음대로 타인의 얼굴을 바꾸어 보아도 되는 것일까? 또, 동의를 구하지 않은 톱스타의 얼굴을 덧입히는 것이 허용되어야 할까? 인공지능을 사용해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부위 등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에 관한 논란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우려는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추어 과연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나아가 사회적 합의를 제도화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라이프로깅 세계에 관련된 초단편소설에서는 유튜브 이후의 플랫폼 ‘뷰튜브’가 다뤄진다. 크리에이터가 뷰센더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는 상황을 영상, 소리, 진동을 통해 뷰어들에게 전송하는 방식이다. 비록 진동 등의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되지는 않았지만, 현재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컨텐츠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의 무서운 롤러코스터 탑승자의 시점에서 찍은 영상들은 몇 백만 뷰의 조회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B대면데이트’를 통해서는 소개팅에 참여하는 여성의 시점으로 여러 명의 소개팅 남성들을 만나게 된다. 지도나 스트리트뷰 같은 거울 세계와는 다르게, 이러한 컨텐츠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 장면이라던지 소재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B대면데이트의 경우 카메라의 초점을 출연자의 얼굴이나, 옷 등에 맞추면서 영상을 보는 이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한 곳에 집중시킨다. B대면데이트는 개그맨들이 웃음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부캐’를 만들고 희화화하는 것이지만, 뷰튜브의 예시처럼 이러한 소비의 카메라가 후면으로 바뀌어 타인과 외부 세계를 향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타인의 초상권을 침해하고 의도적으로 타인을 잘못된 방식으로 대상화하는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세계에 관한 초단편소설 ‘핑크빛평등’에서는 익명성과 멀티페르소나라는 메타버스의 장점이 확장되어, 심지어는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를 역전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의 차별이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가 확장되어 모두가 핑크빛의 피부, 같은 외모를 갖는 세계는 어떨까? 평등을 지향하면서도 이런 질문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은 평등이 무개성과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의 정치적 올바름(PC)에 관한 논의와도 연관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사회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몇몇 사람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는 차별, 배제 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을 내보이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평등, 존중을 지키는 일이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 일은 아니어야 하는데,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타버스』를 읽으면서 기존에 잘 알지 못했던 주제에 관해 눈을 뜰 수 있었고, 점점 확장되는 우리의 세계에 대한 설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새로운 세계인만큼 새로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결국 메타버스에서의 규칙이 제도화되고, 실질적으로 구속력을 가지게 될 때까지는 이를 이용하는 개개인의 자발적인 자각이 중요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기한 마음만큼, 고민이 커지는 책이었다. 또, 이 책은 메타버스의 입문자들에게 적합한 가벼운 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궁금해지려고 할 때 한 챕터가 끝나는 듯한 아쉬움도 있었다. 김상균 교수님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으셨던 메타버스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설명과 더 도전적인 견해를 강연을 통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김상균 교수님께서 각 챕터의 끝에서 선보이신 초단편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증강현실 콩깍지’에서는 부부가 증강현실 렌즈를 구경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증강현실 렌즈를 착용하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 대신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유명연예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 단편소설은 증강현실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우리가 현실세계의 사람을 마음대로 바꾸어 봐도 되는가?’의 문제다. 지금까지의 증강현실 기술은 현실에 상상력을 한 숟갈 더하는 느낌이었다면, 미래에 더 많은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증강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과연 내가 나의 배우자의 얼굴을 증강현실 렌즈를 통해 유명 배우의 얼굴로 보며 살아간다면, 나는 누구와 결혼한 것일까? 또 다른 문제는 나만 보는 증강현실 세계에서 구해야 하는 동의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초단편소설의 끝에서 부부인 성철과 미주는 대리점 매니저에서 배우자 몰래 구입해도 된다는 문자를 받는다. 증강현실 렌즈를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서, 렌즈를 통해 자신 마음대로 타인의 얼굴을 바꾸어 보아도 되는 것일까? 또, 동의를 구하지 않은 톱스타의 얼굴을 덧입히는 것이 허용되어야 할까? 인공지능을 사용해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부위 등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에 관한 논란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우려는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추어 과연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나아가 사회적 합의를 제도화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라이프로깅 세계에 관련된 초단편소설에서는 유튜브 이후의 플랫폼 ‘뷰튜브’가 다뤄진다. 크리에이터가 뷰센더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는 상황을 영상, 소리, 진동을 통해 뷰어들에게 전송하는 방식이다. 비록 진동 등의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되지는 않았지만, 현재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컨텐츠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의 무서운 롤러코스터 탑승자의 시점에서 찍은 영상들은 몇 백만 뷰의 조회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B대면데이트’를 통해서는 소개팅에 참여하는 여성의 시점으로 여러 명의 소개팅 남성들을 만나게 된다. 지도나 스트리트뷰 같은 거울 세계와는 다르게, 이러한 컨텐츠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 장면이라던지 소재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B대면데이트의 경우 카메라의 초점을 출연자의 얼굴이나, 옷 등에 맞추면서 영상을 보는 이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한 곳에 집중시킨다. B대면데이트는 개그맨들이 웃음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부캐’를 만들고 희화화하는 것이지만, 뷰튜브의 예시처럼 이러한 소비의 카메라가 후면으로 바뀌어 타인과 외부 세계를 향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타인의 초상권을 침해하고 의도적으로 타인을 잘못된 방식으로 대상화하는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세계에 관한 초단편소설 ‘핑크빛평등’에서는 익명성과 멀티페르소나라는 메타버스의 장점이 확장되어, 심지어는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를 역전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의 차별이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가 확장되어 모두가 핑크빛의 피부, 같은 외모를 갖는 세계는 어떨까? 평등을 지향하면서도 이런 질문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은 평등이 무개성과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의 정치적 올바름(PC)에 관한 논의와도 연관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사회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몇몇 사람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는 차별, 배제 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을 내보이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평등, 존중을 지키는 일이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 일은 아니어야 하는데,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타버스』를 읽으면서 기존에 잘 알지 못했던 주제에 관해 눈을 뜰 수 있었고, 점점 확장되는 우리의 세계에 대한 설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새로운 세계인만큼 새로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결국 메타버스에서의 규칙이 제도화되고, 실질적으로 구속력을 가지게 될 때까지는 이를 이용하는 개개인의 자발적인 자각이 중요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기한 마음만큼, 고민이 커지는 책이었다. 또, 이 책은 메타버스의 입문자들에게 적합한 가벼운 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궁금해지려고 할 때 한 챕터가 끝나는 듯한 아쉬움도 있었다. 김상균 교수님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으셨던 메타버스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설명과 더 도전적인 견해를 강연을 통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혜령2021-04-22 14:17
평소에 미디어아트를 공부하고 있어서 사실 메타버스나 가상현실, 디지털공간은 나의 주 -생활공간에 더 가깝다고 할 지경이다.
인공지능이나 기타 기술을 대함에 있어서 그러나 나는 모든 철학적, 윤리적 고민들을 하기 이전에, 지구의 물리적 기반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상현실 공간 자체는 무한하지만, 그 공간을 온라인으로 커넥팅하고 그 서버를 운영할 기반은 어찌되었든 지구의 물리현실 좌표 어딘가에서 이뤄져야한다. 그런데 일단 모두가 인공지능과 디지털공간을 대할 때 이 부분을 간과하고 종종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과학공상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자신은 러다이트까지는 아니지만, 내 기록과 모든 포트폴리오, 내 중요 정보들과 작업들이 모두 클라우드나 어떤 기업의 드라이브에 올라가 있다고 하면, 그 정보의 보존성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을 한다. 내 개인 컴퓨터의 하드드라이브나 메모리는 용량이 작기도 하고, 내가 망가뜨릴 확률도 있고, 그렇지만 또 클라우드화시켰을 때 그 기업에 대한 의존성은 어떻게 할지 엄청난 고민이 된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미디어아트가 발달하면서 그 디지털매체 작업의 보존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암스테르담의 스타델릭 미술관은 특히 그 디지털매체의 보존과 큐레이팅으로 유명한데, 그 미술관에서 특히 보존을 담당하는 분의 세미나를 직접 참여해보고 <More than Real : art in the digital age> 라는 책에서도 또 그 분의 인터뷰를 읽었었다. 디지털매체 작업은 끊임없이 그 영상의 코덱의 업데이트, 하드웨어의 온습도 등의 환경 관리, 백업, 화질 등의 문제들이 매우 많다.
이어, 요즘 인공지능이라며 친구와 어떤 주제에 대한 음성통화 후 몇 분뒤에 페이스북이나 기타 sns 플랫폼 광고에 내가 언급한 단어와 관련된 광고가 뜰 때 정말 무섭다. 그것또 필요뿐만 아니라 취향까지 저격하는 경우가 많아 정말 이대로 내 인간 자유의지를 빼앗기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만약 내가 아예 그 인공지능 시스템에게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느다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더라도 분석할 충분한 데이터와 케이스가 주어지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과연 인공지능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메타버스 자체는 사실 꼭 디지털 공간이 아니더라도 시간개념으로만 보더라도 흔히 평행세계 같은 개념에도 적용될 수 있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내가 살지 못한 세계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 메타버스자체를 가지고 어떤 주장을 펼치기가 나는 어렵다. 각자가 생각하는 메타버스의 범주도 다르고, 그 몰입도도 다르기 때문에.. 나는 수많은 오픈월드게임과 아바타만들기, 가볍게는 sns계정까지도 전부 메타버스로 여기기 때문에.. 어쨌든 다들 잘 모르고 헷갈려 하는 메타버스에 대해서 너무 낭만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항상 테크노를 경계하는 태도로 검토하였으면 한다.
인공지능이나 기타 기술을 대함에 있어서 그러나 나는 모든 철학적, 윤리적 고민들을 하기 이전에, 지구의 물리적 기반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상현실 공간 자체는 무한하지만, 그 공간을 온라인으로 커넥팅하고 그 서버를 운영할 기반은 어찌되었든 지구의 물리현실 좌표 어딘가에서 이뤄져야한다. 그런데 일단 모두가 인공지능과 디지털공간을 대할 때 이 부분을 간과하고 종종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과학공상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자신은 러다이트까지는 아니지만, 내 기록과 모든 포트폴리오, 내 중요 정보들과 작업들이 모두 클라우드나 어떤 기업의 드라이브에 올라가 있다고 하면, 그 정보의 보존성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을 한다. 내 개인 컴퓨터의 하드드라이브나 메모리는 용량이 작기도 하고, 내가 망가뜨릴 확률도 있고, 그렇지만 또 클라우드화시켰을 때 그 기업에 대한 의존성은 어떻게 할지 엄청난 고민이 된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미디어아트가 발달하면서 그 디지털매체 작업의 보존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암스테르담의 스타델릭 미술관은 특히 그 디지털매체의 보존과 큐레이팅으로 유명한데, 그 미술관에서 특히 보존을 담당하는 분의 세미나를 직접 참여해보고 <More than Real : art in the digital age> 라는 책에서도 또 그 분의 인터뷰를 읽었었다. 디지털매체 작업은 끊임없이 그 영상의 코덱의 업데이트, 하드웨어의 온습도 등의 환경 관리, 백업, 화질 등의 문제들이 매우 많다.
이어, 요즘 인공지능이라며 친구와 어떤 주제에 대한 음성통화 후 몇 분뒤에 페이스북이나 기타 sns 플랫폼 광고에 내가 언급한 단어와 관련된 광고가 뜰 때 정말 무섭다. 그것또 필요뿐만 아니라 취향까지 저격하는 경우가 많아 정말 이대로 내 인간 자유의지를 빼앗기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만약 내가 아예 그 인공지능 시스템에게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느다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더라도 분석할 충분한 데이터와 케이스가 주어지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과연 인공지능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메타버스 자체는 사실 꼭 디지털 공간이 아니더라도 시간개념으로만 보더라도 흔히 평행세계 같은 개념에도 적용될 수 있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내가 살지 못한 세계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 메타버스자체를 가지고 어떤 주장을 펼치기가 나는 어렵다. 각자가 생각하는 메타버스의 범주도 다르고, 그 몰입도도 다르기 때문에.. 나는 수많은 오픈월드게임과 아바타만들기, 가볍게는 sns계정까지도 전부 메타버스로 여기기 때문에.. 어쨌든 다들 잘 모르고 헷갈려 하는 메타버스에 대해서 너무 낭만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항상 테크노를 경계하는 태도로 검토하였으면 한다.
포스트팬데믹 @ 과학 기술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김상균 지음 | 플랜비디자인 | 2020년 12월 18일 출간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89580575&orderClick=LAG&Kc=#N
목차
Prologue
갑자기 다가온 언택트 세상? 사실은 나만 몰랐던 메타버스
메타버스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모르핀에 중독된 쥐가 된다
메타버스를 여행하는 탐험가
메타버스 여행 가이드
1. 인류는 디지털 지구로 이주한다
새로운 세상, 디지털 지구, 메타버스의 탄생
디지털 테라포밍: 호모 사피엔스, 파베르, 루덴스 & 데우스
같지만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X, Y, Z세대
말하기를 다시 배워야하는 세상
디지털 지구, 메타버스에 올라타라
2. 증강현실 세계: 현실에 판타지 & 편의를 입히다
현실 세계 + 판타지 + 편의 = 증강현실 세계
0.005%만 취하는 뇌: 게으른 뇌가 선택한 쾌락
후퇴하는 호모 사피엔스: 자막 없는 영상의 몰락
현빈 & 박신혜가 보여준 메타버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21세기 봉이 김선달: 나이앤틱의 지구 땅따먹기
코카콜라의 텔레포트: 싱가포르에 눈을 뿌리다
도둑질 대회: 대박 난 호텔의 비결
돈 내고 감옥에 갇히는 Z세대: 방탈출 카페
증강현실로 탄생한 또 다른 나: 스노우 & 제페토
증강현실이 만들어낸 스마트 팩토리: 에어버스 & BMW
메타버스의 미래 또는 그림자 #1: 증강현실 콩깍지
3. 라이프로깅 세계: 내 삶을 디지털 공간에 복제한다
현실의 나 -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 + 이상적인 나 = 라이프로깅 세계
메타버스 속 친구의 의미: 인생의 동반자 vs. 여행의 동반자
메타버스 속 스키너 상자: 상처받은 뇌를 위한 안식처
뇌의 전속 질주: 40% 더 빨라지는 시간
우리는 서로를 돕는 멍청한 개미이다
21세기 지킬과 하이드: 멀티 페르소나
메타버스에는 외톨이가 없다
‘인간극장’에서부터 ‘나 혼자 산다’까지
사생활 판매 경제: 방학 일기는 안 썼지만, 브이로그는 꼭 한다
흥한 페이스북, 유튜브 vs. 망한 싸이월드
나는 널 언제라도 자를 수 있어!
세계인의 운동 기록을 삼킨 나이키 메타버스
메타버스의 미래 또는 그림자 #2: 유튜브 다음은 뷰튜브
메타버스의 미래 또는 그림자 #3: 브레인 투어
4. 거울 세계: 세상을 디지털 공간에 복제한다
현실 세계 + 효율성 + 확장성 = 거울 세계
땅콩 먹는 원숭이의 뇌
구글은 왜 지도를 만들까?
마인크래프트 세상을 3조 원에 사들인 마이크로소프트
방 없는 호텔: 에어비앤비
요리 안 하는 식당: 배달의 민족
에이즈 백신을 탄생시킨 디지털 실험실
하버드보다 입학하기 어려운 대학: 미네르바스쿨
언택트 세상, 모두의 교실이 된 Zoom
블록체인으로 만들어진 거울 세계: 업랜드
한국인의 94.9%가 이주: 카카오 유니버스
에이즈 백신을 탄생시킨 디지털 실험실
슬픔을 비추는 거울: 댓드래곤캔서
메타버스의 미래 또는 그림자 #4: 핑크빛 평등
5. 가상 세계: 어디에도 없던 세상을 창조한다
신세계 + 소통 + 놀이 = 가상 세계
젊은 야만인의 놀이터
초인을 키우는 놀이터
멘탈 시뮬레이션 플랫폼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역병을 이겨낸 WoW
로블록스 메타버스의 주인이 된 아이들
가상 세계 속 시간 여행: 레드데드온라인 & 사이버펑크2077
메타버스 속 인공지능 오토와 인간의 투쟁
가상 세계로 들어간 기업들: 광고를 삼키는 포트나이트
가상 세계로 떠난 명품: 루이비통과 LoL의 콜라보
현실이 된 SF영화: 레디플레이어원 & 하프라이프 알릭스
메타버스로 진출한 정치인: 모동숲에 깃발을 꽂은 바이든
메타버스의 미래 또는 그림자 #5: 기억거래소, 헤븐 서버는 등장할까?
6. 메타버스, 이렇게 개척하자
삼성전자: 사이버펑크2077에 제품을 깔아보자
SK바이오팜: 디지털 실험실을 오픈하자
현대자동차: 매드맥스 세계관을 넣어보자
LG화학: 메타버스에 화학공장을 건설하자
카카오: 자서전을 대신 써주자
빙그레: 로블록스에 빙그레우스 궁전을 건설하자
국순당: GTA 온라인에 주점을 차리자
아모레퍼시픽: 메타버스에 디지털 화장품을 팔자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위버스에 K팝 왕국을 건설하자
CJ대한통운: 거울 세계에 이야기를 입히자
7. 메타버스가 낙원은 아니다
현실은 소멸되는가? 메타버스와 현실의 관계
도피인가? 도전인가?
그 세상도 내게는 피곤하다
아마존이 진짜 무서운 이유, 메타버스의 거대한 손
가진 게 없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 vs. 네 것이 맞냐?
메타버스 속 헝거게임
NPC, 인공지능에게 인권이 있을까?
우리는 나이, 성별, 이름을 묻지 않습니다
폭발하는 공격성
Epilogue
장자의 꿈 & 매트릭스
메타버스 사용법 & 주의사항
인터넷, 스마트폰, 그 다음은 메타버스?
메타버스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