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 소주제 3] 『기억 거래소』/『세계미래보고서 2021』
서강민2021-04-22 19:56
기억거래소는 저번주에 작성했기 떄문에 세계미래보고서에 관한 내용만 서술했습니다!
내용요약) 이 책은 미래의 펼쳐질 모습에 대해 생명공학, 교육, 경제, 의료, IT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분야에 걸쳐 다루었기 때문에 이중에서 생명공학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생명공학 기술은 CRISPR-Cas9 기술과 DNA sequencing 기술,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CRISPR-Cas9 기술은 DNA를 원하는 대로 자르고, 조립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준 기술이다. 이 기술로 인해 인간에 해가 되는 DNA를 자르고, 정상 DNA로 치환할 수 있으며, 우수한 형질을 가진 아기를 만들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인간이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기술이다. DNA sequencing 기술은 한 개인의 유전체(DNA의 총집합체)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이다. DNA sequencing 기술로 인해 각 개개인의 유전체를 읽어내, 개인별 맞춤형 유전자 치료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직 공학을 통해 망막세포를 재생시켜 손상된 시각을 회복시켜줄 수 있고, 화상 등으로 인해 손상을 입은 피부를 효과적으로 재생시켜 줄 수 있으며, 청각 역시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등, 생체 내 다양한 손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특히, 조직공학과 3-D프린터의 접목을 통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수명연장과 궁극적으로 죽음 극복을 목표로 다양한 생명공학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각해볼 점)
Q1.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에게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적용시켜, 더 우월한 인간(큰 키, 우수한 지능, 많은 근육량, 높은 사교성 등)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점은 무엇이 있을까?
Q2. 현재 인간은 인간을 제외한 다양한 동식물에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품종개량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그 결과 병충해나 냉해에 강한 농작물 등 인간에게 유익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다른 동식물이 아닌 인간에게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Q3. 지금까지 죽음은 인간에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어느 정도 죽음 역시 극복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죽음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평균 수명 연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평균 수명 연장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점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 수명 연장이 가져다주는 문제점과 그에 대한 해결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Q4. 배아줄기세포는 어떠한 세포로도 분해될 수 있는 전분화성을 가지고 있는 세포로, 생명공학 연구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는 연구 재료이다. 하지만 연구자는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배아를 파괴한다. 배아는 인간과 완전히 동등하다고 볼 수 없지만, 인간으로 성장해나갈 가능성이 있는 세포 덩어리로, 윤리적인 문제와 결부된다. 역설적으로 인간을 위한 인간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인데 반면,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연구이기도 하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학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내용요약) 이 책은 미래의 펼쳐질 모습에 대해 생명공학, 교육, 경제, 의료, IT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분야에 걸쳐 다루었기 때문에 이중에서 생명공학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생명공학 기술은 CRISPR-Cas9 기술과 DNA sequencing 기술,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CRISPR-Cas9 기술은 DNA를 원하는 대로 자르고, 조립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준 기술이다. 이 기술로 인해 인간에 해가 되는 DNA를 자르고, 정상 DNA로 치환할 수 있으며, 우수한 형질을 가진 아기를 만들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인간이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기술이다. DNA sequencing 기술은 한 개인의 유전체(DNA의 총집합체)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이다. DNA sequencing 기술로 인해 각 개개인의 유전체를 읽어내, 개인별 맞춤형 유전자 치료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직 공학을 통해 망막세포를 재생시켜 손상된 시각을 회복시켜줄 수 있고, 화상 등으로 인해 손상을 입은 피부를 효과적으로 재생시켜 줄 수 있으며, 청각 역시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등, 생체 내 다양한 손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특히, 조직공학과 3-D프린터의 접목을 통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수명연장과 궁극적으로 죽음 극복을 목표로 다양한 생명공학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각해볼 점)
Q1.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에게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적용시켜, 더 우월한 인간(큰 키, 우수한 지능, 많은 근육량, 높은 사교성 등)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점은 무엇이 있을까?
Q2. 현재 인간은 인간을 제외한 다양한 동식물에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품종개량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그 결과 병충해나 냉해에 강한 농작물 등 인간에게 유익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다른 동식물이 아닌 인간에게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Q3. 지금까지 죽음은 인간에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어느 정도 죽음 역시 극복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죽음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평균 수명 연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평균 수명 연장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점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 수명 연장이 가져다주는 문제점과 그에 대한 해결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Q4. 배아줄기세포는 어떠한 세포로도 분해될 수 있는 전분화성을 가지고 있는 세포로, 생명공학 연구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는 연구 재료이다. 하지만 연구자는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배아를 파괴한다. 배아는 인간과 완전히 동등하다고 볼 수 없지만, 인간으로 성장해나갈 가능성이 있는 세포 덩어리로, 윤리적인 문제와 결부된다. 역설적으로 인간을 위한 인간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인데 반면,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연구이기도 하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학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강다솔2021-04-28 09:02
안녕하세요 강민 님! 저도 생명공학 기술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과연 인간의 수명을 예측하고, 연장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이 괜찮은가? 라는 의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Q1. 일단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월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우월한가?'라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인간의 우월함과 열등함에 대해 논하고, 구분함으로써 차별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엇이 우월한가라는 기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예전의 기준으로 우월한 사람들은 후대의 기준으로 열등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세대 간 분리가 유전적으로 고착화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됩니다.
Q3. 일차적으로는 인구증가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인구감소(우리나라 평균 출산율 0.98명), 고령화로 앓고 있는 사회에게는 수명 연장이 사회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2명 이상의 출산율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그렇게 출산율을 늘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인구증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 기술이 등장하면 오히려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의 수명을 연장해도 괜찮을지 선택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순환이 되지 않는 인간 사회는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기후변화도 인간이 자연스러운 탄소 순환의 고리를 파괴하면서 생겨난 문제인데 죽음까지 통제하며 탄소가 아니라 생명 순환의 고리를 파괴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우려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Q1. 일단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월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우월한가?'라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인간의 우월함과 열등함에 대해 논하고, 구분함으로써 차별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엇이 우월한가라는 기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예전의 기준으로 우월한 사람들은 후대의 기준으로 열등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세대 간 분리가 유전적으로 고착화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됩니다.
Q3. 일차적으로는 인구증가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인구감소(우리나라 평균 출산율 0.98명), 고령화로 앓고 있는 사회에게는 수명 연장이 사회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2명 이상의 출산율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그렇게 출산율을 늘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인구증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 기술이 등장하면 오히려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의 수명을 연장해도 괜찮을지 선택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순환이 되지 않는 인간 사회는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기후변화도 인간이 자연스러운 탄소 순환의 고리를 파괴하면서 생겨난 문제인데 죽음까지 통제하며 탄소가 아니라 생명 순환의 고리를 파괴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우려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주영2021-04-28 22:4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학우님께서 제시해주신 생각해볼 점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영화 인타임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인타임은 시간을 화폐로 사용하는 세상을 다룬 sf영화인데, 모든 인간이 충분히 긴 생을 살 만큼 시간이 있는데도(주어진 시간을 다 쓰면 죽음) 소수의 인간이 이 시간의 유통을 통제하며 자신들만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인간의 수명이 연장(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연장)된다고 해서 모두가 영생에 가까운 삶을 지금 이 사회 내에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죽음이 극복 가능한 사회가 오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해 희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희생당하는 쪽은 분명 힘 없고 과학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일 것이라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고요.
영생을 사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더라도, 크리스퍼 기술로 불치병을 고치거나 선천적 기형을 막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기술 활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도 전쟁무기로 사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발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철저한 규제와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유전자 조작은 너무 위험해보인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학우님께서 제시해주신 생각해볼 점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영화 인타임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인타임은 시간을 화폐로 사용하는 세상을 다룬 sf영화인데, 모든 인간이 충분히 긴 생을 살 만큼 시간이 있는데도(주어진 시간을 다 쓰면 죽음) 소수의 인간이 이 시간의 유통을 통제하며 자신들만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인간의 수명이 연장(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연장)된다고 해서 모두가 영생에 가까운 삶을 지금 이 사회 내에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죽음이 극복 가능한 사회가 오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해 희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희생당하는 쪽은 분명 힘 없고 과학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일 것이라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고요.
영생을 사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더라도, 크리스퍼 기술로 불치병을 고치거나 선천적 기형을 막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기술 활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도 전쟁무기로 사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발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철저한 규제와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유전자 조작은 너무 위험해보인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이재용2021-04-28 23:10
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을 읽고 영화 '가타카'가 생각나더군요. 영화처럼 이미 이 세상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더욱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게 된다면, 그 우월성에 의해 부와 권력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이로 인한 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술을 적용시킬 수 있다면야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 그것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있어, '불멸'은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이 꿈꾸어왔던 목표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완전하진 않지만 아마 불멸과 가깝도록 하는 기술이 발전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인간은 불멸이지만 타 생명체, 자원, 공간 등 또한 영원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자원과 공간에 제약이 있다면 불멸(또는 생명 연장)이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기 전, 자원(자연)과 공간 제약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질문을 읽고 영화 '가타카'가 생각나더군요. 영화처럼 이미 이 세상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더욱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게 된다면, 그 우월성에 의해 부와 권력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이로 인한 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술을 적용시킬 수 있다면야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 그것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있어, '불멸'은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이 꿈꾸어왔던 목표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완전하진 않지만 아마 불멸과 가깝도록 하는 기술이 발전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인간은 불멸이지만 타 생명체, 자원, 공간 등 또한 영원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자원과 공간에 제약이 있다면 불멸(또는 생명 연장)이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기 전, 자원(자연)과 공간 제약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재민2021-04-28 23:25
1번 질문과 관련해서, 저 개인적으로 요즘 "잉여 인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저는 꼭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요즘은 :"나도 그냥 저 많은 군중의 사람 중 하나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ㅋㅋ 특별히 우월하지도, 잘나지도 않은 내가,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그 효용이 무엇일지 고민됩니다. 근데 비단 저 뿐 아니라, 정말 대한민국의 80% 이상은 (저 포함입니다, 당연히) 제 기준에 "잉여인간"일 수 밖에 없는 구조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들 각각 삶의 서사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반드시 우월하지 않은 삶이 주는 인사이트가 무엇일지, 그 "보통"의 삶이 - 키 작고, 지능이 우수하지 않고, 근육량이 높지도 않고, 사교성이 낮은 -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하는지 고민을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ㅎㅎ
장연주2021-04-26 15:20
<기억거래소>
소설을 읽는 내내 이 기술만큼은 현실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한 기억과, 겪지 않았음에도 겪었다고 믿게끔 하는 가짜 기억이 공존하는 사람은 자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때로는 원하는 방식대로 편집되고 왜곡되어 저장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역시 '진짜' 기억은 아닌 셈이니 가짜 기억을 삽입하는 것도 괜찮은 것일까?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을 추억하며 행복해하고, 슬프거나 불행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별 감흥 없는 기억이 모여 오늘의 나를 구성한다. 수많은 과거의 기억들을 딛은 채 새로운 기억, 정확히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좋은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기억을 조작한 후 안락사하는 것은 꺼름칙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기억을 조작해서 얻은 행복도 행복이니 아무 문제가 없는 건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서 좋았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늘 어렵고 여전히 답을 모르겠지만, 그간 접한 행복에 대한 여러 논의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BBC 행복위원회 의원인 Richard Reeves에 따르면 '행복한 삶은 지극한 만족감으로 충만한 상태가 아니다. 행복한 삶은 비극, 도전, 불행, 실패, 그리고 후회까지도 모두 껴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불행해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있다'고 행복을 설명했다. 즉, 좋은 순간에 놓여 있더라도 본인이 잘 대응하지 못하면 행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쓰다보니 글이 답 없는 물음으로 가득한데, 정리하자면! '기억'이라는 것은 단지 인간의 머리 안에 있는 무언가 정도를 넘어서 인간존재의 조건이 아닐지, 그렇다면 그 기억을 금전적 거래의 대상으로 놓아도 되는 걸까? 등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 기술만큼은 현실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한 기억과, 겪지 않았음에도 겪었다고 믿게끔 하는 가짜 기억이 공존하는 사람은 자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때로는 원하는 방식대로 편집되고 왜곡되어 저장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역시 '진짜' 기억은 아닌 셈이니 가짜 기억을 삽입하는 것도 괜찮은 것일까?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을 추억하며 행복해하고, 슬프거나 불행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별 감흥 없는 기억이 모여 오늘의 나를 구성한다. 수많은 과거의 기억들을 딛은 채 새로운 기억, 정확히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좋은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기억을 조작한 후 안락사하는 것은 꺼름칙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기억을 조작해서 얻은 행복도 행복이니 아무 문제가 없는 건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서 좋았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늘 어렵고 여전히 답을 모르겠지만, 그간 접한 행복에 대한 여러 논의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BBC 행복위원회 의원인 Richard Reeves에 따르면 '행복한 삶은 지극한 만족감으로 충만한 상태가 아니다. 행복한 삶은 비극, 도전, 불행, 실패, 그리고 후회까지도 모두 껴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불행해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있다'고 행복을 설명했다. 즉, 좋은 순간에 놓여 있더라도 본인이 잘 대응하지 못하면 행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쓰다보니 글이 답 없는 물음으로 가득한데, 정리하자면! '기억'이라는 것은 단지 인간의 머리 안에 있는 무언가 정도를 넘어서 인간존재의 조건이 아닐지, 그렇다면 그 기억을 금전적 거래의 대상으로 놓아도 되는 걸까? 등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서강민2021-04-27 00:29
흥미로운 의견 잘 읽었습니다! 특히 '좋은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라고 제시해주신 의문점에 큰 공감이 갑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좋은 기억이 가치 있는 이유는 나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기억을 '더 좋다'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평상시, 기본 상태나 더 안좋은 상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값어치 있고 좋다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나쁜 기억이 없다면, 좋은 기억의 '좋음' 역시 저해될 것이고, 역설적으로 더 이상 좋은 기억이 아닐 것 같습니다.
위와 마찬가지의 논리로 행복 역시 불행, 실패, 후회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행복이라는 값어치가 더 빛나보이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다양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다양하게 느끼는 와중에 행복이 상대적으로 좋은 감정인데 반면, 행복이라는 감정만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더이상 행복이 '좋은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에서도 비슷한 주제가 나오는데, 인간의 모든 감정(슬픔, 즐거움 등등)은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예를 들어, 공포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생한 감정이며, 분노는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기 위한 감정이며, 혐오는 외부의 해로운 것들로부터 멀리하기 위한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슬픔 역시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긴말한 유대를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감정인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좋은 기억이 가치 있는 이유는 나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기억을 '더 좋다'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평상시, 기본 상태나 더 안좋은 상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값어치 있고 좋다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나쁜 기억이 없다면, 좋은 기억의 '좋음' 역시 저해될 것이고, 역설적으로 더 이상 좋은 기억이 아닐 것 같습니다.
위와 마찬가지의 논리로 행복 역시 불행, 실패, 후회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행복이라는 값어치가 더 빛나보이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다양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다양하게 느끼는 와중에 행복이 상대적으로 좋은 감정인데 반면, 행복이라는 감정만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더이상 행복이 '좋은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에서도 비슷한 주제가 나오는데, 인간의 모든 감정(슬픔, 즐거움 등등)은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예를 들어, 공포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생한 감정이며, 분노는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기 위한 감정이며, 혐오는 외부의 해로운 것들로부터 멀리하기 위한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슬픔 역시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긴말한 유대를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감정인 것 같습니다.
박건규2021-04-27 16:35
좋은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나쁜 순간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즐겨 들었기에 유태인들은 지금까지도 바그너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지나가는 소리로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나가는 소리답게 이는 부정확한 말인데, 바그너 자신이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제게 떠오른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든 유태인들이 바그너의 음악을 거부하면서 바그너의 작품을 평생 들어보지 못한 세대가 등장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세대의 유태인에게 아무런 힌트 없이 바그너의 음악을 들려주게 되면 그들은 바그너의 음악을 아무런 저항 없이 들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가 나쁘다고 해서 우리의 기억에서 전부 지워버린다면 결국 우리는 그것이 왜 나쁜지 모르게 될 것이고, 결국 모두가 불행을 망각한 사회가 도래한다면 그 다음 세대부터는 불행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설령 누군가는 행복한 기억만을 남긴다 해도 누군가는 악을 기억해야만 하고(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가 이런 설정이죠), 개개인의 입장으로 볼 때 우리는 결국 어떠한 불행에 대해서는 기억이 남아 있어야 행복을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리라2021-04-28 08:52
좋은 순간만 기억하는 게 과연 행복인지에 대한 질문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연주님이 언급해주신 것처럼 『기억거래소』에서는 기억을 조작해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때 행복한 기억은 안락사의 대상이 되는 ‘노신자’가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기억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노신자’의 말과 평소 외부 환경의 모습을 통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추측한 ‘상상’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의 행복에 진정으로 도달하는 것(실제 성취를 통해서든, 혹은 ‘더컴퍼니’를 통해 얻은 조작된 기억을 통해서든)이 과연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외부의 인위적인 조작이나 자극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 꾸려나간 기억이 행복 아닐까요? 조작된 기억이 완벽한 현실의 기억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고 할지라도 공허함을 느끼지는 않았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상태는 결국 부정적인 상태가 대립적으로 존재해야 그 가치를 인지할 수 있을 텐데, 윤리적 측면의 죄책감이나 내가 즐기고 있는 행복한 상태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이 발생한다면 『기억거래소』에 등장하는 기술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채수형2021-04-26 23:08
책 기억 거래소에서는 꿈을 통해 기억을 주입하고 안락사를 시키거나, 뇌의 일부를 주입시켜서 언어능력을 향상시키거나, 누군가를 납치해서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억을 거래하는 사업에 발을 담그게 된 주인공과 관련된 내용을 풀어간다. 이 기억 거래소라는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죽은 사람의 뇌의 일부를 활용하여 사후세계를 직접 설계한 ‘헤븐 서버’의 존재였다. 물론 다양한 기억 거래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와 이런 거래가 실제로 된다면, 내가 갖고 있는 지식도 혹시 거래된 기억이 아닐까?라는 무서움과 동시에, 좋게 사용하려면 좋게 사용될 수 있겠다라는 양면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양한 기억거래보다도 이 ‘헤븐 서버’가 더 인상 깊었던 이유는, 작 중에서 깊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악한 방식으로 이 서버의 지배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뇌를 하나의 서버에 가두고 이를 헤븐이라고 지칭했는데, 이러한 기술은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았을 땐 “와 죽은 다음에 사후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네?” 혹은 “영생을 이룰 수 있는 거 아니야?”등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이 헤븐서버라는 알고리즘 자체도 결국 누군가가 만들고 개발했다는 점에서 악용될 여지가 정말 많다는 것을 고려해야 되는데, 그 점을 책에서 언급해주었다는 점이 좋았다. 실제로 우리가 앞으로 마주칠 메타버스의 세계도 거리적, 시간적 한계를 없애줄 수 있다는 점. 익명의 세계에서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점 등 좋은 장점들이 많이 기대된다. 그러나 이 메타버스의 세계, 이 메타버스의 알고리즘 또한 결국 한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정말 조심해야할 부분이 많다는 것 또한 인식해야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기억거래소 라는 책은 메타버스와 관련된 공간의 양면성을 알려주고 또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다고 느꼈다.
최민정2021-04-28 10:49
작성해주신 내용에 깊게 공감했습니다. 헤븐 서버도 결국 설립자가 존재하고, 그 설립자의 판단에 따라 대우 받는 사람과 처벌 받는 사람이 나뉘었습니다. 이는 마치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고 그 세상에서 누군가는 선한 존재이고 누군가는 악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인 "승리호"에서도 화성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인물이 일부의 집단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존재로 상정하여 후자를 말살하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기술로 인해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이렇게 한 개인의 판단으로 다수의 사람의 생존이 정해지는 것이 지난 역사 속 독재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술이 권력으로 작용하는 세상이 성큼 다가왔고, 그 흐름에 맞게 정보 literacy를 넘어서서 해당 권력을 어떻게 다루고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건규2021-04-27 16:12
1.
김상균 교수의 소설 『기억 거래소』는 뇌과학적인 측면의 메타버스 구축이 가질 수 있는 파급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소설 속에서 ‘조작몽 동반 안락사’ 시술을 받은 사람이나 ‘헤븐 서버’에 들어간 사람들이 현실을 초원한 가상의 세계를 체험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메타버스를 체험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물론 ‘조작몽 동반 안락사’ 시술의 경우 당사자는 자신이 현실에 있다고 느끼고 사실 메타버스 속에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자신이 메타버스인 ‘헤븐 서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조 실장의 사례를 놓고 비교할 때 이는 두 가지의 측면의 메타버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아가 소설 속에는 ‘부분 마인드 복사술’ 등 메타버스로 온전히 사람을 보내지는 않는 기억 조작/첨가의 사례도 있는데, 앞서 제시한 ‘조작몽 동반 안락사’를 VR 기기 등을 활용한 현실과는 분리된 메타버스의 구현이라면 ‘부분 마인드 복사술’은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AR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예 ‘부분 마인드 복사술’ 기술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설정이나 이야기를 기억에 첨가한 다음 더 재미있게 메타버스 게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혹은, 산타클로스가 실존하는 기억을 집어넣으면, 혹은 종교적인 체험의 기억을 집어넣는다면 (그렇지 않던 사람이) 산타클로스나 종교를 믿게 만들 수도 있을까?
2.
이번 학기 언어학 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인간의 언어 능력이 신체 기관과도 같아 복합적인 체계를 이루고 생득적이라는 촘스키의 가설을 배우게 되었는데, 나아가 일반적인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은 구분된다는 주장도 접했다. (이런 주장들은 언어장애가 FOXP2라는 유전자와 밀접히 연관되었다는 연구나 실어증/난독증에 대한 연구로 뒷받침된다.) 언어가 신체 기관에 비유된다는 것으로부터 나는 언어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부분적으로 특화되어 있다면 언어 능력도 각종 장기처럼 이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이런 측면에서 김상균 교수의 소설 속에 등장한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다만 개인적으로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언어 능력은 모든 언어에 보편적인 원리 혹은 보편문법과 언어마다 차이가 있는 매개변항으로 이루어지는데, 원리 부분은 인간이 생득적으로 타고나나 매개변항은 보편문법을 기반으로 한 학습을 통해 습득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언어 능력을 이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언어 능력이 결여된 언어 장애인에게 보편 문법을 심어줘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상상했던 것인데, 김상균 교수는 매개변항까지도 이식하는 상황을 묘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와는 별개로 언어능력을 제공한 케냐 소년의 나이가 어린 것은 적절한 설정 같은데, 결정 시기 가설에 따르면 사춘기(12~13세)가 지나면 제1언어를 정상적으로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된 예로 좌뇌 제거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언어 능력이 현격히 저하되는데, 사춘기 이전에 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우뇌가 언어 능력을 수용하게 되어 정상적인 언어 능력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사춘기 이후에 수술받은 이들은 언어 능력을 회복할 수 없었다. 이런 측면에 주목한다면 소설 속에서 10살인 케냐 소년에게는 약간은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
3.
소설 『기억 거래소』 속에는 여러 기억 관련 시술이 등장한다. 이들이 현실에 등장한다면 가지게 될 파급력은 막대할 텐데, 이런 면에서 『세계미래보고서 2021』이 언급한 수명 연장과 노화 정복에 관련한 부분 외에도 뇌과학과 관련해 생명공학 분야가 각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상균 교수의 소설 『기억 거래소』는 뇌과학적인 측면의 메타버스 구축이 가질 수 있는 파급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소설 속에서 ‘조작몽 동반 안락사’ 시술을 받은 사람이나 ‘헤븐 서버’에 들어간 사람들이 현실을 초원한 가상의 세계를 체험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메타버스를 체험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물론 ‘조작몽 동반 안락사’ 시술의 경우 당사자는 자신이 현실에 있다고 느끼고 사실 메타버스 속에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자신이 메타버스인 ‘헤븐 서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조 실장의 사례를 놓고 비교할 때 이는 두 가지의 측면의 메타버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아가 소설 속에는 ‘부분 마인드 복사술’ 등 메타버스로 온전히 사람을 보내지는 않는 기억 조작/첨가의 사례도 있는데, 앞서 제시한 ‘조작몽 동반 안락사’를 VR 기기 등을 활용한 현실과는 분리된 메타버스의 구현이라면 ‘부분 마인드 복사술’은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AR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예 ‘부분 마인드 복사술’ 기술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설정이나 이야기를 기억에 첨가한 다음 더 재미있게 메타버스 게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혹은, 산타클로스가 실존하는 기억을 집어넣으면, 혹은 종교적인 체험의 기억을 집어넣는다면 (그렇지 않던 사람이) 산타클로스나 종교를 믿게 만들 수도 있을까?
2.
이번 학기 언어학 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인간의 언어 능력이 신체 기관과도 같아 복합적인 체계를 이루고 생득적이라는 촘스키의 가설을 배우게 되었는데, 나아가 일반적인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은 구분된다는 주장도 접했다. (이런 주장들은 언어장애가 FOXP2라는 유전자와 밀접히 연관되었다는 연구나 실어증/난독증에 대한 연구로 뒷받침된다.) 언어가 신체 기관에 비유된다는 것으로부터 나는 언어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부분적으로 특화되어 있다면 언어 능력도 각종 장기처럼 이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이런 측면에서 김상균 교수의 소설 속에 등장한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다만 개인적으로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언어 능력은 모든 언어에 보편적인 원리 혹은 보편문법과 언어마다 차이가 있는 매개변항으로 이루어지는데, 원리 부분은 인간이 생득적으로 타고나나 매개변항은 보편문법을 기반으로 한 학습을 통해 습득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언어 능력을 이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언어 능력이 결여된 언어 장애인에게 보편 문법을 심어줘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상상했던 것인데, 김상균 교수는 매개변항까지도 이식하는 상황을 묘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와는 별개로 언어능력을 제공한 케냐 소년의 나이가 어린 것은 적절한 설정 같은데, 결정 시기 가설에 따르면 사춘기(12~13세)가 지나면 제1언어를 정상적으로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된 예로 좌뇌 제거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언어 능력이 현격히 저하되는데, 사춘기 이전에 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우뇌가 언어 능력을 수용하게 되어 정상적인 언어 능력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사춘기 이후에 수술받은 이들은 언어 능력을 회복할 수 없었다. 이런 측면에 주목한다면 소설 속에서 10살인 케냐 소년에게는 약간은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
3.
소설 『기억 거래소』 속에는 여러 기억 관련 시술이 등장한다. 이들이 현실에 등장한다면 가지게 될 파급력은 막대할 텐데, 이런 면에서 『세계미래보고서 2021』이 언급한 수명 연장과 노화 정복에 관련한 부분 외에도 뇌과학과 관련해 생명공학 분야가 각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강민2021-04-27 18:14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특히 언어능력을 담당한 뇌부위의 이식을 통해 언어능력의 이전에 관해서 설명한 부분에 인상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는데, 언어능력에 관여하는 매개변항과 보편문법을 담고 있는 뇌를 특정한 부위로 정확히 구획하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입니다.
뇌 이식을 통한 언어 능력 전달이 가능하려면 수술적인 과정은 제외하더라도 언어능력을 전적으로 담고 있는 부위가 존재해야 하는데, 뇌에서 그 부위를 구획화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특정 행동을 할 때 뇌의 활성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물론 특정 부위에서 특정 행동에 대해 큰 활성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부위도 미약하게나마 활성이 있는 것을 보면 중추 역활을 하는 뇌와 부수적인 역활을 하는 신경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물리적인 뇌 이식을 통한 언어 능력(혹은 다른 경험적 능력)의 전달은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명 다른 신체 부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되어 있는데, 유독 뇌에 대해서는 현대 과학에서도 분자수준에서의 아직 엄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뇌과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신장이라는 장기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미 대부분 밝혀져 있는데, 뇌에 대해서는 뇌 자체가 너무나 복잡한 계이기 때문인지 아직 알아나가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는데, 언어능력에 관여하는 매개변항과 보편문법을 담고 있는 뇌를 특정한 부위로 정확히 구획하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입니다.
뇌 이식을 통한 언어 능력 전달이 가능하려면 수술적인 과정은 제외하더라도 언어능력을 전적으로 담고 있는 부위가 존재해야 하는데, 뇌에서 그 부위를 구획화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특정 행동을 할 때 뇌의 활성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물론 특정 부위에서 특정 행동에 대해 큰 활성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부위도 미약하게나마 활성이 있는 것을 보면 중추 역활을 하는 뇌와 부수적인 역활을 하는 신경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물리적인 뇌 이식을 통한 언어 능력(혹은 다른 경험적 능력)의 전달은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명 다른 신체 부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되어 있는데, 유독 뇌에 대해서는 현대 과학에서도 분자수준에서의 아직 엄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뇌과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신장이라는 장기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미 대부분 밝혀져 있는데, 뇌에 대해서는 뇌 자체가 너무나 복잡한 계이기 때문인지 아직 알아나가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채수형2021-04-28 16:3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 역시 기억거래소를 읽으면서 헤븐서버와 안락사 파트가 일종의 메타버스라는 생각을 했고, 이러한 일들이 미래사회의 기술의 발달로 실제 메타버스의 하나의 종류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댓글을 읽으면서 한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점은, 기억거래소에서 기억을 거래할 때, 가령 책에서 기억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러한 것도 일종의 메타버스로 볼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조작몽 동반 안락사도 하나의 메타버스라고 볼 수 있다면, 주입된 기억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 삶 또한 어찌보면 기술과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또한 하나의 메타버스일까?라는 궁금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 기억거래소를 읽으면서 헤븐서버와 안락사 파트가 일종의 메타버스라는 생각을 했고, 이러한 일들이 미래사회의 기술의 발달로 실제 메타버스의 하나의 종류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댓글을 읽으면서 한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점은, 기억거래소에서 기억을 거래할 때, 가령 책에서 기억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러한 것도 일종의 메타버스로 볼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조작몽 동반 안락사도 하나의 메타버스라고 볼 수 있다면, 주입된 기억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 삶 또한 어찌보면 기술과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또한 하나의 메타버스일까?라는 궁금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다솔2021-04-27 22:32
뜬금없겠지만, 나는 『기억거래소』를 읽으면서 우리에게 문학이 왜 필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 포스트코로나 특별판』과 비교해서 읽으면서 더욱 그 중요성을 체감했는데, 『세계미래보고서 2021: 포스트코로나 특별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들을 매우 상세히 소개하며 “인류는 미래에 이런 것까지 해낼 수 있어!”라는 식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예컨대, DNA메틸화라는 기술을 소개하면서 “그렇다면 개개인이 자신의 수명을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수명을 알 수 있다면, 남은 삶을 보내는 인간들의 태도와 삶의 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그리고 수명 예측은 노화를 늦추고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들과 어떻게 접목될까? 미래의 가능성과 변화가 기대된다.”(322쪽)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대목을 보면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정확히 예측하고 생명을 끊임없이 연장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맞는가? 그리고 이것이 낳을 악영향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이 별로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다. 이외에도 이 책은 다양한 기술들에 대해 비슷한 접근을 하고 있고, 끼칠 수 있는 악영향이 우려되니 윤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고민을 일축한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은 거의 잡을 수 없어서, 읽으면서 어딘가 찝찝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기억거래소』를 읽으면서는 기억을 지우고, 조작하여 생성하는 기술들이 인간에게, 또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해가며 풍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우리의 감정, 자유의지 등 인간만의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사실 뇌의 전기자극과 같은 생물학적 반응의 결과일 수 있으며 따라서 동기, 마음 등은 과학기술로 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들어왔는데, 부분 마인드 복제술이 보여주듯이 기술을 통해 우리의 인생의 매우 큰 목표이자 과정이 되는 꿈까지도 조작할 수 있다면 인간의 마음, 의지는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지금도 SNS 등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욕구와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가고 싶다!” 혹은 “이것을 사고 싶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생각해내고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여러 고민들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답이 금방 나오는 질문은 아니지만 이렇게 마음을 담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고민하지 않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고민에 마음을 담게 하는 데에는 문학, 상상력의 역할이 새삼 매우 크다고 느꼈다.
한편 『세계미래보고서 2021: 포스트코로나 특별판』의 아티스트 인공지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만이 아니라 인공지능까지 문학작품을 통해 상상력을 제공하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 아니, 이미 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때 기계가 아닌 인간의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 까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이야 통찰력 있는 상상력,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은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훗날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매우 신선하고 통찰력 있으며 호소력 짙은 예술을 만들어낸다면 그 때 인간과 인공지능 예술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하지만 『기억거래소』를 읽으면서는 기억을 지우고, 조작하여 생성하는 기술들이 인간에게, 또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해가며 풍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우리의 감정, 자유의지 등 인간만의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사실 뇌의 전기자극과 같은 생물학적 반응의 결과일 수 있으며 따라서 동기, 마음 등은 과학기술로 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들어왔는데, 부분 마인드 복제술이 보여주듯이 기술을 통해 우리의 인생의 매우 큰 목표이자 과정이 되는 꿈까지도 조작할 수 있다면 인간의 마음, 의지는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지금도 SNS 등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욕구와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가고 싶다!” 혹은 “이것을 사고 싶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생각해내고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여러 고민들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답이 금방 나오는 질문은 아니지만 이렇게 마음을 담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고민하지 않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고민에 마음을 담게 하는 데에는 문학, 상상력의 역할이 새삼 매우 크다고 느꼈다.
한편 『세계미래보고서 2021: 포스트코로나 특별판』의 아티스트 인공지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만이 아니라 인공지능까지 문학작품을 통해 상상력을 제공하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 아니, 이미 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때 기계가 아닌 인간의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 까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이야 통찰력 있는 상상력,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은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훗날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매우 신선하고 통찰력 있으며 호소력 짙은 예술을 만들어낸다면 그 때 인간과 인공지능 예술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박건규2021-04-27 23:51
저도 개인적으로 인공지능 아티스트 관련 내용에 흥미가 있어 다른 수업에서 관련 내용을 조사해본 적도 있는데, 결국 가장 큰 의문은 '인공지능이 진정한 예술을 할 수 있는가?' 였으며, 무엇이 예술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문제는 당연히 이 질문을 다루는 미학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저는 처음에 미학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고, 현대 예술은 독자의 해석이 중요시된다는 점에서, 또 독창성과 철학적 메세지를 담아 예술을 만드는 존재는 인간 중에서도 극소수라는 점을 들어 (즉 로봇이 나머지 대다수의 예술가를 대체할 수 있으므로) 인공지능이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학 수업에서 이것이 이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예술 즉 대중예술에 속하는 수많은 예술은 결국은 키치(Kitsch)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가지게 되었죠. 어쨌든 현재의 저는 분명히 가요를 작곡하거나 웹튠을 그리고 상업소설을 쓰는 등의 일에서 미래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술가들이 말하는 '진정한 예술'은 과연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 상태입니다. 물론 이런 '진정한 예술'은 어느 정도 대중들의 이해를 벗어났으며 엘리트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미학자들이 예술을 그렇게 정의했다면(예술정의불가론도 있긴 합니다) 저는 그 정의에 따라 예술을 규정해야 할 것 같긴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미래에 인공지능이 더욱 정교한 '예술'을 한다면 예술가들과 미학자들이 다루는 예술과 대중예술을 구분하여 미래를 조망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다솔 님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대중예술 측면에서만 제 생각을 논하자면, 대중예술은 맞춤형 예술로 변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메탈 음악을 즐겨 듣지만 제 사상과 어긋나는 가사는 듣기 싫어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곡은 마음에 드는데 괜히 가사가 마음에 걸려 듣지 못하는 곡이 꽤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특정한 곡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만을 변경하거나 아예 저에게 맞는 음악을 인공지능이 생산해주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가 온다면, 인공지능과 인간은 단순히 예술 생산자의 지위에서 경쟁하는 것 외에 맞춤형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렇게 소비자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개인적으로 작품을 재조합할 수 있다면 가수의 목소리, 특정 연주자의 연주 스타일, 만화가의 그림체 등 개별적인 요소들에도 저작권이 붙으려나 싶네요.
그러나 미학 수업에서 이것이 이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예술 즉 대중예술에 속하는 수많은 예술은 결국은 키치(Kitsch)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가지게 되었죠. 어쨌든 현재의 저는 분명히 가요를 작곡하거나 웹튠을 그리고 상업소설을 쓰는 등의 일에서 미래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술가들이 말하는 '진정한 예술'은 과연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 상태입니다. 물론 이런 '진정한 예술'은 어느 정도 대중들의 이해를 벗어났으며 엘리트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미학자들이 예술을 그렇게 정의했다면(예술정의불가론도 있긴 합니다) 저는 그 정의에 따라 예술을 규정해야 할 것 같긴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미래에 인공지능이 더욱 정교한 '예술'을 한다면 예술가들과 미학자들이 다루는 예술과 대중예술을 구분하여 미래를 조망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다솔 님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대중예술 측면에서만 제 생각을 논하자면, 대중예술은 맞춤형 예술로 변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메탈 음악을 즐겨 듣지만 제 사상과 어긋나는 가사는 듣기 싫어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곡은 마음에 드는데 괜히 가사가 마음에 걸려 듣지 못하는 곡이 꽤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특정한 곡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만을 변경하거나 아예 저에게 맞는 음악을 인공지능이 생산해주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가 온다면, 인공지능과 인간은 단순히 예술 생산자의 지위에서 경쟁하는 것 외에 맞춤형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렇게 소비자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개인적으로 작품을 재조합할 수 있다면 가수의 목소리, 특정 연주자의 연주 스타일, 만화가의 그림체 등 개별적인 요소들에도 저작권이 붙으려나 싶네요.
전윤창2021-04-28 01:21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역시나 "인공지능의 예술은 예술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책에서는 인간의 예술과 AI의 예술이 서로 공존할 것이다라고 예측합니다. 결국 AI 예술도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는다는 시각이겠죠. 저도 이 시각에 동의합니다. 아마도 20세기 들어 마르셀 뒤샹이 <샘>을 발표한 이후로 이미 예견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고매하고 젠체하던 예술이 감상자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도 꽤 되었으니까요. 결국 어떤 창작물은 본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더군다나 잭슨 폴록이 붓 대신 물감 뿌리기를 "도구"로 썼듯이 "AI" 자체도 정밀하게 설계된 "도구"로 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물론 이 시각은 AI가 '자아'가 없고 우리가 설계한다고 가정했을 때 유효하겠습니다. 그러나 관객이 AI창작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어도 창작자가 직접 창작물에 담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밝히기 어려워 인간의 창작물보다 어떤 직접적인 매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어렵겠죠.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하고 추론하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지구상에 모든 직업이 인공지능으로 사라지면, 마지막으로 남는 직종은 종교인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출처는 불분명하나 종교학과 교수님이 그리 얘기했습니다.) 종교는 이야기와 그에 대한 믿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으면 완성됩니다. 즉, AI창작물은 인간의 창작물에 비해 이야기를 덧붙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조금 더 나아가 "판단의 이양"에 대해 논해보겠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에 비해 더 정확하고 공평한 판단을 인공지능이 내린다는 믿음 때문에, 인공지능 판사, 인공지능 의사, 심지어는 정치나 무기체계까지 AI가 이식되고 있습니다. 만약 더 이상 인공지능의 판단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생각하지 않는 죽은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판단들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의견들이 살아있게 되는데 "공명정대한 신"이 모든 상황에 "옳은","최선의" 판단을 내린다면 인간들이 더 이상 아웅다웅할 이유를 거두어 가는 것이지요. 물론 가정일 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절대 사람들은 반대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무서운 점은 AI의 판단 권력입니다. 특히 국방이 논란의 중심 중 하나입니다.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 위원회가(오라클, 아마존, MS, 구글 등 굴지의 IT 기업 인사들이 죄다 포함됐다고 보면 됩니다.) 내놓은 보고서에 보면 중국 등에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군사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가 "우리는 차를 만들듯 미사일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군사위원회에서 말했다고 하죠. 또 무기 금지 요구를 거부하라고 결론내립니다. 어짜피 중국 러시아 같은 경쟁자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제약을 고민할 시간 없이 힘과 권력의 논리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는 조금 더 나아가 "판단의 이양"에 대해 논해보겠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에 비해 더 정확하고 공평한 판단을 인공지능이 내린다는 믿음 때문에, 인공지능 판사, 인공지능 의사, 심지어는 정치나 무기체계까지 AI가 이식되고 있습니다. 만약 더 이상 인공지능의 판단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생각하지 않는 죽은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판단들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의견들이 살아있게 되는데 "공명정대한 신"이 모든 상황에 "옳은","최선의" 판단을 내린다면 인간들이 더 이상 아웅다웅할 이유를 거두어 가는 것이지요. 물론 가정일 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절대 사람들은 반대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무서운 점은 AI의 판단 권력입니다. 특히 국방이 논란의 중심 중 하나입니다.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 위원회가(오라클, 아마존, MS, 구글 등 굴지의 IT 기업 인사들이 죄다 포함됐다고 보면 됩니다.) 내놓은 보고서에 보면 중국 등에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군사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가 "우리는 차를 만들듯 미사일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군사위원회에서 말했다고 하죠. 또 무기 금지 요구를 거부하라고 결론내립니다. 어짜피 중국 러시아 같은 경쟁자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제약을 고민할 시간 없이 힘과 권력의 논리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연주2021-04-28 13:56
인공지능의 판단과 권력에 대한 부분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책임의 주체' 관점에서 인공지능을 바라보고 싶은데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 판사가 내린 판결이 오판임이 확인되었을 때, 누가 책임져야 하는 걸까요? 사람이 저지른 실수는 사람이 책임을 집니다. 말(진심어린 사과)이나 행동(사퇴, 해임 등)을 통해서 말이죠. 인공지능도 똑같이 하면 되는 걸까요? 가령 인공지능 판사가 오판을 했다면 그 인공지능을 폐기처분하는 것으로 책임을 물으면 되는 것일지, 그 처분을 우리 인간 사회가 온전히 수긍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은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까지 유용한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 결국 최종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 아닐지 싶습니다. 그리고 지적해주신대로 과학기술과 관련된 철학적, 윤리적 논의가 한참 뒤떨어져있다는 걱정이 듭니다. 요나스가 말한 윤리적 공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 과학기술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짜릿함을 느끼기에 앞서 이 기술이 정말 꼭 개발되어야 하는 기술인지, 어떤 윤리적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을지 좀더 체계적이고 시의적절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조단2021-04-28 16:53
전윤창 학우님의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인공지능의 예술은 예술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가끔씩 혼자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는 제가 판단하기에는 예술은 인간의 영역이고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까지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창의력의 결과가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최근 유튜브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_KO3WXM-eoI 이 영상을 보고 섬뜩해졌습니다. 10초만에 작곡하는 인공지능이 만든 노래와 유명 작곡가가 만든 노래 두 곡을 블라인드로 들려주고 사람들에게 평가를 부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저는 딱 듣자마자 AI가 만든 노래가 사람이 만든 노래인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만든 노래보다 오히려 더 창의적이었고 노래의 완성도도 높았습니다.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작곡 뿐만 아니라 주식투자, 노래, 심리 맞추기 등 기존에 인공지능이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분야들까지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윤창 학우님도 이 프로그램을 보신다면 AI에 대한 생각을 더욱 더 다양하게 하실 수 있을겁니다. 좋은 댓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윤창2021-04-28 23:06
@조단
안녕하세요 조단님! 인공지능이 만든 노래나 작성한 기사 등은 정말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 듣는 것은 처음이네요. 특히 요즘 스트리밍 음악시장은 대량생산 -> 소비되는 컨텐츠로 발전된 시장이라 더욱이 인공지능이 발군의 능력을 발하는 듯합니다. 확률적으로 순식간에 음악을 찍어내기에는 최적이죠. 제가 알기로는 시대를 막론하고 만들어진 모든 음악의 음계들(바흐부터 현대음악까지)을 분석하면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밴포드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수치화 계량화 이론화된 음악은 아마 인간보다 훨씬 쉽게 여겨지겠지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역밖에는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자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리라2021-04-28 08:52
『기억거래소』를 읽으면서 왜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감과 두려움, 그리고 불편함에 휩싸였다. 아마 책에서 ‘정완우’가 보여주는 나날이 단순히 현재와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 혹은 어떠한 형태로든 현재도 발생하는 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작중에서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 파트에서 소개된 케냐 소년의 사례는 해당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의 윤리성, 적절성 문제보다 먼저 그 소년이 살아가는 전자쓰레기 마을에 눈길이 갔다. 전자쓰레기 마을은 각주로 설명된 것처럼 현실 속에서도 존재하는 장소이다. 이를 보면서 지난 시간 메타버스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 모두가 새로운 지구에서 살아가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 교수님으로부터 우리 삶에 있어서 IT 기술에 대한 접근이 쉬운 한국 사회와는 달리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는 스마트폰-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필수처럼 여겨지는-을 사용하는 것조차 어려운 지역이 많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억거래소』의 ‘더컴퍼니’가 진행하는 일과 ‘헤븐서버’의 존재는 그들이 의도했든, 혹은 의도하지 않았든 세계의 불평등한 질서를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질적인 경제 성장으로 물리적 지구에서 국가 간 위계질서를 꾸리기 쉽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제는 새로운 기술과 공간의 창출을 통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나누어 세계 체제를 유지하려는 강대국, 선진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즉, 국제적인 차원에서 ‘더컴퍼니’의 행태를 바라본다면 이들은 결국 자신들과 자국의 권력을 강화하고 공고히 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이는 표면적으로는 해당 국가의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득권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어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한, 과학 기술 영역의 도움을 받아 외부의 힘으로 재구성되었다고 인지할 수 있는 감정 혹은 기억이 과연 인간의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당 시술 이후에 기억이 제거된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 선택을 하는 순간의, 순간적인 기억은 사람이 잠시나마 가지고 있다. 그 순간의 결정도 물론 인간이 내린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재구성된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책에서 조 실장은 “어떤 현상이 실존하지 않더라도, 실존하는 것을 체험했을 때와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이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라고 완우에게 말한다. 물론,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기억의 조작과 과학적 자극, 그리고 본인은 동의하지 않고 진행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거래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혁신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살아있는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흔히 여겨지는 ‘기억’, ‘감정’과 같은 분야에 기술을 적용하는 일은 인간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헤븐서버’의 관리자들의 규제와 질서 속에서 살아가면서 이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하데스’로 떨어지고 말테니 말이다.
작중에서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 파트에서 소개된 케냐 소년의 사례는 해당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의 윤리성, 적절성 문제보다 먼저 그 소년이 살아가는 전자쓰레기 마을에 눈길이 갔다. 전자쓰레기 마을은 각주로 설명된 것처럼 현실 속에서도 존재하는 장소이다. 이를 보면서 지난 시간 메타버스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 모두가 새로운 지구에서 살아가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 교수님으로부터 우리 삶에 있어서 IT 기술에 대한 접근이 쉬운 한국 사회와는 달리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는 스마트폰-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필수처럼 여겨지는-을 사용하는 것조차 어려운 지역이 많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억거래소』의 ‘더컴퍼니’가 진행하는 일과 ‘헤븐서버’의 존재는 그들이 의도했든, 혹은 의도하지 않았든 세계의 불평등한 질서를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질적인 경제 성장으로 물리적 지구에서 국가 간 위계질서를 꾸리기 쉽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제는 새로운 기술과 공간의 창출을 통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나누어 세계 체제를 유지하려는 강대국, 선진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즉, 국제적인 차원에서 ‘더컴퍼니’의 행태를 바라본다면 이들은 결국 자신들과 자국의 권력을 강화하고 공고히 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이는 표면적으로는 해당 국가의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득권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어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한, 과학 기술 영역의 도움을 받아 외부의 힘으로 재구성되었다고 인지할 수 있는 감정 혹은 기억이 과연 인간의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당 시술 이후에 기억이 제거된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 선택을 하는 순간의, 순간적인 기억은 사람이 잠시나마 가지고 있다. 그 순간의 결정도 물론 인간이 내린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재구성된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책에서 조 실장은 “어떤 현상이 실존하지 않더라도, 실존하는 것을 체험했을 때와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이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라고 완우에게 말한다. 물론,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기억의 조작과 과학적 자극, 그리고 본인은 동의하지 않고 진행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거래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혁신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살아있는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흔히 여겨지는 ‘기억’, ‘감정’과 같은 분야에 기술을 적용하는 일은 인간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헤븐서버’의 관리자들의 규제와 질서 속에서 살아가면서 이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하데스’로 떨어지고 말테니 말이다.
문지수2021-04-28 17:00
리라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도 책을 읽으면서 불쾌함과 불편함을 느꼈던지라, 첫 문장부터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저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훨씬 멋지게 작성해주셔서 제 생각정리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ㅎㅅㅎ 국제적인 차원의 위계질서는 책을 읽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흥미로웠습니다. 기술이 등장하면 그 기술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려하면 좋겠지만, 이익 추구를 우선하는 사기업의 입장에서 고려하기 쉬운 부분이 아니고 국가 역시 자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기에 새로운 방식의 위계질서가 형성될 수 있겠네요. 불평등의 원인이 점점 다양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또한 기억조작을 통해 느낀 감정으로 이루어진 인간을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인간이 자신의 기억을 저장하고, 성찰하며 인격을 형성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정보다 기억을 조작하는데서 인간성의 왜곡이 발생한다고 여겼기에 조작된 감정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글 덕분에 감정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민영2021-04-28 23:52
안녕하세요, 리라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기억거래소를 읽으면서 어딘가 기시감(?) 같은 게 들기도 하면서 '이게 뭔가..'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리라님의 글이 공감이 확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더컴퍼니가 진행하는 일이 세계의 불평등을 확고히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점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서, 리라님의 글을 읽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컴퍼니의 행위들이 국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기득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냐는 리라님의 의문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는데, 사실 국제적인 측면에서보다 앞서 한 국가 내의 상황을 살펴보더라도, 더컴퍼니의 행위는 굉장히 기득권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가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어 접근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선민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기억이 재구성된 인간을 지금 우리와 같은 의미의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정말 생각해봄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에 대해서 내일 토론 시간에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읽고 코멘트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민정2021-04-28 10:41
기술은 어디로 흐르는가? 기억거래소와 메타버스를 읽으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면과 두려운 면이 공존했다. 누군가는 기술을 통해 수십년간 마음 속에 품어온 복수를 달성한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서 기억이 뒤바뀐 뒤,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편하게 손가락을 움직여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지만, 그 배달음식을 누가 만들고, 누가 배달해주는지는 점차 비가시화된다. 마치 나는 그저 기술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그 음식은 내 주문에 따라 내 손에 들리는 것뿐이지, 그 과정에서 그 기술을 만든 사람, 그 기술의 명령을 받는 사람은 흐려진다.
사람들은 나쁜 측면을 귀신 같이 알아낸다고 한다. 최근 방영한 알쓸범잡에서는 온라인 보안 매체나 방식이 대부분 한 성적인 미디어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 내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를 숨기고자 여러 망을 활용해서 타인이 나를 찾지 못하게 하는 등의 기술이었다. 기본적으로 군사 기밀을 여러 곳에 분산시켜서 어떤 전쟁에도 안전하게 지켜낸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인터넷 망은 보안에서 시작해서 결국 어디로 흐르는지 그 방향이 묘연해지고 있다.
이 방향을 국가가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내가 모르게 우리 가족이나 지인이 나의 정보를 공개 및 활용하는 데 동의하면, 내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공개된다는 스토리가 기억거래소에 있었다. 그 책에서는 한 사람의 삶 속 기억이었다. 우리 삶에서는 기억과 관련된 사진, 기록, 개인정보 등이 지금도 그렇게 공개될 여지가 다분하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진단하고 그 방향에 따른 개선과 진전 방안을 모색할 시기가 어쩌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와 관해, 우리 기술이 흐르는 방향에 대한 교육, 입법, 관리가 필요할텐데 말이다.
사람들은 나쁜 측면을 귀신 같이 알아낸다고 한다. 최근 방영한 알쓸범잡에서는 온라인 보안 매체나 방식이 대부분 한 성적인 미디어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 내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를 숨기고자 여러 망을 활용해서 타인이 나를 찾지 못하게 하는 등의 기술이었다. 기본적으로 군사 기밀을 여러 곳에 분산시켜서 어떤 전쟁에도 안전하게 지켜낸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인터넷 망은 보안에서 시작해서 결국 어디로 흐르는지 그 방향이 묘연해지고 있다.
이 방향을 국가가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내가 모르게 우리 가족이나 지인이 나의 정보를 공개 및 활용하는 데 동의하면, 내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공개된다는 스토리가 기억거래소에 있었다. 그 책에서는 한 사람의 삶 속 기억이었다. 우리 삶에서는 기억과 관련된 사진, 기록, 개인정보 등이 지금도 그렇게 공개될 여지가 다분하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진단하고 그 방향에 따른 개선과 진전 방안을 모색할 시기가 어쩌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와 관해, 우리 기술이 흐르는 방향에 대한 교육, 입법, 관리가 필요할텐데 말이다.
윤서영2021-04-28 18:25
민정님 글 잘 읽었습니다!
기술 발전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 안에 잠재하는 위험 요소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셨는데, 저 또한 이에 공감합니다. 단순히 몇 가지 피상적인 개인정보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매우 사적이고 중추적인 기억에 관한 정보 대부분이 외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고 언제든 자신도 모르게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상당히 섬뜩합니다. 기억 거래소를 읽는 도중 종종 소름이 돋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그 내용이 순전한 허구가 아니라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해질지 모르는 구체적인 기술에 관한 시나리오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뉴럴링크와 같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 미래의 신기술이 가져올 영향을 인류가 적정하게 통제 및 관리하기 위해서는, 말씀하신 대로 바로 지금의 상황에서부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술 발전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 안에 잠재하는 위험 요소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셨는데, 저 또한 이에 공감합니다. 단순히 몇 가지 피상적인 개인정보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매우 사적이고 중추적인 기억에 관한 정보 대부분이 외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고 언제든 자신도 모르게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상당히 섬뜩합니다. 기억 거래소를 읽는 도중 종종 소름이 돋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그 내용이 순전한 허구가 아니라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해질지 모르는 구체적인 기술에 관한 시나리오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뉴럴링크와 같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 미래의 신기술이 가져올 영향을 인류가 적정하게 통제 및 관리하기 위해서는, 말씀하신 대로 바로 지금의 상황에서부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단2021-04-28 16:21
<세계미래보고서 2021>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지 내가 대한민국의 구조화된 입시에 특화된 사람이라는 이유로 운이 좋게 다른 사람들이 최고의 대학이라 불러주는 서울대학교에 오게 되었고 그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서든지, 자의로든지 서울대학교 내부의 사람들은 우리가 달성하게 될 사회적 위치의 최저선을 높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못해도 이정도는 벌겠지" , "못해도 이런 직업은 갖겠지" 이런 식이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을 해왔지만 이 책을 통해 더욱 더 확신하게 된 생각은 좋은 대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더 이상 좋은 직업이 보장되지 않고, 설령 좋은 직업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이 큰 부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첫 번째, '대학 학위 무용지물의 시대'가 왔다. 미국에도 대학 순위를 매기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각 대학별로 특화되어 있는 과가 존재해서 한국보다 서열화가 심하지는 않다. 한국은 '서 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과 같이 대학교 이름의 앞글자만을 따서 서열을 매기는 노래가 존재할 만큼 의치한이 아닌 이상 학과보다 대학의 위력이 훨씬 강했다. 그러나 점점 학벌블라인드제와 같은 제도와 더불어 코딩과 같은 실무적인 능력을 보는 회사가 늘어남에 따라 '서울대 =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좋은 학점만을 위해 공부하지 않고, 스스로의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능력(예를 들어, 앞서 얘기한 코딩이나 외국어 등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죽을 듯이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 전환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대학 강의가 별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배우는 교양 강의보다 유튜브에 짧게 업로드 되어 있는 영상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교양을 쌓아주고, 외국어나 코딩 등 실제 업무에서 필요한 분야 역시 대학 강의보다 외부 사설 업체의 강의가 훨씬 효과적이고 경제적이었다. '좋은 대학 = 좋은 강의'가 더 이상 아니게 된 이상 대학 학위의 가치가 더 이상 높아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다음은 얘기해 볼 거리는 더 이상 소득과 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꽤나 많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서울에서 자가를 구매하기 쉽지 않은 시대가 왔다. 따라서 점점 노동의 가치 역시 하락하고 있다. 대신 주식, 부동산 등 기존의 전통적인 투자에 더불어 ‘코인’이라 불리는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나는 투기라 부르고 싶다)를 통해 주변에서 인생역전을 한 케이스가 자주 들리게 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나도 주식판, 코인판에 뛰어볼까?’하는 2030세대가 급증하고 있으며 심지어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투자하는 ‘영끌’, 빚 내서 투자하는 ‘빚투’라는 신조어가 사용될 정도로 투기판이 되어가고 있다. 기업에 생산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식과는 달리 코인은 그 자체로 아무 가치가 없다. 단지 내가 1000원에 산 이 코인을 누군가가 1100원에 사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물론 계층 이동 수단이 사라져버린 2030세대의 무력감과 박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가끔씩 느끼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투기 광풍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첫 번째, '대학 학위 무용지물의 시대'가 왔다. 미국에도 대학 순위를 매기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각 대학별로 특화되어 있는 과가 존재해서 한국보다 서열화가 심하지는 않다. 한국은 '서 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과 같이 대학교 이름의 앞글자만을 따서 서열을 매기는 노래가 존재할 만큼 의치한이 아닌 이상 학과보다 대학의 위력이 훨씬 강했다. 그러나 점점 학벌블라인드제와 같은 제도와 더불어 코딩과 같은 실무적인 능력을 보는 회사가 늘어남에 따라 '서울대 =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좋은 학점만을 위해 공부하지 않고, 스스로의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능력(예를 들어, 앞서 얘기한 코딩이나 외국어 등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죽을 듯이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 전환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대학 강의가 별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배우는 교양 강의보다 유튜브에 짧게 업로드 되어 있는 영상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교양을 쌓아주고, 외국어나 코딩 등 실제 업무에서 필요한 분야 역시 대학 강의보다 외부 사설 업체의 강의가 훨씬 효과적이고 경제적이었다. '좋은 대학 = 좋은 강의'가 더 이상 아니게 된 이상 대학 학위의 가치가 더 이상 높아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다음은 얘기해 볼 거리는 더 이상 소득과 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꽤나 많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서울에서 자가를 구매하기 쉽지 않은 시대가 왔다. 따라서 점점 노동의 가치 역시 하락하고 있다. 대신 주식, 부동산 등 기존의 전통적인 투자에 더불어 ‘코인’이라 불리는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나는 투기라 부르고 싶다)를 통해 주변에서 인생역전을 한 케이스가 자주 들리게 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나도 주식판, 코인판에 뛰어볼까?’하는 2030세대가 급증하고 있으며 심지어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투자하는 ‘영끌’, 빚 내서 투자하는 ‘빚투’라는 신조어가 사용될 정도로 투기판이 되어가고 있다. 기업에 생산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식과는 달리 코인은 그 자체로 아무 가치가 없다. 단지 내가 1000원에 산 이 코인을 누군가가 1100원에 사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물론 계층 이동 수단이 사라져버린 2030세대의 무력감과 박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가끔씩 느끼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투기 광풍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최동익2021-04-29 00:08
안녕하세요 조단님, 한 번쯤 머릿속에 스쳐갈 법한 생각들을 잘 정리해주셔서 저도 보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학위를 우선 말씀해주셨는데, ‘대학 학위의 가치가 더 이상 높아질 일이 없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가 되는 건지 하락이 시작되는 건지는 아직 고민할 거리로 남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지나치게 고평되어 있던 대학의 지위가 하락하여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위가 사기업 채용 등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대학 생활만이 주는 가치는 남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저로서는 자기관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게 대학의 가장 큰 가치로 다가옵니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아직 대학 폐교 등의 소식이 들려오지는 않는 듯한데, 만일 해당 현상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의 인식에는 한 번 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근로소득과 자산의 불일치를 얘기해주셨는데, 어느 한 쪽만 보는 게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볼 수 있는 게 좋은 관점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투자를 통해 잘 불리더라도 지속적 수입이 있다는 건 분명 무시될 수 없고, 또 반대로 아무리 꾸준히 돈을 벌더라도 이를 단순히 쌓아두기만 하면 자본주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동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 시간이 없는 분들의 경우에도 책에 나왔던 인공지능 자산관리사나 금융의 발달로 적절한 리스크를 지면서 시장 평균 수익률 정도를 얻을 수 있는 상품이 도입된다면, 보다 모두가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학 학위를 우선 말씀해주셨는데, ‘대학 학위의 가치가 더 이상 높아질 일이 없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가 되는 건지 하락이 시작되는 건지는 아직 고민할 거리로 남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지나치게 고평되어 있던 대학의 지위가 하락하여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위가 사기업 채용 등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대학 생활만이 주는 가치는 남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저로서는 자기관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게 대학의 가장 큰 가치로 다가옵니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아직 대학 폐교 등의 소식이 들려오지는 않는 듯한데, 만일 해당 현상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의 인식에는 한 번 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근로소득과 자산의 불일치를 얘기해주셨는데, 어느 한 쪽만 보는 게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볼 수 있는 게 좋은 관점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투자를 통해 잘 불리더라도 지속적 수입이 있다는 건 분명 무시될 수 없고, 또 반대로 아무리 꾸준히 돈을 벌더라도 이를 단순히 쌓아두기만 하면 자본주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동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 시간이 없는 분들의 경우에도 책에 나왔던 인공지능 자산관리사나 금융의 발달로 적절한 리스크를 지면서 시장 평균 수익률 정도를 얻을 수 있는 상품이 도입된다면, 보다 모두가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지수2021-04-28 16:37
*<메멘토>, <이터널 선샤인>의 스포가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신비하다. 나를 만들고 활동을 관장하는 뇌이지만, 뇌에 관해 밝혀진 것보다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기억거래소>는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마냥 허구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당장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같다.
<기억거래소> 책을 읽으며 <이터널 선샤인> 영화가 생각났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신과 관련된 추억을 모두 지웠다는 사실을 안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이 기억을 지운 곳에 찾아가 자신의 추억도 지워줄 것을 의뢰한다. 다만 지워지는 기억의 상황들에 놓여져 순간을 다시 경험하며, 남자주인공은 이 기억만큼은 지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지만, 결국 기억은 삭제된다. 기억을 지워서 괴로워했다는 사실 마저 지워지면 문제는 없는걸까? 영화를 보는 내내 약간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기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조각이다. 기억이 모여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고,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메멘토>의 주인공이 의미를 잃은 살인자가 되었던 이유도 그가 기억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메모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짜맞추고, 결국은 인간성을 상실하였다. 회상을 하지 못하니 성찰도 없다. 성찰없는 인간은 인간일 수 없다.
소설에서 등장한 기술이 상용화되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설에서 등장한 조작몽 동반 안락사의 경우는 기억 조작이 잘 활용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당사자의 동의가 없다는 것은 일단 논외로 두겠다).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죽을 수 있다는건 축복일 것이다. '잘', '적당히' 활용되면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오히려 증오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듯 싶지만, 기술을 선하게만 사용하기에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다. 관련하여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문제는 기억 조작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조 실장의 말처럼, 조작된 기억이라도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진짜니, 기억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인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작업이 당사자의 동의없이 이루어지다니,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상황이 윤리적인지에 관해서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모두가 같은 윤리의 척도를 가질 수 없지만,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해 보인다. 이러한 합의, 즉 관념과 규범에 관련된 문제는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에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뇌는 신비하다. 나를 만들고 활동을 관장하는 뇌이지만, 뇌에 관해 밝혀진 것보다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기억거래소>는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마냥 허구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당장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같다.
<기억거래소> 책을 읽으며 <이터널 선샤인> 영화가 생각났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신과 관련된 추억을 모두 지웠다는 사실을 안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이 기억을 지운 곳에 찾아가 자신의 추억도 지워줄 것을 의뢰한다. 다만 지워지는 기억의 상황들에 놓여져 순간을 다시 경험하며, 남자주인공은 이 기억만큼은 지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지만, 결국 기억은 삭제된다. 기억을 지워서 괴로워했다는 사실 마저 지워지면 문제는 없는걸까? 영화를 보는 내내 약간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기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조각이다. 기억이 모여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고,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메멘토>의 주인공이 의미를 잃은 살인자가 되었던 이유도 그가 기억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메모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짜맞추고, 결국은 인간성을 상실하였다. 회상을 하지 못하니 성찰도 없다. 성찰없는 인간은 인간일 수 없다.
소설에서 등장한 기술이 상용화되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설에서 등장한 조작몽 동반 안락사의 경우는 기억 조작이 잘 활용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당사자의 동의가 없다는 것은 일단 논외로 두겠다).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죽을 수 있다는건 축복일 것이다. '잘', '적당히' 활용되면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오히려 증오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듯 싶지만, 기술을 선하게만 사용하기에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다. 관련하여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문제는 기억 조작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조 실장의 말처럼, 조작된 기억이라도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진짜니, 기억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인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작업이 당사자의 동의없이 이루어지다니,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상황이 윤리적인지에 관해서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모두가 같은 윤리의 척도를 가질 수 없지만,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해 보인다. 이러한 합의, 즉 관념과 규범에 관련된 문제는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에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태민2021-04-28 22:00
문지수 학우님 참신한 관점 감사합니다. 특히 기억 조작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불쾌함에 공감합니다. 이 부분에서 안락사의 논의가 생각났습니다. 식물인간 내지는 자기의사표시가 불가한 이들의 존엄사 문제는 의학적, 법적으로 오랜 논쟁거리입니다. 최근엔 세계적으로 존엄사의 인정이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기억 조작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진다면, 존엄사의 사례 혹은 판례들이 의학적/법적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존엄사의 인정 문제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아쉬움은 아직까지도 종합적인 사회 합의가 충분히 진행되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존엄사의 실행 방법은 의학자가, 사례의 판단은 법률가가, 제도의 도입은 정치가가 결정하는 등 한가지 문제에 각자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이런 현실 속에서 공정성과 윤리성에 대한 비판은 존엄사를 결정한 유족에게만 쏟아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기억조작의 논의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윤재빈2021-04-28 23:34
문지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비슷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명 '나쁜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가?
소설에 표현된 것처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커질수록, '삶에 대한 자신의 의식/ 의미부여 / 혹은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면 소설에 등장하는 트라우마 기억 재조정술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쁜 기억이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더 성장하는 삶이 의미있다고 생각하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저와 입장이 다른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의 입장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기술은 도구이고 수단일 뿐입니다.
이전에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고민해 볼 가치조차 없었다면, 이젠 점점 '힘'이 주어지고 있는 지금 각자가 자신의 삶에 더 고민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표현된 것처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커질수록, '삶에 대한 자신의 의식/ 의미부여 / 혹은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면 소설에 등장하는 트라우마 기억 재조정술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쁜 기억이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더 성장하는 삶이 의미있다고 생각하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저와 입장이 다른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의 입장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기술은 도구이고 수단일 뿐입니다.
이전에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고민해 볼 가치조차 없었다면, 이젠 점점 '힘'이 주어지고 있는 지금 각자가 자신의 삶에 더 고민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혜민2021-04-29 13:21
문지수 학우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도 책을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렸기에 많은 부분에서 학우님의 글이 더 인상깊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술을 선하게만 사용하기에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학우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기술을 선하게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선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죠. 자동차도 처음에 도입되었을 때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이동수단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오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요. 학우분의 주장 중 '적당히' '잘'이 실현 가능할 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잊는 기술이 클레멘타인 노래조차도 잊게 만든 것처럼, 많은 기억은 그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적당히라는 이상적인 범위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자신이 원해서 기술을 적용해도 자신의 의사가 포함되지 않은 기억들까지 송두리째 지우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그 기억을 지우는 역할을 맡은 기술자들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바꾸는 '권력'을 가지게 되겠지요.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최소한의 문제 그 이상의 것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술을 선하게만 사용하기에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학우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기술을 선하게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선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죠. 자동차도 처음에 도입되었을 때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이동수단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오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요. 학우분의 주장 중 '적당히' '잘'이 실현 가능할 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잊는 기술이 클레멘타인 노래조차도 잊게 만든 것처럼, 많은 기억은 그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적당히라는 이상적인 범위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자신이 원해서 기술을 적용해도 자신의 의사가 포함되지 않은 기억들까지 송두리째 지우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그 기억을 지우는 역할을 맡은 기술자들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바꾸는 '권력'을 가지게 되겠지요.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최소한의 문제 그 이상의 것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혜송2021-04-28 17:48
1. 과학기술의 목적은 무엇인가? 미래 인류의 존재 목적은 쾌락인가?
『기억거래소』와 『세계미래보고서 2021』를 읽으며 발견한 아이러니한 점은, 인류가 기술 혁신을 통해 미래를 향해 그토록 전진하면서도, 과학기술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방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방향성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다면, ‘생활의 편의’, ‘건강’ 등이 있을 듯하다)
현재까지는, ‘진보하는 기술을 막을 수는 없다’라는 저자(박영숙·제롬 글렌)의 말처럼, 기술 개발로 수익을 창출하는 개인들을 규제할 수는 없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며, 기술이 악용되어도 발전이 중단되지 않고, 그에 대한 법적 규제가 마련되어 왔다. 그런데, 이처럼 과학의 목적에 관한 사회적 논의 없이, 수익성이 있는 모든 과학기술이 발달하게 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도화된 과학기술로 인류의 존재 목적이 단순 쾌락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대의 사후적 규제 방식을 넘어서는, 사전적 검토 단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미래보고서에는 인공지능의 도입이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효율성이란 일상의 의사결정과 같은 잡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다른 노동을 하게 됨으로써 증대되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을 인공지능에 맡기고, 학습은 칩을 통해 단 몇 초 이내에 끝낼 수 있게 된다면, 교육과 근무의 의무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이 같은 효율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생각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한 인류에게, 이러한 효율성은 여가를 통한 쾌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래 인류는 고통 없이 쾌락만을 찾는 본능을 실제로 실현시킬 수 있고, 그럴 소지가 다분하다.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기억거래소』에서처럼 IR(몰입형 현실) 기술로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을 조작할 수만 있다면,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더이상 사람들 삶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게이미피케이션은 지루한 일상을 자잘한 재미로 채울 것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고통과 생각을 통해 배우고 자신을 성찰하며,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부분이 모두 사라진다면, 인간의 존재 목적은 무엇이 될까?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쾌락만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진정 원할까? 이러한 질문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사회가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학우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2. 미래에 부상할 문제점 - 인공지능의 계산식 정치, 불평등
정치는, 특히 책임의 영역이기에,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힘든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세계미래보고서 2021』는 정치 또한 대체될 수 있으며, 오히려 대체되는 것이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계산을 통해 도출하는 국가적 의사결정에는 ‘사회적 소수자’가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의 저자는 인공지능의 정책이 다수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관점에 따르면, 국가에 그다지 이득이 되지 않고, 다수가 아닌 소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은 인공지능의 눈에는 제1의 제외대상으로 보일지 모른다. 이는 인공지능의 계산식 정치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통해 보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불평등 또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미래에 심화될 문제점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당대의 가장 고도의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부유층이 될 확률이 높다. 즉, 유전자 가위로 디자이너 베이비를 만드는 등의 기술은 시간이 지나 단가가 매우 낮아지지 않는 이상 오로지 일부 계층만이 누리게 될 것이고, 이는 환경뿐만 아니라, 좋은 형질만 남게 된 유전도 대물림의 대상이 되어 불평등을 고착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3. 인공지능에 성별을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소개된 인공지능들의 다수에 성별이 부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가령, 84쪽에 나오는 미국의 한 보험사의 인공지능은 가입을 유도할 때는 ‘여성형’ 챗봇 마야를 내세우며, 보험료를 청구할 때는 ‘남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한다. 227쪽에는 뉴질랜드의 여성 인공지능 정치인 ‘샘’이 소개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보험과 정치에 관련된 인공지능에 성별을 붙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에 성별이 붙여진 이유는 사회적으로 굳어진 젠더 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권자들과 잘 소통하는 정치인 샘에게는 ‘여성’의 이미지가 투영되고, 보험료를 청구해야 하는 인공지능에게는 ‘남성’의 이미지가 투영된 것은 젠더 관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추측한다.
『기억거래소』와 『세계미래보고서 2021』를 읽으며 발견한 아이러니한 점은, 인류가 기술 혁신을 통해 미래를 향해 그토록 전진하면서도, 과학기술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방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방향성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다면, ‘생활의 편의’, ‘건강’ 등이 있을 듯하다)
현재까지는, ‘진보하는 기술을 막을 수는 없다’라는 저자(박영숙·제롬 글렌)의 말처럼, 기술 개발로 수익을 창출하는 개인들을 규제할 수는 없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며, 기술이 악용되어도 발전이 중단되지 않고, 그에 대한 법적 규제가 마련되어 왔다. 그런데, 이처럼 과학의 목적에 관한 사회적 논의 없이, 수익성이 있는 모든 과학기술이 발달하게 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도화된 과학기술로 인류의 존재 목적이 단순 쾌락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대의 사후적 규제 방식을 넘어서는, 사전적 검토 단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미래보고서에는 인공지능의 도입이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효율성이란 일상의 의사결정과 같은 잡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다른 노동을 하게 됨으로써 증대되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을 인공지능에 맡기고, 학습은 칩을 통해 단 몇 초 이내에 끝낼 수 있게 된다면, 교육과 근무의 의무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이 같은 효율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생각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한 인류에게, 이러한 효율성은 여가를 통한 쾌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래 인류는 고통 없이 쾌락만을 찾는 본능을 실제로 실현시킬 수 있고, 그럴 소지가 다분하다.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기억거래소』에서처럼 IR(몰입형 현실) 기술로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을 조작할 수만 있다면,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더이상 사람들 삶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게이미피케이션은 지루한 일상을 자잘한 재미로 채울 것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고통과 생각을 통해 배우고 자신을 성찰하며,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부분이 모두 사라진다면, 인간의 존재 목적은 무엇이 될까?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쾌락만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진정 원할까? 이러한 질문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사회가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학우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2. 미래에 부상할 문제점 - 인공지능의 계산식 정치, 불평등
정치는, 특히 책임의 영역이기에,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힘든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세계미래보고서 2021』는 정치 또한 대체될 수 있으며, 오히려 대체되는 것이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계산을 통해 도출하는 국가적 의사결정에는 ‘사회적 소수자’가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의 저자는 인공지능의 정책이 다수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관점에 따르면, 국가에 그다지 이득이 되지 않고, 다수가 아닌 소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은 인공지능의 눈에는 제1의 제외대상으로 보일지 모른다. 이는 인공지능의 계산식 정치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통해 보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불평등 또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미래에 심화될 문제점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당대의 가장 고도의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부유층이 될 확률이 높다. 즉, 유전자 가위로 디자이너 베이비를 만드는 등의 기술은 시간이 지나 단가가 매우 낮아지지 않는 이상 오로지 일부 계층만이 누리게 될 것이고, 이는 환경뿐만 아니라, 좋은 형질만 남게 된 유전도 대물림의 대상이 되어 불평등을 고착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3. 인공지능에 성별을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소개된 인공지능들의 다수에 성별이 부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가령, 84쪽에 나오는 미국의 한 보험사의 인공지능은 가입을 유도할 때는 ‘여성형’ 챗봇 마야를 내세우며, 보험료를 청구할 때는 ‘남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한다. 227쪽에는 뉴질랜드의 여성 인공지능 정치인 ‘샘’이 소개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보험과 정치에 관련된 인공지능에 성별을 붙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에 성별이 붙여진 이유는 사회적으로 굳어진 젠더 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권자들과 잘 소통하는 정치인 샘에게는 ‘여성’의 이미지가 투영되고, 보험료를 청구해야 하는 인공지능에게는 ‘남성’의 이미지가 투영된 것은 젠더 관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추측한다.
최서원2021-04-28 22:16
저 역시도 책을 읽으며 인공지능에게 성별이 부여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쩌면 '인간 스럽게' 만들고 싶었다는 점에서는 당연하기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어쩌면 추후에 인공지능이 성별이 없는 상태로 구현된다면 인공지능에서의 젠더관념이 불명확해진 것이 인류에게 영향을 미쳐 인류 전체의 굳어진 젠더관념의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서장원2021-04-28 22:24
혜송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2번 논의가 참신하여 제 생각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정치와 논의, 토론, 의사결정 등의 행위가 대체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저는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두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선 인공지능이 input과 내부 프로세스를 통해 output을 산출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input을 듣고 여러 개의 output을 산출하고 이들에 가치 판단을 부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정치와 정책결정의 분야까지 확장되기에는 기술적인 발전 속도는 충분하지만, 이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의식적,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기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대로, 국가의 정책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과정입니다. 행정학에서는 이러한 정책결정 과정을 민주성, 신뢰성, 능률성으로 평가하곤 하는데, 인공지능은 이들 중 민주성과 신뢰성을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민주성에는 여러 규범적 논의가 포함되는데, 무엇을 가장 평등한 사회 혹은 공정한 사회라고 부를 것이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고 있는 5인 이하의 집합체에서도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신뢰성은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통해 형성되고 축적되는데, 인공지능의 정치 행위를 신뢰할 수 있는 개인이 얼마나 될지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능률성의 경우 기술적 진보를 통해 많은 부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나, 능률성 역시 국가는 단순한 개인의 합이냐 혹은 개인들의 모인 새로운 집합체이냐 등의 규범적 판단 요소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으므로 완전히 달성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기술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정치 행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학습 및 판단 능력을 보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무섭고, 이에 대한 법과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하루 빨리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2번 논의가 참신하여 제 생각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정치와 논의, 토론, 의사결정 등의 행위가 대체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저는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두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선 인공지능이 input과 내부 프로세스를 통해 output을 산출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input을 듣고 여러 개의 output을 산출하고 이들에 가치 판단을 부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정치와 정책결정의 분야까지 확장되기에는 기술적인 발전 속도는 충분하지만, 이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의식적,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기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대로, 국가의 정책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과정입니다. 행정학에서는 이러한 정책결정 과정을 민주성, 신뢰성, 능률성으로 평가하곤 하는데, 인공지능은 이들 중 민주성과 신뢰성을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민주성에는 여러 규범적 논의가 포함되는데, 무엇을 가장 평등한 사회 혹은 공정한 사회라고 부를 것이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고 있는 5인 이하의 집합체에서도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신뢰성은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통해 형성되고 축적되는데, 인공지능의 정치 행위를 신뢰할 수 있는 개인이 얼마나 될지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능률성의 경우 기술적 진보를 통해 많은 부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나, 능률성 역시 국가는 단순한 개인의 합이냐 혹은 개인들의 모인 새로운 집합체이냐 등의 규범적 판단 요소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으므로 완전히 달성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기술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정치 행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학습 및 판단 능력을 보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무섭고, 이에 대한 법과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하루 빨리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이엘리엇2021-04-29 13:52
박혜송 학우님의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1번 주제에서 던지신 물음이 제가 가졌던 의문과 상당히 비슷하여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편리함이 영원히 '효율성'의 관점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쾌락과 같은 좋음도 순간의 좋음일 때나 좋은 법이지 지속되면 감흥이 떨어질테고, 더 강한 정도를 찾게 될 것입니다. 고도로 효율화된 미래 세계에서 높아진 역치를 끊임없이 충족시킬만큼 쾌락의 정도를 무궁무진하게 키워나갈 수 있다면, 쾌락이 인간의 절대적인 목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과연 이렇게 쾌락이 쉽게 주어지는 세상에서 더 나은 쾌락을 위한 노력의 동기는 어디서 나올까요? 이것도 기계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오싹하지만 쾌락의 노예가 된 인류가 미래의 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윤빈2021-04-29 16:09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특히 과학기술의 목적이 쾌락 중심이 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저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편의를 증진시킬 수 있는 과학 기술의 개발이 물론 우리 삶에 윤택함을 가져다 주고, 우리는 그러한 윤택함에 열광합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의의를 단순히 쾌락으로 한정짓기에는 과학기술은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인공지능과 연결된 기계팔을 학습시킴으로써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과학 기술은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큰 목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과학기술의 성패 여부는 얼마나 많은 가치를 포용하고 고려하고 있는 지의 여부에 달린 것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민영2021-04-28 19:34
책 <기억거래소>를 읽고 로크가 생각났다. 로크는 인격체를 구분하는 기준, 즉, 어떤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들과 구분되어서 바로 그 인격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의식의 연속성’이라고 보았다. 어떤 시점(t1)에서의 사람A와 그 이후 다른 시점(t2)에서의 사람B는 사람A와 사람B가 동일한 의식의 흐름을 가질 때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같다고 보았고(즉, t1에서의 사람A=t2에서의 사람 B if and only if 사람B와 사람A가 동일한 의식의 흐름을 가짐), 그러한 의식의 흐름은 기억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격체로서의 나를 말해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로크의 견해 중 문제점으로 자주 지적되는 것이 바로 거짓 기억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기억거래소>를 읽자마자 로크의 생각이 떠올랐던 것 같다.
기억거래소는 이러한 거짓 기억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4월 28일 오후 6시에 더컴퍼니를 통해서 거짓 기억을 받았다면, 4월 27일의 나와 4월 29일의 나는 동일한 인격체라고 할 수 있을까? 유기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4월 27일의 나와 4월 29일의 나는 동일한 유기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과연 인격체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거짓 기억을 가지고 살게 될 나를, 지금의 나와 같은 인격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보아도 될까?
기억거래소는 이러한 거짓 기억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4월 28일 오후 6시에 더컴퍼니를 통해서 거짓 기억을 받았다면, 4월 27일의 나와 4월 29일의 나는 동일한 인격체라고 할 수 있을까? 유기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4월 27일의 나와 4월 29일의 나는 동일한 유기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과연 인격체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거짓 기억을 가지고 살게 될 나를, 지금의 나와 같은 인격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보아도 될까?
전윤창2021-04-28 23:49
안녕하세요 민영님,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짧게 글을 씁니다. 로크의 주장은 과거 -> 미래로 흐르는 선형적인 시간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인간 같이 3차원적 존재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지요. 정확히는 3.5차원 정도의 삶을 사는 인간에게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 개념이 더 이상 불가역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됩다. 지금까지 한 번 지나가 버린 시간과 경험은 되돌릴 수 없었다면, 기억거래소의 세상에서는 과거도, 미래도, 시간선상의 어떤 특정지점에 위치하지 않고 자유롭게 변경될 수 있어보입니다.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을 보셨다면 어느정도 아실 수도 있겠습니다. 물리적 한계로 신체는 3차원을 거역할 수 없겠으나 정신적으로는 한 0.5차원 정도를 초월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닐지 싶습니다. 그러니 각자의 인격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이엘리엇2021-04-28 20:56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가히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읽고 고민하다보니 정신이 아득한 느낌입니다. 읽기자료를 읽으면서 '미래 사람들이 지닐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사실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에 대한 의문은 현재도 가끔씩 생깁니다. '이렇게 살아봤자 자연에 안 좋은 영향만 끼치고 성취가 많아질수록 나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만 커지는데, 삶이 죽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유를 하나 답한다면, 단언컨대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전하는 만족스러운 스스로의 모습에서, 오감을 사로잡는 색다른 경험들을 통해서 나오는 행복이 삶의 부분부분을 활기차게 만듭니다.
행복이란 흔치 않은 상황에서 느껴집니다. 굶어죽지 않고, 배움의 기회가 당연하게 주어진 현재의 시공간에서 우리는 식사와 시험 공부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미래에는 무엇이 삶의 원동력이 될까요? 인간이 아닌 기계와 육체 및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디자이너 베이비로서 우월한 조건들을 타고나 큰 노력 없이도 성취를 이룬다면, 다 차치하고서 행복이라는 감정의 상태가 인공적으로 주입되어 유지될 수 있다면, 무엇이 삶을 가치있게 만들까요?
과학기술 발전 방향이 현재 우리의 가치관에만 갇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이들이 평범하게 밥벌이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세상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줄 편리함은 여전히 필요해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수요가 영원히 지속될까요? 저는 아닐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세상이 온다면 인간은 무엇을 갈망하게 될까요? 학우님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행복이란 흔치 않은 상황에서 느껴집니다. 굶어죽지 않고, 배움의 기회가 당연하게 주어진 현재의 시공간에서 우리는 식사와 시험 공부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미래에는 무엇이 삶의 원동력이 될까요? 인간이 아닌 기계와 육체 및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디자이너 베이비로서 우월한 조건들을 타고나 큰 노력 없이도 성취를 이룬다면, 다 차치하고서 행복이라는 감정의 상태가 인공적으로 주입되어 유지될 수 있다면, 무엇이 삶을 가치있게 만들까요?
과학기술 발전 방향이 현재 우리의 가치관에만 갇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이들이 평범하게 밥벌이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세상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줄 편리함은 여전히 필요해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수요가 영원히 지속될까요? 저는 아닐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세상이 온다면 인간은 무엇을 갈망하게 될까요? 학우님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임채미2021-04-29 00:11
과학기술에 대해서 논의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 이엘리엇 학우님의 태도를 보니 인문학적 소양이 느껴집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행복이라고 정의하고 행복이 흔치 않은 상황에서 느껴진다는 점을 가정하신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많은 것을 가진 미래의 인류는 어디에서 삶의 가치를 느낄 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해주셨는데요, 미래의 인류 또한 행복을 삶의 우선 가치로 둘 것입니다. 다만, 그 행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현 인류보다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극도의 쾌락을 추구하리라 생각해봅니다. 또, 지구의 시공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무한한 디지털 세계에서의 색다른 경험을 통해 충분히 채울 수 없는 그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리라 확신합니다. 분명히, 미래의 행복은 현재의 행복과 다르게 정의될 것이고, 행복의 차원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태민2021-04-28 21:44
<기억거래소>는 공상과 과학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책이다. 뇌 활동, 그 중에서도 인간의 기억이라는 테마는 과학기술의 도입이 가져다준 고민거리이다. 신경과학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부터 기원한다. 데카르트가 뇌에 대해 고찰하고, 다빈치가 뇌해부도를 그렸다는 사실은 뇌과학에 대한 인간의 오랜 호기심을 방증한다. 이후 근대 과학이 뉴런을 발견하고, MRI, CT 등의 개발로 신경과학은 빠르게 진보했다. <기억거래소>는 신경과학이 나아가야할, 혹은 이미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읽었지만, 한가지 쉽사리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기억을 지우는 것은 그 매커니즘이 이해가 간다. 자극에 대한 뇌의 특정 신호를 해독하는 것은 상당히 개발되었다. 하지만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윤리적, 기술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그 방식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있던 것을 지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없던 것을 새로 주입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된다. 쉬운 예시로 노트를 떠올려보자. 노트 페이지를 찢는 것은 쉽게 가능하지만, 찢어진 노트 페이지를 다시 붙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모양과 크기가 다른 노트 페이지는 그 근본 원리부터 주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 자극과 신경전달에 따른 물질과 에너지의 총체가 아닌가?
하지만 기억 주입이 단순히 공상으로만 머물기에는, 이미 과학은 그 인식의 지평을 넓힌 듯 하다. 신경과학은 뇌 속 기억 저장 세포를 '엔그램'으로 명명하고, 달팽이, 쥐 등의 뇌에 조작된 기억을 주입하는 연구를 수행해 성공했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다. 과연 이러한 메커니즘이 인간 두뇌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편 최근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에 대한 케이스 분석을 한 바 있다. 기억 주입과 비슷한 방식인 뉴럴링크의 매커니즘 역시 쉽게 이해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과연 인간 뇌에 새로운 무언가를 심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뉴럴링크를 통해 좋은 기억, 훌륭한 지식으로만 가득찬 엔그램을 구현한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지, 과학만이 낳을 수 있는 공상의 세계에 대해 학우분들과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읽었지만, 한가지 쉽사리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기억을 지우는 것은 그 매커니즘이 이해가 간다. 자극에 대한 뇌의 특정 신호를 해독하는 것은 상당히 개발되었다. 하지만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윤리적, 기술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그 방식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있던 것을 지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없던 것을 새로 주입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된다. 쉬운 예시로 노트를 떠올려보자. 노트 페이지를 찢는 것은 쉽게 가능하지만, 찢어진 노트 페이지를 다시 붙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모양과 크기가 다른 노트 페이지는 그 근본 원리부터 주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 자극과 신경전달에 따른 물질과 에너지의 총체가 아닌가?
하지만 기억 주입이 단순히 공상으로만 머물기에는, 이미 과학은 그 인식의 지평을 넓힌 듯 하다. 신경과학은 뇌 속 기억 저장 세포를 '엔그램'으로 명명하고, 달팽이, 쥐 등의 뇌에 조작된 기억을 주입하는 연구를 수행해 성공했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다. 과연 이러한 메커니즘이 인간 두뇌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편 최근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에 대한 케이스 분석을 한 바 있다. 기억 주입과 비슷한 방식인 뉴럴링크의 매커니즘 역시 쉽게 이해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과연 인간 뇌에 새로운 무언가를 심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뉴럴링크를 통해 좋은 기억, 훌륭한 지식으로만 가득찬 엔그램을 구현한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지, 과학만이 낳을 수 있는 공상의 세계에 대해 학우분들과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최서원2021-04-28 22:02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인간을 위한 기술을 만들어야한다. 얼마전, 수업 중 교수님께서 '인간공학'에 대해 설명하시며 활용하신 표현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과연 지금까지의 기술이 어느 방향을 향해 있었는지, 고민해볼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현재의 과학기술은 과연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맞을까? 과연, 더 완벽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인 것 같다. 어떤 기술이 '기술 자체의' 발전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된다하더라도,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거나, 위험성이 내재되어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술의 활용을 허용해도 괜찮을까? 누군가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일어난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태도를 보이지만 구석구석에서 법의 그물망을 피해 이리저리 비윤리적이나, '불법'적이진 않은 행동을 벌이게 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적 합의에 대한 것보다도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연구의 목적, 기술 발전의 목적'을 확실히 세운 후 연구를 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을 중심으로 한 연구는 분명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추후에 이를 막으려해도 앞서 말한 것처럼 filtering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연구의 목적을 정확히 수립한(학술/기술적 목적보다는 실제 우리 생활과 관련된, 혹은 윤리적 문제에 관련된 앞선 논의와 함께한 수립) 상태로 앞으로의 첨단과학기술의 발전해나가면 앞으로 기술 발달로 인해 일어날 인간소외 현상등의 여러 문제를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최유리2021-04-29 10:46
안녕하세요 서원님 저도 개인적으로 기술의 개발 과정에 대해 생각하면 서원님과 비슷하게 비판적 관점을 취하게 되는 것 같아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기업들이 '더 나은 삶'을 표방하며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그것이 꼭 더 행복한 삶(또는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런 기술들은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욕망들을 새롭게 만들고 그것을 인간이 충족시키도록 유도하며 이윤을 남기는 것에 주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원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몇가지 의문이 들었는데요, 연구의 목적을 아무리 잘 세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윤리적 목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요? (그 목적이 세상에 가져오는 긍정적인 변화가 그로 야기되는 피해를 넘어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기술을 허용한다고 말할 주체는 누가 될까요?) 또 그 목적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일론 머스크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뇌를 컴퓨터에 연결할 수 있는 뉴럴링크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목적이 아무리 선하더라도 그것은 또다시 다른 형태와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목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구속력이 있는 것인가요? ) 이와는 별개로 우리가 이 기술들을 대체 왜 개발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 효율성의 관점이 아닌 공동체적 관점에서 더 깊게 논의해봐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그러나 끝없는 혁신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이 어떤 형태로 가능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윤서영2021-04-28 22:02
“기억거래소”와 “세계미래보고서 2021”을 읽으며, 기술 발전으로 새롭게 그려질 미래 사회의 모습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선 “기억거래소”에서는, 책 속에서 묘사되는 여러 기술들이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래에 이런 기술이 실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 자체만으로 마음 한 켠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지울 수 없었다. 기술을 미래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결국 우리가 삶에서 어떠한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소설에 나온 기술들이 사회 전체에 확산되고 극단화된다면, 그러한 세계 안에서는 편리함과 간편함, 쾌락과 같은 요소가 우선시되고 꿈, 추억, 인내, 고통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의 의미는 그저 기술과 돈으로 변형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그저 시대적 경향과 가치관의 전환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변화가 인간과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무언가 본질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기억거래소”의 여러 기술 중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단기간에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한 학생과 그 부모, 그리고 돈과 자신의 언어 능력을 맞교환하는 케냐의 한 아이, 이렇게 극명히 대조되는 양측의 필요가 너무나 씁쓸하게 느껴졌다. 기술이 경제적 불평등을 그 외 영역에서의 불평등으로 전이, 확산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경종을 울리는 에피소드였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는 자산의 토큰화에 대한 주제가 언급된다. 이는 블록체인 등을 기반으로 부동산, 예술작품, 금과 같은 다양한 현물자산의 지분을 토큰화하여 부분적으로 소유하고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는 방식이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신규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주식투자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토큰화 거래까지 더해져 상용화된다면 금융의 미래가 어떤 모습을 띨지 무척 궁금해졌다. 대학 학위의 무용성에 관한 부분도 주목하게 되었다. 결국 학위보다는 개개인의 실력이 중요한 세상이 도래하고 있으며, Coursera를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강좌를 활용해 본인의 역량과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고 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절히 활용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다는 개인적인 다짐을 해볼 수 있었다.
“기억거래소”의 여러 기술 중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단기간에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한 학생과 그 부모, 그리고 돈과 자신의 언어 능력을 맞교환하는 케냐의 한 아이, 이렇게 극명히 대조되는 양측의 필요가 너무나 씁쓸하게 느껴졌다. 기술이 경제적 불평등을 그 외 영역에서의 불평등으로 전이, 확산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경종을 울리는 에피소드였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는 자산의 토큰화에 대한 주제가 언급된다. 이는 블록체인 등을 기반으로 부동산, 예술작품, 금과 같은 다양한 현물자산의 지분을 토큰화하여 부분적으로 소유하고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는 방식이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신규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주식투자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토큰화 거래까지 더해져 상용화된다면 금융의 미래가 어떤 모습을 띨지 무척 궁금해졌다. 대학 학위의 무용성에 관한 부분도 주목하게 되었다. 결국 학위보다는 개개인의 실력이 중요한 세상이 도래하고 있으며, Coursera를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강좌를 활용해 본인의 역량과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고 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절히 활용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다는 개인적인 다짐을 해볼 수 있었다.
김재민2021-04-28 23:13
서영님 안녕하세요! 저도 세계미래보고서에서 대학 학위의 무용성과 실력의 중요성이란 포인트를 참 재밌게 보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실력'이 '기술'이 되는 시대가 점차 끝나가는 느낌이 요즘 듭니다. 사회 전반의 지식 수준이 상승하며 , 더이상 '지적차이'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육이 성공을 담보하는 과거의 패러다임은 이제 끝났고 , 어떤 속도로 발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가가 ,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가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알고 익힌다를 넘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판단한다, 무엇을 "value"한다가 공감받는다면 , 그것이 옳다면 성공할 수 있는 세대로 온 기분입니다. 그래서 요즘 역량강화 측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윤리와 가치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사회 통념과 객관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참 중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기분이 듭니다..ㅋㅋ 그런데 현 세대의 "교육"이 얼마나 이를 잘 수행하는지 의문입니다. 여전히 학교는 산업사회 노동자 양성소마냥 표준화된 지식전달매개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없는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미래 세대의 교의 방향에 대해서도 저희의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코멘트 남겨봅니다 ㅎㅎ
무엇을 알고 익힌다를 넘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판단한다, 무엇을 "value"한다가 공감받는다면 , 그것이 옳다면 성공할 수 있는 세대로 온 기분입니다. 그래서 요즘 역량강화 측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윤리와 가치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사회 통념과 객관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참 중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기분이 듭니다..ㅋㅋ 그런데 현 세대의 "교육"이 얼마나 이를 잘 수행하는지 의문입니다. 여전히 학교는 산업사회 노동자 양성소마냥 표준화된 지식전달매개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없는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미래 세대의 교의 방향에 대해서도 저희의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코멘트 남겨봅니다 ㅎㅎ
원재희2021-04-28 23:52
저도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이 가장 인상깊었기에 글을 보고 댓글 남깁니다!
저는 그 상품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점점 제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에 관한 설명을 처음에 접했을 때에는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파는 케냐의 아이는 돈과 맞바꿀 수 없는, 그리고 맞바꿔서는 안되는 것을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저렇게 거래하는구나.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실장님이 말씀을 유창하게 잘 하셔서인지, 아니면 정말 제가 자본주의에 지나치게 물들어버렸기 때문인지, 점점 상품의 판매 타당성에 대해 의구심과 불만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이 자발적 참여에 의해 거래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그렇지만 서영님의 글을 보며,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지만 제가 반대 의견을 냈던 다른 논제들이 함께 떠오르면서, 좋은 설명이 덧붙여지고 그것의 허울에 티끌이 없다고 해서 그 상황이 본질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상품을 통해 두 아이가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기술의 발전은 이렇게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면서도, 동시에 교묘하게 '필요'라는 미명 하에 윤리적 정당성의 문제를 분별하기 어렵도록 꼬아버리는 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것의 정당성을 판별하는 인간의 합의, 숙고, 토론, 논의 과정 또한 함께 고도로 발전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상품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점점 제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에 관한 설명을 처음에 접했을 때에는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파는 케냐의 아이는 돈과 맞바꿀 수 없는, 그리고 맞바꿔서는 안되는 것을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저렇게 거래하는구나.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실장님이 말씀을 유창하게 잘 하셔서인지, 아니면 정말 제가 자본주의에 지나치게 물들어버렸기 때문인지, 점점 상품의 판매 타당성에 대해 의구심과 불만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이 자발적 참여에 의해 거래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그렇지만 서영님의 글을 보며,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지만 제가 반대 의견을 냈던 다른 논제들이 함께 떠오르면서, 좋은 설명이 덧붙여지고 그것의 허울에 티끌이 없다고 해서 그 상황이 본질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상품을 통해 두 아이가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기술의 발전은 이렇게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면서도, 동시에 교묘하게 '필요'라는 미명 하에 윤리적 정당성의 문제를 분별하기 어렵도록 꼬아버리는 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것의 정당성을 판별하는 인간의 합의, 숙고, 토론, 논의 과정 또한 함께 고도로 발전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서장원2021-04-28 22:14
기억거래소는 다른 여타 소설과는 달랐다. 원래 소설을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소설이라는 생각도 지루한 판타지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메타버스를 소재로 한 소설인 것에서 나아가 적혀 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머릿속에 새로운 울림을 가져왔다.
김상균 교수님의 메타버스 책보다 기억거래소가 더 흥미롭게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 메타버스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4차 산업혁명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철학적 질문들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증강·가상 현실이 만연한 사회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을 가짜라고 평가할 것인지는 기술의 진보가 없었다면 고민해보지 못했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질문들이다. 단지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규범과 가치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넌지시 던져주신 것이 참으로 놀랍다.
특히, 삶과 생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조작몽 동반 안락사 혹은 돈에 개인의 능력을 파는 부분 마인드 복사술 등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의식과 상반되는 기술들이다. 기존에 생명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우선함이 당연했고, 이를 경제적 가치를 위해 사고파는 것 혹은 타인에 의해 선택적으로 포기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이것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번 특강 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철학적 질문에 대한 인간들의 답변 속도가 앞지를 수 있을지 두렵다. 법과 제도, 사회 전체의 논의 등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우선해야 하는 가치, 그리고 기술을 통해 허용할 수 있는 자유와 창의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고민을 시작하기에는 우리는 벌써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김상균 교수님의 메타버스 책보다 기억거래소가 더 흥미롭게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 메타버스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4차 산업혁명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철학적 질문들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증강·가상 현실이 만연한 사회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을 가짜라고 평가할 것인지는 기술의 진보가 없었다면 고민해보지 못했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질문들이다. 단지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규범과 가치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넌지시 던져주신 것이 참으로 놀랍다.
특히, 삶과 생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조작몽 동반 안락사 혹은 돈에 개인의 능력을 파는 부분 마인드 복사술 등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의식과 상반되는 기술들이다. 기존에 생명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우선함이 당연했고, 이를 경제적 가치를 위해 사고파는 것 혹은 타인에 의해 선택적으로 포기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이것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번 특강 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철학적 질문에 대한 인간들의 답변 속도가 앞지를 수 있을지 두렵다. 법과 제도, 사회 전체의 논의 등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우선해야 하는 가치, 그리고 기술을 통해 허용할 수 있는 자유와 창의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고민을 시작하기에는 우리는 벌써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류성원2021-04-29 00:15
장원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지난주에 읽었던 <메타버스>도 흥미로웠지만, 벌어질 법한 일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기억거래소>를 읽으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새도 가상현실에서의 행동이나 딥페이크와 같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법적 규제 등이 논의되고 있긴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 보면 분명 우리의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변 속도’가 기술에 뒤처지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규제는 없고 신기술만 없는 아노미 상태의 사회에서는 불평등이 상상 이상으로 심화되고 다양한 범주에서의 취약한 사람들은 더욱 많은 위험에 노출될 것이기에, 사회적으로 빠르게 새로운 규범이 확립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철학적 질문에 답하는 속도도 빨라지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규범이 논의되고 합의되는 과정도 과학기술처럼 개편되고 발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에 발맞추어서 사회적의 합의된 규범이 나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담론의 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혜진2021-04-29 12:04
안녕하세요 장원님! 세계미래보고서 속에 소개된 새로운 기술들에서도 정말 이게 괜찮은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는데, 기억거래소는 그런 질문들을 이야기 속에 녹여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충분한 논의들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기술이 우리 삶의 영역을 차지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른 것 같지만, 기술이 개발되는 즉시 우리 삶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 만큼, 기술을 얼만큼 규제하고 허용할 것인지, 우리가 기존에 생명과 같은 가치에 두던 의미들은 어떻게 이동되어야 할지의 논의가 선행되도록 적용 시기를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당연히 기술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지점부터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기술을 사용하는 입장에서의 비판적인 관점을 잃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많이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최유리2021-04-28 22:37
세계미래보고서 2021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 가속화된 기술의 개발이 바꾸게 될 미래의 모습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었다. 전반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읽었고 이러한 모습들이 그렇게 먼 미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갈수록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속도는 더더욱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도 등장한지 단 몇십년만에 인류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에서 뭔가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조금 진부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기술의 발전을 정신(제도)의 발전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간에 정말 극적으로 주가가 상승한 테슬라와 그 ceo 일론 머스크가 이 책에서도, 요즘 세상에서도 무척 화제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들은 무척이나 통이 크다. 인공위성을 통해 전 지구에 인터넷을 깔고, 완전한 자율주행 단계를 실현하고, 뉴럴링크를 개발해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겠다고 한다. 그가 쓰는 트윗들은 도지 코인의 가격을 6000% 상승시키기도 했고, 테슬라의 주가를 큰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가 괴짜 천재이며, 이러한 천재들이 세상을 크게 혁신해나간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그의 괴짜적인 면을 밈으로 만들고 그의 캐릭터의 호감도를 높인다. 그러나 요즘들어 나는 전인류의 생활에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끼칠 기술들이,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으로 선출되지도 않았고 자기 자신 또는 기업의 가치만을 생각하는 아주 극소수의 ceo들에 의해서 세상에 나와 모두의 삶을 바꾸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에게 지구의 미래를 맡기고 싶지 않다..) 물론 그러한 기술이 정부와 시민사회 등 민주주의 내의 합리적인 절차들에 따라 논의되고 견제되며 전체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찬성이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원자폭탄', '원자력 발전'처럼 그 기술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면? 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발생과 그 이후의 경과를 보면서 나는 더더욱 우리 사회는 기업이 만든 제품에 문제가 있었을 때 그 책임을 바로 묻고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뉴럴링크가 개발되어 정말 칩으로도 모든 지식을 아주 빠르게 흡수가능하다고 했을 때, 그 기술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사이에 격차는 무한대까지 벌어지게 될 것이며, 이는 곧 그 기술을 누군가 독차지 하려는 유인이 충분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혹자는 그렇게 기술이 피해를 끼친다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거부하여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겠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과연 현재 개개인에게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들을 거부할 자율적 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경쟁하는 개인들은 필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모두가 가상현실에서 미팅을 여는데 나만 불참할 수는 없다) 적절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없이 무분별하게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물론 거기서도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약자들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사실 기술에 의해 뒤쳐지는 사람들에 관해 , 그냥 자연스럽게 경쟁에서 도태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국가가 그들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인공지능이 등장해 일자리를 대체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때는 정말로 자본주의와 생산물의 분배, 시민의 존엄과 역할, 노동자로서의 지위 등 모든 것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논의를 진행해야만 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보다도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할 수 있는 건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시급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로 봤을 때, 기술은 진보되어 왔으나 인간의 정신은 그에 걸맞게 진보해왔는가?라고 물으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윤빈2021-04-28 22:53
소설 기억거래소에서 사람들을 원하는 대로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얻는 가치만큼의 가격을 지불하고, 새로운 기억을 가진 채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은 기억조작술이 판매되는 데에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결국 진실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억을 이식 받아서 실제의 일로 여기기만 한다면 세상에 존재했던 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들이 진실이 되는 세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다음과 같은 능력들이 있다. 의심하는 능력과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것들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의심하면서 생각을 가꾸어 나가곤 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의 표면적인 모습 이면의 가치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나의 세상과 경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가진 생각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 나를 둘러싼 세상을 때로는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없어질 것이다. 당장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가치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도 의미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가 만들어낸 각자의 세상은 결국 서로 날카롭게 충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모든 충돌을 조종할 수 있는 기억조작술자들의 권력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다음과 같은 능력들이 있다. 의심하는 능력과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것들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의심하면서 생각을 가꾸어 나가곤 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의 표면적인 모습 이면의 가치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나의 세상과 경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가진 생각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 나를 둘러싼 세상을 때로는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없어질 것이다. 당장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가치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도 의미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가 만들어낸 각자의 세상은 결국 서로 날카롭게 충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모든 충돌을 조종할 수 있는 기억조작술자들의 권력은 어떤 모습일까.
손지우2021-04-28 23:24
안녕하세요 윤빈님 :)
윤빈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문단을 열며 말씀하신 인간은 '의심하는 능력과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가진다' 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인간은 삶에서 여러 사건을 겪으며 스스로가 가진 생각에 대해 끊임없는 성찰과 의심을 통해 성장한다는 관점에 저 또한 동의합니다. 그렇기에 윤빈님께서 짚어주신 자신이 원하는 기억으로만 자신의 세상을 구성했을 때 다른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 뇌리에 박혔던 듯 합니다. 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할 필요성을 없앰으로써 소통과 이해가 부재하고 단절된 사회를 구성하게 될 것이고, 그는 곧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부분들을 살피다 보면 '도구가 아닌,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이다.' 라는 말이 떠오르곤 하는데요, 그렇다면 이처럼 급격히 발전하는 사회에 맞춰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스스로를, 사회를 정도를 벗어나지 않게 통제하고 윤리적 가치들을 고려하며 접근해 나갈 수 있을지 또한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윤빈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문단을 열며 말씀하신 인간은 '의심하는 능력과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가진다' 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인간은 삶에서 여러 사건을 겪으며 스스로가 가진 생각에 대해 끊임없는 성찰과 의심을 통해 성장한다는 관점에 저 또한 동의합니다. 그렇기에 윤빈님께서 짚어주신 자신이 원하는 기억으로만 자신의 세상을 구성했을 때 다른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 뇌리에 박혔던 듯 합니다. 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할 필요성을 없앰으로써 소통과 이해가 부재하고 단절된 사회를 구성하게 될 것이고, 그는 곧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부분들을 살피다 보면 '도구가 아닌,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이다.' 라는 말이 떠오르곤 하는데요, 그렇다면 이처럼 급격히 발전하는 사회에 맞춰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스스로를, 사회를 정도를 벗어나지 않게 통제하고 윤리적 가치들을 고려하며 접근해 나갈 수 있을지 또한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재용2021-04-28 22:57
최근 팀원들과의 아이스브레이킹 활동 중 서로에게 묻는 여러 질문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은가?' 물론 순간이동, 타임스탑, 슈퍼 파워 등 여러 능력이 있겠지만 난 항상 바래왔던 능력이 있다. 바로 '생각'과 '기억'을 조작하는 능력이다. 남의 생각과 기억을 읽고 상대방의 생각과 기억을 조작한다면 그거야말로 이 세상의 지배자일 것이다. 항상 어디까지나 판타지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김상균 교수님의 책 '기억 거래소'처럼 기억을 사고 팔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봤다. 먼저 긍정적인 부분으론, 당연히 원하지 않는 기억을 없애고 겪고 싶었던,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던 추억을 얻거나 지식을 쉽게 얻는 데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첫 챕터는 '다시 춘천으로' 인데, 나에게 춘천은 어렸을 때의 매우 좋은 추억만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춘천이라는 단어를 읽자마자 순간적으로 온갖 추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가고 있고, 난 그 행복했던 기억들을 오랫동안 생생하게 간직하고 싶다. 만약 기억을 오래 유지시키고 또한 이 좋은 기억을 남들과 공유할 수만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없겠다. 물론 나에게도 잊고 싶은, 몇몇 최악의 기억 또한 존재하는데 아무리 잊고 싶어도 신기하게도 오히려 더 안좋은 기억이 오래 남는다. 이 기억들을 잊을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매우 행복한 일일 것이다. 나만 보아도 이런데, 나보다 더 이 기술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고 그만큼 수요는 존재, 언젠가 공급 또한 생겨나 사람들의 needs를 해결해 줄 것이다.
항상 모든 기술엔 어두운 면이 있듯이, 기억 거래 또한 부정 측면은 무조건 존재한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 "The Giver(기억전달자)"의 세상에선 모든 사람들이 기억이 조작된 상태로 살고있고, 단 한 사람이 그 기억을 보관하고 있다. 만약 어느 기업 또는 정부가 기억을 조작(또는 거래)할 수 있는 기술을 독점하게 된다면 그리고 이를 하나의 권력처럼 사용한다면, 사람들의 모든 행동과 생활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여러 윤리의식 등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이 거래 기술로 인한 사회 질서의 재배치 및 새로운 '기억 부익부 빈익빈' 현상 같은 새로운 개념의 갈등이 탄생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주로 다루는 '기술'의 부정적 측면을 해결할 해결책은 대부분 법, 제도, 윤리 의식을 갖추기 등이다. 이번 주제가 '과학기술'인 만큼, 기억거래(또는 메타버스)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또다른 '과학기술' 또는 시장 시스템을 구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김상균 교수님의 책 '기억 거래소'처럼 기억을 사고 팔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봤다. 먼저 긍정적인 부분으론, 당연히 원하지 않는 기억을 없애고 겪고 싶었던,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던 추억을 얻거나 지식을 쉽게 얻는 데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첫 챕터는 '다시 춘천으로' 인데, 나에게 춘천은 어렸을 때의 매우 좋은 추억만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춘천이라는 단어를 읽자마자 순간적으로 온갖 추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가고 있고, 난 그 행복했던 기억들을 오랫동안 생생하게 간직하고 싶다. 만약 기억을 오래 유지시키고 또한 이 좋은 기억을 남들과 공유할 수만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없겠다. 물론 나에게도 잊고 싶은, 몇몇 최악의 기억 또한 존재하는데 아무리 잊고 싶어도 신기하게도 오히려 더 안좋은 기억이 오래 남는다. 이 기억들을 잊을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매우 행복한 일일 것이다. 나만 보아도 이런데, 나보다 더 이 기술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고 그만큼 수요는 존재, 언젠가 공급 또한 생겨나 사람들의 needs를 해결해 줄 것이다.
항상 모든 기술엔 어두운 면이 있듯이, 기억 거래 또한 부정 측면은 무조건 존재한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 "The Giver(기억전달자)"의 세상에선 모든 사람들이 기억이 조작된 상태로 살고있고, 단 한 사람이 그 기억을 보관하고 있다. 만약 어느 기업 또는 정부가 기억을 조작(또는 거래)할 수 있는 기술을 독점하게 된다면 그리고 이를 하나의 권력처럼 사용한다면, 사람들의 모든 행동과 생활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여러 윤리의식 등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이 거래 기술로 인한 사회 질서의 재배치 및 새로운 '기억 부익부 빈익빈' 현상 같은 새로운 개념의 갈등이 탄생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주로 다루는 '기술'의 부정적 측면을 해결할 해결책은 대부분 법, 제도, 윤리 의식을 갖추기 등이다. 이번 주제가 '과학기술'인 만큼, 기억거래(또는 메타버스)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또다른 '과학기술' 또는 시장 시스템을 구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민2021-04-28 23:05
“오가노이드”에 대한 인류의 상상은 정말 근현대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알파휴먼, 베타휴먼, 감마휴먼을 나눈 올리버 트위스트의 <멋진 신세계>부터, 수 년 전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시리즈까지, 생명공학과 게놈의 발전은 오랜 세월 포스트휴먼과 그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왔습니다.
저는 이번 주 독서로 <미래세계보고서>를 읽었는데,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부터 CRISPR까지 일련의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보며 약간 두려웠습니다. 발제조가 ‘오가노이드’논의에서 소개하였듯, 이제 뉴럴링크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 여태껏 사람을 하나의 주체로서 존중해왔던 그 모든 윤리학적 담론의 토대가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 감정, 쾌고감수능력 등 뭔가 인간의 핵심 특질로 여겨졌던 것들이 부정되는 속에서, 이제 종의 경계가 얼마나 유의미할지 모를 차원까지 온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서, 앞서 소개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등이 정말 재밌는 시선을 던져주는데, 혹시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면 일독을 권합니다.)
1. 이 부분에서 발제조의 논의를 좀 더 연장해보자면, 가즈오 이시구로는 ‘DNA 체세포 복제술’을 통해 현실의 인간과 유전적으로 identicla한 사람을 모아둔 인큐베이터 집단을 만들고, 이들은 현실 세계의 인간을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 속에서 곧 “부품”의 처지로 전락할 DNA복제인간들이 현실 세계에 접하며 느끼는 갈등과 성장, 그리고 그 속에서 종의 경계에 관하여 깊이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이 미래가 결국 바이오 인공장기기술의 미래라 생각합니다. 소비재, 대체재로서의 장기와 “organ-noid” 사회에서 나오는 윤리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ᄁᆞ요. (사실 조금 다른 이야기ㅣ만, 이미 중국에서는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의 장기를 대만이나 싱가폴로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결국 바이오인공장기기술은 아니지만 이런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장기판매가 성행하는 요즘 사회부터 저는 논의를 하나씩 적립해야가야한다 생각합니다)
2. 다음으로 저는 뉴럴링크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기대하듯, 만약 뉴럴링크를 통해 우리의 뇌를 인류의 과학적-지적 DB와 연결시킬 수 있다면, 즉 인간 종 사이에서 지능 균질화가 이루어진다면, 그 사회는 이제 어떻게 무언가 달라지고, 창의적이고, 다름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이제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 각자의 기질과 특질에 따라 하고자 하는 것을 추종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뉴럴링크의 시대가 마냥 유토피아일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 다양성이 존재할 수나 있을까요? 그땐 옳고 그름 이외의 가치판단이 불가하지 않을까요?이 부분에서 여러분들의 다양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3. 우생학과 유전자 편집에 관하여, 장애를 하나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주류 시선에 의문을 던지는 발제조의 시선이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는 치료의 대상이라는 큰 프레임은 동의하지만, 저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마치 ‘장애가 삶의 하나의 큰 barrier’라는 점을 전제하는 것을 고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에 학내에서 시각장애인 타이핑 봉사하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친구는 당연히 서울대를 다니는 ‘시각장애인’친구가 눈이 보이지 않아 경사지고 광할한 캠퍼스를 다니는 것이 무척 힘들겠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친해지고난 후 가장 힘들었던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외고/자사고 나온 친구들이 영어를 너무 잘해서 전공 시험 공부하는게 힘들다”였다고 합니다. 저도 나름 인권담론을 익혀가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는데, 저 역시 그들이 당연히 힘들겠구나라는 선입견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반성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가 그들의 삶에 handicap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들의 handicap을 단정짓는게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번 주 독서로 <미래세계보고서>를 읽었는데,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부터 CRISPR까지 일련의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보며 약간 두려웠습니다. 발제조가 ‘오가노이드’논의에서 소개하였듯, 이제 뉴럴링크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 여태껏 사람을 하나의 주체로서 존중해왔던 그 모든 윤리학적 담론의 토대가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 감정, 쾌고감수능력 등 뭔가 인간의 핵심 특질로 여겨졌던 것들이 부정되는 속에서, 이제 종의 경계가 얼마나 유의미할지 모를 차원까지 온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서, 앞서 소개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등이 정말 재밌는 시선을 던져주는데, 혹시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면 일독을 권합니다.)
1. 이 부분에서 발제조의 논의를 좀 더 연장해보자면, 가즈오 이시구로는 ‘DNA 체세포 복제술’을 통해 현실의 인간과 유전적으로 identicla한 사람을 모아둔 인큐베이터 집단을 만들고, 이들은 현실 세계의 인간을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 속에서 곧 “부품”의 처지로 전락할 DNA복제인간들이 현실 세계에 접하며 느끼는 갈등과 성장, 그리고 그 속에서 종의 경계에 관하여 깊이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이 미래가 결국 바이오 인공장기기술의 미래라 생각합니다. 소비재, 대체재로서의 장기와 “organ-noid” 사회에서 나오는 윤리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ᄁᆞ요. (사실 조금 다른 이야기ㅣ만, 이미 중국에서는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의 장기를 대만이나 싱가폴로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결국 바이오인공장기기술은 아니지만 이런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장기판매가 성행하는 요즘 사회부터 저는 논의를 하나씩 적립해야가야한다 생각합니다)
2. 다음으로 저는 뉴럴링크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기대하듯, 만약 뉴럴링크를 통해 우리의 뇌를 인류의 과학적-지적 DB와 연결시킬 수 있다면, 즉 인간 종 사이에서 지능 균질화가 이루어진다면, 그 사회는 이제 어떻게 무언가 달라지고, 창의적이고, 다름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이제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 각자의 기질과 특질에 따라 하고자 하는 것을 추종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뉴럴링크의 시대가 마냥 유토피아일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 다양성이 존재할 수나 있을까요? 그땐 옳고 그름 이외의 가치판단이 불가하지 않을까요?이 부분에서 여러분들의 다양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3. 우생학과 유전자 편집에 관하여, 장애를 하나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주류 시선에 의문을 던지는 발제조의 시선이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는 치료의 대상이라는 큰 프레임은 동의하지만, 저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마치 ‘장애가 삶의 하나의 큰 barrier’라는 점을 전제하는 것을 고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에 학내에서 시각장애인 타이핑 봉사하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친구는 당연히 서울대를 다니는 ‘시각장애인’친구가 눈이 보이지 않아 경사지고 광할한 캠퍼스를 다니는 것이 무척 힘들겠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친해지고난 후 가장 힘들었던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외고/자사고 나온 친구들이 영어를 너무 잘해서 전공 시험 공부하는게 힘들다”였다고 합니다. 저도 나름 인권담론을 익혀가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는데, 저 역시 그들이 당연히 힘들겠구나라는 선입견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반성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가 그들의 삶에 handicap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들의 handicap을 단정짓는게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강혜진2021-04-28 23:14
기술이 발전하면서, 또 코로나가 등장하면서 변화하게 된 지점들에 대해 던질 질문이 많지만, 가장 많은 고민으로 이어졌던 부분은 삶의 의미가 어디로 옮겨질까였다. BCI(뇌-컴퓨터 인터스페이스)를 이용해서 단시간에 아주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성격이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면 무언가를 배우고 세상을 직접 확장시켜나가는 즐거움은 사라지는 걸까?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기회는 점차 축소되는 것일까? 또 어떤 특정 성격에 대한 선호가 이어지면, 결국 그 성격이 정답이고 다른 성격은 틀린 것으로, 고쳐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진 않을까? 유전자 조작의 과정이 지금까지 인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 외적인 요인으로 인한 차별을 없애고자 한 시도들이 쓸모 없이 모두가 우성이라 여겨지는 모습만을 생산해내는 것으로 흘러갈 수 있을 것이라는 책의 내용과 연결지어 생각한다면 결국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것은 결코 인정받을 수 없고, 나중에는 존재하지도 않게 되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인간이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영역이 대체되고 난 후에,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 같아 다른 학우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다.
양승훈2021-04-29 00:18
인간의 영역이 대체된 뒤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에 대한 질문이 인상 깊네요! 예전에 1학년 때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버들골에 앉아서 인공지능 이야기하던 게 생각나네요! 인공지능이 정말 많은 일을 하게 되고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지면 굳이 사람 vs 인공지능의 일자리 싸움으로 갈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인공지능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일하고 생산해서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를 기본소득으로 모두가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도 자본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인간 모두가 나누기보다 일부 대기업의 이익으로 들어가겠지만 전세계인이 단결해서 그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라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고대 때 노예가 일하고 돈을 벌면 귀족이 철학과 정치에 참여했던 모습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예 찬성 X)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때 사람들이 사색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뭔가 인공지능이 돈을 벌면 인간은 돈을 버는 기계에서 벗어나 다시 '생각'하는 주체로 회귀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탈퇴한 회원2021-04-28 23:22
1. 우리는 우리 자신, 타인을 얼만큼 알 수 있을까? 그 연결의 매개체는?
“20년이 걸려서도 못 다한 말을 남은 시간에 전할 수 있는지, 그게 그렇게 전한다고 해서 제대로 전해진 것인지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소설 속 안락사를 시행하기 전, 그 가족에게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완우의 말에 조 실장이 한 말이다. 나는 때때로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하지는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어떤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책을 보던 중, 이 말을 듣고 문득 내 생각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말로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다는 조 실장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언어는 완벽한 수단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자신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우리가 타인을 얼마만큼 이해해줄 수 있을까?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그것은 언어로만 가능한 일인가?
2. 행복하면 되는 것인가? 인위적인 행복함도...?
흔히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인위적으로 조작된 행복함도 그러한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기억거래소는 그러한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객관적 실재보다는 각자가 받아들인 기억, 인지를 통해 주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기억의 왜곡과 소실이 일어날 수도 있고, 사실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던 일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행복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기술로 인해 조작된 행복함과 그것의 차이는 또 무엇일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우리의 행복에 관여하는 것도 이 소설 조 실장의 대사처럼 그저 선물로 여길 수 있는 것일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해피 엔딩에서 노태성 씨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의사가 된 것으로 거짓말한 것을 알면서도 임종 직전,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 주인공에게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무엇에 그렇게 감사했던 것일까? 비록 거짓이지만 죽기 전에 아들이 성공했을 때의 모습을 잠시라도 볼 수 있었기에? 자신을 생각했던 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비록 그 끝이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헤쳐나가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소설은 무언가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인위적인 행복함도 단지 쾌락적인 행복함 이외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3. 시대와 윤리에 따라 달라지는 법과 범죄의 범주
시대는 분명히 변화하며,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그에 맞추어 우리의 가치관, 윤리 그리고 법과 범죄의 윤리 또한 바뀌어나갈 것이다. 기억거래소는 조작몽 동반 안락사,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 안면 이식 동반 작화증 유도술, 부분 마인드 복사술과 같은 기술로 지금까지는 존엄성, 기술의 한계 등으로 바꿀 수 없다고 여겨졌던 사람의 기억과 신체, 능력까지도 바꾸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소설 속의 각주를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가 머지않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어디까지 그런 부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은 참 많은 문제가 그물망처럼 엮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재빈2021-04-28 23:25
<기억거래소>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당신은 영원한 삶을 원하는가? 혹은, 자신의 기억을 조작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예전에는 그저 철학적인 주제로 여겨졌던 물음들이 과학 기술과 결합되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더 섬뜩하게, 그리고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급변하는 사회에 깊은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학우들과 공유해본다.
@ 나쁜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 책 중 양다은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망쳐 놓은 삼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안면이식 동반 작화증 유도술 서비스를 의뢰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자신이 내린 결정에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찝찝한 감정이 생긴 채 자신이 의뢰했다는 기억마저 지워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나쁜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만약 이런 기술이 정말로 생긴다면 많이 이용할 지 궁금증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상처, 나쁜 기억이 있다.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긴 어둠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인생이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내 뜻대로 찾아오지 않은 불행에 대한 시술은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불행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다고도 이야기한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이들을 보면 남들과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자신들이 겪은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선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상처를 인생에서 '없었던 것'으로 지워버리는 것이 적절한 대응 방식이 될까? '나쁜 기억'의 형태로 인생이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를 무시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두 각자 인생에 대한 의미가 있다. 학우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나쁜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 책 중 양다은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망쳐 놓은 삼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안면이식 동반 작화증 유도술 서비스를 의뢰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자신이 내린 결정에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찝찝한 감정이 생긴 채 자신이 의뢰했다는 기억마저 지워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나쁜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만약 이런 기술이 정말로 생긴다면 많이 이용할 지 궁금증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상처, 나쁜 기억이 있다.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긴 어둠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인생이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내 뜻대로 찾아오지 않은 불행에 대한 시술은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불행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다고도 이야기한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이들을 보면 남들과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자신들이 겪은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선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상처를 인생에서 '없었던 것'으로 지워버리는 것이 적절한 대응 방식이 될까? '나쁜 기억'의 형태로 인생이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를 무시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두 각자 인생에 대한 의미가 있다. 학우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탈퇴한 회원2021-04-29 10:27
재빈님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떠한 일을 겪었을 때 자신만의 방식대로 그것을 해석하고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일을 겪었어도 그것이 좋은 혹은 나쁜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또 나쁜 기억이라고 여겨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생각하고 인지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혹은 끝이 없는 바닥으로 침잠시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의 능동적인 힘을 믿는 입장이라 재빈님 말씀처럼 상처받은 기억들이 삶의 원동력이나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 수 없기에, 소설 속 양다은 씨처럼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의 힘들었고 상처받은 경험이 없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을 지우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아주 오랜 시간 그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은 좋으나 싫으나 그 사람의 인생의 지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텐데, 그와 관련된 기억을 모두 지우는 것이 그 사람 기억의 많은 부분을 지우는게 아닐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시대와 시간이 흘러,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면서 윤리적 법적 기준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기억을 지우는 것이 온전히 개인의 선택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 단순히 쾌락주의적 선택이 아닌, 인생의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능동적 인간이 되어야 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할 것 같습니다.
원재희2021-04-28 23:33
<세계미래보고서2021>은 같은 종류의 다른 버전들보다 좀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COVID 19로 인해 우리가 상상만 해오던, 그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들이 삶 속에 급격히 찾아왔다는 사실은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명제이다. 그렇기에 이전의 세계미래보고서 또는 이와 비슷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수많은 글들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피부로 잘 와닿지 않았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들로 여겼던 반면, 이번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 담긴 이야기들은 정말 집중해서 읽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지난 주에 메타버스에 관련한 지식들을 다양한 실례와 함께 접한 뒤로, 여러 시사 관련 자료에서 전하는 우리의 근미래에 관한 소식과 예측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글을 읽다보니, 특히 '나는 이러한 기술이 발전하고 개발되는 현실 속에서 어떠한 직업을 가져야 할지, 그리고 직업의 종류뿐 아니라 점점 발달하는 인공지능을 비롯한 여러 기기들과 확실하게 구별될 수 있는 인간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가장 빨리 떠오른 생각은, '내가 속한 이 사회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따르지 말고 나만의 길을 찾아보자. 그리고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고민하자.'였다. 생명이 없는 인공지능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데, 심지어 인간인 나는 더더욱 노력해서 발전해야할 것 같았다.
이 책을 비롯하여 <기억거래소>를 함께 읽으면서, 기술의 발전과 사회 규범의 진화 간의 속도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더컴퍼니의 고객들이 처한 각 상황에 제안되는 여러 기술들이 당장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아갈 때 조금이라도 덜 싸우고 더 원만히 분쟁을 해결하며 각자의 권리를 보장받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법, 사회규범의 기본적 기능이다. 그런데 법규범의 특성상 대개 관련 현상이 한 번이라도 발생하고 나서야 그것을 규정하는 규범이 새로이 생겨나게 된다. 비유하자면, 글쓰기를 할 때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두뇌 속에서 발생하는 상상력과도 같고, 그렇기에 어디로 어떻게 튀어서 나아가게 될 지 예측이 힘들다. 법규범은 실제로 인간이 써내려가는 정제된 글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은 새로운 글을 탄생시키지만, 또 역으로 정제된 글을 써내려가면서 통통 튀는 상상력의 방향과 한계, 기틀이 잡히게 되면서 그 상상력은 글씨라는 현실로 굳혀져 세상에 나오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술의 발전도 인간으로 하여금 관련 법을 탄생시키도록 하고, 반대로 법은 그 기술이 야생적이고 야만적인 방향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일정한 울타리를 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둘은 반드시 함께 가야하는 보완적 존재이다. 그런데 세계 미래 보고서를 비롯한 다양한 미래 예측 및 트렌드 분석 자료를 보면, 트렌디한 과학기술의 발전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관련 법의 제정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 정도만 간단히 언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미래'는 인간 사회 여러 분야의 종합적/통합적 산물이다. 그렇기에 과학 기술 분야의 전문가와 인문사회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종합적인 통찰력으로 예측하고 분석하여, 사람들에게 균형잡힌 시각과 준비 태도를 심어주어야 한다.
이 책을 비롯하여 <기억거래소>를 함께 읽으면서, 기술의 발전과 사회 규범의 진화 간의 속도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더컴퍼니의 고객들이 처한 각 상황에 제안되는 여러 기술들이 당장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아갈 때 조금이라도 덜 싸우고 더 원만히 분쟁을 해결하며 각자의 권리를 보장받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법, 사회규범의 기본적 기능이다. 그런데 법규범의 특성상 대개 관련 현상이 한 번이라도 발생하고 나서야 그것을 규정하는 규범이 새로이 생겨나게 된다. 비유하자면, 글쓰기를 할 때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두뇌 속에서 발생하는 상상력과도 같고, 그렇기에 어디로 어떻게 튀어서 나아가게 될 지 예측이 힘들다. 법규범은 실제로 인간이 써내려가는 정제된 글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은 새로운 글을 탄생시키지만, 또 역으로 정제된 글을 써내려가면서 통통 튀는 상상력의 방향과 한계, 기틀이 잡히게 되면서 그 상상력은 글씨라는 현실로 굳혀져 세상에 나오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술의 발전도 인간으로 하여금 관련 법을 탄생시키도록 하고, 반대로 법은 그 기술이 야생적이고 야만적인 방향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일정한 울타리를 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둘은 반드시 함께 가야하는 보완적 존재이다. 그런데 세계 미래 보고서를 비롯한 다양한 미래 예측 및 트렌드 분석 자료를 보면, 트렌디한 과학기술의 발전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관련 법의 제정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 정도만 간단히 언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미래'는 인간 사회 여러 분야의 종합적/통합적 산물이다. 그렇기에 과학 기술 분야의 전문가와 인문사회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종합적인 통찰력으로 예측하고 분석하여, 사람들에게 균형잡힌 시각과 준비 태도를 심어주어야 한다.
박혜송2021-04-29 00:30
재희님, 안녕하세요! 규범과 기술발달에 대한 비유가 인상적이어서 댓글 남깁니다. 저 또한 법과 규범이 관련 현상이 발생한 후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발달된다는 재희님의 문제 의식에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재희님의 의견에 첨언하자면, 기술이 고도로 발달할 미래 사회에는 규범을 통해 다스릴 윤리적 문제에 관한 논의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에 관한 철학적 통찰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연, 과학기술을 통해 거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심지어 생각할 권리조차 인공지능에게 자발적으로 빼앗긴다면, 인간의 존재 목적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또한 인문사회분야의 전문가들과 사회 구성원들이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써주신 바와 같이, 과학 기술이 야만적인 방향으로 튀어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법을 통해 사후적으로 이를 규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에 더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한 기술을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로 개발하도록 방치하지 않고, 해당 기술에 대해 사전적으로 다방면에서 검토하는 기구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지유2021-04-29 13:57
재희님 안녕하세요. <기억거래소>를 읽으며 저 또한 과연 기술에 대한 법적, 제도적 통제가 가능하기는 할까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고 사후적으로 세세한 규정을 마련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도적인 통제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기술의 사회적 효용에 대한 윤리적 공감대가 확산되어, 일종의 윤리적 문턱(threshold)에 대한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최동익2021-04-28 23:38
<세계미래보고서 2021>은 현재 개발되고 있는 기술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제시하며, <기억거래소>는 그 중 특히 기억의 주입 및 제거가 어떻게 사용될지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글쓰기 양식을 택한 두 책이지만 겹치는 부분이 두 가지 정도 있어 흥미로웠다.
먼저 두 책 모두에서 고도로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은 기존 제도를 어느 정도 초월해 있다. <기억거래소> 중 ‘완우’의 관점에서는 짧게 제시될 뿐인, 가상의 조직 ‘더 컴퍼니’ 및 ‘헤븐서버’가 우선 그러하다. 그들의 시술은 효과는 강력하면서도 비용 또한 과하지 않은데, 법의 영역 바깥에서 비밀리에 사람들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한다. 기업이라기에는 그다지 수익성이 없을 듯하고 인턴에게 조직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 점도 마치 비밀 결사 점조직 같아 현실과는 영 멀지만, 책에서는 오로지 일부만을 다루었을 뿐이므로 해당 조직의 실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다.
반면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는 현존하며 널리 알려진 페이스북 등의 기업이 디지털 화폐를 통해 가상 국가를 설립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가상 국가들이 정말로 ‘국가’의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플랫폼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가들의 입장에서 국가 운영이 남는 장사는 아닐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우선 국가라면, 형식상으로는 그 주인이 어떠한 개인이라고 특정하기가 몹시 힘들다. 대개 인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볼 텐데, 디지털 국가를 건설할 능력을 갖춘 기업이 주권이 운영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고 천명하려 하지는 않을 테다. 조금은 다른 맥락이지만, 가상 세계를 운영하고 있는 게임사들이 제 아무리 유저들에게 자유도를 주더라도 해당 게임은 여전히 그들의 소유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국가의 가장 굵직한 기능이라면, 물론 화폐 발행도 있겠으나, 안보 및 복지 등도 주요할 텐데, 후자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해킹으로부터의, 디지털 공간에서의 개인정보 보호는 일종의 치안처럼 보이기는 하나 거대 기업들이 고객의 정보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고객 유치를 위해, 또 해당 정보 자체가 자신들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일 테다.
두 번째로 두 책 모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에, 수혜자가 누구일지를 고민하게 한다. <기억거래소>의 경우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했으며, 그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기억 조작 외에는 없는 이들이 대개 시술을 받는다. 그래도 괜찮은 처지에 있는 이들은 끝내 시술을 진행하지 않거나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는 교육의 미래를 다루는 장에서 고민이 깊어지는데, 채용에 있어 대학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는 기업의 창업자들이 고학력자라는 점은 몹시 아이러니하다. 또한 국가와 정치를 다루는 장은 인공지능 정치인의 등장을 다루는데, 이가 어떻게 기능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정치인들은, 지역구 의원이라면 해당 지역구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음을, 비례대표라도 자신이 특정 집단을 대변할 수 있음을 내세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러한 이해관계로부터의 초월이 오히려 강점이 되니, 선출직에는 사실 잘 안 맞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비슷하게, 부의 미래를 다루는 장에서 인공지능 자산관리사를 제시하는데, 투자시장 참여자가 만일 모두 인공지능이 된다면 해당 시장은 어떠한 모습이 될지도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 누구도 시장 평균 수익률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 되리라고 부족하게나마 생각해보았는데, 다른 학우 분들의 생각이 어떠할지도 궁금하다.
서로 다른 글쓰기 양식을 택한 두 책이지만 겹치는 부분이 두 가지 정도 있어 흥미로웠다.
먼저 두 책 모두에서 고도로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은 기존 제도를 어느 정도 초월해 있다. <기억거래소> 중 ‘완우’의 관점에서는 짧게 제시될 뿐인, 가상의 조직 ‘더 컴퍼니’ 및 ‘헤븐서버’가 우선 그러하다. 그들의 시술은 효과는 강력하면서도 비용 또한 과하지 않은데, 법의 영역 바깥에서 비밀리에 사람들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한다. 기업이라기에는 그다지 수익성이 없을 듯하고 인턴에게 조직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 점도 마치 비밀 결사 점조직 같아 현실과는 영 멀지만, 책에서는 오로지 일부만을 다루었을 뿐이므로 해당 조직의 실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다.
반면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는 현존하며 널리 알려진 페이스북 등의 기업이 디지털 화폐를 통해 가상 국가를 설립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가상 국가들이 정말로 ‘국가’의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플랫폼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가들의 입장에서 국가 운영이 남는 장사는 아닐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우선 국가라면, 형식상으로는 그 주인이 어떠한 개인이라고 특정하기가 몹시 힘들다. 대개 인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볼 텐데, 디지털 국가를 건설할 능력을 갖춘 기업이 주권이 운영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고 천명하려 하지는 않을 테다. 조금은 다른 맥락이지만, 가상 세계를 운영하고 있는 게임사들이 제 아무리 유저들에게 자유도를 주더라도 해당 게임은 여전히 그들의 소유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국가의 가장 굵직한 기능이라면, 물론 화폐 발행도 있겠으나, 안보 및 복지 등도 주요할 텐데, 후자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해킹으로부터의, 디지털 공간에서의 개인정보 보호는 일종의 치안처럼 보이기는 하나 거대 기업들이 고객의 정보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고객 유치를 위해, 또 해당 정보 자체가 자신들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일 테다.
두 번째로 두 책 모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에, 수혜자가 누구일지를 고민하게 한다. <기억거래소>의 경우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했으며, 그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기억 조작 외에는 없는 이들이 대개 시술을 받는다. 그래도 괜찮은 처지에 있는 이들은 끝내 시술을 진행하지 않거나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는 교육의 미래를 다루는 장에서 고민이 깊어지는데, 채용에 있어 대학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는 기업의 창업자들이 고학력자라는 점은 몹시 아이러니하다. 또한 국가와 정치를 다루는 장은 인공지능 정치인의 등장을 다루는데, 이가 어떻게 기능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정치인들은, 지역구 의원이라면 해당 지역구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음을, 비례대표라도 자신이 특정 집단을 대변할 수 있음을 내세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러한 이해관계로부터의 초월이 오히려 강점이 되니, 선출직에는 사실 잘 안 맞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비슷하게, 부의 미래를 다루는 장에서 인공지능 자산관리사를 제시하는데, 투자시장 참여자가 만일 모두 인공지능이 된다면 해당 시장은 어떠한 모습이 될지도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 누구도 시장 평균 수익률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 되리라고 부족하게나마 생각해보았는데, 다른 학우 분들의 생각이 어떠할지도 궁금하다.
손지우2021-04-28 23:39
책은 몹시 흥미로웠으나, 동시에 뭔가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듯한 이야기들 또한 품고 있는 듯 했다. 본 페이지의 코멘트들을 살펴보니 이는 여러 학우들이 공감하는 부분인 듯 싶었다. 우리가 느낀 불편함, 두려움 등의 감정은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더 이상 '에이, 말도 안되는 일이야' 라고 넘겨버릴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과학 기술은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고, 심지어 책에 나오는 몇몇 기술들의 경우는 현재 윤리적 문제를 제외하면 가능한 것으로 발표된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느끼는 스스로의 존엄성, 기억의 보안 문제라던가 외에도 이로 인해 유발될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학우분의 코멘트에 댓글로 달았듯, 나는 책을 읽으며 또한 '도구가 아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또 다른 학우분께서 말씀해주셨던 듯 한데, 기술의 발전 속도와 인간의 욕망을 고려했을 때, 대개의 책에서 언급되던 기술들은 언젠가 실현될 것이라 나 또한 거진 확신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다시 던져볼 수 있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이런 기술의 발전을 올바른 방향성과 선 내에서 통제하며 우리들의 의식 및 법 등의 변화 속도와 조금은 발 맞출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치 않을까 싶다. 다른 학우분들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한 궁금하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학우분의 코멘트에 댓글로 달았듯, 나는 책을 읽으며 또한 '도구가 아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또 다른 학우분께서 말씀해주셨던 듯 한데, 기술의 발전 속도와 인간의 욕망을 고려했을 때, 대개의 책에서 언급되던 기술들은 언젠가 실현될 것이라 나 또한 거진 확신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다시 던져볼 수 있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이런 기술의 발전을 올바른 방향성과 선 내에서 통제하며 우리들의 의식 및 법 등의 변화 속도와 조금은 발 맞출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치 않을까 싶다. 다른 학우분들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한 궁금하다.
박서원2021-04-29 00:56
저도 책을 읽으면서 지우님과 비슷한 느낌을 느껴 글을 남김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삶은 개선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과학 기술이 사람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발전 되면 사람들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될지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저 역시 이런 기술이 실제로 실현될 날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소설에 나온 기술들이 그저 소설 안에만 그친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것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저도 지우님과 비슷하게 사람들의 기술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서원2021-04-28 23:43
<기억 거래소>
소설이지만 이야기 사이 사이 현실을 반영한 설명들이 각주에 적혀 있어서인지 소설 속에 일들이 언젠가는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 날수도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기억을 삽입하는 것에 있어서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시나리오를 주입해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기억을 지우는 기술은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하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책에서의 이야기들이 현실에서도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약 이런 기술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한 것보다 걱정이 앞섰다. 책에서는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기억 조작을 부탁하는데 그러면 이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있어서 애초에 제대로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는 좋은 기억, 경험을 갖기 위해 행동 하나 하나 신중해지는데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만약 나온다면 사람들이 그것에 너무 의존해 현생을 무분별하게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책에 나온 것처럼 부모님이 자식들 모르게 성공에 눈이 멀어 자식의 꿈을 자신이 정하고, 능력을 심어주는 행위가 과연 자식들을 위한 길인지, 그게 과연 자식들의 성공을 위한 길일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어떤 사회적, 국제적 문제가 일어날지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의 어두운 면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헤븐서버 아야기에서 헤븐 서버가 결코 헤븐이 아니라는 점에서 과학 발전이 사람들의 삶을 개선 시킬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이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이지만 이야기 사이 사이 현실을 반영한 설명들이 각주에 적혀 있어서인지 소설 속에 일들이 언젠가는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 날수도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기억을 삽입하는 것에 있어서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시나리오를 주입해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기억을 지우는 기술은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하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책에서의 이야기들이 현실에서도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약 이런 기술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한 것보다 걱정이 앞섰다. 책에서는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기억 조작을 부탁하는데 그러면 이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있어서 애초에 제대로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는 좋은 기억, 경험을 갖기 위해 행동 하나 하나 신중해지는데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만약 나온다면 사람들이 그것에 너무 의존해 현생을 무분별하게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책에 나온 것처럼 부모님이 자식들 모르게 성공에 눈이 멀어 자식의 꿈을 자신이 정하고, 능력을 심어주는 행위가 과연 자식들을 위한 길인지, 그게 과연 자식들의 성공을 위한 길일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어떤 사회적, 국제적 문제가 일어날지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의 어두운 면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헤븐서버 아야기에서 헤븐 서버가 결코 헤븐이 아니라는 점에서 과학 발전이 사람들의 삶을 개선 시킬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이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송혜민2021-04-28 23:50
<기억 거래소>를 읽으며, 앞으로 이어질 메타버스 속 기술과 인간은 기계와 인간의 공존에 초점을 맞추는 '포스트 휴며니즘'보다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기술을 인간과 결합하는 '트랜스 휴머니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톰 코흐가 주장했듯, 미래의 기술에 대해 '우생학을 영속화시키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개인을 비본질적으로 생각하는(더 심각하게 비유해보자면 인간을 기계로 인식하는) 듯한 인식은 이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락사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개인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거나, 케냐의 소년이 원어민과는 거리가 있는 언어능력을 가지게 될 텐데도 대가를 지불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특히 헤븐 서버 부분에서는 미래의 사회에서 인간 사회에 가장 중요하게 논의될 담론을 등장시킨다. 우리는 어떤 범위까지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헤븐 서버 내의 사람을 우리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일종의 자격으로 분류하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한다. 그 인정에는 '장소를 내주는 것'과 '타인의 환대를 받는 것'이 포함되는데, 헤븐 서버 내의 개체들은 '장소를 건네 받았다'는 조건부터 모호해진다. 과연 인터넷 속은 장소 그 자체로 인정될 수 있는가? 차라리 이 책 속 개념으로 판단해보자면 정말 땅 위에 있는 AI 로봇이 더욱 '사람'의 개념에 가까워지지 않는가?
앞으로 기술을 사용하여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일도 많이 일어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평소에 '사람'이라고 정의내렸던 기준이 더욱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트랜스 휴머니즘적인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특히 헤븐 서버 부분에서는 미래의 사회에서 인간 사회에 가장 중요하게 논의될 담론을 등장시킨다. 우리는 어떤 범위까지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헤븐 서버 내의 사람을 우리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일종의 자격으로 분류하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한다. 그 인정에는 '장소를 내주는 것'과 '타인의 환대를 받는 것'이 포함되는데, 헤븐 서버 내의 개체들은 '장소를 건네 받았다'는 조건부터 모호해진다. 과연 인터넷 속은 장소 그 자체로 인정될 수 있는가? 차라리 이 책 속 개념으로 판단해보자면 정말 땅 위에 있는 AI 로봇이 더욱 '사람'의 개념에 가까워지지 않는가?
앞으로 기술을 사용하여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일도 많이 일어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평소에 '사람'이라고 정의내렸던 기준이 더욱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트랜스 휴머니즘적인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김하연2021-04-29 10:03
혜민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혜민님의 의견에 비슷한 생각을 해서 이렇게 댓글 남깁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단순하고 복잡한 일 처리를 넘어 새로운 창작과 공감(?)해주는 대화까지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니, 인간과 인공지능, 인간과 기계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다소 모호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에 '문화컨텐츠의 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현재 창작물의 저작권법에서도 인공지능이 만든 창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의 논점, 만약 인정하다면 그 저작권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인공지능 자체 / 인공지능 개발자) 등에 대해 이슈가 되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기존엔 인간의 고유한 역량이라고 여겨져왔던 것들을 인공지능과 기계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재, 변화된 환경에 맞는 법 개선과 시스템 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조금은 논점에서 나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작권법과 비슷하게, 자율주행 자동차도 현재 기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음에도 혹여 사고 발생시 그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느냐의 논점때문에 상용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같은 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채미2021-04-28 23:55
기억 거래소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책쓰기 동아리에 속해서 소설을 썼던 것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소설은 가상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이고 독자들을 그 소설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설정이 작위적이라는 생각에 글 자체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내용 자체는 흥미롭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더 현실적인 소설적 장치를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세계미래보고서 2021의 경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가상화폐 관련한 내용이었다. 과거에는 현금이 가치저장수단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현재는 대부분 가상화폐로 전환되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 현금에 비해 가상화폐의 사용은 금융 거래의 투명도를 높여 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와 연관해서 자산의 토큰화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최근에 트위터의 NFT(대체 불가능 토큰)이 값비싸게 팔렸다능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무형자산을 토큰화하여 소유하면 부분적인 소유가 가능하고 유동성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현재보다 훨씬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 금융에 장점만이 존재할까? 시스템의 해킹에 대한 우려와 같이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오남용의 가능성 등을 함께 논의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미래보고서 2021의 경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가상화폐 관련한 내용이었다. 과거에는 현금이 가치저장수단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현재는 대부분 가상화폐로 전환되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 현금에 비해 가상화폐의 사용은 금융 거래의 투명도를 높여 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와 연관해서 자산의 토큰화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최근에 트위터의 NFT(대체 불가능 토큰)이 값비싸게 팔렸다능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무형자산을 토큰화하여 소유하면 부분적인 소유가 가능하고 유동성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현재보다 훨씬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 금융에 장점만이 존재할까? 시스템의 해킹에 대한 우려와 같이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오남용의 가능성 등을 함께 논의해 보아야 한다.
이은비2021-04-28 23:57
책 <기억거래소>에는 조작몽 동반 안락사,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 부분 마인드 복사술 등을 포함한 총 5개의 상품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기술들은 모두 사람들의 기억을 그들의 니즈에 따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고, 실제 이러한 기술들이 구현 가능한 시점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다른 기술들의 경우, 사람들의 일상까지 침투하여 언제든지 악용될 수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상용화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으나, 본인의 소망을 반영한 가상현실 속에서 안락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조작몽 동반 안락사는 충분히 구현을 고려해볼 수 있는 기술인 것 같다. 나 역시도 해당 기술이 실제 상용화된다면 이용해보고 싶을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는 행위가 어느 범위까지 허용될 수 있을 지 문득 궁금해졌다.
박지유2021-04-28 23:57
<기억거래소>에서 컴퍼니의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현실 도피’를 추구하는 부류와, 타인을 ‘조종’하려는 부류이다. 인간의 오랜 두 욕망은, 물질적 한계를 뛰어넘는 기억조작술을 통해 전례없는 정교함으로 실현된다.
먼저 꿈속에서나마 ‘안락’하게 여생을 마무리하기 위한 조작몽 동반 안락사와, 상처를 준 기억을 없애버리는 트라우마 기억 재설정술에 대해 읽으며, <멋진신세계>에 등장하는 환각제 ‘소마’가 떠올랐다. 현실에서 불편함과 고통을 느낄 때 ‘소마’를 복용하면 생리적 작용을 통해 인위적인 행복감을 얻게 된다. 현대사회에서도 (환각제가 법적 규제대상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현실도피를 목적으로 환각제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환각제는 강력하나 일시적인 만족감을 가져다줄 뿐이다. 그러나 기억조작술은 ‘영속화된’ 환각제이다. 삶의 고통, 불편, 트라우마를 기억에서 아예 지워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억거래소>의 상품 구매자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만일 ‘영속화된’ 환각제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이 사회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한 편, 자녀에게 외국어능력 및 장래희망을 이식하는 데 쓰인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과 부분 마인드 복사술, 그리고 타인을 ‘응징’하는데 쓰인 안면이식 동반 작화종 유도술은 타인에 대한 진화된 ‘통제’를 가능케 한다. 이전에는 물리적 힘, 물질적 자원, 사회적 권위를 바탕으로 타인을 통제했다면, 기억조작술은 개인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기억과 정체성 자체를 자의적으로 바꿔놓는다는 점에서 타인을 완벽하게 조종한다. <기억거래소>에서는 개인의 필요와 지불의사에 따라 상품가치가 제각기 설정되기 때문에 기억조작술의 문턱이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기억조작술의 가격이 천문학적 수준에서 높게 책정되거나, 여타 이유로 특정집단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이용하게 된다면, 절대다수가 자유의지를 빼앗긴 진화된 노예제 사회가 구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조작술은 자기만족과 타인에 대한 지배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에서 뻗어나온 상상의 산물이다. 현재는 다소 허황된 상상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미래에 기술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면 기억조작술을 수요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가상현실/증강현실 기술의 상업적 활용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아진 지금, 기술이 지향하는 미래상이 무엇인지, 기술활용은 어디까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역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꿈속에서나마 ‘안락’하게 여생을 마무리하기 위한 조작몽 동반 안락사와, 상처를 준 기억을 없애버리는 트라우마 기억 재설정술에 대해 읽으며, <멋진신세계>에 등장하는 환각제 ‘소마’가 떠올랐다. 현실에서 불편함과 고통을 느낄 때 ‘소마’를 복용하면 생리적 작용을 통해 인위적인 행복감을 얻게 된다. 현대사회에서도 (환각제가 법적 규제대상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현실도피를 목적으로 환각제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환각제는 강력하나 일시적인 만족감을 가져다줄 뿐이다. 그러나 기억조작술은 ‘영속화된’ 환각제이다. 삶의 고통, 불편, 트라우마를 기억에서 아예 지워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억거래소>의 상품 구매자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만일 ‘영속화된’ 환각제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이 사회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한 편, 자녀에게 외국어능력 및 장래희망을 이식하는 데 쓰인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과 부분 마인드 복사술, 그리고 타인을 ‘응징’하는데 쓰인 안면이식 동반 작화종 유도술은 타인에 대한 진화된 ‘통제’를 가능케 한다. 이전에는 물리적 힘, 물질적 자원, 사회적 권위를 바탕으로 타인을 통제했다면, 기억조작술은 개인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기억과 정체성 자체를 자의적으로 바꿔놓는다는 점에서 타인을 완벽하게 조종한다. <기억거래소>에서는 개인의 필요와 지불의사에 따라 상품가치가 제각기 설정되기 때문에 기억조작술의 문턱이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기억조작술의 가격이 천문학적 수준에서 높게 책정되거나, 여타 이유로 특정집단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이용하게 된다면, 절대다수가 자유의지를 빼앗긴 진화된 노예제 사회가 구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조작술은 자기만족과 타인에 대한 지배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에서 뻗어나온 상상의 산물이다. 현재는 다소 허황된 상상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미래에 기술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면 기억조작술을 수요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가상현실/증강현실 기술의 상업적 활용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아진 지금, 기술이 지향하는 미래상이 무엇인지, 기술활용은 어디까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역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양승훈2021-04-29 00:00
[세계미래보고서]
미래를 전망하는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신기하게 여기며 수용적으로 읽으면 다 그럴 듯하고 비판적으로 읽으면 과한 걱정/전망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조금 부끄러웠던 점은 내가 잘 아는 분야거나 이미 변화를 느끼고 있거나 나름 대비를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음, 그렇지' 하고 읽게 되고 내가 잘 모르는 분야거나 바뀜으로 인해 내가 직간접적 손해를 본다고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에이, 설마' 혹은 '이건 과하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토큰화: 17년도 경영대 재무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이 지정해 주신 조별 발표 주제가 블록체인이었다. 그때 처음 접한 이후로 직접적인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계속 주변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다. 예를 들면 가장 친한 친구가 모르는 새에 블록체인을 열심히 공부해 이번에 카카오 그라운드X에 입사했다. 뉴스레터마냥 블록체인 관련 소식을 전해주고 가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서 블록체인의 방향과 점점 넓어지는 활용 범위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이번에는 '디지털 아트를 블록체인으로 소유한다면 어떤 디지털 아트를 구매할지' 물어보았다. 나는 예술에 문외한이라 '내가 예술 작품을 산다면 소유를 통한 과시욕일 것 같아서 디지털 아트를 블록체인으로 나누어 소유하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번에 서울대 미대 대학원에 들어간 친구는 "그러한 게 소개된다면 아직까지는 예술작품에 대한 소유 느낌보다 투자/투기의 느낌일 것 같다"라는 의견을 주었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가 거액의 비트코인을 판매했고 '유동성 확인을 위해서였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블록체인이나 토큰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동안 불었던 가상화폐 열풍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해당 기술을 기술 자체로 보거나 새로운 화폐로 보는 것을 막는 것 같다. 자산이 토큰화된다 하더라도 한동안은 투기/투자의 모습이 많을 것 같다. 가상화폐, 블록체인에 현 시대인들이 담고 있는 투자의 느낌이 한동안은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학위: 부끄럽게도 이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반발심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그나마 내세울 게 이 별거 없는 학위 뿐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설계전공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래도 나한테 학위는 단순 취직을 위한 느낌은 아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가치가 있고 그러한 가치를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탐구하는 과정이 교과과정이고 그 증거나 결과물이 학위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게 내 전공 설명을 들어보면 그걸로 어디 취직하게? 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대학원보다는 취직을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학위로 취직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학위 무용론이 오히려 탐구에 맞도록 다시 학위의 의미를 재정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미래를 전망하는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신기하게 여기며 수용적으로 읽으면 다 그럴 듯하고 비판적으로 읽으면 과한 걱정/전망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조금 부끄러웠던 점은 내가 잘 아는 분야거나 이미 변화를 느끼고 있거나 나름 대비를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음, 그렇지' 하고 읽게 되고 내가 잘 모르는 분야거나 바뀜으로 인해 내가 직간접적 손해를 본다고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에이, 설마' 혹은 '이건 과하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토큰화: 17년도 경영대 재무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이 지정해 주신 조별 발표 주제가 블록체인이었다. 그때 처음 접한 이후로 직접적인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계속 주변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다. 예를 들면 가장 친한 친구가 모르는 새에 블록체인을 열심히 공부해 이번에 카카오 그라운드X에 입사했다. 뉴스레터마냥 블록체인 관련 소식을 전해주고 가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서 블록체인의 방향과 점점 넓어지는 활용 범위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이번에는 '디지털 아트를 블록체인으로 소유한다면 어떤 디지털 아트를 구매할지' 물어보았다. 나는 예술에 문외한이라 '내가 예술 작품을 산다면 소유를 통한 과시욕일 것 같아서 디지털 아트를 블록체인으로 나누어 소유하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번에 서울대 미대 대학원에 들어간 친구는 "그러한 게 소개된다면 아직까지는 예술작품에 대한 소유 느낌보다 투자/투기의 느낌일 것 같다"라는 의견을 주었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가 거액의 비트코인을 판매했고 '유동성 확인을 위해서였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블록체인이나 토큰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동안 불었던 가상화폐 열풍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해당 기술을 기술 자체로 보거나 새로운 화폐로 보는 것을 막는 것 같다. 자산이 토큰화된다 하더라도 한동안은 투기/투자의 모습이 많을 것 같다. 가상화폐, 블록체인에 현 시대인들이 담고 있는 투자의 느낌이 한동안은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학위: 부끄럽게도 이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반발심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그나마 내세울 게 이 별거 없는 학위 뿐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설계전공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래도 나한테 학위는 단순 취직을 위한 느낌은 아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가치가 있고 그러한 가치를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탐구하는 과정이 교과과정이고 그 증거나 결과물이 학위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게 내 전공 설명을 들어보면 그걸로 어디 취직하게? 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대학원보다는 취직을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학위로 취직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학위 무용론이 오히려 탐구에 맞도록 다시 학위의 의미를 재정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류성원2021-04-29 00:05
<기억거래소>에서 완우가 컴퍼니에 대해 알아갈수록, 소설은 ‘이것이 옳은가?’에 대한 성찰을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소설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안락사 후에 꿈처럼 덧붙이는 ‘조작몽 동반 안락사’, 한 사람의 언어능력을 다른 사람에게로 이식하는 ‘브로카 & 베르니케 이식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살아온 것처럼 기억과 얼굴을 조작하는 ‘안면이식 동반 작화증 유도술’, 그리고 누군가의 잠재의식에 의도적으로 갈망을 심는 ‘부분 마인드 복사술’이 컴퍼니의 상품으로 소개된다.
첫 상품을 통해서는 ‘사실이 아닌 일을 꾸며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해도 되는가?’,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안락사는 허용되어도 되는가?’의 질문이 제시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첫 상품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알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이 정도의 기술 활용은 용인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브로카 & 베르니케 이식술’의 경우, 장기 매매의 고급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이런 과학기술이 발달할 경우 장기가 아니라 개인의 언어, 나아가 개인의 ‘아비투스’까지도 거래가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 자본을 쌓는 것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처럼 여겨지는데, 개인의 인간 자본까지도 거래가 가능해진다면, 불평등이 상상 이상으로 심화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김 교수가 보수 진영의 정치인에 대한 과오를 (스스로도 그렇게 믿도록) 조작하려 한다는 대목에서는 이러한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 기술을 가진 자가 독점하게 될 권력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마음대로 조작 가능해진다면, 인간 문명의 기반처럼 여겨지는 ‘이성’이 무너질 것이다. 자기 자신마저도 자신의 기억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을 것이고,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진실인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는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집단 혹은 개인을 통제할 수 있을까?
첫 상품을 통해서는 ‘사실이 아닌 일을 꾸며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해도 되는가?’,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안락사는 허용되어도 되는가?’의 질문이 제시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첫 상품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알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이 정도의 기술 활용은 용인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브로카 & 베르니케 이식술’의 경우, 장기 매매의 고급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이런 과학기술이 발달할 경우 장기가 아니라 개인의 언어, 나아가 개인의 ‘아비투스’까지도 거래가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 자본을 쌓는 것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처럼 여겨지는데, 개인의 인간 자본까지도 거래가 가능해진다면, 불평등이 상상 이상으로 심화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김 교수가 보수 진영의 정치인에 대한 과오를 (스스로도 그렇게 믿도록) 조작하려 한다는 대목에서는 이러한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 기술을 가진 자가 독점하게 될 권력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마음대로 조작 가능해진다면, 인간 문명의 기반처럼 여겨지는 ‘이성’이 무너질 것이다. 자기 자신마저도 자신의 기억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을 것이고,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진실인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는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집단 혹은 개인을 통제할 수 있을까?
이은비2021-04-29 13:49
안녕하세요 성원님!
저 역시 첫 번째 기술까지만 해도, 기술을 이용하는 대상의 기준을 엄격히 설정만 한다면,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상용화될 경우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그러나 성원님이 느꼈던 것처럼 책을 읽어나갈 수록 이러한 기억 통제 및 조작술은 각종 윤리적 문제나 권력에 따른 계층 분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억 통제술은 해당 기술을 독점하려는 이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며 소수의 권력층이 독점하는 형태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 또한 소수 권력층의 지배 구조 하에 오히려 통제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첫 번째 기술까지만 해도, 기술을 이용하는 대상의 기준을 엄격히 설정만 한다면,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상용화될 경우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그러나 성원님이 느꼈던 것처럼 책을 읽어나갈 수록 이러한 기억 통제 및 조작술은 각종 윤리적 문제나 권력에 따른 계층 분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억 통제술은 해당 기술을 독점하려는 이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며 소수의 권력층이 독점하는 형태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 또한 소수 권력층의 지배 구조 하에 오히려 통제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하연2021-04-29 09:53
김상균 교수님의 저번 주차 ‘메타버스’ 책도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쭉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기억 거래소’ 책도 단숨에 읽었다. 책을 다 읽은 시간이 저녁 10시 무렵이었는데,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미를 느꼈던 터라 지금까지 밤을 꼴딱 새가며 유튜브에서 교수님의 강연과 방송들, 쓰신 칼럼, 연구실 랩 홈페이지, 심지어는 교수님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튜브 채널까지 다 정주행했다. 진심으로 팬이 되었다.
‘기억 거래소’ 책을 읽으면서 이거 진짜 현실 속에 있는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리얼했다. 김상균 교수님이 등장인물로 나오기도 하고, 강원대학교의 캠퍼스가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단순 SF로 치부해버렸을 법한 내용들에 대해서 현재까지 연구되어 있는 인지 이론과 사례들을 주석으로 달아놓으셔서 이게 마냥 비현실적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조작몽 동반 안락사,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 안면인식 동반 작화증 유도술, 부분 마인드 복사술, 트라우마 기억 재설정술은 더컴퍼니(TheCompany)가 기억과 관련하여 제공하는 서비스상품이다. 흥미로웠던 건 이 내용들에 대해 처음 접할 때는 분명 비윤리적이고 거부감, 심지어는 불쾌감까지 느꼈는데, 조 실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조금씩 ‘이해관계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관계를 위하는 일이라면?’, ‘서로가 결여하고 있는 니즈를 서로가 충족해줄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라는 식으로 조금씩 설득이 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과정 말고 결과만 본다면, 결과론적으로 이 기술은 정말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섬뜩했다. 이러한 기술이 앞으로 상용화가 된다면 마치 케냐 소년의 언어 능력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것처럼,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시대가 오겠구나 싶었다. [내 컴퓨터] 폴더에 ‘지식’이라는 파일들을 이동시켜오는 것처럼,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지식과 능력을 사올 수 있는 것이다. Ariana Grande의 ‘7 rings’의 가사 중 ‘Whoever said money can’t solve your problems –Must not have had enough money to solve’em(해석: 누가 돈만 가지고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댔는데, 아마 그 사람은 그럴 돈이 충분히 없었나보지)’이 떠올랐다. 문득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경제적 격차에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부분으로 불평등이 확장되면서 계층이 공고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든 의문점은, 그렇게 해서 얻은(내가 직접 배우고 익힌 과정이 모두 생략된) 지식과 능력이 과연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였다. 동일선상에서 진짜 고통으로부터 회피하여 바라보는 가짜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꿈이 없는 사람에게 누군가 꿈을 심어준다면 그것은 정말 나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좋았던 기억과 추억을 끊임없이 돌이켜 생각해보면서 일상을 살아나가는 힘과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들(일명 ‘흑역사’)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런 것도 다 경험이지 않는가? (실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빅토리아 홀트의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다’이다.) 그래서 나는 나빴던 기억들도 다 나의 경험이고 무엇인가를 배우고 얻을 수 있었던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그 기억들의 모임이 바로 나의 자아라고 생각하는데, 그 기억이라는 것을 임의로 사고 지울 수 있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이 좋은 기억들에 의존하여 살아간다면, ‘가짜 행복’도 분명 필요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많은 생각이 든다. 기술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지만 이걸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나아가 어느 범위의 사람들까지 얼마나 그 혜택을 볼 수 있는지, 혹시 기술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끝없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기술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지만 윤리와 도덕, 사회 공동선에 근거하여 잘 활용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과 변화된 환경에 맞는 규칙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다소 두서가 없었던 이 책의 리뷰를 마무리를 지어보고자 한다.
‘나는 무엇을 꿈꾸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기억을 만들어 가는 사람일까?
나는 무언가를 꿈꾸며 오늘 하루를 살고, 그 결과 다른 무언가를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기억은 조금씩 착색되며 내일의 기억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쌓여 가는 기억들은 내 꿈을 어딘가로 이끈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 책을 읽으며 코로나19와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나아가려면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제 정말 4차 산업혁명은 저 멀리 있는 단순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맞닿아 있는 일상임을 느꼈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직장이 평생 나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믿을 것은 실력뿐이다. 지금 계속 실력을 쌓아야 평생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이다. 남는 것은 결국 실력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안주하지 말고 꾸준히 새로운 경험을 다양하게 많이 하면서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억 거래소’ 책 p.59 주석 중, 소득 구간별로 물질적 구매 행위와 경험을 구매하는 행위의 행복감을 조사하였을 때, 소득이 낮은 구간에서는 행복감의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 소득이 증가할수록 경험을 구매하는 행위가 훨씬 더 큰 행복감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이 있다. 구매 시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을 구매한 행위의 만족도는 감소했고, 경험을 구매한 행우의 만족도는 증가했다는 것인데, 그만큼 요즘은 소비자의 ‘경험’이 실질적인 물건보다도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는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 ‘거대한 부의 이동이 마지막으로 폭발할 곳은 온라인이다. 코로나로 콘텐츠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있고, 좋은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라면 가치를 인정받고 누구나 돈을 벌 기회가 늘어난다.’의 내용과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직 미처 해보지 못한 경험을 대리 경험 및 대리 만족을 시켜주며 새로운 정보와 재미, 경험을 제공해주는 콘텐츠가 앞으로의 핵심 트렌드가 될 것이란 생각이 굳어졌다. 흥미가 생겨서 집에 있는 ‘언컨택트’ 책도 관련해서 읽어봤다. 오늘을 기점으로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찾아보고 배워보고 싶다.
‘기억 거래소’ 책을 읽으면서 이거 진짜 현실 속에 있는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리얼했다. 김상균 교수님이 등장인물로 나오기도 하고, 강원대학교의 캠퍼스가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단순 SF로 치부해버렸을 법한 내용들에 대해서 현재까지 연구되어 있는 인지 이론과 사례들을 주석으로 달아놓으셔서 이게 마냥 비현실적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조작몽 동반 안락사,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 안면인식 동반 작화증 유도술, 부분 마인드 복사술, 트라우마 기억 재설정술은 더컴퍼니(TheCompany)가 기억과 관련하여 제공하는 서비스상품이다. 흥미로웠던 건 이 내용들에 대해 처음 접할 때는 분명 비윤리적이고 거부감, 심지어는 불쾌감까지 느꼈는데, 조 실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조금씩 ‘이해관계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관계를 위하는 일이라면?’, ‘서로가 결여하고 있는 니즈를 서로가 충족해줄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라는 식으로 조금씩 설득이 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과정 말고 결과만 본다면, 결과론적으로 이 기술은 정말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섬뜩했다. 이러한 기술이 앞으로 상용화가 된다면 마치 케냐 소년의 언어 능력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것처럼,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시대가 오겠구나 싶었다. [내 컴퓨터] 폴더에 ‘지식’이라는 파일들을 이동시켜오는 것처럼,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지식과 능력을 사올 수 있는 것이다. Ariana Grande의 ‘7 rings’의 가사 중 ‘Whoever said money can’t solve your problems –Must not have had enough money to solve’em(해석: 누가 돈만 가지고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댔는데, 아마 그 사람은 그럴 돈이 충분히 없었나보지)’이 떠올랐다. 문득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경제적 격차에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부분으로 불평등이 확장되면서 계층이 공고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든 의문점은, 그렇게 해서 얻은(내가 직접 배우고 익힌 과정이 모두 생략된) 지식과 능력이 과연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였다. 동일선상에서 진짜 고통으로부터 회피하여 바라보는 가짜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꿈이 없는 사람에게 누군가 꿈을 심어준다면 그것은 정말 나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좋았던 기억과 추억을 끊임없이 돌이켜 생각해보면서 일상을 살아나가는 힘과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들(일명 ‘흑역사’)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런 것도 다 경험이지 않는가? (실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빅토리아 홀트의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다’이다.) 그래서 나는 나빴던 기억들도 다 나의 경험이고 무엇인가를 배우고 얻을 수 있었던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그 기억들의 모임이 바로 나의 자아라고 생각하는데, 그 기억이라는 것을 임의로 사고 지울 수 있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이 좋은 기억들에 의존하여 살아간다면, ‘가짜 행복’도 분명 필요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많은 생각이 든다. 기술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지만 이걸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나아가 어느 범위의 사람들까지 얼마나 그 혜택을 볼 수 있는지, 혹시 기술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끝없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기술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지만 윤리와 도덕, 사회 공동선에 근거하여 잘 활용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과 변화된 환경에 맞는 규칙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다소 두서가 없었던 이 책의 리뷰를 마무리를 지어보고자 한다.
‘나는 무엇을 꿈꾸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기억을 만들어 가는 사람일까?
나는 무언가를 꿈꾸며 오늘 하루를 살고, 그 결과 다른 무언가를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기억은 조금씩 착색되며 내일의 기억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쌓여 가는 기억들은 내 꿈을 어딘가로 이끈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 책을 읽으며 코로나19와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나아가려면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제 정말 4차 산업혁명은 저 멀리 있는 단순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맞닿아 있는 일상임을 느꼈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직장이 평생 나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믿을 것은 실력뿐이다. 지금 계속 실력을 쌓아야 평생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이다. 남는 것은 결국 실력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안주하지 말고 꾸준히 새로운 경험을 다양하게 많이 하면서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억 거래소’ 책 p.59 주석 중, 소득 구간별로 물질적 구매 행위와 경험을 구매하는 행위의 행복감을 조사하였을 때, 소득이 낮은 구간에서는 행복감의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 소득이 증가할수록 경험을 구매하는 행위가 훨씬 더 큰 행복감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이 있다. 구매 시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을 구매한 행위의 만족도는 감소했고, 경험을 구매한 행우의 만족도는 증가했다는 것인데, 그만큼 요즘은 소비자의 ‘경험’이 실질적인 물건보다도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는 ‘세계미래보고서 2021’에서 ‘거대한 부의 이동이 마지막으로 폭발할 곳은 온라인이다. 코로나로 콘텐츠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있고, 좋은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라면 가치를 인정받고 누구나 돈을 벌 기회가 늘어난다.’의 내용과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직 미처 해보지 못한 경험을 대리 경험 및 대리 만족을 시켜주며 새로운 정보와 재미, 경험을 제공해주는 콘텐츠가 앞으로의 핵심 트렌드가 될 것이란 생각이 굳어졌다. 흥미가 생겨서 집에 있는 ‘언컨택트’ 책도 관련해서 읽어봤다. 오늘을 기점으로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찾아보고 배워보고 싶다.
조성민2021-04-29 11:49
기억거래소는 메타버스와 비슷하게 메타버스와 관련된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메타버스와 달리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 그리고 기술이 거래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사람들에게 사용 유무가 윤리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을만한 기술을 더 컴퍼니라는 비밀조직과 주인공 완우를 매개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기억거래소에 나오는 기술들은 하나같이 기억을 없애거나 가공, 사람의 심리나 정신을 건드리는 방식이었다. 지금까지의 기술이 사람 주위 혹은 사람 육체 자체의 물리적인 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면 이 책에 소개된 기술들은 사람의 인지적정신적인 차원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해당 기술에 거부감 혹은 의구심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같은 기술이 그렇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해당 기술 자체가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한 번 사람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기술에 노출되면 그 사람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새로운 인간관계와 새로운 소통 방식에서 나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술을 접한 이후에 과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기술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이번 책에 소개된 기술들 또한 스마트폰인터넷 만큼이나 사회 격변을 가져올 만한 힘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해당 기술이 사람들에게 가져올 영향은 어떤 것이 될까? 특히 인간관계와 소통 측면에서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까?
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같은 기술이 그렇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해당 기술 자체가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한 번 사람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기술에 노출되면 그 사람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새로운 인간관계와 새로운 소통 방식에서 나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술을 접한 이후에 과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기술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이번 책에 소개된 기술들 또한 스마트폰인터넷 만큼이나 사회 격변을 가져올 만한 힘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해당 기술이 사람들에게 가져올 영향은 어떤 것이 될까? 특히 인간관계와 소통 측면에서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까?
이주영2021-04-29 12:54
세계미래보고서 2021은 지난주 세미나 키워드였던 metaverse와도 관련이 있어 둘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 이 사회에서는 어떤 가치가 창출될 것인가에 대해 2주동안 많은 고민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지난 강의에서는 사이버 공간에 새로운 “세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 세계에서는 개개인 모두가 관리자이자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라는 점을 이야기하였는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생산자를 ‘온라인 공간’ 속의 크리에이터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 개인이라면 누구나 모두 활용 가능한 정보(가치)의 생산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참 핫한 이슈인 블록체인에 대해 스스로 궁금증이 많이 생겨 공부하게 되었는데, 개인의 POW를 비트코인을 통해 보장한다는 기본적인 개념과 더불어 개인의 정보를 탈중항화된 빅데이터 망 속에 집어넣는 행위를 코인을 제공함으로써 보상하는 시스템의 코인들도 존재합니다. 특히 의료정보 분야에서 높은 활용도를 보일 것이라 생각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는데, 나의 의료정보가 빅데이터 프로세싱을 통해 활용되는 것에 동의하고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 정보를 활용해 기술 개발을 시도한 다양한 기업이나 기관으로부터 코인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방식의 시스템이라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 기관은 힘이 없지만 개인과 기관의 상호 합의가 이루어져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면 정말로 곧 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해나가며 살 수 있는 것은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새로운 기술과 변화한 사회 모습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차세대의 잡스나 머스크가 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아주 흥미로운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기술발전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개인적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번 주 발제와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할 과학기술 발전의 어두운 면모들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가져보고 싶습니다!
지난주에도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해나가며 살 수 있는 것은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새로운 기술과 변화한 사회 모습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차세대의 잡스나 머스크가 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아주 흥미로운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기술발전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개인적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번 주 발제와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할 과학기술 발전의 어두운 면모들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가져보고 싶습니다!
포스트팬데믹 @ 과학 기술
『기억 거래소』
김상균 장편소설
김상균 지음 | 알렙 | 2018년 07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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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21(포스트 코로나 특별판)』
세계적인 미래연구기구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예측한 | 코로나가 만든 세계!
박영숙 , 제롬 글렌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10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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