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 소주제 4]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원장 특강
서강민2021-05-08 21:35
내용 요약) 지구 온난화는 진행 중이며,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산업화로 인한 온실기체의 증가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이를 부정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 세력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를 방해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 사실 뿐 아니라 다양한 국제, 경제적 이해관계에 좌우된다. 현 경제적, 국제적 질서는 지구 온난화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하며, 이러한 기존 질서를 뒤집을 수 있는 대전환(공공부문에서 대규모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의 실행과 에너지 관리, 누진적 탄소세 부과, 저탄소 시설 투자, 탄소, 배출권 거래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외에도 해수면 상승 문제, 생태계 문제 등 지구환경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다룬다.
생각해볼 점)
1. 이 책에서는 기후 변화를 기본 전제로 깔고,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전문가나 에너지 생산 기업을 비열하고, 거짓말을 하고, 정경유착과 로비활동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근거가 빈약한 감정적 서술은 기후 위기를 충분히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이 정도로 서술로도 이해가 갈 수 있지만, 기후 위기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기후 변화를 긍정하는 과학자 근거와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과학적 근거를 철저히 비교 분석하고, 어느 것이 현 지구 상황에 대한 설명력이 높은지 대조하는 방식의 서술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2. 지구온난화 문제에서 중요한 점은 온실기체 농도의 상승이라는 외부 자극이 양성 피드백을 유발할지, 아니면 음성 피드백을 유발할 지이다. 만일 외부 자극에 대해 이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지구 환경이 자체적으로 움직인다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외부 자극에 대해 오히려 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구 환경이 움직인다면 인간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과거(대략 10억년전) 쯤에 이러한 양성 피드백이 작용한 실례가 존재한다. 지구 연평균 기온 감소 -> 극지방 빙하의 성장 -> 태양광 반사율 증가 -> 이러한 과정이 양성 피드백으로 작용하여 지구 전체가 적도까지 얼음으로 뒤덮인 snowball earth가 형성된 적이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구 연평균 기온 증가 -> 극지방 빙하의 감소 -> 태양광 반사율 감소 -> 이러한 과정이 양성 피드백으로 작용하여 불덩이 지구처럼 될 수도 있다. 온실기체 농도 증가가 지구 시스템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서술이 있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3.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저자가 주장한 사회 구조의 개혁, 기존 질서의 수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탄소세나 복합적인 환경 규제, 제도를 통해 줄일 수 있는 온실기체의 양이 전체 발생 양에 비해 유의미한 수치를 가질지 궁금하다. 나는 근본적으로 환경 보호를 위한 경제정책, 제도보다도 공학과 과학을 통한 기술발전이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규제와 같은 방법은 일종의 강제성을 띄고 있으며, 현재의 경제 질서와 효율을 작든 크든 교란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규제, 정책의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나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공학을 통한 해결은 기존 질서를 조작할 필요 없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가 쉽다. 현재 재생에너지(태양광, 수력, 풍력)은 화력이나 원자력 에너지에 비해 효율과 경제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효율 증대나 CCS 기술의 개발 등은 기존의 질서 아래에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Haber-Bosch Process를 통해 맬서스 트랩을 깨뜨렸듯이, 공학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볼 점)
1. 이 책에서는 기후 변화를 기본 전제로 깔고,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전문가나 에너지 생산 기업을 비열하고, 거짓말을 하고, 정경유착과 로비활동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근거가 빈약한 감정적 서술은 기후 위기를 충분히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이 정도로 서술로도 이해가 갈 수 있지만, 기후 위기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기후 변화를 긍정하는 과학자 근거와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과학적 근거를 철저히 비교 분석하고, 어느 것이 현 지구 상황에 대한 설명력이 높은지 대조하는 방식의 서술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2. 지구온난화 문제에서 중요한 점은 온실기체 농도의 상승이라는 외부 자극이 양성 피드백을 유발할지, 아니면 음성 피드백을 유발할 지이다. 만일 외부 자극에 대해 이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지구 환경이 자체적으로 움직인다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외부 자극에 대해 오히려 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구 환경이 움직인다면 인간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과거(대략 10억년전) 쯤에 이러한 양성 피드백이 작용한 실례가 존재한다. 지구 연평균 기온 감소 -> 극지방 빙하의 성장 -> 태양광 반사율 증가 -> 이러한 과정이 양성 피드백으로 작용하여 지구 전체가 적도까지 얼음으로 뒤덮인 snowball earth가 형성된 적이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구 연평균 기온 증가 -> 극지방 빙하의 감소 -> 태양광 반사율 감소 -> 이러한 과정이 양성 피드백으로 작용하여 불덩이 지구처럼 될 수도 있다. 온실기체 농도 증가가 지구 시스템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서술이 있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3.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저자가 주장한 사회 구조의 개혁, 기존 질서의 수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탄소세나 복합적인 환경 규제, 제도를 통해 줄일 수 있는 온실기체의 양이 전체 발생 양에 비해 유의미한 수치를 가질지 궁금하다. 나는 근본적으로 환경 보호를 위한 경제정책, 제도보다도 공학과 과학을 통한 기술발전이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규제와 같은 방법은 일종의 강제성을 띄고 있으며, 현재의 경제 질서와 효율을 작든 크든 교란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규제, 정책의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나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공학을 통한 해결은 기존 질서를 조작할 필요 없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가 쉽다. 현재 재생에너지(태양광, 수력, 풍력)은 화력이나 원자력 에너지에 비해 효율과 경제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효율 증대나 CCS 기술의 개발 등은 기존의 질서 아래에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Haber-Bosch Process를 통해 맬서스 트랩을 깨뜨렸듯이, 공학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태민2021-05-12 22:54
서강민 학우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첫번째 생각해볼 점에서, 본 저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 또한 책의 전반부는 반대(보수)를 위한 반대, 후반부는 특정 견해의 반복 제기라고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말한 특정 견해란 환경 이슈에 대한 경제적 접근에 있어서 정치적 편향이 두드러졌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해 제시해주신 세번째 생각해볼 점 또한 흥미롭습니다. 경제 구조의 개혁은 찬반양론의 심각한 대립이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개발은 그 변화를 객관적인 수치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전기차, 수소차의 개발이 내연기관차에 비해 친환경적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처럼 전방위에서 친환경적인 기술이 도입된다면 그것인 진정한 환경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개발은 사회 전체가 동의하고, 각 개인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용수2021-05-12 23:33
강민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1번 질문에서 다루어 주신 과학적 근거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돌이켜 보면 최근 들어 이전 상태로 복원할 수 없는 환경의 '사건의 지평선'같은 지점이 바로 지구 온도가 2도 상승하는 시점이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으나,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구체적인 근거는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봐서 아마 그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2번 질문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일종의 양성 피드백이 작용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러한 점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준다면 더욱 지구온난화가 현재 위험한 수준이다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릴 것 같습니다.
또한 3번 질문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정답을 낼 수는 없으나 이것을 고려하는 데에 시간이라는 변수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저자가 기술 혁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다소 극단적인 경제적 대전환을 주장하는 데는 저자가 기후 변화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마다 의견이 갈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과연 이 시간 안에 기술발전으로 인한 온실가스 감소량이 기후 변화를 안정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도 재미있는 주제일 것 같습니다!
저 역시 1번 질문에서 다루어 주신 과학적 근거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돌이켜 보면 최근 들어 이전 상태로 복원할 수 없는 환경의 '사건의 지평선'같은 지점이 바로 지구 온도가 2도 상승하는 시점이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으나,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구체적인 근거는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봐서 아마 그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2번 질문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일종의 양성 피드백이 작용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러한 점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준다면 더욱 지구온난화가 현재 위험한 수준이다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릴 것 같습니다.
또한 3번 질문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정답을 낼 수는 없으나 이것을 고려하는 데에 시간이라는 변수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저자가 기술 혁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다소 극단적인 경제적 대전환을 주장하는 데는 저자가 기후 변화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마다 의견이 갈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과연 이 시간 안에 기술발전으로 인한 온실가스 감소량이 기후 변화를 안정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도 재미있는 주제일 것 같습니다!
이재용2021-05-12 23:54
강민 학우님의 글 매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글 전반적으로 '나는 이과다!' 의 성격이 강하게 묻어있는 것 같아 읽을수록 더욱 흥미로웠습니다:D 1번 질문에 있어선 아마 책의 저자가 답하기 보다는 강민 학우님과 저를 포함한 여러 과학도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조사, 제시하도록 하여 환경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끔 하려는 저자의 의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물론 그 자료를 다 제시해버리면 책이 너무 두꺼워지는 이유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2번 또한 마찬가지로 추후 지구온난화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토론의 장이 주어졌을 때 그때 다루어지면 매우 좋을 것 같다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3번을 읽으면서 현재 지구 온난화의 공학적 해결책 중 가장 경제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실제 응용이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만약 경제적으로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면 활용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는 왜 부족한지 구체적 수치를 바탕으로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조현호2021-05-13 09:37
2번 같은 경우 저는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날카롭게 잘 짚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3번의 의견도 저 또한 상당히 동의합니다. 다양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준 것은 좋았으나 과연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그 방법들이 실현가능한지, 효과적인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등을 조금 더 자세히 따져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저자가 얘기한 것처럼 사용하기 좋은 방법이라면 왜 현실에서는 당장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 저자의 주장과 현실과의 격차를 무엇인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건규2021-05-11 02:34
1.
경각심을 제공하는 도입부를 거쳐 희망적인 모습들도 제시하는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아주 인상적이었고, 클라인이 제시한 구체적인 사례와 방안 외에 추가적인 정보를 나머지 읽기 자료에서 얻을 수 있었다. 위낙 많은 내용을 읽게 되었기에 논할 만한 내용도 많지만, 나는 특별히 탄소세에 관한 논의들에서 흥미로운 점이 보였다.
〈월간 통상〉에서 소개된 탄소국경세도 탄소세의 일종일 텐데, 〈월간 통상〉에서는 특별히 환경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기보다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 제도의 파급력 등을 세심히 분석한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얼마나 세심하든지 간에, 클라인에게 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클라인의 책 곳곳에서 탄소세는 표면적으로는 환경 운동과 결부되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다. 주류 환경 운동에서 탄소세 도입이 요구되는 것은 맞다(230쪽). 다만 클라인이 제시하는 ‘문제 있는’ 방식의 환경 운동에서 유난히 탄소세 도입이 옹호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탄소세 도입은 버진 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의 ‘실천하지 않을 공약’이 되기도 하고(352쪽), 더 큰 환경 문제를 불러오는 방안을 지지하는 연구소가 옹호하는 방식이며(399쪽), 블로카디아에서 벌어지는 환경 투쟁에 대한 그릇된 비판 또한 탄소세 부과를 옹호한다(454쪽). 즉 클라인의 책에서 탄소세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환경 운동에 표면적으로만 기여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간편한 방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어진 자료 외에 다른 텍스트도 참고해 보자. 201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노동당-녹색당 연립정권이 집권하며 탄소세 도입을 강행했으나, 광고 측면에서도 정부가 대기업에게 이기지 못했고 탄소세 법안을 통과시킨 뒤에도 세액공제로 돌려받는 금액(탄소세의 일부)이 미미하며 물가는 오르는 상황이 나타났다. [1] 결국 납세자와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자 탄소세 법안은 폐지되었다고 한다. 책 『오늘 시작한 미래』의 저자들은 기후재난을 막기 위해서 탄소세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오스트레일리아의 실패 사례를 탄소세 도입에 대한 정치적 저항으로 해석하며 탄소세 수입을 탄소 기본소득(carbon diviend)으로 나누면 해결할 수 있다는 추가적 방안을 제시한다. [2]
이렇게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탄소세의 장점이나 탄소세를 옹호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더 잘 파악할 수 있긴 하지만, 클라인의 책을 읽은 입장에서 이러한 논의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 탄소세는 매우 현실적이기에 〈월간 통상〉에서와 같이 경제적으로도, 『오늘 시작한 미래』에서와 같이 정치적으로도 많은 분석과 주목을 받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이런 현실성이 너무 각광 받아 다른 환경 운동 방안을 생각하지 못하게 방해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대중적인’ 환경 운동들도 따져보면 이렇게 너무 유명한 나머지 본질적인 한계가 은폐되어 온 것이 아닐까? 클라인이 지적한 대로, 모든 환경 운동이 바람직한 방향성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는 코로나19로 인해 원유 수요가 감소하고 유가가 하락했다는 사실을 논하며 화석연료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을 제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천연가스 재고량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하며 재생 가능 에너지에 비해 천연 가스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3] 이런 분석에서 클라인이 지적하는 천연가스의 ‘불편한 진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주 논리적이고 방대한 사례가 제시된 클라인의 책을 읽으며 잠시 잊고 있던 점이지만, 솅커와 같이 누군가가 아주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논의를 전개할 때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너무 쉽게 그럴싸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할 것이다. 결국 ‘편한 거짓’과 ‘불편한 진실’ 사이의 싸움은 누가 더 정보를 잘 전달하느냐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측면에서도 우리는 이 싸움이 왜 ‘편한 거짓’에게 더 유리한 싸움이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논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경제나 환경 문제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클라인의 책을 읽고 앞으로 이런 논제에 무관심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기기까지 했는데, 작가가 구체적인 상황을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 효과가 잘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 책이 뉴욕 타임즈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출판된 지도 수년이 흘렀어도 지금껏 내가 이 책의 존재조차 몰랐던 점을 생각할 때, 이런 (적어도 작가 본인에게는) 매우 시급한 사안에 대해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관심을 이끌어내기란 ‘일개 베스트셀러’ 수준으로는 결국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이 책에서 논하는 최후의 바로잡을 시간은 이미 지나간 듯하고 트럼프는 오바마보다 더한 행보도 보여주었는데 그럼 이미 망한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클라인은 2021년 현재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미주
[1] 강남훈, 송주명, 안현효, 『오늘 시작한 미래』, 42쪽.
[2] 같은 책, 40-42쪽.
[3] 제이슨 솅커, 『코로나 이후의 세계』, 56쪽.
경각심을 제공하는 도입부를 거쳐 희망적인 모습들도 제시하는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아주 인상적이었고, 클라인이 제시한 구체적인 사례와 방안 외에 추가적인 정보를 나머지 읽기 자료에서 얻을 수 있었다. 위낙 많은 내용을 읽게 되었기에 논할 만한 내용도 많지만, 나는 특별히 탄소세에 관한 논의들에서 흥미로운 점이 보였다.
〈월간 통상〉에서 소개된 탄소국경세도 탄소세의 일종일 텐데, 〈월간 통상〉에서는 특별히 환경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기보다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 제도의 파급력 등을 세심히 분석한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얼마나 세심하든지 간에, 클라인에게 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클라인의 책 곳곳에서 탄소세는 표면적으로는 환경 운동과 결부되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다. 주류 환경 운동에서 탄소세 도입이 요구되는 것은 맞다(230쪽). 다만 클라인이 제시하는 ‘문제 있는’ 방식의 환경 운동에서 유난히 탄소세 도입이 옹호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탄소세 도입은 버진 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의 ‘실천하지 않을 공약’이 되기도 하고(352쪽), 더 큰 환경 문제를 불러오는 방안을 지지하는 연구소가 옹호하는 방식이며(399쪽), 블로카디아에서 벌어지는 환경 투쟁에 대한 그릇된 비판 또한 탄소세 부과를 옹호한다(454쪽). 즉 클라인의 책에서 탄소세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환경 운동에 표면적으로만 기여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간편한 방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어진 자료 외에 다른 텍스트도 참고해 보자. 201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노동당-녹색당 연립정권이 집권하며 탄소세 도입을 강행했으나, 광고 측면에서도 정부가 대기업에게 이기지 못했고 탄소세 법안을 통과시킨 뒤에도 세액공제로 돌려받는 금액(탄소세의 일부)이 미미하며 물가는 오르는 상황이 나타났다. [1] 결국 납세자와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자 탄소세 법안은 폐지되었다고 한다. 책 『오늘 시작한 미래』의 저자들은 기후재난을 막기 위해서 탄소세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오스트레일리아의 실패 사례를 탄소세 도입에 대한 정치적 저항으로 해석하며 탄소세 수입을 탄소 기본소득(carbon diviend)으로 나누면 해결할 수 있다는 추가적 방안을 제시한다. [2]
이렇게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탄소세의 장점이나 탄소세를 옹호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더 잘 파악할 수 있긴 하지만, 클라인의 책을 읽은 입장에서 이러한 논의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 탄소세는 매우 현실적이기에 〈월간 통상〉에서와 같이 경제적으로도, 『오늘 시작한 미래』에서와 같이 정치적으로도 많은 분석과 주목을 받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이런 현실성이 너무 각광 받아 다른 환경 운동 방안을 생각하지 못하게 방해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대중적인’ 환경 운동들도 따져보면 이렇게 너무 유명한 나머지 본질적인 한계가 은폐되어 온 것이 아닐까? 클라인이 지적한 대로, 모든 환경 운동이 바람직한 방향성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는 코로나19로 인해 원유 수요가 감소하고 유가가 하락했다는 사실을 논하며 화석연료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을 제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천연가스 재고량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하며 재생 가능 에너지에 비해 천연 가스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3] 이런 분석에서 클라인이 지적하는 천연가스의 ‘불편한 진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주 논리적이고 방대한 사례가 제시된 클라인의 책을 읽으며 잠시 잊고 있던 점이지만, 솅커와 같이 누군가가 아주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논의를 전개할 때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너무 쉽게 그럴싸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할 것이다. 결국 ‘편한 거짓’과 ‘불편한 진실’ 사이의 싸움은 누가 더 정보를 잘 전달하느냐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측면에서도 우리는 이 싸움이 왜 ‘편한 거짓’에게 더 유리한 싸움이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논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경제나 환경 문제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클라인의 책을 읽고 앞으로 이런 논제에 무관심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기기까지 했는데, 작가가 구체적인 상황을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 효과가 잘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 책이 뉴욕 타임즈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출판된 지도 수년이 흘렀어도 지금껏 내가 이 책의 존재조차 몰랐던 점을 생각할 때, 이런 (적어도 작가 본인에게는) 매우 시급한 사안에 대해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관심을 이끌어내기란 ‘일개 베스트셀러’ 수준으로는 결국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이 책에서 논하는 최후의 바로잡을 시간은 이미 지나간 듯하고 트럼프는 오바마보다 더한 행보도 보여주었는데 그럼 이미 망한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클라인은 2021년 현재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미주
[1] 강남훈, 송주명, 안현효, 『오늘 시작한 미래』, 42쪽.
[2] 같은 책, 40-42쪽.
[3] 제이슨 솅커, 『코로나 이후의 세계』, 56쪽.
강다솔2021-05-11 16:38
안녕하세요 건규님!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시된 자료도 충분히 많았는데 그 외에 다른 자료까지 찾아 말씀해주시다니...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 말하자면 나오미 클라인이 새로운 책 『미래가 불타고 있다』을 냈더군요! 저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기후위기와 그린뉴딜에 대해 말하고 있고, 책 소개에 언급되어 있는 말을 옮기자면 "우리가 허비한 10년(기후 위기가 잠재적 위협에서 절박한 비상사태로 변하기까지)과 우리에게 남은 10년(기후 붕괴 추세를 되돌릴 수 있는 임계점까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심이 생기신다면, 그리고 시간이 나신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제기해주신 기후문제의 전달 방식 문제는... 새로운 책으로 해결되었다고 보기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책만해도 일단 겉으로 보기만 해도 진입장벽이 높다는 게 느껴지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을까, 그래서 기후행동에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저자는 기후와 자본주의와의 싸움에서 "대중운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도 매우 고민해볼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기후위기에 대한 대중운동이 가능해지는 건 이런 책을 통해 기후위기의 과학적, 사회적 팩트들을 알게 되었을 때가 아니라 기후 위기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오미 클라인의 글이 기후위기의 문제를 과학의 프레이밍에서 끌어내어 경제, 사회 문제로 프레이밍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이를 우리의 생활과 감정에 밀접하게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추가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효제의 『탄소사회의 종말』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최근 "전략적 기후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전략적 기후커뮤니케이션은 "아무리 바람직한 행동이라도 그 사람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맥락이 바뀌지 않는 한 달성되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과학적 사실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리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하고, 대표적인 예시가 아이슬란드, 스위스에서 거행한 "빙하 장례식"입니다. 그 행사에서는 어른들, 아이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사라진 빙하를 조문하며 꽃을 놓기도 하는 등 정말 빙하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점차 늘어나게 된다면 기후, 자연을 우리가 지배하고 숫자를 보며 대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교감하며 발맞추어 함께 살아나갈 대상으로 보는 가치관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대중적 기후행동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나오미 클라인이 언급한 것처럼, 기후 문제는 가치관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매우 길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희망하기를 멈추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 말하자면 나오미 클라인이 새로운 책 『미래가 불타고 있다』을 냈더군요! 저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기후위기와 그린뉴딜에 대해 말하고 있고, 책 소개에 언급되어 있는 말을 옮기자면 "우리가 허비한 10년(기후 위기가 잠재적 위협에서 절박한 비상사태로 변하기까지)과 우리에게 남은 10년(기후 붕괴 추세를 되돌릴 수 있는 임계점까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심이 생기신다면, 그리고 시간이 나신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제기해주신 기후문제의 전달 방식 문제는... 새로운 책으로 해결되었다고 보기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책만해도 일단 겉으로 보기만 해도 진입장벽이 높다는 게 느껴지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을까, 그래서 기후행동에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저자는 기후와 자본주의와의 싸움에서 "대중운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도 매우 고민해볼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기후위기에 대한 대중운동이 가능해지는 건 이런 책을 통해 기후위기의 과학적, 사회적 팩트들을 알게 되었을 때가 아니라 기후 위기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오미 클라인의 글이 기후위기의 문제를 과학의 프레이밍에서 끌어내어 경제, 사회 문제로 프레이밍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이를 우리의 생활과 감정에 밀접하게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추가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효제의 『탄소사회의 종말』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최근 "전략적 기후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전략적 기후커뮤니케이션은 "아무리 바람직한 행동이라도 그 사람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맥락이 바뀌지 않는 한 달성되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과학적 사실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리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하고, 대표적인 예시가 아이슬란드, 스위스에서 거행한 "빙하 장례식"입니다. 그 행사에서는 어른들, 아이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사라진 빙하를 조문하며 꽃을 놓기도 하는 등 정말 빙하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점차 늘어나게 된다면 기후, 자연을 우리가 지배하고 숫자를 보며 대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교감하며 발맞추어 함께 살아나갈 대상으로 보는 가치관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대중적 기후행동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나오미 클라인이 언급한 것처럼, 기후 문제는 가치관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매우 길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희망하기를 멈추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문지수2021-05-12 17:24
건규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추가적인 자료를 제시해주셔서 저도 탄소세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제시해주신 문제점에 더해서 '그린피스코리아가 지난 1월 한영회계법인에 의뢰해 EU의 탄소 국경세가 도입되는 2023년부터 EU와 미국, 중국에 탄소 국경세가 도입되는 경우를 추정한 결과 2023년 국내 수출업계는 총 6100억원의 추가 관세부담을 지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에는 1조8700억원으로 늘어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금 규모는 훨씬 더 커졌다.'고 합니다. '러시아는 EU의 탄소 국경세에 보복관세로 대응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데, 이러한 탄소세 조치는 WTO의 정책에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 SDG 13: Climate Action와 SDG 17: Partnerships for the Goals가 충돌하는 지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더 연대를 강조할 수 있는 다른 방향의 환경 운동 모색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도 굉장히 공감이 갔어요! 저도 주심세 수업이 아니었다면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고, 관련한 인식을 제고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인식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 역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출처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3081521001&code=920501#csidx495a090f33ce74b8133fb24706cbc90
마지막 문단도 굉장히 공감이 갔어요! 저도 주심세 수업이 아니었다면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고, 관련한 인식을 제고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인식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 역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출처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3081521001&code=920501#csidx495a090f33ce74b8133fb24706cbc90
문보설2021-05-12 12:14
기후변화는 실존하며 그 가장 큰 원인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가치라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 내용이다.
1. 기후변화의 실존
저자는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이 부의 재분배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기후 변화를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 기후 변화가 실존한다면 그것을 막기 위한 경제 형태의 변화가 필수적이고, 그러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자신들의 이익이 감소한다.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이 이런 결과를 피하는 방법은 기후 변화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지구 보호에 관한 논의 가능성을 무화하는 것이다.
책의 모든 부분에 방대한 양의 사례가 등장한다. 그리고 많은 사례들이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저평가했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사례만으로도 기후 변화와 그로부터 오는 위협이 고려할 만한 것임을 유비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우리가 가진 이데올로기와 사고방식에 기대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사례와 동일하게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명 방식이 우리가 뭔가 제시된 사례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는 방식으로 유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할 여지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기후변화라는 위협의 실존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여러 부분에 있지만 저자는 특히 5장에서 이 부분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저자는 나우루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대대로 전해진 어떤 믿음에 대해 분석한다. 그 믿음은 채취주의로, 생태계와 인간을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채취주의의 문제는 단순히 뭔가를 착취한다는 윤리적 거부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를 운영하기 위해 착취되는 희생 지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제국주의적 태도에 있다. 이런 채취주의가 우리의 믿음 체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기후 변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다.
Q. 저자는 채취주의적 사고방식의 결과물이 기후 변화로 인한 위협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근거에서 우리의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결과주의적이며 생태계의 도구적 가치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환경은 도구적 가치만을 가지는가 아니면 내재적 가치 또한 가지는가? 이에 입각하여 인간중심적인, 혹은 생명체 중심적인 환경보호는 지지할 만 한가?
Q. 또한 우리에게 되돌아올 기후 변화라는 위협은 미래 세대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우리가 우리의 이득을 불편부당히 고려하듯이 미래의 존재자에까지 그러한 고려를 확장한다면 미래의 존재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질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우리가 예상 가능한 환경 변화에만 책임을 지는 것으로 충분한가? 혹은 그것이 과한 요구일까?
2.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또한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중심주의 역시 기후 변화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상당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반드시 무임승차자가 발생하고, 각자가 각자의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환경에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장 추구의 방식을 변화시키거나 기후 변화 협약을 체결하여 의무를 강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보여준 여러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협약은 국제 무역의 강제력보다 훨씬 약한 강제력을 가진다.
Q. 그러나 저자의 사례 검토가 자본주의와 기후가 대립관계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뒷받침하는지는 의문이다. 일단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업가들이 환경 문제에 뛰어드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적어도 그들은 환경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저자는 앞서 특정 지역의 성장 결과물로 다른 지역이 피해 입는 것을 정의롭지 않다고 여기는 듯 했다. 즉 행위 주체가 그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정당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환경 파괴로 이득을 본 기업이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여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저자 본인의 정의관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비록 실제 기업가들이 겉보기로, 생색내기 식으로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척 했다고 해도 그 방법론 자체(기업가들이 ‘자기가 싼 똥을 치우는 것’)를 부정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또한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사업을 자본주의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가능성을 논의하지 않고서 갑자기 기후 위기를 낳은 오염 배출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며 그런 모습이 굉장히 웃기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이 부분은 저자의 정의관과 비 일관적이며 방법론이 잘못 적용된 사례를 가지고 방법론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비약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기업가들이 환경 보호에 투자하고, 관련 사업을 전문가들의 자문 하에 진행한다면 자본주의와 지구 환경 보호가 양립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기후변화의 실존
저자는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이 부의 재분배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기후 변화를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 기후 변화가 실존한다면 그것을 막기 위한 경제 형태의 변화가 필수적이고, 그러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자신들의 이익이 감소한다.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이 이런 결과를 피하는 방법은 기후 변화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지구 보호에 관한 논의 가능성을 무화하는 것이다.
책의 모든 부분에 방대한 양의 사례가 등장한다. 그리고 많은 사례들이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저평가했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사례만으로도 기후 변화와 그로부터 오는 위협이 고려할 만한 것임을 유비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우리가 가진 이데올로기와 사고방식에 기대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사례와 동일하게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명 방식이 우리가 뭔가 제시된 사례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는 방식으로 유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할 여지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기후변화라는 위협의 실존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여러 부분에 있지만 저자는 특히 5장에서 이 부분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저자는 나우루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대대로 전해진 어떤 믿음에 대해 분석한다. 그 믿음은 채취주의로, 생태계와 인간을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채취주의의 문제는 단순히 뭔가를 착취한다는 윤리적 거부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를 운영하기 위해 착취되는 희생 지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제국주의적 태도에 있다. 이런 채취주의가 우리의 믿음 체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기후 변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다.
Q. 저자는 채취주의적 사고방식의 결과물이 기후 변화로 인한 위협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근거에서 우리의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결과주의적이며 생태계의 도구적 가치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환경은 도구적 가치만을 가지는가 아니면 내재적 가치 또한 가지는가? 이에 입각하여 인간중심적인, 혹은 생명체 중심적인 환경보호는 지지할 만 한가?
Q. 또한 우리에게 되돌아올 기후 변화라는 위협은 미래 세대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우리가 우리의 이득을 불편부당히 고려하듯이 미래의 존재자에까지 그러한 고려를 확장한다면 미래의 존재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질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우리가 예상 가능한 환경 변화에만 책임을 지는 것으로 충분한가? 혹은 그것이 과한 요구일까?
2.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또한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중심주의 역시 기후 변화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상당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반드시 무임승차자가 발생하고, 각자가 각자의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환경에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장 추구의 방식을 변화시키거나 기후 변화 협약을 체결하여 의무를 강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보여준 여러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협약은 국제 무역의 강제력보다 훨씬 약한 강제력을 가진다.
Q. 그러나 저자의 사례 검토가 자본주의와 기후가 대립관계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뒷받침하는지는 의문이다. 일단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업가들이 환경 문제에 뛰어드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적어도 그들은 환경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저자는 앞서 특정 지역의 성장 결과물로 다른 지역이 피해 입는 것을 정의롭지 않다고 여기는 듯 했다. 즉 행위 주체가 그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정당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환경 파괴로 이득을 본 기업이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여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저자 본인의 정의관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비록 실제 기업가들이 겉보기로, 생색내기 식으로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척 했다고 해도 그 방법론 자체(기업가들이 ‘자기가 싼 똥을 치우는 것’)를 부정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또한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사업을 자본주의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가능성을 논의하지 않고서 갑자기 기후 위기를 낳은 오염 배출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며 그런 모습이 굉장히 웃기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이 부분은 저자의 정의관과 비 일관적이며 방법론이 잘못 적용된 사례를 가지고 방법론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비약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기업가들이 환경 보호에 투자하고, 관련 사업을 전문가들의 자문 하에 진행한다면 자본주의와 지구 환경 보호가 양립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건규2021-05-12 16:11
2.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Q.에 대해
글 잘 읽었습니다! 분명히 책의 앞부분에서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목적이었는지 클라인의 논조가 꽤 과격한 수준이긴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사회를 위해 위선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데, 그래서 기업가들이 겉보기에만 환경 운동에 동참하는 것에서도 의의를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다만 클라인이 기업가들 뿐만 아니라 다소 엇나간 결과를 야기할 여러 환경운동 사례를 비판했던 것처럼 클라인은 특히 근시안적이고 일회성 행사로 그치는 환경 운동을 특히 경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클라인은 현재 상황이 매우 급박하고 중요한 시점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자본가들이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환경 운동처럼) 충분한 경각심 없이 진행되는 환경 운동이 궁극적으로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이 강조된 것 같기도 하죠. 기업가가 하는 환경 운동은 아무리 위선적이고 비본질적이라도 수많은 다른 시민 단체에 비해 광고 효과라든지 영향력은 충분히 클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정부보다도 입김이 셀 수도 있고, 어쩌면 클라인의 책보다도 파급력이 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위기를 수습할 최후의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클라인이 원한 것은 이렇게 허울만 좋고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미래에 더 큰 문제를 낳는 방식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진정으로 유의미한 환경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을지 추측해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분명히 책의 앞부분에서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목적이었는지 클라인의 논조가 꽤 과격한 수준이긴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사회를 위해 위선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데, 그래서 기업가들이 겉보기에만 환경 운동에 동참하는 것에서도 의의를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다만 클라인이 기업가들 뿐만 아니라 다소 엇나간 결과를 야기할 여러 환경운동 사례를 비판했던 것처럼 클라인은 특히 근시안적이고 일회성 행사로 그치는 환경 운동을 특히 경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클라인은 현재 상황이 매우 급박하고 중요한 시점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자본가들이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환경 운동처럼) 충분한 경각심 없이 진행되는 환경 운동이 궁극적으로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이 강조된 것 같기도 하죠. 기업가가 하는 환경 운동은 아무리 위선적이고 비본질적이라도 수많은 다른 시민 단체에 비해 광고 효과라든지 영향력은 충분히 클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정부보다도 입김이 셀 수도 있고, 어쩌면 클라인의 책보다도 파급력이 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위기를 수습할 최후의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클라인이 원한 것은 이렇게 허울만 좋고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미래에 더 큰 문제를 낳는 방식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진정으로 유의미한 환경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을지 추측해 봅니다.
원재희2021-05-12 16:20
1-1. 저 또한 책을 읽고 가장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로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작가 나오미클라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환경보호를 포함한 어떠한 행위를 할 동기는 오직 이기적 동기에서만 비롯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환경 자체의 내재적 가치가 실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지키는 것이 인간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또는 오히려 비용을 초래하기만 한다면, 어느 누구도 나서서 먼저 환경 보호를 실행으로 옮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작가의 말씀대로 자본주의의 발전과 환경이 양립할 수 없다 해도,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구실삼아 환경 보호를 제안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여기에서 더 생각해볼만 한 점이 떠올랐는데, 만약 환경이 도구적 가치를 넘어서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 진리라면, 인간이 그 내재적 가치가 아닌 도구적 가치를 동기삼아 환경을 보호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느 누가 서로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도구적 가치를 인정한 다음에야만 환경 보호에 나설 수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류의 태생적 특징이라면, 이러한 조건 하에 인간중심주의적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누군가를, 같은 인류의 입장에 있는 또다른 누군가가 비난할 자격이나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1-2. (앞의 1-1에서 언급된 환경 보호에 대한 인간의 동기 이야기에 계속 연관하여,) 저는 개인적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근거로 미래세대의 안전 보장을, 미래세대라는 단어가 포함한 의미를 기준으로 좀 더 세밀히 분석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만약 '나'의 직접적 후손이 아닌, 타인의 후손이라면 인간에게 그들의 안전을 근거로 환경을 보호하라는 의무를 지울 정당성이 확보되는가? (책에서도 작가가 임신을 하기 전 느꼈던 감정이 등장하는데, 그 부분을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2) 환경 보호는 우리가 미래세대라 불리는 이들보다 단순히 '앞서' 살아가기 때문에 제공해야하는 배려이자 매너인가, 아니면 시기적으로 우선함에 관계 없이 같은 '인간'에 속해있는 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제공하는 동정과 연민, 사랑에 근거한 것인가?
다른 분들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이 더 근본적인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 보설님이 의견에 다소 찬성하나, 아마 나오미 클라인은, 설령 이룰 수 없다 하더라도 크게 목표를 잡아놓아야 조금이라도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작가는 수많은 배신감을 느꼈던 경험을 통해 축적된 기업에 대한 불신과 그들의 불순한 동기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즉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 나오미 클라인이 보고 들은 세계는 우리가 경험한 세계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두운 이면이었을 수 있고, 그랬기에 그 작가에게서 우리보다 더욱 급진적이고 강한 진단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추가로 여기에서 더 생각해볼만 한 점이 떠올랐는데, 만약 환경이 도구적 가치를 넘어서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 진리라면, 인간이 그 내재적 가치가 아닌 도구적 가치를 동기삼아 환경을 보호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느 누가 서로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도구적 가치를 인정한 다음에야만 환경 보호에 나설 수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류의 태생적 특징이라면, 이러한 조건 하에 인간중심주의적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누군가를, 같은 인류의 입장에 있는 또다른 누군가가 비난할 자격이나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1-2. (앞의 1-1에서 언급된 환경 보호에 대한 인간의 동기 이야기에 계속 연관하여,) 저는 개인적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근거로 미래세대의 안전 보장을, 미래세대라는 단어가 포함한 의미를 기준으로 좀 더 세밀히 분석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만약 '나'의 직접적 후손이 아닌, 타인의 후손이라면 인간에게 그들의 안전을 근거로 환경을 보호하라는 의무를 지울 정당성이 확보되는가? (책에서도 작가가 임신을 하기 전 느꼈던 감정이 등장하는데, 그 부분을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2) 환경 보호는 우리가 미래세대라 불리는 이들보다 단순히 '앞서' 살아가기 때문에 제공해야하는 배려이자 매너인가, 아니면 시기적으로 우선함에 관계 없이 같은 '인간'에 속해있는 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제공하는 동정과 연민, 사랑에 근거한 것인가?
다른 분들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이 더 근본적인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 보설님이 의견에 다소 찬성하나, 아마 나오미 클라인은, 설령 이룰 수 없다 하더라도 크게 목표를 잡아놓아야 조금이라도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작가는 수많은 배신감을 느꼈던 경험을 통해 축적된 기업에 대한 불신과 그들의 불순한 동기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즉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 나오미 클라인이 보고 들은 세계는 우리가 경험한 세계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두운 이면이었을 수 있고, 그랬기에 그 작가에게서 우리보다 더욱 급진적이고 강한 진단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엘리엇2021-05-13 14:00
문보설 학우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학우님께서 던지신 첫번째 질문과 두번째 질문이 제가 생각했던 지점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신기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환경이 그 자체로서 내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것을 '존엄성'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도 파괴적인 인간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개념은 아닌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어 환경에도 이러한 논의를 섣불리 확장시키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수학에서 공리를 정함에 있어 상당히 신중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서장원2021-05-12 13:26
누구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물을 아껴써야 한다, 불을 끄고 다녀야 한다, 내복을 입고 보일러를 적게 틀어야 한다는 생활 속의 실천을 당위적인 것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정작 환경 문제의 실태를 알고, 자발적으로 기후 행동(지구 온난화를 막고 에너지를 감축하기 위한 행위들)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런 점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 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시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서처럼 느껴진다. 단순한 통계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전문가들과 우리가 아는 유명인사들의 말을 인용하여 여러 의견을 폭넓게 담아낸 것 같다. 특히, 자유 무역 협정의 발전 과정과 기후 변화 협약의 발전 시기가 유사했음에도 두 범국가적 담론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었고, 오히려 리우 기후 변화 협약에서 자유 무역과 시장 중심의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가 환경 문제보다 앞선다고 규정된 것이 뼈아프다고 느꼈다. 아웃소싱을 통해 선진국들이 생산 공정을 외부화하면서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을 무마하려고 하는 비열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놀라웠다. 위 책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던 점은 다음과 같다.
1. 현행 탄소 배출 거래제가 실효성 있는 제도일까? 책에서 다룬 것과 같이 선진국들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으며, 경제 성장과 총생산을 중심으로 국가의 규모와 힘이 평가되는 현재, 정부 중심으로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가능할까? 실효성이 없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보완해야 하는가?
2. 1번 논점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정부가 직접 기업의 생산에 개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세제도를 통하 간접적인 개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와 관련하여 탄소세의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탄소세는 화석연료의 탄소함유량 또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탄소배출량에 비례하여 세율을 부과하는 제도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90년대 초반 도입되어 현재 EU에서 확산되는 추세에 놓여있다. 이는 현재 한국의 환경 보전을 위한 목적세인 교통·에너지·환경세와는 보편적이며, 세수 중립적이고 기후 행동을 위한 세원 마련의 목적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상품의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학우분들의 한국의 탄소세 도입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3. 나오미 클라인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 중 새로웠던 지점이 역성장(decroissance)에 관한 논점이었다. 항상 국가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좋은 정책, 선진 국가라는 마인드가 전세계적으로 팽배하다. 한국 역시 이러한 기조에 맞추어 장기성장률이 조금만 하락해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힐난과 질타가 쏟아진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 중심적인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누그러뜨리고 깨끗한 지구와 ‘더불어 잘 사는’ 지구를 건설할 수 있을까? 이것이 허황된 꿈은 아닐까?
4. 한국의 환경 관련 정책은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궁금하여 환경부 홈페이지의 각종 정책에 대한 예산안을 살펴보았다. 환경부가 발표한 2021년 예산 세출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물환경과 기후대기·환경안전 부문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 두 부문에 대한 세출 예산은 약 6조 7천억원이었으나, 기후대기 부문 중 세부 항목인 기후변화 부문 정책에 사용되는 예산은 약 1천억원에 불과했다. 나오미 클라인이 지적한 것과 같이 대대적인 환경 보전 사업이나 장기적인 사업에 대한 예산 사용이 미미한 현실이었다. 또한 새롭게 그린뉴딜 사업의 바람이 일면서 녹색 혁신을 위한 여러 사업에 대한 R&D 투자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였다. 오래된 집은 자주 수리하게 되어, 나중에는 못 쓸 정도로 덕지덕지 테이프가 붙은 흉측한 모습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환경 정책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존의 사업을 보완하기 보다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는 소위 무분별한 테이핑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려가 든다.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시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서처럼 느껴진다. 단순한 통계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전문가들과 우리가 아는 유명인사들의 말을 인용하여 여러 의견을 폭넓게 담아낸 것 같다. 특히, 자유 무역 협정의 발전 과정과 기후 변화 협약의 발전 시기가 유사했음에도 두 범국가적 담론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었고, 오히려 리우 기후 변화 협약에서 자유 무역과 시장 중심의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가 환경 문제보다 앞선다고 규정된 것이 뼈아프다고 느꼈다. 아웃소싱을 통해 선진국들이 생산 공정을 외부화하면서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을 무마하려고 하는 비열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놀라웠다. 위 책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던 점은 다음과 같다.
1. 현행 탄소 배출 거래제가 실효성 있는 제도일까? 책에서 다룬 것과 같이 선진국들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으며, 경제 성장과 총생산을 중심으로 국가의 규모와 힘이 평가되는 현재, 정부 중심으로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가능할까? 실효성이 없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보완해야 하는가?
2. 1번 논점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정부가 직접 기업의 생산에 개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세제도를 통하 간접적인 개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와 관련하여 탄소세의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탄소세는 화석연료의 탄소함유량 또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탄소배출량에 비례하여 세율을 부과하는 제도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90년대 초반 도입되어 현재 EU에서 확산되는 추세에 놓여있다. 이는 현재 한국의 환경 보전을 위한 목적세인 교통·에너지·환경세와는 보편적이며, 세수 중립적이고 기후 행동을 위한 세원 마련의 목적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상품의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학우분들의 한국의 탄소세 도입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3. 나오미 클라인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 중 새로웠던 지점이 역성장(decroissance)에 관한 논점이었다. 항상 국가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좋은 정책, 선진 국가라는 마인드가 전세계적으로 팽배하다. 한국 역시 이러한 기조에 맞추어 장기성장률이 조금만 하락해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힐난과 질타가 쏟아진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 중심적인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누그러뜨리고 깨끗한 지구와 ‘더불어 잘 사는’ 지구를 건설할 수 있을까? 이것이 허황된 꿈은 아닐까?
4. 한국의 환경 관련 정책은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궁금하여 환경부 홈페이지의 각종 정책에 대한 예산안을 살펴보았다. 환경부가 발표한 2021년 예산 세출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물환경과 기후대기·환경안전 부문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 두 부문에 대한 세출 예산은 약 6조 7천억원이었으나, 기후대기 부문 중 세부 항목인 기후변화 부문 정책에 사용되는 예산은 약 1천억원에 불과했다. 나오미 클라인이 지적한 것과 같이 대대적인 환경 보전 사업이나 장기적인 사업에 대한 예산 사용이 미미한 현실이었다. 또한 새롭게 그린뉴딜 사업의 바람이 일면서 녹색 혁신을 위한 여러 사업에 대한 R&D 투자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였다. 오래된 집은 자주 수리하게 되어, 나중에는 못 쓸 정도로 덕지덕지 테이프가 붙은 흉측한 모습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환경 정책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존의 사업을 보완하기 보다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는 소위 무분별한 테이핑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려가 든다.
서강민2021-05-12 14:0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3번 관련해서 큰 공감을 했는데, 보통 우리는 눈에 직접 보이고, 당장 얻을 수 있는 이득, 여기에서는 경제성장률에 주목하고, 눈에 비교적 잘 보이지 않고, 한참 뒤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이득, 여기에서는 환경보존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제는 비교적 쉽게 가시화되는 반면에, 환경은 문제가 정말 심각해지지 않은 이상 눈에 가시화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환경이 눈에 띌정도로 크게 변화했다면 그때는 이미 지구 멸망 직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면, 대중이 역성장을 감수하고서라도 더불어 잘사는 지구를 만드는 정책에 찬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에게 환경 정책의 필요성과 현재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교육, 이해시키고, 경제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완화시킬 필요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2번 관련해서, 환경정책을 크게 R&D투자와 조세제도를 이용한 방법으로 구분하자면, 조세제도를 이용한 방법은 근본적인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책의 불확실성 역시 크기 때문에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탄소세나 여러 규제를 통해 기업의 행동을 제한하면(물론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겠지만)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고, 책에서도 나왔듯이 여러 편법을 통해서 회피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유류세 인상은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고, 심한 규제는 기업의 가장 효율적인 행동을 교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탄소세는 비용은 그 정책을 실행하는 국가가 지는 반면 혜택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감소라는 온국가가 다 받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국가가 협의해야 비로소 그 효과가 나타낼텐데, 한 국가라도 이탈자가 발생한다면 정책의 효과는 크게 감소하고, 마치 카르텔처럼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4번에서 얘기해주셨듯이, 속도는 느리지만 전폭적인 R&E 투자를 통해 에너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생에너지를 통해 화력에너지에 준하는, 근접하는 효율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R&D는 규제처럼 불확실하지도 않고, 현 경제질서에서 벗어날 필요 없이, 쉽게 말해 부작용이 적고 효율은 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비효율성을 가지는 조세제도를 이용한 방법은 현재 바로 닥친 환경문제를 일종의 극약처방 정도로 사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전폭적인 R&D 투자를 통해 에너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3번 관련해서 큰 공감을 했는데, 보통 우리는 눈에 직접 보이고, 당장 얻을 수 있는 이득, 여기에서는 경제성장률에 주목하고, 눈에 비교적 잘 보이지 않고, 한참 뒤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이득, 여기에서는 환경보존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제는 비교적 쉽게 가시화되는 반면에, 환경은 문제가 정말 심각해지지 않은 이상 눈에 가시화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환경이 눈에 띌정도로 크게 변화했다면 그때는 이미 지구 멸망 직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면, 대중이 역성장을 감수하고서라도 더불어 잘사는 지구를 만드는 정책에 찬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에게 환경 정책의 필요성과 현재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교육, 이해시키고, 경제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완화시킬 필요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2번 관련해서, 환경정책을 크게 R&D투자와 조세제도를 이용한 방법으로 구분하자면, 조세제도를 이용한 방법은 근본적인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책의 불확실성 역시 크기 때문에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탄소세나 여러 규제를 통해 기업의 행동을 제한하면(물론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겠지만)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고, 책에서도 나왔듯이 여러 편법을 통해서 회피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유류세 인상은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고, 심한 규제는 기업의 가장 효율적인 행동을 교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탄소세는 비용은 그 정책을 실행하는 국가가 지는 반면 혜택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감소라는 온국가가 다 받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국가가 협의해야 비로소 그 효과가 나타낼텐데, 한 국가라도 이탈자가 발생한다면 정책의 효과는 크게 감소하고, 마치 카르텔처럼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4번에서 얘기해주셨듯이, 속도는 느리지만 전폭적인 R&E 투자를 통해 에너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생에너지를 통해 화력에너지에 준하는, 근접하는 효율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R&D는 규제처럼 불확실하지도 않고, 현 경제질서에서 벗어날 필요 없이, 쉽게 말해 부작용이 적고 효율은 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비효율성을 가지는 조세제도를 이용한 방법은 현재 바로 닥친 환경문제를 일종의 극약처방 정도로 사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전폭적인 R&D 투자를 통해 에너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서영2021-05-12 14:17
장원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자유무역 협정과 기후 변화 협약 진전 과정, 기후변화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 등 언급하신 점에 대한 내용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기존에 알지 못했던, 기후변화 이슈 배후에 놓인 권력 관계와 불편한 진실을 책을 통해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1번 탄소 배출권 거래제의 경우, 배출량 기준이 실효성 있는 수준에서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기존 실패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 같습니다. 추후 이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배출량 기준 설정, 특히 국가별 책임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온실가스 감축 책임에 대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 차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관한 합리적인 합의를 현실적으로 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2번에서 저는 국내 탄소세 도입을 통해 외부효과를 내부화하여 대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개인 및 기업의 조세 저항이 상당할 수 있기에, 이를 완화하기 위해 탄소 감축의 시급성과 탄소세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탄소세 책정에 있어 탄소 감축이라는 주 목적에 맞게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특정 산업 및 기업체에 불필요한 비대칭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책에 언급된 기업의 로비 활동 등의 영향으로 탄소세제가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 3번에서, 성장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의 경우 이를 당장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요원하다고 봅니다. 역성장을 택하자는 급진적인 변화를 바로 택하기보다는, 성장에 대한 초점을 유지하되 기후변화를 다루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성장과 생존 기반 유지를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상기후, 재해 등 사람들이 가까이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후 변화의 악영향 사례들에 주목하며, 이러한 사건의 발생 빈도가 늘어날 경우 성장 동력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4번에서 조사 결과와 함께 언급하신, 우리나라의 '무분별한 테이핑'식 정책에 대한 의견에 동의합니다. 포스트코로나 정책, 그린뉴딜 정책과 같은 타이틀을 내건 채, 제도의 실속보다는 보여주기 식의 정책을 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탄소국경세를 비롯해 탄소 감축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 추진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조치의 실질적인 타격에 대응하기 위핸 장기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번 탄소 배출권 거래제의 경우, 배출량 기준이 실효성 있는 수준에서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기존 실패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 같습니다. 추후 이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배출량 기준 설정, 특히 국가별 책임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온실가스 감축 책임에 대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 차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관한 합리적인 합의를 현실적으로 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2번에서 저는 국내 탄소세 도입을 통해 외부효과를 내부화하여 대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개인 및 기업의 조세 저항이 상당할 수 있기에, 이를 완화하기 위해 탄소 감축의 시급성과 탄소세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탄소세 책정에 있어 탄소 감축이라는 주 목적에 맞게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특정 산업 및 기업체에 불필요한 비대칭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책에 언급된 기업의 로비 활동 등의 영향으로 탄소세제가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 3번에서, 성장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의 경우 이를 당장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요원하다고 봅니다. 역성장을 택하자는 급진적인 변화를 바로 택하기보다는, 성장에 대한 초점을 유지하되 기후변화를 다루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성장과 생존 기반 유지를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상기후, 재해 등 사람들이 가까이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후 변화의 악영향 사례들에 주목하며, 이러한 사건의 발생 빈도가 늘어날 경우 성장 동력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4번에서 조사 결과와 함께 언급하신, 우리나라의 '무분별한 테이핑'식 정책에 대한 의견에 동의합니다. 포스트코로나 정책, 그린뉴딜 정책과 같은 타이틀을 내건 채, 제도의 실속보다는 보여주기 식의 정책을 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탄소국경세를 비롯해 탄소 감축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 추진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조치의 실질적인 타격에 대응하기 위핸 장기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서영2021-05-12 13:44
책에서 저자는 기후변화라는 환경 이슈를 정치적, 경제적 역학 구조와 관련된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 무역, 빈곤, 불평등을 비롯해 정치경제 시스템 전반의 이슈들이 기후변화 및 그에 대한 대응 방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 또한 역설한다.
기후변화는 인간과 지구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보편적인 위협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는 불균형적이라는 특징이 내재해 있기도 하다. 각종 재해에 대한 대책이 미비한 개발도상국, 빈곤층, 취약 계층이 실질적으로 훨씬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에는 이처럼 보편성과 불평등성이 공존하기에, 이에 전면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책에서 저자는 화석 연료 기업, 채취주의적 시스템 등을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는 한편, 그동안 시행되어온 여러 해결방안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이 어느 수준까지 유효할지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저자가 부정적으로 평가한 몇몇 대안들에도 추후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해 있을 수 있기 떄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현 시장 질서 내에서 친환경적 방안을 모색하는 사회적 기업, NGO, 개인의 노력을 떠올려볼 수 있다. 책에서 이러한 노력은 구조적 방안에 비해 덜 중요시되고 일종의 피상적인 방안으로 묘사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모델이 제시되어 기후 변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나 탄소가격제 등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한 제도적 접근도 또 다른 예시로 고려해볼 수 있다. 배출권 거래제의 경우 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실패 사례가 제도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일지, 아니면 배출권 할당을 적절히 설정하고 기존 문제점을 보완한다면 개선이 가능하지 않을지 알아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오늘날 환경 문제와 관련된 교육과 인식의 실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기존 환경 관련 교육이나 캠페인에서는 대체로 일회용품 쓰지 않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비교적 소소한 일상적 실천과 생활습관 변화를 강조하면서 시민적 참여의 중요성을 전달한다. 그러나 그에 비해 책에서 제시되는, 기업의 부정의한 로비라든가, 정부 및 국제 사회 내 정책적 논의를 둘러싼 권력 관계와 그 한계 등은 대중들에게 뚜렷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식에 있어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인간과 지구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보편적인 위협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는 불균형적이라는 특징이 내재해 있기도 하다. 각종 재해에 대한 대책이 미비한 개발도상국, 빈곤층, 취약 계층이 실질적으로 훨씬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에는 이처럼 보편성과 불평등성이 공존하기에, 이에 전면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책에서 저자는 화석 연료 기업, 채취주의적 시스템 등을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는 한편, 그동안 시행되어온 여러 해결방안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이 어느 수준까지 유효할지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저자가 부정적으로 평가한 몇몇 대안들에도 추후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해 있을 수 있기 떄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현 시장 질서 내에서 친환경적 방안을 모색하는 사회적 기업, NGO, 개인의 노력을 떠올려볼 수 있다. 책에서 이러한 노력은 구조적 방안에 비해 덜 중요시되고 일종의 피상적인 방안으로 묘사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모델이 제시되어 기후 변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나 탄소가격제 등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한 제도적 접근도 또 다른 예시로 고려해볼 수 있다. 배출권 거래제의 경우 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실패 사례가 제도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일지, 아니면 배출권 할당을 적절히 설정하고 기존 문제점을 보완한다면 개선이 가능하지 않을지 알아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오늘날 환경 문제와 관련된 교육과 인식의 실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기존 환경 관련 교육이나 캠페인에서는 대체로 일회용품 쓰지 않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비교적 소소한 일상적 실천과 생활습관 변화를 강조하면서 시민적 참여의 중요성을 전달한다. 그러나 그에 비해 책에서 제시되는, 기업의 부정의한 로비라든가, 정부 및 국제 사회 내 정책적 논의를 둘러싼 권력 관계와 그 한계 등은 대중들에게 뚜렷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식에 있어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박리라2021-05-12 19:17
윤서영 학우님의 의견 잘 읽었습니다!
학우님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해주신 환경문제와 관련된 교육 및 인식의 문제에 깊이 공감했기에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덧붙여 보고 싶습니다. 저도 지금까지의 환경 교육이 일상에서 우리가 어떤 실천을 통해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을지에만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실천을 통해 바람직한 습관을 들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기업이나 국가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환경 보호를 한다는 걸 ‘보여주기식’으로 끝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한국에서의 이러한 현상이 오랫동안 이어진 정부의 친기업적 정책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중심으로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육성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어왔기에 그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불공정한 사건이나 유착 관계의 잔재가 관성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혹은, 정권을 차지하려는 활동 속에서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다음 선거 단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다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 모두가 반박할 여지가 없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만 다루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또한, 너무 나아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국제적인 권력 관계를 직접 다루는 건 공교육 단계에서 진행되는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의견을 제시해 봅니다. 국가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교육의 과정에서 드러낼 수 있는지, 드러내서 정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또한 공개함으로써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할 단계의 청소년이 어떤 가치관을 형성할지 등과 같은 여러 전략적 고민의 산물은 아닐지 윤서영 학우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학우님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해주신 환경문제와 관련된 교육 및 인식의 문제에 깊이 공감했기에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덧붙여 보고 싶습니다. 저도 지금까지의 환경 교육이 일상에서 우리가 어떤 실천을 통해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을지에만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실천을 통해 바람직한 습관을 들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기업이나 국가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환경 보호를 한다는 걸 ‘보여주기식’으로 끝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한국에서의 이러한 현상이 오랫동안 이어진 정부의 친기업적 정책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중심으로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육성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어왔기에 그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불공정한 사건이나 유착 관계의 잔재가 관성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혹은, 정권을 차지하려는 활동 속에서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다음 선거 단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다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 모두가 반박할 여지가 없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만 다루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또한, 너무 나아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국제적인 권력 관계를 직접 다루는 건 공교육 단계에서 진행되는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의견을 제시해 봅니다. 국가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교육의 과정에서 드러낼 수 있는지, 드러내서 정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또한 공개함으로써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할 단계의 청소년이 어떤 가치관을 형성할지 등과 같은 여러 전략적 고민의 산물은 아닐지 윤서영 학우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장연주2021-05-13 00:56
저 역시 윤서영 학우님의 마지막 문단에 공감이 되어 댓글 남깁니다. 환경 교육이라 함은 그간 대체로 재활용 잘하기, 전기 아껴쓰기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을 나열하는 식이었던 것 같은데요. 가장 기본이면서 중요한 점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애초에 환경을 왜 보호해야 하는가? 환경을 파괴하면 그 피해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라는 인간중심적 사고가 답일 수도 있고, 환경 그 자체가 지닌 내재적 가치 때문이라는 답일 수도 있고, 인간은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생태계 순환의 일부일 뿐이라는 철학적 사고가 답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답을 선택하든 비인간 자연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업의 로비, 권력관계, 환경 친화적 행동 등에 대한 자신만의 입장과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을 바로 가르치는 것보다는 그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 베이스가 되는 철학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환경 교육의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문지수2021-05-12 14:49
여태 환경 보호 캠페인은 일종의 윤리 교육처럼 이루어진 것 같다. '되도록이면 환경을 보호합시다. 그렇게 하는게 모두에게 좋아요. 하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에서 그치는 사상 운동.학교에서 환경 보호 캠페인을 보고 그다지 간절함이라던가 경각심을 느껴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이제는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죽는다. 인류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환경 보호 캠페인은 윤리 교육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양을 기르기 위한 캠페인이 아닌 범국민적인 운동이 되어야한다.
요즘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애플은 대표적으로 탄소 감축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이다. 환경을 위해 아이폰12를 판매할 때, 충전기를 넣지 않고 판매했다.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는 높은 화질로 동영상을 보는 것을 번거롭게 만들기 위해 우선 저화질로 동영상이 재생되도록 업데이트를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취지는 이해되지만, 왜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느냐고 납득을 하지 못하는 댓글도 종종 보인다.
기업의 환경 보호 활동의 일환으로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겪게 된다면, 그 활동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특히나 불편함을 소비자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일반 시민들이 환경 보호를 선택이 아니라 강제(?)로 실천하게 만드는 위 기업의 사례는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개인적으로 기업이 나서서 환경 보호를 위해 행동을 취하는 상황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인간은 편리함을 누려왔고, 이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환경을 지켜야한다. 그러나 이전에 소비자들에게 환경 감수성을 어필하고, 기업의 활동이 환경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책의 9장에서 타협없이 적극적으로 환경보호를 위해 힘쓰는, 블로카디아의 사례가 제시되었다. 책을 통해 처음 접한 단어였다. '이윤을 생명보다 중요시 여기는' 기업과 사업 진행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이루고 있었다. 강경한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지만, 성공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여기도 안 되고 저기도 안 돼' 구호를 내걸고 프래킹과 송유관 등 화석 연료 회사의 활동을 결사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기업과 정부가 먼저 나서서 급진적인 환경 정책을 펼치지 않는 이상, 결국은 연대와 공통의 환경 감수성을 갖추는 것이 key가 될 것이다.
책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환경 보호는 모두가 나서서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정치적인 요소로 여겨지고, 정계와 기업 사이의 관계는 훨신 끈끈했다. 돈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스스로가 탄소 감축을 위해 굳게 마음먹지 않으면 제제하려 들지 않는다. 원인을 뿌리뽑을 생각은 않고 이미 저질러진 결과를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하는 방법은 인류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책에서 제시한 해결책들, 이른바 '대전환'이 정말 체제를 변화시키는 해결책인지 의문이 든다. 무정부적인 국제 사회 속 돈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결책들은 강제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앞서 말했듯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모두가 공통의 환경 감수성을 갖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이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에 나서면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와 같은 책은 인식을 바꾸는 효과적이지만, 나는 사실 주제심화세미나 수업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접할 일도, 읽어보지도 못했을 것 같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결국 체제의 변화를 가져온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요즘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애플은 대표적으로 탄소 감축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이다. 환경을 위해 아이폰12를 판매할 때, 충전기를 넣지 않고 판매했다.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는 높은 화질로 동영상을 보는 것을 번거롭게 만들기 위해 우선 저화질로 동영상이 재생되도록 업데이트를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취지는 이해되지만, 왜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느냐고 납득을 하지 못하는 댓글도 종종 보인다.
기업의 환경 보호 활동의 일환으로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겪게 된다면, 그 활동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특히나 불편함을 소비자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일반 시민들이 환경 보호를 선택이 아니라 강제(?)로 실천하게 만드는 위 기업의 사례는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개인적으로 기업이 나서서 환경 보호를 위해 행동을 취하는 상황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인간은 편리함을 누려왔고, 이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환경을 지켜야한다. 그러나 이전에 소비자들에게 환경 감수성을 어필하고, 기업의 활동이 환경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책의 9장에서 타협없이 적극적으로 환경보호를 위해 힘쓰는, 블로카디아의 사례가 제시되었다. 책을 통해 처음 접한 단어였다. '이윤을 생명보다 중요시 여기는' 기업과 사업 진행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이루고 있었다. 강경한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지만, 성공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여기도 안 되고 저기도 안 돼' 구호를 내걸고 프래킹과 송유관 등 화석 연료 회사의 활동을 결사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기업과 정부가 먼저 나서서 급진적인 환경 정책을 펼치지 않는 이상, 결국은 연대와 공통의 환경 감수성을 갖추는 것이 key가 될 것이다.
책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환경 보호는 모두가 나서서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정치적인 요소로 여겨지고, 정계와 기업 사이의 관계는 훨신 끈끈했다. 돈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스스로가 탄소 감축을 위해 굳게 마음먹지 않으면 제제하려 들지 않는다. 원인을 뿌리뽑을 생각은 않고 이미 저질러진 결과를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하는 방법은 인류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책에서 제시한 해결책들, 이른바 '대전환'이 정말 체제를 변화시키는 해결책인지 의문이 든다. 무정부적인 국제 사회 속 돈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결책들은 강제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앞서 말했듯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모두가 공통의 환경 감수성을 갖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이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에 나서면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와 같은 책은 인식을 바꾸는 효과적이지만, 나는 사실 주제심화세미나 수업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접할 일도, 읽어보지도 못했을 것 같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결국 체제의 변화를 가져온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박혜송2021-05-13 00:02
안녕하세요, 지수님! 공통의 환경 감수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에 공감이 되어 댓글 남깁니다. 특히, 저는 기후변화에 대한 교육이 윤리와 교양의 차원이 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가 환경오염 등의 다른 이슈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식을 심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다룬 책들을 접하면서, '미래세대'가 아닌, 수십년내에 벌어질 자신의 일이 될지도 모르는 기후변화의 현주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일상적인 경각심이 매우 낮은 수준이며, 그저 환경이슈들 중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왔습니다. 최근 들어서, '기후위기'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것도, 기후변화라는 용어가 상황의 심각성을 적절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업의 노력과 국가의 정책들이 대중에게 납득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공통의 감수성을 갖추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 각국 정부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다루는 체계적인 교육을 법적 필수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관심과 인식이 제고되고, 정부와 기업의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노력이 이에 따라 병행된다면, 나오미 클라인이 책에서 지적한 정경유착의 문제를 극복하고, 보다 현실적인 접근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임채미2021-05-13 14:04
지수님이 제시해 주신 환경 보호의 당위성 문제는 환경 보호가 인간의 순수한 부채의식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환경 파괴로 인한 피해가 인간에게 닥쳐오자 그것에 대한 우려로, 즉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것인가로 논의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환경 보호는 전지구적 문제이기에, 환경 보호로 인한 불편을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것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환경 보호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esg경영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텐데요, 저는 그것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것이 환경보호를 해결하기에는 현재 전지구적 개발로 인한 환경 문제의 규모가 매우 크고 모두가 계속해서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이상, 손해를 감수해가며 본질적인 대전환에 동참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 항상 닿게 되는 결론이지만, 인식을 전환하지 않고서는 경제와 환경의 공존을 추구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오늘 다룰 그린 뉴딜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원재희2021-05-12 15:36
지금껏 '일거양득', '일석이조'는 모든 분야에 통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주술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왕 환경 보호하는 거 경제 발전도 같이 이루어지면 그게 바로 환경에게 최고의 선택지일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사실 그마저도 경제 발전의 입장에서는 조금 양보한 선택지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 왔다. 물론 어디에서든 어떤 일이든 그것의 뒤에는 우리가 알기 힘든, 또는 외면하려는 그림자의 측면이 있겠지만, 이번에 나오미 클라인의 절실한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된 자본주의와 환경 보호의 관계는 내가 여태껏 생각하지도 않았고 하려고 노력해보지도 않았던 충격적인 그림자였다. 동시에 나오미 클라인의 입장에서, 한국이 추진 중인 그린 뉴딜 사업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 사업일지, 겉만 번지르르한 단어 봉합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번 강연을 통해 그린 뉴딜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고, 그것이 작가의 입장에서 실현 가능한 정책인지 가늠해보는 기회가 되길 고대한다.
이 책에서, 그리고 이번 팀 발제 및 프로젝트에 대한 준비로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을 해보면서 가장 막막하고 답답했던 부분은 ‘풀뿌리 환경 민주주의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이었다. 작가가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원주민&비원주민의 연합, 블로카디아 운동 및 여러 대중운동은 사회과학의 분석의 영역에 속한다. 즉, 자연과학의 대상처럼 항상 예측 가능하고 시기와 규모를 계산해내어 계획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불가능하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여느 광장 한 가운데에서 플래시몹 활동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성공할지 아니면 단순히 소규모의 장난으로 끝날지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행동에 임하고는 한다. 작가는 우리의 환경 보호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도 중심적인 해결책으로서 풀뿌리 운동의 모방을 꼽는다. 그런데 환경 오염 문제는 국제적이고, 지속적이며, 대규모에 복합적인 가치가 섞인, 한마디로 시급한 골칫덩어리와도 같으므로, 결코 우연적이며 막연한 가능성에 기대는 민주주의에만 기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그러한 문제의 원인이자 더 큰 문제는, ‘어떤 유인으로 사람들을 응집시키어 행동하도록 만들 것인가’인 것 같다. 아이디어 리스팅 차원에서 특히 환경 보호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려 노력했을 때에는, 부족한 유인으로 인한 지속 가능성의 불확실성에 가로막히어 번번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폐기처분하곤 했다.
이러한 ‘분명히 옳지만 마땅한 방법이 부족한’ 환경 보호 방안을 어떻게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전망을 품은 대책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겠다. 다른 학우분들은 각자 나름대로 어떠한 돌파구를 생각해보고 계실지 궁금하다.
이 책에서, 그리고 이번 팀 발제 및 프로젝트에 대한 준비로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을 해보면서 가장 막막하고 답답했던 부분은 ‘풀뿌리 환경 민주주의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이었다. 작가가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원주민&비원주민의 연합, 블로카디아 운동 및 여러 대중운동은 사회과학의 분석의 영역에 속한다. 즉, 자연과학의 대상처럼 항상 예측 가능하고 시기와 규모를 계산해내어 계획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불가능하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여느 광장 한 가운데에서 플래시몹 활동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성공할지 아니면 단순히 소규모의 장난으로 끝날지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행동에 임하고는 한다. 작가는 우리의 환경 보호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도 중심적인 해결책으로서 풀뿌리 운동의 모방을 꼽는다. 그런데 환경 오염 문제는 국제적이고, 지속적이며, 대규모에 복합적인 가치가 섞인, 한마디로 시급한 골칫덩어리와도 같으므로, 결코 우연적이며 막연한 가능성에 기대는 민주주의에만 기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그러한 문제의 원인이자 더 큰 문제는, ‘어떤 유인으로 사람들을 응집시키어 행동하도록 만들 것인가’인 것 같다. 아이디어 리스팅 차원에서 특히 환경 보호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려 노력했을 때에는, 부족한 유인으로 인한 지속 가능성의 불확실성에 가로막히어 번번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폐기처분하곤 했다.
이러한 ‘분명히 옳지만 마땅한 방법이 부족한’ 환경 보호 방안을 어떻게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전망을 품은 대책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겠다. 다른 학우분들은 각자 나름대로 어떠한 돌파구를 생각해보고 계실지 궁금하다.
김재민2021-05-12 16:01
<기후재난 속 자본주의를 외치는 이들에 대한 경고>
책에서 나오는 나오미클라인의 문제의식은 상당히 섬세하다. 지난 반세기동안 빠르게 가속화된 환경파괴에 대하여, 여지껏 미온적인 논의의 흐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온건할 수 있었던” 정책과제를 수행하지 않은 이들을 비판한다.
1. 빠르게 진행되는 세계화와 무역 자본주의 속에서의 탄소문제 해결을 위해 “탄소과세”와 같은 탄소무역장벽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현 인류사의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차지하는 자유주의라는 직관에 명백하게 반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오미의 지적은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사회민주주의의 문제점과 같이 중도 노선에 한계가 명백함을 지적하는 것은 유의미해보인다.
특히 한 번 논의하고 싶은 것은, 나오미 클라인 역시 인지하듯 일련의 탄소중립으로서의 시대적 이행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사다리 차기’이자, 자국의 친환경산업 이권을 선취하려는 행태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친환경 기술과 논의를 이어온 유럽, 이 외에도 친환경 투자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의 탄소중립 프로젝트는, 여지껏 환경피해를 받은 약소국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해보인다. 탄소와 지구온난화 문제에 직면할 때, 우리는 자주 historical responsibility, 즉 역사적 책임의식을 인용한다. 지금까지의 탄소 문제와 기후변화에 책임있는 주체국이 주도하는 탄소중립이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세계기후문제대응이 또다른 경제적 격차, 경제적 공정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방안이 잘 마련되어야 하는 것 같다.
2. 또한, 환경부담에 책임을지지 않는 “오염자부담원칙”을 국가 뿐 아니라 기업에게까지 강요하는 지점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국지적인 오염 문제야 국가와 기업 간 조세나 단속 정책 등으로 해결 가능하며, 특히 국가에 상당한 주의의무(due dilligence)를 부과함으로써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환경오염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예컨대 월경성(越境性) 환경피해인 대기오염이나 탄소 배출에 관하여 문제 행위와 결과 사이의 명백한 인과과 증명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특정 피해행위에 대해 책임 있는 오염주체를 특정하기도 어렵다. 지구온난화로 자국 영토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상황에서, 어느 국가나 기업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인가 불분명하다.(물론, 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현 국제법 쟁점상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상기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려봤을 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Legal Framework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보인다. 대안으로서 ‘무과실책임주의’ 라던가, 사인에게도 대세적 의무(obligation erga omnes)를 적용하여 환경 보호 및 피해방지에 대한 강력한 규범적 의무를 부과하면서 동시에 심각한 권리 침해나 남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고민해보고 싶다.
3. 특정 국가의 환경규제정책이나 친환경산업중흥도 중요하다. 허나 나오미 클라인은 미시적인 사람들 사이에서의 연대와 실천을 바탕으로 대중으로부터의 변화를 도모한다는 것에 보다 큰 의의를 둔다. 그러나 결국 대중의 실천이 사회적 어젠다를 넘어 세계적 어젠다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세계시민주의’, ‘세계시민의식’ 등이 요구될 것 같다. 기후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한 방법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한편, 유종일 원장님은 과거부터 줄곧 휴먼 뉴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을 포함하는 ‘전환적 뉴딜’을 제언하였다. 특히 팬데믹19 이후 국가의 공공성과 안정성, 사회안정망 등의 가치가 큰 의미를 얻고 있는데, 이는 나오미 클라인이 제3장에서 에너지 환경 영역을 공공영역으로 재포섭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필자 역시 이런 흐름에 동조하는 바이다. 허나 국가가 상당 부분 환경 부분의 성과를 주도하는 한국형 뉴딜의 한계가 우려되는만큼, 민관이 수평적 협력관계에서 진행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구분하기 위한 적절한 기준점 마련이 필ㅇ해보인다.
책에서 나오는 나오미클라인의 문제의식은 상당히 섬세하다. 지난 반세기동안 빠르게 가속화된 환경파괴에 대하여, 여지껏 미온적인 논의의 흐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온건할 수 있었던” 정책과제를 수행하지 않은 이들을 비판한다.
1. 빠르게 진행되는 세계화와 무역 자본주의 속에서의 탄소문제 해결을 위해 “탄소과세”와 같은 탄소무역장벽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현 인류사의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차지하는 자유주의라는 직관에 명백하게 반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오미의 지적은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사회민주주의의 문제점과 같이 중도 노선에 한계가 명백함을 지적하는 것은 유의미해보인다.
특히 한 번 논의하고 싶은 것은, 나오미 클라인 역시 인지하듯 일련의 탄소중립으로서의 시대적 이행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사다리 차기’이자, 자국의 친환경산업 이권을 선취하려는 행태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친환경 기술과 논의를 이어온 유럽, 이 외에도 친환경 투자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의 탄소중립 프로젝트는, 여지껏 환경피해를 받은 약소국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해보인다. 탄소와 지구온난화 문제에 직면할 때, 우리는 자주 historical responsibility, 즉 역사적 책임의식을 인용한다. 지금까지의 탄소 문제와 기후변화에 책임있는 주체국이 주도하는 탄소중립이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세계기후문제대응이 또다른 경제적 격차, 경제적 공정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방안이 잘 마련되어야 하는 것 같다.
2. 또한, 환경부담에 책임을지지 않는 “오염자부담원칙”을 국가 뿐 아니라 기업에게까지 강요하는 지점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국지적인 오염 문제야 국가와 기업 간 조세나 단속 정책 등으로 해결 가능하며, 특히 국가에 상당한 주의의무(due dilligence)를 부과함으로써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환경오염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예컨대 월경성(越境性) 환경피해인 대기오염이나 탄소 배출에 관하여 문제 행위와 결과 사이의 명백한 인과과 증명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특정 피해행위에 대해 책임 있는 오염주체를 특정하기도 어렵다. 지구온난화로 자국 영토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상황에서, 어느 국가나 기업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인가 불분명하다.(물론, 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현 국제법 쟁점상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상기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려봤을 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Legal Framework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보인다. 대안으로서 ‘무과실책임주의’ 라던가, 사인에게도 대세적 의무(obligation erga omnes)를 적용하여 환경 보호 및 피해방지에 대한 강력한 규범적 의무를 부과하면서 동시에 심각한 권리 침해나 남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고민해보고 싶다.
3. 특정 국가의 환경규제정책이나 친환경산업중흥도 중요하다. 허나 나오미 클라인은 미시적인 사람들 사이에서의 연대와 실천을 바탕으로 대중으로부터의 변화를 도모한다는 것에 보다 큰 의의를 둔다. 그러나 결국 대중의 실천이 사회적 어젠다를 넘어 세계적 어젠다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세계시민주의’, ‘세계시민의식’ 등이 요구될 것 같다. 기후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한 방법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한편, 유종일 원장님은 과거부터 줄곧 휴먼 뉴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을 포함하는 ‘전환적 뉴딜’을 제언하였다. 특히 팬데믹19 이후 국가의 공공성과 안정성, 사회안정망 등의 가치가 큰 의미를 얻고 있는데, 이는 나오미 클라인이 제3장에서 에너지 환경 영역을 공공영역으로 재포섭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필자 역시 이런 흐름에 동조하는 바이다. 허나 국가가 상당 부분 환경 부분의 성과를 주도하는 한국형 뉴딜의 한계가 우려되는만큼, 민관이 수평적 협력관계에서 진행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구분하기 위한 적절한 기준점 마련이 필ㅇ해보인다.
김하연2021-05-12 16:50
요약 :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주의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공공시스템 확대를 통해서 기후 위기를 오히려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기회로 이용하자고 말한다.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변화 없이 개개인의 일상생활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체제 하 정치인, 기업인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비열한 정당화와 외면, 방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블로카디아 운동과 같은 저항운동이 필요하며, 이는 단순 환경운동을 넘어 공동체 생존을 위한 민주주의까지 이어질 것이다. 결국 인류의 강력한 연대와 투쟁을 통해 획기적인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감 : 지금껏 눈 앞에 닥친 현실은 ‘자본주의’였다. 끊임없이 경제 성장을 추구하며 기후 위기는 그동안 뒷전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기후 위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문제에 그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이제 기후 위기도 눈 앞에 닥친 현실,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선진국과 기득권층의 기후 대응의 실태(철저하게 경제적이고 정치적으로 기후 변화에 접근했던)를 알게 되었고, 저자가 말하는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에 적극 동의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절감하고 위기의식을 느꼈을 때, 투쟁을 통해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은 저자는 개개인의 생활습관 변화와 일상 속 작은 실천을 다소 경시했다는 점이다. 저자가 말하는 연대는 내 주위 사람들의 소소한 행동 변화 속에서 의식 변화가 이루어지고 점점 더 동참하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제로웨이스트를 적극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친구,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남은 쓰레기를 꼼꼼하게 깨끗이 씻고 분리수거를 하는 엄마를 보며 의식 변화, 나아가 행동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경영철학과 윤리> 수업을 들으며 CSR, CSV, ESG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수없이 배운다. 현재 Z세대를 비롯한 밀레니얼의 소비행태를 보면, 기업의 철학이 뚜렷하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기업의 제품을 돈을 더 내고서라도 사려는 경우가 많다. (‘돈쭐을 낸다’라는 표현도 있다. ESG는 naive한 뜬구름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따라서 기업도 환경이나 사회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면서도 전체 비즈니스 효용 가치도 높인다면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 소비 형태에 발맞출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협력 아젠다를 잘 설정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며 시장에서 신뢰 지수를 쌓고 친환경 중심으로 건강한 기업문화를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작은 물결들이 쌓였을 때, 저자가 말하는 ‘연대’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감 : 지금껏 눈 앞에 닥친 현실은 ‘자본주의’였다. 끊임없이 경제 성장을 추구하며 기후 위기는 그동안 뒷전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기후 위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문제에 그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이제 기후 위기도 눈 앞에 닥친 현실,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선진국과 기득권층의 기후 대응의 실태(철저하게 경제적이고 정치적으로 기후 변화에 접근했던)를 알게 되었고, 저자가 말하는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에 적극 동의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절감하고 위기의식을 느꼈을 때, 투쟁을 통해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은 저자는 개개인의 생활습관 변화와 일상 속 작은 실천을 다소 경시했다는 점이다. 저자가 말하는 연대는 내 주위 사람들의 소소한 행동 변화 속에서 의식 변화가 이루어지고 점점 더 동참하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제로웨이스트를 적극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친구,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남은 쓰레기를 꼼꼼하게 깨끗이 씻고 분리수거를 하는 엄마를 보며 의식 변화, 나아가 행동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경영철학과 윤리> 수업을 들으며 CSR, CSV, ESG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수없이 배운다. 현재 Z세대를 비롯한 밀레니얼의 소비행태를 보면, 기업의 철학이 뚜렷하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기업의 제품을 돈을 더 내고서라도 사려는 경우가 많다. (‘돈쭐을 낸다’라는 표현도 있다. ESG는 naive한 뜬구름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따라서 기업도 환경이나 사회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면서도 전체 비즈니스 효용 가치도 높인다면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 소비 형태에 발맞출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협력 아젠다를 잘 설정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며 시장에서 신뢰 지수를 쌓고 친환경 중심으로 건강한 기업문화를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작은 물결들이 쌓였을 때, 저자가 말하는 ‘연대’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채수형2021-05-12 23:22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저도 본 책에서 아쉬웠던 점이 자본주의와 기후문제를 연결하며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차원의 작은 실천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정치적으로는 책에서 언급한 시민 불복종(시위)에 참여를 할 수도 있고, 혹은 하연님이 제시하신 대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것들도 기후변화에 작게든 크게든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위의 규모증가,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 동참 등이 바로 '연대'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저도 본 책에서 아쉬웠던 점이 자본주의와 기후문제를 연결하며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차원의 작은 실천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정치적으로는 책에서 언급한 시민 불복종(시위)에 참여를 할 수도 있고, 혹은 하연님이 제시하신 대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것들도 기후변화에 작게든 크게든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위의 규모증가,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 동참 등이 바로 '연대'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경제웅2021-05-12 23:45
하연 님 안녕하세요!
저 역시 이번 학기 〈경영철학과 윤리〉 수강자(였던 것)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재무 지표도 좋다는 내용을 배우면서 흥미로웠습니다. 윤리경영이 기업 성과의 critical failure factor인 만큼 오늘날 ESG가 결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동의해요. 특히 E가 이 acronym의 첫 자리에 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왠지 아쉬웠던 부분을 하연 님이 명확하게 지적해 주셔서 공감했습니다. 클라인은 '저항', '투쟁'과 같은 부류의 어휘나 강경한 어투(번역의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위압적인 분량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을 테지요. 하지만 이렇게 논의가 '거대'해지는 과정에서 '미소'한 것들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듯해요. 이를테면 저는 인간의 육식 문화가 동물권이나 생태계에 어떤 거대한 위협을 제기하는지, ethical veganism이라든가 environmental veganism의 담론을 체계적으로 접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네이버 블로그 이웃을 맺은 친구들이 이따금 소소한 채식 포스팅을 올려, 그런 글과 사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궁금해져서 실제로 non-vegan 친구들을 데리고 이태원의 vegan 식당*에 가서 메뉴 서너 가지를 시도해 본 적도 있어요. 오히려 '反육식 투쟁'을 독려하는 담론이 친구들의 일상적인 채식 모습보다 먼저 저를 덮쳤다면, 저는 머리로만 그런 견해의 존재를 인지할 뿐 새로운 음식을 시도할 마음은 안 들었을 것 같습니다. 심하면 반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만큼 관념이나 생활양식의 변화에 미시적인 상호작용이 가지는 영향력이 크다고 느껴요. 물론 혁명적인 전환을 꾀한다면 구조의 변혁 역시 수반되어야 할 테니, '큰 관망'과 '작은 관찰'을 모두 놓치지 않는 기후 위기 대응을 지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몽크스부처(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28-1). 컬리플라워 스테이크가 먹을 만합니다.
저 역시 이번 학기 〈경영철학과 윤리〉 수강자(였던 것)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재무 지표도 좋다는 내용을 배우면서 흥미로웠습니다. 윤리경영이 기업 성과의 critical failure factor인 만큼 오늘날 ESG가 결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동의해요. 특히 E가 이 acronym의 첫 자리에 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왠지 아쉬웠던 부분을 하연 님이 명확하게 지적해 주셔서 공감했습니다. 클라인은 '저항', '투쟁'과 같은 부류의 어휘나 강경한 어투(번역의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위압적인 분량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을 테지요. 하지만 이렇게 논의가 '거대'해지는 과정에서 '미소'한 것들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듯해요. 이를테면 저는 인간의 육식 문화가 동물권이나 생태계에 어떤 거대한 위협을 제기하는지, ethical veganism이라든가 environmental veganism의 담론을 체계적으로 접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네이버 블로그 이웃을 맺은 친구들이 이따금 소소한 채식 포스팅을 올려, 그런 글과 사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궁금해져서 실제로 non-vegan 친구들을 데리고 이태원의 vegan 식당*에 가서 메뉴 서너 가지를 시도해 본 적도 있어요. 오히려 '反육식 투쟁'을 독려하는 담론이 친구들의 일상적인 채식 모습보다 먼저 저를 덮쳤다면, 저는 머리로만 그런 견해의 존재를 인지할 뿐 새로운 음식을 시도할 마음은 안 들었을 것 같습니다. 심하면 반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만큼 관념이나 생활양식의 변화에 미시적인 상호작용이 가지는 영향력이 크다고 느껴요. 물론 혁명적인 전환을 꾀한다면 구조의 변혁 역시 수반되어야 할 테니, '큰 관망'과 '작은 관찰'을 모두 놓치지 않는 기후 위기 대응을 지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몽크스부처(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28-1). 컬리플라워 스테이크가 먹을 만합니다.
최민정2021-05-12 23:48
적어주신 내용 잘 읽었습니다. 특히, '개인의 생활습관 변화와 일상 속 실천'을 언급해주신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전에 이정규 서울시립과학관 관장님께서 진행하셨던 강의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변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규분포도에서 양끝의 값들 중 약 3% 정도만 바뀌어도 정규분포의 중심점은 바뀐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씀해주신 제로웨이스트, 분리수거, ESG, 윤리적 소비 등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개인이 소수라 할 지라도, 그 소수가 행동하고 의식함으로써 변화가 실제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박서원2021-05-13 00:37
하연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번 학기 경영철학과 윤리를 듣는 입장으로서 하연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되어 글을 남김니다.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다하는 기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서 이것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비자가 이렇게 생각하니 기업도 소비자에 맞출 수 밖에 없어 기업도 이제는 이윤 추구만 생각하지 않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윤리적인 측면으로도 고민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책에서 작가가 말한 자발적인 참여에 해당된다고 느꼈고 이것이 하연님이 언급해주셨듯이 기업까지 영향을 미쳐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번 학기 경영철학과 윤리를 듣는 입장으로서 하연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되어 글을 남김니다.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다하는 기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서 이것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비자가 이렇게 생각하니 기업도 소비자에 맞출 수 밖에 없어 기업도 이제는 이윤 추구만 생각하지 않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윤리적인 측면으로도 고민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책에서 작가가 말한 자발적인 참여에 해당된다고 느꼈고 이것이 하연님이 언급해주셨듯이 기업까지 영향을 미쳐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강다솔2021-05-12 17:22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방대한 분량만큼 전하는 메시지 역시 방대한 영향력(관점에 따라 파괴력이 될 수도 있겠다)을 잠재하고 있다. 그녀의 요지는 기후문제에 대한 투쟁은 곧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경제, 특히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투쟁이라는 점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그녀의 주장이 호소력 있게 다가온 이유를 쉬운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기후위기와 자본주의는 모두 우리가 탐욕에 맞추어 어떤 대상을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시켜 발생한 문제이므로 우리는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이런 이유로 기후위기를 위한 사회 전환은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한 불의한 사회로부터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전환과 필연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다” 이리라 생각한다. 유종일 교수의 표현을 사용해 다시 말하자면 휴먼 뉴딜과 그린 뉴딜이 결합해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와 기후문제의 연결’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기후문제를 단순히 환경, 기술의 문제로 놓고 보아서는 절대로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고, 기후문제가 개인이 경험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도덕적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사람들, 시민들이 행동하여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시된 월간 통상의 글이나, 정부의 “한국판 뉴딜”을 소개하고 있는 사이트(http://www.knewdeal.go.kr/front/view/newDeal03_02.do)를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기후위기와 개인이 체감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연결고리는 거의 제시하지 않고 점이 매우 아쉽다.
한국판 뉴딜 중 그린 뉴딜은 주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과 녹색 기술 연구 등 기술적인 지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도시, 공간, 생활 인프라 녹색전환”이라는 부문이 우리의 생활과 비교적 밀착된 영역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읽어보면 “그래서 이게 우리한테 뭐가 좋은데?”에 대한 대답을 내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저 내 주변의 공기와 물이 좀 더 깨끗해지겠구나 정도를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오미 클라인의 말대로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는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깨끗하지 못한 환경을 안겨주었던 주범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큰 이익을 누리고 있던 기업들이니 그런 기업들로부터의 부를 얻어내어 더 깨끗한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공할게”이다.
월간통상은 글의 주제가 “탄소국경조정세”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한데, 글의 전체적인 주장은 국제적으로 “탄소국경조정세”가 도입될 것이고 이것이 우리나라 국가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되므로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여러 제도와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글에서 주목해볼 만한 것은 국제적으로 탄소국경조정세가 도입되게 된 배경은 “유럽과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준비되었기 때문”(9쪽)이라고 언급한다. 따라서 지금 탄소국경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각국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지금 쥐고 있는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 하에 추진한다고 볼 수 있다. 글에서도 이런 점을 인식해 탄소국경조정제도의 “개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3쪽)를 우려하여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고 언급한다. 물론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목표는 분명 지향해야 하는 목표인 것은 확실하지만 탄소감축을 향한 전환이 또 다른 국제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하고,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 할 듯 하다. 이 문제는 국가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계, 국가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은 연대의식이 필요한 문제라서 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통해 "모든 생명은 자연으로 연결되어 있고 순환해야 한다"는 우리의 본질을 깨닫고, 이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본주의와 기후문제의 연결’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기후문제를 단순히 환경, 기술의 문제로 놓고 보아서는 절대로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고, 기후문제가 개인이 경험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도덕적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사람들, 시민들이 행동하여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시된 월간 통상의 글이나, 정부의 “한국판 뉴딜”을 소개하고 있는 사이트(http://www.knewdeal.go.kr/front/view/newDeal03_02.do)를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기후위기와 개인이 체감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연결고리는 거의 제시하지 않고 점이 매우 아쉽다.
한국판 뉴딜 중 그린 뉴딜은 주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과 녹색 기술 연구 등 기술적인 지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도시, 공간, 생활 인프라 녹색전환”이라는 부문이 우리의 생활과 비교적 밀착된 영역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읽어보면 “그래서 이게 우리한테 뭐가 좋은데?”에 대한 대답을 내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저 내 주변의 공기와 물이 좀 더 깨끗해지겠구나 정도를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오미 클라인의 말대로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는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깨끗하지 못한 환경을 안겨주었던 주범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큰 이익을 누리고 있던 기업들이니 그런 기업들로부터의 부를 얻어내어 더 깨끗한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공할게”이다.
월간통상은 글의 주제가 “탄소국경조정세”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한데, 글의 전체적인 주장은 국제적으로 “탄소국경조정세”가 도입될 것이고 이것이 우리나라 국가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되므로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여러 제도와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글에서 주목해볼 만한 것은 국제적으로 탄소국경조정세가 도입되게 된 배경은 “유럽과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준비되었기 때문”(9쪽)이라고 언급한다. 따라서 지금 탄소국경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각국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지금 쥐고 있는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 하에 추진한다고 볼 수 있다. 글에서도 이런 점을 인식해 탄소국경조정제도의 “개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3쪽)를 우려하여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고 언급한다. 물론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목표는 분명 지향해야 하는 목표인 것은 확실하지만 탄소감축을 향한 전환이 또 다른 국제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하고,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 할 듯 하다. 이 문제는 국가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계, 국가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은 연대의식이 필요한 문제라서 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통해 "모든 생명은 자연으로 연결되어 있고 순환해야 한다"는 우리의 본질을 깨닫고, 이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리라2021-05-12 18:49
기후 변화와 경제 발전은 우리 사회에서 항상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들이다. 공교육을 받으면서부터 기후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기후 문제를 둘러싸고 세계가 어떤 조약을 맺고 어떤 분쟁 상황에 마주했는지에 대해서 매년 접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 발전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는 기후 변화 문제만큼이나 교과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두 주제를 공부한 것과는 별개로 기후 변화와 경제 성장이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두 주제를 엮어 우리가 어떻게 기후 변화를 막고 새로운 세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지 제시하는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지금까지 내가 회의적으로만 바라보았던, 혹은 지극히 이상적이고 진부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내용은 ‘블로카디아’(3부 9장)였다. 저자는 세계 여러 지역, 특히나 가난하고 벽지이며, 주민들이 정치적 권력을 손에 쥐지 못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극단적인 에너지 채취 활동의 폭력성을 보여주면서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사람들이-해당 지역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까지도-서로 연대하여 강력한 전파력을 가지고 이에 맞서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세계 전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에너지 채취 작업이기에 이와 멀리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은 직접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를 대상으로 한 폭력적 에너지 획득은 결국 한 국가적 수준의 담론으로 낮추어 보면 어떨까? 국내적 이슈와 연결해 본다면 파괴를 막기 위한 연대의식을 더 절실히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책에서 소개하는 세계의 불모지, 벽지는 한국의 지방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전소를 세우는 정책의 집행은 해당 지역 환경을 기반으로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행위를 말살해 버린다. 주민들이 제기하는 안전성에 대한 의문은 제대로 답하지 않은 채 수도권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지방에서 에너지 채취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다. (안전하다고 광고하면서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만 발전소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결국, 특권 계층을 위해 벽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국내적 차원이든, 국제적 차원이든 똑같이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평등한 현상과 사건 사이를 잇는 단체를 만들게 된다면 조금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지역과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의사를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단체 혹은 기구 아래로 모인다면 충분히 국가, 다국적 기업에 대응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닐 수 있지 않을지 고민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한 집단적 대응에 대해 오염 배출의 주범인 기업과 같은 주체들은 제재를 받지 않는 모습에 대조적으로 약자들의 행동만을 촉구하는 모습이 한국의 환경 보호 정책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수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플라스틱은 재활용, 어떤 종류는 플라스틱임에도 불구하고 재활용에 넣으면 안 되고, 넣을 때도 어떤 부분은 제거하고 넣어야 한다든지 같은 복잡한 절차는 결국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애초에 국가가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압박을 넣어 환경친화적인 포장재 혹은 재활용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 사회에서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늦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모든 것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은 너무나 희망찬 목소리라서 오히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오미는 과거에도 UN에서 오존 파괴 문제나 핵확산 문제에 대한 합의뿐만 아니라 세계 무역 기구를 설립하는 것과 같이 불가능해 보였던 전 세계적인 변화를 만든 적이 있다는 걸 근거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합의는 미국 패권이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위치에 놓였을 때 가능했던 일 아닌가? 이는 모두 패권국을 중심으로 다른 국가들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때, 세계가 이데올로기로 나뉘어 한 축을 중심으로 뭉쳐야 했을 때 이루어졌던 일들이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 또한, 어떻게 보면 다국적 기업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에 단순히 국가 단위로 생각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 기득권 계층의 질서에 반대하는 새로운 지배 원리를 확립하기 위한 절차는 생각보다 어렵다. 질서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지배 계층은 자신이 지닌 특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신자유주의는 유종일의 「‘포스트 코로나’ 세계, 네 개의 키워드를 주목하라」에 언급된 것처럼 이론적인 시장 만능주의, 작은 정부론과 같은 방향을 추구한다고 볼 수 없다. 금융위기 이후 큰 정부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경우 발전국가모델을 통한 성장 경로를 따라 완전한 신자유주의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를 완전히 마감하고 경제민주화를 이루자는 주장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기꺼이 여겨질 수 있을 것인가? 특히나 과거 이념 갈등을 극심하게 경험했던 한국의 경우 언론이나 보수 정당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프레임을 사용해 새로운 방향 모색을 방해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모든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에 기반하여 설명하기보다는 이런 정치적 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및 국제적 합의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내용은 ‘블로카디아’(3부 9장)였다. 저자는 세계 여러 지역, 특히나 가난하고 벽지이며, 주민들이 정치적 권력을 손에 쥐지 못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극단적인 에너지 채취 활동의 폭력성을 보여주면서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사람들이-해당 지역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까지도-서로 연대하여 강력한 전파력을 가지고 이에 맞서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세계 전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에너지 채취 작업이기에 이와 멀리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은 직접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를 대상으로 한 폭력적 에너지 획득은 결국 한 국가적 수준의 담론으로 낮추어 보면 어떨까? 국내적 이슈와 연결해 본다면 파괴를 막기 위한 연대의식을 더 절실히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책에서 소개하는 세계의 불모지, 벽지는 한국의 지방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전소를 세우는 정책의 집행은 해당 지역 환경을 기반으로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행위를 말살해 버린다. 주민들이 제기하는 안전성에 대한 의문은 제대로 답하지 않은 채 수도권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지방에서 에너지 채취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다. (안전하다고 광고하면서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만 발전소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결국, 특권 계층을 위해 벽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국내적 차원이든, 국제적 차원이든 똑같이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평등한 현상과 사건 사이를 잇는 단체를 만들게 된다면 조금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지역과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의사를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단체 혹은 기구 아래로 모인다면 충분히 국가, 다국적 기업에 대응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닐 수 있지 않을지 고민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한 집단적 대응에 대해 오염 배출의 주범인 기업과 같은 주체들은 제재를 받지 않는 모습에 대조적으로 약자들의 행동만을 촉구하는 모습이 한국의 환경 보호 정책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수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플라스틱은 재활용, 어떤 종류는 플라스틱임에도 불구하고 재활용에 넣으면 안 되고, 넣을 때도 어떤 부분은 제거하고 넣어야 한다든지 같은 복잡한 절차는 결국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애초에 국가가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압박을 넣어 환경친화적인 포장재 혹은 재활용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 사회에서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늦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모든 것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은 너무나 희망찬 목소리라서 오히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오미는 과거에도 UN에서 오존 파괴 문제나 핵확산 문제에 대한 합의뿐만 아니라 세계 무역 기구를 설립하는 것과 같이 불가능해 보였던 전 세계적인 변화를 만든 적이 있다는 걸 근거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합의는 미국 패권이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위치에 놓였을 때 가능했던 일 아닌가? 이는 모두 패권국을 중심으로 다른 국가들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때, 세계가 이데올로기로 나뉘어 한 축을 중심으로 뭉쳐야 했을 때 이루어졌던 일들이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 또한, 어떻게 보면 다국적 기업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에 단순히 국가 단위로 생각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 기득권 계층의 질서에 반대하는 새로운 지배 원리를 확립하기 위한 절차는 생각보다 어렵다. 질서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지배 계층은 자신이 지닌 특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신자유주의는 유종일의 「‘포스트 코로나’ 세계, 네 개의 키워드를 주목하라」에 언급된 것처럼 이론적인 시장 만능주의, 작은 정부론과 같은 방향을 추구한다고 볼 수 없다. 금융위기 이후 큰 정부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경우 발전국가모델을 통한 성장 경로를 따라 완전한 신자유주의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를 완전히 마감하고 경제민주화를 이루자는 주장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기꺼이 여겨질 수 있을 것인가? 특히나 과거 이념 갈등을 극심하게 경험했던 한국의 경우 언론이나 보수 정당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프레임을 사용해 새로운 방향 모색을 방해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모든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에 기반하여 설명하기보다는 이런 정치적 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및 국제적 합의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빈2021-05-12 20:44
한 때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이 있었을 때 <탄소전쟁>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해당 책은 기후 변화를 경제학적인 관점으로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대안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전까지의 나는 ‘경제 성장’과 ‘환경 보호’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하였으며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다 보면 기업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기후변화 문제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특징이 있기에 당장의 경제적 비용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을 미루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다국적 기업 듀폰(오존층 파괴 물질인 프레온 가스를 만든 기업인데, 프레온 가스의 위험성이 알려지자 재빠르게 생산을 중단하고 가장 먼저 대체물질을 개발하여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였다)의 사례를 보면서 기업의 환경 보호에는 경제적인 동기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기오염 물질은 스톡과 플로우로 구분할 수 있는데, 플로우 오염 물질은 배출된 지역에서만 머물지만 스톡은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은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탄소전쟁>에서는 현재의 탄소배출권 거래제 시행에서 요구되는 것은 ‘넛지 정신’을 잘 살리는 것이라 말한다. 경제 주체들의 자율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도록 제대로 된 배출권 거래제 플랫폼을 설계해야 된다는 것이다.
<월간통상>에서 언급되는 ‘탄소국경세’도 경제 주체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넛지라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를 읽으며 공산품 제조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의 책임을 ‘소비’의 주체인 선진국이 아니라 ‘생산’ 당사자인 개도국 등이 부담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월간통상>에서 언급되는 ‘탄소국경세’도 경제 주체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넛지라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를 읽으며 공산품 제조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의 책임을 ‘소비’의 주체인 선진국이 아니라 ‘생산’ 당사자인 개도국 등이 부담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조단2021-05-12 23:25
이정빈 학우님이 써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의 생각이 너무 급진적인것은 아닌지, 과연 경제를 다 포기하면서 환경을 챙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했었습니다. 정빈님의 댓글을 읽어보니까 경제는 가역적이지만 기후변화 문제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이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위해 일정 부분 경제가 입을 피해를 감수할 때 누가 가장 힘들어할지 생각해봐야합니다. 환경파괴의 주범이라고 지적된 대기업과 기업의 회장님들은 손실된 피해를 감수해도 평생 잘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장이 감축되고 그럴 때 생기는 실업자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아나가야할 것을 고민해야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어려운 고민인만큼 시민 사회에서 이렇게 끊임 없는 토론과 토의가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의 생각이 너무 급진적인것은 아닌지, 과연 경제를 다 포기하면서 환경을 챙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했었습니다. 정빈님의 댓글을 읽어보니까 경제는 가역적이지만 기후변화 문제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이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위해 일정 부분 경제가 입을 피해를 감수할 때 누가 가장 힘들어할지 생각해봐야합니다. 환경파괴의 주범이라고 지적된 대기업과 기업의 회장님들은 손실된 피해를 감수해도 평생 잘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장이 감축되고 그럴 때 생기는 실업자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아나가야할 것을 고민해야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어려운 고민인만큼 시민 사회에서 이렇게 끊임 없는 토론과 토의가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혜송2021-05-12 20:47
기후변화가 환경 문제 카테고리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 밖의 환경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는 환경이 아닌 인류를 포함한 생태계 전체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며, 예상되는 심각성과 급박함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무수히 많은 연구 결과를 접하다 보면, 현대사회의 개인들이 탄소배출에 대한 일상적 경각심과 우려 없이 살아가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실재적 위기가 닥쳐 우려와 경각심을 느끼게 되었다면, 아마 돌이킬 수 없는 ‘찜통 지구’(Hothouse Earth)의 티핑 포인트에 도달한 후일 것이다. 찜통 지구는 지구가 스스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증폭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기술혁신과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대중의 관심이다. 우리는 수십 년 내에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일을 마치 우리 자녀 세대, 그저 미래의 일처럼 치부하며, 환경문제 중 하나쯤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왔던 나로서는, 나오미 클라인의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클라인이 제시한 경제적 대전환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1. 클라인이 제시한 경제적 대전환이 유일한 해법인가?
클라인은 대전환이 일어나, 금융 거래세, 10억 달러 자산가에 대한 1% 과세, 군사비 감축 등을 통해 대응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에너지에 대한 통제력을 지역사회로 분산시키고, 채취주의 경제모델을 보전책임주의로 바꿔야 함을 주장한다. 대전환을 통해, 부와 권력은 다수의 대중에게로 재분배되며, ‘생태시티즌십’이라는 새로운 시민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대전환은 오히려 클라인이 저서 전반에 걸쳐 제시한 정경유착의 부패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클라인의 말대로, 80년대 이후부터 강화되어온 이념적 순응에 대한 압박은 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제도 개혁조차도 적지 않은 저항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온 채취주의 이데올로기가 쉽게 힘을 잃고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술혁신으로 자연의 고삐를 다시 잡을 수 있다는 현대인들의 강한 믿음도 채취주의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사태가 급박한 만큼, 지배적 이데올로기들을 단번에 깨부수는 아래로부터의 중대한 전환을 기다리기보다는, 대중을 계몽하고, 각국 정부들의 위로부터의 조치를 선거 제도를 통해 압박해 보완하는 방향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에 제시된 것처럼 ‘전환적 뉴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전 세계적인 탄소 국경조정세가 탄소를 더 배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그럼에도, 인간 중심적 경제(휴먼 뉴딜)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는 나무를 나무가 아니라, ‘탄소 흡수원’으로 취급하는 경제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풍조에서는 부와 자본이 가장 중요하며, 의사결정에 있어 ‘유일한’ 고려 대상이기 때문에, 나무는 탄소 흡수원, 인간은 노동력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의 공모에 반대하고, 시장거래를 어떤 식으로든 방해한다면, 언제든 사람들을 노동력조차도 못 되는 짐(overburden)으로 취급하는 경제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적자원을 통해 성장하고, 생명, 사람이 먼저인 휴먼 뉴딜로의 이행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일 것이다.
3. 코로나19로 인한 역세계화 흐름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칠 것인가?
미국 외교 전문지 Foreign Affairs에 따르면, 각국의 자급자족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지난 4년간의 추세라고 한다. 이는 나오미 클라인의 대전환, 특히 다국적 기업의 산업화된 농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급자족의 전통 농업기법에 의존하는 변화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처럼, 코로나19라는 큰 세계적 변화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고, 앞으로 어떤 전환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조천호,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구라고 다를까」, 『경향신문』, 2018.08.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8162053005」, 2021.05.12.
** 박순열, 「생태시티즌십 (ecological citizenship) 논의의 쟁점과 한국적 함의」, 『환경사회학연구』 ECO 14.1, 2010, 167-194.
기술혁신과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대중의 관심이다. 우리는 수십 년 내에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일을 마치 우리 자녀 세대, 그저 미래의 일처럼 치부하며, 환경문제 중 하나쯤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왔던 나로서는, 나오미 클라인의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클라인이 제시한 경제적 대전환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1. 클라인이 제시한 경제적 대전환이 유일한 해법인가?
클라인은 대전환이 일어나, 금융 거래세, 10억 달러 자산가에 대한 1% 과세, 군사비 감축 등을 통해 대응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에너지에 대한 통제력을 지역사회로 분산시키고, 채취주의 경제모델을 보전책임주의로 바꿔야 함을 주장한다. 대전환을 통해, 부와 권력은 다수의 대중에게로 재분배되며, ‘생태시티즌십’이라는 새로운 시민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대전환은 오히려 클라인이 저서 전반에 걸쳐 제시한 정경유착의 부패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클라인의 말대로, 80년대 이후부터 강화되어온 이념적 순응에 대한 압박은 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제도 개혁조차도 적지 않은 저항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온 채취주의 이데올로기가 쉽게 힘을 잃고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술혁신으로 자연의 고삐를 다시 잡을 수 있다는 현대인들의 강한 믿음도 채취주의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사태가 급박한 만큼, 지배적 이데올로기들을 단번에 깨부수는 아래로부터의 중대한 전환을 기다리기보다는, 대중을 계몽하고, 각국 정부들의 위로부터의 조치를 선거 제도를 통해 압박해 보완하는 방향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에 제시된 것처럼 ‘전환적 뉴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전 세계적인 탄소 국경조정세가 탄소를 더 배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그럼에도, 인간 중심적 경제(휴먼 뉴딜)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는 나무를 나무가 아니라, ‘탄소 흡수원’으로 취급하는 경제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풍조에서는 부와 자본이 가장 중요하며, 의사결정에 있어 ‘유일한’ 고려 대상이기 때문에, 나무는 탄소 흡수원, 인간은 노동력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의 공모에 반대하고, 시장거래를 어떤 식으로든 방해한다면, 언제든 사람들을 노동력조차도 못 되는 짐(overburden)으로 취급하는 경제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적자원을 통해 성장하고, 생명, 사람이 먼저인 휴먼 뉴딜로의 이행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일 것이다.
3. 코로나19로 인한 역세계화 흐름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칠 것인가?
미국 외교 전문지 Foreign Affairs에 따르면, 각국의 자급자족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지난 4년간의 추세라고 한다. 이는 나오미 클라인의 대전환, 특히 다국적 기업의 산업화된 농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급자족의 전통 농업기법에 의존하는 변화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처럼, 코로나19라는 큰 세계적 변화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고, 앞으로 어떤 전환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조천호,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구라고 다를까」, 『경향신문』, 2018.08.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8162053005」, 2021.05.12.
** 박순열, 「생태시티즌십 (ecological citizenship) 논의의 쟁점과 한국적 함의」, 『환경사회학연구』 ECO 14.1, 2010, 167-194.
이엘리엇2021-05-12 21:16
1.
어릴 때부터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왔고, 이를 당연하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얼마전,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친구와 토론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이 환경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호받아야 한다기보다는, 미래에 인류에게 악영향이 올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해야한다는 의견에 친숙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도 지구가 인류에게 행할 앙갚음에 대해 경고하는 걸 보면 마찬가지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이타적 마음의 근거는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막말로 자식을 낳지 않을 것이라면, 미래 인류와 나의 유대관계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는 현대를 함께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유대감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현시대의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그들이 그러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세상의 구조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장 눈앞에서 그들의 힘겨운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는 감각적인 유인도 있겠죠. 그러나 미래 인류에 관해서는, 그들이 어떤 사회적 구조에서 살아가는지, 그들에게 '좋음'이란 가치는 무엇인지, 고통과 어려움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알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견을 토론하던 친구에게 제시하였더니, 친구 또한 미래의 인류보다 당장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 현시대의 북극곰으로부터 더 큰 환경보호 행위의 유인을 얻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유대감 말고 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미래 세대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2.
이 책은 2014년에 발간되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인 코로나 19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녹색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코로나 19가 그동안의 기후 변화 및 환경 보호에 대한 담론을 위축시키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됩니다.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되면, 우리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들(대개 정의, 환경보호 등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담론)을 경시하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19 백신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미국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부스터 샷(3차 접종)'의 필요성을 검토하며 비판을 받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전세계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의 재무제표가 엉망이 되었으며, 가계 대출 또한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앞길 챙기는 것만으로도 급급해 보입니다. 필자가 수강 중인 경영대 강의에서는 교수님께서 '우리나라의 높은 법인세율이 특히나 어려운 요즘같은 시기에 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의견을 펼치기도 하였으며, 고소득자 소득세율을 인상한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경제 뉴스 댓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경보호를 위해 각종 세율을 인상하고 친산업적인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현재 ESG 등 환경 보호 담론이 뜨거워지는 것과 별개로, 코로나 19가 녹색 전환으로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으로서 더 크게 작용하지는 않을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진규, 연봉 1.5억 찍는 순간 세금폭탄 현실로…손에 쥐는 건 1.1억원, 한국경제, 2021.05.05.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541674
어릴 때부터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왔고, 이를 당연하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얼마전,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친구와 토론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이 환경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호받아야 한다기보다는, 미래에 인류에게 악영향이 올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해야한다는 의견에 친숙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도 지구가 인류에게 행할 앙갚음에 대해 경고하는 걸 보면 마찬가지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이타적 마음의 근거는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막말로 자식을 낳지 않을 것이라면, 미래 인류와 나의 유대관계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는 현대를 함께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유대감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현시대의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그들이 그러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세상의 구조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장 눈앞에서 그들의 힘겨운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는 감각적인 유인도 있겠죠. 그러나 미래 인류에 관해서는, 그들이 어떤 사회적 구조에서 살아가는지, 그들에게 '좋음'이란 가치는 무엇인지, 고통과 어려움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알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견을 토론하던 친구에게 제시하였더니, 친구 또한 미래의 인류보다 당장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 현시대의 북극곰으로부터 더 큰 환경보호 행위의 유인을 얻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유대감 말고 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미래 세대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2.
이 책은 2014년에 발간되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인 코로나 19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녹색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코로나 19가 그동안의 기후 변화 및 환경 보호에 대한 담론을 위축시키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됩니다.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되면, 우리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들(대개 정의, 환경보호 등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담론)을 경시하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19 백신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미국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부스터 샷(3차 접종)'의 필요성을 검토하며 비판을 받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전세계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의 재무제표가 엉망이 되었으며, 가계 대출 또한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앞길 챙기는 것만으로도 급급해 보입니다. 필자가 수강 중인 경영대 강의에서는 교수님께서 '우리나라의 높은 법인세율이 특히나 어려운 요즘같은 시기에 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의견을 펼치기도 하였으며, 고소득자 소득세율을 인상한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경제 뉴스 댓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경보호를 위해 각종 세율을 인상하고 친산업적인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현재 ESG 등 환경 보호 담론이 뜨거워지는 것과 별개로, 코로나 19가 녹색 전환으로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으로서 더 크게 작용하지는 않을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진규, 연봉 1.5억 찍는 순간 세금폭탄 현실로…손에 쥐는 건 1.1억원, 한국경제, 2021.05.05.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541674
김재민2021-05-12 21:30
엘리엇님 안녕하세요. 좋은 의견 잘 읽었습니다. 다만, 저는 오히려 코로나19가 환경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전 국민이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물동량과 생산량 등이 대폭 줄어들며, 실물 경제에서의 엄청난 퇴행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말 빠른 속도로 지구 환경이 정상화될 조짐이 보이고, 인류의 활동이 줄어듦으로써 자연이 회복되는 흐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2018, 2019년도만 하더라도, 전 서울에서나 인천에서나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정말 하늘이 눈에 띄게 청정해지기도 했고, 이 외에도 다양한 변화들이 사람들에게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고 합니다.
( cf1 : 환경오염은 인간의 경제활동 때문에 일어난다. 코로나19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생산 활동이 줄어들면서 한국의 대기질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2019년만 해도 3월 한 달 내내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해 정부가 연일 비상대책을 발표했다. 2020년에는 2019년에 비해 초미세먼지가 27%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중국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가 줄어들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교통량과 공장 가동률이 줄어들면서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cf2 : 코로나19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작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7%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
뿐 아니라, 코로나19는 오히려 "뉴 노멀"을 구성하는데 있어 창조적 파괴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국가의 패러다임, 새로운 시민사회의 패러다임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으며, 이런 흐름 속에서 친환경이나 생태주의를 중심으로 탈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여 지속가능한 지구와 인간사회를 만들 수 있는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다만 구체적인 방향에서 우리가 ESG를 핵심 키워드로 사용할거면, 브로카디아 운동과 같은 저항보다는 제도권 내 움직임을 핵심으로 끌고가야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 cf1 : 환경오염은 인간의 경제활동 때문에 일어난다. 코로나19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생산 활동이 줄어들면서 한국의 대기질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2019년만 해도 3월 한 달 내내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해 정부가 연일 비상대책을 발표했다. 2020년에는 2019년에 비해 초미세먼지가 27%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중국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가 줄어들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교통량과 공장 가동률이 줄어들면서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cf2 : 코로나19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작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7%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
뿐 아니라, 코로나19는 오히려 "뉴 노멀"을 구성하는데 있어 창조적 파괴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국가의 패러다임, 새로운 시민사회의 패러다임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으며, 이런 흐름 속에서 친환경이나 생태주의를 중심으로 탈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여 지속가능한 지구와 인간사회를 만들 수 있는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다만 구체적인 방향에서 우리가 ESG를 핵심 키워드로 사용할거면, 브로카디아 운동과 같은 저항보다는 제도권 내 움직임을 핵심으로 끌고가야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경제웅2021-05-12 22:04
클라인이 언짢아하는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의 책을 내가 중학교 때 읽는 바람에, 꽤 오래 기후 변화를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원제 Unstoppable Global Warming)라는 책인데, 요지가 정확히는 지구온난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구온난화가 지극히 자연적이고 장기적인 기온의 오르내림의 일부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들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아이디어만큼은 간직하면서 산 까닭은 돌아보면 두 가지다. 첫째는 남들이 다 교조적으로 믿는 바를 괜히 믿기 싫은 기질이고, 둘째는 스스로의 책임을 정당하게 감경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가 인간이 초래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나는 에어컨을 덜 틀고 대중교통을 더 타고 스타벅스에서 종이 빨대를 물 필요가 없다. 누리던 삶을 계속 누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기후 변화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아닐까? 외면하면 편하다. 이는 기후 변화를 몸소 외면하며 살아 온 나 자신의 사고 회로를 살펴볼 때, 현재와 미래 두 차원의 낙관에 기초한다. 현재적 낙관은, 당장의 기후 변화 정도는 외면해도 내 일상에 큰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미래적 낙관은, 훗날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더라도 첨단 과학 기술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위험으로부터 구원해 주리라는 믿음이다. 클라인이 “지구 공학이 내놓은 원대한 약속”, “지금도 여전히 우리 문화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주술적 사고”(359쪽)라고 비판하는 바로 그것이다.
설사 사람들이 기후 변화를 심각하게 여기고 나서고자 할 때도 직면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누구로서' 나서야 하느냐는 정체성의 모호함이다.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645쪽)라는 클라인의 물음이 핵심을 꿰뚫는다고 본다. ‘우리’는 ‘너희’의 대립항으로 존재하면서 ‘너희’로 인해 단결한다. ‘우리’가 통상의 사회 운동에 주체로 나섬은 ‘너희’ 내지 ‘너희의 것’을 타도하기 위함이다. '너희'가 프랑스 혁명에서는 앙시앙 레짐이었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는 잉여 가치를 착취하는 자본가였다. 페미니즘에서는 가부장제일 테고 장애 운동에서는 ‘병신’을 욕으로 사용하는 에이블리즘의 문화다. 그러나 환경 운동에서의 ‘우리’가, 특정한 선천적 또는 후천적 속성 때문에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 거대한 재앙을 앞둔 채 이 행성에 살아가는 전 인류라고 말한다면, 어떤 ‘너희’를 상정할 수 있는가? 사정없이 뜨끈뜨끈한 열기를 보내는 태양? 눈치 없이 대기에 쌓이는 이산화탄소? 만약 ‘계속해서 화석 연료를 캐내는 사업가들’ 따위가 ‘너희’라면, ‘우리’ 안에 ‘너희’가 존재하게 되므로 '우리'의 분열이 필연하다. “우리 역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644쪽)는 구절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환경 운동에서 ‘우리’와 ‘너희’는 어떻게 규정될지 학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 S. F. Singer & D. T. Avery,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김민정 역, 동아시아, 2009.
Singer, Avery 선생은 지난해 4월, 6월에 차례로 작고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기후 변화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아닐까? 외면하면 편하다. 이는 기후 변화를 몸소 외면하며 살아 온 나 자신의 사고 회로를 살펴볼 때, 현재와 미래 두 차원의 낙관에 기초한다. 현재적 낙관은, 당장의 기후 변화 정도는 외면해도 내 일상에 큰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미래적 낙관은, 훗날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더라도 첨단 과학 기술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위험으로부터 구원해 주리라는 믿음이다. 클라인이 “지구 공학이 내놓은 원대한 약속”, “지금도 여전히 우리 문화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주술적 사고”(359쪽)라고 비판하는 바로 그것이다.
설사 사람들이 기후 변화를 심각하게 여기고 나서고자 할 때도 직면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누구로서' 나서야 하느냐는 정체성의 모호함이다.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645쪽)라는 클라인의 물음이 핵심을 꿰뚫는다고 본다. ‘우리’는 ‘너희’의 대립항으로 존재하면서 ‘너희’로 인해 단결한다. ‘우리’가 통상의 사회 운동에 주체로 나섬은 ‘너희’ 내지 ‘너희의 것’을 타도하기 위함이다. '너희'가 프랑스 혁명에서는 앙시앙 레짐이었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는 잉여 가치를 착취하는 자본가였다. 페미니즘에서는 가부장제일 테고 장애 운동에서는 ‘병신’을 욕으로 사용하는 에이블리즘의 문화다. 그러나 환경 운동에서의 ‘우리’가, 특정한 선천적 또는 후천적 속성 때문에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 거대한 재앙을 앞둔 채 이 행성에 살아가는 전 인류라고 말한다면, 어떤 ‘너희’를 상정할 수 있는가? 사정없이 뜨끈뜨끈한 열기를 보내는 태양? 눈치 없이 대기에 쌓이는 이산화탄소? 만약 ‘계속해서 화석 연료를 캐내는 사업가들’ 따위가 ‘너희’라면, ‘우리’ 안에 ‘너희’가 존재하게 되므로 '우리'의 분열이 필연하다. “우리 역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644쪽)는 구절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환경 운동에서 ‘우리’와 ‘너희’는 어떻게 규정될지 학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 S. F. Singer & D. T. Avery,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김민정 역, 동아시아, 2009.
Singer, Avery 선생은 지난해 4월, 6월에 차례로 작고하셨다.
최동익2021-05-13 01:00
제웅님, 안녕하세요. 개인적인 경험도 그렇고, ‘우리’가 누구냐는 질문도 흥미로웠습니다. 부족하겠지만 ‘우리’가 누구일지 고민해보았습니다.
사회운동들이 힘을 얻기 위해서 결국 ‘너희’를 제시한다는 점은 중요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저자가 초반부에 제시하는 문화적 인식만큼이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를 감안해볼 때, 환경 운동이 세계적으로 전개된다면, 어떤 이유에서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이들을 일단 ‘너희’로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앙시엥 레짐이건 가부장제건 에이블리즘의 문화건 그들만이 그 안에서 특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제였던 것과 유사하게, 책에 따른다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이들은 대개 자신들의 경제적 특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해당 입장을 취하니까요.
다만 문제가 남는 지점은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대개 자본주의의 수혜자라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선진국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조차 어느 정도 자본주의 사고방식에 익숙하고 그것의 장점을 누려왔기에 “우리 역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게 될 것 같습니다. 일상을 넘어 다른 삶의 방식을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운동들이 힘을 얻기 위해서 결국 ‘너희’를 제시한다는 점은 중요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저자가 초반부에 제시하는 문화적 인식만큼이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를 감안해볼 때, 환경 운동이 세계적으로 전개된다면, 어떤 이유에서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이들을 일단 ‘너희’로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앙시엥 레짐이건 가부장제건 에이블리즘의 문화건 그들만이 그 안에서 특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제였던 것과 유사하게, 책에 따른다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이들은 대개 자신들의 경제적 특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해당 입장을 취하니까요.
다만 문제가 남는 지점은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대개 자본주의의 수혜자라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선진국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조차 어느 정도 자본주의 사고방식에 익숙하고 그것의 장점을 누려왔기에 “우리 역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게 될 것 같습니다. 일상을 넘어 다른 삶의 방식을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사합니다.
류성원2021-05-12 22:04
우리는 왜 기후변화를 걱정해야 하는가? 오래도록 나의 답변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기 때문에', '우리와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해서'와 같은 피상적인 말들뿐이었다. 기후 변화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집 밖을 나설 때 텀블러 하나 챙기는 데도 인색했던 것은 바로 이런 피상적인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환경에 대해 논하는 많은 책들은 기후 변화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지만, 이 책에서는 기후 변화가 기회, 원동력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전달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기후 변화가 "쇼크 독트린의 궁극적인 실현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충격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소수의 수중에 놓인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권력을 다수의 대중에게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라고 역설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의 온도가 몇 도 오른다, 해수면이 몇 센치미터 상승한다는 같은 경고보다, 우리가 아래로부터 실천하지 않으면 기후 변화도 '쇼크 독트린'으로 이용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적어도 나에게는 더 효과적인 겁주기였다.
저자는 기후변화에 대한 저항운동이 "과두지배 자본주의 시대를 중지시키는 효과적인 무기"라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으면 기후문제는 절대 해결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후 문제는 왜곡된 재난자본주의를 대항하기 위한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가 변화했을 때 적극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도착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해지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 책의 엄청난 분량 때문에 답답해진 것도 있겠지만) 환경과 대척점에 서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의 제도, 그리고 이를 강화하는 채취주의적 사고관, 소비중심의 생활방식 등이 너무도 공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의 제언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당장 지금 어떻게 시작하는 게 맞을지는 혼란으로 남아있다.
환경에 대해 논하는 많은 책들은 기후 변화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지만, 이 책에서는 기후 변화가 기회, 원동력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전달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기후 변화가 "쇼크 독트린의 궁극적인 실현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충격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소수의 수중에 놓인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권력을 다수의 대중에게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라고 역설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의 온도가 몇 도 오른다, 해수면이 몇 센치미터 상승한다는 같은 경고보다, 우리가 아래로부터 실천하지 않으면 기후 변화도 '쇼크 독트린'으로 이용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적어도 나에게는 더 효과적인 겁주기였다.
저자는 기후변화에 대한 저항운동이 "과두지배 자본주의 시대를 중지시키는 효과적인 무기"라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으면 기후문제는 절대 해결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후 문제는 왜곡된 재난자본주의를 대항하기 위한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가 변화했을 때 적극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도착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해지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 책의 엄청난 분량 때문에 답답해진 것도 있겠지만) 환경과 대척점에 서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의 제도, 그리고 이를 강화하는 채취주의적 사고관, 소비중심의 생활방식 등이 너무도 공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의 제언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당장 지금 어떻게 시작하는 게 맞을지는 혼란으로 남아있다.
강혜진2021-05-12 22:14
성원님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환경과 대척점에 있다고 느껴지는 현재의 상황들에 답답함을 느낀 건 아마 이 책을 읽은 다른 학우 분들도 경험한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을 둘러싼 움직임이 개인에게 강요되기보다 기업과 같은 큰 단위에서 변화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개인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만약 조에서 환경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면 더 많은 고민들을 나누고 우리 나름의 행동을 시작해볼 방안을 찾아보면 좋겠네요. 흔히 하고 있는 행동에 동참하는 방향이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양승훈2021-05-13 00:04
성원님 좋은 의견 잘 읽었습니다 :) '환경과 대척점에 서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의 제도' 라는 부분에 많은 공감이 가 의견을 남깁니다.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최근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현대차보다 3배 비싼 테슬라 오너들에게 돌아가는 자동차세 감면 혜택'. 탄소 감면을 위한 한 방책으로 전기차를 사용하는 차주들의 자동차세를 감면해주고 있지만 전기차가 오히려 더 비싼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소득에 대한 역차별로 가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사실 주변을 살펴 보면 '환경 보호'를 위해 아직까지는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테슬라가 더 비싼 이유는 단지 그 이유뿐만은 아니지만요!) 경제가 발전한 선진국이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더 쉬운 것처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아직은 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로울 때 환경을 보호하기 좋다는 게 아쉽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손지우2021-05-13 00:05
류성원 학우님, 좋은 코멘트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학우님께서 코멘트에 써주셨듯, 그리고 강혜진 학우님께서도 아래 공감을 표해주셨듯 쉽게 변화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답답함은 모두가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나 책에 보여주는 관점과 문제들이 더욱 그러한 부분을 크게 와닿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상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지만 그것을 위해서 지금의 사회를 변화 시키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개인의 작은 변화가 사회의 거대 자본 및 정부 등의 변화를 유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정하다는 착각>을 다루던 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 이러한 우리의 작은 고민들이 사회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은 씨앗을 씸는 과정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학우분들께서는 혹시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 떠오르는 방법이 있으신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답답함을 실제로 경험해본 적이 있으신지 등이 궁금합니다. :)
강혜진2021-05-12 22:07
자료들을 읽으면서 기후변화에 있어, 그리고 코로나라는 상황을 맞이하여 우리의 행동이 변화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었지만, 동시에 기후 변화에 대한 대처, 코로나를 맞이하여 가속화된 디지털 전환 과정과 여러 방역 조치들에 있어서 밀려나는 이들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공동의 행동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싸고 효율적인 화석연료를 사용해서 경제발전에 속도를 내야 하는 개도국과, 이미 그런 단계를 거치면서 큰 영향을 미친 선진국에 같은 조건이 주어지는 것이 맞을까? 기술적인 기반이든, 현재 사회가 걸쳐있는 단계에서든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또 이전부터 지적해왔던 부분이 고용안전망과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일터에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려운 환경에서 빠른 감염 확산이 이루어지는 문제인데, 코로나에 대처하기 위한 방역 조치들이 배제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디지털 전환 과정 역시 속도를 내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디지털 격차라는 것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단순히 경제적인 차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훨씬 더 큰 차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아닐까? 기후변화를 위한 행동도, 코로나 방역 조치에 동참하는 것도 공동의 영역을 함께 지켜내기 위함이지만, 같은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각자의 삶에는 어떤 의미로 와닿는지, 어떤 면에서 한쪽에 더 큰 이익을, 다른 한쪽에 더 큰 불평등을 안겨주는 일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조민영2021-05-12 22:49
안녕하세요, 혜진님.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글 읽고 코멘트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반적으로 '불평등'이라는 측면에 주목하여 코멘트를 작성해주셨네요! 무언가 하나의 목표를 보고 나아갈 때, 무시당하기 쉬운, 그렇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불평등 문제를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코로나 상황에서 디지털 격차는, 우리 삶의 여러 부분과 연관되어 있어서 그런지, 크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는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 이렇게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발전해온 국가들과 아직 환경으로부터 이득을 취하지 못하여 발전의 속도가 더딘 국가들이 '동등한'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의문을 제기해주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라는 우리의 일상적인 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이를 분담할 때에, 혜진님께서 짚어주신 것처럼, 그러한 부분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불평등'이라는 측면에 주목하여 코멘트를 작성해주셨네요! 무언가 하나의 목표를 보고 나아갈 때, 무시당하기 쉬운, 그렇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불평등 문제를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코로나 상황에서 디지털 격차는, 우리 삶의 여러 부분과 연관되어 있어서 그런지, 크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는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 이렇게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발전해온 국가들과 아직 환경으로부터 이득을 취하지 못하여 발전의 속도가 더딘 국가들이 '동등한'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의문을 제기해주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라는 우리의 일상적인 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이를 분담할 때에, 혜진님께서 짚어주신 것처럼, 그러한 부분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빈2021-05-13 12:57
안녕하세요, 혜진님. 저도 비슷한 부분에서 고민을 느껴 댓글을 남깁니다.
저 역시 위의 민영님처럼 어지르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인 사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자는 특히 2장에서 자유무역 추종이 기후변화 협약 실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무역은 크게 소비와 생산, 이동의 세 축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UN의 탄소 배출 측정 시스템은 상품의 이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의 책임을 누구에게도 지우지 않고 있으며, 생산국이 제조 과정에서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물론 기업이 많은 탄소 배출의 주범이므로 그들에게 탄소 배출을 감축하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무역의 출발점은 상품의 수요가 발생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온 제품에서 발생하는 '탄소세'를 일정 부분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위의 민영님처럼 어지르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인 사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자는 특히 2장에서 자유무역 추종이 기후변화 협약 실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무역은 크게 소비와 생산, 이동의 세 축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UN의 탄소 배출 측정 시스템은 상품의 이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의 책임을 누구에게도 지우지 않고 있으며, 생산국이 제조 과정에서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물론 기업이 많은 탄소 배출의 주범이므로 그들에게 탄소 배출을 감축하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무역의 출발점은 상품의 수요가 발생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온 제품에서 발생하는 '탄소세'를 일정 부분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민영2021-05-12 22:44
'환경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할 정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즉, 이 문제가 진짜 문제라면, 그것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그만큼 시급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면서 계속 접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경 문제가 시급하다고 생각되는만큼 우리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나만 하더라도 노트북이 100%로 충전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충전기를 빼지 않는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춥게 틀고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있기를 좋아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만한 행동이다. 이러한 비-환경친화적인 행동을 왜 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1) 환경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2) '환경 문제'라고 불리우는 것은 나에게 닥칠 문제가 아니므로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이 두 가지 중에서 (1) 생각에 강하게 반박하며, 기후 변화는 실존하는 것이고, 이것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면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환경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이득을 놓치지 않기 위해 (1)과 같은 생각을 펼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처럼 환경 문제의 근저에는 자본주의가 놓여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2)와 같은 생각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코멘트의 전반부에서 언급한 '완충 상태에서도 전기 계속 쓰기'나 '추운데도 에어컨 틀어놓기'와 같은 행동들도 (2)와 같은 생각에서 비롯한 행동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들을 막기 위해 '물 아껴 쓰기'나 '실내 적정 온도 유지하기' 등, 일상생활 차원에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교육받아왔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보다 제도적이고 강제적인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1)과 같은 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이다. 다소 과도한 주장으로 보이기도 하는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은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한다. 또,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포스트 코로나’ 세계, 네 개의 키워드를 주목하라」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제시되었던 '경제민주화'와도 연관지어서 이러한 주장을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변화될 경제사회모델에 대해서 나오미 클라인은 어떻게 주장할지 궁금해졌다.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이 두 가지 중에서 (1) 생각에 강하게 반박하며, 기후 변화는 실존하는 것이고, 이것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면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환경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이득을 놓치지 않기 위해 (1)과 같은 생각을 펼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처럼 환경 문제의 근저에는 자본주의가 놓여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2)와 같은 생각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코멘트의 전반부에서 언급한 '완충 상태에서도 전기 계속 쓰기'나 '추운데도 에어컨 틀어놓기'와 같은 행동들도 (2)와 같은 생각에서 비롯한 행동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들을 막기 위해 '물 아껴 쓰기'나 '실내 적정 온도 유지하기' 등, 일상생활 차원에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교육받아왔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보다 제도적이고 강제적인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1)과 같은 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이다. 다소 과도한 주장으로 보이기도 하는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은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한다. 또,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포스트 코로나’ 세계, 네 개의 키워드를 주목하라」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제시되었던 '경제민주화'와도 연관지어서 이러한 주장을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변화될 경제사회모델에 대해서 나오미 클라인은 어떻게 주장할지 궁금해졌다.
이태민2021-05-12 22:47
책의 전반부는 자본주의의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저자의 반론으로 구성된다. 후반부는 세율 인상 등의 경제적 대전환을 통한 환경 문제의 접근을 다루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주 테마로 다루되, 각종 환경문제 또한 함께 다루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현 자본주의 체제의 극적인 전환이다.
책의 전반부, 특히 1부의 주장은 급진적인 환경운동가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허틀랜드 연구소를 위시한 각종 보수 단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견해의 차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추측에 의거하고 있다. 예컨대 저자는 기업의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로비'의 개념으로 정의내린다. 객관성이 배제되어 있다. 근거로 내세운 각종 참조 자료 또한 저자의 견해와 비슷한 성향의 글들이다. 저자의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반대로 나도 추측과 추론으로 저자에 대해 반박할 수 있다. 예컨대 본 저서 또한 환경 단체와 관련 기업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 근거는 저자의 반대편-보수 단체-의 각종 지표가 될 수 있다. 방대한 분량으로 논리성을 보충하려 했으나, 그 방대함이 의미하는 것은 저자의 확증 편향일 뿐이다.
책의 후반부, 경제적 대전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방안들이, 정치적인 시각에서 봤을때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상당한 편향적 접근일 수밖에 없는 것' 이다. 사실 저자가 이름을 알린 것은 그녀의 전작 도서인 <쇼크 독트린>으로, 이는 공공 부문의 민영화를 강력하게 반대한 책이다. 이미 저자의 포지션은 환경 문제에 대한 특정 시선을 전제하고 있다. 저자가 제기한 세율 인상 등의 방안들에서 환경문제의 진정한 해결보다는 정치적 편향을 염두해 두고 있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느꼈다.
한편 책의 대한 반론과 더불어 학우분들과 고민해보고 싶은 부분은 다음이다.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 방식은 무엇일까? 지난 몇십년간 환경 문제는 경제 문제와 동의어처럼 제기되어 왔다. 인간의 경제적 탐욕이 지구 생태계를 위협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제 활동이, 특히 온난화 이슈에 있어서, 지구의 자정능력을 넘어설 정도의 문제를 초래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과학 저널리스트 맷 리들리는 반대 주장을 역설한다.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해악보다 유익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온난화로 북극이 따뜻해지면 경작 범위가 늘어날 수 있다. 물론 맷 리들리는 환경문제에 있어서 상당한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이에 그의 주장 또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환경 문제를 경제 이슈로 바라보면 입장에 따라 양 극단의 견해가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환경 문제에 대해 글로벌 사회의 의견이 통일되고, 각 개인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해결 방식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과학기술의 발달이라고 생각한다. 수소차,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에 비해 친환경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화성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지구의 환경이 개편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류가 보편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환경문제의 해결에 애쓰는 것은 어떠할지,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책의 전반부, 특히 1부의 주장은 급진적인 환경운동가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허틀랜드 연구소를 위시한 각종 보수 단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견해의 차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추측에 의거하고 있다. 예컨대 저자는 기업의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로비'의 개념으로 정의내린다. 객관성이 배제되어 있다. 근거로 내세운 각종 참조 자료 또한 저자의 견해와 비슷한 성향의 글들이다. 저자의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반대로 나도 추측과 추론으로 저자에 대해 반박할 수 있다. 예컨대 본 저서 또한 환경 단체와 관련 기업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 근거는 저자의 반대편-보수 단체-의 각종 지표가 될 수 있다. 방대한 분량으로 논리성을 보충하려 했으나, 그 방대함이 의미하는 것은 저자의 확증 편향일 뿐이다.
책의 후반부, 경제적 대전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방안들이, 정치적인 시각에서 봤을때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상당한 편향적 접근일 수밖에 없는 것' 이다. 사실 저자가 이름을 알린 것은 그녀의 전작 도서인 <쇼크 독트린>으로, 이는 공공 부문의 민영화를 강력하게 반대한 책이다. 이미 저자의 포지션은 환경 문제에 대한 특정 시선을 전제하고 있다. 저자가 제기한 세율 인상 등의 방안들에서 환경문제의 진정한 해결보다는 정치적 편향을 염두해 두고 있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느꼈다.
한편 책의 대한 반론과 더불어 학우분들과 고민해보고 싶은 부분은 다음이다.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 방식은 무엇일까? 지난 몇십년간 환경 문제는 경제 문제와 동의어처럼 제기되어 왔다. 인간의 경제적 탐욕이 지구 생태계를 위협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제 활동이, 특히 온난화 이슈에 있어서, 지구의 자정능력을 넘어설 정도의 문제를 초래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과학 저널리스트 맷 리들리는 반대 주장을 역설한다.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해악보다 유익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온난화로 북극이 따뜻해지면 경작 범위가 늘어날 수 있다. 물론 맷 리들리는 환경문제에 있어서 상당한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이에 그의 주장 또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환경 문제를 경제 이슈로 바라보면 입장에 따라 양 극단의 견해가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환경 문제에 대해 글로벌 사회의 의견이 통일되고, 각 개인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해결 방식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과학기술의 발달이라고 생각한다. 수소차,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에 비해 친환경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화성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지구의 환경이 개편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류가 보편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환경문제의 해결에 애쓰는 것은 어떠할지,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문보설2021-05-13 13:36
태민님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제 의견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반갑습니다. 저도 수소차나 전기차, 화성 탐사 등의 친환경 사업이 자본주의 논리 하에서 진행된다면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 그런 사업을 진행하고 계시는 어떤 분의 행보가... 인격적으로 끌리지도 않고 불안불안 하지만 이런 방법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런 사업들이 경험적으로 어떤 결말을 맞았는가를 검토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수정하고 거기서 벗어나자는 결론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저는 태민님이 1장에서 느끼신 것과 유사하게 이 결론으로 이르는 부분이 지나치게 사례중심적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어떤 방법론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저자가 자본주의와 환경 보호 둘 다를 취할 수 있는 적정선을 제시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경제 관련 지식이 부족하여 저자가 공격하는 자본주의가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경영 윤리의 중요성 정도를 강조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단2021-05-12 22:51
지구의 산업이 어느 정도 발전을 해왔고 인간의 생활 수준도 많이 향상되어 발전의 대가를 누리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구를 이용해서 성장해왔다면 이제 한 번쯤은 지구에 눈을 돌릴 때가 온 것 같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도 환경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다. 먹고 사는 것만큼 당장 내 눈앞에서 나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둔감하게 느끼다 보니 지구의 환경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가 많이 변화될 것이라 기대를 했다.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 계속 났지만, 사람들이 몰랐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환경단체와 대기업을 고발하는 내용은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작가분의 생각이 너무 극단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시민들의 소비방식 변화, 1시간 동안 전등 끄기, 공중 촬영을 위해 대형 인간 띠로 모래시계 만들기 등 시민들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변화를 시니컬하게 생각한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온실가스 감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겠지만, 분명히 수치화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또한 오염 물질 거래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탄소를 아예 배출하지 않을 수 있다면 배출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니까 국가와 기업들 사이에 이런 절충안을 만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 안에 많은 결함이 있다는 점과,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내기 어렵다는 작가의 우려에도 공감을 한다. 다만, 이상적인 대안 말고 현실적인 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지구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가 많이 변화될 것이라 기대를 했다.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 계속 났지만, 사람들이 몰랐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환경단체와 대기업을 고발하는 내용은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작가분의 생각이 너무 극단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시민들의 소비방식 변화, 1시간 동안 전등 끄기, 공중 촬영을 위해 대형 인간 띠로 모래시계 만들기 등 시민들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변화를 시니컬하게 생각한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온실가스 감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겠지만, 분명히 수치화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또한 오염 물질 거래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탄소를 아예 배출하지 않을 수 있다면 배출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니까 국가와 기업들 사이에 이런 절충안을 만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 안에 많은 결함이 있다는 점과,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내기 어렵다는 작가의 우려에도 공감을 한다. 다만, 이상적인 대안 말고 현실적인 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지구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볼 뿐이다.
조용수2021-05-12 23:09
최근 경제사 수업 중 학생들의 레포트 중에서 잘 쓴 것을 뽑아 학생이 직접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중 기억에 남았던 발표가 'GDP의 증가만을 최우선으로 놓은 경제학이 생태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책임을 방치하였다'라는 내용의 발표였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발표에서 나왔던 성장중심의 사고방식과 생태문제와의 충돌, 기술혁신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논의 등 많은 쟁점들이 훨씬 구체화되어서 등장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성장중심의 사고방식 중에서도 특히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책에서도 저자가 언급한 바 있듯이, 기후가 무역보다 위에 놓이는 것은 단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다.(123p) 또한 항상 경제적 이윤만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국가간의 경계를 허무는 세계화는 기업들이 더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로 생산 공장을 옮기는 결과를 발생시켰다. 능력주의 주제를 다룰 때 등장한 바 있었던 '큰 울타리에서의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더불어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런 부분은 소비를 전체적으로 줄이자, 오염세를 매기자라는 다른 주장들에 비해 충분히 정부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 현실화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하나같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저자가 강경하고 다소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만큼 환경위기가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고, 그 피해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이유에 있는 것 같다. 책에서 나온 바와 같이, 지구를 이런 극단적인 변화 없이 방치해도 환경이 정상적으로 유지될까?라는 물음에 걸린 것들은 지구와 인류 전체의 생존이다. 과연 이들보다 개인의 소비의 최대화 같은 경제학의 주요 논리가 우선시되어야 할까? 자본주의와 기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시점에서 이는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 책을 읽고 노예제 폐지 운동이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경 지식이 부족해 작가가 노예제와 기후변화를 비교하는 대목에 대해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예제가 폐지된 후 프랑스가 아이티에 함대를 보내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이러한 '엘리트들의 박탈감'이라는 문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련해서 논의를 해보고 싶다.
이 책에서는 성장중심의 사고방식 중에서도 특히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책에서도 저자가 언급한 바 있듯이, 기후가 무역보다 위에 놓이는 것은 단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다.(123p) 또한 항상 경제적 이윤만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국가간의 경계를 허무는 세계화는 기업들이 더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로 생산 공장을 옮기는 결과를 발생시켰다. 능력주의 주제를 다룰 때 등장한 바 있었던 '큰 울타리에서의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더불어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런 부분은 소비를 전체적으로 줄이자, 오염세를 매기자라는 다른 주장들에 비해 충분히 정부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 현실화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하나같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저자가 강경하고 다소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만큼 환경위기가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고, 그 피해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이유에 있는 것 같다. 책에서 나온 바와 같이, 지구를 이런 극단적인 변화 없이 방치해도 환경이 정상적으로 유지될까?라는 물음에 걸린 것들은 지구와 인류 전체의 생존이다. 과연 이들보다 개인의 소비의 최대화 같은 경제학의 주요 논리가 우선시되어야 할까? 자본주의와 기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시점에서 이는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 책을 읽고 노예제 폐지 운동이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경 지식이 부족해 작가가 노예제와 기후변화를 비교하는 대목에 대해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예제가 폐지된 후 프랑스가 아이티에 함대를 보내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이러한 '엘리트들의 박탈감'이라는 문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련해서 논의를 해보고 싶다.
탈퇴한 회원2021-05-13 01:42
용수님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도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깊게 고민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고 용수님이 말씀해주신 경제학에서의 소비 극대화도 그 중 일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직까지 소비의 최대화를 위한 황금률 자본량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더 심해질 것입니다. 다만 경제학도 변화 가능성과 한계가 있는 일종의 사회과학이라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더욱 빠른 발전, 개발, 나아가 더 많은 소비가 반드시 좋은 것이라는 당연시되고 자동화되었던 사고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장기운송을 하는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은 그 어느 나라의 탄소 배출량에도 산정되지 않는다는 점과, 많은 개발도상국 탄소 배출량의 일정 부분은 다국적 기업들이 배출하는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이렇듯 왜곡된 시스템 하에서는 환경의 가치가 무엇인지, 올바른 경제 논리로서 이익-비용 비교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왜곡된 경제 시스템, 각 국가들의 정치적 완력이 작용하는 시대에 살아왔던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방법과 방향성을 가지고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장기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지, 늦었더라도 그 출발선에 서있어야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저도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깊게 고민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고 용수님이 말씀해주신 경제학에서의 소비 극대화도 그 중 일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직까지 소비의 최대화를 위한 황금률 자본량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더 심해질 것입니다. 다만 경제학도 변화 가능성과 한계가 있는 일종의 사회과학이라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더욱 빠른 발전, 개발, 나아가 더 많은 소비가 반드시 좋은 것이라는 당연시되고 자동화되었던 사고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장기운송을 하는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은 그 어느 나라의 탄소 배출량에도 산정되지 않는다는 점과, 많은 개발도상국 탄소 배출량의 일정 부분은 다국적 기업들이 배출하는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이렇듯 왜곡된 시스템 하에서는 환경의 가치가 무엇인지, 올바른 경제 논리로서 이익-비용 비교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왜곡된 경제 시스템, 각 국가들의 정치적 완력이 작용하는 시대에 살아왔던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방법과 방향성을 가지고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장기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지, 늦었더라도 그 출발선에 서있어야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채수형2021-05-12 23:13
본 책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단순히 기후변화 및 악화 현상을 단순히 서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틀에서 바라보며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경제적, 정치적 이슈들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책은 너무나 다양한 주제를 방대하게 다루기 때문에 독자가 동의를 하기도, 하지 않는 부분이 다르다. 나 역시 책의 전체 내용에 대해 다 동의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가장 인상 깊고 동의할 수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기후 변화가 인류에게 커다란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고 말한 부분이다. 저자는 인류가 이 위기 속에서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빈부 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고,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되살리는 정책들을 진전시킬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기후’를 ‘코로나 사태’로 바꿨을 때도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납득이 될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코로나 사태 역시 단순히 질병으로 인한 재난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경제적 정치적 이슈를 파악할 필요가 있듯이 말이다. 앞에서 인상 깊었다고 제시한 대목은 코로나 사태에서도 충분히 대입될 수 있는 말이라 생각이 들었다(좋은 일자리 대폭확대라는 말은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공백이 발생한 현재 상황 속에서, 충분히 기술의 발달과 같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우리 인류에게 더 발전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후 변화같은 경우는 그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오래전부터 토의가 이어져 왔고, 현재까지도 예상을 하며 그 합의점을 찾고 있는 과정이다. 이에 비해 코로나 사태는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리 인류가 재빠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물론 현재 천천히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코로나와 달리 아주 예전부터 고민해오고 합의점을 찾고자 노력한 기후변화 만큼에서는 우리 인류가 꼭 재빠른 대처를 통해 미래의 문제들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의 국가들과 정부의 역량도 정말 중요하겠지만, 오히려 '개인 차원'에서도 큰 문제의식을 갖고 지구 차원의 기후를 위해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다.
책은 너무나 다양한 주제를 방대하게 다루기 때문에 독자가 동의를 하기도, 하지 않는 부분이 다르다. 나 역시 책의 전체 내용에 대해 다 동의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가장 인상 깊고 동의할 수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기후 변화가 인류에게 커다란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고 말한 부분이다. 저자는 인류가 이 위기 속에서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빈부 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고,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되살리는 정책들을 진전시킬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기후’를 ‘코로나 사태’로 바꿨을 때도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납득이 될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코로나 사태 역시 단순히 질병으로 인한 재난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경제적 정치적 이슈를 파악할 필요가 있듯이 말이다. 앞에서 인상 깊었다고 제시한 대목은 코로나 사태에서도 충분히 대입될 수 있는 말이라 생각이 들었다(좋은 일자리 대폭확대라는 말은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공백이 발생한 현재 상황 속에서, 충분히 기술의 발달과 같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우리 인류에게 더 발전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후 변화같은 경우는 그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오래전부터 토의가 이어져 왔고, 현재까지도 예상을 하며 그 합의점을 찾고 있는 과정이다. 이에 비해 코로나 사태는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리 인류가 재빠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물론 현재 천천히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코로나와 달리 아주 예전부터 고민해오고 합의점을 찾고자 노력한 기후변화 만큼에서는 우리 인류가 꼭 재빠른 대처를 통해 미래의 문제들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의 국가들과 정부의 역량도 정말 중요하겠지만, 오히려 '개인 차원'에서도 큰 문제의식을 갖고 지구 차원의 기후를 위해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다.
김하연2021-05-13 04:03
수형님 좋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수형님의 글을 읽으며 위기는 '위험 + 기회'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기후 위기, 코로나 모두 단편적으로 보면 분명 위험한 위기 상황이지만,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냐에 따라 오히려 이 상황을 변화와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책을 읽을 때는 기후 위기에 집중하며 읽었는데, 글을 읽고 현재 코로나 상황은 어떻게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어떻게 보면 우리 SNU 라이프아카데미의 커다란 주제인 '포스트팬데믹'에 대해 고민하게 되네요. 좋은 인사이트 감사합니다! :)
송혜민2021-05-12 23:24
환경보호는 도덕적인 명제로 우리 사회에서 작용해왔다. 경제 논리에서 작용하는 딜레마는 형평성과 효용성 단 둘이었으며 이 두가지 옵션 사이에서 환경 보호는 그 어떤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나마 국제적인 형평성을 논할 때와 외부효과에 대한 담론이 필요할 때 잠시 나오는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국가의 강제적인 규제가 탄소배출권보다 오염원을 줄이려는 동기를 유발하지 못한다는 자본주의적 논리 아래였다. 작가는 환경 오염으로 인한 공기 오염이나 지구온난화가 결국 경제 논리를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유사한 논지를 1973년에 펼친 사람이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발행하며 그는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라는 경제 논리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소규모 공동체가 자급자족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의 '중간 기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모의 경제'를 부정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결국 적정 기술의 등장으로 이어져 자본주의 논리를 완전히 뒤엎진 못했지만, 해외 원조에 있어서 좋은 실험 대상이 되었다.
문제는 슈마허의 논리가 완전히 자본주의 논리를 대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약 50년 간 슈마허의 글은 하나의 고전서로 작용해왔지만 아무도 그의 논리가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중간 기술'과 반대되는 분업의 이득이나, 규모의 경제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19와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경제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대규모가 아닌 '적당한' 규모의 생산을 장려하고, 자급자족이 중요한 키워드라는 사실이다. 지난 1년 간, 아무리 코로나19으로 인해서 리쇼어링 현상이 일어나 많은 다국적기업이 자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는 경향이 보인다고 해도 자본주의의 논리에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급자족을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생산력'을 위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로나19나 환경문제 정도의 충격으로 정말 '성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논리를 벗어나서 경제를 논할 수 있을까?
유사한 논지를 1973년에 펼친 사람이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발행하며 그는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라는 경제 논리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소규모 공동체가 자급자족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의 '중간 기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모의 경제'를 부정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결국 적정 기술의 등장으로 이어져 자본주의 논리를 완전히 뒤엎진 못했지만, 해외 원조에 있어서 좋은 실험 대상이 되었다.
문제는 슈마허의 논리가 완전히 자본주의 논리를 대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약 50년 간 슈마허의 글은 하나의 고전서로 작용해왔지만 아무도 그의 논리가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중간 기술'과 반대되는 분업의 이득이나, 규모의 경제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19와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경제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대규모가 아닌 '적당한' 규모의 생산을 장려하고, 자급자족이 중요한 키워드라는 사실이다. 지난 1년 간, 아무리 코로나19으로 인해서 리쇼어링 현상이 일어나 많은 다국적기업이 자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는 경향이 보인다고 해도 자본주의의 논리에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급자족을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생산력'을 위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로나19나 환경문제 정도의 충격으로 정말 '성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논리를 벗어나서 경제를 논할 수 있을까?
임채미2021-05-12 23:32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앞으로의 경제 구조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어떤 태도가 요구되는지 등등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기후변화는 확실히 지구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기에 범국가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탄소 배출 문제가 앞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어질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기후변화라는 위기가 현재에는 빈부격차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음을 깨닫고 기후 변화의 해결이 더 어려워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환경 오염은 강대국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그렇다면 지금의 약소국들에게 보상적 의미로 탄소 배출을 허용하는 것이 좋을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도 현실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제시되었던 흥미로운 주장 중 하나는 추가 자료에서도 제시되었듯 역성장이 있다. 소비를 줄이고 그 간극을 재생에너지와 같은 것으로 메우는 것이 발표에서 제시되는 그린뉴딜인데, 이 문제를 현재의 코로나 19라는 전환점을 맞이하여 논의해 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코로나 19를 기점으로 더이상 초세계화보다는 오히려 지역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소통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러한 패러다임이 어떻게 전환될지를 디지털 탄소발자국 증가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물론 나오미 클라인의 책에서는 당연히 코로나 19가 창궐하기 전이기에 기후변화가 전염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서술이 없다. 하지만 코로나 19와 관련해서 기후 변화를 논의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점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재용2021-05-12 23:40
이번주 라이프아카데미 주제가 경제였기에 수업에서 다루어질 주제를 과거 또는 미래의 경제위기, 바뀌어야 할 경제 구조와 정책, 가상화폐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재산 등 ‘경제’ 그 자체에 국한하여 상상했다. 그러나 이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를 읽고 뒷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후문제라는 이슈를 자본주의와 엮어 이렇게 많은 것을 설명하고, 또 독자에게 논리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이 책은 아직 생각지도 못한 융합(통섭)이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웃긴 점이, 환경은 환경 그 자체로 보전되어야 하지만 이 자본주의 세상에선 환경보전 또한 하나의 사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책의 6장( p.309~324)의 탄소 배출권 거래, 탄소 저감 실적권 거래 등은 어떻게 보면 환경 문제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내에서 가장 적절한 해결방안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 해결책 등이 오히려 돈을 버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환경 파괴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익 창출이고, 환경이든 정책이든 뭐든 그들의 이익을 위해 계산될 뿐이란 것이다. 환경보전은 사업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보면 항상 새 정부가 자리잡기 전 후보자들은 무조건 적어도 하나의 환경 관련 정책을 공략으로 내세운다. 지켜지는 것도 있고 잊혀진 것들도 많지만, 지켜진다고 해도 과연 실제로 환경 보호에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정책이 대다수이다. 그도 그럴것이 유세 과정에서 기업 이익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강압적인 환경 정책을 공략으로 내세우게 되면 기업들은 후보자에 등을 돌리게 되고, 자본주의에서 대기업들은 당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후보자 뿐만 아니라 이미 자리를 차지한 정치인들에겐 실이 된다. 내가 자라오면서 항상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 온실 가스 배출 줄이겠다 들어왔지만 실제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더라도 매년같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예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환경과 관련된 법이 몇몇 개정되고 추가로 행정 명령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속도와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속도에 비해 너무 느리게 정책이 개정되고 실행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지구 온난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만으로 환경 파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기업이 정책에만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산업쓰레기 배출 감소 등에 총력을 기울어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익 창출이 최우선인 기업들은 이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이 문제를 두고 많은 논의와 아이디어가 오가겠지만, 솔직히 난 이 문제같은 경우 이미 엎질러진 물, 절대적으로 막을 수 없는 불가피한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무너지지 않는 한, 오히려 진짜 영화 마션, 인터스텔라처럼 지구를 뜨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일 수도 있지 않을까.
*통계청, 온실가스배출량 http://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88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웃긴 점이, 환경은 환경 그 자체로 보전되어야 하지만 이 자본주의 세상에선 환경보전 또한 하나의 사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책의 6장( p.309~324)의 탄소 배출권 거래, 탄소 저감 실적권 거래 등은 어떻게 보면 환경 문제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내에서 가장 적절한 해결방안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 해결책 등이 오히려 돈을 버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환경 파괴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익 창출이고, 환경이든 정책이든 뭐든 그들의 이익을 위해 계산될 뿐이란 것이다. 환경보전은 사업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보면 항상 새 정부가 자리잡기 전 후보자들은 무조건 적어도 하나의 환경 관련 정책을 공략으로 내세운다. 지켜지는 것도 있고 잊혀진 것들도 많지만, 지켜진다고 해도 과연 실제로 환경 보호에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정책이 대다수이다. 그도 그럴것이 유세 과정에서 기업 이익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강압적인 환경 정책을 공략으로 내세우게 되면 기업들은 후보자에 등을 돌리게 되고, 자본주의에서 대기업들은 당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후보자 뿐만 아니라 이미 자리를 차지한 정치인들에겐 실이 된다. 내가 자라오면서 항상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 온실 가스 배출 줄이겠다 들어왔지만 실제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더라도 매년같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예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환경과 관련된 법이 몇몇 개정되고 추가로 행정 명령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속도와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속도에 비해 너무 느리게 정책이 개정되고 실행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지구 온난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만으로 환경 파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기업이 정책에만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산업쓰레기 배출 감소 등에 총력을 기울어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익 창출이 최우선인 기업들은 이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이 문제를 두고 많은 논의와 아이디어가 오가겠지만, 솔직히 난 이 문제같은 경우 이미 엎질러진 물, 절대적으로 막을 수 없는 불가피한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무너지지 않는 한, 오히려 진짜 영화 마션, 인터스텔라처럼 지구를 뜨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일 수도 있지 않을까.
*통계청, 온실가스배출량 http://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88
최민정2021-05-12 23:41
최근 날씨보다 기후를 더 많이 언급된 느낌이었다. 내일 날씨보다 지금 피부로 체감하는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날이 많아졌다. 실제로 google ngram viewer에 간단하게 weather과 climate을 검색해보았다. 2004년을 기점으로 오랫동안 weather이 climate보다 많이 언급된 상황은 뒤집혔다. climate은 이제 weather보다 많이 언급된다. 그 추세 또한 상승세다. 이 변화에 climate change가 기여한 바가 흥미롭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그래프 바닥을 오르기 시작한 climate change의 변곡점과 상승, 하락 형태가 climate과 매우 유사했다. 그러면 질문이 생긴다. "누가 이렇게 climate과 climate change를 말하는가?"
교과서만 봐도 차이가 분명하다. 어릴 적, 사회 교과서를 배우면 봄과 황사를 연결 지어 알아야 했다.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내용과 이어서 기후변화보다 이상기후라는 표현을 배웠다. 요즘 학생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는 봄에만 황사가 심한지 확인하기보다, 매일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를 확인한다. 또한, 저 먼 지역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이상기후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때 이른 더위와 추위가 기후변화 때문임을 배운다. 언제 누가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와닿았다는 정보를 교과서에 실었는가? 이 정보를 가진 사람은 이 정보를 통해 어떤 결과를 예상했을까?
더 깊이 파고들면, 교과서에 나온 기후변화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다루는지를 볼 수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플로깅 등 활동을 제안한 경우는 꽤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구조적인 논의는 담겨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지금의 문제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해결에 동참하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식의 톤으로 말하지만, 사실 말하지 않은 이야기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기후변화와 더불어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영역에 대해 정보 격차가 줄어야 하고,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 인프라적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교과서만 봐도 차이가 분명하다. 어릴 적, 사회 교과서를 배우면 봄과 황사를 연결 지어 알아야 했다.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내용과 이어서 기후변화보다 이상기후라는 표현을 배웠다. 요즘 학생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는 봄에만 황사가 심한지 확인하기보다, 매일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를 확인한다. 또한, 저 먼 지역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이상기후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때 이른 더위와 추위가 기후변화 때문임을 배운다. 언제 누가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와닿았다는 정보를 교과서에 실었는가? 이 정보를 가진 사람은 이 정보를 통해 어떤 결과를 예상했을까?
더 깊이 파고들면, 교과서에 나온 기후변화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다루는지를 볼 수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플로깅 등 활동을 제안한 경우는 꽤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구조적인 논의는 담겨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지금의 문제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해결에 동참하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식의 톤으로 말하지만, 사실 말하지 않은 이야기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기후변화와 더불어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영역에 대해 정보 격차가 줄어야 하고,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 인프라적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최서원2021-05-13 00:01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현 문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보 격차가 줄어야한다는 민정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개인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인프라뿐만 아니라 국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제적' 인프라( 친환경적 발전 방식에 대한 기술을 개발도상국에 무료로 제공한다거나? 등의 ) 역시 생성될 수 있다면 국제 사회에서 환경에 대한 합의에 조금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송혜민2021-05-13 09:52
안녕하세요 민정님! 2000년 대를 기점으로 weather보다 climate가 더욱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래도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여러 매체로 촉구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다는 지표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책이 항상 양심적인 개인들의 영역으로 돌리는 등 회피적 성향이 강하다는 사실 역시도 부정하긴 힘든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이고 그 심각성을 인지해야 그것을 정책과 경제적 논리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네요! 그지만 국제적으로 '인프라적 요소가 뒷받침'되어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에게 친환경 발전(?)을 촉구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논리에 속박된, '허상의' 논리인데, 한편으로는 성장 말고 그들을 촉구할 수 있는 다른 동기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탈퇴한 회원2021-05-12 23:45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기후 변화와 관련된 편견과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지금까지 자연을 착취해왔던 극단적 자본주의와 그 중심에는 다국적기업과 선진국들이 있다는 것. 나아가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정의, 경제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로 뭉친 시민들이 연대하여 만든 조직된 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구체적이고 세밀한 사례들을 통해 정리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인류가 지구와 지구의 모든 결실을 정복하고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구축할 능력과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신념과 그것에 기반한 자본주의 하에서 자연을 착취해왔고 탄소 배출량이 높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형 모델을 세계 각지로 전파하는 무역시스템이 확립되었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놀랐던 점은 이러한 세계화와 국경을 넘는 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탄소가 공식적으로는 어느 나라의 배출량에도 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세계화로 인한 공장 이전의 자유는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이 탄소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해준다. 평소, 기후 변화가 쟁점이 되거나, 탄소 배출량 문제가 나올 때 개발도상국이 그 원인의 중심에 있다는 편견이 있던 나에게 이러한 사실들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개발도상국은 지역적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이 있다는 이유로, 그 기업이 입지하는 것만으로 경제적 효과가 있으므로 탄소 오염 효과를 다 감수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어떠한 방식으로 탄소에 의한 영향력을 지역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향을 미친 정도에 따라서 분배할 수 있을까?
나아가 지금까지 탄소 배출, 자연의 가치가 경제적 비용으로서 굉장히 사각지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가치,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탄소 배출을 경제적 비용에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저자는 그 기준으로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제시한다. 이러한 오염자 부담원칙은 탄소를 직접 배출하는 기업, 산업뿐 아니라 여가의 소비에서 기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최상위층까지 매우 다양한 집단에 적용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염자가 그 영향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윤리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어느 산업에 어떤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최상위층이라고 해도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 등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그것이 기존의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파급효과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과연 탄소 배출이라는 명목하에 정부가 개인의 활동에 제재가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한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경제 시장과 많은 국가의 의사결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극단적인 자본주의이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개인의 생각과는 달리 환경의 가치는 경제적인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못 미쳐왔고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미래와 이후 세대들은 환경으로 인한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무 심기, 일회용품 줄이기 등의 미시적인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의사결정과 앞으로 방향성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인 것 같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인류가 지구와 지구의 모든 결실을 정복하고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구축할 능력과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신념과 그것에 기반한 자본주의 하에서 자연을 착취해왔고 탄소 배출량이 높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형 모델을 세계 각지로 전파하는 무역시스템이 확립되었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놀랐던 점은 이러한 세계화와 국경을 넘는 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탄소가 공식적으로는 어느 나라의 배출량에도 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세계화로 인한 공장 이전의 자유는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이 탄소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해준다. 평소, 기후 변화가 쟁점이 되거나, 탄소 배출량 문제가 나올 때 개발도상국이 그 원인의 중심에 있다는 편견이 있던 나에게 이러한 사실들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개발도상국은 지역적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이 있다는 이유로, 그 기업이 입지하는 것만으로 경제적 효과가 있으므로 탄소 오염 효과를 다 감수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어떠한 방식으로 탄소에 의한 영향력을 지역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향을 미친 정도에 따라서 분배할 수 있을까?
나아가 지금까지 탄소 배출, 자연의 가치가 경제적 비용으로서 굉장히 사각지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가치,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탄소 배출을 경제적 비용에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저자는 그 기준으로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제시한다. 이러한 오염자 부담원칙은 탄소를 직접 배출하는 기업, 산업뿐 아니라 여가의 소비에서 기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최상위층까지 매우 다양한 집단에 적용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염자가 그 영향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윤리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어느 산업에 어떤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최상위층이라고 해도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 등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그것이 기존의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파급효과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과연 탄소 배출이라는 명목하에 정부가 개인의 활동에 제재가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한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경제 시장과 많은 국가의 의사결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극단적인 자본주의이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개인의 생각과는 달리 환경의 가치는 경제적인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못 미쳐왔고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미래와 이후 세대들은 환경으로 인한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무 심기, 일회용품 줄이기 등의 미시적인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의사결정과 앞으로 방향성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인 것 같다.
서장원2021-05-13 10:50
재우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말씀해주신 내용과 같이 오염자부담원칙을 활용한 정부 규제를 통해 당장 시급한 환경 문제 해결의 초석을 닦고 기후 변화에 관심이 없는 기업들에 강한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장 중심 자본주의와 기업 중심의 성장이 신자유주의의 패러다임인만큼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에 매우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비해 국가와 기업 간 거버넌스가 매우 평등해진 것도 강력한 규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에 현실적 한계점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우님들께서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나오미 클라인도 책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응집되어 국민들의 목소리 나아가 세계인들의 목소리를 통한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또한 마지막 문단에서 강조해주신 것과 같이 개인들의 기후 행동 참여도 중요하겠으나 거시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인 정책과 방향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놀랐던 것이, 정부 부처별 정책 수행 예산안을 보았는데 농림축산식품부가 1년에 100조 가량의 예산을 사용하는 반면 환경부는 단 10조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별 예산이 정책의 중요도를 모두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부 내에서 환경 문제와 정책 수립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기업, 개인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관심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말씀해주신 내용과 같이 오염자부담원칙을 활용한 정부 규제를 통해 당장 시급한 환경 문제 해결의 초석을 닦고 기후 변화에 관심이 없는 기업들에 강한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장 중심 자본주의와 기업 중심의 성장이 신자유주의의 패러다임인만큼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에 매우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비해 국가와 기업 간 거버넌스가 매우 평등해진 것도 강력한 규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에 현실적 한계점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우님들께서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나오미 클라인도 책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응집되어 국민들의 목소리 나아가 세계인들의 목소리를 통한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또한 마지막 문단에서 강조해주신 것과 같이 개인들의 기후 행동 참여도 중요하겠으나 거시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인 정책과 방향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놀랐던 것이, 정부 부처별 정책 수행 예산안을 보았는데 농림축산식품부가 1년에 100조 가량의 예산을 사용하는 반면 환경부는 단 10조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별 예산이 정책의 중요도를 모두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부 내에서 환경 문제와 정책 수립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기업, 개인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관심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서원2021-05-12 23:48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과정에서 항상 볼 수 있던 주제가 기후 변화이다. 그러기에 기후 변화의 원인은 무엇이고 결과는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기후변화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기후변화 자본주의의 연관성은 직접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사용하는 등 일상생화에서 사소한 행동을 고치면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이조차 다른 것이 우선순위로 여겨지면서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느끼며 서서히 잊혀 갔던 것 같다.
자본주의적인 사회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작가의 입장은 새로웠다. 특히 2장 세계화 경제와 온난화에서는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보며 무역을 줄이며 장거리 운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제한은 특히 세계 10위 안에 드는 수출국, 한국에게도 보내는 메시지 같았다. 한국은 수출입으로 먹고 산다고도 말한다. 수출입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할 수 있는데 환경, 기후 변화,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서 이런 경제적 구조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즉 자본주의 기후변화 중 고르라면 자본주의를 고를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가 말 대로 기후변화의 저항은 역시 극단적인 자본주의인가 싶었다. 실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제’를 적극 검토한다고 하는데 한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1).
또한 운송 거리를 줄이기 위해 상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특히 가전제품 회사들이 신제품 구입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품 수명을 줄이는 마케팅 전략이 생각났다. 이 역시 회사들이 이윤 획득만을 생각하고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본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유인책을 만들어야 할까. 민영기업을 공영화 하는 방법도 제안했는데 무엇보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제도를 만들어도 그를 피하기 위한 수단만 늘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 박정한, <美-EU, '탄소 국경세' 도입 초읽기…수출 한국 비상>, 《글로벌이코노믹》, 2021.04.20, _lt_ https://cmobile.g-enews.com/view.php?ud=202104201603018540e8b8a793f7_1&md=20210420162341_R>, 2021.05.12.
자본주의적인 사회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작가의 입장은 새로웠다. 특히 2장 세계화 경제와 온난화에서는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보며 무역을 줄이며 장거리 운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제한은 특히 세계 10위 안에 드는 수출국, 한국에게도 보내는 메시지 같았다. 한국은 수출입으로 먹고 산다고도 말한다. 수출입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할 수 있는데 환경, 기후 변화,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서 이런 경제적 구조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즉 자본주의 기후변화 중 고르라면 자본주의를 고를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가 말 대로 기후변화의 저항은 역시 극단적인 자본주의인가 싶었다. 실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제’를 적극 검토한다고 하는데 한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1).
또한 운송 거리를 줄이기 위해 상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특히 가전제품 회사들이 신제품 구입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품 수명을 줄이는 마케팅 전략이 생각났다. 이 역시 회사들이 이윤 획득만을 생각하고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본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유인책을 만들어야 할까. 민영기업을 공영화 하는 방법도 제안했는데 무엇보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제도를 만들어도 그를 피하기 위한 수단만 늘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 박정한, <美-EU, '탄소 국경세' 도입 초읽기…수출 한국 비상>, 《글로벌이코노믹》, 2021.04.20, _lt_ https://cmobile.g-enews.com/view.php?ud=202104201603018540e8b8a793f7_1&md=20210420162341_R>, 2021.05.12.
손지우2021-05-12 23:53
나오미 클라인의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신자유주의 기반의 자본주의와 환경의 충돌 및 환경 속 지역사회가 어떻게 권력과 부딪치는지를 다루고 있다. 지역사회의 거대 자본 및 권력을 가진 기업들과 이를 방관하는 정부에게 어떻게 대항하고 성과를 취했는지가 중심되는 이야기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환경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고 특히 코로나 이후 특히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자본주의와 정부의 틀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관련 이슈들을 이처럼 깊게 조망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할 수 있던 기회였던 듯 싶다. 책을 읽으며 소개되는 다양한 이슈들 중 환경 단체와 기업들에 대한 고발은 몹시 자극적이기도 했다. 우리가 평소 환경 문제에 있어서 주목하고 강조해왔던 것은 개개인들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다시금 새삼 좀 더 거시적인 자본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환경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 어떤 추가적인 접근이 필요할지 학우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환경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고 특히 코로나 이후 특히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자본주의와 정부의 틀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관련 이슈들을 이처럼 깊게 조망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할 수 있던 기회였던 듯 싶다. 책을 읽으며 소개되는 다양한 이슈들 중 환경 단체와 기업들에 대한 고발은 몹시 자극적이기도 했다. 우리가 평소 환경 문제에 있어서 주목하고 강조해왔던 것은 개개인들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다시금 새삼 좀 더 거시적인 자본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환경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 어떤 추가적인 접근이 필요할지 학우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이은비2021-05-13 00:16
지우님의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소소한 개인적인 실천(텀블러 사용하기, 플라스틱 분리 배출 등)이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오던(어찌보면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의 측면에서 바라본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환경 문제를 논의할 때, 소수의 국가들에게 적용되었던 환경 보호 정책을 확대하여 여러 국가들의 공동체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이에 대한 정책 또는 협약을 새로이 구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소소한 개인적인 실천(텀블러 사용하기, 플라스틱 분리 배출 등)이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오던(어찌보면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의 측면에서 바라본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환경 문제를 논의할 때, 소수의 국가들에게 적용되었던 환경 보호 정책을 확대하여 여러 국가들의 공동체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이에 대한 정책 또는 협약을 새로이 구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양승훈2021-05-12 23:55
코로나가 정말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무엇보다 큰 영향을 준 부분은 바로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 고등학교 지리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교과서의 환경 보호 관련 챕터를 다 끝내신 후 한 번 생각해 보라며 한 다큐를 보여주셨습니다.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고 주요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몇몇 음모론자들의 과장일 뿐이며 사실 아무 문제 없다' 라는 주장을 모으고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내용인 걸로 기억합니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말은 참 아이러니하게 너무 당연한 상식처럼 느껴지지만서도 그걸 부정한다 해서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슷하게 '당연한 말'인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를 부정할 때와는 다르게 조금 가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때 보았던 다큐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론 = 음모론' 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착한 기업들과 선진 시민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 파괴에 대해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특히나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2018년 이후 ESG 라는 단어를 검색한 구글 유저 비율이 수십배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물론 트렌드를 쫓기 위해 환경에 대해 큰 생각 없이 검색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마저도 트렌드를 쫓게 만든 방향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ESG에 관심이 많은데 이 책과 관련 논문들을 읽는 내내 ESG와 관련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ESG나 환경 보호나 아직까지 논란이 많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젓가락/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신 사용한 다회용 식기를 세제를 사용하여 설거지한다면 환경에 +가 많을까요 -가 많을까요. 또 다른 예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탄소 사용량이 많이 줄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또한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능하게 한 세계의 수많은 데이터 센터들이 현재 호주보다 연간 더 많은 전기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술적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전자기기의 잦은 교체를 요구하는데 이로 인해 연간 5000만 톤의 랩탑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1초에 1000개에 달하는 양입니다. 얼마 전 들은 컨티뉴(자동차에서 나오는 폐가죽을 활용한 가방 제조 업체) 대표님은 친환경 기업으로 알려진 파타고니아의 소재 또한 그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생산되기에 환경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합니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들은 이미 너무 우리 삶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부분이고 또한 우리의 그런 작은 행동들은 연쇄적으로 다른 행동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떤 행동 하나만으로 그게 환경에 좋다 / 나쁘다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한 정보들이 없고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는 각 기업들이나 산업들이 자신들에 유리하게끔 교묘하게 정보를 편집하는 (거짓은 아니지만) 이유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 큰 논의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아직 많지 않지만 개인적 / 시민적 수준에서 환경에 긍정적인 실천을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눈에 확연히 보이게 많아지고 있는 건 분명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더 잘 안다는' 이유로 자신의 행동이 더 우월하다며 남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텀블러를 사용하는 행위는 오히려 오래 사용하지 않을 경우 더 많은 산업 폐기물을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이야' 라거나 '파타고니아의 옷을 입는 건 너가 잘 몰라서 그래. 그건 오히려 환경에 좋지 않아', '환경을 위한다면서 비건이 아니라고? 옳지 않아' 등으로 남의 노력을 무시하곤 합니다. 이는 (우선 어떤 정보가 정확한지 잘 모르는 상황임에도) 사람들이 작은 행동부터 실천에 옮기고 점점 큰 변화로 나아가는 것을 저해할 것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더 드러내기 좋은' 환경 보호 행위들 (기업으로 따지자면 그린 워싱) 을 늘릴 것입니다. 그래서 학계 / 산업계 / 국제적 차원에서는 엄밀한 검증 과정이 있어야 겠지만 개인적 / 시민적 수준에서는 작은 행동이라도 응원하고, 그와 동시에 환경과 관련된 정보들을 공동으로 모으고 공유해 천천히 그 작은 행동들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 모습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론 = 음모론' 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착한 기업들과 선진 시민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 파괴에 대해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특히나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2018년 이후 ESG 라는 단어를 검색한 구글 유저 비율이 수십배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물론 트렌드를 쫓기 위해 환경에 대해 큰 생각 없이 검색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마저도 트렌드를 쫓게 만든 방향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ESG에 관심이 많은데 이 책과 관련 논문들을 읽는 내내 ESG와 관련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ESG나 환경 보호나 아직까지 논란이 많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젓가락/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신 사용한 다회용 식기를 세제를 사용하여 설거지한다면 환경에 +가 많을까요 -가 많을까요. 또 다른 예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탄소 사용량이 많이 줄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또한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능하게 한 세계의 수많은 데이터 센터들이 현재 호주보다 연간 더 많은 전기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술적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전자기기의 잦은 교체를 요구하는데 이로 인해 연간 5000만 톤의 랩탑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1초에 1000개에 달하는 양입니다. 얼마 전 들은 컨티뉴(자동차에서 나오는 폐가죽을 활용한 가방 제조 업체) 대표님은 친환경 기업으로 알려진 파타고니아의 소재 또한 그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생산되기에 환경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합니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들은 이미 너무 우리 삶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부분이고 또한 우리의 그런 작은 행동들은 연쇄적으로 다른 행동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떤 행동 하나만으로 그게 환경에 좋다 / 나쁘다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한 정보들이 없고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는 각 기업들이나 산업들이 자신들에 유리하게끔 교묘하게 정보를 편집하는 (거짓은 아니지만) 이유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 큰 논의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아직 많지 않지만 개인적 / 시민적 수준에서 환경에 긍정적인 실천을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눈에 확연히 보이게 많아지고 있는 건 분명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더 잘 안다는' 이유로 자신의 행동이 더 우월하다며 남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텀블러를 사용하는 행위는 오히려 오래 사용하지 않을 경우 더 많은 산업 폐기물을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이야' 라거나 '파타고니아의 옷을 입는 건 너가 잘 몰라서 그래. 그건 오히려 환경에 좋지 않아', '환경을 위한다면서 비건이 아니라고? 옳지 않아' 등으로 남의 노력을 무시하곤 합니다. 이는 (우선 어떤 정보가 정확한지 잘 모르는 상황임에도) 사람들이 작은 행동부터 실천에 옮기고 점점 큰 변화로 나아가는 것을 저해할 것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더 드러내기 좋은' 환경 보호 행위들 (기업으로 따지자면 그린 워싱) 을 늘릴 것입니다. 그래서 학계 / 산업계 / 국제적 차원에서는 엄밀한 검증 과정이 있어야 겠지만 개인적 / 시민적 수준에서는 작은 행동이라도 응원하고, 그와 동시에 환경과 관련된 정보들을 공동으로 모으고 공유해 천천히 그 작은 행동들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 모습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성민2021-05-13 12:40
안녕하세요! 승훈님 글을 읽고 ESG를 처음 알았고, 관련 글을 읽어보니 ESG 또한 기업경영의 측면에서 기후문제를 해결하는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승훈님이 쓴 내용처럼 단순히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ESG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서비스의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 효율성과 탄소감축이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각 제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환경보호에 더 올바른 제품과 기업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최서원2021-05-12 23:57
환경마저, 시장의, 권력의 일부가 되어서는 우리는 절대로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기적적 성공을 위한 '새롭고' '모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한 참신한 운동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운동들을 모두 모아 여러 세력이 시장에도, 권력에도 영향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하나의 목적을 위해 결집하는 것, 그러한 공동체의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일테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지구온난화와 온갖 환경문제를 만들어 온 것은, 현재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며' 캠페인을 벌이는 선진국들이다. 그들이 과거에 환경오염을 일으켰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논의와 국제적 규제의 필요성이 제안되는 현 시점에서, 사실 그 국가들에게는 온실가스를 덜 쓸 수 있는, 지금의 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보다 친환경적인 방식의 적용이 가능하다. 반면, 지금껏 화석연료의 덕을 비교적 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국가들, 특히 이제야 화석연료를 통해 국가 발전을 꾀하려는 경우, 그들에게 친환경적 방식을 강요한다면, 그들이 '잘 살게' 되기란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측면에서 부의 재분배가 절실하며, 부의 재분배를 위한 수단이자, 목적으로 환경을 활용해야함을 주장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2040년부터 국가별 탄소배출량을 기업별 혹은 가구별 얼마 이하로 강제하는 국제적 규제를 만들어낸다면, 선진국들은 그때까지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이나, 다양한 친환경적 발전 방식을 연구하여 어떻게든 대안을 만들어 내 우리 국가가 환경 보호에 일조함을 당당히 밝힐 수 있겠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어떠할까? 결국 환경 보호에도 '자본'이 필요한 상황인만큼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삶에서 '환경'이라는 단어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는 귀에 못 박히게 들었지만,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 중이라는 이야기도 자주 들어왔지만, 여전히 어릴 적과 같이 내 주변의 공산품들은 과대포장으로 가득하고, 내가 택배 하나를 시키면 버려야 할 쓰레기가 주변에 가득하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이슈도, 변화도 없었기에 어쩌면 내가 환경 보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환경에 무관심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책속에서 환경에 대한 국제적 논의들과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뜻 깊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지구온난화와 온갖 환경문제를 만들어 온 것은, 현재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며' 캠페인을 벌이는 선진국들이다. 그들이 과거에 환경오염을 일으켰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논의와 국제적 규제의 필요성이 제안되는 현 시점에서, 사실 그 국가들에게는 온실가스를 덜 쓸 수 있는, 지금의 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보다 친환경적인 방식의 적용이 가능하다. 반면, 지금껏 화석연료의 덕을 비교적 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국가들, 특히 이제야 화석연료를 통해 국가 발전을 꾀하려는 경우, 그들에게 친환경적 방식을 강요한다면, 그들이 '잘 살게' 되기란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측면에서 부의 재분배가 절실하며, 부의 재분배를 위한 수단이자, 목적으로 환경을 활용해야함을 주장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2040년부터 국가별 탄소배출량을 기업별 혹은 가구별 얼마 이하로 강제하는 국제적 규제를 만들어낸다면, 선진국들은 그때까지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이나, 다양한 친환경적 발전 방식을 연구하여 어떻게든 대안을 만들어 내 우리 국가가 환경 보호에 일조함을 당당히 밝힐 수 있겠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어떠할까? 결국 환경 보호에도 '자본'이 필요한 상황인만큼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삶에서 '환경'이라는 단어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는 귀에 못 박히게 들었지만,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 중이라는 이야기도 자주 들어왔지만, 여전히 어릴 적과 같이 내 주변의 공산품들은 과대포장으로 가득하고, 내가 택배 하나를 시키면 버려야 할 쓰레기가 주변에 가득하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이슈도, 변화도 없었기에 어쩌면 내가 환경 보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환경에 무관심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책속에서 환경에 대한 국제적 논의들과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뜻 깊었다.
김윤빈2021-05-13 13:06
서원님 안녕하세요!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특히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하고자 하는 개발도상국들과의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 시작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신재생 에너지와 친환경적 발전 방식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으며 그것들을 개발시킬 자본조차 상대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은 차치하고 환경 보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취하려면 다양한 국가들의 현상태를 이해하고 함께 맞춰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해보입니다.
박지유2021-05-13 13:55
안녕하세요 서원님, 저 역시 지구온난화라는 말은 숱하게 들었지만 큰 경각심을 갖지 못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책을 읽었답니다... 선진국은 '친환경 기술'로의 전환이 가능한 국력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잘 지적해주신 것 같습니다. 책에서 온실가스 측정 시스템은 자국 내에서 생산된 오염만 책임질 뿐이라며 중국 등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 전가를 비판하는 내용이 소개돼 있었는데, 탄소 배출량에 대한 섬세한 기준 개발이 보다 '공평한' 부담을 위한 한 가지 대안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동익2021-05-12 23:59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저자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상투적인 메시지로 보이지만 저자는 그가 지향하는 이상에 어울리게도, 세계 각지의 사례를 들어가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자 시도합니다. 기후 변화를 인정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가치관 변화의 확산을 막기 위한 우파 연구소의 존재, 자유무역과 기후 변화의 관계, 허리케인 샌디를 통해 드러난 시스템의 붕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그에 반해 우리를 방관하게끔 만드는 현존 가치관이 1부에서 다뤄집니다. 2부에서는 환경 보호 단체들과 대기업 사이 충격적인 협력 관계, 환경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욕심을 채울 뿐인 억만장자의 사례, SF적인 지구공학의 현재 모습이 폭로됩니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쟁, 그것의 낙관적인 면과 현실적 한계,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전 지구적 협력이 그려지고, 작가 개인의 경험을 통해 어머니 자연을 긍정하며 책은 마무리됩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여담이지만 군대에 있던 동안 우연히, 이번 특강을 맡아주신 유종일 원장님의 ‘위기의 경제’를 읽었었는데, 세상을 경제 이론을 통해 설명하려던 크루그먼이 ‘진보주의자의 양심’(역서 제목은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면으로 선회했다는 원장님의 인상이 적혀 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너무나 복잡해서 개인으로서는 도통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는 합니다. 그럼에도 라이프아카데미 첫 수업이었던, 임동균 교수님의 ‘포스트 팬데믹과 한국 사회’ 수업을 통해 배웠듯, 개인들의 합으로서 사회가 있고, 해당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가치관이란 것은 분명 존재한단 생각도 듭니다.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점은 그것이 어떻게 바뀌는지, 현재 우리가 시대가 요구하는, 적절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성찰해내기가 도통 어렵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마 해당 수업의 발제가 가장 인기가 있었던 까닭도 여기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곧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들,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연구들로 가득한 이 책을 읽더라도, 이내 힘겨운 일상을 버텨내야 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리라는 비관이 생겨버리고는 합니다.
또 한 가지 머릿속을 스쳤던 바는, 제가 국문학을 주 전공으로 해서인지, 한국의 위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극동아시아의 조그마한 국가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몹시 미약하다는 인상입니다. 가령 나이지리아, 이집트, 그리스, 캐나다, 미국, 브라질 등 세계 곳곳이 이 책에는 등장합니다. 물론 저자가 캐나다 출신이라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그러나 책에서 한국이 등장하는 건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이전에 한국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해당 역할을 했다는 짧은 언급 정도가 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주요한 국가인 일본, 중국의 분량도 크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중동의 석유 개발사를 다룬 ‘탄소 민주주의’라는 책을 읽다가 지명 등이 너무 낯설고 내용도 익숙하지 않아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던 세계는, 실제로 세계를 이끌어나간다고 칭해지는 국가들이 보기에는 한 지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탄소국경조정세를 다룬 월간 통상의 내용을 보면서, 약간은 생각이 바뀌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1위라는 점이야 OECD 국가 중 빠른 성장을 이룬 국가가 거의 없으니 그렇겠구나, 하고 넘겼지만 우리나라가 영국보다 많이, 독일과 비슷한 정도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는 다음 장의 내용을 보고는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새삼 와 닿았습니다. 물론 영국은 금융업 위주의 국가이고, 독일은 책에서도 다루어졌듯 재생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국가 중 하나이므로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겠지만 작은 나라이기만 하지도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여담이지만 군대에 있던 동안 우연히, 이번 특강을 맡아주신 유종일 원장님의 ‘위기의 경제’를 읽었었는데, 세상을 경제 이론을 통해 설명하려던 크루그먼이 ‘진보주의자의 양심’(역서 제목은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면으로 선회했다는 원장님의 인상이 적혀 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너무나 복잡해서 개인으로서는 도통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는 합니다. 그럼에도 라이프아카데미 첫 수업이었던, 임동균 교수님의 ‘포스트 팬데믹과 한국 사회’ 수업을 통해 배웠듯, 개인들의 합으로서 사회가 있고, 해당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가치관이란 것은 분명 존재한단 생각도 듭니다.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점은 그것이 어떻게 바뀌는지, 현재 우리가 시대가 요구하는, 적절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성찰해내기가 도통 어렵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마 해당 수업의 발제가 가장 인기가 있었던 까닭도 여기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곧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들,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연구들로 가득한 이 책을 읽더라도, 이내 힘겨운 일상을 버텨내야 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리라는 비관이 생겨버리고는 합니다.
또 한 가지 머릿속을 스쳤던 바는, 제가 국문학을 주 전공으로 해서인지, 한국의 위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극동아시아의 조그마한 국가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몹시 미약하다는 인상입니다. 가령 나이지리아, 이집트, 그리스, 캐나다, 미국, 브라질 등 세계 곳곳이 이 책에는 등장합니다. 물론 저자가 캐나다 출신이라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그러나 책에서 한국이 등장하는 건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이전에 한국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해당 역할을 했다는 짧은 언급 정도가 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주요한 국가인 일본, 중국의 분량도 크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중동의 석유 개발사를 다룬 ‘탄소 민주주의’라는 책을 읽다가 지명 등이 너무 낯설고 내용도 익숙하지 않아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던 세계는, 실제로 세계를 이끌어나간다고 칭해지는 국가들이 보기에는 한 지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탄소국경조정세를 다룬 월간 통상의 내용을 보면서, 약간은 생각이 바뀌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1위라는 점이야 OECD 국가 중 빠른 성장을 이룬 국가가 거의 없으니 그렇겠구나, 하고 넘겼지만 우리나라가 영국보다 많이, 독일과 비슷한 정도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는 다음 장의 내용을 보고는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새삼 와 닿았습니다. 물론 영국은 금융업 위주의 국가이고, 독일은 책에서도 다루어졌듯 재생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국가 중 하나이므로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겠지만 작은 나라이기만 하지도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윤재빈2021-05-13 02:32
안녕하세요 동익님.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너무나 복잡해서 개인으로서는 도통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는 합니다.' 라고 써주셨는데, 저도 이 부분에 동의합니다.
평소 자본주의 및 탈자본주의에 관심이 많은데, 사실 구조를 바꾼다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사회를 바꾸자!'고 생각은 하지만, 사회가 무엇인지, 존재하기는 하는지, 사회 속의 개인을 바꿔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 지 굉장히 막연합니다.
지금 책 제목이 생각나서 추천해드리지 못하는 점이 굉장히 아쉬운데, 사회운동가의 자서전을 본 책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그 분은 구체적인 사건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지 고민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효과 있는 방식을 실천한 것입니다. 즉, 하나의 정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문제에 접근 가능하도록 한 것입니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의식이 있다면, 다양한 사건들을 접할 때 새로운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신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이 책의 문제의식이 유효하다고 느꼈고, 오늘 책을 읽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너무나 복잡해서 개인으로서는 도통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는 합니다.' 라고 써주셨는데, 저도 이 부분에 동의합니다.
평소 자본주의 및 탈자본주의에 관심이 많은데, 사실 구조를 바꾼다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사회를 바꾸자!'고 생각은 하지만, 사회가 무엇인지, 존재하기는 하는지, 사회 속의 개인을 바꿔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 지 굉장히 막연합니다.
지금 책 제목이 생각나서 추천해드리지 못하는 점이 굉장히 아쉬운데, 사회운동가의 자서전을 본 책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그 분은 구체적인 사건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지 고민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효과 있는 방식을 실천한 것입니다. 즉, 하나의 정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문제에 접근 가능하도록 한 것입니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의식이 있다면, 다양한 사건들을 접할 때 새로운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신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이 책의 문제의식이 유효하다고 느꼈고, 오늘 책을 읽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은비2021-05-13 00:04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는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문제는 탄소가 아닌 ‘자본주의’에서 발생한다고 제시하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발상을 비튼다. 저자는 기후 위기는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이야기하며 탈자본주의를 외친다. 사실 자본주의는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고 그 형태가 너무도 공고하다. 나 역시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환경 보호를 위한 소소한 실천(나오미 클라인에 따르면 이 또한 기후 변화를 외면하는 형태이지만)을 해오고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저자의 주장은 매우 급진적이고 글에 쓰인 표현들 또한 과격하다. 특히 지구의 날을 맞이한 1시간 전등 끄기나 분리수거와 같은 일상적인 노력을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서술한 내용은 다소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했다는 점에서 범지구적인 구조 변화를 주장하는 저자의 글은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윤창2021-05-13 02:14
안녕하세요 은비님 저는 개인적으로 일상적인 노력이 "상대적으로"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일상적인 노력은 수치적으로는 굉장히 미약합니다. 현대제철이 2015년 납부한 전기비만 1조 6천억원이며, 저렴한 산업용 전기가격을 고려하면 일반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전기절약은 티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는 실천은 즉,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인식을 대중의 머릿속에 깊이 새기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의 인식이 피같이 자연스러워진 자본주의에 물음을 던지는 단계까지는 이르르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장연주2021-05-13 00:44
나오미 클라인은 진실이 지나치게 높은 정서적, 지적, 금전적 대가를 요구할 때 사람들은 부정론으로 기울기 쉽다고 했다. 가령 기후변화와 동물권을 이유로 채식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는데, 한편에서는 이는 이미 형성된 육식 위주의 식문화에 대한 큰 도전이기에 문제 자체를 외면해 버리는 담론도 함께 커지고 있다. 주제 자체에 피로감을 호소하며 빤히 존재하는 문제를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모든 문제제기를 무력화하기에 문제적이다. 환경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 의식은 행동과 실천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는 기후변화 문제가 당장 내일 닥친 일보다는 덜 중요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혼자 뭘 한다고 이 큰 지구에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을까 싶기도 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이미 너무 편리한 것들에 익숙해져 버려 이것들을 포기하는 데 상당한 희생이 필요한데, 이는 상대적으로 시간과 비용 소모적이다. 생각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이라서 나오미 클라인 역시 책의 초반부터 쭉 '근본적 변환'을 주장한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 하에서 기후변화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기후를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용시켜 탄생한 '기후 금융' 등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보다 자본주의를 이용해서 기후변화를 조금이나마 막는 게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을까? 사람들의 인식 깊이 박혀 있는 (일종의 종교와도 같은) 자본주의를 흔드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 발생할 혼란과 갈등 때문에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은 지금보다 더 뒷전이 될 수도 있다. 기후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있는 방안, 즉, 기후변화를 막는 게 '돈이 되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 비록 마냥 바람직하진 않더라도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이 투자자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ESG 경영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25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가 시행된다. '그린워싱'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함께 떠오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전보다 확실히 환경과 지역사회, 거버넌스에 신경을 쓰는 정책과 문화가 자리잡았으므로 기후변화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방안을 열심히 고민하다보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윤창2021-05-13 02:02
책이 꽤 강력한 논조로 쓰여있어서 전반적으로 주장을 강요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불편했다.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에는 꽤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재화의 생산과정에 대해 첨언하고 싶어 글을 쓴다.
거대한 사슬로 엮인 전지구적 체인은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만들어지고 공급되는지 가늠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채취주의는 희생을 통한 무한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데, 선진국에 사는 우리는 최종 생산물을 얻게 될 뿐 어떤 과정과 희생이 치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미약하지만 제품에 붙어있는 친환경 마크나 기업들이 내놓는 홍보물, 뉴스를 통해 조금이나마 인지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런 것들도 호도되고 기만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얼마전에 본 넷플릭스 다큐 <씨스피러시>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큐는 수산물 남획이 지구 탄소 생태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해양 생태계를 송두리째 파멸에 몰아붙이고 있는 사실을 취재한다. 혼획되어 죽는 해양생물들이 해양쓰레기로 죽는 생물의 수보다 적게는 수십배 많게는 수백배가 넘는다고 한다.(다큐에 따르면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힌 바다거북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메이저 환경단체들이 이렇게 어자원을 파멸시키는 수산물 시장을 비판하지 않았다. 단순히 플라스틱 제품을 덜쓰고 친환경 마크가 달린 제품을 소비하라는 권장사항에 감독은 의문을 갖고 환경단체의 수익구조를 조사한다. 참치캔에 Dolphin Safe(어획 중 돌고래를 혼획하지 않는다는 인증) 인증을 부여하는 한 단체는 알고보니 대부분의 재원을 수산물 유통기업 유니레버로부터 얻었고, 조사하게 된 다른 해양환경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Dolphin safe는 어이없게 (인증을 부여했음에도) 참치 포획중 돌고래가 혼획됐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발을 뺐다. 즉, 친환경도 돈이 되기 때문에 "친환경으로 둔갑한 제품"을 파는 경우가 다분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소비자를 기만하기 위해 친환경으로 "포장"을 해야 더 잘 팔린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겠으나, 문제는 그것이 포장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친환경은 조금만 검증을 해보더라도 허울 뿐인 경우가 많다. 정량적 데이터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기업비밀이라서) 친환경 인증을 획득한 디스플레이를 생산한다는 LG 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은 전국에서 전력소모량 10위 안이다. 기억이 맞다면 3,4위 쯤 됐던 듯하다.(출처는 lg 공장 내부 사원게시판) 한국의 경우 전력은 대부분 석탄화력발전에서 온다. 저탄소 기술이란 의미도 결국 "전력"을 아끼고 소재를 바꾼다는 것인데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되는 물질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하다 못해 공장의 기계 유지보수, 청결유지 등도 대부분 PVC, 폴리에스테르, 우레탄 등 석유화학제품으로 이루어진다. 무엇을 얼마나 저감하고 바꾸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기업에게 이익이 되는 기술을 듣기 좋게 포장했을 뿐이다. 여전히 거대공급체인의 장막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두텁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사슬로 엮인 전지구적 체인은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만들어지고 공급되는지 가늠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채취주의는 희생을 통한 무한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데, 선진국에 사는 우리는 최종 생산물을 얻게 될 뿐 어떤 과정과 희생이 치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미약하지만 제품에 붙어있는 친환경 마크나 기업들이 내놓는 홍보물, 뉴스를 통해 조금이나마 인지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런 것들도 호도되고 기만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얼마전에 본 넷플릭스 다큐 <씨스피러시>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큐는 수산물 남획이 지구 탄소 생태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해양 생태계를 송두리째 파멸에 몰아붙이고 있는 사실을 취재한다. 혼획되어 죽는 해양생물들이 해양쓰레기로 죽는 생물의 수보다 적게는 수십배 많게는 수백배가 넘는다고 한다.(다큐에 따르면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힌 바다거북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메이저 환경단체들이 이렇게 어자원을 파멸시키는 수산물 시장을 비판하지 않았다. 단순히 플라스틱 제품을 덜쓰고 친환경 마크가 달린 제품을 소비하라는 권장사항에 감독은 의문을 갖고 환경단체의 수익구조를 조사한다. 참치캔에 Dolphin Safe(어획 중 돌고래를 혼획하지 않는다는 인증) 인증을 부여하는 한 단체는 알고보니 대부분의 재원을 수산물 유통기업 유니레버로부터 얻었고, 조사하게 된 다른 해양환경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Dolphin safe는 어이없게 (인증을 부여했음에도) 참치 포획중 돌고래가 혼획됐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발을 뺐다. 즉, 친환경도 돈이 되기 때문에 "친환경으로 둔갑한 제품"을 파는 경우가 다분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소비자를 기만하기 위해 친환경으로 "포장"을 해야 더 잘 팔린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겠으나, 문제는 그것이 포장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친환경은 조금만 검증을 해보더라도 허울 뿐인 경우가 많다. 정량적 데이터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기업비밀이라서) 친환경 인증을 획득한 디스플레이를 생산한다는 LG 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은 전국에서 전력소모량 10위 안이다. 기억이 맞다면 3,4위 쯤 됐던 듯하다.(출처는 lg 공장 내부 사원게시판) 한국의 경우 전력은 대부분 석탄화력발전에서 온다. 저탄소 기술이란 의미도 결국 "전력"을 아끼고 소재를 바꾼다는 것인데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되는 물질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하다 못해 공장의 기계 유지보수, 청결유지 등도 대부분 PVC, 폴리에스테르, 우레탄 등 석유화학제품으로 이루어진다. 무엇을 얼마나 저감하고 바꾸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기업에게 이익이 되는 기술을 듣기 좋게 포장했을 뿐이다. 여전히 거대공급체인의 장막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두텁다는 생각이 든다.
윤재빈2021-05-13 02:20
나는 경제학부에 입학한 이후로 지금까지 여전히 경제학과 ‘불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류 경제학과 불화를 겪고 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생산량의 증대가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또 성장에 반대되는 모든 제약 조건을 ‘비효율’로 묶어 놓고, 자신의 세계관을 끝도 없이 확장해나간다. 그러나 감히 얘기하건대 자본주의가 아무리 고도화되더라도 성장이 스스로 인간 소외, 빈부 격차, 환경 파괴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경제학과 친해질 수 없다고 느꼈고, 다른 세계관을 구축하고자 하는 다양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의 내용에 많은 동의를 할 수 있었고, 저자가 그리하여 이 문제의 해법을 어떻게 보는 지 읽으면서 점차 궁금해졌다. 한편, 억만장자들의 ‘구세주’ 자처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지적 역시 유효하다고 느껴졌다. 설령 한 명의 억만장자가 시도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전히 자본주의는 환경을 더 파괴하도록 박차를 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 자체를 바꾸고 속도를 늦춰나가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문제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미시적 관점에서 연대하여 사회를 바꾸는 운동에 기여하자는 글쓴이의 주장에 공감했다. 앞으로 환경 문제에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박지유2021-05-13 04:24
저자는 서문에서 생태계 위기에 대해 "기억과 망각을 단속적으로 되풀이"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데, 나 역시 그러한 "건망증" 환자였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지금까지는 기후 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일상적 실천이나, 화석연료에서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 대안적인 지역공동체 등 점진적인 해결책에 주목했지, 기후 변화에 대해 전면적인 "공포감"을 갖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맹목적인 중도주의로는 문제에 다가갈 수 없다며, 경제 시스템과 지구 시스템 간의 "전쟁"을 선포한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가 탈냉전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동시기적으로 이루어지며 동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었고, 지금까지 '워싱턴컨센서스'와 세계무역기구를 기후변화 문제와 함께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했다. 기후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크게 동감했다. 기후위기는 빈곤, 독점자본, 민주주의의 퇴조 등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한 저항운동은 전사회적 '선순환'을 가져오는 '기폭제'의 가능성을 가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저자의 날카로운 현상진단과 달리 저자가 내린 '처방전'에는 다소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세계관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산발적인 대중운동은 조직화되고 제도권과 연계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근대 이후 지속적으로 진화하며 권력을 공고히 해 왔다. 그렇기에 '블로카디아'와 같이 타협의 여지 없이 급진적인 저항운동은 오히려 기득권으로부터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다층적인 접근방법을 모두 열어두고 기후변화문제에 수용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어쩌면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을까.
조현호2021-05-13 09:24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 책을 어떤 의도로 쓰는지도 알겠고 그 취지와 목표 또한 아주 바람직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앞서 읽었던 능력주의에서는 구체적인 해법이 등장하지 않은 반면, 나오미는 기후 변화 대책을 위해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비용을 확보하는 구체적인 방법 등 다양한 부분을 아주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조금 현실적으로 보면 결국 현재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세계적인 대기업들을 상대를 하는데 그들의 이익이 아닌 노동자와 취약 계층의 이익을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미 대기업들은 정책 변화를 주지 않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하고 있고 이것을 뒤엎을 만한 구조적인 변화는 필요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윤빈2021-05-13 10:14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환경 단체와 자본주의 산업의 불편한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탄소 거래제의 실패를 분석하면서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는 이상 기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 같다. 이러한 강경한 논조의 책을 읽으니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 것인가와 같은 무력함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개인의 미시적인 움직임은 기후 변화의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기업 차원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환경감수성을 길러야 함이다.
코로나 방역과 경제 활성화는 같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코로나 방역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경제 활성화를 유지하기 위해 버텨온 느낌이다. 유종일 원장은 이러한 한계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전환적 뉴딜’과 ‘사람중심경제’를 제시한다. 만약 신자유적 논리로 코로나 상황에서의 경제문제에 접근한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할 필요가 없어지고, 언택트 경제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도태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공공성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리한 봉쇄가 아닌 선진적 방역 시스템을 제시한 것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경제를 선도한다면 우리나라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는 선진국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환적 뉴딜’, ‘사랑중심경제’, ‘지속 가능한 경제’를 시행하기 앞서 현실적인 고민은 분명히 필요하다.
코로나 방역과 경제 활성화는 같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코로나 방역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경제 활성화를 유지하기 위해 버텨온 느낌이다. 유종일 원장은 이러한 한계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전환적 뉴딜’과 ‘사람중심경제’를 제시한다. 만약 신자유적 논리로 코로나 상황에서의 경제문제에 접근한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할 필요가 없어지고, 언택트 경제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도태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공공성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리한 봉쇄가 아닌 선진적 방역 시스템을 제시한 것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경제를 선도한다면 우리나라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는 선진국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환적 뉴딜’, ‘사랑중심경제’, ‘지속 가능한 경제’를 시행하기 앞서 현실적인 고민은 분명히 필요하다.
조성민2021-05-13 12:32
불편한 진실보다 조금 더 불편한 진실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주의 중심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활동이 불러오는 외부효과에 대한 책임, 특히 환경과 대기 오염,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선진국들이 그동안 배출한 탄소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피해는 적도 인근의 개발도상국이 고스란히 입으면서 기후문제는 빈부격차까지 더해진 복합적인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탈규제 중심, 무역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각 국가는 전 지구적인 측면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소비하며 모든 국가가 이러한 무한경쟁에 들어가면서 어느 나라도 기후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를 보면 세계 곳곳에서 환경 기후의 변화로 인해 순식간에 문명이 몰락하는 사례가 보인다. 외부의 침입이 아닌 단순히 기후의 변화로 인해서 국가 기반이 흔들리는데, 이렇듯 문명이 몰락하는 시기에 각종 종교 관련 유물의 출토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문명에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기득권층은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화하기 위해 종교에 더욱 공을 들여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였다. 현재에도 기온이 상승하고 이상기후가 더욱 빈번히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추종자들은 더 많은 서비스, 기계를 발명하여 사용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기득권층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지키려고 하는 행태에 일종의 팩폭을 가함과 동시에, 역으로 기상이변을 막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공동체,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 국면이 찾아오면서 기존에 기업 중심, 시장 중심의 경제 시스템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그간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폐단과 그 반성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국가나 기업의 환경파괴 행위들이 드러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거대한 사건 혹은 급작스러운 변화에 의한 반응으로 이러한 흐름이 촉진되었지만, 이를 유지하여 실제로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금융자본주의의 경제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후 인류가 이루어 낸 가장 거대한 업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를 보면 세계 곳곳에서 환경 기후의 변화로 인해 순식간에 문명이 몰락하는 사례가 보인다. 외부의 침입이 아닌 단순히 기후의 변화로 인해서 국가 기반이 흔들리는데, 이렇듯 문명이 몰락하는 시기에 각종 종교 관련 유물의 출토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문명에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기득권층은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화하기 위해 종교에 더욱 공을 들여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였다. 현재에도 기온이 상승하고 이상기후가 더욱 빈번히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추종자들은 더 많은 서비스, 기계를 발명하여 사용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기득권층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지키려고 하는 행태에 일종의 팩폭을 가함과 동시에, 역으로 기상이변을 막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공동체,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 국면이 찾아오면서 기존에 기업 중심, 시장 중심의 경제 시스템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그간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폐단과 그 반성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국가나 기업의 환경파괴 행위들이 드러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거대한 사건 혹은 급작스러운 변화에 의한 반응으로 이러한 흐름이 촉진되었지만, 이를 유지하여 실제로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금융자본주의의 경제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후 인류가 이루어 낸 가장 거대한 업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혜민2021-05-13 13:37
레이첼 카슨의 역사적인 환경문제 고발서인 '침묵의 봄'은 살충제의 남요용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전세계 시민에게 알렸다. 책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정부나 전문가들을 믿고, 그들이 환경문제를 잘 해결해나가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들에게 역할을 위임하고 있던 시민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연대하기 시작했다. 많은 환경단체가 양산되었고 많은 이들이 환경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또 하나의 강력한 환경 문제 고발서가 있다. 이번에 일게 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해결책이 있음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탄소 문제를 고발한다. 지금껏 많은 이들이 환경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에는 그의 방안이 기술적으로 미비하거나, 이에 대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을 착취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문제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때문으로, 많은 기업들이 이윤창출을 위해 환경문제를 등한시하고, 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 크다. 저자는 이에 현재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nearly f**cked'된 지구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대변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를 이끄는 원동력에는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반기 제기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시민 참여의 저력의 강력한 힘을 역사를 통해서 바라본 바 있다. 저자는 이를 나열하며 시민에게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저력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 저자가 주의깊게 말하는 것은, 지금껏 이루어진 사회문제의 경우 정책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해결은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측면에서의 문제 해결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기에 과거 해결되었다고 생각되는 사회문제들이 잔여하는 부정적 영향을 남기고 있고, 이제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벼놔까지 이루어내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든 의문은 두가지이다.
첫째, 저자의 주장은 현실성이 있는가? 과거 인간의 직접적 생존과 연관된 많은 사회 문제들에서 경제적 측면에서의 해결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물론 현대 시민의식이 성장하였다는 점에서 과거와의 차이가 있지만,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확언할 수 있는가? 환경 문제 또한 예전의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측면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악화만 될 수도 있을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의 변화가 필수적인데, 이윤 추구를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기업이 최대효율을 낼 수 있는 화석연료를 포기하면서까지 환경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 현실적인 제언인가?
둘째, 시민의 참여와 연대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시민들이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이 문제를 너무 거대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시민들이 '해결 가능한 문제'로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 이들을 참여로 이끌어낼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편, 저자는 시민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 SNS가 좋은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어떠한 방식으로 SNS가 환경 문제 해결 동기 유발에 있어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학우분들과 논의하고 싶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해결책이 있음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탄소 문제를 고발한다. 지금껏 많은 이들이 환경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에는 그의 방안이 기술적으로 미비하거나, 이에 대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을 착취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문제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때문으로, 많은 기업들이 이윤창출을 위해 환경문제를 등한시하고, 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 크다. 저자는 이에 현재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nearly f**cked'된 지구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대변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를 이끄는 원동력에는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반기 제기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시민 참여의 저력의 강력한 힘을 역사를 통해서 바라본 바 있다. 저자는 이를 나열하며 시민에게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저력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 저자가 주의깊게 말하는 것은, 지금껏 이루어진 사회문제의 경우 정책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해결은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측면에서의 문제 해결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기에 과거 해결되었다고 생각되는 사회문제들이 잔여하는 부정적 영향을 남기고 있고, 이제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벼놔까지 이루어내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든 의문은 두가지이다.
첫째, 저자의 주장은 현실성이 있는가? 과거 인간의 직접적 생존과 연관된 많은 사회 문제들에서 경제적 측면에서의 해결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물론 현대 시민의식이 성장하였다는 점에서 과거와의 차이가 있지만,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확언할 수 있는가? 환경 문제 또한 예전의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측면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악화만 될 수도 있을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의 변화가 필수적인데, 이윤 추구를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기업이 최대효율을 낼 수 있는 화석연료를 포기하면서까지 환경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 현실적인 제언인가?
둘째, 시민의 참여와 연대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시민들이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이 문제를 너무 거대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시민들이 '해결 가능한 문제'로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 이들을 참여로 이끌어낼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편, 저자는 시민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 SNS가 좋은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어떠한 방식으로 SNS가 환경 문제 해결 동기 유발에 있어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학우분들과 논의하고 싶다.
포스트팬데믹 @ 경제(그린뉴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지음 |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15일 출간
목차
추천의 말
서문 어쨌든, 모든 것은 변한다
1부 하필 이런 때
1장 우파가 옳다
2장 세계화 경제와 온난화
3장 공공 부문의 재건과 오염자 부담 원칙
4장 과감한 계획과 적극적인 봉쇄
5장 채취주의를 넘어서
2부 주술적 사고
6장 뿌리는 캐내지 않고 열매만 따 먹기
7장 구세주는 없다
8장 햇빛을 차단하라
3부 어쨌든 시작하자
9장 블로카디아
10장 사랑으로 지구를 살리자
11장 군대라도 가지고 있나?
12장 하늘은 모두의 것
13장 재생산의 권리
결론 도약의 순간들: 위기가 곧 기회다
주
감사의 말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