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 소주제 2]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 특강
윤재빈2021-03-27 02:20
SNU 라이프 아카데미를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좋다. 누군가 지어 놓은 건축물 안에서 생활하면서 이것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능력주의에 관해 토론했듯이 ‘공간 속에서의 삶’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을 듣고 싶다.
제8장의 ‘우리는 왜 TV를 많이 보는가’ 부분은 많이 공감이 되었다. 건축과 관련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막연하게 항상 하던 질문이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야외공간과 달리, 실내는 정적이다. 그리고 정적인 실내 공간이 집을 지배한 오늘날 다양한 자극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TV 앞에 앉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외형 발코니같이 실외공간이 있는 집이어야 더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실외가 있는 구조의 집이 도입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 문제도 있을뿐더러, 새롭게 생겨난 인터넷 공간의 감시권력이 우리의 삶의 영역을 좁히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 카메라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종류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거리뷰 기술을 절도에 이용한다든지, 드론을 띄워 다른 사람의 집 안을 찍는 엽기적인 범죄도 생겨났다. 이러한 관음증적인 범죄는 사회가 단절되면서 더 빈번해지는 것 같다. 이렇듯 사생활 침해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상호작용이 많은 집이 많아지려면,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생각해볼 점
- 인터넷 공간의 확장이 감시권력을 강화함으로써 오히려 물리적 공간을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사람들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8장의 ‘우리는 왜 TV를 많이 보는가’ 부분은 많이 공감이 되었다. 건축과 관련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막연하게 항상 하던 질문이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야외공간과 달리, 실내는 정적이다. 그리고 정적인 실내 공간이 집을 지배한 오늘날 다양한 자극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TV 앞에 앉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외형 발코니같이 실외공간이 있는 집이어야 더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실외가 있는 구조의 집이 도입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 문제도 있을뿐더러, 새롭게 생겨난 인터넷 공간의 감시권력이 우리의 삶의 영역을 좁히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 카메라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종류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거리뷰 기술을 절도에 이용한다든지, 드론을 띄워 다른 사람의 집 안을 찍는 엽기적인 범죄도 생겨났다. 이러한 관음증적인 범죄는 사회가 단절되면서 더 빈번해지는 것 같다. 이렇듯 사생활 침해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상호작용이 많은 집이 많아지려면,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생각해볼 점
- 인터넷 공간의 확장이 감시권력을 강화함으로써 오히려 물리적 공간을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사람들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건규2021-03-29 01:17
글을 읽다 한 사례가 떠올라 적어봅니다. 얼마전에 TV 프로그램, 〈서울에는 우리집이 없다〉(18회, 2021.02.24.)를 보다가 대단히 인상적인 구조의 집을 보았습니다. 그 집은 바깥으로는 전혀 창문이 나있지 않고 모든 면이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여 흡사 요새 같기도 했는데, 알고보니 ㅁ자 모양의 집이어서 집 가운데에 마당이 있고, 그 마당을 주위로 창문들이 있어 문제 없는 채광을 보여주었죠. 이는 한옥의 구조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구조라는데, 마당이 있으면서도 외부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실외가 있더라도, 실외 공간이 집 가운데에 중정 등의 형식으로 위치한다면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강민2021-03-27 16:24
내용 요약 :
내용 요약 및 개인적 생각 : 『어디서 살 것인가』는 전 세계의 도시건축에 관해서 다룬 책이며, 책의 구성을 크게 ‘과거의 건축’, ‘현대의 건축’, ‘미래의 건축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건축 – 저자는 농업혁명, 세계 4대 문명, 제국주의, 근대산업혁명 등 과거의 일어난 굵직한 사건을 ‘건축’을 통해 재해석한다. 물론 모든 사건을 ‘건축’으로 환원하려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주류의 해석을 뒤엎고 건축 위주로 역사를 재해석하고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 점이 매우 신선했다. 저자는 역사 해석에 있어서 진화론, 물리법칙 등 과학이론에 비유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현대의 건축 –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한국 건축의 문제점을 1. 자연과 단절, 2. 다양성의 부재, 3. 공공성, 네트워크의 부재를 주로 지적한다. 또한, 현대 한국사회의 건축이 ‘왜 이러한 형태로 한국 도시환경이 조성되었는가?’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제공한다.
미래의 건축 – 저자는 현대 건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공원, 도서관, 자연 친화적 건축 등 미래에 나아가야 할 건축의 발전 방향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미래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는 ‘정보’로, 정보화 시대의 산업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에 따른 도시건축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궁금한 점 생각해볼 점 :
1. 건축에 있어서 경제성에 대한 논의가 추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다양성, 자연 친화적, 공공성을 확보한 건축물이 있다하더라도 그러한 건축물이 너무나 큰 비용을 요구하면, 현실적으로 돈이 많은 기업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과 저자가 제시한 건축이 담고 있는 여러 가치 사이에서 적절히 절충한 지점을 선택해야하는 최적화 문제로 귀결된다.
2. 위와 같은 맥락에서 학교 건축에 있어서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저층구조, 자연친화적, 운동장을 없애고 천장은 높은 스머프 마을처럼)대로 건축을 한다면, 너무 큰 비용을 소모하지 않을까? 특히 서울 처럼 지대가 극도로 높은 지역의 경우에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방법일지 궁금하다. 또한, 현대 학교 건축과 학교 폭력의 관계에 대해서 서술한 내용에 관해서, 저자는 현대 학교 건축의 폐쇄성이 학교 폭력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저층, 자연친화적으로 학교를 짓고있는 나라의 경우 학교폭력이 우리나라에 비해 개선되었다는 통계적 자료가 있는지 궁금하다.
3. 이 책은 주로 도시건축에 주목하여 문제점과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전 국토 면적에 비하면 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저자가 제시한 가치관이 ‘거대 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나 ‘농촌’ 등에 비슷하게 적용 가능할지 궁금하다.
4. 저자는 도시의 기능뿐 아니라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시의 환경을 개선시키면 개선시킬수록 비도심 지역에서 도심지역으로 인구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시의 환경은 다시 악화되고, 더 큰 면적을 요구한다. 도시의 환경에 강력한 음성피드백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심 지역의 인구를 비도심 지역으로 분산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도심 지역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궁금하다.
내용 요약 및 개인적 생각 : 『어디서 살 것인가』는 전 세계의 도시건축에 관해서 다룬 책이며, 책의 구성을 크게 ‘과거의 건축’, ‘현대의 건축’, ‘미래의 건축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건축 – 저자는 농업혁명, 세계 4대 문명, 제국주의, 근대산업혁명 등 과거의 일어난 굵직한 사건을 ‘건축’을 통해 재해석한다. 물론 모든 사건을 ‘건축’으로 환원하려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주류의 해석을 뒤엎고 건축 위주로 역사를 재해석하고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 점이 매우 신선했다. 저자는 역사 해석에 있어서 진화론, 물리법칙 등 과학이론에 비유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현대의 건축 –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한국 건축의 문제점을 1. 자연과 단절, 2. 다양성의 부재, 3. 공공성, 네트워크의 부재를 주로 지적한다. 또한, 현대 한국사회의 건축이 ‘왜 이러한 형태로 한국 도시환경이 조성되었는가?’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제공한다.
미래의 건축 – 저자는 현대 건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공원, 도서관, 자연 친화적 건축 등 미래에 나아가야 할 건축의 발전 방향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미래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는 ‘정보’로, 정보화 시대의 산업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에 따른 도시건축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궁금한 점 생각해볼 점 :
1. 건축에 있어서 경제성에 대한 논의가 추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다양성, 자연 친화적, 공공성을 확보한 건축물이 있다하더라도 그러한 건축물이 너무나 큰 비용을 요구하면, 현실적으로 돈이 많은 기업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과 저자가 제시한 건축이 담고 있는 여러 가치 사이에서 적절히 절충한 지점을 선택해야하는 최적화 문제로 귀결된다.
2. 위와 같은 맥락에서 학교 건축에 있어서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저층구조, 자연친화적, 운동장을 없애고 천장은 높은 스머프 마을처럼)대로 건축을 한다면, 너무 큰 비용을 소모하지 않을까? 특히 서울 처럼 지대가 극도로 높은 지역의 경우에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방법일지 궁금하다. 또한, 현대 학교 건축과 학교 폭력의 관계에 대해서 서술한 내용에 관해서, 저자는 현대 학교 건축의 폐쇄성이 학교 폭력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저층, 자연친화적으로 학교를 짓고있는 나라의 경우 학교폭력이 우리나라에 비해 개선되었다는 통계적 자료가 있는지 궁금하다.
3. 이 책은 주로 도시건축에 주목하여 문제점과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전 국토 면적에 비하면 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저자가 제시한 가치관이 ‘거대 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나 ‘농촌’ 등에 비슷하게 적용 가능할지 궁금하다.
4. 저자는 도시의 기능뿐 아니라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시의 환경을 개선시키면 개선시킬수록 비도심 지역에서 도심지역으로 인구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시의 환경은 다시 악화되고, 더 큰 면적을 요구한다. 도시의 환경에 강력한 음성피드백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심 지역의 인구를 비도심 지역으로 분산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도심 지역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궁금하다.
이엘리엇2021-03-31 20:55
서강민 학우님의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나 질문 3번과 4번에서, 도시 이외의 지역들에 대한 지적이 상당히 날카로우면서도 참신하다고 느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 알수있는 것처럼 도시 공간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에, 저또한 농촌이나 기타 지역들을 놓쳤던 것 같습니다. 조경을 포함한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그 속에서 자연을 추구하는 것과 별개로, 실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의 미덕도 한번쯤 되새길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조현호2021-04-01 13:12
글 잘 읽었습니다! 1번 같은 경우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고, 나머지 부분들은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잘 지적해주셔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도시 공간의 문제를 농촌과 연결지어 생각한 점과 도시 집중화 현상의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언급하신 것은 아주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느꼈습니다.
장연주2021-03-29 11:35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숲보다는 나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내 특성상 ‘도시’라는 주제는 너무나 큰 숲처럼 느껴져서 막연했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건축물은 단순히 벽과 천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 권력관계, 그리고 상호작용 등이 모두 반영된 총체적 결과물임을 이해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모텔과 호텔의 차이로, 누군가에게 나의 모습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반대로 노출시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창의 크기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펜트하우스와 옥탑방 모두 꼭대기에 위치해 있지만 펜트하우스가 훨씬 비싼 이유는 보안과 접근성의 차이라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을 남들과 구별하려는 우리의 모습이 건축물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음을 느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반경이 좁아지면서, 경제적 상황에 따른 공간의 향유 양상도 차이가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가령 누군가가 네 명의 친구들과 최고급 호텔로 ‘호캉스’를 떠날 때, 누군가는 좁은 방 안에서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고, 누군가가 소규모 실버 문화 프로그램을 즐길 때, 누군가는 끊긴 자원봉사자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공간은 경제적 자본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자본과도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은 공간의 불평등, 나아가 사회, 문화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공간들 사이의 단절이 심해진 것을 느끼는데, 이 역시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반경이 좁아지면서, 경제적 상황에 따른 공간의 향유 양상도 차이가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가령 누군가가 네 명의 친구들과 최고급 호텔로 ‘호캉스’를 떠날 때, 누군가는 좁은 방 안에서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고, 누군가가 소규모 실버 문화 프로그램을 즐길 때, 누군가는 끊긴 자원봉사자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공간은 경제적 자본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자본과도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은 공간의 불평등, 나아가 사회, 문화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공간들 사이의 단절이 심해진 것을 느끼는데, 이 역시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임채미2021-03-30 17:54
연주 학우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제시하신 관점 중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것이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도시는 가진 자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빈자의 공간이기도 하기에 그들에 대한 언급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최근에 수업 과제로 주거 취약 계층에 대한 조사를 하였기도 해서, 도시의 화려함 속에 주목받지 못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비주택 거주자들이 생각났습니다. 비주택이란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노숙 등 최저 주거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공간을 의미하는데요, 도시는 특히나 그러한 빈부의 차이가 격심하게 드러나는 공간이기에, 이 책에서 인문학적 시선을 추구하고자 했다면 도시를 여러 관점에서 언급해주면 좋았을 듯 해서 이런 코멘트를 추가로 남깁니다. 학우님께서 제시하신 불평등의 문제는 우리가 거주하는 도시의 문제로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건규2021-03-29 23:51
최근에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책도 많이 읽고 이에 대해 많이 생각하다 보니 이 책을 읽을 때에도 코로나로 인해 변화한 풍경들과 연관 지어 생각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 소위 ‘집콕’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의 외출이 감소하고 배달 이용이 늘었다. 개인의 입장에서 건축을 나눈다면 자신의 거주지에 관한 것과, 자신의 외출에 관한 것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한데, 여가마저 집 안에서 즐기고 외출은 별로 하지 않는 이 시대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머물 거주지에 관한 건축이 더 주목받으며 더 주목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에 ‘외출에 관한’, 즉 거리와 공원과 종교 사원 등등에 대한 건축이 갑자기 경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부류에 해당하는 건축물들은 이 시대에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기 다니던 교회만 해도 교회 공간의 상당 부분이 폐쇄된 채로 운영되었으며 코로나가 심각할 때에는 아예 텅 빈 공간이 되었다. 또 유현준 교수님이 제시하시듯 ‘걷고 싶은 거리’라면 거리와 접한 면에 가게가 많아서 이벤트 밀도도 높아야 할 텐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수많은 작은 가게들은 장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걷고 싶은 거리도 ‘걸을 수가 없어’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건축을 추구하고 어떤 건축을 상상할 수 있을까? 유현준 교수님은 걷고 싶은 거리를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로 ‘사람’을 제시하신다.(44쪽) 사람이 거리에 있지 않고 각자의 집에 처박혀 있는 시대에, 우리는 건축의 관점에서 어떤 거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측면도 살펴보자. 원래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나 주로 이용되던 드라이브 스루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횟집, 말레이시아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결혼식, 일본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장마저 등장했다.[1] 물론 이런 경향이 포스트코로나 시기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드라이브 스루의 확산이 유지되어 자가용이 기존 건축물의 역할을 많이 수행하게 된다면 어떨까? 유현준 교수님은 제품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의 차이를 제시하면서 자동차와 건축도 비교하셨는데, 이동성의 유무와 인간과 비교한 수명 외에 환경과의 상호작용 측면에서도 차이점을 제시하셨다. 그렇다면 드라이브 스루를 고려할 때, 건축은 어쩌면 이제 주변환경 외에 자동차와의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자동차도 건축물과 상호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중에는 건축가와 자동차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일이 있을지도 문득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자동차가 드라이브 스루로 건축 공간이 수행했던 역할을 일부 이어받게 된다면, 자동차의 설계와 디자인에 건축 디자인의 요소와 아이디어를 반영하면 어떨까 싶다. (일반적인 자동차를 상상하기 어렵다면, 캠핑카를 건축가가 설계하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드라이브 스루를 고려한다면 건축과 자동차의 디자인은 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참고
[1] 김용섭, 『언컨택트』, 158-159쪽.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에 ‘외출에 관한’, 즉 거리와 공원과 종교 사원 등등에 대한 건축이 갑자기 경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부류에 해당하는 건축물들은 이 시대에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기 다니던 교회만 해도 교회 공간의 상당 부분이 폐쇄된 채로 운영되었으며 코로나가 심각할 때에는 아예 텅 빈 공간이 되었다. 또 유현준 교수님이 제시하시듯 ‘걷고 싶은 거리’라면 거리와 접한 면에 가게가 많아서 이벤트 밀도도 높아야 할 텐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수많은 작은 가게들은 장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걷고 싶은 거리도 ‘걸을 수가 없어’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건축을 추구하고 어떤 건축을 상상할 수 있을까? 유현준 교수님은 걷고 싶은 거리를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로 ‘사람’을 제시하신다.(44쪽) 사람이 거리에 있지 않고 각자의 집에 처박혀 있는 시대에, 우리는 건축의 관점에서 어떤 거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측면도 살펴보자. 원래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나 주로 이용되던 드라이브 스루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횟집, 말레이시아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결혼식, 일본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장마저 등장했다.[1] 물론 이런 경향이 포스트코로나 시기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드라이브 스루의 확산이 유지되어 자가용이 기존 건축물의 역할을 많이 수행하게 된다면 어떨까? 유현준 교수님은 제품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의 차이를 제시하면서 자동차와 건축도 비교하셨는데, 이동성의 유무와 인간과 비교한 수명 외에 환경과의 상호작용 측면에서도 차이점을 제시하셨다. 그렇다면 드라이브 스루를 고려할 때, 건축은 어쩌면 이제 주변환경 외에 자동차와의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자동차도 건축물과 상호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중에는 건축가와 자동차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일이 있을지도 문득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자동차가 드라이브 스루로 건축 공간이 수행했던 역할을 일부 이어받게 된다면, 자동차의 설계와 디자인에 건축 디자인의 요소와 아이디어를 반영하면 어떨까 싶다. (일반적인 자동차를 상상하기 어렵다면, 캠핑카를 건축가가 설계하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드라이브 스루를 고려한다면 건축과 자동차의 디자인은 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참고
[1] 김용섭, 『언컨택트』, 158-159쪽.
서강민2021-03-30 12:2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최근에 코로나 시대를 맞아 '외출에 관한 건축'이 크게 위축되고, '개인 주거에 관한 건축'만이 중요해지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건축의 관점에서 어떤 거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해서 책에 내용에 입각한 답변을 하자면, 이러한 건축의 개인화 경향성에서 벗어나려면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개인적 공간으로부터 나오고 싶어하는 거리를 조성해야 하는데, 유현준 교수님은 책 전반에 걸쳐 공공성, 자연친화적, 저층, 다른 사람과 접촉기회가 많은 건축을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적해주신대로 아무리 좋은 거리를 조성해도, 코로나로 인해 나올 수 없다면 건축의 의미가 없어질 수 있어, 그만큼 빠르게 코로나 시대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우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문단에 관해서는 오히려 유현준 교수님은 자동차는 미래시대에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고, 소수 부자를 제외하고는 자동차를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p315-317)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시대는 주차장, 도로를 포함해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공간의 비중이 너무 큰데, 갈수록 자동차가 건축 공간에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드라이브 스루 역시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인 증가를 불러 일으켰지만, 장기적으로 갈수록 자동차 전체가 건축에 주는 영향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자동차와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건축 역시 영향이 감소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최근에 코로나 시대를 맞아 '외출에 관한 건축'이 크게 위축되고, '개인 주거에 관한 건축'만이 중요해지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건축의 관점에서 어떤 거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해서 책에 내용에 입각한 답변을 하자면, 이러한 건축의 개인화 경향성에서 벗어나려면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개인적 공간으로부터 나오고 싶어하는 거리를 조성해야 하는데, 유현준 교수님은 책 전반에 걸쳐 공공성, 자연친화적, 저층, 다른 사람과 접촉기회가 많은 건축을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적해주신대로 아무리 좋은 거리를 조성해도, 코로나로 인해 나올 수 없다면 건축의 의미가 없어질 수 있어, 그만큼 빠르게 코로나 시대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우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문단에 관해서는 오히려 유현준 교수님은 자동차는 미래시대에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고, 소수 부자를 제외하고는 자동차를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p315-317)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시대는 주차장, 도로를 포함해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공간의 비중이 너무 큰데, 갈수록 자동차가 건축 공간에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드라이브 스루 역시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인 증가를 불러 일으켰지만, 장기적으로 갈수록 자동차 전체가 건축에 주는 영향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자동차와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건축 역시 영향이 감소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장연주2021-03-31 10:58
저 역시 방치돼 있는 텅빈 강의실이나 회의실을 보면서, '이런 공적 공간은 더이상 필요가 없어진 걸까?', '그렇다면 이제 이 공간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적해주신대로 주거공간과 같은 사적 공간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 데 반해, 공적 공간은 점점 빛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평소보다 더 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보다 원래부터 알고지낸, 친밀한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만나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뜩이나 원자화돼 있는 사회에서 공동의 장마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타인과의 소통 문제는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탈퇴한 회원2021-03-31 11:50
건규 학우님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우선 학우님의 의견 상당히 공감합니다. 저도 이번 도시 공간을 주제로 포스트 팬데믹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코로나가 정말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화되고 사생활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건축도 지금과는 매우 다른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까?‘, 이 부분도 좀처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나와 있듯이, 한 건축은 아주 오랜 기간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그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의 가치관과 건축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변용을 이루어낼지, 기존의 건물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등도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언급해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최근에 어떤 방송을 보았었는데요. 자가 차량을 일부 개조해서 평상시에는 자가 차량으로, 그리고 특별한 날에는 캠핑카로 만들 수 있게 하는 틈새 산업이 요즘 성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캠핑카를 사는 것은 경제적 지출이 상당해서 이런 산업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이미 변화와 유행에 따라 자동차라는 유동적인 사적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 어떤 변화들이 도시 그리고 우리의 공간에 일어날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ㅎㅎ
우선 학우님의 의견 상당히 공감합니다. 저도 이번 도시 공간을 주제로 포스트 팬데믹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코로나가 정말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화되고 사생활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건축도 지금과는 매우 다른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까?‘, 이 부분도 좀처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나와 있듯이, 한 건축은 아주 오랜 기간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그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의 가치관과 건축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변용을 이루어낼지, 기존의 건물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등도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언급해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최근에 어떤 방송을 보았었는데요. 자가 차량을 일부 개조해서 평상시에는 자가 차량으로, 그리고 특별한 날에는 캠핑카로 만들 수 있게 하는 틈새 산업이 요즘 성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캠핑카를 사는 것은 경제적 지출이 상당해서 이런 산업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이미 변화와 유행에 따라 자동차라는 유동적인 사적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 어떤 변화들이 도시 그리고 우리의 공간에 일어날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ㅎㅎ
박서원2021-04-01 09:45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집콕 생활이 늘어가는 요즘 저도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 코로나에는 거리와 건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입구 수가 많아야 하는데, 코로나19로 가게들이 임시 휴업해야 할때도 많고 단축 운영을 해야해서 결국 장사를 접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는 상황이고, 거리에 사람도 많이 없는 시점에 유현준 교수님이 책어서 언급한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에는 상황상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저도 책을 읽으면서 예상치 못한 팬더믹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상적인 도시는 어떤 도시인지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생각해봐야 되는 것 같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부분도 공감이 됩니다. 학우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요즘 움직이는 전시관, 헌혈집, 식당 등 도 생겨나면서 기존의 건축물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문화가 확산될수록 건축물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리고 그만큼 빈 건축물이 많아지텐데 그러며 그 자리에는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유현준 교수님에 한국에는 공원이 많이 없는게 아쉽다고 말씀하셨는데, 드라이브 스루 확산으로 기존 건출물을 줄이고, 공원을 더 만들어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면 어떨지 생각도 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집콕 생활이 늘어가는 요즘 저도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 코로나에는 거리와 건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입구 수가 많아야 하는데, 코로나19로 가게들이 임시 휴업해야 할때도 많고 단축 운영을 해야해서 결국 장사를 접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는 상황이고, 거리에 사람도 많이 없는 시점에 유현준 교수님이 책어서 언급한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에는 상황상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저도 책을 읽으면서 예상치 못한 팬더믹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상적인 도시는 어떤 도시인지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생각해봐야 되는 것 같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부분도 공감이 됩니다. 학우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요즘 움직이는 전시관, 헌혈집, 식당 등 도 생겨나면서 기존의 건축물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문화가 확산될수록 건축물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리고 그만큼 빈 건축물이 많아지텐데 그러며 그 자리에는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유현준 교수님에 한국에는 공원이 많이 없는게 아쉽다고 말씀하셨는데, 드라이브 스루 확산으로 기존 건출물을 줄이고, 공원을 더 만들어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면 어떨지 생각도 했습니다.
전윤창2021-03-30 02:46
뭐 생각나는대로 이러쿵저러쿵 써봤습니다. 공간이라 하면 참 할 말이 많은데 웬종일 쓸 수도 없고 아쉽네요.
이 책에서 탄탄한 논증, 치밀한 추론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단순히 저자가 도시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주고, 각자가 가진 도시에 대한 공간 경험을 고민해보도록 유도하는 입문서에 가깝다. 아마 읽은 사람이라면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어떻게 우리와 상호작용하는지 어느정도 인지했을 것이다. 밈(Meme)에 도시를 비유한 부분은 나도 격히 공감한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우리가 스스로 공간을 구성하고, 그 공간이 다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개념이 매우에 든다. 도시는 우리의 욕망과 환경에 대한 적응이 혼합된 결과물이다.
먼저 환경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영향을 준다기보다 받는 쪽이다. 내가 동남, 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머물렀던 대부분의 집들은 천장고가 3m가 기본이었고, 집이 모두 훤히 개방되어 있었다. 베트남, 태국 등은 문은 커녕 거리를 향해 횡하게 열린 집에 셔터가 문을 대신하는 집도 많았다. 물론 덜 개발된 탓도 있다. 뭐 아무튼. 상용과 주거용이 그렇게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도 구분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높은 천장에는 항상 씰링팬(Ceiling Fan)이 달려 바람을 일으키고, 곳곳의 창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튼튼한 건축이랄 것도 없었다. 철근콘크리트 뼈대를 벽돌을 대충 둘러 벽을 만드는 식이다. 1년 내내 춥지 않기 때문에 공간 밀폐를 위해 창호를 댈 필요도 없고, 나무로 된 창문이면 족했다. 사생활은 낯선 단어인지, 거실은 거리를 향해 열려있는 반 공용의 공간이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집 안에서 뭘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거리구경을 나서면 자연스레 집안에서 TV를 보던 할머니나 거실에서 놀던 아이들과 시선이 마주친다. 개방된 공간, 교차하는 시선들이 왠지 모르게 사람을 여유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저자가 말한 가게의 밀도가 인기 있는 거리의 척도라고 이야기한 것이 이런 주거환경에도 적용된다. 셔터만 닫혀있지 않다면 거리를 따라갈 때 그리 갇힌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런 주거공간들이 사람들이 가진 사생활의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물론 한국에서 이랬다간 겨울에 얼어죽기 십상이다. 여름철 냉방도 도무지 효율이 나지 않는다. 덕분에 비교적 좁고 낮다(천장고가 2.5m 어간이다). 사실 저자는 건축가에게 한국은 건축하기에 최악의 환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여름에는 덥고 비내리고,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며 미세먼지도 심하다. 그런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한 결과물이었던 전통가옥들은 비효율적이고 경제성이 떨어졌다. 아는 형 하나가 삼청동의 한옥집에 사는데 낭만은 있어도 매우 비효율적이라며 여전히 불평불만이 많다. 거기다 압축적인 경제,인구성장이 겹치면서 한국에는 욕망이 꿈틀대는 현대도시들이 자랐다. 저자가 서술했듯이 이렇게 효율적으로 인구를 수용하는 "주거를 위한 기계"들은 그리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공간이 되지는 못했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 대도시에 처음 생겼던 반지하가 우후죽순으로 늘었고, 건물들은 수용인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기에 옥탑방을 올리기도 하고 발코니를 확장하는 등 용적률에 최선을 다했다. 고시원이 욕망을 최대로 끌어낸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 처음 마포에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선 이후로 마치 영혼의 파트너를 찾았다는 듯이 60년만에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게 비단 단점으로만 비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이 별로라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게 된다. 덕분에 "기능의 외주화"가 이루어져 한국의 거리는 카페, 식당, 노래방, 가게 등 갈 곳이 많아졌다. 결국 주거가 해결해야할 많은 부분을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대신 도맡아 한다. 저자는 카페를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이라고 부르는데, 꼭 어울리는 수식어다. 우리는 커피 한 잔 값이면, 언제든 지루하고 좁은 집을 떠나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펼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도시환경이 흥미로워지는 건 이런 한국의 도시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어디는 안 그렇겠냐마는 한국의 건축은 경제논리가 주도한다. 한국의 건물 환경은 비교적 쉽게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아파트 평균 수명 한국 29년, 미국 72년, 영국 128년) 주택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물을 더욱 고층화 고밀화하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당장 당선이 유력한 모 서울시장 후보는 당장 당선이 되면 개발규제부터 일주일 내에 전부 해제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만약 이대로라면 당연히 단기적으로는 좁은 땅에 수익성 높은 아파트, 오피스텔이 더 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주거공간과 거리(street) 간의 거리(distance)는 더 멀어진다. 이런 수직적 거리감의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타워 안에 자리한 시그니엘이다. 이 주상복합 초고층 빌딩 안의 주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안에 들어가는 데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고층 빌딩은 외풍이 심해 창문을 제대로 열지도 못한다. 고층화는 곧 가구단위의 격리를 뜻한다.
여기에 홈 어플라이언스 시장이 급격하게 커짐에 따라 VR 기기와 컴퓨터만 있으면 가상공간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가게들이 대신하던 공간확장의 기능, 공론장의 기능을 가상이 대체한다면 자연히 자영업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상공간은 시선을 끌어당기는 다채롭고 화려한 형태로 우리를 유혹하려 할 것이다. 또 거리는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 새로운 형태로 우리를 부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격변의 시대 서울 한 가운데 서서 도시가 어떻게 변할지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이 책에서 탄탄한 논증, 치밀한 추론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단순히 저자가 도시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주고, 각자가 가진 도시에 대한 공간 경험을 고민해보도록 유도하는 입문서에 가깝다. 아마 읽은 사람이라면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어떻게 우리와 상호작용하는지 어느정도 인지했을 것이다. 밈(Meme)에 도시를 비유한 부분은 나도 격히 공감한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우리가 스스로 공간을 구성하고, 그 공간이 다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개념이 매우에 든다. 도시는 우리의 욕망과 환경에 대한 적응이 혼합된 결과물이다.
먼저 환경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영향을 준다기보다 받는 쪽이다. 내가 동남, 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머물렀던 대부분의 집들은 천장고가 3m가 기본이었고, 집이 모두 훤히 개방되어 있었다. 베트남, 태국 등은 문은 커녕 거리를 향해 횡하게 열린 집에 셔터가 문을 대신하는 집도 많았다. 물론 덜 개발된 탓도 있다. 뭐 아무튼. 상용과 주거용이 그렇게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도 구분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높은 천장에는 항상 씰링팬(Ceiling Fan)이 달려 바람을 일으키고, 곳곳의 창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튼튼한 건축이랄 것도 없었다. 철근콘크리트 뼈대를 벽돌을 대충 둘러 벽을 만드는 식이다. 1년 내내 춥지 않기 때문에 공간 밀폐를 위해 창호를 댈 필요도 없고, 나무로 된 창문이면 족했다. 사생활은 낯선 단어인지, 거실은 거리를 향해 열려있는 반 공용의 공간이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집 안에서 뭘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거리구경을 나서면 자연스레 집안에서 TV를 보던 할머니나 거실에서 놀던 아이들과 시선이 마주친다. 개방된 공간, 교차하는 시선들이 왠지 모르게 사람을 여유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저자가 말한 가게의 밀도가 인기 있는 거리의 척도라고 이야기한 것이 이런 주거환경에도 적용된다. 셔터만 닫혀있지 않다면 거리를 따라갈 때 그리 갇힌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런 주거공간들이 사람들이 가진 사생활의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물론 한국에서 이랬다간 겨울에 얼어죽기 십상이다. 여름철 냉방도 도무지 효율이 나지 않는다. 덕분에 비교적 좁고 낮다(천장고가 2.5m 어간이다). 사실 저자는 건축가에게 한국은 건축하기에 최악의 환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여름에는 덥고 비내리고,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며 미세먼지도 심하다. 그런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한 결과물이었던 전통가옥들은 비효율적이고 경제성이 떨어졌다. 아는 형 하나가 삼청동의 한옥집에 사는데 낭만은 있어도 매우 비효율적이라며 여전히 불평불만이 많다. 거기다 압축적인 경제,인구성장이 겹치면서 한국에는 욕망이 꿈틀대는 현대도시들이 자랐다. 저자가 서술했듯이 이렇게 효율적으로 인구를 수용하는 "주거를 위한 기계"들은 그리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공간이 되지는 못했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 대도시에 처음 생겼던 반지하가 우후죽순으로 늘었고, 건물들은 수용인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기에 옥탑방을 올리기도 하고 발코니를 확장하는 등 용적률에 최선을 다했다. 고시원이 욕망을 최대로 끌어낸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 처음 마포에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선 이후로 마치 영혼의 파트너를 찾았다는 듯이 60년만에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게 비단 단점으로만 비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이 별로라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게 된다. 덕분에 "기능의 외주화"가 이루어져 한국의 거리는 카페, 식당, 노래방, 가게 등 갈 곳이 많아졌다. 결국 주거가 해결해야할 많은 부분을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대신 도맡아 한다. 저자는 카페를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이라고 부르는데, 꼭 어울리는 수식어다. 우리는 커피 한 잔 값이면, 언제든 지루하고 좁은 집을 떠나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펼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도시환경이 흥미로워지는 건 이런 한국의 도시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어디는 안 그렇겠냐마는 한국의 건축은 경제논리가 주도한다. 한국의 건물 환경은 비교적 쉽게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아파트 평균 수명 한국 29년, 미국 72년, 영국 128년) 주택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물을 더욱 고층화 고밀화하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당장 당선이 유력한 모 서울시장 후보는 당장 당선이 되면 개발규제부터 일주일 내에 전부 해제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만약 이대로라면 당연히 단기적으로는 좁은 땅에 수익성 높은 아파트, 오피스텔이 더 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주거공간과 거리(street) 간의 거리(distance)는 더 멀어진다. 이런 수직적 거리감의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타워 안에 자리한 시그니엘이다. 이 주상복합 초고층 빌딩 안의 주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안에 들어가는 데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고층 빌딩은 외풍이 심해 창문을 제대로 열지도 못한다. 고층화는 곧 가구단위의 격리를 뜻한다.
여기에 홈 어플라이언스 시장이 급격하게 커짐에 따라 VR 기기와 컴퓨터만 있으면 가상공간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가게들이 대신하던 공간확장의 기능, 공론장의 기능을 가상이 대체한다면 자연히 자영업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상공간은 시선을 끌어당기는 다채롭고 화려한 형태로 우리를 유혹하려 할 것이다. 또 거리는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 새로운 형태로 우리를 부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격변의 시대 서울 한 가운데 서서 도시가 어떻게 변할지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서강민2021-03-30 12:4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공감을 하며 읽었는데, 우선 가장 큰 공감이 가는 부분은 현대 한국사회의 건축을 주도하는 요소가 '경제성'이라고 지적해주신 점입니다. 말씀해주신대로 경제성이 지배하는 한국 건축환경은 건축의 다양성보다는 단순히 '단위 면적 당 최고의 이익'을 얻기 위한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성이 심화될수록 주거공간과 거리를 포함한 공공공간 간의 물리적 거리는 증가하고, 고층화, 가구단위의 격리를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가상공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가상공간에 있는 시간이 증가하고, 공공공간에 있는 시간은 감소해, 주거공간과 공공공간 간의 사회적 거리 역시 증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요소(경제성이 주도하는 건축, 가상 공간의 확대)가 주거 공간과 공공 공간 간의 '물리적', '사회적' 거리를 증가시킬 수 있고, 지적해주신 자영업 위축 등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재민2021-03-30 18:03
윤창 학우, 안녕하세요. 좋은 글 읽다가 주저리 몇 마디 더 해보고 싶어 잠깐 들렸습니다:)
윤창 학우는 아파트공화국인 서울 도심이 "기능의 외주화"로 인해 오히려 사람들을 밖으로 유인하는 외부효과를 자아낸 점이 긍정적일 수 있다고 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한국 도시의 역동성에 그러한 사실이 기여하였음은 그저 부인할 수 없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서울을 떠올려보면, 과연 이곳이 정말로 살기 좋은 곳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능의 외주화로 인해 카페, 식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일지, 그저 그 곳들 외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공간이 없어서 내몰리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아마 윤창학우님도 반대하시진 않을 것 같습니다.
서울 외곽의 원룸, 고시원은 참 많은 아픔을 담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나만의 공간"을 위한 발악 속에 얻어낸 도시 변두리의 자그마한 공간이 과연 얼마나 인간적인 삶을 제공했을지, 그들을 그저 동물처럼 취급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저는 고민이 깊습니다. 특히 이런 고민은 청년주택이나 행복주택 등 , 공공주택 정책에서도 많이 보입니다. 좁은 공간에 그저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자하는 "지표의존정책"탓에(아마, 윤창학우가 지적했듯 경제성을 지적하는 것이겠지요.) 담배곽같은 교도소, 창의성 없는 공간기계만 찍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연결과 연대가 필요한 이들인 주거취약계층은 국가로부터 서로 분리되고 소외될 것을 실질적으로 강요받는 것같아 마음이 좀 답답합니다.
또한, 홈 어플라이언스나 VR 등이 판도를 바꿀 새로운 도시의 기회라는 점에 저도 깊이 동감하며, 제가 단 댓글의 두 번째 고민에 비슷한 고민ㄱ에 따른 상상의 산물(?)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셨으면 또 좋겠네요 ㅎㅎ
윤창 학우는 아파트공화국인 서울 도심이 "기능의 외주화"로 인해 오히려 사람들을 밖으로 유인하는 외부효과를 자아낸 점이 긍정적일 수 있다고 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한국 도시의 역동성에 그러한 사실이 기여하였음은 그저 부인할 수 없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서울을 떠올려보면, 과연 이곳이 정말로 살기 좋은 곳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능의 외주화로 인해 카페, 식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일지, 그저 그 곳들 외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공간이 없어서 내몰리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아마 윤창학우님도 반대하시진 않을 것 같습니다.
서울 외곽의 원룸, 고시원은 참 많은 아픔을 담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나만의 공간"을 위한 발악 속에 얻어낸 도시 변두리의 자그마한 공간이 과연 얼마나 인간적인 삶을 제공했을지, 그들을 그저 동물처럼 취급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저는 고민이 깊습니다. 특히 이런 고민은 청년주택이나 행복주택 등 , 공공주택 정책에서도 많이 보입니다. 좁은 공간에 그저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자하는 "지표의존정책"탓에(아마, 윤창학우가 지적했듯 경제성을 지적하는 것이겠지요.) 담배곽같은 교도소, 창의성 없는 공간기계만 찍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연결과 연대가 필요한 이들인 주거취약계층은 국가로부터 서로 분리되고 소외될 것을 실질적으로 강요받는 것같아 마음이 좀 답답합니다.
또한, 홈 어플라이언스나 VR 등이 판도를 바꿀 새로운 도시의 기회라는 점에 저도 깊이 동감하며, 제가 단 댓글의 두 번째 고민에 비슷한 고민ㄱ에 따른 상상의 산물(?)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셨으면 또 좋겠네요 ㅎㅎ
강다솔2021-03-30 11:06
우선 책을 읽으면서 ‘코로나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고, 공간이나 건축도 예외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앨빈 토플러의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족들과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 것”(44쪽)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고 여겼던 반면, 이제는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자신과 가족들만의 공간인 집에서 근무 뿐 아니라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따라서 앞으로 집이라는 공간이 우리의 필요를 맞추어 많이 변화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방향은 무엇일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저자인 유현준 교수는 건축이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삶이 가능할 때 가장 바람직하다고 거듭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런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 특히 마당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자연과의 접촉이 가능하게 해주는 테라스(59쪽)조차 사라져버렸는데,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이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지금 테라스 없이 지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변화이므로, 다른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건축 분야에 대해 거의 아는바가 없으므로, 현실성이나 경제성 측면을 따지지는 못하겠으나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파트 옥상 공간 활용방안이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게 되었을 때 옥상에 올라가 바깥 공기를 쐬고, 동생, 강아지와 함께 옥상에서 뛰어 놀며 답답함을 해소하곤 했다. 또 이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을 때도 옥상에 쌓인 눈을 가지고 놀았던 적도 있다. 이처럼, 아파트 옥상은 오래된 아파트부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까지 대부분의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실외 공간이니, 이를 잘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또 아파트 옥상은 그 동의 주민이 공유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동체가 모이는 약간은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함께 쓴다는 점에서는 공적 공간이므로, 아파트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약간은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비단 집을 비롯한 실내 공간뿐 아니라 도시 전체적으로 감염의 걱정을 조금 덜어놓고 만날 수 있는 질 좋은 실외 공간에 대한 수요도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니 최근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 광장 공사가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보다 구체적으로 보이는 듯했다. 현재 야외공간이기는 하지만 양쪽에 도로 그리고 거대한 공적 용도의 건물들만 있어서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든 공간이었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측에 시민공원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유현준 교수가 지적했던 ‘걷고 싶지 않은 세종대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우선 시민공원을 조성하려고 하는 우측에는 기존의 카페, 음식점 등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들를 수 있는 공간이 이미 충분하기에, 이벤트가 풍부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거리가 광화문 광장과 결합한다면, 광화문 광장이 보다 더 가고 싶은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 유튜브, [코로나19, 신인류시대] 11부 유현준 “도시와 집이 이렇게 변한다”(포스트코로나 - 도시와 주거)|홍익대 유현준 교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그렇다면 그 방향은 무엇일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저자인 유현준 교수는 건축이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삶이 가능할 때 가장 바람직하다고 거듭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런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 특히 마당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자연과의 접촉이 가능하게 해주는 테라스(59쪽)조차 사라져버렸는데,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이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지금 테라스 없이 지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변화이므로, 다른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건축 분야에 대해 거의 아는바가 없으므로, 현실성이나 경제성 측면을 따지지는 못하겠으나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파트 옥상 공간 활용방안이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게 되었을 때 옥상에 올라가 바깥 공기를 쐬고, 동생, 강아지와 함께 옥상에서 뛰어 놀며 답답함을 해소하곤 했다. 또 이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을 때도 옥상에 쌓인 눈을 가지고 놀았던 적도 있다. 이처럼, 아파트 옥상은 오래된 아파트부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까지 대부분의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실외 공간이니, 이를 잘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또 아파트 옥상은 그 동의 주민이 공유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동체가 모이는 약간은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함께 쓴다는 점에서는 공적 공간이므로, 아파트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약간은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비단 집을 비롯한 실내 공간뿐 아니라 도시 전체적으로 감염의 걱정을 조금 덜어놓고 만날 수 있는 질 좋은 실외 공간에 대한 수요도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니 최근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 광장 공사가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보다 구체적으로 보이는 듯했다. 현재 야외공간이기는 하지만 양쪽에 도로 그리고 거대한 공적 용도의 건물들만 있어서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든 공간이었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측에 시민공원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유현준 교수가 지적했던 ‘걷고 싶지 않은 세종대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우선 시민공원을 조성하려고 하는 우측에는 기존의 카페, 음식점 등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들를 수 있는 공간이 이미 충분하기에, 이벤트가 풍부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거리가 광화문 광장과 결합한다면, 광화문 광장이 보다 더 가고 싶은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 유튜브, [코로나19, 신인류시대] 11부 유현준 “도시와 집이 이렇게 변한다”(포스트코로나 - 도시와 주거)|홍익대 유현준 교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채수형2021-03-30 14:03
이 책은 전반적으로 도시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도시 속 건물들이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야 하는지, 우리들은 이 도시와 건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건축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15가지의 챕터를 거쳐 이야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도시와 미국의 도시(ex) 뉴욕)을 비교하기도 하고, 우리가 그냥 지나쳐가던 공원이라는 주제로도 도시학적인 접근을 통해 어떻게 공원이 구성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내용은 p.259쪽에서 앨빈 토플러가 과거에 언급했던 재택근무에 대한 예언을 언급하면서, 이 책이 나올 당시에는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한 내용이다. 판데믹 사태가 오면서 이제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실제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화상으로 회의를 해 나가기도 한다. 여기서 첫 번째 논의해볼 점이 생각이 났다.
1. 판데믹 상황에서 건축물들은 어떤 특징을 가질 수 있을까? 에 관한 의문점이다.
어떤 상황, 환경, 배경에서든 건축물은 취해야 할 형태와 형식에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판데믹 상황으로, 치료제나 백신이 완벽하게 구현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주택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새롭게 건축되는 건축물들은 어떤 특징을 가질 수 있을까?
두 번째 인상 깊었던 내용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 양식과 문화를 지킬 필요가 있다는 점, 너무 서양의 건축으로 획일화되어 있다는 점을 읽으면서 되게 동의를 하였다. 북촌한옥마을을 가도, 심지어 광화문을 가도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적인 ‘멋’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외국에 가서 유명한 랜드마크를 볼 때와 같은 그 ‘멋’ 말이다. 책에서 저자는 각 건축물들은 기후에서부터 자연적 배경까지 여러 요인들의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져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모양, 같은 높이의 아파트와 빌딩들이 땅을 뒤덮게 되고 우리는 우리 고유의 건축적 멋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인류 모두가 획일화된 삶의 패턴을 갖게 되고 건축이 지역적 다양성을 포함해주지 못한다면 세계적으로 절대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논의하고 싶은 점이 생각났다.
2. 우리나라가 고유의 건축물을 계속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점은 뭐가 있을까? 나아가 한국적 건축물은 어떠한 형태로 발현될까?
책의 저자 또한 마지막 챕터에서 이 점을 다루고 있다. 시간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며, 한국적 건축을 위한 노력에 대해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나아가 한국적 건축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 까지가 저자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질까? 이에 대해 학우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고 싶다.
1. 판데믹 상황에서 건축물들은 어떤 특징을 가질 수 있을까? 에 관한 의문점이다.
어떤 상황, 환경, 배경에서든 건축물은 취해야 할 형태와 형식에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판데믹 상황으로, 치료제나 백신이 완벽하게 구현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주택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새롭게 건축되는 건축물들은 어떤 특징을 가질 수 있을까?
두 번째 인상 깊었던 내용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 양식과 문화를 지킬 필요가 있다는 점, 너무 서양의 건축으로 획일화되어 있다는 점을 읽으면서 되게 동의를 하였다. 북촌한옥마을을 가도, 심지어 광화문을 가도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적인 ‘멋’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외국에 가서 유명한 랜드마크를 볼 때와 같은 그 ‘멋’ 말이다. 책에서 저자는 각 건축물들은 기후에서부터 자연적 배경까지 여러 요인들의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져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모양, 같은 높이의 아파트와 빌딩들이 땅을 뒤덮게 되고 우리는 우리 고유의 건축적 멋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인류 모두가 획일화된 삶의 패턴을 갖게 되고 건축이 지역적 다양성을 포함해주지 못한다면 세계적으로 절대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논의하고 싶은 점이 생각났다.
2. 우리나라가 고유의 건축물을 계속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점은 뭐가 있을까? 나아가 한국적 건축물은 어떠한 형태로 발현될까?
책의 저자 또한 마지막 챕터에서 이 점을 다루고 있다. 시간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며, 한국적 건축을 위한 노력에 대해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나아가 한국적 건축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 까지가 저자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질까? 이에 대해 학우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고 싶다.
강다솔2021-03-31 16:24
안녕하세요 수형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짚어주신 두 번째 포인트에 대해서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서울의 가장 좋아하는 지역을 꼽으라면 궁들이 모여있는 지역과 그 뒤에 있는 동네들을 꼽는데(익선동, 삼청동, 부암동 등) 사람사는 냄새가 나고, 자연과도 가까이 있고(인왕산) 무엇보다 한국적인 정취가 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만들어나가고 지키는 일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통의 양식을 그대로 가져와 새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은 한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통 건축 양식은 대부분 저층 가옥이라 땅이 부족한 요즘 시대에 그런 건축물들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언급해주신대로 전통의 아름다움은 '시간의 축적'이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새로 짓는 것들도 미래 세대 입장에서는 시간의 축적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일 것 같지만, 그보다는 일단 이미 시간의 흐름을 견디어낸 기존의 건축물들을 잘 활용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콕 집어 '한국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지만, 계속해서 그 건축물에 한국인들의 삶이 덧씌워진다면 언젠가 우리 고유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유현준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기존의 기차역을 박물관으로 활용한 오르세 미술관처럼요! 코로나 시대에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런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기존 건물의 재활용에 대한 활성화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구체적인 예시를 저도 생각해내기가 힘들어 안타까운데, 앞으로 꾸준히 고민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짚어주신 두 번째 포인트에 대해서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서울의 가장 좋아하는 지역을 꼽으라면 궁들이 모여있는 지역과 그 뒤에 있는 동네들을 꼽는데(익선동, 삼청동, 부암동 등) 사람사는 냄새가 나고, 자연과도 가까이 있고(인왕산) 무엇보다 한국적인 정취가 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만들어나가고 지키는 일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통의 양식을 그대로 가져와 새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은 한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통 건축 양식은 대부분 저층 가옥이라 땅이 부족한 요즘 시대에 그런 건축물들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언급해주신대로 전통의 아름다움은 '시간의 축적'이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새로 짓는 것들도 미래 세대 입장에서는 시간의 축적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일 것 같지만, 그보다는 일단 이미 시간의 흐름을 견디어낸 기존의 건축물들을 잘 활용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콕 집어 '한국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지만, 계속해서 그 건축물에 한국인들의 삶이 덧씌워진다면 언젠가 우리 고유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유현준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기존의 기차역을 박물관으로 활용한 오르세 미술관처럼요! 코로나 시대에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런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기존 건물의 재활용에 대한 활성화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구체적인 예시를 저도 생각해내기가 힘들어 안타까운데, 앞으로 꾸준히 고민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원재희2021-03-31 18:01
'어떤 상황, 환경, 배경에서든 건축물은 취해야 할 형태와 형식에 차이가 있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는 질문2에서 문제시하는 획일화의 문제와도 연관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보건 위기 상황에조차도 따로 지어져야 할 건물이 있을지 고민하시는 학우님의 통찰에 저도 뜨끔했습니다:-)
1번 질문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가장 우선적으로 안전과 위생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는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외출 후 바로 손 등을 씻을 수 있도록, 화장실에 최대한 출입구 쪽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다음으로, 밖에 나가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환풍도 잘되고 밖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넓은 창문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집에서 즐기는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추세를 반영하여, 개인 작업실과 같은 방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건축물을 계속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전통식 한옥을 모방하여 짓기보다는, 주거 만족도 조사 등을 통한 신빙성 있는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어떠한 주거 환경과 조건을 편리하고 포근하다고 느끼는지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물은 사람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번 질문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가장 우선적으로 안전과 위생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는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외출 후 바로 손 등을 씻을 수 있도록, 화장실에 최대한 출입구 쪽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다음으로, 밖에 나가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환풍도 잘되고 밖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넓은 창문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집에서 즐기는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추세를 반영하여, 개인 작업실과 같은 방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건축물을 계속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전통식 한옥을 모방하여 짓기보다는, 주거 만족도 조사 등을 통한 신빙성 있는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어떠한 주거 환경과 조건을 편리하고 포근하다고 느끼는지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물은 사람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김재민2021-03-30 17:46
책을 읽으며 유현준 교수님의 책이 도시사회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너무 즐거웠습니다. 걷고싶은 거리부터 살고싶은 도시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스레 여기며 고민하지 않던 부분들을 나름의 로직으로 설명하는 것이 참으로 설득력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포스트팬데믹”과 연결지으려했는데, 그게 뭐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밖을 나가지 않아서 도시공간이 해체되고 사람 간 연결이 무너진다, 이런 단편적인 것으로 생각해선 안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포스트팬데믹은 참으로 복잡다변한 사회일 것이며,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 우리는 다시 다양한 공간에서 연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민해야할 지점은, 팬데믹 위기로 가속화된 기술과 경제 변화 속에서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연결되는 “초연결사회”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배달 및 운수플랫폼, 비대면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효율과 가치를 창출하는 지금, 이제는 더 이상 나가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가능해진 세대로 이행하는 것 같습니다. 이 속에서 사람이 만나는 공간의 “연결의 장(場)으로서의 필수적 성격”은 퇴행될 수 있으며, 그럼 우리는 이제 공간은 “어떠해야하는가”하는 질문을 마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현준 교수님께서도 점차 이동수단이 발달하며 더 이상 “도로”가 필요없는 시대가 오고, 그럼 이 모든 공간이 “사람을 위한”공간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셨으니, 정말 모든 공간의 의미를 이젠 찾아야 할 지점이지요.
저는 책을 읽으며 크게 두 가지 고민을 해보아서, 이 지점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1. “소득 계층간 불균형한 공간 점유양태” 완화하기
원자화와 개인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맞추어, 개인의 personal space가 늘어나도록 보장해야할까요? 계층에 관계없이 개인에게 personal space를 보장하는 방향도 설득력있어 보입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외출이 제한되며 가정 내에서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이 증가한건 여러분 모두 체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에서 개인의 personal space가 보장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 학업 성취도도 비교적 낮고, 스트레스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들 중 심지어 출퇴근 길 사람이 빽빽한 광역버스나 지하철 좌석이 그나마 자신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안식처가 된다고 응답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personal space에 대한 요구가 계속해서 높아지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함에 있어 “소득 계층간 불균형한 공간 점유양태”를 완화하고자 노력하는건 어떤 시도가 있을지, 그리고 그게 포스트팬데믹 시대 K양극화를 줄이는데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2. 공공공간의 초연결성
팬데믹 시대 공공 공간(public space)는 공공(空空)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팬데믹 이후 다시금 사람들로하여금 안락한 개인의 동굴 밖으로 나와 상호작용할 유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저는 공공공간이 오프라인으로만 연결하는 것이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게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VR, AR 기술이 늘어나는 요즘 팬데믹 시대에서 온라인 전시, 온라인 미술관 체험이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만, 이들은 사전에 촬영된 영상물을 시각화한 것으로 즉각적인 소통이 불가하여 실재적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착안하여, 보다 많은 사람이 실시간(real time)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 수 있는 “초연결 공공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요? 예컨대 작은 오락기나, 대화창에 접속가능한 기기들이 벤치에 있고, 세대를 넘나들며 익명성에 빗대어 고민을 털어놓는 공간이라면 어떨까요. 나 홀로 공공 공간에 가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곳이라면, 개인화되는 사회 속에서 연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원자화된 사회”에 적합한 대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벤치마다 어떤 대화 주제가 있고, 자연 속에서 그 대화 주제를 가지고 익명의 다수와 소소하게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나가고 하는 공공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윤서영2021-03-30 22:29
재민 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제시하신 두 가지 지점 모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회가 점차 개인화되어 가던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까지 더해지면서 개인 공간 보장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음을 저 또한 체감하고 있습니다. 공간 점유 양태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한 계층들에 개인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는 이상적인 방안이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은 극단적인 소득 불균형의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이 근본적인 방안일 것 같습니다. 다만 두 번째에 제시하신 공공공간의 초연결성 아이디어를 상상해볼 때,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개인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나마 안식처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제 글을 쓰면서 팬데믹 상황 속 거리두기와 시민적 소통 도모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도시 공간 구상 방안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내용을 언급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두 목표가 다소 상충되어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맥락에서 읽어보니 공공 공간의 초연결성에 관해 제시해주신 아이디어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제시하신 두 가지 지점 모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회가 점차 개인화되어 가던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까지 더해지면서 개인 공간 보장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음을 저 또한 체감하고 있습니다. 공간 점유 양태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한 계층들에 개인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는 이상적인 방안이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은 극단적인 소득 불균형의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이 근본적인 방안일 것 같습니다. 다만 두 번째에 제시하신 공공공간의 초연결성 아이디어를 상상해볼 때,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개인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나마 안식처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제 글을 쓰면서 팬데믹 상황 속 거리두기와 시민적 소통 도모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도시 공간 구상 방안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내용을 언급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두 목표가 다소 상충되어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맥락에서 읽어보니 공공 공간의 초연결성에 관해 제시해주신 아이디어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윤창2021-03-31 06:58
안녕하세요 재민님 달아주신 댓글에 대댓글을 달러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00년대까지만 해도 갖고 있던 "마을, 지역 중심의 공동체"가 이동성의 증가(자동차, 대중교통, 통신기술)로 빠르게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서울이나 부산으로 모였고 대도시는 이주민의 도시가 됩니다. 싱가포르나 홍콩, 베이징 등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 듯, 일을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나 농민공들이 거주하는 소위 "게토"들은 한국의 고시원, 원룸촌과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집밖으로 거리로 불러들인 원인이 "열악한 주거, 동네환경"인 부분이, 네,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마찬가지로 뭐랄까 근본적인 슬픔을 느낍니다. 기능의 외주화는 어쩔 수 없이 나온 사람들이 사랑방을 필요로 하면서 생겼다고 할 수 있겠죠. 요즘은 셰어하우스 같은 공동주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사람들이 더 나은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구나 느껴져서 그래도 좀 안심이 되네요. 최근에는 직방이 우주하우스를 인수하고, 부동산 디벨로퍼들도 이 같은 주거형태를 하나 둘 짓기 시작했습니다. 고시원을 개조해 셰어하우스를 만드는 사례가 많아져서 기분이 좋군요.
두번째 언급하신 아이디어는 요즘 핫하다는 클럽하우스를 연상시킵니다. "각자 주제로 개설된 방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라는 핵심 아이디어는 비쥬얼로 구현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서 그런 서비스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클럽하우스도 안드로이드 사용자라 저 멀리서 입맛만 다시고 있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도 있습니다. 익명성과 편의성(어디서든 접속가능한)을 바탕으로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관계"가 과연 얼마나 "깊은 관계"를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는 물리적 한계가 사회적 관계에 부여하는 강제성을 좀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거든요. 물리적 한계는 곧 제한된 범위의 관계에서 소통을 한다는 말이고,(학교에 갔다면 학교 안의 사람들하고만 이야기를 하겠죠) 이렇게 묶인 범주가 구성원 간의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초연결의 공론장(혹은 잡담장?)이 "깊은 유대감"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단기적이고 보조적인 수단으로써 원자화의 부작용을 해결하는데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가상공간 자체를 좀 비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앞서 제 글에서 구체적으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요. 먼저 누가 생태계 형성을 주도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오늘날 가상공간을 이끌어가는 기업들은 네이버, 페이스북 등 "사람들의 관심"을 팔아 돈을 버는 기업들입니다. 인스타, 유투브, 틱톡 등의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관심에 맞게 컨텐츠를 추천해줌으로써 더 오래 사람들을 붙들어두려고 하는 것처럼 가상공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곳의 광고, 가상상품 등을 소비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겠죠. 우리에게 좌절을 안겨준 도시의 경제우선논리와 마찬가지의 양상으로 가상공간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유권이 분산되어 있는 부동산과는 달리 가상공간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거대 플랫폼 아래 질서가 형성됩니다. 영리 목적의 사기업이 공간의 지배자가 된다는 사실이 저는 좀 두렵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나고 공익, 사회적 가치에 대한 숙의가 무르익은 때라면 다를지 모르겠지만, 한국이 순식간에 아파트 공화국이 된 것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상공간이 과연 그런 고민을 충분히 하고 형성되는 것일까요?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쓸떼없는 말이 좀 길어졌네요. 역시나 아날로그 세계의 도시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디지털 세상에 대한 생각도 따라오게 됩니다. 아마 메타버스 강의 때 더 골머리를 앓으며 생각하게 되지 싶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00년대까지만 해도 갖고 있던 "마을, 지역 중심의 공동체"가 이동성의 증가(자동차, 대중교통, 통신기술)로 빠르게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서울이나 부산으로 모였고 대도시는 이주민의 도시가 됩니다. 싱가포르나 홍콩, 베이징 등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 듯, 일을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나 농민공들이 거주하는 소위 "게토"들은 한국의 고시원, 원룸촌과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집밖으로 거리로 불러들인 원인이 "열악한 주거, 동네환경"인 부분이, 네,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마찬가지로 뭐랄까 근본적인 슬픔을 느낍니다. 기능의 외주화는 어쩔 수 없이 나온 사람들이 사랑방을 필요로 하면서 생겼다고 할 수 있겠죠. 요즘은 셰어하우스 같은 공동주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사람들이 더 나은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구나 느껴져서 그래도 좀 안심이 되네요. 최근에는 직방이 우주하우스를 인수하고, 부동산 디벨로퍼들도 이 같은 주거형태를 하나 둘 짓기 시작했습니다. 고시원을 개조해 셰어하우스를 만드는 사례가 많아져서 기분이 좋군요.
두번째 언급하신 아이디어는 요즘 핫하다는 클럽하우스를 연상시킵니다. "각자 주제로 개설된 방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라는 핵심 아이디어는 비쥬얼로 구현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서 그런 서비스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클럽하우스도 안드로이드 사용자라 저 멀리서 입맛만 다시고 있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도 있습니다. 익명성과 편의성(어디서든 접속가능한)을 바탕으로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관계"가 과연 얼마나 "깊은 관계"를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는 물리적 한계가 사회적 관계에 부여하는 강제성을 좀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거든요. 물리적 한계는 곧 제한된 범위의 관계에서 소통을 한다는 말이고,(학교에 갔다면 학교 안의 사람들하고만 이야기를 하겠죠) 이렇게 묶인 범주가 구성원 간의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초연결의 공론장(혹은 잡담장?)이 "깊은 유대감"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단기적이고 보조적인 수단으로써 원자화의 부작용을 해결하는데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가상공간 자체를 좀 비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앞서 제 글에서 구체적으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요. 먼저 누가 생태계 형성을 주도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오늘날 가상공간을 이끌어가는 기업들은 네이버, 페이스북 등 "사람들의 관심"을 팔아 돈을 버는 기업들입니다. 인스타, 유투브, 틱톡 등의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관심에 맞게 컨텐츠를 추천해줌으로써 더 오래 사람들을 붙들어두려고 하는 것처럼 가상공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곳의 광고, 가상상품 등을 소비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겠죠. 우리에게 좌절을 안겨준 도시의 경제우선논리와 마찬가지의 양상으로 가상공간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유권이 분산되어 있는 부동산과는 달리 가상공간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거대 플랫폼 아래 질서가 형성됩니다. 영리 목적의 사기업이 공간의 지배자가 된다는 사실이 저는 좀 두렵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나고 공익, 사회적 가치에 대한 숙의가 무르익은 때라면 다를지 모르겠지만, 한국이 순식간에 아파트 공화국이 된 것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상공간이 과연 그런 고민을 충분히 하고 형성되는 것일까요?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쓸떼없는 말이 좀 길어졌네요. 역시나 아날로그 세계의 도시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디지털 세상에 대한 생각도 따라오게 됩니다. 아마 메타버스 강의 때 더 골머리를 앓으며 생각하게 되지 싶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조용수2021-03-31 17:54
재민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선 personal space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personal space 문제가 요즘 대두되는 것은 소득계층간 물리적인 공간의 차이도 크지만, 점점 사회가 초연결화되어가고 내 사적인 행동이 불특정 다수에게 평가받으면서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이것은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해당될 것 같네요)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이 오늘날 이른바 '부캐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도시공간이나 메타버스 시간에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말씀해 주신 '초연결 공공 공간'도 개개인에 대한 과도한 정보 없이 최소한의 익명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personal space 문제의 하나의 해결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공간이 비록 불평등 문제 자체를 해결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사람들에게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우선 personal space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personal space 문제가 요즘 대두되는 것은 소득계층간 물리적인 공간의 차이도 크지만, 점점 사회가 초연결화되어가고 내 사적인 행동이 불특정 다수에게 평가받으면서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이것은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해당될 것 같네요)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이 오늘날 이른바 '부캐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도시공간이나 메타버스 시간에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말씀해 주신 '초연결 공공 공간'도 개개인에 대한 과도한 정보 없이 최소한의 익명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personal space 문제의 하나의 해결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공간이 비록 불평등 문제 자체를 해결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사람들에게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탈퇴한 회원2021-04-01 10:46
재민 학우님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글을 읽으면서 개인화 원자화라는 사회적인 큰 흐름과 그에따른 무수한 변화들이 복잡하게 나타나는 사회라는 점에서 매우 공감했습니다.
personal space를 보장하는 것, 매우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것도 공간적 경제적 한계점은 분명할 것입니다. 보장의 범위를 넓히려면, 서울이라는 무자비한 집값의 공간에서는 공간을 쪼개고 쪼개도 개인에게 할당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보장해줄 수 있다면, 분명히 고민해볼 필요는 있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얘기도 참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요즘 저도 가끔은 온라인 상에서 안부를 물어보고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치만 반대로 비대면이 지속되면서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도 있는 것도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초연결 공공 공간이 완벽한 대체재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히 관계와 공간 사용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ㅎㅎ
저도 글을 읽으면서 개인화 원자화라는 사회적인 큰 흐름과 그에따른 무수한 변화들이 복잡하게 나타나는 사회라는 점에서 매우 공감했습니다.
personal space를 보장하는 것, 매우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것도 공간적 경제적 한계점은 분명할 것입니다. 보장의 범위를 넓히려면, 서울이라는 무자비한 집값의 공간에서는 공간을 쪼개고 쪼개도 개인에게 할당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보장해줄 수 있다면, 분명히 고민해볼 필요는 있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얘기도 참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요즘 저도 가끔은 온라인 상에서 안부를 물어보고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치만 반대로 비대면이 지속되면서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도 있는 것도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초연결 공공 공간이 완벽한 대체재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히 관계와 공간 사용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ㅎㅎ
임채미2021-03-30 17:48
일단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는데 우선 첫 번째는 걷고 싶은 거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나름 과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부분이었다. 우리는 집을 떠나 흔히 하루 놀러 홍대나 가로수길, 명동과 같은 거리로 간다. 어떻게 번화가,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가 형성되고 사라지는 지 알 수 있었고 도시 개발업자가 어떤 방식을 사용하여 도시를 변화시미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책에서 부동산을 구매할 때, 설계 사무소가 밀집된 지역의 건물을 사면 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설계 사무소는 차지하는 공간이 넓고 그래서 임대료가 싼 공간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멋을 추구함으로 그들에 맞는 카페가 들어서며 점차 거리가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에서도 많은 핫플레이스들이 뜨고 지는데, 이러한 것을 잘 분석하여 부동산을 구매한다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건축가는 실용성도 추구하지만 멋도 추구하는데, 나는 이 태도를 본받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극한의 실용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성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멋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이라기 보다는 삶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 같다. 우리가 여유가 없고 힘들 때 아무도 멋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비로소 심미적 측면을 고려하게 되는데, 이렇게 멋있게 삶을 즐기며 사는 태도를 본받고 싶었다. 그리고 요즘 집에 관심이 많았는데, 집의 어떤 측면이 집의 가격을 결정하는지를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특히 요즘 화제가 되는 펜트하우스는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하고 보안이 철저하다. 이러한 점을 인간의 관음에 대한 욕망과 엮어서 설명함으로써 왜 고층에 사는 것이 때로는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깊이가 얕다. 건축과 도시에 대해 맛을 본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깊이가 얕다. 건축과 도시에 대해 맛을 본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조민영2021-03-31 01:02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학우님과 같이 걷고 싶은 거리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치화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그러한 부분을 수치화하여서 나타내서 더욱 납득이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우님께서 이 책을 읽으시면서 삶에 대해서까지도 생각하신 점이 굉장히 인상깊게 남습니다. 저도 소위 '효율충'이라고 할 정도로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여유를 가지고 '멋'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읽고 코멘트 쓰시느라 수고하셨고,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학우님과 같이 걷고 싶은 거리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치화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그러한 부분을 수치화하여서 나타내서 더욱 납득이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우님께서 이 책을 읽으시면서 삶에 대해서까지도 생각하신 점이 굉장히 인상깊게 남습니다. 저도 소위 '효율충'이라고 할 정도로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여유를 가지고 '멋'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읽고 코멘트 쓰시느라 수고하셨고,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손지우2021-04-01 14:23
안녕하세요, 채미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도 두 학우분들과 마찬가지로 걷고 싶은 거리의 형성 과정 부분에 대해 정말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특히 코멘트의 '멋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이라기 보다는 삶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와닿네요. 말씀처럼 삶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심미적 측면에 대해 고려하게 되는 듯 합니다. 저는 이에 다른 학우분들께서 제시해 준 것처럼 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생각도 함께 떠오르는 듯 하네요.
채미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한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
저도 두 학우분들과 마찬가지로 걷고 싶은 거리의 형성 과정 부분에 대해 정말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특히 코멘트의 '멋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이라기 보다는 삶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와닿네요. 말씀처럼 삶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심미적 측면에 대해 고려하게 되는 듯 합니다. 저는 이에 다른 학우분들께서 제시해 준 것처럼 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생각도 함께 떠오르는 듯 하네요.
채미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한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
조민영2021-03-30 20:55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건축이라고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제목에서 들어본 것이 다였던 나마저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경험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 나왔을 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기도 했을 정도였다. 특히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한, 항상 어떤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 어떤 형태의 공간보다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구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도시공간에 대해서는, 말로든 아니면 적어도 실제로 경험하는 것으로든 이야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 그리고 그 이후의 도시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딱딱하지 않은 도시,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가 적용된 도시, 또, 사람들이 사는 도시 등을 긍정적인 혹은 이상적인 모습의 도시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묘사할 때,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거리, 여가시간을 즐기는 공원, 광장 등 건물의 내부보다는 외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이러한 외부로부터 일정 정도 차단당한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외부 공간을 원하고 있다. 지금의 도시는 너무 내부 공간에 집중하고 있고, 외부 공간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길로 똑같이 걸어다닌다. 그러나 유기체로서의 도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휙휙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의 상황에서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활용 방법을 바꿀 수 있는 방안은 없을지를 먼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은 무엇일지,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코로나19 상황이 마무리된 이후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과는 같을지, 다르다면 어떤 부분이 달라야 할지 등에 대해서 역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 그리고 그 이후의 도시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딱딱하지 않은 도시,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가 적용된 도시, 또, 사람들이 사는 도시 등을 긍정적인 혹은 이상적인 모습의 도시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묘사할 때,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거리, 여가시간을 즐기는 공원, 광장 등 건물의 내부보다는 외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이러한 외부로부터 일정 정도 차단당한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외부 공간을 원하고 있다. 지금의 도시는 너무 내부 공간에 집중하고 있고, 외부 공간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길로 똑같이 걸어다닌다. 그러나 유기체로서의 도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휙휙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의 상황에서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활용 방법을 바꿀 수 있는 방안은 없을지를 먼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은 무엇일지,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코로나19 상황이 마무리된 이후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과는 같을지, 다르다면 어떤 부분이 달라야 할지 등에 대해서 역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윤서영2021-03-30 22:08
도시, 건축, 공간에 관한 본 책의 논의가 포스트팬데믹이라는 주제에 어떤 시사점을 전달할 수 있을지, 머릿속에 떠오른 몇 가지 내용들을 아래와 같이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코로나 방역, 그리고 감시와 판옵티콘이라는 주제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개개인의 동선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상황이 빈번해졌다. 이러한 조치가 전염병 확산 방지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가로부터의 감시 체제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코로나 확산과 더불어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 등 여러 가지 배경을 고려해볼 때, 포스트팬데믹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감시, 자유와 같은 주제 또한 다룰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공간이 권력을 만들어내는 한 가지 사례로 판옵티콘을 제시한다.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이 감시 시스템은,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서 이른바 ‘정보 판옵티콘’이라는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게다가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판옵티콘의 경우 감시의 주체가 되는 시선은 특정 범위의 공간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오늘날 정보라는 감시 기제는 국가적, 국제적으로 가히 한계 없는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감시 권력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관련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이 도시 공간이라는 이번 주제와 실질적으로 연결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에서 뻗어나간 생각이라 본 글에서 언급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다음은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 속 각종 건축 공간의 변화에 관한 내용이다. 우선,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아늑한 집’이라는 공간이 더욱 큰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 상황에 비추어 재택 근무나 온라인 수업, 코로나 블루 방지의 필요성 등의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거 공간의 구조를 변화시킨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 가족 구성원 간 원만한 관계 유지와 소통이 필요한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책에서 언급되듯이 각 방에 거실 등 집 내부와 연결되는 창문을 만드는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한 외출 빈도 감소로 인한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완화하기 위해 집의 천장을 높게 설계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면적뿐 아니라 체적까지 고려하는 주거 공간 건축이 필요하다는 책의 논의와 맞닿아 있다. 다만 세부적인 인테리어를 너머 건축적 설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코로나 상황 속에서 앞서 언급한 주거 공간의 변화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는 사실 추측하기 어렵다.
지난 ‘포스트 팬데믹과 한국사회의 가치관’ 특강에서 언급된 내용 또한 도시 공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이른바 시민적 무관심과 개인화 경향이 만연하다. 공공장소에서의 대화는 물론 짤막한 상호작용마저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며, 코로나 상황 속에서 이러한 소통의 부재 문제는 증폭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수칙을 따르면서도 시민들 간 소소한 소통을 촉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공 장소를 설계하는 길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볼 만하다. 만약 거리두기 준수와 소통 촉진이라는 두 목표가 다소 상충되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느껴진다면, 코로나 상황이 완화된 환경의 포스트팬데믹 상황을 내다보며 이때의 시민 소통을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을 장기적으로 고민해볼 수도 있겠다.
마지막은 도시와 자연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자연환경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후 책에서 제시되는 관련 사례들은 대체로 자연과의 시각적, 심미적 조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뿐만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구 생태계 환경과의 조화를 꾀할 수 있도록 도시 및 건축을 구상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가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나 기후 위기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포스트팬데믹 사회에서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주목해야 하며, 도시 계획과 건축 또한 경제성이나 심미성만이 아니라 환경적 지속 가능성까지 주요한 요소로서 고려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는 코로나 방역, 그리고 감시와 판옵티콘이라는 주제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개개인의 동선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상황이 빈번해졌다. 이러한 조치가 전염병 확산 방지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가로부터의 감시 체제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코로나 확산과 더불어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 등 여러 가지 배경을 고려해볼 때, 포스트팬데믹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감시, 자유와 같은 주제 또한 다룰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공간이 권력을 만들어내는 한 가지 사례로 판옵티콘을 제시한다.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이 감시 시스템은,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서 이른바 ‘정보 판옵티콘’이라는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게다가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판옵티콘의 경우 감시의 주체가 되는 시선은 특정 범위의 공간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오늘날 정보라는 감시 기제는 국가적, 국제적으로 가히 한계 없는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감시 권력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관련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이 도시 공간이라는 이번 주제와 실질적으로 연결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에서 뻗어나간 생각이라 본 글에서 언급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다음은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 속 각종 건축 공간의 변화에 관한 내용이다. 우선,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아늑한 집’이라는 공간이 더욱 큰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 상황에 비추어 재택 근무나 온라인 수업, 코로나 블루 방지의 필요성 등의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거 공간의 구조를 변화시킨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 가족 구성원 간 원만한 관계 유지와 소통이 필요한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책에서 언급되듯이 각 방에 거실 등 집 내부와 연결되는 창문을 만드는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한 외출 빈도 감소로 인한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완화하기 위해 집의 천장을 높게 설계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면적뿐 아니라 체적까지 고려하는 주거 공간 건축이 필요하다는 책의 논의와 맞닿아 있다. 다만 세부적인 인테리어를 너머 건축적 설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코로나 상황 속에서 앞서 언급한 주거 공간의 변화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는 사실 추측하기 어렵다.
지난 ‘포스트 팬데믹과 한국사회의 가치관’ 특강에서 언급된 내용 또한 도시 공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이른바 시민적 무관심과 개인화 경향이 만연하다. 공공장소에서의 대화는 물론 짤막한 상호작용마저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며, 코로나 상황 속에서 이러한 소통의 부재 문제는 증폭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수칙을 따르면서도 시민들 간 소소한 소통을 촉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공 장소를 설계하는 길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볼 만하다. 만약 거리두기 준수와 소통 촉진이라는 두 목표가 다소 상충되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느껴진다면, 코로나 상황이 완화된 환경의 포스트팬데믹 상황을 내다보며 이때의 시민 소통을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을 장기적으로 고민해볼 수도 있겠다.
마지막은 도시와 자연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자연환경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후 책에서 제시되는 관련 사례들은 대체로 자연과의 시각적, 심미적 조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뿐만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구 생태계 환경과의 조화를 꾀할 수 있도록 도시 및 건축을 구상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가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나 기후 위기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포스트팬데믹 사회에서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주목해야 하며, 도시 계획과 건축 또한 경제성이나 심미성만이 아니라 환경적 지속 가능성까지 주요한 요소로서 고려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민정2021-03-31 16:44
적어주신 내용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내용 중 도시와 자연에 관한 부분에서 깊이 공감했습니다. 건축과 도시 계획이 지금 마주하며,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포용성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포용성에는 자연과 사람을 동등한 상대로 보는 것이 전제될 것입니다. 그 결과로 기존 건물 옥상에 정원을 만드는 것부터 기존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친환경적인 소재와 디자인을 활용하는 데까지 혁신적인 변화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았습니다.
조현호2021-03-31 00:43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서 토론한 능력주의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저자는 현대의 건축의 문제점 및 미래의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자연과 공동체와 간축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과 함께 해결책을 잘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다소 이상적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결국 돈과 건축을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공간'의 공급과 수요의 비율, 한국의 토지 면적, 기후환경, 단위 면적 당 가격 등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할 때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을 당장 도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건축 양식을 보존하자는 것과, 좀 더 자연과 공동체와 공생할 수 있는 건축 양식을 추구하자는 의미에서는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저자는 현대의 건축의 문제점 및 미래의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자연과 공동체와 간축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과 함께 해결책을 잘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다소 이상적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결국 돈과 건축을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공간'의 공급과 수요의 비율, 한국의 토지 면적, 기후환경, 단위 면적 당 가격 등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할 때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을 당장 도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건축 양식을 보존하자는 것과, 좀 더 자연과 공동체와 공생할 수 있는 건축 양식을 추구하자는 의미에서는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문보설2021-03-31 02:30
고등학생 때 가족들과 서울 여행을 간 기억이 난다. 무슨무슨 본사라더라 하는 건물들의 모습, 유리로 된 엄청나게 큰 건물들이 머리에 또 엄청나게 큰 전광판을 이고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모습들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성격상 생활반경이 좁아서 시내도 잘 나가지 않고 동네만 돌아다녔고 우리 동네는 어딜 가나 바다가 보이는, 별로 높지 않은 건물들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건물이 멋져서일까 그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유리로만 된 건물들과 커다란 전광판은 서울에서 공부하길 원했던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나의 본가가 교통이 좋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내가 세상물정을 과하게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고향 사람들은 '해운대만 가도 그정도로 번화한데 무슨 소리?' 라고 할 것 같아 덧붙인다.)
그러나 상경 직후 서울의 이미지는 달랐던 것 같다. 나를 보러 온 친구들은 나에게 시내에 산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창문 앞에 또 다른 창문이 있고 산책을 해도 온통 딱딱한 건물들과 공사장들이었다. 빨리감기를 한 것처럼 자꾸 뭐가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여러 모로 밀도높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도 오히려 주변 환경과 시공간적으로 단절된 기분이었다. 본가에서 독서실을 갈 때 나던 바다 짠내나 해질녘 산책로에서 보이던 작은 배들이 들어오는 모습들이 그리웠다.
물론 서울생활에 익숙해진 지금의 나에게 서울은 그렇게 부정적 이미지가 아니고, 특히 사진이라는 취미를 통해 여러 장소들을 경험해 보면서 살고 싶은 장소도 생겼다. 하지만 앞서 말한 상경 직후의 경험들로 인해 책에서 말하는 도시에서의 자연 환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꼭 건축과 관련해 이해하지 않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불멍'이나 '자연 소리 asmr'같은 것들 역시 현대인들에게 '비움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자연을 대화의 상대로서 그리고 건축물들과 함께 사유할 여유를 주는 대상이 되게끔 건축물을 디자인해야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처음으로 해 봤다. 이 게임은 무슨 동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군데군데 갑자기 집이 있고 그 안에 총과 무기들이 떨어져 있는 이상한 게임이다. 유저는 시작부터 비행기에서 추락하는데 이 때 낙하산을 펼쳐서 원하는 지점에 떨어진 다음, 다짜고짜 총을 찾아서 누군가와 싸우면 된다. 나는 게임을 정말 못해서, 항상 외딴 곳에 홀로 떨어지곤 했다. 나는 그 경치가 정말 좋았다. 유저는 호수에서 수영을 할 수도 있다. 나는 그 게임을 할 때면 항상 수영을 하고, 가끔 자동차를 발견하면 유유히 드라이브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은 나의 행동을 싫어했지만 나는 낙하산으로 떨어지는 것을 못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게임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가상 현실 혹은 메타버스가 도시 환경을 보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메타버스라는 책을 보면 핀란드에 설치한 자판기에 눈을 넣으면 반대 편 싱가포르에서 인공 눈이 내리는 코카콜라의 프로젝트가 나온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냄새를 전달하는 기술에 대한 것도 언급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자연과 연결되어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과학 기술과 건축적 요소가 결합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의 골목길에서도 짠내를 맡을 수 있고, 공원과 호수의 푸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질적으로 동일한 경험이라 하더라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주는 경험과 실재의 세계가 주는 경험이 구분된다는 직관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프로젝트가 얼마나 매력적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직관이란 이동하는 것이며 현재 가상현실이 점점 더 실생활에서 받아들여지는 만큼 그러한 직관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건축에 가상 현실이 활용되어 조금 더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학우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번 글에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아 슬픈 마음에 대략적으로 대댓글의 주제를 잡아 봤는데 참고하여 답글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만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바람직할지(여러 측면에서 말씀해 주셔도 좋습니다)
2. 이러한 변화의 사례
3. 비슷한 생각, 혹은 경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써주셔도 좋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상경 직후 서울의 이미지는 달랐던 것 같다. 나를 보러 온 친구들은 나에게 시내에 산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창문 앞에 또 다른 창문이 있고 산책을 해도 온통 딱딱한 건물들과 공사장들이었다. 빨리감기를 한 것처럼 자꾸 뭐가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여러 모로 밀도높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도 오히려 주변 환경과 시공간적으로 단절된 기분이었다. 본가에서 독서실을 갈 때 나던 바다 짠내나 해질녘 산책로에서 보이던 작은 배들이 들어오는 모습들이 그리웠다.
물론 서울생활에 익숙해진 지금의 나에게 서울은 그렇게 부정적 이미지가 아니고, 특히 사진이라는 취미를 통해 여러 장소들을 경험해 보면서 살고 싶은 장소도 생겼다. 하지만 앞서 말한 상경 직후의 경험들로 인해 책에서 말하는 도시에서의 자연 환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꼭 건축과 관련해 이해하지 않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불멍'이나 '자연 소리 asmr'같은 것들 역시 현대인들에게 '비움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자연을 대화의 상대로서 그리고 건축물들과 함께 사유할 여유를 주는 대상이 되게끔 건축물을 디자인해야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처음으로 해 봤다. 이 게임은 무슨 동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군데군데 갑자기 집이 있고 그 안에 총과 무기들이 떨어져 있는 이상한 게임이다. 유저는 시작부터 비행기에서 추락하는데 이 때 낙하산을 펼쳐서 원하는 지점에 떨어진 다음, 다짜고짜 총을 찾아서 누군가와 싸우면 된다. 나는 게임을 정말 못해서, 항상 외딴 곳에 홀로 떨어지곤 했다. 나는 그 경치가 정말 좋았다. 유저는 호수에서 수영을 할 수도 있다. 나는 그 게임을 할 때면 항상 수영을 하고, 가끔 자동차를 발견하면 유유히 드라이브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은 나의 행동을 싫어했지만 나는 낙하산으로 떨어지는 것을 못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게임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가상 현실 혹은 메타버스가 도시 환경을 보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메타버스라는 책을 보면 핀란드에 설치한 자판기에 눈을 넣으면 반대 편 싱가포르에서 인공 눈이 내리는 코카콜라의 프로젝트가 나온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냄새를 전달하는 기술에 대한 것도 언급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자연과 연결되어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과학 기술과 건축적 요소가 결합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의 골목길에서도 짠내를 맡을 수 있고, 공원과 호수의 푸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질적으로 동일한 경험이라 하더라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주는 경험과 실재의 세계가 주는 경험이 구분된다는 직관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프로젝트가 얼마나 매력적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직관이란 이동하는 것이며 현재 가상현실이 점점 더 실생활에서 받아들여지는 만큼 그러한 직관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건축에 가상 현실이 활용되어 조금 더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학우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번 글에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아 슬픈 마음에 대략적으로 대댓글의 주제를 잡아 봤는데 참고하여 답글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만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바람직할지(여러 측면에서 말씀해 주셔도 좋습니다)
2. 이러한 변화의 사례
3. 비슷한 생각, 혹은 경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써주셔도 좋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박리라2021-03-31 19:09
좋은 의견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문보설 학우님과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생각을 나누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동네에서만 살다가 서울로 올라왔기에 건물로 가로막혀 있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에서 적응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나가면 너무 ‘도시’ 같아서 괜히 꺼리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보설 학우님이 말씀해 주신 가상현실을 통한 새로운 직관이 지금보다 실생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면 인공적인 자연환경을 통해 조금이나마 ‘비움’의 경험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도입된다면 오히려 단절이 심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러 해안 도시로 찾아가고, 인공적인 건물이 없어 밀도가 낮은 공간에서 쉬기 위해 한강 공원으로 직접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건축에 가상현실이 적용되어 모두가 집 안에서만, 혹은 특정한 건물 안에서만 이런 경험을 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적으로 얼마나 윤택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에 따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혹은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드는, 사실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밖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다 보면 결국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내기 더 어려워져 사각지대가 더 넓어지는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까요? 물론,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해 현실의 자연환경과 가상현실 체험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면 좋겠지만 혹시나 나타날 수도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윤재빈2021-03-31 21:44
저는 부산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높은 빌딩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당시 부산에는 없었던 버스전용차선을 보며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몇 번 친구들과 서울에 놀러 왔었는데, 서울이 가진 그 역동성과 활발함에 매번 반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막상 서울에 살아보니 저도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없는 도시가 너무 멋졌는데, 그래서인지 어딜 가도 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의 한적함이 그리워지기도 했었습니다.
배틀그라운드 게임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네요 ㅎㅎ
과연 메타버스가 자연을 보완해줄 수 있을까요? 배틀그라운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한편으로는 그러고 있으면 오히려 자연을 실제로 누리지 못하고 인터넷 상에서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짠해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서울 중심의 도시 구조에서 벗어나서 지방에 더 많은 사람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도시 계획이니 뭐니 해서 지방도 요새 산을 깎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지방에는 자연이 보존되고 있고, 서울에 비하면 인구수도 적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높은 빌딩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당시 부산에는 없었던 버스전용차선을 보며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몇 번 친구들과 서울에 놀러 왔었는데, 서울이 가진 그 역동성과 활발함에 매번 반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막상 서울에 살아보니 저도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없는 도시가 너무 멋졌는데, 그래서인지 어딜 가도 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의 한적함이 그리워지기도 했었습니다.
배틀그라운드 게임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네요 ㅎㅎ
과연 메타버스가 자연을 보완해줄 수 있을까요? 배틀그라운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한편으로는 그러고 있으면 오히려 자연을 실제로 누리지 못하고 인터넷 상에서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짠해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서울 중심의 도시 구조에서 벗어나서 지방에 더 많은 사람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도시 계획이니 뭐니 해서 지방도 요새 산을 깎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지방에는 자연이 보존되고 있고, 서울에 비하면 인구수도 적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문지수2021-03-31 22:0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도시 환경을 보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과제하다 그냥 창 밖 하늘만 바라보아도 힐링이 되는데,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자연 공간이 메타버스로 구축된다면 확실히 마음의 여유와 힐링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언택트 시대 속 계속해서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러한 자연의 모습 역시 전자기기를 통해 바라본다는 것이 바라볼 수 있지만 실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 회의감을 느끼게 하거나 단순한 전자기기 사용으로 오는 피로감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냄새도 전달해주는 등 발전한 메타버스가 등장한다면 확실히 바쁜 현대 사회 속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고, 이곳저곳 여행하기 불편한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강혜진2021-03-31 23:18
자연이나 사람과의 교류가 어려운 환경이고, 그런 것들이 가능하게 만든 서울숲 같은 공간도 지리적인 접근성이 떨어져서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된 시점에 갑갑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학우 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많으신 것 같네요..!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감정들, 경험들이 만들어졌던 이유를 짚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공간의 모습을 보고, 이전에 과학기술을 다루던 수업에서 나온 가상현실이 떠올라 답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 Linden Lab에서 만든 Second Life라는 가상현실인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그 안에서 다른 resident를 만나고, 작은 소모임을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바다에서 서핑과 같은 여가를 즐기기도 하고, 쇼핑, 건축, 교환, 종교활동, 고등교육 등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행위들이 가능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공간을 방문하고, 이미 존재하는 자연물 외에 자신이 추가한 어떤 환경에 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말씀해주신 부분과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인지는 아직 의문인 것 같아요. 자연과 가까이 있는 것과 관련한 욕구는 단순히 "내가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무언가 교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충족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다만 제가 언급한 연구에서 나온 것은 개인이 가진 신체적인 조건의 한계로 접근할 수 없었던 부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한 지점도 다루고 있어서, 보설님이 말씀해주신 형태 역시 충분한 자연을 마주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보완재로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직접 접하는 것을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의 어려움을 보완하는 형태로, 조금의 환기가 가능한 방식이 되지 않을까요?
좋은 글과 흥미로운 질문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해당 가상현실에 대해서 Tom Boellstorff가 연구를 진행했는데, 혹시나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Our Digital Selves: My Avatar is Me [full feature film]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등을 살펴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말씀해주신 공간의 모습을 보고, 이전에 과학기술을 다루던 수업에서 나온 가상현실이 떠올라 답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 Linden Lab에서 만든 Second Life라는 가상현실인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그 안에서 다른 resident를 만나고, 작은 소모임을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바다에서 서핑과 같은 여가를 즐기기도 하고, 쇼핑, 건축, 교환, 종교활동, 고등교육 등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행위들이 가능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공간을 방문하고, 이미 존재하는 자연물 외에 자신이 추가한 어떤 환경에 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말씀해주신 부분과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인지는 아직 의문인 것 같아요. 자연과 가까이 있는 것과 관련한 욕구는 단순히 "내가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무언가 교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충족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다만 제가 언급한 연구에서 나온 것은 개인이 가진 신체적인 조건의 한계로 접근할 수 없었던 부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한 지점도 다루고 있어서, 보설님이 말씀해주신 형태 역시 충분한 자연을 마주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보완재로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직접 접하는 것을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의 어려움을 보완하는 형태로, 조금의 환기가 가능한 방식이 되지 않을까요?
좋은 글과 흥미로운 질문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해당 가상현실에 대해서 Tom Boellstorff가 연구를 진행했는데, 혹시나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Our Digital Selves: My Avatar is Me [full feature film]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등을 살펴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김재민2021-03-31 23:36
ㅋㅋ보설님 안녕하세요! 글 말미에, 저번 글에 댓글이 달리지 않아 슬프셨다는 소리에 대댓을 달지 않을 수 없었네요.
우선 배틀그라운드 예시가 참 좋아요. 저도 한때 휴학하고 게임 대회 출전 준비할만큼,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에 깊게 빠져있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다른 화려한 그래픽을 가진 FPS에 비해 배틀그라운드가 인기를 끈건, 잘 포착하신 바와 같이 "현실성있는 그래픽과 자연환경"아닐까 싶어요. 지금 20대 중 꽤나 대다수는, 어린 시절 시골의 향토적 풍경에 대한 향수가 있더라구요. 저 역시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면 보였던 은하수가 뇌리에서 도저히 사라지지 않아서, 종종 여행갈때면 그런 어둑한 밤하늘을 찾아나서곤 해요. 밤하늘을 수놓는 서울의 빛은 그 화려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면, 한편으론 밤 하늘의 별을 가리는만큼, 우리는 이 도시에 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자연과 상당히 차단되어있어요. 그 속에서 연못, 하늘, 산, 들판은 우리에게 그 향토적 정서를 다시금 환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여겨졌었습니다.
저 역시 도시라는 공간이 자연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동감하며, 그러나 그 방향이 단순히 자연이 아닌 복합자연의 형태로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자연 속에서 IoT나 기술이 어울어지는 공간, 최첨단 자연이라는 말이 어울릴까요? 좀 더 도시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겠지만, 어쨋든 우리가 가진 기술과 제반환경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게임 등 가상환경, 메타버스 등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본초적 갈망을 충족하는 것도 좋은 대안처럼 보입니다!
사실 현재 서울이라는 도시의 환경생태화 흐름을 더 잘 안다면 깊은 논의가 가능할 것 같은데, 그점이 없는게 좀 아쉽네여:)
우선 배틀그라운드 예시가 참 좋아요. 저도 한때 휴학하고 게임 대회 출전 준비할만큼,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에 깊게 빠져있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다른 화려한 그래픽을 가진 FPS에 비해 배틀그라운드가 인기를 끈건, 잘 포착하신 바와 같이 "현실성있는 그래픽과 자연환경"아닐까 싶어요. 지금 20대 중 꽤나 대다수는, 어린 시절 시골의 향토적 풍경에 대한 향수가 있더라구요. 저 역시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면 보였던 은하수가 뇌리에서 도저히 사라지지 않아서, 종종 여행갈때면 그런 어둑한 밤하늘을 찾아나서곤 해요. 밤하늘을 수놓는 서울의 빛은 그 화려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면, 한편으론 밤 하늘의 별을 가리는만큼, 우리는 이 도시에 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자연과 상당히 차단되어있어요. 그 속에서 연못, 하늘, 산, 들판은 우리에게 그 향토적 정서를 다시금 환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여겨졌었습니다.
저 역시 도시라는 공간이 자연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동감하며, 그러나 그 방향이 단순히 자연이 아닌 복합자연의 형태로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자연 속에서 IoT나 기술이 어울어지는 공간, 최첨단 자연이라는 말이 어울릴까요? 좀 더 도시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겠지만, 어쨋든 우리가 가진 기술과 제반환경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게임 등 가상환경, 메타버스 등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본초적 갈망을 충족하는 것도 좋은 대안처럼 보입니다!
사실 현재 서울이라는 도시의 환경생태화 흐름을 더 잘 안다면 깊은 논의가 가능할 것 같은데, 그점이 없는게 좀 아쉽네여:)
박리라2021-03-31 12:24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도시 풍경이나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과 같이 도시와 관련된 여러 요소와 특징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 도시를 생각하면서 관심이 갔던 주제는 ‘펜트하우스’와 ‘걷고 싶은 거리’였다.
저자는 펜트하우스가 다른 거주공간보다 비싼 이유를 옥탑방을 비교하며 설명할 때 ‘보안 게이트’의 유무를 결정적인 차이로 소개한다. 즉, 펜트하우스는 보안 게이트를 통해 공간의 권력을 사게 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다른 수업에서 다룬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개념이 펜트하우스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수업에서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도시민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도시적 두려움(urban fear)’에 기인하여 등장하게 된 계급적 전략의 산물이라고 정의했었다. 그렇다면, 점점 도시민의 삶을 동떨어지게 분리하는 펜트하우스의 게이티드 커뮤니티적 특징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 강화되는 것은 아닐까? 즉, 이제는 단순히 경제적 상황에 따른 계층의 분류로 나타나는 펜트하우스가 국적이나 출신 지역과 같은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걸러내는 기능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인터넷에서 어떤 아파트 단지에 ‘중국’에서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단지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게이티드 커뮤니티처럼 단지 출입 시 보안 게이트를 설치하여 입국 심사대처럼 국적을 확인하는 단계는 아니더라도 도시 공간 안에서의 배타성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측면에서 ‘우연성’이 발생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모이는 거리나 카페, 노래방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러한 도시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아는 척을 하거나 인사를 나누지 않더라도 다양한 사람을 스쳐 지나갈 수 있다. 나와 다른 배경에서 자라왔고, 생활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런 공간의 사용이 제한되다 보니 이럴 가능성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렇게 되다면 우리가 펜트하우스와 같은 특정 사람에게만 허락된 공간에 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레 도시 전체가 하나의 펜트하우스처럼 분절된 공간으로 변화하지는 않을지 생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걷고 싶은 거리’와 관련하여 도시 공간을 계획하는 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고 싶었다. 계획 담당자들이 공원이나 광장, 거리를 구성하는 과정을 아무런 준비나 연구 없이 진행하는 게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공간의 존재 목적, 혹은 도시 전반에 미칠 영향을 기대하고 계획했겠지만, 책에서 소개한 광화문 광장과 같은 예시를 보면 그저 지나쳐가는 장소로 기능할 뿐이다. 그런데,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거리에서 걷고 싶은 분위기 형성이 훨씬 쉽다고 했을 때 서울의 피맛골 혹은 최근 이야기되고 있는 을지로 재개발과 같은 정부 사업은 결국 도시민의 자연스러운 경험을 무시하고 정책 결정자들이 본인들만의 생각으로 기획하여 실패할 위험이 커진 도시계획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단순히 재임 기간 내에 ‘깔끔’한 인상의 거리를 만들어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기 위해 해당 거리가 갖는 독특성을 파괴해 찾고 싶지 않은 거리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도시계획과 도시 공간을 일상적으로 점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혹은 어떻게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펜트하우스가 다른 거주공간보다 비싼 이유를 옥탑방을 비교하며 설명할 때 ‘보안 게이트’의 유무를 결정적인 차이로 소개한다. 즉, 펜트하우스는 보안 게이트를 통해 공간의 권력을 사게 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다른 수업에서 다룬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개념이 펜트하우스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수업에서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도시민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도시적 두려움(urban fear)’에 기인하여 등장하게 된 계급적 전략의 산물이라고 정의했었다. 그렇다면, 점점 도시민의 삶을 동떨어지게 분리하는 펜트하우스의 게이티드 커뮤니티적 특징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 강화되는 것은 아닐까? 즉, 이제는 단순히 경제적 상황에 따른 계층의 분류로 나타나는 펜트하우스가 국적이나 출신 지역과 같은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걸러내는 기능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인터넷에서 어떤 아파트 단지에 ‘중국’에서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단지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게이티드 커뮤니티처럼 단지 출입 시 보안 게이트를 설치하여 입국 심사대처럼 국적을 확인하는 단계는 아니더라도 도시 공간 안에서의 배타성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측면에서 ‘우연성’이 발생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모이는 거리나 카페, 노래방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러한 도시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아는 척을 하거나 인사를 나누지 않더라도 다양한 사람을 스쳐 지나갈 수 있다. 나와 다른 배경에서 자라왔고, 생활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런 공간의 사용이 제한되다 보니 이럴 가능성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렇게 되다면 우리가 펜트하우스와 같은 특정 사람에게만 허락된 공간에 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레 도시 전체가 하나의 펜트하우스처럼 분절된 공간으로 변화하지는 않을지 생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걷고 싶은 거리’와 관련하여 도시 공간을 계획하는 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고 싶었다. 계획 담당자들이 공원이나 광장, 거리를 구성하는 과정을 아무런 준비나 연구 없이 진행하는 게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공간의 존재 목적, 혹은 도시 전반에 미칠 영향을 기대하고 계획했겠지만, 책에서 소개한 광화문 광장과 같은 예시를 보면 그저 지나쳐가는 장소로 기능할 뿐이다. 그런데,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거리에서 걷고 싶은 분위기 형성이 훨씬 쉽다고 했을 때 서울의 피맛골 혹은 최근 이야기되고 있는 을지로 재개발과 같은 정부 사업은 결국 도시민의 자연스러운 경험을 무시하고 정책 결정자들이 본인들만의 생각으로 기획하여 실패할 위험이 커진 도시계획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단순히 재임 기간 내에 ‘깔끔’한 인상의 거리를 만들어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기 위해 해당 거리가 갖는 독특성을 파괴해 찾고 싶지 않은 거리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도시계획과 도시 공간을 일상적으로 점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혹은 어떻게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채수형2021-03-31 13:29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걷고 싶은 거리와 관련되어 저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데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제는 산책조차 조심히 마스크를 써야 하며, 연인과의 데이트나 친구들과 같이 만나서 걸어가는 것 또한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개개인의 야외에서 걷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록, 사람들은 걷고 싶다는 것에 대한 욕구를 분출 하고 싶어질 것이고(저 같은 경우도 집에 엄청 오래 박혀있다 보니 밤에 나가서 산책하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던 시기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공간적인 대안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속도가 느리고, 다양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어 심심하지 않은 거리만이 '걷고 싶은 거리'가 아니라; 가령 보행자들간의 거리가 확보되고 방역이 잘 준수되는 거리 등과 같은 여러 조건들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탈퇴한 회원2021-03-31 14:44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면서 크게 봤을 때 하나의 일관된 논리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도시 그리고 공간에 대해서 사람과 소통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현재 건축의 실태와 바람직한 도시 공간의 필요성을 다양한 부분에서 말해주고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역시 하나의 현상은 우리의 삶 매우 구석구석 다양한 부분과 연관짓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내 집, 나의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현재 세태가 좀 슬프다고 느꼈습니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아버지와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그냥 열심히, 하던 일에 충실하다 보니 내 공간, 안락한 집이 생겼다고 들었는데, 그 시대와는 다르게 지금은 현실적,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여도 가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값의 계속적 상승과 더불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획일화된 아파트와 원룸 등이 과연 나만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지점도 고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이런 공간에서는 구조적으로도 다른 사람, 자연과 소통하기 힘들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번 한국 사회 시간에서도 다루었지만, 현재 개인주의와 원자화가 가속화되고 개인의 사적 공간이 중요시되는 가치관,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그리고 사회와 더불어 건축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변화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경제적 현실, 소통, 사적 공간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함께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수업처럼 코로나라는 변화의 시기가 공간에 대해서도 오히려 고민의 장으로서 기능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볼 점.
1. GPS 등 타 요소의 거리와 도시에의 영향.
책의 첫 장, 걷고 싶은 거리 부분을 읽으면서 제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골목골목마다 다 비슷하게 생겨서 어디가 어디인지, 카카오 맵, 네이버 지도 앱 같은 GPS 시스템 없이는 다닐 수 없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익선동 등 새로운 거리를 갈 때는 항상 사용하곤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걷고 싶은 거리에는 GPS와 같이 다른 분야의 요소들도 많이 개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사람, 건축물 외에 공간, 도시, 접근성 등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포스트 코로나와 공간 사용의 변화, 그리고 미래
코로나는 우리 삶의 전반적인 양상, 그리고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그 중, 공간의 사용과 밀도라는 점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 굉장히 밀도 있게 공간을 활용해 왔습니다. 언제나 공공으로서 함께, 모여서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던 우리에게 코로나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재택근무, 온라인 강의 등 비대면의 양상들은 서로 간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코로나 이전이 그립기도 하지만, 이런 변화들은 그전까지 간과되었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필요할 때에 접촉하는 것의 편리함, 효율성 등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도시 공간과 사용은 어떤 식으로 변화해나갈까요 ?
참고 –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와 새로운 도시, 조재성, 2020
우선 책을 읽으면서 내 집, 나의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현재 세태가 좀 슬프다고 느꼈습니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아버지와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그냥 열심히, 하던 일에 충실하다 보니 내 공간, 안락한 집이 생겼다고 들었는데, 그 시대와는 다르게 지금은 현실적,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여도 가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값의 계속적 상승과 더불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획일화된 아파트와 원룸 등이 과연 나만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지점도 고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이런 공간에서는 구조적으로도 다른 사람, 자연과 소통하기 힘들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번 한국 사회 시간에서도 다루었지만, 현재 개인주의와 원자화가 가속화되고 개인의 사적 공간이 중요시되는 가치관,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그리고 사회와 더불어 건축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변화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경제적 현실, 소통, 사적 공간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함께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수업처럼 코로나라는 변화의 시기가 공간에 대해서도 오히려 고민의 장으로서 기능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볼 점.
1. GPS 등 타 요소의 거리와 도시에의 영향.
책의 첫 장, 걷고 싶은 거리 부분을 읽으면서 제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골목골목마다 다 비슷하게 생겨서 어디가 어디인지, 카카오 맵, 네이버 지도 앱 같은 GPS 시스템 없이는 다닐 수 없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익선동 등 새로운 거리를 갈 때는 항상 사용하곤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걷고 싶은 거리에는 GPS와 같이 다른 분야의 요소들도 많이 개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사람, 건축물 외에 공간, 도시, 접근성 등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포스트 코로나와 공간 사용의 변화, 그리고 미래
코로나는 우리 삶의 전반적인 양상, 그리고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그 중, 공간의 사용과 밀도라는 점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 굉장히 밀도 있게 공간을 활용해 왔습니다. 언제나 공공으로서 함께, 모여서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던 우리에게 코로나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재택근무, 온라인 강의 등 비대면의 양상들은 서로 간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코로나 이전이 그립기도 하지만, 이런 변화들은 그전까지 간과되었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필요할 때에 접촉하는 것의 편리함, 효율성 등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도시 공간과 사용은 어떤 식으로 변화해나갈까요 ?
참고 –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와 새로운 도시, 조재성, 2020
조단2021-03-31 16:15
우리가 살고 있지만, 오히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인식을 못하고 있던 ‘도시’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느꼈다. 무심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며 앞으로만 걸어갔던 거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그 나라,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왔고 또 반대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는 사실을 여러 사진 예시와 함께 제시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불편한 교회와 편안한 절을 다룬 부분이 인상 깊었다.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나 역시 생각해보니 등산을 할 때마다 절이 보이면 큰 거리낌 없이 절 안에 들어가 구경을 했었다. 그런데 분명 외관이 아름다운 교회도 많이 존재하고 심지어 절보다 접근성도 좋은게 기독교가 아닌 친구들이 교회를 들어가봤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막연하게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각 종교시설의 운영상의 차이점이나 공간의 구성 방식의 차이점을 언급하며 설명해주신 부분이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
나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20년 동안 살다가 작년에 대학교를 입학하면서 현재는 서울에 거주한다. 전주에서 살 동안, 나는 전주에 대한 불편함과 이상함을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맛있는 음식점과 카페들 그리고 심심할 때 놀러 가는 영화관이나 백화점 등 나의 삶에 필요한 장소들이 모두 있었기 때문이다. TV나 인스타를 봐도 서울이나 부산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순순했던 생각은 서울에 오자마자 크게 바뀌었다. 전주에서 시험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러가는 곳은 크게 두 군데였다. ‘시내’라고 불리는 구도심과 전북대학교 앞 대학로이다. (‘시내’라는 개념을 지방사람들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뒤, 크게 충격 받은 적이 있었다.) 최근에 외각지역 재개발을 통해 생긴 ‘신시가지’까지 포함해봤자 세군데이다. 하지만 서울은 지하철 역마다 번화가가 존재했다. 우리가 시내라고 불리는 정도의 크기는 사실 서울 하나의 지하철 역세권과 비슷했다. (지하철이 인간의 삶의 질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크게 끼치는 지도 서울 살면서 알게 됐고 한동안 지하철 타는 게 재밌어서 일부러 2호선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또한 쇼핑몰이라는 개념도 생소했다. 전주에서는 백화점이면 백화점, 대형마트면 대형마트 이렇게 딱 구분되어 있는 것이 당연했다. 당장 광주만 가도 있는 유스퀘어와 같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은 호텔, 백화점, 몰, 지하상가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거대한 도시가 또 하나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런 서울이 정신 없다고 하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 출신의 사람으로서 너무나 신기한 경험들의 연속이었고 일년이 넘은 지금도 질리지가 않는다.
더 얘기하고 싶은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다. 서울 토박이 친구들을 만나면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이렇게 크게 벌어진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여기에 계신 학우분들 중 반절은 지방 출신일 것이다. 각자 상경을 하고 느꼈던 서울에 대한 감상과 본인의 고향과의 차이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다.
특히 불편한 교회와 편안한 절을 다룬 부분이 인상 깊었다.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나 역시 생각해보니 등산을 할 때마다 절이 보이면 큰 거리낌 없이 절 안에 들어가 구경을 했었다. 그런데 분명 외관이 아름다운 교회도 많이 존재하고 심지어 절보다 접근성도 좋은게 기독교가 아닌 친구들이 교회를 들어가봤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막연하게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각 종교시설의 운영상의 차이점이나 공간의 구성 방식의 차이점을 언급하며 설명해주신 부분이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
나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20년 동안 살다가 작년에 대학교를 입학하면서 현재는 서울에 거주한다. 전주에서 살 동안, 나는 전주에 대한 불편함과 이상함을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맛있는 음식점과 카페들 그리고 심심할 때 놀러 가는 영화관이나 백화점 등 나의 삶에 필요한 장소들이 모두 있었기 때문이다. TV나 인스타를 봐도 서울이나 부산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순순했던 생각은 서울에 오자마자 크게 바뀌었다. 전주에서 시험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러가는 곳은 크게 두 군데였다. ‘시내’라고 불리는 구도심과 전북대학교 앞 대학로이다. (‘시내’라는 개념을 지방사람들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뒤, 크게 충격 받은 적이 있었다.) 최근에 외각지역 재개발을 통해 생긴 ‘신시가지’까지 포함해봤자 세군데이다. 하지만 서울은 지하철 역마다 번화가가 존재했다. 우리가 시내라고 불리는 정도의 크기는 사실 서울 하나의 지하철 역세권과 비슷했다. (지하철이 인간의 삶의 질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크게 끼치는 지도 서울 살면서 알게 됐고 한동안 지하철 타는 게 재밌어서 일부러 2호선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또한 쇼핑몰이라는 개념도 생소했다. 전주에서는 백화점이면 백화점, 대형마트면 대형마트 이렇게 딱 구분되어 있는 것이 당연했다. 당장 광주만 가도 있는 유스퀘어와 같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은 호텔, 백화점, 몰, 지하상가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거대한 도시가 또 하나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런 서울이 정신 없다고 하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 출신의 사람으로서 너무나 신기한 경험들의 연속이었고 일년이 넘은 지금도 질리지가 않는다.
더 얘기하고 싶은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다. 서울 토박이 친구들을 만나면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이렇게 크게 벌어진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여기에 계신 학우분들 중 반절은 지방 출신일 것이다. 각자 상경을 하고 느꼈던 서울에 대한 감상과 본인의 고향과의 차이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다.
손지우2021-03-31 23:59
조단님의 경험이 담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저 또한 지방에서 상경한 지 벌써 5년 차 임에도 여전히 서울의 화려함에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가끔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마찬가지로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크게 느끼기도 합니다. 상경 첫해, 고향에는 없는 Subway의 샌드위치를 먹어보겠다고 고등학교 동창들이 서울로 여행을 왔던 기억도 나네요. 그곳에서만 살 때는 몰랐지만 바깥을 경험해보니 알게 되는 부족함과 불편함이 많다는 걸 서울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점점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울 친구들을 데리고 본가에 방문을 할 때 친구들이 대개 '이런 시골이 있다고?'라거나 '나는 자연인이다 수준인데?'라며 놀라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의 서울에 대한 환상 탓 만도 아닌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한강 공원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잠수교나 노들섬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하고, 가로수길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면 도시의 아름다움이 물씬 느껴지면서도 자연에서 마냥 동떨어진 것 같지만은 않은 느낌을 받습니다. 반면 제 본가가 있는 곳은 집 사방을 따라 논밭이 있고, 마을 한 가운데를 고목이 지키며, 날이 좋은 밤에는 하늘에 은하수가 떠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서울과는 또 다른 여유롭고 느긋하며, 자연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날 것의 아름다움인 것 같습니다.
'미래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니?'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이 두 가지 아름다움이 치열하게 대립합니다. '벽 한 면이 통유리로 되어있고, 그 밖으로 한강과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고층 아파트에서 지내며 낮에는 가로수길에서 커피 한잔을 즐기는 삶'과 '시골에서 마당 넓은 주택을 지어두고 아침에는 마당에 심어둔 채소를 수확해 샐러드를 해 먹고 저녁에는 은하수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의 충돌입니다. 제 본가가 유독 시골에 위치해 극과 극을 경험하였다 보니 더욱 고민이 되는 것도 같고,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의 저자 또한 던지고 있는 물음인 '도시에서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듯 합니다.
조단님께서는 말씀하신 서울과 지방의 격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또한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또한 지방에서 상경한 지 벌써 5년 차 임에도 여전히 서울의 화려함에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가끔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마찬가지로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크게 느끼기도 합니다. 상경 첫해, 고향에는 없는 Subway의 샌드위치를 먹어보겠다고 고등학교 동창들이 서울로 여행을 왔던 기억도 나네요. 그곳에서만 살 때는 몰랐지만 바깥을 경험해보니 알게 되는 부족함과 불편함이 많다는 걸 서울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점점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울 친구들을 데리고 본가에 방문을 할 때 친구들이 대개 '이런 시골이 있다고?'라거나 '나는 자연인이다 수준인데?'라며 놀라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의 서울에 대한 환상 탓 만도 아닌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한강 공원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잠수교나 노들섬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하고, 가로수길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면 도시의 아름다움이 물씬 느껴지면서도 자연에서 마냥 동떨어진 것 같지만은 않은 느낌을 받습니다. 반면 제 본가가 있는 곳은 집 사방을 따라 논밭이 있고, 마을 한 가운데를 고목이 지키며, 날이 좋은 밤에는 하늘에 은하수가 떠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서울과는 또 다른 여유롭고 느긋하며, 자연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날 것의 아름다움인 것 같습니다.
'미래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니?'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이 두 가지 아름다움이 치열하게 대립합니다. '벽 한 면이 통유리로 되어있고, 그 밖으로 한강과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고층 아파트에서 지내며 낮에는 가로수길에서 커피 한잔을 즐기는 삶'과 '시골에서 마당 넓은 주택을 지어두고 아침에는 마당에 심어둔 채소를 수확해 샐러드를 해 먹고 저녁에는 은하수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의 충돌입니다. 제 본가가 유독 시골에 위치해 극과 극을 경험하였다 보니 더욱 고민이 되는 것도 같고,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의 저자 또한 던지고 있는 물음인 '도시에서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듯 합니다.
조단님께서는 말씀하신 서울과 지방의 격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또한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최민정2021-03-31 16:39
책 제목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할 수 없는 두 가지가 공존할 때 도시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 두 가지는 다양성과 보이드(void)였다.
동양과 서양, 자연과 건물, 실내와 실외, 넓은 길과 좁은 길, 궁과 레스토랑 등. 정체성과 안정성을 뒤흔드는 조합이다. 구성 요소가 단일함에 가까울수록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은 증대될 것이다. 하지만 단세포 생물이 오랜 세월을 견뎌내기 어려운 것처럼, 그 편안함에 속아 그토록 지키고 싶던 정체성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근시안적으로 다양성으로 가득 채우는 것 또한 위험하다. 포화 상태는 새로운 가능성을 포용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공간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으로 가득 차버리면 앞으로 다가올 잠재력을 맞이할 여력이 없어진다.
건축에 관점에서 다양성과 보이드를 이야기하는데, 자연스레 우리 삶이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삶 속에서 다양성을 채워넣고자 이어온 일련의 노력이 1970년대 재개발을 위해 하나둘씩 비어 있는 땅에 건물을 세워올린 이미지와 오버랩되었다. 그 덕에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넓게 배운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리 배우고 경험하고 채워도 옆 사람에 비교하면, 마치 옆 나라에 우뚝 솟은 초고층빌딩처럼, 아직도 한없이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숨이 턱턱 막히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이 책은 ‘보이드’를 일깨워주었다. 적당한 비어 있음이 필요하다. 그 여유는 힘들 때 쉴 수 있게 해주고,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올 수 있게 해주고,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따스한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게 해준다.
다양성과 보이드를 고려한 건축가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만들어내듯이, 다양성과 보이드를 세심하게 반영하는 인생의 건축가가 되어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동양과 서양, 자연과 건물, 실내와 실외, 넓은 길과 좁은 길, 궁과 레스토랑 등. 정체성과 안정성을 뒤흔드는 조합이다. 구성 요소가 단일함에 가까울수록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은 증대될 것이다. 하지만 단세포 생물이 오랜 세월을 견뎌내기 어려운 것처럼, 그 편안함에 속아 그토록 지키고 싶던 정체성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근시안적으로 다양성으로 가득 채우는 것 또한 위험하다. 포화 상태는 새로운 가능성을 포용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공간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으로 가득 차버리면 앞으로 다가올 잠재력을 맞이할 여력이 없어진다.
건축에 관점에서 다양성과 보이드를 이야기하는데, 자연스레 우리 삶이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삶 속에서 다양성을 채워넣고자 이어온 일련의 노력이 1970년대 재개발을 위해 하나둘씩 비어 있는 땅에 건물을 세워올린 이미지와 오버랩되었다. 그 덕에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넓게 배운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리 배우고 경험하고 채워도 옆 사람에 비교하면, 마치 옆 나라에 우뚝 솟은 초고층빌딩처럼, 아직도 한없이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숨이 턱턱 막히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이 책은 ‘보이드’를 일깨워주었다. 적당한 비어 있음이 필요하다. 그 여유는 힘들 때 쉴 수 있게 해주고,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올 수 있게 해주고,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따스한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게 해준다.
다양성과 보이드를 고려한 건축가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만들어내듯이, 다양성과 보이드를 세심하게 반영하는 인생의 건축가가 되어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조용수2021-03-31 17:22
이 책을 읽으면서 평소 거의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거리, 도시, 건축물 등의 평가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 카페가 많은 이유를 거실의 개념으로 설명한 것과 아파트에 방과 거실을 연결하는 창문을 내어야 한다는 주장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도심의 건물이 획일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에는 건축이 어떻게든 답을 찾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책에서도 나오듯 사람은 가능하다면 항상 남들과 다른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또 건축은 그런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궁금한 점은 도시화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다. 책 중간에 로프트와 쫒겨난 예술가들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오기는 하나, 이 책의 초점은 그런 쪽에 맞추어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뉴욕의 로프트, ‘먼 훗날 우리’에 나오는 개미굴 같은 판자촌 그리고 우리나라의 달동네처럼 도심화가 진행되며 사회적 약자들이 점점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이 사회적 현상인 것 같은데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인지, 혹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느끼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궁금한 점은 도시화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다. 책 중간에 로프트와 쫒겨난 예술가들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오기는 하나, 이 책의 초점은 그런 쪽에 맞추어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뉴욕의 로프트, ‘먼 훗날 우리’에 나오는 개미굴 같은 판자촌 그리고 우리나라의 달동네처럼 도심화가 진행되며 사회적 약자들이 점점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이 사회적 현상인 것 같은데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인지, 혹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느끼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이재용2021-04-01 00:00
짧지만 간결하면서도 임팩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문단의 사회적 현상에 대해선 저희가 이전에 나누었던 한국 사회의 문제와 연관지어 설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 생각을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이 책 저자는 '저자가 구상한 도시에 살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도시'에 초점을 두어 책을 썼기 때문에 이 사회적 현상을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본 것이 아닌 논외로 둔 것 같습니다. 이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해 보면, 현실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발생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위한 도시 계획을 구상한다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원재희2021-03-31 17:52
'도시'는 촌락과 더불어 인간의 2대 거주 형태이며, 사회적/경제적/정치적 활동의 중심이 되는 장소이다. 책을 들어 읽기 전, 제목만 보았을 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말이 '도시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생각을 던져주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내게는 위 제목이 '도시는 무엇 덕분에 살아나는가'로 보인다.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궁극적으로 한국 도시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우리의 도시와, 나아가 사람들이 활기를 띠며 살아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들이 갖추어지고 무엇이 고쳐져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점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공원에 관한 저자의 통찰이었다. 건물만 건축가의 관심 대상인 줄 알았는데, 공원과 같은 주변의 장소까지도 신경을 쓰는 모습에서 건축가의 인간에 대한 큰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다양한 공간 체험, 이벤트, 날씨 등이 반영된 공간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더 많은 평수로 쌓아져간다는 부분을 읽고 나서는 매일 가지만 매번 새로운 집앞 산책길이 떠올라 깊은 공감이 우러나왔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멀리 여행이나 나들이를 가지 못하니, 많은 사람들이 집 근처 공원 및 산책길로 모여드는 것 같다. 덕분에 나 또한 도심 속 자연의 소중함과 다채로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학우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이 있다. '좋은 공원'을 만든다면 어떠한 요소들을 추가해야 할까?이 책에서 소개한 여러 팁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공원을 머릿속으로라도, 학우들과 함께 설계해보고 싶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공원에 관한 저자의 통찰이었다. 건물만 건축가의 관심 대상인 줄 알았는데, 공원과 같은 주변의 장소까지도 신경을 쓰는 모습에서 건축가의 인간에 대한 큰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다양한 공간 체험, 이벤트, 날씨 등이 반영된 공간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더 많은 평수로 쌓아져간다는 부분을 읽고 나서는 매일 가지만 매번 새로운 집앞 산책길이 떠올라 깊은 공감이 우러나왔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멀리 여행이나 나들이를 가지 못하니, 많은 사람들이 집 근처 공원 및 산책길로 모여드는 것 같다. 덕분에 나 또한 도심 속 자연의 소중함과 다채로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학우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이 있다. '좋은 공원'을 만든다면 어떠한 요소들을 추가해야 할까?이 책에서 소개한 여러 팁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공원을 머릿속으로라도, 학우들과 함께 설계해보고 싶다.
최서원2021-03-31 20:13
안녕하세요 재희님! 저 역시도 공원에 대한 내용이 인상깊어 개인적으로 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했기에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남겨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공원'이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우리 주변의 공간들은 생각보다 누군가에겐 적합하지만, 누군가에겐 적합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동네마다있는 도시 근린공원은 사람들이 나가 조깅을 하기엔 좋은 공간이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기엔 좁아 부적합한 공간입니다. 또, 서울숲은 가족단위로 피크닉을 가거나 친구들끼리 놀러가기엔 좋지만, 주민들이 편하게 나가 놀기엔 저자의 말처럼 다소 동떨어진 공간에 존재합니다. 학교 운동장은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공간이지만, 학교 구성원이 아니면 편하게 사용할 수 없고, 아이들조차도 학교 문이 닫히면 이용할 수 없기에 한정적으로만 활용된다는 한계점을 지닙니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다양한 공간들은 누군가에게는 적합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적합하지 않는데, 저는 그 이유가 공간의 면적과 분포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당연히 좁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긴 한계가 있고, 한곳에만 몰려있다면 누군가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도시공간 구석구석을 공원화하며 어떤 곳은 친구들끼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을, 또 어떤 곳은 편하게 자전거를 타고 놀 수 있는 곳을, 또 어떤 곳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을 구축한다면 그야말로 공원을 일상에서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차가 다니는 도로가 많아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허무맹랑한 제안이지만 ㅎㅎ.. 유럽 거리의 여유로운 풍경처럼 공원화된 한국의 거리들도 힐링 스팟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서림2021-04-01 16:06
안녕하세요! 글 말미에 던져주신 질문을 보고 막연하게 떠올려 본 건 설계자가 이용자에게 강제하는 것 없이 열려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책에 나온대로 연립주택 앞에 마당같이 마련된 공간에서 하늘만 머리에 두고 온갖 놀이를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어린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할 수 있는 것의 반경이 제한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놀이터에서 여러 가지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그것들을 변주해서 또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겠지만요. 더 넓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공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유리2021-03-31 18:46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건축’의 물리적 실체 뒤에 숨겨진 사람의 삶과 관련된 요소들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에 대한 저자의 참신한 발견과 통찰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특히 거리와 광장 주변의 상점들이 사람들이 그 공간에 머무르고 쉬게 하는 데에 그렇게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의 대도시의 건축에 대해서 그렇게 우호적인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다. 효율성과 비용 절감만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건물들과 지저분한 거리, 그리고 획일적인 아파트 세대들. 몇몇 공공 건축에 대해서도 사실 아름답다는 이미지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서울의 풍경이 마치 신분 상승 및 표현의 ‘욕망’만을 드러내는 곳이라고 느꼈다. 몇몇 건축물들은 군사독재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정부(정치)가 바라는 이데올로기를 실체로 재현해주는 프로젝트, 즉 건축의 이용자를 향한 것 외의 다른 목적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울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조금 갖게 되긴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시에 좋은 (공공) 건축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발견하려 애썼던 개인적인 화두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나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책 말미에 제대로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훌륭한 건축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곧 내 질문에 대한 간접적인 답이 된 셈이다. 건축물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책에서 제시했고, 그 방법을 통해 조금이라도 스스로 건축을 보는 눈이 생겼다. 좋은 공공 건축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국 시민들 스스로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의 의견을 많이 표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 책은 그를 위한 첫 단계를 제시해준 셈이다.
경상남도 창원에서 올라와 어쩌면 앞으로 긴 시간 동안 서울에서 살아가야 할 나에게 서울은 사실 치열한 생존의 장 정도로 여겨진다. 어딜 가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나의 공간(내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꿈은 소원하고, 나는 이 넓은 도시를 지하철을 타며 이리저리 옮겨다닐 뿐이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학교 후문에서 낙성대역을 가는 사이에 있는 낙성대 공원이다. 가끔 여기를 거닐며 혼자 생각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 공원 안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안전하게 혼자가 되어볼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거실과 집의 공간이 부족한 사람들 모두에게 무엇인가를 돌려주는 공원 같은 공공의 공간들이 세심한 설계 하에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온전한 집을 가지기 힘든 이 도시에서는.
이 책을 읽고 다른 학우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건축이 참 좋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본다면 좋은 건축의 조건을 몇가지 더 스스로 발견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슷한 질문으로 둘째, ‘우리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싫어하는 건물은?’
셋째, 요즘 신축 아파트들은 모두 커뮤니티 시설이라는 것이 잘 갖추어져 있다. 즉 아파트 단지 내에 프라이빗 파티공간, 사우나, 스포츠 시설 등의 부가 시설을 짓고 입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시설들이 입주민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리할지 모르나 한 편으로는 갈수록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남들을 구분짓고, 해당 커뮤니티 내에서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학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서울에서는 특히 ‘어느 구에 사느냐’라는 질문으로 그 사람이 어떠한 경제적 계급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해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주거가 경제적 사회적 계층의 지표가 되어버린 시대에, 시민들을 다시 공공의 공간에서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건축 아이디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또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그러한 좋은 건축들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여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 책은 나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책 말미에 제대로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훌륭한 건축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곧 내 질문에 대한 간접적인 답이 된 셈이다. 건축물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책에서 제시했고, 그 방법을 통해 조금이라도 스스로 건축을 보는 눈이 생겼다. 좋은 공공 건축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국 시민들 스스로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의 의견을 많이 표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 책은 그를 위한 첫 단계를 제시해준 셈이다.
경상남도 창원에서 올라와 어쩌면 앞으로 긴 시간 동안 서울에서 살아가야 할 나에게 서울은 사실 치열한 생존의 장 정도로 여겨진다. 어딜 가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나의 공간(내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꿈은 소원하고, 나는 이 넓은 도시를 지하철을 타며 이리저리 옮겨다닐 뿐이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학교 후문에서 낙성대역을 가는 사이에 있는 낙성대 공원이다. 가끔 여기를 거닐며 혼자 생각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 공원 안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안전하게 혼자가 되어볼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거실과 집의 공간이 부족한 사람들 모두에게 무엇인가를 돌려주는 공원 같은 공공의 공간들이 세심한 설계 하에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온전한 집을 가지기 힘든 이 도시에서는.
이 책을 읽고 다른 학우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건축이 참 좋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본다면 좋은 건축의 조건을 몇가지 더 스스로 발견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슷한 질문으로 둘째, ‘우리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싫어하는 건물은?’
셋째, 요즘 신축 아파트들은 모두 커뮤니티 시설이라는 것이 잘 갖추어져 있다. 즉 아파트 단지 내에 프라이빗 파티공간, 사우나, 스포츠 시설 등의 부가 시설을 짓고 입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시설들이 입주민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리할지 모르나 한 편으로는 갈수록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남들을 구분짓고, 해당 커뮤니티 내에서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학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서울에서는 특히 ‘어느 구에 사느냐’라는 질문으로 그 사람이 어떠한 경제적 계급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해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주거가 경제적 사회적 계층의 지표가 되어버린 시대에, 시민들을 다시 공공의 공간에서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건축 아이디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또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그러한 좋은 건축들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여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최동익2021-04-01 00:58
안녕하세요 최유리님, 전 여행은 다녀왔어도 서울 외의 지역에 살아본 경험이 없어선지, 서울의 공간에 대해 막연한 답답함을 느낄 때는 있어도 그 감정을 풀어내기는 힘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치게 가까운 아파트 앞 동과 뒤 동 사이 거리, 또 그로 인해 제한되는 시야 등이 유난히 눈에 밟히게 되었네요. 그만큼 서울은 대다수의 시민들에게는 다닥다닥 붙어 살아가는 생계 투쟁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감이 갔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도 던져주셨는데, 먼저 좀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경복궁을 뜻하지 않게 뛰어본 적이 있는데 새삼 과거 궁궐은 참 넓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부럽더라고요. 아스팔트도 아니라 흙길이라서 또 새로웠었습니다. 경제적인 걸 고려하면 예전처럼 널찍하게 살기는 힘들겠고, 또 흙이 우리 체험에 있어 완벽한 물질도 아니겠지만 세상에 다양한 물질이 있는데 도시인들은 흙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거 같아 새롭게 다가왔었어요.
우리 학교 같은 경우에는 사실 건축물은 아니지만, 간혹 들르는 관정관 8층 열람실이 굉장히 인상 깊은 공간인 거 같아요.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에서 보내는 사람들에게야 모르겠지만 하나의 체험으로서 굉장히 넓은 공간에서 충분한 공간을 갖고 자기 일들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등이 서울대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단 느낌도 드네요. 물론 동시에 가장 싫은 공간도 될 거 같은데, 뭔가 자신이 할 일에만 매몰된 사람들이라는 인상도 주는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저희 동네에도 신축 아파트가 2년 전 쯤에 생겼는데, 오히려 헬스장에서 런닝머신 놓인 부분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고, 외부 인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있더라구요. 근데 또 지대는 살짝 높이 있어서, 개방된 공간 같으면서도 안과 밖을 가르는 느낌을 주어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이전부터 있던 아파트의 놀이터는 마찬가지로 지대야 조금 높지만 외부 공간이고 굉장히 넓어서 요새 늦은 시간에 동네 친구를 만날 때면 해당 아파트에 살지 않음에도 거기서 주로 만나게 되더라구요.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봐온 곳이라 그렇단 생각도 들구요. 한 동네에 오래 머무르면 그 공간 속 사람들에게도 친근감을 느끼는 거 같은데, 공공성으로까지 연결될지는 모르겠네요.
좋은 질문 많이 해 주셔서 여러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질문도 던져주셨는데, 먼저 좀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경복궁을 뜻하지 않게 뛰어본 적이 있는데 새삼 과거 궁궐은 참 넓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부럽더라고요. 아스팔트도 아니라 흙길이라서 또 새로웠었습니다. 경제적인 걸 고려하면 예전처럼 널찍하게 살기는 힘들겠고, 또 흙이 우리 체험에 있어 완벽한 물질도 아니겠지만 세상에 다양한 물질이 있는데 도시인들은 흙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거 같아 새롭게 다가왔었어요.
우리 학교 같은 경우에는 사실 건축물은 아니지만, 간혹 들르는 관정관 8층 열람실이 굉장히 인상 깊은 공간인 거 같아요.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에서 보내는 사람들에게야 모르겠지만 하나의 체험으로서 굉장히 넓은 공간에서 충분한 공간을 갖고 자기 일들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등이 서울대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단 느낌도 드네요. 물론 동시에 가장 싫은 공간도 될 거 같은데, 뭔가 자신이 할 일에만 매몰된 사람들이라는 인상도 주는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저희 동네에도 신축 아파트가 2년 전 쯤에 생겼는데, 오히려 헬스장에서 런닝머신 놓인 부분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고, 외부 인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있더라구요. 근데 또 지대는 살짝 높이 있어서, 개방된 공간 같으면서도 안과 밖을 가르는 느낌을 주어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이전부터 있던 아파트의 놀이터는 마찬가지로 지대야 조금 높지만 외부 공간이고 굉장히 넓어서 요새 늦은 시간에 동네 친구를 만날 때면 해당 아파트에 살지 않음에도 거기서 주로 만나게 되더라구요.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봐온 곳이라 그렇단 생각도 들구요. 한 동네에 오래 머무르면 그 공간 속 사람들에게도 친근감을 느끼는 거 같은데, 공공성으로까지 연결될지는 모르겠네요.
좋은 질문 많이 해 주셔서 여러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빈2021-04-01 05:55
안녕하세요, 유리님! 저는 유리님의 첫번째 질문에 답해보고 싶어요.
저는 서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가는 걸 참 좋아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야말로 시민들이 예술을 일상처럼 접할 수 있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반적인 예술 관련 시설들의 권위나 고고함을 덜고 주변 풍경에 낮게 스며들어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적으로 건축물이 스스로 강한 존재감을 내뿜기보다는, 담백한 외관을 취하고 있어 주변과도 매우 잘 어울립니다. 또한 위치 상으로도 경복궁과 한옥 등 전통 건축물로 둘러싸인 북촌 거리를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미술관의 입구로 들어가거나 야외전시장을 먼저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미술관 내부도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보통의 미술관은 입장하는 곳과 전시실의 관람 순서가 정형적인 반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디서부터 관람을 시작할지, 다음 동선은 어디인지에 대한 선택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발걸음이나 속도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나의 감상 스타일을 따를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한 거 같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가는 걸 참 좋아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야말로 시민들이 예술을 일상처럼 접할 수 있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반적인 예술 관련 시설들의 권위나 고고함을 덜고 주변 풍경에 낮게 스며들어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적으로 건축물이 스스로 강한 존재감을 내뿜기보다는, 담백한 외관을 취하고 있어 주변과도 매우 잘 어울립니다. 또한 위치 상으로도 경복궁과 한옥 등 전통 건축물로 둘러싸인 북촌 거리를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미술관의 입구로 들어가거나 야외전시장을 먼저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미술관 내부도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보통의 미술관은 입장하는 곳과 전시실의 관람 순서가 정형적인 반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디서부터 관람을 시작할지, 다음 동선은 어디인지에 대한 선택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발걸음이나 속도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나의 감상 스타일을 따를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한 거 같습니다.
김윤빈2021-04-01 10:52
안녕하세요!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유리님께서 제시해주신 첫 번째 질문에서 파생되어서 좋은 건축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막연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좋은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린, 또 관계 맺음의 가능성이 많은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 사물 혹은 주변의 자연이 될 수도 있겠지요. 누구든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 수 있고, 또 상호작용의 요소가 많다는 것은 활력 있는 공간을 만들 것 같네요! 이러한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예시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을 때 아직은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더 고민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최서원2021-03-31 20:02
이 책은 논리적으로 무엇을 주장하고 제시한다기보다는, 필자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느낀, 앞으로의 도시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보여주고 분석하는 글이라 느꼈다. 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8장 '우리는 왜 공원이 부족하다고 말할까?'였는데, 저자는 공원의 의미와 서울의 공원이 왜 부족한가를 설명하며 이 질문에 답한다. 먼저, 그가 생각한 공원의 의미를 요약하자면 거리대신 도로를 택하며 잃게 된, 혹은 외부공간을 내부공간처럼 쓰던 습관을 버리며 잃게 된,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과 변화하는 풍경을 선사해주는 공간인듯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도시공간을 변화하기보단 유지되는 것이고, 소통하기 보단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유명한 여행지들을 둘러보면 단절되고 항상 비슷한 풍경인 곳들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변화하는 모습들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름의 힐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여행을 갈 순 없으니 일상을 보내는 도시 안에서 잠깐의 여행온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는 공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한국의 공원들, 한강공원, 서울숲 등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주거지역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공원이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고 말한다. 물론 사람들의 주거지역 근처에 많은 공원이 없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많은 공원들에 이미 편리한 교통편은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뚝섬한강공원에는 뚝섬유원지역이, 서울숲에는 서울숲역이 있듯이 뚜벅이들에게는 접근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또, 주차장도 잘 구축되어 있다.
사실 서울에 상경한지 막 1년이 되어가는 참의 나로서는, 서울에서 살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자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보이는 인프라가 공원에 있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올림픽 공원 근방의 아파트에 막 이사오고 나서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아이들이 휴일이면 피시방이나 시내(사실 서울에는 시내가 없지만) 몰려가지 않고 그보다는 단지내에서, 혹은 올림픽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뛰어논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근린공원이 동네 중앙에 위치함에도 그 면적이 넓지 않아 운동하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될까 아이들이 맘편히 놀지 못했다. 또, 중앙의 큰 축구장에서는 조기축구회 회원분들이 노느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차를 타고 더 큰 공원으로 피크닉을 떠나는 경우가 가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일들은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공원이 빠진 아이들이 향할 수 있는 곳은 오락실이나 컴퓨터 앞밖에 없었으리라 예상한다. 특히 중학교 시절, 방과후에도 남아 학교 문이 닫을 때까지 강당에서 농구나 배구를 하고 싶어했던 친구들이 떠오르는데, 그 아이들에게 학교 강당은 유일한 '공원'스러운 공간이었을 것 같다. 학교 강당 외의 공원에 있는 코트들은 대부분 방치되어 활용하기 힘들었고, 운동하는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 맘편히 놀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그와 달리 내가 올림픽공원 근처에 살아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사온 단지의 아이들은 단지 내에서 가족끼리, 친구끼리 여유를 즐기며 유현준의 말을 빌리자면, 외부공간을 내부공간처럼 활용한다. 또, 올림픽 공원이라는 큰 공간 내에는 운동하러 나온 이들과, 가족끼리 피크닉을 나온 이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러 나온 대학생들, 그리고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함께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런 게 도시의 인프라구나,하고 느꼈고, 이런 공간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더 공동체 의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과거 내가 살던 동네의 근린공원과 올림픽공원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 면적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상 주차장과 좁은 공원 속에서 당연히도 아이들은, 또, 가족들은 쉴 공간을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혹은 휴양지에서 찾고자 할 것이다. 반면, 지상 주차장이 사라지고 단지가 모두 공원화된 최근의 아파트 단지들이나 큰 공원과 함께라면, 사람들은 도시에서의 피곤을 돌릴 공간을 집이 아닌 일상 속에서 찾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자연을 가까이 하자는 의미나 외관상 선진국화 되어가자는 의미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이나 도시 공원화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만 여겼는데, 이런 측면을 바라보니 어쩌면 코로나를 거치며 강화된 개인주의와 사라진 유대감을 되찾을 공간이 도시공간 속 공원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실적으로 넓은 공간의 공원을 많이 확보하기는 힘들기에, 최근의 아파트 단지들이 점차 공원화되는 것처럼 큰 도로를 제외한 도시 구석구석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감상도 든다.
사실 서울에 상경한지 막 1년이 되어가는 참의 나로서는, 서울에서 살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자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보이는 인프라가 공원에 있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올림픽 공원 근방의 아파트에 막 이사오고 나서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아이들이 휴일이면 피시방이나 시내(사실 서울에는 시내가 없지만) 몰려가지 않고 그보다는 단지내에서, 혹은 올림픽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뛰어논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근린공원이 동네 중앙에 위치함에도 그 면적이 넓지 않아 운동하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될까 아이들이 맘편히 놀지 못했다. 또, 중앙의 큰 축구장에서는 조기축구회 회원분들이 노느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차를 타고 더 큰 공원으로 피크닉을 떠나는 경우가 가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일들은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공원이 빠진 아이들이 향할 수 있는 곳은 오락실이나 컴퓨터 앞밖에 없었으리라 예상한다. 특히 중학교 시절, 방과후에도 남아 학교 문이 닫을 때까지 강당에서 농구나 배구를 하고 싶어했던 친구들이 떠오르는데, 그 아이들에게 학교 강당은 유일한 '공원'스러운 공간이었을 것 같다. 학교 강당 외의 공원에 있는 코트들은 대부분 방치되어 활용하기 힘들었고, 운동하는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 맘편히 놀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그와 달리 내가 올림픽공원 근처에 살아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사온 단지의 아이들은 단지 내에서 가족끼리, 친구끼리 여유를 즐기며 유현준의 말을 빌리자면, 외부공간을 내부공간처럼 활용한다. 또, 올림픽 공원이라는 큰 공간 내에는 운동하러 나온 이들과, 가족끼리 피크닉을 나온 이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러 나온 대학생들, 그리고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함께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런 게 도시의 인프라구나,하고 느꼈고, 이런 공간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더 공동체 의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과거 내가 살던 동네의 근린공원과 올림픽공원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 면적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상 주차장과 좁은 공원 속에서 당연히도 아이들은, 또, 가족들은 쉴 공간을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혹은 휴양지에서 찾고자 할 것이다. 반면, 지상 주차장이 사라지고 단지가 모두 공원화된 최근의 아파트 단지들이나 큰 공원과 함께라면, 사람들은 도시에서의 피곤을 돌릴 공간을 집이 아닌 일상 속에서 찾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자연을 가까이 하자는 의미나 외관상 선진국화 되어가자는 의미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이나 도시 공원화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만 여겼는데, 이런 측면을 바라보니 어쩌면 코로나를 거치며 강화된 개인주의와 사라진 유대감을 되찾을 공간이 도시공간 속 공원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실적으로 넓은 공간의 공원을 많이 확보하기는 힘들기에, 최근의 아파트 단지들이 점차 공원화되는 것처럼 큰 도로를 제외한 도시 구석구석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감상도 든다.
문지수2021-03-31 21:59
서원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저도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마음만 먹으면 삭막한 건물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지하철이 잘 구축되어 있어서 한강 공원이나 서울숲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주변 공간과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 이해되지만, 공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우연성이 크다는 매력이 제가 서울에 있는 공원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원래 살았던 광주나, 다른 지역에 그런 공원이 부족한 점이 아쉽습니다.
또한 저는 서원님 글의 마지막 문단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서, 책에서 골목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 내에 공원을 조성하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부분을 읽고 큰 공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골목에서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 놀이터와 공원이 조성되면 오히려 더 안전하게 아이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서 하늘을 앗아갔다는 표현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목보다 아파트 내 공원이 아이들에게 더 넓은 하늘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서원님은 그 부분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
+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개인적인 기억을 나눌 수 있어서 색다르고 좋은 것 같습니다 ;)
또한 저는 서원님 글의 마지막 문단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서, 책에서 골목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 내에 공원을 조성하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부분을 읽고 큰 공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골목에서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 놀이터와 공원이 조성되면 오히려 더 안전하게 아이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서 하늘을 앗아갔다는 표현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목보다 아파트 내 공원이 아이들에게 더 넓은 하늘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서원님은 그 부분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
+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개인적인 기억을 나눌 수 있어서 색다르고 좋은 것 같습니다 ;)
이엘리엇2021-03-31 20:45
책을 읽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속단'을 비교하며 이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과 관련된 대부분의 연구가 우리 행동의 경향성을 찾고자 노력하기 마련이지만, 건축은 특히나 실생활의 문제와 깊이 연결된 학문이기에, 이의 관점에서 사람을 분석하는 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명동과 가로수길은 이벤트 밀도가 높아 사람들이 걷고 싶어하는 장소가 되고, 절에 비해 교회는 공간 구조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등의 내용을 보며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급속도로 다변화하는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의 법칙만을 인정하고 발견하고자 하는 태도는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건축 공간을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공간관이라며 개인적 해석과 경험을 중시해야 한다는 책의 내용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물리적 접촉을 갈구하는 본능을 지닌 인간이기에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의 공간과 건축이 지니는 의미는 퇴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이성과의 만남도 현실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었는데, 사회가 고도화되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며 연애나 타인과의 성적 교감에 대한 욕구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미래에는 더더욱 가상공간의 범위가 넓어지고 상상조차 어려운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될텐데, 이런 와중에도 과연 인간 본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물리적 접촉을 갈구하는 본능을 지닌 인간이기에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의 공간과 건축이 지니는 의미는 퇴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이성과의 만남도 현실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었는데, 사회가 고도화되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며 연애나 타인과의 성적 교감에 대한 욕구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미래에는 더더욱 가상공간의 범위가 넓어지고 상상조차 어려운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될텐데, 이런 와중에도 과연 인간 본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양승훈2021-04-01 02:49
엘리엇님 (혹시 성을 떼고 부를 때 이렇게 부르면 되는 게 맞을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이해'와 '속단'이라는 구분이 제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꼈던 찝찝한 느낌을 한 번에 잡아내주신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과 현실의 공간/건축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 중 성적 교감을 잃어버린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음식을 공부하는데 최근에 메타버스나 VR/AR이 굉장히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음식은 현실 공간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과거처럼 배고픔만 없애는 수준이든, 현재처럼 미식을 추구하는 수준이든 결국 그 행위는 현실에서 손에 잡히는 물질을 가지고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식욕을 해결하는 방법은 생식, 조리, 알약 형태로의 가공 등 다양하게 바뀔 수 있지만 '해결해야 함'은 여전히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남아있고 그 해결은 결국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경우 여전히 음식을 만들 공간과 먹을 공간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성적 교감에 대한 욕구 또한 해결해야 함과 해결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애나 타인과의 성적 교감이라는 '방법'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것인지 '성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성욕의 해결은 몸과 밀접한 부분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래 혜령님의 글에 사이버섹스라는 게 나오지만 저는 잘 모르는 부분이라 이렇게까지만 유추해 봅니다) 그리고 이런 성욕과 관련된 부분은 저자가 말한 프라이버시의 영역이고 그렇다면 여전히 사적인 공간이 개인에게 의미를 가진 채 남아있지 않을까요?
다시 한 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말씀하신 성적 교감에 대한 욕구 또한 해결해야 함과 해결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애나 타인과의 성적 교감이라는 '방법'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것인지 '성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성욕의 해결은 몸과 밀접한 부분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래 혜령님의 글에 사이버섹스라는 게 나오지만 저는 잘 모르는 부분이라 이렇게까지만 유추해 봅니다) 그리고 이런 성욕과 관련된 부분은 저자가 말한 프라이버시의 영역이고 그렇다면 여전히 사적인 공간이 개인에게 의미를 가진 채 남아있지 않을까요?
다시 한 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정빈2021-03-31 21:21
책의 7장을 읽으면서 이전에 이슬람교 사원에 답사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태원에 자리한 서울중앙성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사원이다. 성원 근처 골목에는 아랍인들이 종종 보였고, 가게들의 간판은 한글과 영어가 혼용되어 있었다. 사원에 다다랐을 때 커다란 아치형 입구 위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입니다.’라는 유명한 꾸란 구절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좁은 철문을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한산한 분위기 가운데 몇 명의 이슬람 사람들이 낮은 단 위에 걸터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흘끗 쳐다보기만 하고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이 곳에선 왠지 모르게 내가 침입자가 된 기분이라 구석구석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이슬람 사원에 혼자 들어섰을 때 마주치는 낯선 이방인들의 시선이나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민망하게 서 있던 순간들은 그 공간이 닫힌 세계임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계단 위로 올라가지는 못하고 멀찍이 사진만 찍고 있을 때 한국인 안내원을 만나게 되었는데, 안내원 분은 그 날 금요 합동예배를 위한 청소 중이라 예배당을 보여줄 수 없다고 아쉬워하였다. 금요 합동예배는 성인 남성의 의무적인 합동 예배이며 혼자 예배를 하는 것보다 합동예배에 와서 같이 예배를 하는 것이 27배의 보상이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무슬림들은 예배당이 아닌 곳에서 기도를 올리게 될 시, 자신이 현재 위치한 곳에서 기도를 올려도 되지만 그 장소에 몇 가지 제약이 있다고 한다. 화장실, 쓰레기 앞 등 불결함을 상징하는 곳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화장실의 지붕이나 쓰레기를 모아 두는 곳의 꼭대기에서 예배를 하는 것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현대 건축물이 다양한 층을 이루고 있고 각 층마다 편의를 위해 화장실이 있는 점을 생각했을 때, 화장실 그 자체에서 행하는 예배가 아니라면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현실과의 타협을 이룬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느껴졌다.
학우 분들과 토론하고 싶은 지점은 종교 공간, 혹은 종교 목적이 아닌 공간이더라도 들어섰을 때 닫힌 세계라는 인상을 주는 공간이 있었는지, 왜 그런 느낌을 유발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또한 현대에 와선 절이나 교회 등의 종교 공간이 전통적 형태로 지어지지 않고 상가 안, 아파트 안에 자리한 경우도 있는데 이 때 종교 공간은 원래의 힘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계단 위로 올라가지는 못하고 멀찍이 사진만 찍고 있을 때 한국인 안내원을 만나게 되었는데, 안내원 분은 그 날 금요 합동예배를 위한 청소 중이라 예배당을 보여줄 수 없다고 아쉬워하였다. 금요 합동예배는 성인 남성의 의무적인 합동 예배이며 혼자 예배를 하는 것보다 합동예배에 와서 같이 예배를 하는 것이 27배의 보상이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무슬림들은 예배당이 아닌 곳에서 기도를 올리게 될 시, 자신이 현재 위치한 곳에서 기도를 올려도 되지만 그 장소에 몇 가지 제약이 있다고 한다. 화장실, 쓰레기 앞 등 불결함을 상징하는 곳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화장실의 지붕이나 쓰레기를 모아 두는 곳의 꼭대기에서 예배를 하는 것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현대 건축물이 다양한 층을 이루고 있고 각 층마다 편의를 위해 화장실이 있는 점을 생각했을 때, 화장실 그 자체에서 행하는 예배가 아니라면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현실과의 타협을 이룬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느껴졌다.
학우 분들과 토론하고 싶은 지점은 종교 공간, 혹은 종교 목적이 아닌 공간이더라도 들어섰을 때 닫힌 세계라는 인상을 주는 공간이 있었는지, 왜 그런 느낌을 유발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또한 현대에 와선 절이나 교회 등의 종교 공간이 전통적 형태로 지어지지 않고 상가 안, 아파트 안에 자리한 경우도 있는데 이 때 종교 공간은 원래의 힘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박혜송2021-03-31 22:37
@이정빈 정빈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슬람 사원에 설문조사를 하려고 몇 년전에 방문한 적이 있어, 정빈님 글에서 낯선 이방인들의 시선에 민망하였다는 경험에 공감하였습니다. ㅎㅎ
첫 번째 토론 지점에 대해서 저는 두 가지 사례가 떠올랐습니다. 먼저, 최근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가 닫힌 세계라는 인상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 아파트 이야기인데,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가 그 지역 주민들(아파트 내부인이 아니더라도)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 '통로'로서의 기능 또한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이전에 비해 보안이 강화되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외부 주민의 출입을 직접접으로 금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의 분위기도 이전과 달리 폐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책의 저자분께서도 주장하였듯이, 빨래 등이 걸려 있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발코니가 사라지고, 이를 좁은 창문이 대신하면서 일부 아파트는 그 안에 사람들이 사는지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파트들은 그 아파트 사람이 아니면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폐쇄적 주거 공간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또, 정부청사, 법원 등의 공간에서 닫힌 세계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네모 반듯하게 건축된 건물이 위화감을 주고, 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같은 경우, 법원 입구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쉽게 접근하고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사례로는, 서울대학교 행정관 또한 비슷한 의미에서 학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째 토론지점에 대해서 제 의견을 적어보자면, 저는 종교 공간이 궁극적으로 힘을 잃기는 하지만, 잃게 되는 힘은 외부인들이 쉽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종교 건물의 특유의 아우라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안에 종교 시설이 위치하게 되면,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듯, 종교 공간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대형 종교건물이 갖는 으리으리함(?)과 배제성이 어느 정도 약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첫 번째 토론 지점에 대해서 저는 두 가지 사례가 떠올랐습니다. 먼저, 최근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가 닫힌 세계라는 인상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 아파트 이야기인데,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가 그 지역 주민들(아파트 내부인이 아니더라도)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 '통로'로서의 기능 또한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이전에 비해 보안이 강화되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외부 주민의 출입을 직접접으로 금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의 분위기도 이전과 달리 폐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책의 저자분께서도 주장하였듯이, 빨래 등이 걸려 있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발코니가 사라지고, 이를 좁은 창문이 대신하면서 일부 아파트는 그 안에 사람들이 사는지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파트들은 그 아파트 사람이 아니면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폐쇄적 주거 공간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또, 정부청사, 법원 등의 공간에서 닫힌 세계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네모 반듯하게 건축된 건물이 위화감을 주고, 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같은 경우, 법원 입구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쉽게 접근하고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사례로는, 서울대학교 행정관 또한 비슷한 의미에서 학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째 토론지점에 대해서 제 의견을 적어보자면, 저는 종교 공간이 궁극적으로 힘을 잃기는 하지만, 잃게 되는 힘은 외부인들이 쉽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종교 건물의 특유의 아우라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안에 종교 시설이 위치하게 되면,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듯, 종교 공간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대형 종교건물이 갖는 으리으리함(?)과 배제성이 어느 정도 약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지수2021-03-31 21:44
도시를 건축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인문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바라 본 책이었다.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가 아니라, 도시라는 공간을 어떻게 인식해나갈 수 있는지 도시 속에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무겁지 않은 서술로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는 성수동 아뜰리에길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노을을 등지며 걸었던 기억은 아직도 따듯하다. 키치한 악세서리, 레트로 감성의 서점 등 가게 외부를 구경하는 재미에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골목 사이로 계속 걸었다. 단순히 감상의 공간이었던 성수동을 책을 읽은 후 분석의 대상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수학적인 근거로 거리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창문을 인문사회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창문만 보이는 아파트는 도시를 삭막해 보이게 하고, 큰 창문을 통해 과시와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는 등 창문의 역할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밖의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용도로 큰 창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쉼이 존재해야하는 집이라는 공간에서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려고 한다는 사실에 염증이 나기도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건축물을 하드웨어로 보지 말고 소프트웨어로 보자는 것이었다. 건축물을 소프트웨어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을 담는 공간으로써,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삭막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 건축물은 사람을 하나의 내용으로 하는 소프트웨어로 볼 수 있겠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보면 참 정성들여 조각하고 설계했구나 싶은 마음에 경외감을 느낀다. 공간 사용의 측면에 더해서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들여진 사람들의 수고 역시 소프트웨어적 측면으로 볼 수 있겠다.
유현준 작가는 118쪽에 "더 이상 건축 문화재를 박제시켜 놓고 우상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건축물은 과시용이든 결국은 오로지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이 쓰라고 만든 건축물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공간의 의미가 사라질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작가에 따르면 도시가 유기체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에, 각 건축물 하나하나를 세포라 볼 수 있겠다. 유기체의 진화 단계에 따라 도시는 점점 진화하고 있지만, 환경적 측면에 있어서는 진화하지 못했다. 그린벨트를 설정하고, 공원을 조성하는 등 자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산을 밀어 골프장을 만들고, 녹지를 없애 건물을 세우는 광경은 결국 인류의 수명을 깎아먹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사람 친화적인 건축도 중요하지만, 자연 친화적인 건축에 신경을 더 쏟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에서 책을 읽은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대중교통을 타고 장소를 이동하던 중 휴대폰을 하다 문득 바라본 창밖 풍경이 눈에 펼쳐지면 휴대폰을 보느라 보지 못한 풍경들이 아까웠다. 내가 바라보는 풍경은 다시 그곳에 가면 볼 수야 있지만, 듣는 음악이 달라지거나, 같이 있는 사람이 달라지거나, 내가 입은 옷이 달라지면 그 공간은 결코 같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유명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보다, 현지인들이 머물고 생활하는 주거지역을 산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공간에 묻어있는 사람냄새가 좋아서 그렇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 공간 속에 온전히 녹아들고자 했던 그 기억이 더 선명하다.
195쪽에서 나의 마음을 울렸던 문장을 공유하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괜히 기차역을 가면 애틋한 기분이 드는 것 역시, 공간은 결국 기억이기에 그럴 것이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각자에게 서울은 어떤 공간일까.
내가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는 성수동 아뜰리에길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노을을 등지며 걸었던 기억은 아직도 따듯하다. 키치한 악세서리, 레트로 감성의 서점 등 가게 외부를 구경하는 재미에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골목 사이로 계속 걸었다. 단순히 감상의 공간이었던 성수동을 책을 읽은 후 분석의 대상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수학적인 근거로 거리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창문을 인문사회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창문만 보이는 아파트는 도시를 삭막해 보이게 하고, 큰 창문을 통해 과시와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는 등 창문의 역할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밖의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용도로 큰 창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쉼이 존재해야하는 집이라는 공간에서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려고 한다는 사실에 염증이 나기도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건축물을 하드웨어로 보지 말고 소프트웨어로 보자는 것이었다. 건축물을 소프트웨어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을 담는 공간으로써,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삭막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 건축물은 사람을 하나의 내용으로 하는 소프트웨어로 볼 수 있겠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보면 참 정성들여 조각하고 설계했구나 싶은 마음에 경외감을 느낀다. 공간 사용의 측면에 더해서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들여진 사람들의 수고 역시 소프트웨어적 측면으로 볼 수 있겠다.
유현준 작가는 118쪽에 "더 이상 건축 문화재를 박제시켜 놓고 우상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건축물은 과시용이든 결국은 오로지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이 쓰라고 만든 건축물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공간의 의미가 사라질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작가에 따르면 도시가 유기체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에, 각 건축물 하나하나를 세포라 볼 수 있겠다. 유기체의 진화 단계에 따라 도시는 점점 진화하고 있지만, 환경적 측면에 있어서는 진화하지 못했다. 그린벨트를 설정하고, 공원을 조성하는 등 자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산을 밀어 골프장을 만들고, 녹지를 없애 건물을 세우는 광경은 결국 인류의 수명을 깎아먹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사람 친화적인 건축도 중요하지만, 자연 친화적인 건축에 신경을 더 쏟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에서 책을 읽은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대중교통을 타고 장소를 이동하던 중 휴대폰을 하다 문득 바라본 창밖 풍경이 눈에 펼쳐지면 휴대폰을 보느라 보지 못한 풍경들이 아까웠다. 내가 바라보는 풍경은 다시 그곳에 가면 볼 수야 있지만, 듣는 음악이 달라지거나, 같이 있는 사람이 달라지거나, 내가 입은 옷이 달라지면 그 공간은 결코 같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유명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보다, 현지인들이 머물고 생활하는 주거지역을 산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공간에 묻어있는 사람냄새가 좋아서 그렇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 공간 속에 온전히 녹아들고자 했던 그 기억이 더 선명하다.
195쪽에서 나의 마음을 울렸던 문장을 공유하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괜히 기차역을 가면 애틋한 기분이 드는 것 역시, 공간은 결국 기억이기에 그럴 것이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각자에게 서울은 어떤 공간일까.
김윤빈2021-04-01 12:30
지수님!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특히 공간의 가변성을 짚어주신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건축을 자연스럽게 물리적인 실체로 인식함으로써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가변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수님이 언급해주신 것처럼 누구와 함께 있는 지, 어떤 음악을 듣는 지, 어느 시간대에 머무르고 있는 지에 따라 동일한 공간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의미는 매우 달라지고, 이 또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벤트성와 마찬가지로 공간이 가지는 잠재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용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공간을 이처럼 풍부한 느낌으로 지각할 수 있다면 획일적이고 정체 되어 보일 수 있는 도시공간을 보다 인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시 공간이 사용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생각하곤 했는데 덕분에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경제웅2021-04-01 13:23
지수님 안녕하세요!
은평에서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는 저는 2호선 합정-당산 구간을 제일 좋아해요. 지수님처럼 휴대폰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창밖의 자연광이 한강에 물비늘을 일으키며 열차 안까지 들어오거든요. 여기도 지나는 시간에 따라 다른 풍경이 펼쳐져요. 아침에는 덜 익은 사과 껍질처럼 파랗던 것이, 해 질 녘에는 석류만큼 붉게 익어요. 밤에는 별빛 행세를 하는 도로의 불빛들이 까만 강물에 성단처럼 떠다녀요. 저기 한강뷰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 반짝이는 잔물결을 매일 보겠구나, 하면서 부러워지곤 하고요.
열차에 앉아 이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공간 속에 온전히 녹아"드는 기분은 쌓여서 지하철에 대한 짙게 뭉쳐진 기억으로 남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지수님과 같은 문장에서 마음이 울렸어요.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공간이 x, y, z축으로 지탱되는 물리량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경험, 감정, 인상이라는 새로운 축으로 지탱될 때, 비로소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기억되는 '장소'로 남는 것 같아요. 공간과 장소의 구별은 지리학자 렐프(Relph, E.)의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명확해지는데, 그에게 장소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냥 공간이 아닌 '인간과 정서적인 끈으로 묶인 공간'이에요. 우리는 특정 장소에 장소애(topophilia)를 가지고 가치를 부여해요. "괜히 기차역을 가면 애틋한 기분"이 든다면, 지수님이 그 기차역에 장소애를 형성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의 소중한 장소를 선물처럼 얻은 것이지요. 지수님처럼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성수 아뜰리에길도 중간고사 끝나면 한번 가볼래요. 추천 감사합니다 :)
은평에서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는 저는 2호선 합정-당산 구간을 제일 좋아해요. 지수님처럼 휴대폰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창밖의 자연광이 한강에 물비늘을 일으키며 열차 안까지 들어오거든요. 여기도 지나는 시간에 따라 다른 풍경이 펼쳐져요. 아침에는 덜 익은 사과 껍질처럼 파랗던 것이, 해 질 녘에는 석류만큼 붉게 익어요. 밤에는 별빛 행세를 하는 도로의 불빛들이 까만 강물에 성단처럼 떠다녀요. 저기 한강뷰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 반짝이는 잔물결을 매일 보겠구나, 하면서 부러워지곤 하고요.
열차에 앉아 이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공간 속에 온전히 녹아"드는 기분은 쌓여서 지하철에 대한 짙게 뭉쳐진 기억으로 남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지수님과 같은 문장에서 마음이 울렸어요.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공간이 x, y, z축으로 지탱되는 물리량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경험, 감정, 인상이라는 새로운 축으로 지탱될 때, 비로소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기억되는 '장소'로 남는 것 같아요. 공간과 장소의 구별은 지리학자 렐프(Relph, E.)의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명확해지는데, 그에게 장소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냥 공간이 아닌 '인간과 정서적인 끈으로 묶인 공간'이에요. 우리는 특정 장소에 장소애(topophilia)를 가지고 가치를 부여해요. "괜히 기차역을 가면 애틋한 기분"이 든다면, 지수님이 그 기차역에 장소애를 형성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의 소중한 장소를 선물처럼 얻은 것이지요. 지수님처럼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성수 아뜰리에길도 중간고사 끝나면 한번 가볼래요. 추천 감사합니다 :)
문지수2021-04-07 20:10
@경제웅
제웅님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합정-당산 구간을 정말 좋아해요 어느 시간대에 가든 한강은 늘 아름답더라구요 제웅님께서 써주신 비유가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ㅜㅜ 갑자기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지하철을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번째 문단에 써주신 '장소'에 대한 설명도 너무 감명깊어요 특히 '경험, 감정, 인상이라는 새로운 축'으로 공간이 지탱되어 장소가 된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네요 새로운 지식과 감동을 얻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
두번째 문단에 써주신 '장소'에 대한 설명도 너무 감명깊어요 특히 '경험, 감정, 인상이라는 새로운 축'으로 공간이 지탱되어 장소가 된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네요 새로운 지식과 감동을 얻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
박혜송2021-03-31 21:49
#0. 들어가며- 코로나19로 공간의 중요성은 약화되었는가?
COVID-19로 인한 팬데믹이 도래하며, 혹자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이제 도시가 아닌, ‘온라인 공간’이 될 것이라 하였다. 2015년에 출판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를 비롯한 21세기 사람들 대다수가 역사처럼 여겨왔던 전염병으로, 하루에도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 때문에, 잠재적 바이러스 보유자와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들은 그 기능의 ‘적어도’ 일부를 잃고 있다. 일례로, 교회에서 설교를 위한 대형 공간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TV를 통해 다양한 지역을 접하며 여행이 늘어났다는 저자의 서술에서 볼 수 있듯, 오프라인에서만 채워질 수 있는 ‘욕구’가 있다. 이를 방증(傍證)하듯,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온라인 공간으로 이주당한 사람들은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 일종의 욕구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채워지던 무언가가 더이상 채워지지 못해 사람들이 겪는 우울감이다. 이는 전염병 시대에도 오프라인 공간이 사람들의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도시 건축법 모색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읽기 자료를 바탕으로, 코로나 시대의 건축에 있어, 생각해볼 만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1. 어떻게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소통’을 매개하는 공간을 설계할 수 있을까?
저자는 책에서 골목길을 ‘공동의 거실’이라 표현하며, 이웃과 소통하던 공간인 골목길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 바 있다. 이처럼, 특정 공간은 주변 사람들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매개하고, 공동체 의식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골목길이 사라지고, 옹벽이 세워지면서 이웃과 담을 쌓고 살게 된 현대인들의 삶에서 우리는 소통과 교류를 매개하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과한 소통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낄 때도 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아 더 많은 자유를 얻고, 그 공간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칸막이를 쌓는 이유이다. 더구나,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은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즉,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벽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매개하는 공간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필자는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발코니’가 그러한 공간의 한 예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코니는 자신의 거주 공간임에도 프라이버시를 침해할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 않으며, 이웃과 각자의 발코니에서 마주쳐 이야기하는 것은 소통을 활성화하면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례에 대해서는 논의해보고 싶다.
#2. 비인간(자연, 동물 등)과 어떻게 대화하고 공존할 수 있는가?
저자가 책에서 강조한 부분 중 하나는 ‘자연과 대화하는’ 건축이다. 책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켰다는 이유로 형광등을 공공의 적이라고 재밌게 표현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데 날아온 벌레 한 마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필자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과 떨어져 사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현재까지의 건축은 자연을 분리시키고, 임의로 변경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이러한 방식이 지속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심을 풀어볼 만하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19 사태 또한 이러한 건축 방식과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그 공간을 인류 목적에 맞게 가공함에 따라, 생물 다양성이 위협받으며 단순해진 생태계는 병원체의 전염에 훨씬 더 취약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연과 동물들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해온 건축 방식이 전염병의 확산에 기여한 것이다. 사람들과 자연, 각종 생물이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건축 방식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자연, 생물, 인간 각자의 영역에 대한 존중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도 깊게 논의하고 싶다.
*조상인, 〈코로나 위기 근원에는 '기후 위기' 있다〉, 《서울경제》, 2020.11.26.,〈https://www.sedaily.com/NewsView/1ZAK3BMIJU〉, 2021.03.31.
COVID-19로 인한 팬데믹이 도래하며, 혹자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이제 도시가 아닌, ‘온라인 공간’이 될 것이라 하였다. 2015년에 출판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를 비롯한 21세기 사람들 대다수가 역사처럼 여겨왔던 전염병으로, 하루에도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 때문에, 잠재적 바이러스 보유자와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들은 그 기능의 ‘적어도’ 일부를 잃고 있다. 일례로, 교회에서 설교를 위한 대형 공간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TV를 통해 다양한 지역을 접하며 여행이 늘어났다는 저자의 서술에서 볼 수 있듯, 오프라인에서만 채워질 수 있는 ‘욕구’가 있다. 이를 방증(傍證)하듯,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온라인 공간으로 이주당한 사람들은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 일종의 욕구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채워지던 무언가가 더이상 채워지지 못해 사람들이 겪는 우울감이다. 이는 전염병 시대에도 오프라인 공간이 사람들의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도시 건축법 모색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읽기 자료를 바탕으로, 코로나 시대의 건축에 있어, 생각해볼 만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1. 어떻게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소통’을 매개하는 공간을 설계할 수 있을까?
저자는 책에서 골목길을 ‘공동의 거실’이라 표현하며, 이웃과 소통하던 공간인 골목길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 바 있다. 이처럼, 특정 공간은 주변 사람들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매개하고, 공동체 의식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골목길이 사라지고, 옹벽이 세워지면서 이웃과 담을 쌓고 살게 된 현대인들의 삶에서 우리는 소통과 교류를 매개하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과한 소통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낄 때도 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아 더 많은 자유를 얻고, 그 공간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칸막이를 쌓는 이유이다. 더구나,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은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즉,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벽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매개하는 공간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필자는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발코니’가 그러한 공간의 한 예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코니는 자신의 거주 공간임에도 프라이버시를 침해할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 않으며, 이웃과 각자의 발코니에서 마주쳐 이야기하는 것은 소통을 활성화하면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례에 대해서는 논의해보고 싶다.
#2. 비인간(자연, 동물 등)과 어떻게 대화하고 공존할 수 있는가?
저자가 책에서 강조한 부분 중 하나는 ‘자연과 대화하는’ 건축이다. 책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켰다는 이유로 형광등을 공공의 적이라고 재밌게 표현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데 날아온 벌레 한 마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필자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과 떨어져 사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현재까지의 건축은 자연을 분리시키고, 임의로 변경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이러한 방식이 지속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심을 풀어볼 만하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19 사태 또한 이러한 건축 방식과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그 공간을 인류 목적에 맞게 가공함에 따라, 생물 다양성이 위협받으며 단순해진 생태계는 병원체의 전염에 훨씬 더 취약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연과 동물들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해온 건축 방식이 전염병의 확산에 기여한 것이다. 사람들과 자연, 각종 생물이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건축 방식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자연, 생물, 인간 각자의 영역에 대한 존중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도 깊게 논의하고 싶다.
*조상인, 〈코로나 위기 근원에는 '기후 위기' 있다〉, 《서울경제》, 2020.11.26.,〈https://www.sedaily.com/NewsView/1ZAK3BMIJU〉, 2021.03.31.
문보설2021-04-01 12:16
안녕하세요 혜송님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소통을 매개하기 위한 발코니의 필요성은 저도 동감합니다. 또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닌 다른 범죄 예방을 위해 서로가 어느 정도 감시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코니가 단지 안전과 소통의 trade off인 것이 아니라 상호 긍정적 영향까지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원이나, 자연 환경 또한 트인 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창 밖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안전도 확보하고,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코로나 19가 건축 방식과 연결된다는 정보는 처음 접하는 것이라 흥미롭습니다. 저는 현대 건축 방식을 통해 조금 더 쾌적하고 깨끗한 도시환경이 구축되어서 전염병에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생태계 파괴의 부분과 연결될 수 있겠군요. 단지 사유의 시간과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 자연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와 공존하는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19가 건축 방식과 연결된다는 정보는 처음 접하는 것이라 흥미롭습니다. 저는 현대 건축 방식을 통해 조금 더 쾌적하고 깨끗한 도시환경이 구축되어서 전염병에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생태계 파괴의 부분과 연결될 수 있겠군요. 단지 사유의 시간과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 자연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와 공존하는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혜진2021-03-31 22:34
평소에 닿아있으면서 갑갑함을 느꼈던 도시의 모습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도시를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라는 문장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류와 경험을 차단해버린 현재 건축과 도시의 문제를 잘 짚어낸 문장인 것 같다.
하나의 건축물이 한 사회, 그리고 여러 분야와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다양한 모습이 흥미로웠는데, 공간의 구성이 권력에 미치는 영향과 공간의 입지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원하는 모습에서는 이전에 다뤄졌던 능력주의 내 분화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방사형의 도시 구성에서 자신의 권력적인 위치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 그리고 격자형으로 된 쉬운 도시 체계 속에서 이민자의 적응이 수월해진다는 지점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문화재 그 자체를 박제, 보존하는 것이 꼭 그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과, 이전에 지어놨던 건물들을 없애버리기보다 지켜볼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통해 기존에 혼란스러웠던 생각에서 또다른 방향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단순히 사람이 많은 것 외에도 경험의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피로감을 더 쉽게 느꼈던 것이 책의 중후반부 정도에 언급된, 자국어로 된 간판이 혼잡스럽게 모여있는 것을 볼 때의 피로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홍대나 명동의 거리에서 경험의 밀도가 높은 것이, 정말 더 걷고 싶은 거리의 요건이 되는지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조금 더 들어보고 싶다.
하나의 건축물이 한 사회, 그리고 여러 분야와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다양한 모습이 흥미로웠는데, 공간의 구성이 권력에 미치는 영향과 공간의 입지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원하는 모습에서는 이전에 다뤄졌던 능력주의 내 분화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방사형의 도시 구성에서 자신의 권력적인 위치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 그리고 격자형으로 된 쉬운 도시 체계 속에서 이민자의 적응이 수월해진다는 지점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문화재 그 자체를 박제, 보존하는 것이 꼭 그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과, 이전에 지어놨던 건물들을 없애버리기보다 지켜볼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통해 기존에 혼란스러웠던 생각에서 또다른 방향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단순히 사람이 많은 것 외에도 경험의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피로감을 더 쉽게 느꼈던 것이 책의 중후반부 정도에 언급된, 자국어로 된 간판이 혼잡스럽게 모여있는 것을 볼 때의 피로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홍대나 명동의 거리에서 경험의 밀도가 높은 것이, 정말 더 걷고 싶은 거리의 요건이 되는지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조금 더 들어보고 싶다.
이은비2021-03-31 23:57
안녕하세요, 혜진님!
혜진님의 코멘트를 읽다가 제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져서 댓글 달게 되었습니다:)
제1장에서 '걷고 싶은 거리'를 측정하는 정량적인 요소로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를 제시하며, 홍대와 명동이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거리라는 결론을 도출했는데요. 저는 사실 공간의 밀도 또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혜진님께서 댓글에 남겨주신대로, 간판과 여러 상점들, 그리고 수많은 인파까지 밀집되어 있는 위의 거리들은 오히려 제게 피로감과 함께 '걷고 싶지 않은' 거리라는 인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따라서 '공간의 밀도'라는 요소를 걷고 싶은 거리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포함하고, '경험의 밀도'를 '거리에서의 모든 정보=경험'으로 해석하는 부분을 개선하여 사용자가 걸음을 멈추는 거리 간격(?)을 관심의 척도로 나타낸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혜진님의 코멘트를 읽다가 제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져서 댓글 달게 되었습니다:)
제1장에서 '걷고 싶은 거리'를 측정하는 정량적인 요소로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를 제시하며, 홍대와 명동이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거리라는 결론을 도출했는데요. 저는 사실 공간의 밀도 또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혜진님께서 댓글에 남겨주신대로, 간판과 여러 상점들, 그리고 수많은 인파까지 밀집되어 있는 위의 거리들은 오히려 제게 피로감과 함께 '걷고 싶지 않은' 거리라는 인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따라서 '공간의 밀도'라는 요소를 걷고 싶은 거리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포함하고, '경험의 밀도'를 '거리에서의 모든 정보=경험'으로 해석하는 부분을 개선하여 사용자가 걸음을 멈추는 거리 간격(?)을 관심의 척도로 나타낸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단2021-04-01 02:04
이 책을 읽고 능력주의를 떠올리신 강혜진 학우님의 생각이 참신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높은 곳에 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위에서 아래를 거느려볼 수 있다는 특권에서부터 왔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건축물을 통해 권력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은 참으로 타당한 분석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으면서 명동의 거리가 걷고 싶다고 느껴진다고 서술된 부분에서 살짝 갸우뚱했습니다. 명동과 같이 지나치게 많은 간판들과 사람들로 둘러쌓여있는 공간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빨리 이 공간을 탈피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명동만의 특수한 사례일 수 있지만 가끔씩 한국어보다 많이 보이는 중국어와 일본어는 가끔씩 저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경험의 밀도가 높은 곳이 대체적으로 걷고 싶은 거리는 맞겠지만 다른 특수한 요소들이 개입한다면 그 거리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책을 읽으면서 명동의 거리가 걷고 싶다고 느껴진다고 서술된 부분에서 살짝 갸우뚱했습니다. 명동과 같이 지나치게 많은 간판들과 사람들로 둘러쌓여있는 공간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빨리 이 공간을 탈피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명동만의 특수한 사례일 수 있지만 가끔씩 한국어보다 많이 보이는 중국어와 일본어는 가끔씩 저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경험의 밀도가 높은 곳이 대체적으로 걷고 싶은 거리는 맞겠지만 다른 특수한 요소들이 개입한다면 그 거리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장원2021-03-31 22:40
유현준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글이 아닌 동영상이었다. 원래 알쓸신잡을 즐겨보았던 시청자로서 유현준 교수님이 나왔던 시리즈는 건축이 나와 멀지 않은 분야라는 생각을 일깨워 주었다. 교수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유현준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더라도 교수님의 글이라는 걸 나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프로그램과 유사하게 질문을 던지시고, 도시와 건축에 대한 새로운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따뜻한 시각을 던져주고 있었다.
특히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챕터는 10장: 죽은 아파트의 사회였다. 한국은 부동산과 집을 하나의 재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에는 '집'이라는 장소가 주는 경험이 중요하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전해졌었는데, 아파트라는 새로운 건축물이 이러한 전통적 견해를 크게 왜곡시킨다는 데에 크게 공감했다. 우리가 더 높은 층, 더 좋은 집을 원하는 이유가 언제부터 나의 공간에 대한 만족감보다 집이 주는 경제적 풍요에서 비롯되었는가. 10장을 읽으면서 보다 삭막해진 한국 사회가 건축에 영향을 준 것인지, 아니면 아파트라는 건축이 한국 사회의 가치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인지 의문이 들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이 쉽게 걷히지 않았다.
나는 서울에서 살기 전까지 수원의 신도시 광교에서 살았다. 광교는 최근 10년간 신도시로 급격하게 개발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공사 중인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보인다. 직선으로 곧게 난 대로들과 사각형으로 지어진 공동 공간(백화점), 아파트 등은 내가 광교를 떠올릴 때 전혀 고향같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 광교호수공원과 수원컨벤션센터, 갤러리아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광교의 건축에도 생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었던 광교호수공원은 아파트들에 의해 고립된 호수의 느낌이었는데, 두 멀티컴플렉스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산책을 하다가 쇼핑을 하고, 또 새로 생긴 아쿠아리움에서 신기한 구경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보면서 환경을 활용하는 건축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끼기도 했고, 도시에 공원이 불러일으키는 생명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서울은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메트로폴리탄 가운데에서도 그 영향력이 매우 큰 도시에 속한다. 나는 그 서울에 살고 있고, 그러면서도 서울이 하나의 공간이라는 느낌보다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하나의 작은 세계라는 느낌을 받았다. 작게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학동과 서울대입구역을 비교해도, 불과 10km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임에도 두 동네가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처럼 서울은 수많은 동네와 이들이 집합된 지역, 그리고 그 지역들이 모인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이 서울이 주는 매력이자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서울의 매력이 한국만의 건축에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바이다.
도시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지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도시의 건축물들과 주변 환경, 혹은 넓게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도시라고 볼 수 있을까? 도시의 경계는 무엇이며, 서울에 살지 않지만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소속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특히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챕터는 10장: 죽은 아파트의 사회였다. 한국은 부동산과 집을 하나의 재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에는 '집'이라는 장소가 주는 경험이 중요하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전해졌었는데, 아파트라는 새로운 건축물이 이러한 전통적 견해를 크게 왜곡시킨다는 데에 크게 공감했다. 우리가 더 높은 층, 더 좋은 집을 원하는 이유가 언제부터 나의 공간에 대한 만족감보다 집이 주는 경제적 풍요에서 비롯되었는가. 10장을 읽으면서 보다 삭막해진 한국 사회가 건축에 영향을 준 것인지, 아니면 아파트라는 건축이 한국 사회의 가치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인지 의문이 들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이 쉽게 걷히지 않았다.
나는 서울에서 살기 전까지 수원의 신도시 광교에서 살았다. 광교는 최근 10년간 신도시로 급격하게 개발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공사 중인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보인다. 직선으로 곧게 난 대로들과 사각형으로 지어진 공동 공간(백화점), 아파트 등은 내가 광교를 떠올릴 때 전혀 고향같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 광교호수공원과 수원컨벤션센터, 갤러리아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광교의 건축에도 생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었던 광교호수공원은 아파트들에 의해 고립된 호수의 느낌이었는데, 두 멀티컴플렉스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산책을 하다가 쇼핑을 하고, 또 새로 생긴 아쿠아리움에서 신기한 구경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보면서 환경을 활용하는 건축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끼기도 했고, 도시에 공원이 불러일으키는 생명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서울은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메트로폴리탄 가운데에서도 그 영향력이 매우 큰 도시에 속한다. 나는 그 서울에 살고 있고, 그러면서도 서울이 하나의 공간이라는 느낌보다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하나의 작은 세계라는 느낌을 받았다. 작게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학동과 서울대입구역을 비교해도, 불과 10km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임에도 두 동네가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처럼 서울은 수많은 동네와 이들이 집합된 지역, 그리고 그 지역들이 모인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이 서울이 주는 매력이자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서울의 매력이 한국만의 건축에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바이다.
도시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지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도시의 건축물들과 주변 환경, 혹은 넓게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도시라고 볼 수 있을까? 도시의 경계는 무엇이며, 서울에 살지 않지만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소속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조성민2021-04-01 01:33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제시해주신 궁금중 중에 저도 공감가는 내용이 있어서 써봅니다
제 생각에 도시는 주거 생활과 업무 생활이 일어나는 곳으로, 인간사회가 돌아가기 위한 요소들이 여러 종류가 모여있는 공간입니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곳, 혹은 일만 하는 곳을 집이라고 할 수 없듯이 오로지 주거생활만 있는 전원 교외 지역이나, 업무생활만 이루어지는 공장지대는 도시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도시에는 사람과 정보가 모이는 힘이 있어서 그러한 힘의 영향 아래에 있는 공간 및 사회를 도시 생활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통 및 통신의 발달로 기존의 개발된 땅과 그린벨트로 구분되는 도시의 경계선이 많이 희미해지고 있으며, 따라서 서울의 도시 영향권이 커지면서 동시에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도시는 주거 생활과 업무 생활이 일어나는 곳으로, 인간사회가 돌아가기 위한 요소들이 여러 종류가 모여있는 공간입니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곳, 혹은 일만 하는 곳을 집이라고 할 수 없듯이 오로지 주거생활만 있는 전원 교외 지역이나, 업무생활만 이루어지는 공장지대는 도시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도시에는 사람과 정보가 모이는 힘이 있어서 그러한 힘의 영향 아래에 있는 공간 및 사회를 도시 생활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통 및 통신의 발달로 기존의 개발된 땅과 그린벨트로 구분되는 도시의 경계선이 많이 희미해지고 있으며, 따라서 서울의 도시 영향권이 커지면서 동시에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경제웅2021-03-31 22:53
우리 존재의 근거이자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는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은 신이 관장한다. 공간은 건축가가 조작한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저자의 당부처럼 건축이 예술의 한 분과로만 여겨져서는 안 된다. 건축은 우리 존재를 건립하는 신적인 활동이다.
특정한 형식으로 건축된 공간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고등학교 때부터 문제의식을 가져 왔다. 책에서 호텔과 모텔(86-89쪽), 또는 한옥과 아파트(239-244쪽)를 비교하면서 창문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데, 나도 고등학교 건물 구조를 살피면서 창문을 주의 깊게 본 기억이 있다. 학생의 공간과 교사의 공간은 창문의 투명도 차이가 확연함을 발견했다. 학생이 주로 머무는 일반 교과교실이나 물리실, 미술실 등 특별 교실은 창문의 하단 반절가량만 불투명 처리를 하고 나머지는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복도에서 교실 내부 모습, 즉 몇 명의 학생이 들어가 있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가 훤히 보인다. 반대로 모든 교무실은 창문의 상단까지 불투명 처리가 되어 있어, 외부에서 바라보아지지 않는다. 간혹 처리가 덜 된 투명한 틈이 있으면 A4 용지를 부착해 철저히 가려 놓았다. 심지어 교장실의 경우, 바깥쪽 문을 열고 들어가 안쪽 문을 또 한 번 열어야 접근 가능하며, 두 문에는 불투명한 창문이 달린 것이 아니라 아예 창문이 없다. 비대칭적인 가시성을 예정하는 창문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교장 사이의 권력 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공간의 설계가 물리적인 힘을 직접 가하지 않아도 그 설계만으로 인간의 심리를 뒤트는 사례들을 책에서 만났다. 중력장에 놓인 물체가 거기 놓였다는 사실만으로 에너지를 가지는 것처럼. 그만큼 공간을 낯설게 보는 시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가 아닌 ‘사과를 떨어지게 한 무엇’을 보았듯이.
요즈음 ‘핫플레이스’라는 소문에 친구와 냅다 다녀온 더현대서울은, 쇼핑몰의 한가운데에 층의 경계를 커다랗게 뻥 뚫어 놓았다. 이렇게 체험한 n+1층과 n층의 시각적 연결이 세련되어 보였던 이유는, 층들이 아무런 유기적 관계 없이 단절되어 있는 일반 백화점과는 위상기하학적으로 다른 모양으로 설계(313-316쪽)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층의 경계를 허물면 층고가 매우 높아지므로, 공간을 면적이 아닌 체적으로 감지하는 우리(89-93쪽)가 규모의 웅장함에 압도되기에 좋은 조건이다. 결정적으로, 이 뻥 뚫린 공간에 매장을 세우지 않고 나무와 풀, 흙과 벤치를 배치했다. 서울 최대 규모에다가 방문자 수도 폭발적이라서 자칫 정신없어질 수 있는 것을, 녹지 내지 ‘비움의 공간’(201쪽)으로 중화한 것이다. 실제로 영업 면적 대비 매장 면적 비율이 51%에 불과하다. 현대백화점의 다른 점포 15개의 해당 비율이 평균 65%임*을 보면, 더현대서울은 방문자의 피로를 완화하는 하나의 ‘선정원’을 품고 있는 것이다.
공부란 내가 보는 세상의 해상도를 높여 가는 활동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많은 학우들처럼 나 역시 책의 내용이 깊지는 않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공부가 얕게 된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모든 장소를 이모저모로 바라보게 만들었으니, 내게 일상의 선명도를 높여 준 '참 공부'가 되었다.
* 오정민, 「"코로나 우울엔 '리테일 테라피'"...'더현대 서울'이 온다」, 『한국경제』, 2021. 2. 23.
특정한 형식으로 건축된 공간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고등학교 때부터 문제의식을 가져 왔다. 책에서 호텔과 모텔(86-89쪽), 또는 한옥과 아파트(239-244쪽)를 비교하면서 창문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데, 나도 고등학교 건물 구조를 살피면서 창문을 주의 깊게 본 기억이 있다. 학생의 공간과 교사의 공간은 창문의 투명도 차이가 확연함을 발견했다. 학생이 주로 머무는 일반 교과교실이나 물리실, 미술실 등 특별 교실은 창문의 하단 반절가량만 불투명 처리를 하고 나머지는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복도에서 교실 내부 모습, 즉 몇 명의 학생이 들어가 있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가 훤히 보인다. 반대로 모든 교무실은 창문의 상단까지 불투명 처리가 되어 있어, 외부에서 바라보아지지 않는다. 간혹 처리가 덜 된 투명한 틈이 있으면 A4 용지를 부착해 철저히 가려 놓았다. 심지어 교장실의 경우, 바깥쪽 문을 열고 들어가 안쪽 문을 또 한 번 열어야 접근 가능하며, 두 문에는 불투명한 창문이 달린 것이 아니라 아예 창문이 없다. 비대칭적인 가시성을 예정하는 창문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교장 사이의 권력 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공간의 설계가 물리적인 힘을 직접 가하지 않아도 그 설계만으로 인간의 심리를 뒤트는 사례들을 책에서 만났다. 중력장에 놓인 물체가 거기 놓였다는 사실만으로 에너지를 가지는 것처럼. 그만큼 공간을 낯설게 보는 시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가 아닌 ‘사과를 떨어지게 한 무엇’을 보았듯이.
요즈음 ‘핫플레이스’라는 소문에 친구와 냅다 다녀온 더현대서울은, 쇼핑몰의 한가운데에 층의 경계를 커다랗게 뻥 뚫어 놓았다. 이렇게 체험한 n+1층과 n층의 시각적 연결이 세련되어 보였던 이유는, 층들이 아무런 유기적 관계 없이 단절되어 있는 일반 백화점과는 위상기하학적으로 다른 모양으로 설계(313-316쪽)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층의 경계를 허물면 층고가 매우 높아지므로, 공간을 면적이 아닌 체적으로 감지하는 우리(89-93쪽)가 규모의 웅장함에 압도되기에 좋은 조건이다. 결정적으로, 이 뻥 뚫린 공간에 매장을 세우지 않고 나무와 풀, 흙과 벤치를 배치했다. 서울 최대 규모에다가 방문자 수도 폭발적이라서 자칫 정신없어질 수 있는 것을, 녹지 내지 ‘비움의 공간’(201쪽)으로 중화한 것이다. 실제로 영업 면적 대비 매장 면적 비율이 51%에 불과하다. 현대백화점의 다른 점포 15개의 해당 비율이 평균 65%임*을 보면, 더현대서울은 방문자의 피로를 완화하는 하나의 ‘선정원’을 품고 있는 것이다.
공부란 내가 보는 세상의 해상도를 높여 가는 활동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많은 학우들처럼 나 역시 책의 내용이 깊지는 않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공부가 얕게 된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모든 장소를 이모저모로 바라보게 만들었으니, 내게 일상의 선명도를 높여 준 '참 공부'가 되었다.
* 오정민, 「"코로나 우울엔 '리테일 테라피'"...'더현대 서울'이 온다」, 『한국경제』, 2021. 2. 23.
손지우2021-03-31 23:32
지난 화요일,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이라는 뭔가 센치한 부제에 맞는 분위기 좋은 곳에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가로수길로 향했다. 가로수길을 한번 슬쩍 걸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 야외 좌석에 앉아서 독서를 시작했는데 세상에,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성공적이면서도 가장 걷기 좋은 길이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부분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이후 다루어지는 판옵티콘, 교회와 절의 차이, 네온사인에 관한 이야기 등도 매우 흥미로웠다. 책에서는 도시가, 그리고 그 내의 건축물들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완독 후, 문득 지금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집’이라는 곳은 내게 있어 상상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저 물리적 공간 이상의 것으로, 밖에서 지치고 힘들다가도 돌아가 아무 자극 없이 쉴 수 있는 곳이자, 내 취향의 물건들을 하나 둘 사 모으고 꾸밈으로써 나와 닮아가는 하나의 분신과도 같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요원해지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 듯하다. 올해 초 자취를 시작했는데, 우리 집 – 자취방 – 은 서울대입구의 번화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골목에 있다. 집에는 큰 창이 있어 아침이면 막을 수도 없게 햇살이 쏟아지고, 창문 밖 보이는 놀이터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이제는 좀 친해졌다고 창문으로 물총을 쏘며 나와서 놀아 달라 조르기도 한다. 요즘에는 날씨가 좋을 때면 골목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조용한 편이지만 고요하지는 않고, 길을 따라 간간히 있는 카페들에서 그곳의 사장님들과 단골손님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어제 보았던 붉은 벽돌 담 아래 민들레가 오늘도 다시 보이고, 해가 질 때가 되면 담을 넘어 햇빛이 들어오는 동네를 걷다 보면 문득 잔잔한 행복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원체 느린 속도의 사람이라 번화가의 화려하고 많은 변화가 신기하고 흥분되는 것과는 별개로, 고요하고 약간은 옛날 동네의 느낌이 풍기는 지금의 동네와 같은 곳에서 평안을 얻는다. 이렇게 집과 동네로부터 얻는 안정감은 스스로를 ‘코로나 블루’ 등과 같은 정서적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구조망과도 같은 역할 또한 한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 책은 “건축가가 건축 비전공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라고 표현하며 우리 모두는 일종의 건축가이고 서로가 건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개인적 답을 내려 보고자 하였으나 스스로 또한 아직 고민 중일 따름이다. 이에 대해 학우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완독 후, 문득 지금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집’이라는 곳은 내게 있어 상상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저 물리적 공간 이상의 것으로, 밖에서 지치고 힘들다가도 돌아가 아무 자극 없이 쉴 수 있는 곳이자, 내 취향의 물건들을 하나 둘 사 모으고 꾸밈으로써 나와 닮아가는 하나의 분신과도 같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요원해지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 듯하다. 올해 초 자취를 시작했는데, 우리 집 – 자취방 – 은 서울대입구의 번화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골목에 있다. 집에는 큰 창이 있어 아침이면 막을 수도 없게 햇살이 쏟아지고, 창문 밖 보이는 놀이터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이제는 좀 친해졌다고 창문으로 물총을 쏘며 나와서 놀아 달라 조르기도 한다. 요즘에는 날씨가 좋을 때면 골목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조용한 편이지만 고요하지는 않고, 길을 따라 간간히 있는 카페들에서 그곳의 사장님들과 단골손님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어제 보았던 붉은 벽돌 담 아래 민들레가 오늘도 다시 보이고, 해가 질 때가 되면 담을 넘어 햇빛이 들어오는 동네를 걷다 보면 문득 잔잔한 행복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원체 느린 속도의 사람이라 번화가의 화려하고 많은 변화가 신기하고 흥분되는 것과는 별개로, 고요하고 약간은 옛날 동네의 느낌이 풍기는 지금의 동네와 같은 곳에서 평안을 얻는다. 이렇게 집과 동네로부터 얻는 안정감은 스스로를 ‘코로나 블루’ 등과 같은 정서적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구조망과도 같은 역할 또한 한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 책은 “건축가가 건축 비전공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라고 표현하며 우리 모두는 일종의 건축가이고 서로가 건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개인적 답을 내려 보고자 하였으나 스스로 또한 아직 고민 중일 따름이다. 이에 대해 학우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이은비2021-03-31 23:44
유현준 교수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도시라는 공간을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지 않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열다섯 가지의 시선 중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던 파트는 크게 두 가지로, 이에 대해서 간략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제1장의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이다. 해당 파트에서는 ‘걷고 싶은 거리’를 단위거리당 상점의 출입구 숫자에 따른 이벤트 밀도,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속도를 계산한 공간의 속도를 이용하여 정량적으로 분석한다. ‘걷고 싶은’이라는 정성적인 결과를 수치를 활용하여 도출한다는 점이 매우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방식 이외에도 어떤 정량적인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본인은 공간의 밀도 또한 계산 방법에 추가되었으면 한다. 명동이나 홍대 거리의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요인이 되지만, 그만큼 인파에 밀려 움직이고 있는(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움직임) 느낌이 강하다. 즉, 공간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 걷고 싶은 거리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애초에 사람들이 많이 걷기 때문에 공간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겠지만,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을 다시 계산 방식에 추가할 수는 없을지 의문이 든다.
두 번째는, 제4장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뉴욕 이야기”이다. 저자는 건축물을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적으로 보는 시선을 비판하며 과거의 건축물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사례(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들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건축 문화재를 무조건 보존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용도를 변화시키자고 주장한다. 루브르 박물관이 병참 요새→왕궁→박물관 순서로 개조되었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었고, 사실 흥미롭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이미 한옥을 게스트하우스나 음식점, 카페 등으로 활용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나름 시대에 걸맞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루브르 박물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잘된 사례 중 하나일 뿐, 우리의 건축 문화재를 개조한다고 해서 그 장소가 대중들에게 무조건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건축물의 하드웨어적인 측면만 강조해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보존된 전통 건축물 그 자체를 관람하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니즈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본인은 지금의 행태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건축물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중시할 수 있게끔 하는 다른 방안이 있을지 궁금하다.
첫 번째는, 제1장의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이다. 해당 파트에서는 ‘걷고 싶은 거리’를 단위거리당 상점의 출입구 숫자에 따른 이벤트 밀도,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속도를 계산한 공간의 속도를 이용하여 정량적으로 분석한다. ‘걷고 싶은’이라는 정성적인 결과를 수치를 활용하여 도출한다는 점이 매우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방식 이외에도 어떤 정량적인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본인은 공간의 밀도 또한 계산 방법에 추가되었으면 한다. 명동이나 홍대 거리의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요인이 되지만, 그만큼 인파에 밀려 움직이고 있는(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움직임) 느낌이 강하다. 즉, 공간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 걷고 싶은 거리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애초에 사람들이 많이 걷기 때문에 공간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겠지만,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을 다시 계산 방식에 추가할 수는 없을지 의문이 든다.
두 번째는, 제4장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뉴욕 이야기”이다. 저자는 건축물을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적으로 보는 시선을 비판하며 과거의 건축물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사례(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들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건축 문화재를 무조건 보존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용도를 변화시키자고 주장한다. 루브르 박물관이 병참 요새→왕궁→박물관 순서로 개조되었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었고, 사실 흥미롭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이미 한옥을 게스트하우스나 음식점, 카페 등으로 활용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나름 시대에 걸맞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루브르 박물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잘된 사례 중 하나일 뿐, 우리의 건축 문화재를 개조한다고 해서 그 장소가 대중들에게 무조건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건축물의 하드웨어적인 측면만 강조해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보존된 전통 건축물 그 자체를 관람하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니즈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본인은 지금의 행태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건축물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중시할 수 있게끔 하는 다른 방안이 있을지 궁금하다.
이재용2021-03-31 23:50
건축과 도시 계획에는 ‘이상’과 ‘현실’이 존재합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유현준 교수님은 이 책에 ‘이상적인 도시’를 담으셨습니다. 전 이 책을 읽고 떠오른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해 보았고 그 중 가장 관심도가 높을 것이라 여겨진 주제 두 가지를 써보았습니다.
[코로나 시대, 코로나 시대 이후의 걷고싶은 거리] 책의 1장에서 거리의 이벤트 경우의 수는 2^n, 이벤트 밀도를 계산했을 때 명동 거리 , 가로수길이 강남대로보다 훨씬 더 큰 수치를 보였습니다. 또한 공간의 속도 공식을 만들어 계산, 이벤트 경우의 수와 종합했을 때 ‘걷고싶은 거리’의 순서는 가로수길> 홍대=명동> 강남대로 > 테헤란로 로 데이트 코스 선호 순위와 거의 동일하다고 언급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가 이에 흥미를 가지고 지인 10명에게 거리 선호도와 선호 이유에 대해 물어본 결과 책의 선호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물론 제대로된 통계를 기반으로한 설문조사는 아닙니다). 가로수길은 오늘날에도 이 거리들 중에서도 가장 걷고 싶은 거리였지만, 신기하게도 명동이 가장 후순위에 자리잡았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홍대 또한 강남대로보다 후순위에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거리 선호에 있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 것은 가게 및 카페 수가 아닌(차도의 너비와 인도의 너비는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인구 밀집 정도, 청결도, 접근성(버스정류장 수) 등이었으며 그렇게 가중치를 둔 이유에 ‘코로나’로 답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거리의 선호도와 활동성에 있어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는 ‘코로나’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게 운영 시간, 관광객의 수에 큰 변화가 있었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느낌대로, 무작위로 이벤트를 경험하는 것이 아닌 사전 온라인 지도를 통해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여 다니게 되었습니다. 영화관, 극장, 음식점 등 다양한 경험하는 공간들은 홈 테크의 발달로 오가는 발걸음 수가 확실히 줄었습니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리가 바로 ‘명동’과 ‘가로수길’입니다. 그 중 특히 명동은 행인의 상당수가 중국, 일본에서 온 관광객이었기에 명동의 많은 가게 및 카페가 문을 닫았고, 금요일 저녁 및 주말 발디딜 틈도 없었던 거리는 육안으로도 ‘텅’ 비었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물론 객관적인 자료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통학과 약속 등의 이유로 일주일에 세, 네번씩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을지로3가(명동), 홍대를 걷는 저로선 명동 거리의 유동인구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한 번 겪은 펜데믹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거리를 정하는데 있어 경험의 수가 아닌 방역, 청결도, 온라인 홍보 정도 및 정확도, 인구밀집 정도 등의 변수에 가중치를 더 크게 적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거리 계획에 있어 어떤 것에 먼저, 가중치를 크게 두어야 하는지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경제적 측면과 도시계획] 앞서 많은 학우분들께서 언급했다시피, 경제적 측면도 현실에선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합니다. ‘현실’의 도시와 집은 ‘이상’에서 선호하는 도시와 집과 매우 다릅니다. 특히 오늘날의 서울 및 수도권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도시와 주거 공간은 하나의 유기체로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가야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도시와 집, 공원과 골목을 구상하더라도 그곳에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존재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이번 토론에선 ‘이상적인’ 도시의 형태와는 별개로 각 소득 분위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도시의 형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코로나 시대, 코로나 시대 이후의 걷고싶은 거리] 책의 1장에서 거리의 이벤트 경우의 수는 2^n, 이벤트 밀도를 계산했을 때 명동 거리 , 가로수길이 강남대로보다 훨씬 더 큰 수치를 보였습니다. 또한 공간의 속도 공식을 만들어 계산, 이벤트 경우의 수와 종합했을 때 ‘걷고싶은 거리’의 순서는 가로수길> 홍대=명동> 강남대로 > 테헤란로 로 데이트 코스 선호 순위와 거의 동일하다고 언급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가 이에 흥미를 가지고 지인 10명에게 거리 선호도와 선호 이유에 대해 물어본 결과 책의 선호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물론 제대로된 통계를 기반으로한 설문조사는 아닙니다). 가로수길은 오늘날에도 이 거리들 중에서도 가장 걷고 싶은 거리였지만, 신기하게도 명동이 가장 후순위에 자리잡았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홍대 또한 강남대로보다 후순위에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거리 선호에 있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 것은 가게 및 카페 수가 아닌(차도의 너비와 인도의 너비는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인구 밀집 정도, 청결도, 접근성(버스정류장 수) 등이었으며 그렇게 가중치를 둔 이유에 ‘코로나’로 답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거리의 선호도와 활동성에 있어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는 ‘코로나’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게 운영 시간, 관광객의 수에 큰 변화가 있었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느낌대로, 무작위로 이벤트를 경험하는 것이 아닌 사전 온라인 지도를 통해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여 다니게 되었습니다. 영화관, 극장, 음식점 등 다양한 경험하는 공간들은 홈 테크의 발달로 오가는 발걸음 수가 확실히 줄었습니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리가 바로 ‘명동’과 ‘가로수길’입니다. 그 중 특히 명동은 행인의 상당수가 중국, 일본에서 온 관광객이었기에 명동의 많은 가게 및 카페가 문을 닫았고, 금요일 저녁 및 주말 발디딜 틈도 없었던 거리는 육안으로도 ‘텅’ 비었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물론 객관적인 자료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통학과 약속 등의 이유로 일주일에 세, 네번씩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을지로3가(명동), 홍대를 걷는 저로선 명동 거리의 유동인구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한 번 겪은 펜데믹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거리를 정하는데 있어 경험의 수가 아닌 방역, 청결도, 온라인 홍보 정도 및 정확도, 인구밀집 정도 등의 변수에 가중치를 더 크게 적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거리 계획에 있어 어떤 것에 먼저, 가중치를 크게 두어야 하는지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경제적 측면과 도시계획] 앞서 많은 학우분들께서 언급했다시피, 경제적 측면도 현실에선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합니다. ‘현실’의 도시와 집은 ‘이상’에서 선호하는 도시와 집과 매우 다릅니다. 특히 오늘날의 서울 및 수도권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도시와 주거 공간은 하나의 유기체로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가야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도시와 집, 공원과 골목을 구상하더라도 그곳에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존재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이번 토론에선 ‘이상적인’ 도시의 형태와는 별개로 각 소득 분위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도시의 형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탈퇴한 회원2021-04-01 10:24
재용님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우선 첫번째 직접 지인들에게 설문조사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코로나가 지금 접근성이나 사람들의 생각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코로나에 걸릴 위험에 대한 두려움도 한몫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코로나 이전 굉장히 밀도있는 대면 인간관계를 맺었다면, 지금은 조금은 더 성글게 그리고 소수로 관계 맺는 것의 편리함, 효율성 등을 다시 알게 된 것도 그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후 어느 정도 이 경향이 지속될지, 그에 따라서 건축과 관련 정책적 계획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유심히 지켜보면서 다루어야 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또 경제적 문제는 저도 고민을 어느 정도 해보았습니다만, 확실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집을 소득으로 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사적 공간을 보장하면서도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소통이 가능한 건축물을 어떻게 지향해야할지도 앞으로의 큰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우선 첫번째 직접 지인들에게 설문조사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코로나가 지금 접근성이나 사람들의 생각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코로나에 걸릴 위험에 대한 두려움도 한몫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코로나 이전 굉장히 밀도있는 대면 인간관계를 맺었다면, 지금은 조금은 더 성글게 그리고 소수로 관계 맺는 것의 편리함, 효율성 등을 다시 알게 된 것도 그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후 어느 정도 이 경향이 지속될지, 그에 따라서 건축과 관련 정책적 계획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유심히 지켜보면서 다루어야 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또 경제적 문제는 저도 고민을 어느 정도 해보았습니다만, 확실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집을 소득으로 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사적 공간을 보장하면서도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소통이 가능한 건축물을 어떻게 지향해야할지도 앞으로의 큰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박지유2021-04-01 13:55
재용님 안녕하세요, 두 주제 모두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저 역시 코로나19 이후 거리를 '걷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는 새롭게 고려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이벤트 밀도에 기초한 우연성, 체험의 다양성보다, 적절한 밀집도와 안전, 청결도 등이 우선순위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동과 같은 고밀화된 상업지구보다 책에서 소개됐던 덕수궁 돌담길 같은 곳이 포스트팬데믹 시기에 더욱 인기를 얻지 않을까 예측해봅니다. 더불어 팬데믹 발생 이후 카페, 노래방 등 밀폐된 공간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한강공원 등 자연과 맞닿은 공간을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방'문화 중심의 도시공간의 취약성과 변화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코로나19 이후 거리를 '걷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는 새롭게 고려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이벤트 밀도에 기초한 우연성, 체험의 다양성보다, 적절한 밀집도와 안전, 청결도 등이 우선순위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동과 같은 고밀화된 상업지구보다 책에서 소개됐던 덕수궁 돌담길 같은 곳이 포스트팬데믹 시기에 더욱 인기를 얻지 않을까 예측해봅니다. 더불어 팬데믹 발생 이후 카페, 노래방 등 밀폐된 공간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한강공원 등 자연과 맞닿은 공간을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방'문화 중심의 도시공간의 취약성과 변화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지유2021-03-31 23:50
‘공간’과 ‘사람’이라는 키워드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도시공간을 흥미롭게 조명하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개인화된 한국사회, 특히 코로나19 이후의 한국사회에서 도시공간이 갖는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공간’은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대안으로 급부상했으나, 이는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의 중요성을 절감하게끔 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적으로 접촉할 수 있으나 그 속에서 깊이있는 관계를 발전시키기 매우 어렵다. 자그만한 화면 속에서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토론하던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서로가 실존인물임을 확인할 때, 눈인사를 주고받고 반응을 나누고 스몰토크를 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상대의 인간적인 면을 알아갈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공간의 팽창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공간, 그 속에서의 대면접촉과 입체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졌다고 생각한다. 우려할 만한 점은, 코로나19는 서로 간의 단절을 더욱 가시화했을 뿐, 우리 사회는 그 전부터 지속적으로 개인화되고 단절되어 갔다는 점이다. 산업화/탈산업화 시기 도시공간 역시 이러한 현상에 크게 일조했다. 만남의 공간이었던 마당과 골목길을 차도로 바꾸고, 주택 대신 고층아파트에 사람들을 몰아넣자, 사람들은 옹벽이 쳐진 아파트 동으로, 아파트 복도로, 집안에서도 방 안으로 들어가며 점점 스스로를 단절시켰던 것이다. 최근에는 산업화 시기 핵가족마저 해체되고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으며, 현재는 서로 간의 ‘거리두기’가 국가적으로 권장되는 상황이다. 단절된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한, 새로운 도시공간에 대한 상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연결을 추구하는 한 편 사생활도 소중히 여긴다. 사생활이 지켜지는 나만의 공간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금의 주택난으로 인해 나만의 공간을 갖기가, 특히 주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만한 공간을 갖기가 무척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부의 저장 수단으로서 환금성이 좋은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누군가는 사적 공간을 마련할 염두도 못 낸다는 것은 크나큰 문제이다. 최근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기존의 핵가족 단위의 고층아파트 패러다임을 넘어, 1인가구와 청년세대에 적합한 새로운 주택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공간’은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대안으로 급부상했으나, 이는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의 중요성을 절감하게끔 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적으로 접촉할 수 있으나 그 속에서 깊이있는 관계를 발전시키기 매우 어렵다. 자그만한 화면 속에서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토론하던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서로가 실존인물임을 확인할 때, 눈인사를 주고받고 반응을 나누고 스몰토크를 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상대의 인간적인 면을 알아갈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공간의 팽창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공간, 그 속에서의 대면접촉과 입체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졌다고 생각한다. 우려할 만한 점은, 코로나19는 서로 간의 단절을 더욱 가시화했을 뿐, 우리 사회는 그 전부터 지속적으로 개인화되고 단절되어 갔다는 점이다. 산업화/탈산업화 시기 도시공간 역시 이러한 현상에 크게 일조했다. 만남의 공간이었던 마당과 골목길을 차도로 바꾸고, 주택 대신 고층아파트에 사람들을 몰아넣자, 사람들은 옹벽이 쳐진 아파트 동으로, 아파트 복도로, 집안에서도 방 안으로 들어가며 점점 스스로를 단절시켰던 것이다. 최근에는 산업화 시기 핵가족마저 해체되고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으며, 현재는 서로 간의 ‘거리두기’가 국가적으로 권장되는 상황이다. 단절된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한, 새로운 도시공간에 대한 상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연결을 추구하는 한 편 사생활도 소중히 여긴다. 사생활이 지켜지는 나만의 공간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금의 주택난으로 인해 나만의 공간을 갖기가, 특히 주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만한 공간을 갖기가 무척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부의 저장 수단으로서 환금성이 좋은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누군가는 사적 공간을 마련할 염두도 못 낸다는 것은 크나큰 문제이다. 최근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기존의 핵가족 단위의 고층아파트 패러다임을 넘어, 1인가구와 청년세대에 적합한 새로운 주택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장원2021-04-01 13:26
박지유님 글 잘읽었습니다!
특히 핵가족 단위의 가족 구성 확대와 '거리두기'로 인한 관계 형성의 어려움 등을 도시공간에 대한 변화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말씀해주신 긍정적인 기대에 크게 공감하면서 댓글을 남겨봅니다. 저도 소통을 위한 공간의 부재가 최근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인 가구가 확대됨에 따라 개인들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효율적인 공간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에 대한 개발도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유현준 교수님의 책에서 도시 공원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해주신 부분에 뜻을 같이하면서 글을 읽었었는데요. 기존에는 카페, 술집 등의 공간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대표했다면, 코로나 상황에서 감염병의 확산을 예방하면서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는 트인 도시 공원, 서울로 치면 한강 공원의 개발 및 유지가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하여 지유님께서 말씀해주신 새로운 주택 개념에 대한 고민과 사회적 논의도 필수적일 것입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유도할 수 있는 건축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특히 핵가족 단위의 가족 구성 확대와 '거리두기'로 인한 관계 형성의 어려움 등을 도시공간에 대한 변화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말씀해주신 긍정적인 기대에 크게 공감하면서 댓글을 남겨봅니다. 저도 소통을 위한 공간의 부재가 최근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인 가구가 확대됨에 따라 개인들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효율적인 공간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에 대한 개발도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유현준 교수님의 책에서 도시 공원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해주신 부분에 뜻을 같이하면서 글을 읽었었는데요. 기존에는 카페, 술집 등의 공간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대표했다면, 코로나 상황에서 감염병의 확산을 예방하면서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는 트인 도시 공원, 서울로 치면 한강 공원의 개발 및 유지가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하여 지유님께서 말씀해주신 새로운 주택 개념에 대한 고민과 사회적 논의도 필수적일 것입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유도할 수 있는 건축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양승훈2021-03-31 23:52
음식을 공부하는 나로서 건물은 '음식을 안전/깨끗하게 보관하거나' '음식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고대 건축물(혹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半건축물)은 음식 보관을 위한 행위부터 출발하는 경우도 많았다. 초기 형태의 주거시설도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지거나 혹은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삶이 부유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점차 건물도 다양한 행위를 하게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먹는다'는 행위는 건물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든다. 사무실에서는 종종 책이나 서류, 노트북 등을 치우고 책상을 이어붙여 다같이 간단한 점심을 나누어 먹는 런치 세션을 가지기도 하고 절/교회 같은 불가침의 종교시설에서도 종종 먹는 행위를 통해 신앙심과 현실의 삶을 이어 붙인다. 공공의 재산으로 책을 사들이는 도서관의 경우 훼손의 여지가 있어 음식이 여전히 금지되기는 하지만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만화카페나 최근 카페와 결합된 서점/도서관이 생기는 모습을 보면 '책을 읽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 자체와 먹는다는 행위가 단절된 건 아닌 것 같다. 먹는다는 행위는 신기한 것이 어떠한 공간과도 잘 맞는 행위이다. 길거리에서 자는 잠은 이상하지만 길거리에서 먹는 샌드위치는 괜찮다. 사무실에서 하는 성행위는 지양해야 하지만 사무실에서 밥을 먹는 건 보기 좋다.
이러한 '먹는' 행위가 도시에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먹는 행위가 여전히 도시를 형성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책에서 '앉거나 멈출 수 있는' 공간인 데크 공간이 공간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주된 요소라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공간의 속도가 느려지면 걷고 싶은 거리, 결국 좋아하는 공간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먹거나 마실 수 있는' 공간이 공간을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벤트에 대한 밀도에 대해서도 들어갈 수 있는 접점인 문을 이야기하였지만 이도 정확히 말해 보자면 '먹거나 마실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진정한 (좋은) 이벤트의 밀도를 결정한다 생각한다.
테헤란로에는 정말 많은 문이 있고 분명 이 문을 들어간다면 나에게는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벤트가 테헤란로를 걸어다니는 나를 즐겁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사무 공간들이 있으며 나와 상관 없고,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테헤란로보다 한 두 블럭만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직장인들을 위한 다양한 식당가는 여전히 인도가 거의 없지만 즐겁고 활기 넘치는 공간이 된다. 먹는다는 행위는 우리가 이 도시에서 가장 값싸게 선택할 수 있는 이벤트이며 내가 어떤 직종의 사람이든 쉽게 나와 관련있는 공간이 되어 (나는 함부로 건축사무소의 문을 열지는 않지만 생경한 그리스식 음식점 문을 열수는 있다) 언제든 나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그저 걷다가 둘러보고 나오는 게 아니라 자리에 앉아 오래 행위를 할 수 있으며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시간의 풍성함이 나를 즐겁게 만들 것이다. 음식이 화가 날 정도로 맛이 없지만 않다면 말이다.
만약 거리에 따닥따닥 의자가 붙어 있어 이야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데크가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 공간에서는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앉아 아픈 다리를 푸는 행위 이외에는. 좋은 예시가 실내이기는 하지만 백화점 구석구석에 있는 벤치나 쇼핑몰/아울렛 복도의 벤치이다. 그곳에는 지친 남편(혹은 아내)와 그 아이들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핸드폰을 한다.
이전에 발달한 식문화로 유명한 '파르마' 라는 이탈리아의 도시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라는 나라 자체가 고유의 발달한 식문화가 유명한 나라이지만 파르마라는 도시에서의 여러 경험은 특히 색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파르마에 가서 트립 어드바이저를 켜든, 구글 맵을 켜든, 어린 학생에게 물어보든, 나이든 택시 기사 혹은 토박이가 아닌 여행 가이드에게 물어보든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식당'을 말하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곳이 있다. Pepen 이라는 식당인데 가벼워 보이는 이름처럼 실제로 테이크아웃 전문점이고 패스트푸드이다. 가보면 대기줄이나 대기번호도 없이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 겨우 주문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실내 공간도 없다. 대신 밖을 나와보면 바로 앞에 작은 광장이 있고 조금 더 가면 큰 공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테이크아웃한 페펜의 샌드위치를 집에 가서 먹지 않고 광장 혹은 공원에서 먹는다. 그래서 포장도 서브웨이처럼 돌돌 말아주는 게 아니라 그냥 손에 묻지 않을 포장지에 얹어주는 수준이다. 대신 파르마 전체가 페펜의 홀이 된다. 사람들은 걸어가다 페펜에 들려 샌드위치를 사고 마저 걸어 밥을 먹는다. 그리고 작은 도시기에 그렇게 밥을 먹다 반드시 아는 사람 한 둘을 마주치게 된다.
그외에도 파르마는 먹을 수 있는 공간들이 실외에 굉장히 많다. 바나 펍도 대부분의 식탁이 밖에 있다. 사람들은 걷다 그런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한다. 그러다 점원이 나오면 간단한 음료를 주문하고 이야기나 휴식이 끝날 때까지 점원이 나오지 않으면 마저 갈길을 간다. 심지어 큰 오크통 모양의 스탠딩 책상을 내놓은 바의 경우 정말 파르마 사람들의 사랑방과 다름 없다.
로마를 방문한 사람들은 골목 어디에서나 먹는 분위기를 편안하고 좋게 느꼈을 것이다. 파르마는 그런 분위기가 극대화된 곳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평화롭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그래서 가장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는 방법은 (혹은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고 그만큼 또 우리가 많이 먹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먹는 공간이 많이 제한되었다. 기차에서는 더 이상 음식을 먹지 못하고 4명 이상은 어디가서 먹을 수 없으며 밤 9시 이후로는 먹을 수 없다. 그래서 기차 여행은 조금 더 단조롭고 지루해졌다. 4명 이상 모임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로만 남게 되었다. 밤 9시 이후 거리를 걸으면 요즘은 굉장히 썰렁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도 포스트-코로나에서 여전히 내가 이 도시에 활력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먹는다는 행위만큼은 절대 비대면으로 전환되지 않은 채 남아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다같이 먹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먹는다, 는 행위가 오프라인으로 남아있기만 하다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공간은 (적어도 먹는 공간은) 의미를 가진 채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먹는' 행위가 도시에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먹는 행위가 여전히 도시를 형성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책에서 '앉거나 멈출 수 있는' 공간인 데크 공간이 공간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주된 요소라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공간의 속도가 느려지면 걷고 싶은 거리, 결국 좋아하는 공간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먹거나 마실 수 있는' 공간이 공간을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벤트에 대한 밀도에 대해서도 들어갈 수 있는 접점인 문을 이야기하였지만 이도 정확히 말해 보자면 '먹거나 마실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진정한 (좋은) 이벤트의 밀도를 결정한다 생각한다.
테헤란로에는 정말 많은 문이 있고 분명 이 문을 들어간다면 나에게는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벤트가 테헤란로를 걸어다니는 나를 즐겁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사무 공간들이 있으며 나와 상관 없고,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테헤란로보다 한 두 블럭만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직장인들을 위한 다양한 식당가는 여전히 인도가 거의 없지만 즐겁고 활기 넘치는 공간이 된다. 먹는다는 행위는 우리가 이 도시에서 가장 값싸게 선택할 수 있는 이벤트이며 내가 어떤 직종의 사람이든 쉽게 나와 관련있는 공간이 되어 (나는 함부로 건축사무소의 문을 열지는 않지만 생경한 그리스식 음식점 문을 열수는 있다) 언제든 나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그저 걷다가 둘러보고 나오는 게 아니라 자리에 앉아 오래 행위를 할 수 있으며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시간의 풍성함이 나를 즐겁게 만들 것이다. 음식이 화가 날 정도로 맛이 없지만 않다면 말이다.
만약 거리에 따닥따닥 의자가 붙어 있어 이야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데크가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 공간에서는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앉아 아픈 다리를 푸는 행위 이외에는. 좋은 예시가 실내이기는 하지만 백화점 구석구석에 있는 벤치나 쇼핑몰/아울렛 복도의 벤치이다. 그곳에는 지친 남편(혹은 아내)와 그 아이들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핸드폰을 한다.
이전에 발달한 식문화로 유명한 '파르마' 라는 이탈리아의 도시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라는 나라 자체가 고유의 발달한 식문화가 유명한 나라이지만 파르마라는 도시에서의 여러 경험은 특히 색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파르마에 가서 트립 어드바이저를 켜든, 구글 맵을 켜든, 어린 학생에게 물어보든, 나이든 택시 기사 혹은 토박이가 아닌 여행 가이드에게 물어보든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식당'을 말하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곳이 있다. Pepen 이라는 식당인데 가벼워 보이는 이름처럼 실제로 테이크아웃 전문점이고 패스트푸드이다. 가보면 대기줄이나 대기번호도 없이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 겨우 주문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실내 공간도 없다. 대신 밖을 나와보면 바로 앞에 작은 광장이 있고 조금 더 가면 큰 공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테이크아웃한 페펜의 샌드위치를 집에 가서 먹지 않고 광장 혹은 공원에서 먹는다. 그래서 포장도 서브웨이처럼 돌돌 말아주는 게 아니라 그냥 손에 묻지 않을 포장지에 얹어주는 수준이다. 대신 파르마 전체가 페펜의 홀이 된다. 사람들은 걸어가다 페펜에 들려 샌드위치를 사고 마저 걸어 밥을 먹는다. 그리고 작은 도시기에 그렇게 밥을 먹다 반드시 아는 사람 한 둘을 마주치게 된다.
그외에도 파르마는 먹을 수 있는 공간들이 실외에 굉장히 많다. 바나 펍도 대부분의 식탁이 밖에 있다. 사람들은 걷다 그런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한다. 그러다 점원이 나오면 간단한 음료를 주문하고 이야기나 휴식이 끝날 때까지 점원이 나오지 않으면 마저 갈길을 간다. 심지어 큰 오크통 모양의 스탠딩 책상을 내놓은 바의 경우 정말 파르마 사람들의 사랑방과 다름 없다.
로마를 방문한 사람들은 골목 어디에서나 먹는 분위기를 편안하고 좋게 느꼈을 것이다. 파르마는 그런 분위기가 극대화된 곳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평화롭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그래서 가장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는 방법은 (혹은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고 그만큼 또 우리가 많이 먹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먹는 공간이 많이 제한되었다. 기차에서는 더 이상 음식을 먹지 못하고 4명 이상은 어디가서 먹을 수 없으며 밤 9시 이후로는 먹을 수 없다. 그래서 기차 여행은 조금 더 단조롭고 지루해졌다. 4명 이상 모임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로만 남게 되었다. 밤 9시 이후 거리를 걸으면 요즘은 굉장히 썰렁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도 포스트-코로나에서 여전히 내가 이 도시에 활력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먹는다는 행위만큼은 절대 비대면으로 전환되지 않은 채 남아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다같이 먹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먹는다, 는 행위가 오프라인으로 남아있기만 하다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공간은 (적어도 먹는 공간은) 의미를 가진 채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서림2021-04-01 19:37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한국 거리가 가질 수 있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좀 더 방향성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사실 높은 건물, 도로로 둘러싸여 휑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도 건물 사이에도 골목이 위치하는 경우에는 그 골목엔 반드시 음식점이 모여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노포 맛집 같은 곳이 그런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그곳들을 탐색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려면 이 조건 저 조건 따져보기 보단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래서 오랜시간 자리를 지키는, 앞으로도 자리를 지킬 식당들 대한 관심이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그 개개로 정체성이 확고한 것들이 분명 거리를 찾는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서림2021-03-31 23:54
도시와 건축에 대해 막연하지만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기에, 책에 나오는 사례들로 내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유현준은 도시와 건축에 대해 생생한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도시에서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싶게 하려면, 광장에 나오게 하려면, 건축물 및 공간과 소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발이 상처투성이가 돼도 매일 2만보 가까이 걸었던 것이 떠오른다. 지하철이나 버스는 서울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 거의 이용하지 않은 수준이다. 돈을 아끼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의도치 않았지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풍족한 뚜벅이가 되었다. 유럽 여행 기간이 우연히 월드컵과 겹쳤는데, 프랑스의 결승 진출이 확정된 날 샹젤리제의 넓은 인도에 사람들이 들어차고 함께 걸으며 흥분의 열기를 더하는 진귀한 경험도 해보았다. 우리나라도 2002년에 광화문 광장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한국인이 가장 열정적이었던 순간으로 아직까지도 종종 회자되는 것으로 보아 거리와 광장에서 움직이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 및 시너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한국에도 '걷고 싶은 거리'라고 할 만한 거리들이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그 거리들이 정말 걷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는지,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도시의 거리는 유럽과 다르게 목적지가 될 만한 것이 결여되어 있다. 유럽 도시의 거리는 도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축물(랜드마크, 성당, 박물관, 미술관 등)이나 광장, 공원을 길의 끝에서든 거리 중간중간에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어떤 목적지를 정하면 꼭 거리를 경유해서 걸어가야만 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광화문과 경복궁 같은 곳이 오히려 주변 공간과 격리되어 넓은 도로로 둘러싸여 있고,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곳은 가게에서 쇼핑의 니즈, 카페에서 사회적 관계에 대한 니즈, 때때로는 어떤 체험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 말고 거리 자체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물리적 거리'도 길진 않다. 생각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길이 끝나있다. 사람들을 오래 잡아두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이태원 경리단길을 모티프로 수많은 '-로수길', '-리단길'이 만들어진 것은 가게는 수요만 있다면 어디에든 새로 생길 수 있고, 카페는 원래부터 어디에든(단지 집 앞에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2의 가로수길, 제2의 경리단길은 보통 SNS상의 입소문이나 마케팅으로 등장하는데, 열기가 식으면 그대로 잊혀지기 십상이다.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람들을 끌어오는 아이코닉한 거리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곳을 상업지구로서만 존재 의의를 평가하고 가게나 카페, 음식점만 많이 들어서는 것을 우선시하기 보다는 그곳에 어떠한 내용을 담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도 '걷고 싶은 거리'라고 할 만한 거리들이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그 거리들이 정말 걷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는지,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도시의 거리는 유럽과 다르게 목적지가 될 만한 것이 결여되어 있다. 유럽 도시의 거리는 도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축물(랜드마크, 성당, 박물관, 미술관 등)이나 광장, 공원을 길의 끝에서든 거리 중간중간에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어떤 목적지를 정하면 꼭 거리를 경유해서 걸어가야만 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광화문과 경복궁 같은 곳이 오히려 주변 공간과 격리되어 넓은 도로로 둘러싸여 있고,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곳은 가게에서 쇼핑의 니즈, 카페에서 사회적 관계에 대한 니즈, 때때로는 어떤 체험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 말고 거리 자체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물리적 거리'도 길진 않다. 생각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길이 끝나있다. 사람들을 오래 잡아두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이태원 경리단길을 모티프로 수많은 '-로수길', '-리단길'이 만들어진 것은 가게는 수요만 있다면 어디에든 새로 생길 수 있고, 카페는 원래부터 어디에든(단지 집 앞에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2의 가로수길, 제2의 경리단길은 보통 SNS상의 입소문이나 마케팅으로 등장하는데, 열기가 식으면 그대로 잊혀지기 십상이다.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람들을 끌어오는 아이코닉한 거리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곳을 상업지구로서만 존재 의의를 평가하고 가게나 카페, 음식점만 많이 들어서는 것을 우선시하기 보다는 그곳에 어떠한 내용을 담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박서원2021-03-31 23:55
이 책은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읽으면서 도시는 어떤 원리로 지어졌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도시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건축과 도시 공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에 확실히 같은 곳을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랑 걸으면서 지나가는 것이랑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는 했다. 걷게 되면 주변 풍경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냄새, 소리, 공기를 느끼면서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것이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서울에 산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몇 곳을 걸으면서 항상 아쉬웠다. 왜 아쉽다고 느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몰랐다. 그러나 이 책이 그 의구심을 풀어주었다. 입구가 몇 안 되는 큰 빌딩, 빠른 공간 속도, 자연과 조화롭지 않은 스카이라인, 비슷한 디자인의 단조로운 아파트들로 걸을 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꺠닫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이제는 보행자 중심 도로, 걷기 좋은 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된 것 같다. 물론 효율성, 비용 적인 측면을 따지면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시와 사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행자 시각으로의 도시는 어떻게 보이는지도 신경 써야 될 시기가 온 것 같다. ‘도시적’이라는 단어가 딱딱하고 차가운 의미로 쓰이는데 이제는 그 의미를 바꿔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한국 공원의 접근성, 분포도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도시의 고층 빌딩 때문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는 한다. 그러나 공원은 그나마 뻥 뚫린 공간이어서 도시에서의 쉼터라고 느껴지는데 그조차 많이 없어 항상 아쉬웠던 것 같다. 기본 30분 이상은 이동해야지 공원을 갈 수 있는데 갈 떄마다 소요되는 시간 떄문에 가기를 포기한 적이 많았다. 인구 감소로 주택 수요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 가는데, 주택을 짓는 대신 미래에는 그 자리에 공원을 늘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택 근처에 보스턴코먼처럼 작더라도 주변 빌딩으로 안전을 보장하며 쉽터를 제공하면 친화적이고 실내에 갇힌 카페, PC방, 멀티방보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 확실히 같은 곳을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랑 걸으면서 지나가는 것이랑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는 했다. 걷게 되면 주변 풍경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냄새, 소리, 공기를 느끼면서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것이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서울에 산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몇 곳을 걸으면서 항상 아쉬웠다. 왜 아쉽다고 느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몰랐다. 그러나 이 책이 그 의구심을 풀어주었다. 입구가 몇 안 되는 큰 빌딩, 빠른 공간 속도, 자연과 조화롭지 않은 스카이라인, 비슷한 디자인의 단조로운 아파트들로 걸을 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꺠닫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이제는 보행자 중심 도로, 걷기 좋은 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된 것 같다. 물론 효율성, 비용 적인 측면을 따지면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시와 사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행자 시각으로의 도시는 어떻게 보이는지도 신경 써야 될 시기가 온 것 같다. ‘도시적’이라는 단어가 딱딱하고 차가운 의미로 쓰이는데 이제는 그 의미를 바꿔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한국 공원의 접근성, 분포도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도시의 고층 빌딩 때문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는 한다. 그러나 공원은 그나마 뻥 뚫린 공간이어서 도시에서의 쉼터라고 느껴지는데 그조차 많이 없어 항상 아쉬웠던 것 같다. 기본 30분 이상은 이동해야지 공원을 갈 수 있는데 갈 떄마다 소요되는 시간 떄문에 가기를 포기한 적이 많았다. 인구 감소로 주택 수요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 가는데, 주택을 짓는 대신 미래에는 그 자리에 공원을 늘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택 근처에 보스턴코먼처럼 작더라도 주변 빌딩으로 안전을 보장하며 쉽터를 제공하면 친화적이고 실내에 갇힌 카페, PC방, 멀티방보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최동익2021-03-31 23:57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도시를 조망합니다. 자그마한 방에서 시작하여 도시 전체에 이르는 지적 탐구는 추천사에도 드러나 있듯 생물학적 관점을 빌리기도 하는데, 가령 유기체의 진화에 빗대어지는 도시 발전 모습은 자연과 문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보다 나아가 자연 속 개미와 벌이 짓는 집이 다르듯 인간 문명 안에서도 서로 다른 문명권의 건축물이 같지 않음을 저자는 쉽게 풀어냅니다.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서술 덕에 우리의 시선은 도시를 넘어 문명에까지 향하게 됩니다. 특히 문명의 발전 양태가 본디 하나가 아니었음을 새삼 확인했기에, 당면한 문제 해결에서도 단일한 선택지가 이미 확립되어 있는 대신 아직 열린 채로 존재하는 미래가 있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거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묘미이자 약간의 위태로운 지점은, 다름 아니라 한국인 저자가 한국의 도시에 대해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데에 있을 듯합니다. 책은 서구의 사례도 다루지만 서울에 사는 독자라면 어느 장을 펼치든 쉽게 자신이 발 딛어 본 공간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저도 태어났을 때부터 서울에 살았기에 많은 내용에 공감이 갔습니다. 군 복무도 서울 의경으로 해서, 주요 시설 경비를 광화문 광장으로 나갈 때면 광장 에 2시간 동안 서 있으면서 대로를 오가는 차, 세종문화회관에 반복적으로 뜨는 홍보만을 보며 따분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이 책의 내용과 겹치기도 했습니다.
다만 서울을 제외한 한국의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감의 정도가 조금은 떨어질 것도 같습니다. 물론 다른 국가들의 경우에도 주요한 몇 개의 도시, 가령 프랑스의 파리 / 이탈리아의 로마 / 미국의 뉴욕과 보스턴 등만을 다뤘고, 서울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지역 균형 개발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면 건축물 너머 국가적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테니 책의 전반적 논점과는 부합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사례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책은 분명, 건축물이 그 창조자인 인간보다 오래 남아 인간을 만들어가듯, 마음에 새길 만한 통찰을 던져줍니다.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저자가 생각하기에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나열하는 13장이었습니다. 내부에서 외부를 보는 시각의 존재, 위치할 공간과의 고려, 중력이 낳는 제약 등은 우리 인간 삶에도 존재하는 듯합니다. 자유로워 보이기만 하는 개인은 실제로는 타자와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보편적인 윤리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위의 것들이 아닐까요. 외면이 건물의 다가 아니듯 인간도 그러하고, 내 바로 곁에 놓인 사람들, 더 크게는 세계와 어울릴 때 우리는 행복하며 무엇보다 인간관계는 때로는 제약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에 공감할 수 있다면, 기둥에 기대 스스로를 지탱하면서도 이용자들에게 공간을 허락하는 건축물과 우리 사회는 몹시 닮은 것 같습니다. 사족이겠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책장을 덮으면 보이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변용으로 다가왔습니다.
거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묘미이자 약간의 위태로운 지점은, 다름 아니라 한국인 저자가 한국의 도시에 대해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데에 있을 듯합니다. 책은 서구의 사례도 다루지만 서울에 사는 독자라면 어느 장을 펼치든 쉽게 자신이 발 딛어 본 공간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저도 태어났을 때부터 서울에 살았기에 많은 내용에 공감이 갔습니다. 군 복무도 서울 의경으로 해서, 주요 시설 경비를 광화문 광장으로 나갈 때면 광장 에 2시간 동안 서 있으면서 대로를 오가는 차, 세종문화회관에 반복적으로 뜨는 홍보만을 보며 따분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이 책의 내용과 겹치기도 했습니다.
다만 서울을 제외한 한국의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감의 정도가 조금은 떨어질 것도 같습니다. 물론 다른 국가들의 경우에도 주요한 몇 개의 도시, 가령 프랑스의 파리 / 이탈리아의 로마 / 미국의 뉴욕과 보스턴 등만을 다뤘고, 서울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지역 균형 개발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면 건축물 너머 국가적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테니 책의 전반적 논점과는 부합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사례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책은 분명, 건축물이 그 창조자인 인간보다 오래 남아 인간을 만들어가듯, 마음에 새길 만한 통찰을 던져줍니다.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저자가 생각하기에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나열하는 13장이었습니다. 내부에서 외부를 보는 시각의 존재, 위치할 공간과의 고려, 중력이 낳는 제약 등은 우리 인간 삶에도 존재하는 듯합니다. 자유로워 보이기만 하는 개인은 실제로는 타자와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보편적인 윤리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위의 것들이 아닐까요. 외면이 건물의 다가 아니듯 인간도 그러하고, 내 바로 곁에 놓인 사람들, 더 크게는 세계와 어울릴 때 우리는 행복하며 무엇보다 인간관계는 때로는 제약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에 공감할 수 있다면, 기둥에 기대 스스로를 지탱하면서도 이용자들에게 공간을 허락하는 건축물과 우리 사회는 몹시 닮은 것 같습니다. 사족이겠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책장을 덮으면 보이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변용으로 다가왔습니다.
송혜민2021-04-01 00:01
서울은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에 있어서 세 번의 변화를 맞았다. 하나는 '근대 건축의 도입'이었다. 일제라는 외부적 요인이 있었지만, 도시가 수용가능한 인구를 현대 건물들로 두배 늘려놓았다. 그 이후의 기회는 70년대, 고층 건물의 도입이었다. 고층 건물의 한 예인 '아파트'는 도시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를 몇 십배로 늘려놓았다. 마지막 기회는 ― 서울에 국한된 공간은 아니지만 ― 인터넷 공간의 도입이었다. 특히, 코로나 판데믹에서의 인터넷은 '집콕' 생활에 있어 배달 등 사람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온라인 상 공간이 아무리 도시가 활성화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해도, 오프라인 상 건물들은 70년 대의 인식에서 더이상 혁신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는 데에 있다.
작가는 지금 외부공간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있는데(개인화된 공간을 공동체의 것으로, 자연친화적인 것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나가고 싶은' 거리와 공원을 조성하는 데에 그런 경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에 중요한 담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코로나 블루'에 대해서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하여 공간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 즉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의 부족으로 인한 만족감의 상실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게 된 사람들은 앞으로 외부공간을 어떻게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만들어가는 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도시들이 경쟁성을 갖게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점은, 우리가 이런 공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어디부터 건들여야 할지에 대해서 더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좁은 도시지만, 그 속에 인구의 1/5이라는 많은 인구들이 살고 있다. 도시를 '개혁'한다는 것은, 인구의 1/5에게 큰 영향을 미칠텐데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이 방법들이 정말로 1/5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구가 몰려오고자 하는 곳'이다. 또한 인구는 도시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인구가 많은 곳에서 '도시 시냅스를 통해서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작가가 주장하는 바처럼 도시를 바꾸는 과정, 그리고 그 후에 역효과(이른바 '절망편'이라고도 부르는)가 일어나는 경우에 대해서 더욱 고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_7x0T9MP4U
길어진 '집콕' 김난도&유현준이 말하는 좁은 집 활용법#2020tvNShift | tvN Shift EP.4 | tvN 201227 방송
작가는 지금 외부공간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있는데(개인화된 공간을 공동체의 것으로, 자연친화적인 것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나가고 싶은' 거리와 공원을 조성하는 데에 그런 경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에 중요한 담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코로나 블루'에 대해서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하여 공간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 즉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의 부족으로 인한 만족감의 상실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게 된 사람들은 앞으로 외부공간을 어떻게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만들어가는 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도시들이 경쟁성을 갖게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점은, 우리가 이런 공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어디부터 건들여야 할지에 대해서 더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좁은 도시지만, 그 속에 인구의 1/5이라는 많은 인구들이 살고 있다. 도시를 '개혁'한다는 것은, 인구의 1/5에게 큰 영향을 미칠텐데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이 방법들이 정말로 1/5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구가 몰려오고자 하는 곳'이다. 또한 인구는 도시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인구가 많은 곳에서 '도시 시냅스를 통해서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작가가 주장하는 바처럼 도시를 바꾸는 과정, 그리고 그 후에 역효과(이른바 '절망편'이라고도 부르는)가 일어나는 경우에 대해서 더욱 고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_7x0T9MP4U
길어진 '집콕' 김난도&유현준이 말하는 좁은 집 활용법#2020tvNShift | tvN Shift EP.4 | tvN 201227 방송
이태민2021-04-01 00:44
혜민 학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과도한 인구 밀도는 서울의 건축이 고민해야할 부분이며, 본 저술이 의도하는 해결 방식으로는 되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부분에 공감합니다. 사견으로는 그러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 대도시 단지가 가진 긍정적인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지방 인구가 서울로 편중되는 한국 사회의 구조상 추가적인 대도시 단지의 건설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하구요.
한편으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외부 공간 또한 중요한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내부 공간의 각종 편의에 익숙해진 구성원들이 외부 공간에 대한 수요를 코로나 이전 시대의 방식으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캠핑카 수요의 증가가 대표적입니다. 외부 공간의 내부화, 혹은 내부 공간의 외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늦은밤 수고하셨습니다 :)
한편으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외부 공간 또한 중요한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내부 공간의 각종 편의에 익숙해진 구성원들이 외부 공간에 대한 수요를 코로나 이전 시대의 방식으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캠핑카 수요의 증가가 대표적입니다. 외부 공간의 내부화, 혹은 내부 공간의 외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늦은밤 수고하셨습니다 :)
이주영2021-04-01 00:13
해당 내용의 책은 평소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에 대해 흥미롭고, 공감이 가능하도록 잘 풀어 설명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건축물과 생활공간을 기반으로 설명하는 동서양의 생각 차이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역사의 인과관계를 콕 집어 그 필연성을 설명하는 것이 매우 신선했다. 너무도 그럴듯하고 타당해 보이는 내용들이지만, 너무 많고 다양한 현상을 건축 하나로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기는 어려웠다.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나 자신을 과시하고 타인과 다른 특별함을 부여하려는 현대 사회 사람들의 욕망이 그대로 주변 환경에 녹아들어 있다는 부분이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로부터 제사장은 높은 곳을 점유하여 남들이 올려다볼 수 있게 하고, 현대 교회에서 목사는 교단 위에 서고 신도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도록 함으로써 통제감을 부여하고 그로부터 권위를 얻는다는 점도 조금만 궁금증을 가지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능하다. 평소에 내 주변 환경과 건축공간에 대해 얼마나 무신경했는지 와닿는 부분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우리 도시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항상 창문 밑에 앉아계시는 부장님도, 운동장에 모여 훈화 말씀을 하시는 교장 선생님도, 좌우로 회사 임원진들을 앉혀놓고 회의를 시작하는 기업 회장님도 어쩌면 예전의 그 권위를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 즉 온라인 비대면 시대 이전에 우리 환경 속에 녹아있던 규범과 규칙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붕괴되어 어떤 사회문제를 낳을지 유심히 지켜보고 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나 자신을 과시하고 타인과 다른 특별함을 부여하려는 현대 사회 사람들의 욕망이 그대로 주변 환경에 녹아들어 있다는 부분이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로부터 제사장은 높은 곳을 점유하여 남들이 올려다볼 수 있게 하고, 현대 교회에서 목사는 교단 위에 서고 신도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도록 함으로써 통제감을 부여하고 그로부터 권위를 얻는다는 점도 조금만 궁금증을 가지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능하다. 평소에 내 주변 환경과 건축공간에 대해 얼마나 무신경했는지 와닿는 부분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우리 도시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항상 창문 밑에 앉아계시는 부장님도, 운동장에 모여 훈화 말씀을 하시는 교장 선생님도, 좌우로 회사 임원진들을 앉혀놓고 회의를 시작하는 기업 회장님도 어쩌면 예전의 그 권위를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 즉 온라인 비대면 시대 이전에 우리 환경 속에 녹아있던 규범과 규칙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붕괴되어 어떤 사회문제를 낳을지 유심히 지켜보고 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김혜령2021-04-01 00:35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저자가 생물학적 지식이 완전하지 못한 채 생물유기체로서 도시를 비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물학적 또는 정량적 분석과 동시에 계속 주관적인 감정, 취향이 담긴 말을 함으로써 나는 그 몰입이 깨졌다.
무엇보다 이 저자가 말하는 건축물은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서울을 타도시에 비교하는 항목들이 많았는데, 서울이 서울만의 역사와 특징이 있는데, 이 특수한 환경을 놓고 고민하다기보다는 계속해서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결점들만 비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하는 바대로 서울은 서울만의 풍수지리가 있고, 시간의 축적이 있다. 그리고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서울에서 고층빌딩이나 층층이 쌓아가는 건물 형식에서의 새로운 돌파구를 연구하는게 더 맞는 것 같은데, 이를 해외의 카페 테라스나 기타 건축특징들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테라스나 야외, 햇빛에 대한 본인의 갈망이 표현된건 아닌지 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런 의심이 가장 크게 들었던 부분은 클럽 대목이다. 클럽은 그 무엇보다도 성소수자, 흑인 등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탄압에서 시작된 문화로, 창고(warehouse)에서 경찰의 눈을 피해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 모인 댄스플로어다.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클럽문화가 클럽이 아닌, 언급된대로 ‘방’문화로 시작되었다. 기생을 불러 모아 놀던 ‘정자’에서 시작해 노래방, 룸싸롱 등 이상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클럽은, ‘이성’을 만나기 위한 짝짓기 장소가 아니다. 이는 분명한 한 문화에 대한 지식의 부재로 인하여, 이 클럽이란 곳에 들어가기 위해 문지기(bouncer)가 존재하고, 재력, 젊음, 외모로 판가름 난다는 것은 정말 큰일날 소리다. 바운서는 본래 위험한 물품이 있는지 검사하고, 클럽의 이념인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랑과 평화’를 위협할 인물을 검사하는 것이지, 우리나라처럼 이상한 기준으로 입구에서 판가름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연간회원권 등의 자본주의에서 싹튼 ‘소셜클럽’의 개념일 것이고, 흔히 생각하는 ‘클럽’은 소수자집단,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이끈 자들의 공간이다.
또한 사이버공간에 대한 주장도 나는 반박한다. pg.259쪽에서, 건축은 우리의 동물적인 본능과 밀접하다라는 구절과, 사람들이 직접 만나야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이성과의 만남이다 라는 대목은 정말 읽으면서 안타까웠다. 본인도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분석하고 그 기본욕구, 본질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으로써, 현대사회의 만남을 이렇게 헤테로적인 시선으로밖에 분석하지 못하다니, 그런 공간에서 ‘동물적’ 본능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정말 위험한 발언이다. 교감이 꼭 물리적 터치로밖에 환원되지 않는가? 만약 우리가 사이버세계에서 접속하여 만났을 때, 어떤 전기신호로 인한 신경자극이나 다른 오감작용으로 비슷한 ‘터치’를 받는다면? 그 ‘이성’과의 만남이라고 했을 때 ‘섹스’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사이버섹스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도 수많은 기구를 이용한 섹스플레이가 있기도 하지만, 이는 다양한 섹스의 양상 또한 무시하는 발언이다. 꼭 피부 대 피부, 페네트레이션만이 아니라, 성적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히 많다. 그랬을 때 사람들이 만나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성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나 같으면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할 것 같다. 모두가 나를 플로팅하기 위해 나온 것일테니까.
그 앞에서도 수많은 유기체에 대한 도시의 비유, 순환계 등등 을 읽어보았는데, 너무 마치 컴퓨터시뮬레이션 적인 도시만을 생각한다. 도시는 말그대로 ‘인간’이 들어와야 하고, 그 문화와 다양성은 이루말할 수 없다. 특정 어떤 건축물들과 어떤 도시환경에 대해 판가름을 할 수 없다. 나는 이 저자가 특정 자기만의 이상적인, 마치 인셉션속의 도시건축을 논하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다. 나는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거리의 황량함이 좋다. 그 길을 걷고 싶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남동이나 보광동의 주택들도, 겨울에 수도가 얼어 샤워를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다. 저자는 아마 이 거리들을 좀더 '양지'스럽게 만드는 것에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특히 고밀도 서울이 높은 건물들과 아파트 사이의 그늘에서, 이 음지의 느낌 또한 도시의 생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가로수길, 합정홍대의 연남동 산책길처럼 인체에 비유하였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몸선을 차지하는 그런 부위가 아닌, 어쩌면 몸의 찌꺼기들이 통과하는 대장과 소장같은 부분들이 더 생명력 넘치고 '이벤트성이 넘친다.' 명동거리, 홍대거리는 '이벤트성'과 '상호작용의 경우의 수'를 가장한 공허한 거리이다. 일회성이고, 수많은 광고문구들이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 길이다. 오히려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 단지더라도, 사창가더라도, 같은 사람들이 상주하며 그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저자가 말하는 건축물은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서울을 타도시에 비교하는 항목들이 많았는데, 서울이 서울만의 역사와 특징이 있는데, 이 특수한 환경을 놓고 고민하다기보다는 계속해서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결점들만 비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하는 바대로 서울은 서울만의 풍수지리가 있고, 시간의 축적이 있다. 그리고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서울에서 고층빌딩이나 층층이 쌓아가는 건물 형식에서의 새로운 돌파구를 연구하는게 더 맞는 것 같은데, 이를 해외의 카페 테라스나 기타 건축특징들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테라스나 야외, 햇빛에 대한 본인의 갈망이 표현된건 아닌지 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런 의심이 가장 크게 들었던 부분은 클럽 대목이다. 클럽은 그 무엇보다도 성소수자, 흑인 등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탄압에서 시작된 문화로, 창고(warehouse)에서 경찰의 눈을 피해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 모인 댄스플로어다.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클럽문화가 클럽이 아닌, 언급된대로 ‘방’문화로 시작되었다. 기생을 불러 모아 놀던 ‘정자’에서 시작해 노래방, 룸싸롱 등 이상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클럽은, ‘이성’을 만나기 위한 짝짓기 장소가 아니다. 이는 분명한 한 문화에 대한 지식의 부재로 인하여, 이 클럽이란 곳에 들어가기 위해 문지기(bouncer)가 존재하고, 재력, 젊음, 외모로 판가름 난다는 것은 정말 큰일날 소리다. 바운서는 본래 위험한 물품이 있는지 검사하고, 클럽의 이념인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랑과 평화’를 위협할 인물을 검사하는 것이지, 우리나라처럼 이상한 기준으로 입구에서 판가름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연간회원권 등의 자본주의에서 싹튼 ‘소셜클럽’의 개념일 것이고, 흔히 생각하는 ‘클럽’은 소수자집단,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이끈 자들의 공간이다.
또한 사이버공간에 대한 주장도 나는 반박한다. pg.259쪽에서, 건축은 우리의 동물적인 본능과 밀접하다라는 구절과, 사람들이 직접 만나야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이성과의 만남이다 라는 대목은 정말 읽으면서 안타까웠다. 본인도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분석하고 그 기본욕구, 본질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으로써, 현대사회의 만남을 이렇게 헤테로적인 시선으로밖에 분석하지 못하다니, 그런 공간에서 ‘동물적’ 본능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정말 위험한 발언이다. 교감이 꼭 물리적 터치로밖에 환원되지 않는가? 만약 우리가 사이버세계에서 접속하여 만났을 때, 어떤 전기신호로 인한 신경자극이나 다른 오감작용으로 비슷한 ‘터치’를 받는다면? 그 ‘이성’과의 만남이라고 했을 때 ‘섹스’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사이버섹스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도 수많은 기구를 이용한 섹스플레이가 있기도 하지만, 이는 다양한 섹스의 양상 또한 무시하는 발언이다. 꼭 피부 대 피부, 페네트레이션만이 아니라, 성적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히 많다. 그랬을 때 사람들이 만나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성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나 같으면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할 것 같다. 모두가 나를 플로팅하기 위해 나온 것일테니까.
그 앞에서도 수많은 유기체에 대한 도시의 비유, 순환계 등등 을 읽어보았는데, 너무 마치 컴퓨터시뮬레이션 적인 도시만을 생각한다. 도시는 말그대로 ‘인간’이 들어와야 하고, 그 문화와 다양성은 이루말할 수 없다. 특정 어떤 건축물들과 어떤 도시환경에 대해 판가름을 할 수 없다. 나는 이 저자가 특정 자기만의 이상적인, 마치 인셉션속의 도시건축을 논하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다. 나는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거리의 황량함이 좋다. 그 길을 걷고 싶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남동이나 보광동의 주택들도, 겨울에 수도가 얼어 샤워를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다. 저자는 아마 이 거리들을 좀더 '양지'스럽게 만드는 것에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특히 고밀도 서울이 높은 건물들과 아파트 사이의 그늘에서, 이 음지의 느낌 또한 도시의 생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가로수길, 합정홍대의 연남동 산책길처럼 인체에 비유하였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몸선을 차지하는 그런 부위가 아닌, 어쩌면 몸의 찌꺼기들이 통과하는 대장과 소장같은 부분들이 더 생명력 넘치고 '이벤트성이 넘친다.' 명동거리, 홍대거리는 '이벤트성'과 '상호작용의 경우의 수'를 가장한 공허한 거리이다. 일회성이고, 수많은 광고문구들이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 길이다. 오히려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 단지더라도, 사창가더라도, 같은 사람들이 상주하며 그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양승훈2021-04-01 02:22
혜령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과도한 유추를 통한 성급한 결론 내리기, 과거 혹은 외국의 피상적이고 이상적인 모습만을 드러내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을 그저 깎아내린다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저도 받았기 때문에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과 도시에 대해 오래 공부한 저자가 본인 스스로의 주관에는 훨씬 엄밀한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어쩌면 독자에게 그것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썼을 수도 있지만 도시와 생물의 일부 유사한 면을 비유하고 이를 통해 이후 담론까지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아 읽기는 편해도 이해는 어려웠습니다. 최근 함께 일을 하게 된 분들 중 오래 관광업에 몸을 담고 계셨던 분이 있는데 작년에 한 축제를 대행하시게 되어 남산 한옥마을의 게스트하우스를 여러 채 빌리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해당 축제는 결국 일정 직전에 취소되었고 환불이 안되는 곳들이 많아 그 중 한 곳은 취소하기 보다 스스로 반차를 내고 하룻밤 주무셨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들이, 일이나 생활에서 벗어나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니 오래 관광업에 몸담았던 그분에게조차 그제야 보였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상적인 도시로 예를 든 곳들도 막상 가보면 아름다운 곳들만큼이나 문제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제점에 대해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인지 다른 나라의 도시는 아름다움을 위주로, 서울이라는 도시는 부적절함을 위주로 말하여 막상 서울이라는 도시의 진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어려웠습니다.
외국의 클럽, 클럽의 역사, 한국 클럽 문화 등은 몰라 사실 클럽 부분을 읽을 때는 매체에서 비추어진 모습만 보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는데 말씀하신 클럽의 모습은 오히려 건축이 담아내지 못했던 도시의 공간에서조차 도시에 활기와 다양성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웠습니다.
이성적인 만남을 인간의 본능으로 규정하고 도시 또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비슷하게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일반화가 많은 책이었지만 특히 이 부분에서는 설명의 용이성을 위해 마땅히 담아야 할 의미들을 저버린 것 같습니다. 음식을 공부하다 보니 아직까지는 사이버 공간보다 현실 공간에 더 관심이 많아 이해하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자기소개에서도 관심 있다고 말씀하신 사이버섹스와 관련된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만약 섹스가 사이버 세계에서 이루어질 요소가 있다면 제가 지금까지 섹스만큼이나 오프라인에서의 신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던 '먹기'라는 행위도 그런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적인 도시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도시가 아름답고 의미있다는 말씀에도 동의를 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미처 개발되지 못한 곳의 생활 요소들 때문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만큼의 혜택은 함께 받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 환경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시를 든 '수도가 얼어 샤워를 못하는 일' 의 부분은, 운치가 있더라도, 해결해야 하는 부분일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그 샤워를 못하는 사람들이 그로 인해 힘들어 한다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혜령님의 의견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신 글 감사합니다 :)
외국의 클럽, 클럽의 역사, 한국 클럽 문화 등은 몰라 사실 클럽 부분을 읽을 때는 매체에서 비추어진 모습만 보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는데 말씀하신 클럽의 모습은 오히려 건축이 담아내지 못했던 도시의 공간에서조차 도시에 활기와 다양성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웠습니다.
이성적인 만남을 인간의 본능으로 규정하고 도시 또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비슷하게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일반화가 많은 책이었지만 특히 이 부분에서는 설명의 용이성을 위해 마땅히 담아야 할 의미들을 저버린 것 같습니다. 음식을 공부하다 보니 아직까지는 사이버 공간보다 현실 공간에 더 관심이 많아 이해하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자기소개에서도 관심 있다고 말씀하신 사이버섹스와 관련된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만약 섹스가 사이버 세계에서 이루어질 요소가 있다면 제가 지금까지 섹스만큼이나 오프라인에서의 신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던 '먹기'라는 행위도 그런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적인 도시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도시가 아름답고 의미있다는 말씀에도 동의를 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미처 개발되지 못한 곳의 생활 요소들 때문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만큼의 혜택은 함께 받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 환경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시를 든 '수도가 얼어 샤워를 못하는 일' 의 부분은, 운치가 있더라도, 해결해야 하는 부분일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그 샤워를 못하는 사람들이 그로 인해 힘들어 한다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혜령님의 의견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신 글 감사합니다 :)
박규리2021-04-01 14:02
너무 날카롭고 공감 가는 지적입니다. 책을 수용적으로만 읽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될 정도네요... 저자가 완전히 주류의 시선에서, 혹은 사대적인 시선에서만 서울을 바라보았고, 또 서울의 다양한 거리들을 비교 선상에 올려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매우 타당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1
이태민2021-04-01 00:35
건축에 대한 포괄적으로 접근한, 그러나 지식의 깊이 면에선 다소 얕게 느껴지는 책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동서양 건축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또한 공간과 정서의 개념으로 도시 공간에 접근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각종 지식이 합쳐져 미래 도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서두에서 밝혔듯 얕은 깊이가 그 원인인듯 하다. 글 전체가 특정 주제의 심화보다는 여러 영역들을 걸쳐서 다루고 있다. 다른 학우분들께서 지적해준 논리성의 부재는 그러한 맥락일 것이다.
현재 한국 도시 공간의 문제점들을 여럿 알 수 있었다. 대도시 단지 위주의 재개발, 그것이 필연히 불러오는 자연의 파괴, 공원과의 거리감, 전통 건축 양식의 상실 등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미래사회의 도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저자 역시 마지막에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답이 분명치 않다. 화두로 던지고 싶은 점이 이 부분이다. 본 라이프 아카데미의 주제를 상기해볼 때,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걸맞는 도시 공간의 특징은 무엇일까? 사견으로는 과도한 집값의 상승이 결정적인 작용을 초래할 것이라 본다. 저술 당시에는 집값 상승이 제한적이었고, 책에는 이로 인해 주택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집값 폭등을 주도한 것은 '대도시 단지'이다. 이에 화답하듯 건설사들은 관련 개발을 늘렸다. 건설사들의 실적과 주가 상승을 보면 세태가 여실히 늘어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저자가 본 저술 전반에서 주장하고 있는 논지가 다가오는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매커니즘일까?
또한 본 저술에 아쉬운 점은 경제적 접근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축을 종합예술로 규정해 다방면의 학문적 접근이 이루어진 것과는 대비된다. 물론 건축을 경제적인 논리로만 접근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 본 저술의 부차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정 의견을 비판할 때는 그 접근 방식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논리 없이 건축은 진행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본 저술은 다분히 유토피아적인 건축을 다루고 있다고 느껴졌다.
현재 한국 도시 공간의 문제점들을 여럿 알 수 있었다. 대도시 단지 위주의 재개발, 그것이 필연히 불러오는 자연의 파괴, 공원과의 거리감, 전통 건축 양식의 상실 등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미래사회의 도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저자 역시 마지막에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답이 분명치 않다. 화두로 던지고 싶은 점이 이 부분이다. 본 라이프 아카데미의 주제를 상기해볼 때,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걸맞는 도시 공간의 특징은 무엇일까? 사견으로는 과도한 집값의 상승이 결정적인 작용을 초래할 것이라 본다. 저술 당시에는 집값 상승이 제한적이었고, 책에는 이로 인해 주택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집값 폭등을 주도한 것은 '대도시 단지'이다. 이에 화답하듯 건설사들은 관련 개발을 늘렸다. 건설사들의 실적과 주가 상승을 보면 세태가 여실히 늘어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저자가 본 저술 전반에서 주장하고 있는 논지가 다가오는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매커니즘일까?
또한 본 저술에 아쉬운 점은 경제적 접근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축을 종합예술로 규정해 다방면의 학문적 접근이 이루어진 것과는 대비된다. 물론 건축을 경제적인 논리로만 접근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 본 저술의 부차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정 의견을 비판할 때는 그 접근 방식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논리 없이 건축은 진행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본 저술은 다분히 유토피아적인 건축을 다루고 있다고 느껴졌다.
조성민2021-04-01 01:17
예전에 이 책을 처음에 접했을 때엔 굉장히 재미있었다..! 나는 애초에 건축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각종 사례와 통찰력을 가지고 다양한 건축물과 사회 현상 도시를 설명하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고, 이후 유현준 교수가 각종 미디어에서 유명해지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흥미를 이 책에서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다.
저자의 논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것들에 집중한다. 작은 골목, 천장, 건물과 건물 간의 관계, 발코니 등 작은 건축 요소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결국 모든 건축물들이 조금 더 건물을 사용하고 도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건축물은 사회 문화 역사와 밀접하므로 각 문화에 따라 건축의 특성이 달라지는데, 특히 우리나라 도시의 형성 과정에서 아파트 중심, 개발 중심의 건축이 이루어졌음을 주로 비판하는 쪽으로 주장을 전개하였다.
모든 사례가 한번쯤 가본 곳이거나 경험했던 친근한 것이어서 마음에 와닿았다. 하지만 두번째 읽는 지금 이 책의 목적이 건축가로서 저자의 시각을 소개하고 어느정도 유도하는 것으로 느꼈다. 전면적인 개발, 도시계획 등과 같은 거시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즉 사람들의 나은 주번 환경을 위해 조그맣게 바뀌는 것 이외에 거대한 변화, 급변하는 세상에서 도시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의문점이 생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서울은 서울 사람들을 온전히 수용하고 있는가? 증가하는 양극화는 서울 경관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불과 이삽심년이 지나면 한국 인구의 상당수는 노인이 되는데, 현재 서울은 노인 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인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도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이는 코로나, 메타버스의 경우에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저자의 논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것들에 집중한다. 작은 골목, 천장, 건물과 건물 간의 관계, 발코니 등 작은 건축 요소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결국 모든 건축물들이 조금 더 건물을 사용하고 도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건축물은 사회 문화 역사와 밀접하므로 각 문화에 따라 건축의 특성이 달라지는데, 특히 우리나라 도시의 형성 과정에서 아파트 중심, 개발 중심의 건축이 이루어졌음을 주로 비판하는 쪽으로 주장을 전개하였다.
모든 사례가 한번쯤 가본 곳이거나 경험했던 친근한 것이어서 마음에 와닿았다. 하지만 두번째 읽는 지금 이 책의 목적이 건축가로서 저자의 시각을 소개하고 어느정도 유도하는 것으로 느꼈다. 전면적인 개발, 도시계획 등과 같은 거시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즉 사람들의 나은 주번 환경을 위해 조그맣게 바뀌는 것 이외에 거대한 변화, 급변하는 세상에서 도시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의문점이 생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서울은 서울 사람들을 온전히 수용하고 있는가? 증가하는 양극화는 서울 경관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불과 이삽심년이 지나면 한국 인구의 상당수는 노인이 되는데, 현재 서울은 노인 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인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도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이는 코로나, 메타버스의 경우에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다.
김윤빈2021-04-01 02:15
인간이 창조한 인공적인 것들 중에 우리 삶 속에 가장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은 아마 건축물과 도시공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하기 어려운 층위에서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특히,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나로서 주변의 공간이 나에게 미쳤을 영향을 상상하면, 흥미로우면서도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가 느껴지는 듯하면서 뭔지 모를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인간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도시공간은 인간이 맺는 관계와 큰 관련이 있어 보인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심지어 주변 자연과의 관계를 규정 짓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공간과 건축물이 우리 사회에 가지는 책임과 역할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쉽게 바뀌기 어려운 인간의 태도를 건축의 요소에 조그마한 변화를 줌으로써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은 매력적인 학문인 것 같다. 벽 하나, 책상의 방향만으로도 같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의 관계가 변할 수 있고, 창문의 여부만으로도 주변의 자연과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같은 관계들을 더 잘 정립할 수 있는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적용해보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도시공간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기에 그 영향력을 잘 활용하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의 원리가 건축이 가지는 다양한 가치를 압도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경제적 기준에 의해 도시공간이 분리되어 형성되고 구조물이 지어지면서 관계의 다양성은 결여되고 있다. 펜트하우스는 언제나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비슷한 경제적인 수준을 가진 사람들끼리 가까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고, 다양한 관계는 맺어질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렇게 형성된 도시공간은 우리의 관념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도시공간은 인간이 맺는 관계와 큰 관련이 있어 보인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심지어 주변 자연과의 관계를 규정 짓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공간과 건축물이 우리 사회에 가지는 책임과 역할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쉽게 바뀌기 어려운 인간의 태도를 건축의 요소에 조그마한 변화를 줌으로써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은 매력적인 학문인 것 같다. 벽 하나, 책상의 방향만으로도 같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의 관계가 변할 수 있고, 창문의 여부만으로도 주변의 자연과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같은 관계들을 더 잘 정립할 수 있는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적용해보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도시공간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기에 그 영향력을 잘 활용하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의 원리가 건축이 가지는 다양한 가치를 압도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경제적 기준에 의해 도시공간이 분리되어 형성되고 구조물이 지어지면서 관계의 다양성은 결여되고 있다. 펜트하우스는 언제나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비슷한 경제적인 수준을 가진 사람들끼리 가까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고, 다양한 관계는 맺어질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렇게 형성된 도시공간은 우리의 관념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정유진2021-04-01 04:25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를 계속해서 떠올려보게끔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에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광화문거리를 따라 늘어선 가게를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어린 생각일수도 있지만, 좋은 도시는 곳곳에서 감정이 잘 드러나고 공유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골목과 마당을 통해 일상과 감정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했던 사람들처럼, 고층아파트 속 한정된 주거공간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 또한 여전히 어딘가에있을 '걷고싶은 거리'에 나가 다양한 체험을 기반으로 느낀 감정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기에 지금의 도시, 특히 서울은 '걷고싶은 거리'를 자연스레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가야하는 곳이라고 느껴진다는 점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도시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사람들에게 가치관을 비롯해 다양한 방면으로의 생각을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지난 특강 내용과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자유와 권력을 고층의 펜트하우스가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건축이 능력주의로부터 비롯된 빈부격차와 심리적 긴장을 고조시킬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서 기능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건축이 구체적인 도움을 줄수 있을까?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 마당과 골목으로 사람들의 일상이 많이 겹치던 모습이 책에 많이 언급되어있는데, 타인과의 자연스러운 교류의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느껴지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도시공간 속에서, 정보통신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 사적인 공간이 과하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주거공간을 오로지 쉼을 위한 곳으로 활용하고 걷고싶은 거리처럼 외부의 요소를 한국의 정체성을 담아 발전시키는 방향이 낫지 않을까?
이어 정체성의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평소 서울이 삭막하다고 느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도시가 표현해내는 이미지와 정체성이 다른나라에 비해 약하고 특색없이 높기만 한 건물들로 가득차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건축양식들이 상당수 보존되어있는 나라들과는 달리 갈아엎는 식의 재건축을 진행해온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를 변형하기에 기존 하드웨어의 수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에 있어 한국의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만의 경사진 지리의 색다른 활용도 하나의 생각해볼 거리가 되지 않을까?
또한 도시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사람들에게 가치관을 비롯해 다양한 방면으로의 생각을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지난 특강 내용과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자유와 권력을 고층의 펜트하우스가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건축이 능력주의로부터 비롯된 빈부격차와 심리적 긴장을 고조시킬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서 기능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건축이 구체적인 도움을 줄수 있을까?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 마당과 골목으로 사람들의 일상이 많이 겹치던 모습이 책에 많이 언급되어있는데, 타인과의 자연스러운 교류의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느껴지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도시공간 속에서, 정보통신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 사적인 공간이 과하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주거공간을 오로지 쉼을 위한 곳으로 활용하고 걷고싶은 거리처럼 외부의 요소를 한국의 정체성을 담아 발전시키는 방향이 낫지 않을까?
이어 정체성의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평소 서울이 삭막하다고 느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도시가 표현해내는 이미지와 정체성이 다른나라에 비해 약하고 특색없이 높기만 한 건물들로 가득차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건축양식들이 상당수 보존되어있는 나라들과는 달리 갈아엎는 식의 재건축을 진행해온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를 변형하기에 기존 하드웨어의 수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에 있어 한국의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만의 경사진 지리의 색다른 활용도 하나의 생각해볼 거리가 되지 않을까?
최유리2021-04-01 13:06
안녕하세요 유진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능력주의와 관련하여 제시해주신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 저는 건축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습니다. 능력주의의 부작용 중 하나는 개인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구분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민들이 다함께 이용할 수 있는 건축물들이 많이 생겨나 서로 자연스럽게 자주 접하게 된다면 이러한 경향들도 조금은 약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시에 있어서 공원, 도서관을 비롯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축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사적인 공간이 과하게 노출될 위험에 대해서는 굉장히 좋은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 요즘 더욱 위험성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유진님과 같은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거나, 같은 주거 건물 내에서 주민들의 소통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등 일부 절충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의 건축은 정체성이 빈약하다는 말씀에도 큰 공감을 했습니다. 전통을 무조건적으로 복원하기에는 여러가지 도시계획에서 고려할 사항들이 많으니 한국적인 정체성을 되살릴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각도의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송혜민2021-04-01 13:54
안녕하세요 유진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뒤의 두가지 질문에 대해서 생각을 한 바가 있어서 답변드리게 되었습니다. 정보통신이 극도로 발전한 오늘날은 아이러니컬하게 오히려 너무 '개인'의 생활에만 집중된 생활 패턴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보통신망 이외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충분히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주거공간이라고 단순화하기보다 주거공간 바로 바깥의 공간에 만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소통을 낳는다고 생각하신 것 같고요. 즉, 집이라는 공간 자체는 사적인 공간으로 남겨두되, 바로 그 바깥의 '단지'의 개념으로 남아있는 공간에 공적인 공간을 만들어보는 것을 추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또한 오히려 '사적인 공간을 공적인 공간으로 바꾸어보면서 스토킹과 같은 범죄를 해결하는 데에 조금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어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으로는, '골목','아날로그'와 같은 정체성을 남겨두고자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강북의 경우, 산업화 시대에 계획 없이 도시가 건축되었기 때문에 '골목'이라는 개념의 공간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교수님께서 한국의 정체성이라고 말씀하신 것 중에는 건물뿐 아니라 길이나 그 주변 자연같은 도시 설계 전반적인 부분이 포함되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특색이 없는 건축이라고 말하기에는 간판의 글씨체같이 '향수'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는 공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하드웨어가 엄청나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어느 도시든 남기는 것이 있다면 헐어지는 것도 많은 법이니까요!
이어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으로는, '골목','아날로그'와 같은 정체성을 남겨두고자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강북의 경우, 산업화 시대에 계획 없이 도시가 건축되었기 때문에 '골목'이라는 개념의 공간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교수님께서 한국의 정체성이라고 말씀하신 것 중에는 건물뿐 아니라 길이나 그 주변 자연같은 도시 설계 전반적인 부분이 포함되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특색이 없는 건축이라고 말하기에는 간판의 글씨체같이 '향수'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는 공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하드웨어가 엄청나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어느 도시든 남기는 것이 있다면 헐어지는 것도 많은 법이니까요!
류성원2021-04-01 11:26
공간은 ‘주어진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책에서 우리가 공간을 인식하게 되는 때는 그 속의 물체를 인식할 때라는 말처럼, 우리는 공간 그 자체에 대해서 자주 고민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그저 ‘주어진 것’으로 보지 않고, ‘가꿔나가야 하는 것’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국 도시에 관한 책이라는 점이다. 서점에 가보면 도시에 관한 책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도시에 관련된 대부분의 책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들은 우리나라와 구조의 차원에서도 다르지만, 도시의 문화도 많이 다르다. 지난 특강에서 임동균 교수님이 언급하셨던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의 경우가 그렇다. 책에서는 도서관에서 만들어지는 인적 네트워크를 분석하고 공공시설이 도시 내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논의는 도서관이 수행하는 역할이 훨씬 한정적인 우리나라에서는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인이 한국 거리를 기반으로 쓴 책이라서 한국 도시와 한국독자에게 가장 적절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의 종로구와 중구를 자주 오가는 사람으로서 ‘12장: 뜨는 거리의 법칙’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광화문 광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은 새로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을 자랑스러운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여길 것 같은데, 글에서는 ‘광장’임에도 사람들이 모이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신기하게도 몇 년 사이 실제로 이러한 지적이 서울시에 전달이 되었는지, 현재 광화문 광장은 공사 중이다. 하지만 도로 사이의 광장 부분에서만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 건너편 거리에는 여전히 높은 빌딩만 있고, 거리에서 이용할 수 없는 상업시설이 없어서 공사가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듯 하다.
세운상가의 실패를 다룬 부분은 건축을 전공하지 않고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통찰이어서 흥미로웠다. 나 또한 최근 세운상가의 도시재생 사업을 지켜보면서 도시개발 정책의 문제점에 집중했었는데, 사실은 건물의 위치와 구조도 공간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각 주제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도시를 보는 건축사의 책을 접하기는 어려운 만큼, 비록 독자의 노력을 조금 더 요구하더라도, 챕터 하나하나를 더 긴 분량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한국 도시가 이렇게 빠르게 개발되기 전에 이러한 관점이 널리 퍼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이를 탓하면서 또 도시를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해결책이 아닐 것이다. 도시구조의 문제는 정부만의 것이 아니라 거리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건물과 땅의 주인들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모두가 조금 더 도시전체의 조화를 고려하는, 도시에서의 삶을 고려하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근거리 생활권에 초점이 돌아온 코로나19 시대가 이런 관점이 퍼지기에 적절한 기회가 아닐까?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국 도시에 관한 책이라는 점이다. 서점에 가보면 도시에 관한 책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도시에 관련된 대부분의 책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들은 우리나라와 구조의 차원에서도 다르지만, 도시의 문화도 많이 다르다. 지난 특강에서 임동균 교수님이 언급하셨던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의 경우가 그렇다. 책에서는 도서관에서 만들어지는 인적 네트워크를 분석하고 공공시설이 도시 내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논의는 도서관이 수행하는 역할이 훨씬 한정적인 우리나라에서는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인이 한국 거리를 기반으로 쓴 책이라서 한국 도시와 한국독자에게 가장 적절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의 종로구와 중구를 자주 오가는 사람으로서 ‘12장: 뜨는 거리의 법칙’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광화문 광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은 새로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을 자랑스러운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여길 것 같은데, 글에서는 ‘광장’임에도 사람들이 모이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신기하게도 몇 년 사이 실제로 이러한 지적이 서울시에 전달이 되었는지, 현재 광화문 광장은 공사 중이다. 하지만 도로 사이의 광장 부분에서만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 건너편 거리에는 여전히 높은 빌딩만 있고, 거리에서 이용할 수 없는 상업시설이 없어서 공사가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듯 하다.
세운상가의 실패를 다룬 부분은 건축을 전공하지 않고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통찰이어서 흥미로웠다. 나 또한 최근 세운상가의 도시재생 사업을 지켜보면서 도시개발 정책의 문제점에 집중했었는데, 사실은 건물의 위치와 구조도 공간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각 주제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도시를 보는 건축사의 책을 접하기는 어려운 만큼, 비록 독자의 노력을 조금 더 요구하더라도, 챕터 하나하나를 더 긴 분량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한국 도시가 이렇게 빠르게 개발되기 전에 이러한 관점이 널리 퍼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이를 탓하면서 또 도시를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해결책이 아닐 것이다. 도시구조의 문제는 정부만의 것이 아니라 거리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건물과 땅의 주인들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모두가 조금 더 도시전체의 조화를 고려하는, 도시에서의 삶을 고려하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근거리 생활권에 초점이 돌아온 코로나19 시대가 이런 관점이 퍼지기에 적절한 기회가 아닐까?
최유리2021-04-01 13:17
안녕하세요 성원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저도 성원님과 비슷한 감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광화문 광장 재정비 사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서서히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근대화가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건축에 관해서도 어떤 합의점을 찾지 못한채로 빠르게 빠르게 개발이 이루어진 것의 부작용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군부독재시절 빠른 경제성장의 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일부 건축가들과 함께 우리나라 주요 근대 건축물들이 세워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서울 시장들이 당선될 때마다 자신의 업적과 이익을 위해서 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빠르게 개발을 진행하는 과정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이라는 것은 결국 성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부 건축주 시민 등 아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얽힌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도시 개발 및 좋은 도시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높여야 좋은 건축과 도시계획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박규리2021-04-01 13:58
점이란 무엇일까? 혹은 선에서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때때로 공간이라는 것에서부터 자유로운 나를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자유롭게 공간을 오갈 수는 있어도, 공간이라는 것이 완전히 나에게서부터, 나의 사고로부터 떼어질 수는 없지 않나, 하는 미지근한 생각에 다다랐다. 적어도 나는, 나의 사고가 공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느꼈다. 사고 자체가 공간처럼 구성되니, 그 자연스러움에 공간이란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해서는 막상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책보다도 우선해 느낀 점이 있다면 그건 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발이 묶이니 사고와 성장도 묶이고 말았다. 내가 오늘 하루 내딛는 물리적인 발걸음이 한 단위로서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수업 들으러 학교 한 번 못 가보고서야 깨닫는 것이다.
누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럼 이제는?”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지금, 무엇보다도 공간의 제약에 묶여버린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걷기 좋은 거리의 예시로 나왔던 명동 같은 경우는 이제 남아있는 가게의 수를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황폐해졌다.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좋은 집에서라도 살고자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좋은 집”을 구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시간은 이미 인터넷 세상 속에서 흐르고 있다. 인터넷이 우리의 공간도 흡수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터넷 안에서는 어떤 공간을 구성해낼 수 있을까? 팬데믹 상황에 맞추어 공간은 완벽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분절된 공간(이를 테면 식당은 부스형 테이블로 운영)으로 진화하는 것이 맞을까? 혹은 여전히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할까?
덧붙여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 나아가 어떤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동아시아의 다른 유명한 도시들은 조금 더 명확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좋은 관광지가 되겠다는 자본주의적인 목표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정체성을 구현해 낸 도시는 어떻게 건설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누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럼 이제는?”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지금, 무엇보다도 공간의 제약에 묶여버린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걷기 좋은 거리의 예시로 나왔던 명동 같은 경우는 이제 남아있는 가게의 수를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황폐해졌다.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좋은 집에서라도 살고자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좋은 집”을 구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시간은 이미 인터넷 세상 속에서 흐르고 있다. 인터넷이 우리의 공간도 흡수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터넷 안에서는 어떤 공간을 구성해낼 수 있을까? 팬데믹 상황에 맞추어 공간은 완벽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분절된 공간(이를 테면 식당은 부스형 테이블로 운영)으로 진화하는 것이 맞을까? 혹은 여전히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할까?
덧붙여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 나아가 어떤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동아시아의 다른 유명한 도시들은 조금 더 명확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좋은 관광지가 되겠다는 자본주의적인 목표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정체성을 구현해 낸 도시는 어떻게 건설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김하연2021-04-02 01:40
책을 읽기 전 나는 '건축'이라고 하면 콘크리트나 건설 현장을 떠올리고, '도시'라고 하면 빽빽한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는 거리 정도가 떠오르고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좋은 건축', '좋은 도시', 나에게 있어서 '가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는 어디일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 유현준 교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고 자연 속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이 좋은 도시라고 해주셨는데, 그렇다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도시 속의 융합과 네트워크를 이루어나갈 수 있을지 함께 논의해보고 싶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사람들이 그 속에 살면서 점차 진화해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도시와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도시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도시를 만든다는 문장이, 그동안 도시라는 것에 큰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에게 큰 임팩트가 있었다. 지역적, 문화적 특색을 살리고 그 도시의 스케일에 맞게 최선의 방향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민들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이루어지고 자신이 시간을 보내는 곳인 ‘도시’에 보다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다만 아쉬웠던 점은 현재 주거공간인 집을 재테크의 개념으로 경제적으로 인식하는 경제효용적 측면도 다루었다면 조금더 현실과 맞닿아 있게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포스트팬데믹 @ 도시 공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03월 25일 출간
목차
추천사
머리말
제1장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
강남 거리는 왜 걷기 싫을까? /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 공간의 속도 / 카페 앞 데크는 왜 거리를 좋게 만드는가?
제2장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가
휴먼 스케일, 카오스적인 도시, 간판 / 옛 도시 : 통일된 재료와 지형에 맞추어진 다양한 형태 / 골목은 없고, 복도만 있다 / 머리 위 하늘을 빼앗긴 도시 / 빨래가 사라진 도시 / 스카이라인 / 감정 시장
제3장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감시받는 사회 / 공간과 권력 /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 클럽에 왜 문지기가 있을까? /
감시는 나쁘기만 한가? : 광장과 운동장 / 호텔과 모텔 사이 / 면적 vs 체적
제4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뉴욕 이야기
로프트, 예술가, 부동산 / 깨진 유리창의 법칙 / 냉장고와 건축 / 도시 개발업자의 비밀 무기 / 도시 재생, 생명의 사이클 / 죽은 시설의 부활 : 하이라인 공원 / 지루한 격자형 도시 뉴욕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 남대문은 고려청자와 무엇이 다른가?
제5장 강남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 사람이 만든 도시, 도시가 만든 사람
도시는 유기체 / 아메바부터 척추동물까지 / 진화하는 도시 : 로마, 파리, 뉴욕 / 화폐 속 건축가 / 강남과 북한
제6장 강북의 도로는 왜 구불구불한가 : 포도주 같은 건축
층층이 퇴적된 삶의 역사 / 소주·포도주의 건축학 / 복합적 삶, 유일한 땅, 지혜로운 해결책 / 베트남 기념관 : 역사와 땅과 사람을 이용한 디자인의 백미
제7장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
불편한 교회, 편안한 절 / 공간 구조와 종교 활동의 상호관계 :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 불교 사찰, 이슬람교 사원
제8장 우리는 왜 공원이 부족하다고 말할까
공원의 역사 / 거실과 골목길 / 우리가 TV를 많이 보는 이유 / 남산과 센트럴 파크 / 한강과 고수부지
제9장 열린 공간과 그 적들 : 사무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근로 공간의 탄생과 비밀 / 소돔과 고모라 / 시계탑 / 자리 배치의 비밀, 부장님의 자리 /
공공의 적, 형광등 /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사는 이유
제10장 죽은 아파트의 사회
카페와 모텔이 많은 이유 / 한강의 만리장성 / 아파트와 돼지 / 아파트와 재개발 / 집 크기 / 가족애를 위한 아파트 평면 만들기 / 줄기 세포 주택
제11장 왜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을 좋아하는가
기호 해독 / 정보로서의 건축 / 왜 인터넷 ‘공간’이라고 부르는가? / 동물로서의 인간, 동물 이상의 인간 / 클럽과 페이스북 / 몸, 심리, 건축
제12장 뜨는 거리의 법칙
코엑스 광장엔 사람이 없다 / 지하 쇼핑몰의 한계 / 죽은 광장 살리기 / 신사동 가로수길 /
세운상가와 샹젤리제 : 건축가들이 흔히 하는 두 가지 실수 / 시간은 공간 / 덕수궁 돌담길
제13장 제품 디자인 vs 건축 디자인
제품과 건축 / 자동차와 건축 / 「명량」과 건축 / 유재석 같은 건축 / 위상기하학과 동대문 DDP / 그래비티
제14장 동과 서 :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
바둑과 체스의 공간 미학 / 알파벳과 한자 / 동양의 상대적 가치 / 서양의 절대적 가치 /
개미집과 벌집 / 空間과 SPACE / 한식 밥상과 코스 요리 / 테이블과 마루 / 장마와 건축
제15장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성 베네딕트 채플 : 자연과 대화하는 건물 / 두 주택 / 아사히야마 동물원 / 자연에 양보하는 잠수교 / 시간의 이름 / 옹벽의 역사 / 옹벽과 동 / 보이지 않는 벽 / 울타리 /
한국의 정자 : 자연과 대화하는 건축 / 한국적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