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 소주제 5] 포스트팬데믹과 교육,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서강민2021-06-05 21:58
내용 요약) 인간이 자연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지능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도구와 식량원의 제어와 활용, 협동능력과 사회조직이다. 또한, 다른 유인원들과 비교하여 사회적 학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양한 인지 능력을 획득한 것이다. 이어서 사람들의 행동, 관습, 문화, 규범 등을 진화의 관점에서 그 이유를 해석한다. 문화와 유전자가 쌍방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진화한다는 해석이다. 생물학적 차원의 진화가 문화적 차원의 진화를 유도했으며, 다시 문화적 차원의 진화는 생물학적 차원의 진화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볼 점)
1. 저자의 주장은 환원주의적 성격을 보인다. 동물의 생물학적 형질 뿐 아니라 문화, 규범, 행동 등 모든 것을 진화적 관점으로 환원한다. 책 전반에 걸친 해석은 대체로 납득이 되고 설명력을 가지지만, 복잡한 사회현상을 너무나 단순화 시켜 단일한 요소를 통해 해석하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회현상은 자연현상에 비해 더욱 더 무작위적이고, 쉽게 말해 해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주로 ‘비교적 해석하기 용이한 사회현상(특히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만, 그 외의 사회현상은 적어도 단일 요소에 의한 해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 현상이 철저히 인과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이유 없이 혹은 우연히 일어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회 현상에 대한 단일한 해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결과에 원인을 맞춘 해석'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인간의 행동 분석에 있어서 과도한 진화론의 남용을 경계한 것이지,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인류의 행동을 간단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이를 유의미하게 응용하여 편익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딱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2. 저자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유를 ‘집단 두뇌와 문화’를 통해 설명한다. 그 논증과정에서 인간, 침팬지, 오랑우탄이 공간, 수량, 인과를 인지하는 능력에서는 별 차이가 없지만, 사회적 학습 능력 면에서 인간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는 연구 결과가 포함된다. 저자는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해 인간이 영리한 이유 중 하나는 문화적 학습을 통해 인지능력을 획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현재, 즉 21세기의 영장류에 대한 비교 결과이지, 과거의 영장류에 대한 결과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태어난 아기의 인지 능력과 인간이 아직 지구를 지배하기 전 과거의 아기의 인지 능력은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간, 침팬지, 오랑우탄이 비슷한 사회적 능력을 가진 시점이 존재하며, 어떤 특수한 계기나 변화로 인간이라는 종이 큰 사회적 능력을 획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이 가진 사회적 능력의 원천이 무엇으로부터 기원하는지 궁금하다.
생각해볼 점)
1. 저자의 주장은 환원주의적 성격을 보인다. 동물의 생물학적 형질 뿐 아니라 문화, 규범, 행동 등 모든 것을 진화적 관점으로 환원한다. 책 전반에 걸친 해석은 대체로 납득이 되고 설명력을 가지지만, 복잡한 사회현상을 너무나 단순화 시켜 단일한 요소를 통해 해석하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회현상은 자연현상에 비해 더욱 더 무작위적이고, 쉽게 말해 해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주로 ‘비교적 해석하기 용이한 사회현상(특히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만, 그 외의 사회현상은 적어도 단일 요소에 의한 해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 현상이 철저히 인과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이유 없이 혹은 우연히 일어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회 현상에 대한 단일한 해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결과에 원인을 맞춘 해석'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인간의 행동 분석에 있어서 과도한 진화론의 남용을 경계한 것이지,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인류의 행동을 간단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이를 유의미하게 응용하여 편익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딱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2. 저자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유를 ‘집단 두뇌와 문화’를 통해 설명한다. 그 논증과정에서 인간, 침팬지, 오랑우탄이 공간, 수량, 인과를 인지하는 능력에서는 별 차이가 없지만, 사회적 학습 능력 면에서 인간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는 연구 결과가 포함된다. 저자는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해 인간이 영리한 이유 중 하나는 문화적 학습을 통해 인지능력을 획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현재, 즉 21세기의 영장류에 대한 비교 결과이지, 과거의 영장류에 대한 결과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태어난 아기의 인지 능력과 인간이 아직 지구를 지배하기 전 과거의 아기의 인지 능력은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간, 침팬지, 오랑우탄이 비슷한 사회적 능력을 가진 시점이 존재하며, 어떤 특수한 계기나 변화로 인간이라는 종이 큰 사회적 능력을 획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이 가진 사회적 능력의 원천이 무엇으로부터 기원하는지 궁금하다.
이재용2021-06-08 21:18
서강민 학우님, 안녕하세요! 질문거리를 항상 확실히 구분지어 적어주셔 학우님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신 점 감사합니다. 2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 생각에는 겉으로 확인되는 것만이 능력인지, 아니면 잠재적인 능력도 능력으로 치는지 '능력'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 인간이 아직 지구를 지배하기 전, 그러니까 주변의 여러 환경을 통제하지 못했던 시기엔 아기가 인지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문화적 학습 여건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만큼은 상황이 타 유인원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침팬지, 오랑우탄과는 달리 지금의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건 아마 인간이란 생명체 자체가 태초부터 '잠재적' 인지 능력을 가진 채로 존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최초엔 이 '잠재적' 능력이 겉으론 크게 침팬지, 오랑우탄과 다를 바가 없었겠지만, 인간은 똑같은 문화 환경에서도 타 영장류와는 다르게 잠재 인지 능력을 바탕으로 환경에 적응, 크고 작은 문화적 학습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인간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인간의 뇌 구조도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변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학습하면 할 수록 사회적 인지 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이 타 영장류보다 더욱 더 커질 수 있었던 것을 보아 그 원천은 아마 유전적 구조 자체의 차이로부터 기원하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습니다.
경제웅2021-06-06 17:18
책이 드는 수많은 증거들이 문화-유전자 공진화를 징표하는데, 내 학생설계전공을 관통하는 아이디어와 맥을 같이해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의 몸이 결코 자연에 의해 자연 현상으로서 ‘주어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몸은 사회에 의해 구성되기도 한다. 다만 나는 개개인의 몸이 한 사회에서 공시적으로 어떤 힘들의 영향을 받는지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헨릭은 종(種)의 몸이 만 년 단위의 거대한 타임 스케일을 따라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논의의 지평이 훨씬 넓고 통시적이다. 이 책은 “신체는 자연의 아들이자 문화의 딸”*이라는 김상환 교수의 문장을 장대히 지지하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인간은 불을 이용한 가열을 비롯해 다양한 조리 기술을 개발했고, 이것이 체내 소화 기능을 외부화함으로써 작은 입, 약한 턱, 짧은 장을 만들어 냈다는 해석(110-112쪽)이 인상적이었다. 오늘날에도 확장 적용해 볼 수 있다. 태고에 조리 기술이 소화계를 연장시켰듯이, 기술이 신체를 연장시키는 현상은 현대에도 계속될 뿐 아니라 더 극적으로 진행된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수록 연장된 신체는 기능이 강력해지고 본래 신체와 점차 구별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작동한다. 인류가 신체를 계속 연장시켜 갈 동기도 분명하다. 음식의 가공이 생존에 유리한 문화적 선택압으로서 신체를 변형했다면, 첨단 생명 공학으로 무장한 현대에는 단순 생존이 아닌 전폭적으로 수명을 늘리려는 문화가 신체를 변형해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신체 부분들은 마치 기계 부품처럼 교체, 개조되어, 프로스테시스(prosthesis)를 통한 신체 강화로 이어진다. 진화는 진화인데 사이보그적 진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유전자 공진화는 공진화라는 용어가 무색할 만큼 문화에 의해 지배적으로 주도되지 않을까? 이제 문화는 모종의 결핍, 즉 생존에 불리한 특성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결핍에 대한 보충이 아닌, 끊임없는 가산의 형식으로 문화가 인체의 진화를 이끌어 간다. 그 과정에서 포스트휴먼(6조가 발제했던)이 등장하고, 포스트휴먼의 사회는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사회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적 적응이 농축된 산물인 포스트휴먼이, 호모 사피엔스처럼 문화적 학습을 하는 문화적인 종으로 남을 것임은 확실하지 않을까?
* 김상환, 「이미지 없는 신체」, 『철학과 현실』 92, 2012, p. 55.
인간은 불을 이용한 가열을 비롯해 다양한 조리 기술을 개발했고, 이것이 체내 소화 기능을 외부화함으로써 작은 입, 약한 턱, 짧은 장을 만들어 냈다는 해석(110-112쪽)이 인상적이었다. 오늘날에도 확장 적용해 볼 수 있다. 태고에 조리 기술이 소화계를 연장시켰듯이, 기술이 신체를 연장시키는 현상은 현대에도 계속될 뿐 아니라 더 극적으로 진행된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수록 연장된 신체는 기능이 강력해지고 본래 신체와 점차 구별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작동한다. 인류가 신체를 계속 연장시켜 갈 동기도 분명하다. 음식의 가공이 생존에 유리한 문화적 선택압으로서 신체를 변형했다면, 첨단 생명 공학으로 무장한 현대에는 단순 생존이 아닌 전폭적으로 수명을 늘리려는 문화가 신체를 변형해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신체 부분들은 마치 기계 부품처럼 교체, 개조되어, 프로스테시스(prosthesis)를 통한 신체 강화로 이어진다. 진화는 진화인데 사이보그적 진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유전자 공진화는 공진화라는 용어가 무색할 만큼 문화에 의해 지배적으로 주도되지 않을까? 이제 문화는 모종의 결핍, 즉 생존에 불리한 특성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결핍에 대한 보충이 아닌, 끊임없는 가산의 형식으로 문화가 인체의 진화를 이끌어 간다. 그 과정에서 포스트휴먼(6조가 발제했던)이 등장하고, 포스트휴먼의 사회는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사회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적 적응이 농축된 산물인 포스트휴먼이, 호모 사피엔스처럼 문화적 학습을 하는 문화적인 종으로 남을 것임은 확실하지 않을까?
* 김상환, 「이미지 없는 신체」, 『철학과 현실』 92, 2012, p. 55.
서강민2021-06-07 18:03
안녕하세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문화-유전자 공진화에 대해 흥미롭게 읽었는데, 다만 저는 비판적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조리기술의 발달이 작은 입과, 약한 턱, 짧은 장을 가지게 했는지, 반대로 작은 입과 약한 턱, 짧은 장을 가진 인간이 필요에 따라서 조리기술을 발명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두 요소가 맞아떨어진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제가 작성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지식을 사회현상의 영역까지 가져오는 과도한 해석은 엄밀함이 결여되어 있을 수 있으며,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구나' 혹은 그런 해석을 통해 인류에게 특정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면 된다 정도로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또한, 문화-유전자 공진화가 참이라고 가정해도, 현대시대에 같은 개념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화-유전자 공진화는 적어도 긴 시간(천년~만년 이상) scale에서 다룬 것이기 때문에 현대 시대의 짧은 시간 (1달~10년) scale에서는 적용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재까지의 진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존의 진화는 오랜 기간동안(대진화는 몇 백만년 단위) 자연선택에 따른 변화인데 반면, 이제는 매우 짧은 기간(한 세대 이내) 동안 필요에 따라서 인체의 약한 부분을 더 강한 소재로 바꾸어 강화하는 방식의 변화로 진화의 방식도 변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진화라는 것은 세대에 걸쳐 누적되는 변화인데, 한 개체가 몸을 외형적으로 강화한다고 해서, 그 강화된 것이 다음 세대로 누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생명공학기술을 바탕으로 선택적, 인위적인 방법으로 유전자형을 변화시켜, 변화된 유전자형에 따라 유도되는 표현형을 변경하는 방법은 그 변화가 다음 세대로 누적되므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종(species)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이부분은 계통분류학을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에 따라 포스트휴먼을 호모 사피엔스와 구분되는 새로운 종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호모 사피엔스 내에서의 변화인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도 문화-유전자 공진화에 대해 흥미롭게 읽었는데, 다만 저는 비판적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조리기술의 발달이 작은 입과, 약한 턱, 짧은 장을 가지게 했는지, 반대로 작은 입과 약한 턱, 짧은 장을 가진 인간이 필요에 따라서 조리기술을 발명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두 요소가 맞아떨어진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제가 작성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지식을 사회현상의 영역까지 가져오는 과도한 해석은 엄밀함이 결여되어 있을 수 있으며,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구나' 혹은 그런 해석을 통해 인류에게 특정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면 된다 정도로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또한, 문화-유전자 공진화가 참이라고 가정해도, 현대시대에 같은 개념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화-유전자 공진화는 적어도 긴 시간(천년~만년 이상) scale에서 다룬 것이기 때문에 현대 시대의 짧은 시간 (1달~10년) scale에서는 적용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재까지의 진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존의 진화는 오랜 기간동안(대진화는 몇 백만년 단위) 자연선택에 따른 변화인데 반면, 이제는 매우 짧은 기간(한 세대 이내) 동안 필요에 따라서 인체의 약한 부분을 더 강한 소재로 바꾸어 강화하는 방식의 변화로 진화의 방식도 변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진화라는 것은 세대에 걸쳐 누적되는 변화인데, 한 개체가 몸을 외형적으로 강화한다고 해서, 그 강화된 것이 다음 세대로 누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생명공학기술을 바탕으로 선택적, 인위적인 방법으로 유전자형을 변화시켜, 변화된 유전자형에 따라 유도되는 표현형을 변경하는 방법은 그 변화가 다음 세대로 누적되므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종(species)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이부분은 계통분류학을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에 따라 포스트휴먼을 호모 사피엔스와 구분되는 새로운 종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호모 사피엔스 내에서의 변화인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양승훈2021-06-09 18:16
이 책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그래서 이 책이 '포스트코로나와 교육'을 논하는 것에 있어 어떤 연관이 있는가, 였다. 어떻게든 연관을 짓는다면 연관이 되겠지만 교육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떠올리기가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서 굳이 교육 주제와 연관 짓지 않고 이 책을 읽었을 때 든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10장에서 저자는 고대부터 시작한 집단의 형성과 집단 간 경쟁에 대한 예시를 들면서 집단 간 경쟁이 우리 사회의 틀과 유전적 진화의 틀을 형성해왔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이게 올바른 설명이라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발전을 거치게 될지 궁금해졌다. 과거 물리적 거리가 절대적이던 시대에 집단이란 불가피하게 '내 근처의 사람들' 이었다. 혹은 '내 공동체 근처의 공동체들'이 그들이 가질 수 있던 집단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집단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우선 물리적인 부분에서 빠른 교통수단이 생기면서 '근처'로 인식하는 물리적 범위가 달라졌다. 아직 전세계를 1일 생활권으로 넣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서울시'의 시민들을 내 근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둘째, 정보적인 측면에서 물리적으로 내 근처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정보통신을 활용해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생활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지금 물리적 거리보다 집단을 형성하는 것에 있어 중요한 것은 온라인 상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표현하냐이다.
이에 따라 집단의 종류도 굉장히 세분화되고 집단의 개수도 많아졌다. 그에 따라 집단 간 경쟁, 그리고 갈등 또한 많아졌다. 온라인 집단과 그 집단에서 경험하는 규범, 평판 체계 등이 오프라인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지금과 미래에서 우리는 과거와 달리 어떤 진화를 겪게 될지 궁금해졌다.
10장에서 저자는 고대부터 시작한 집단의 형성과 집단 간 경쟁에 대한 예시를 들면서 집단 간 경쟁이 우리 사회의 틀과 유전적 진화의 틀을 형성해왔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이게 올바른 설명이라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발전을 거치게 될지 궁금해졌다. 과거 물리적 거리가 절대적이던 시대에 집단이란 불가피하게 '내 근처의 사람들' 이었다. 혹은 '내 공동체 근처의 공동체들'이 그들이 가질 수 있던 집단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집단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우선 물리적인 부분에서 빠른 교통수단이 생기면서 '근처'로 인식하는 물리적 범위가 달라졌다. 아직 전세계를 1일 생활권으로 넣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서울시'의 시민들을 내 근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둘째, 정보적인 측면에서 물리적으로 내 근처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정보통신을 활용해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생활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지금 물리적 거리보다 집단을 형성하는 것에 있어 중요한 것은 온라인 상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표현하냐이다.
이에 따라 집단의 종류도 굉장히 세분화되고 집단의 개수도 많아졌다. 그에 따라 집단 간 경쟁, 그리고 갈등 또한 많아졌다. 온라인 집단과 그 집단에서 경험하는 규범, 평판 체계 등이 오프라인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지금과 미래에서 우리는 과거와 달리 어떤 진화를 겪게 될지 궁금해졌다.
박리라2021-06-09 20:38
안녕하세요, 승훈님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날의 집단은 과거의 집단들과는 달리 훨씬 더 세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수 역시 증가했다는 측면을 지적하신 부분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현재 해당 사회의 질서를 형성하는 기득권 집단과 이에 저항하는 소수자 집단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소수자 사이에서의 갈등이 치열하게 나타난다는 점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즉, 위계성에 초점을 둔 갈등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거리의 근접성에 기초한 과거의 갈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현대에는 다양한 집단이 생겼으며, 온라인 공간과 같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이전보다 세분화된 갈등이 나타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을 부추기는 주체로 해당 사회의 지배적인 권력 혹은 문화를 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집단 사이의 갈등이 자주 목격된다는 점에서 과거 물리적 거리의 근접성을 심리적 거리의 인접성으로 바꿔 이해하는 틀의 형성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새로이 발생한 현대의 소수자 집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소수자 집단은 자신들의 존재를 지워버린 사회의 권력층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 배틀’처럼 같은 소수자 집단끼리 경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지배적인 권력 혹은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 아니라 이 틀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한 상태에서 사회적 약자 사이의 다툼이 일어난다고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지배 문화에 대한 저항이 크게 일어나지 않고 약자 사이의 갈등 비율이 높게 유지된다면 기득권 세력이 점점 더 강해지는 차원에서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날의 집단은 과거의 집단들과는 달리 훨씬 더 세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수 역시 증가했다는 측면을 지적하신 부분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현재 해당 사회의 질서를 형성하는 기득권 집단과 이에 저항하는 소수자 집단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소수자 사이에서의 갈등이 치열하게 나타난다는 점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즉, 위계성에 초점을 둔 갈등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거리의 근접성에 기초한 과거의 갈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현대에는 다양한 집단이 생겼으며, 온라인 공간과 같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이전보다 세분화된 갈등이 나타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을 부추기는 주체로 해당 사회의 지배적인 권력 혹은 문화를 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집단 사이의 갈등이 자주 목격된다는 점에서 과거 물리적 거리의 근접성을 심리적 거리의 인접성으로 바꿔 이해하는 틀의 형성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새로이 발생한 현대의 소수자 집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소수자 집단은 자신들의 존재를 지워버린 사회의 권력층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 배틀’처럼 같은 소수자 집단끼리 경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지배적인 권력 혹은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 아니라 이 틀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한 상태에서 사회적 약자 사이의 다툼이 일어난다고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지배 문화에 대한 저항이 크게 일어나지 않고 약자 사이의 갈등 비율이 높게 유지된다면 기득권 세력이 점점 더 강해지는 차원에서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재민2021-06-09 19:29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 조지프 헨릭
: 신자유주의 속 교육 문화의 흑과 백. 그리고 포스트팬데믹에서 새로운 교육문화에 관하여.
1. 저서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유전자-문화의 공진화가 다른 동식물에 비해 인류 문명이 싹터서 성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배경이라고 말하며, 우수한 문화가 적자생존의 관점에서 살아남고 전수되는 총체의 과정 속에서 인류가 진보해왔음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인류의 집단 두뇌와 누적적인 발전, 그리고 그 체계 속에서 마치 푸코의 규율권력과 같이 자기 길들이기 과정이 수행되는 지점에서 안정적인 발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사회와 문화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의 가장 큰 흠결은 결국 지금 남아있는 관습과 문화의 권위에 대하여 사람이라는 주체를 수동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의 문화와 관습이 “지금 존재하니, 이것이 옳아”라는 프레임 속에서 갖혀버린다는 것이다.
3. 위와 같은 시선에서 작금의 한국사회 교육문화를 조명해보았다. 경쟁, 성취, 사교육에 대한 과도한 의존, 순위매기기 등 우리 교육의 문화 frame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사람들은 그것의 변화와 개선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곤 한다. 마치 나의 성과, 나의 위치가 빼앗기듯 말이다. 예컨대 한국사회의 교육문화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우리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몇 가지 떠올려보면,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낮추고 수시 제도를 확충한 것, 그리고 사법고시를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로 전환한 것 등이 있다. 일종의 ‘점수식, 나열식, 주입식’ 교육문화가 여지껏 우리 사회 발전의 기틀이 되어왔던만큼, 이런 제도를 버리는 것은 마치 ‘한국사회의 문화적 기틀을 무너뜨리는’것처럼 인식되어, 사람들이 반발하고, 수시로 과거로 회귀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현실을 직시하자. 우리 사회의 교육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쉽지 않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사회자본, 문화자본, 소득의 양극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교육과 다채로운 개인의 양성”이라는 가치는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
4. 9조(P5)의 발제문을 인상깊게 읽었다. 블렌디드 런닝의 한국사회 적용가능성을 검토하며, 한국과 미국의 교육몬화와 체계, 그 안에서 개인과 제도의 역학을 잘 비교하였다. 본인 역시 미국에서 약 2년간 중-고등학교(8-9학)를 다니며, 한국과 그곳의 교육문화가 정말 달랐던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자율과 토론, 그리고 존중이 기반이 된 그곳의 교육은 (아마 사립학교라 그런걸수도 있다. 미국 공립학교의 문제는 또 다르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그저 틀리지만은 않다는 확신을 개인에게 안겨주었고, 그것이 블렌디드 런닝의 실천에서 하나의 motivation으로 기능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에야 현장에서 학교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필자가 학교다니던 시절에는 문학 시간에 질문을 4회 이상 하여 수업의 흐름을 끊었다는 이유로 교탁에 엎드려서 가혹한 체벌을 받은게 그렇게 독특한 경험은 아니었다.
5. 결국 필자의 문제의식은 다음으로 귀결될 수 있다. 여지껏 한국사회를 주름잡아온 교육문화는 ①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하여야 하며(과정-절차차원에서. 수단을 포함하여도 좋다.) ② 어떠한 가치를 포함하는 것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인가?
: 신자유주의 속 교육 문화의 흑과 백. 그리고 포스트팬데믹에서 새로운 교육문화에 관하여.
1. 저서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유전자-문화의 공진화가 다른 동식물에 비해 인류 문명이 싹터서 성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배경이라고 말하며, 우수한 문화가 적자생존의 관점에서 살아남고 전수되는 총체의 과정 속에서 인류가 진보해왔음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인류의 집단 두뇌와 누적적인 발전, 그리고 그 체계 속에서 마치 푸코의 규율권력과 같이 자기 길들이기 과정이 수행되는 지점에서 안정적인 발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사회와 문화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의 가장 큰 흠결은 결국 지금 남아있는 관습과 문화의 권위에 대하여 사람이라는 주체를 수동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의 문화와 관습이 “지금 존재하니, 이것이 옳아”라는 프레임 속에서 갖혀버린다는 것이다.
3. 위와 같은 시선에서 작금의 한국사회 교육문화를 조명해보았다. 경쟁, 성취, 사교육에 대한 과도한 의존, 순위매기기 등 우리 교육의 문화 frame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사람들은 그것의 변화와 개선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곤 한다. 마치 나의 성과, 나의 위치가 빼앗기듯 말이다. 예컨대 한국사회의 교육문화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우리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몇 가지 떠올려보면,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낮추고 수시 제도를 확충한 것, 그리고 사법고시를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로 전환한 것 등이 있다. 일종의 ‘점수식, 나열식, 주입식’ 교육문화가 여지껏 우리 사회 발전의 기틀이 되어왔던만큼, 이런 제도를 버리는 것은 마치 ‘한국사회의 문화적 기틀을 무너뜨리는’것처럼 인식되어, 사람들이 반발하고, 수시로 과거로 회귀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현실을 직시하자. 우리 사회의 교육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쉽지 않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사회자본, 문화자본, 소득의 양극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교육과 다채로운 개인의 양성”이라는 가치는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
4. 9조(P5)의 발제문을 인상깊게 읽었다. 블렌디드 런닝의 한국사회 적용가능성을 검토하며, 한국과 미국의 교육몬화와 체계, 그 안에서 개인과 제도의 역학을 잘 비교하였다. 본인 역시 미국에서 약 2년간 중-고등학교(8-9학)를 다니며, 한국과 그곳의 교육문화가 정말 달랐던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자율과 토론, 그리고 존중이 기반이 된 그곳의 교육은 (아마 사립학교라 그런걸수도 있다. 미국 공립학교의 문제는 또 다르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그저 틀리지만은 않다는 확신을 개인에게 안겨주었고, 그것이 블렌디드 런닝의 실천에서 하나의 motivation으로 기능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에야 현장에서 학교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필자가 학교다니던 시절에는 문학 시간에 질문을 4회 이상 하여 수업의 흐름을 끊었다는 이유로 교탁에 엎드려서 가혹한 체벌을 받은게 그렇게 독특한 경험은 아니었다.
5. 결국 필자의 문제의식은 다음으로 귀결될 수 있다. 여지껏 한국사회를 주름잡아온 교육문화는 ①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하여야 하며(과정-절차차원에서. 수단을 포함하여도 좋다.) ② 어떠한 가치를 포함하는 것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인가?
문지수2021-06-09 22:47
안녕하세요 재민님! 좋은 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단순히 문화가 전달되어온 과정에 집중하며 읽었던터라, 이것이 바뀔 필요가 있는 관습까지도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태도를 취하게 한다고 지적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 사람이 겪어온 생애의 경험에 반하는 변화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몇세대 이전부터 내려온 관습은 더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5번에서 던져주신 질문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지난번 토론글에서 언급한 내용이긴 하지만 등급으로 평가하는 것을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평가의 목적은 오로지 학습자의 성장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이는 글로 된 피드백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의무교육 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를 말하는 것이고, 줄세우기를 통한 대학 입시는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현 가능성이나 대안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재용2021-06-09 19:57
Slack에서 이민섭 조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책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 조지프 헨릭’의 교육을 인류의 문화 전달이라는 큰 관점에서 바라보려 노력하며 읽었으며, 그 중에서도 ‘언어’와 관련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난 인간이 어느 생명체보다 문화적으로 뛰어나다고 주장하는데에 있어 이에 대한 뒷받침의 뿌리는 항상 ‘언어’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타 동물들도 의사소통을 하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타 동물에 비해 훨씬 더 많고 다양한 표현을 의사소통 과정에서 구사할 수 있다. 책의 13장에 따르면,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문화적 적응물’이며 ‘장기간의 누적적인 문화적 진화’에서 생겨났다. 인간은 더 나은 의사전달자가 되기 위해 유전자에 새로운 선택압(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구강, 성대구조 변화)을 주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질문은 왜 인간만이 이러한 선택압을 줄 수 있었는지다. 태초부터 인간의 유전자 자체가 이러한 선택압을 줄 수 있는 구조로 탄생한 것인지, 아니라면 선택압을 줄 수 있었던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교육은 인류의 문화 전달 그 자체라 볼 수도 있는데, 인간이 타 동물, 유인원보다 더 뛰어난 교육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한 언어 체계의 존재에서 온다. 언어가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날의 문화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지, 아니면 언어가 없었더라도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난 문화 전달, 즉 교육을 해올 수 있었을지도 궁금하다.
난 인간이 어느 생명체보다 문화적으로 뛰어나다고 주장하는데에 있어 이에 대한 뒷받침의 뿌리는 항상 ‘언어’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타 동물들도 의사소통을 하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타 동물에 비해 훨씬 더 많고 다양한 표현을 의사소통 과정에서 구사할 수 있다. 책의 13장에 따르면,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문화적 적응물’이며 ‘장기간의 누적적인 문화적 진화’에서 생겨났다. 인간은 더 나은 의사전달자가 되기 위해 유전자에 새로운 선택압(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구강, 성대구조 변화)을 주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질문은 왜 인간만이 이러한 선택압을 줄 수 있었는지다. 태초부터 인간의 유전자 자체가 이러한 선택압을 줄 수 있는 구조로 탄생한 것인지, 아니라면 선택압을 줄 수 있었던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교육은 인류의 문화 전달 그 자체라 볼 수도 있는데, 인간이 타 동물, 유인원보다 더 뛰어난 교육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한 언어 체계의 존재에서 온다. 언어가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날의 문화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지, 아니면 언어가 없었더라도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난 문화 전달, 즉 교육을 해올 수 있었을지도 궁금하다.
김재민2021-06-09 21:36
재용님 안녕하세요! 인간의 문화적 공진화의 핵심 개념으로서 언어를 이야기해주셨는데, 저 역시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냥 댓글을 읽다 문득 든 생각인데, 거대한 개미 군락이 더 발전하지 못한 것은 그저 언어가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한 개체의 생애주기가 짧아서일까요? 개미의 문명, 집단과 조직은 , 개미키우기 유튜브 등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거지만 꽤나 수준급 이상으로 발전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chain of command가 확실하기도 하고요. 벌 집단도 마찬가지로 항상 인상적이더라고요.
사실 책에서 호모사피엔스가왜 더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한 반면, 제 기억엔 왜 개미나 벌, 침팬치들이 일정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은근 또 없었다고 생각도 들기도 해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
한 학기동안 훌륭한 코멘트 잘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학기 마무리 잘 하시기를 바라요!
사실 책에서 호모사피엔스가왜 더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한 반면, 제 기억엔 왜 개미나 벌, 침팬치들이 일정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은근 또 없었다고 생각도 들기도 해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
한 학기동안 훌륭한 코멘트 잘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학기 마무리 잘 하시기를 바라요!
윤서영2021-06-09 21:37
재용님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언어가 인류 문명의 발전과 문화 전달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문단의 물음에 관해 제 의견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언어 체계가 부재했더라면 인류가 오늘날의 문화 발전을 이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방대한 정보와 복잡한 기술을 습득, 기록하고 공동체 내 타인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의사소통 수단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의 언어가 아니라 다른 모종의 의사소통 수단이 대체 역할을 하여 인류 문화 전달을 이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는데요. 그런 다른 방식도 형태가 다를 뿐 결국에는 언어라는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재용님의 글을 읽던 중 저는 언어의 다양성에 관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다양한 언어의 공존과 발전이 인류 역사와 진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합니다. 또한 만약에 인류가 여태껏 단일한 언어에 의존해 문명을 발전시켰다면 그 진화의 흐름은 지금과 어떻게 다르게 나타났을지 역으로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언어가 인류 문명의 발전과 문화 전달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문단의 물음에 관해 제 의견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언어 체계가 부재했더라면 인류가 오늘날의 문화 발전을 이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방대한 정보와 복잡한 기술을 습득, 기록하고 공동체 내 타인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의사소통 수단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의 언어가 아니라 다른 모종의 의사소통 수단이 대체 역할을 하여 인류 문화 전달을 이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는데요. 그런 다른 방식도 형태가 다를 뿐 결국에는 언어라는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재용님의 글을 읽던 중 저는 언어의 다양성에 관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다양한 언어의 공존과 발전이 인류 역사와 진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합니다. 또한 만약에 인류가 여태껏 단일한 언어에 의존해 문명을 발전시켰다면 그 진화의 흐름은 지금과 어떻게 다르게 나타났을지 역으로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류성원2021-06-09 21:58
안녕하세요 재용님! 글 잘 읽었습니다.
언어는 인간의 진화에 있어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데 동감합니다. 제시해주신 질문도 흥미롭습니다. 인간의 구강, 성대구조의 변화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구강 구조가 식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이 먹는 음식의 변화에 따라 구강 구조의 진화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 시간에 접했던 진화의 과정은 직선적이고, 선형의 과정처럼 느껴졌는데 현실은 천천히, 여러 요인이 교차하면서, 또 일부는 우연에 의해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니 더 흥미로운 것 같아요. 언어가 발달한 과정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볼만한 질문 제시해주셔서 감사해요!
언어는 인간의 진화에 있어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데 동감합니다. 제시해주신 질문도 흥미롭습니다. 인간의 구강, 성대구조의 변화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구강 구조가 식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이 먹는 음식의 변화에 따라 구강 구조의 진화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 시간에 접했던 진화의 과정은 직선적이고, 선형의 과정처럼 느껴졌는데 현실은 천천히, 여러 요인이 교차하면서, 또 일부는 우연에 의해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니 더 흥미로운 것 같아요. 언어가 발달한 과정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볼만한 질문 제시해주셔서 감사해요!
박리라2021-06-09 20:38
저자는 ‘문화-유전자 공진화’ 개념이 인간과 영장류를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즉, 진화론의 관점을 채택하여 규범 형성, 의례 및 행동의 변화와 같은 인류의 특성이 어떻게 발현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1. 저자의 주장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이렇게 진화론적 시각을 중심에 두고 인류 역사의 흐름을 해석하고자 하는 자세에 주의해야 하지는 않을지 의문이 들었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진화’라는 이름 아래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되는 것에 내재해 있는 문제라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인간이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 하는 과정,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까지 사후적으로 ‘진화’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게 과연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진화적 관점을 토대로 역사를 분석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인류는 현재 우리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이는 우리와 몇 세대 차이가 나지 않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문화-유전자 공진화’ 개념을 사용하여 인류를 바라보는 관점은 과도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접하고 배웠던 문화 인류학의 관점에 기초하여 생각해보자면 인간은 결국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내용을 기초로 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 세계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갖추고 있을까? 또한, 다른 영장류와 달리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승자인 인류의 관점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자연스럽게 소수자 계층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결국 소외된 사람들이 도태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된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저자는 집단 두뇌의 갑작스러운 확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단순히 ‘사실’에 대한 습득이 아니라 문화적인 학습을 통해야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이라는 판단이 내려진다고 해서 갑자기 집단 구성원 전부가 이를 따르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합당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주장하는 사람들 뒤에 무언가 거대한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믿고, 과학적 시각에서 이해할 수 없는 미신과 주술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례는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여기서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류 영향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문화적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결국 정치 영역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수사로 사용되며 인류 보편의 가치라고 여겨지는 자유와 평등 같은 이념을 무시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실제 역사에서 완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이루어진 여성 참정권 확대라든지, 노예제 폐지와 같은 반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때, 문화적 요소의 고려는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 현재 기득권 계층은 자신들이 점한 우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변화의 흐름을 막거나, 혹은 보수적으로 흘러가기를 바랄 것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사회 전반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한쪽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지, 근본적으로 문화적 요인 고려는 어느 정도 선에서 이루어지고 나머지는 사실에 기초한 정책 혹은 강제력을 사용해야 하는지 논의해보고 싶다.
1. 저자의 주장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이렇게 진화론적 시각을 중심에 두고 인류 역사의 흐름을 해석하고자 하는 자세에 주의해야 하지는 않을지 의문이 들었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진화’라는 이름 아래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되는 것에 내재해 있는 문제라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인간이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 하는 과정,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까지 사후적으로 ‘진화’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게 과연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진화적 관점을 토대로 역사를 분석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인류는 현재 우리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이는 우리와 몇 세대 차이가 나지 않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문화-유전자 공진화’ 개념을 사용하여 인류를 바라보는 관점은 과도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접하고 배웠던 문화 인류학의 관점에 기초하여 생각해보자면 인간은 결국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내용을 기초로 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 세계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갖추고 있을까? 또한, 다른 영장류와 달리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승자인 인류의 관점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자연스럽게 소수자 계층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결국 소외된 사람들이 도태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된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저자는 집단 두뇌의 갑작스러운 확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단순히 ‘사실’에 대한 습득이 아니라 문화적인 학습을 통해야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이라는 판단이 내려진다고 해서 갑자기 집단 구성원 전부가 이를 따르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합당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주장하는 사람들 뒤에 무언가 거대한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믿고, 과학적 시각에서 이해할 수 없는 미신과 주술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례는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여기서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류 영향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문화적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결국 정치 영역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수사로 사용되며 인류 보편의 가치라고 여겨지는 자유와 평등 같은 이념을 무시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실제 역사에서 완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이루어진 여성 참정권 확대라든지, 노예제 폐지와 같은 반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때, 문화적 요소의 고려는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 현재 기득권 계층은 자신들이 점한 우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변화의 흐름을 막거나, 혹은 보수적으로 흘러가기를 바랄 것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사회 전반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한쪽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지, 근본적으로 문화적 요인 고려는 어느 정도 선에서 이루어지고 나머지는 사실에 기초한 정책 혹은 강제력을 사용해야 하는지 논의해보고 싶다.
이엘리엇2021-06-10 13:51
안녕하세요 박리라 학우님,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1번 주제와 관련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지며 책을 읽었기에 여러모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진화' 자체가 더 나아가고 성공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담론이므로, 문화를 같은 범주 아래 평가하는 것이 제국주의적인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런 관점을 적용하는 것의 밑바탕에 인류가 승자라는 의식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학우님의 주장도 상당히 참신하고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승리, 성공, 발전 등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서영2021-06-09 21:21
문화-유전자 공진화가 인류의 심리, 생리, 해부구조 등을 변화시켜온 과정을 다양한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책 말미에, 책 내용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여러 통찰들이 정리되어 있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문화적인 종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볼 경우 앞으로제도 및 조직 설계의 접근법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된 통찰들이 각종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고안 과정에 활용되어 실질적인 사회적 효용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사회규범, 믿음 등을 공동체 내 타인으로부터 습득하는 문화적 학습자이다. 그와 동시에,직관에 반하거나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는 믿음 또는 관행에 관해서는 이를 수용하기 이전 일종의 신뢰도증강표시를 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특정 믿음이나 관행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할 경우, 고통이나 재정적 타격 등 비용을 감수함으로써 본인의 신념에 대한 헌신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규범은 인간의 선천적인 심리에 기초할 때 비로소 강력하게 지속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던 중, 비록 포스트코로나와 교육이라는 주제와는 약간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떠올랐다. 최근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짝짓기를 하고 종족 번식을 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선천적인 본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출산이 지속되는 것은 경제적 이슈, 양육 및 교육에 대한 부담, 사회적 인식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진화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만약 먼 훗날 이 문제가 해결되거나 혹은 해결되지 못했을 경우, 지금의 이 현상을 문화와 유전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되돌아보게 될까?
이어 각종 캠페인의 효과성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개인, 기업, 시민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주체들은 환경, 인권, 건강, 교육 등 해당 주제에 대한 문화적 가치를 전파하고 그로써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캠페인이나 챌린지를 실행한다. 이는 때론 큰 틀에서 교육이라는 요소와 연관지을 수도 있으며, 본 라이프아카데미의 팀별 프로젝트 또한 이와 꽤 관련이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내용과 통찰을 기반으로 캠페인의 대상이 되는 인류라는 종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이해해나간다면, 크던 작던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자는 목표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사회규범, 믿음 등을 공동체 내 타인으로부터 습득하는 문화적 학습자이다. 그와 동시에,직관에 반하거나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는 믿음 또는 관행에 관해서는 이를 수용하기 이전 일종의 신뢰도증강표시를 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특정 믿음이나 관행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할 경우, 고통이나 재정적 타격 등 비용을 감수함으로써 본인의 신념에 대한 헌신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규범은 인간의 선천적인 심리에 기초할 때 비로소 강력하게 지속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던 중, 비록 포스트코로나와 교육이라는 주제와는 약간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떠올랐다. 최근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짝짓기를 하고 종족 번식을 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선천적인 본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출산이 지속되는 것은 경제적 이슈, 양육 및 교육에 대한 부담, 사회적 인식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진화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만약 먼 훗날 이 문제가 해결되거나 혹은 해결되지 못했을 경우, 지금의 이 현상을 문화와 유전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되돌아보게 될까?
이어 각종 캠페인의 효과성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개인, 기업, 시민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주체들은 환경, 인권, 건강, 교육 등 해당 주제에 대한 문화적 가치를 전파하고 그로써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캠페인이나 챌린지를 실행한다. 이는 때론 큰 틀에서 교육이라는 요소와 연관지을 수도 있으며, 본 라이프아카데미의 팀별 프로젝트 또한 이와 꽤 관련이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내용과 통찰을 기반으로 캠페인의 대상이 되는 인류라는 종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이해해나간다면, 크던 작던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자는 목표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민정2021-06-09 23:32
서영 님 적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해주신 바와 같이, 저출생 이슈에 대한 서영 님의 의견에 동감해요. 이에 대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어떤 사람이 특정 믿음이나 관행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할 경우라면 어떨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글에서 적어주신 바와 같이 고통이나 재정적 타격 등 비용을 감수함으로써 본인의 신념에 대한 헌신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하기에 한 행동을 말합니다. 그 경우 짝짓기와 같은 인간의 선천적 본능은 개개인이 감수해야 할 고통 혹은 타격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번성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나와 더불어 이러한 환경을 공유하는 세대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세태의 위험성을 인지하였다고 보았습니다. 실업, 기후 위기 등 개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전지구적인 문제 앞에서 새로운 사회규범과 믿음이 필요하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다음 세대 또한 자신과 같이 삭막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위기를 막고자 본인이 헌신하는 결과가 나온 거라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시급하지만 전 인류가 같이 문제를 풀어가면서 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류성원2021-06-09 21:42
이 책은 어떤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이 읽어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진화론이 수많은 학문에 굉장한 영향을 끼친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그리고 인류의 진화 역사는 여러 가지 분야에 걸쳐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7장이었는데, 몇십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내용 속에서 인류학/사회학, 생물학, 경제학, 심리학 등 수많은 학문을 연결지을 수 있었다. 문화적 적응[관행]을 통한 진화를 다루고 있는 이 장은, 진화 과정에 대해 인과관계를 명확히 알 수 없어도 관습을 따르는 ‘신뢰’의 역할을 강조한다. 저자는 사례로 청산가리 중독을 불러올 수 있는 마니오크를 언급하며, 만약 후대의 누군가가 마니오크를 조리하는 복잡한 관습을 단순히 ‘쓴맛을 없애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조리 과정을 단순화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때 도리어 청산가리에 중독될 수도 있다고 언급한다.
경제학에서도 합리적 선택 이론을 설명할 때 비슷한 논리를 사용하는데 결국 의도와는 무관하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선택되고, 이는 모방과 시행착오를 통해 전해진다는 설명이다. 책의 2장에 등장하는 침팬지와 인간의 동전 맞추기 게임의 예시처럼,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아무런 생각 없이 동전을 던져서 경제적 선택을 한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인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찾아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교육받은 서구인들이 물려받은 문화적 관행을 ‘사후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에 특히 많이 공감했던 것이, 다른 수업에서 사회학 연구를 진행하면서 “내가 지금 주어진 결과를 억지로 틀에 우겨넣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학문의 과정이 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 틀을 만들고, 다시 틀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이라고 본다면, 대학에서 하는 공부는 ‘사후합리화’의 훈련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교육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접근 가능해지고, 인과관계를 연결하는 ‘합리성’(이라고 부르는 능력)이 널리 퍼지고 있는 현 상황은 인류의 진화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혹은 반대일까? 마치 마니오크의 사례처럼, 자신의 논리력에 자신만만해진 인간은 문화적 적응의 힘을 무시하다가 자연선택을 버티지 못할까, 혹은 문화적 적응의 불투명한 인과관계를 ‘사후합리화’를 통해 인정하고 관습에 힘입어 더 빠르게 진화할까?
끝으로 덧붙이자면. 이 책을 통해 진화론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류학과 참여관찰연구에 관심이 많은데,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이 추가되니 설명의 차원이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풍부한 사례를 중심으로 글이 전개되어서, 한 사회의 특수한 관습이 제시될 때마다 ‘이번엔 어떤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할까’ 하는 기대를 안고 신나게 읽어나갔다. 결국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모였을 때 진정한 이해가 형성될 수 있음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되면서, 두 번째 전공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이 책을 조금 더 꼼꼼히 읽어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지식이 뭘지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경제학에서도 합리적 선택 이론을 설명할 때 비슷한 논리를 사용하는데 결국 의도와는 무관하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선택되고, 이는 모방과 시행착오를 통해 전해진다는 설명이다. 책의 2장에 등장하는 침팬지와 인간의 동전 맞추기 게임의 예시처럼,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아무런 생각 없이 동전을 던져서 경제적 선택을 한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인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찾아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교육받은 서구인들이 물려받은 문화적 관행을 ‘사후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에 특히 많이 공감했던 것이, 다른 수업에서 사회학 연구를 진행하면서 “내가 지금 주어진 결과를 억지로 틀에 우겨넣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학문의 과정이 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 틀을 만들고, 다시 틀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이라고 본다면, 대학에서 하는 공부는 ‘사후합리화’의 훈련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교육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접근 가능해지고, 인과관계를 연결하는 ‘합리성’(이라고 부르는 능력)이 널리 퍼지고 있는 현 상황은 인류의 진화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혹은 반대일까? 마치 마니오크의 사례처럼, 자신의 논리력에 자신만만해진 인간은 문화적 적응의 힘을 무시하다가 자연선택을 버티지 못할까, 혹은 문화적 적응의 불투명한 인과관계를 ‘사후합리화’를 통해 인정하고 관습에 힘입어 더 빠르게 진화할까?
끝으로 덧붙이자면. 이 책을 통해 진화론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류학과 참여관찰연구에 관심이 많은데,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이 추가되니 설명의 차원이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풍부한 사례를 중심으로 글이 전개되어서, 한 사회의 특수한 관습이 제시될 때마다 ‘이번엔 어떤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할까’ 하는 기대를 안고 신나게 읽어나갔다. 결국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모였을 때 진정한 이해가 형성될 수 있음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되면서, 두 번째 전공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이 책을 조금 더 꼼꼼히 읽어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지식이 뭘지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원재희2021-06-09 23:17
성원님 글 잘 읽었습니다!:) 솔직하고 개인적인 경험담이 담겨 있어 정말 흥미롭게 읽은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을 비롯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여러 공간에서 진행되는 '인과관계의 연결 노력'이, 인간 나름대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선의 발버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후합리화나 마니오크 부분을 읽으면서, '인간이 이렇게 부족한 점도 갖고 있구나'를 느낌과 동시에,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인간 자신은, 현재로서는 이렇게 해야만 더 빨리 본보기를 만들어 모방을 하고 가장 올바른 길로 효율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치 우리 개개인도 각자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 생각하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느껴지는 방법을 추구하고 우수한 역사적(단순히는, 과거의) 사례를 모델화하여 그것을 따르듯, 집단으로서의 인간도 그들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성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추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말씀해 주신대로 설령 그러한 행동들이 시행착오에 해당한다 해도, 저도 집단의 반복적 상호 작용 및 검토에 의해 인류가 결국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선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이라는 종이 합리성의 추구에 있어 최선만 다하고 있다면 앞서 언급된 것들이 인류의 미래 발전에 있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D
저는 대학을 비롯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여러 공간에서 진행되는 '인과관계의 연결 노력'이, 인간 나름대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선의 발버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후합리화나 마니오크 부분을 읽으면서, '인간이 이렇게 부족한 점도 갖고 있구나'를 느낌과 동시에,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인간 자신은, 현재로서는 이렇게 해야만 더 빨리 본보기를 만들어 모방을 하고 가장 올바른 길로 효율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치 우리 개개인도 각자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 생각하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느껴지는 방법을 추구하고 우수한 역사적(단순히는, 과거의) 사례를 모델화하여 그것을 따르듯, 집단으로서의 인간도 그들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성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추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말씀해 주신대로 설령 그러한 행동들이 시행착오에 해당한다 해도, 저도 집단의 반복적 상호 작용 및 검토에 의해 인류가 결국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선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이라는 종이 합리성의 추구에 있어 최선만 다하고 있다면 앞서 언급된 것들이 인류의 미래 발전에 있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D
탈퇴한 회원2021-06-09 21:54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문화라는 현상이 어떻게 우리의 진화적 과정을 주도해왔고, 또 우리의 생물학적 진화와 생존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양한 인류학적, 생물학적 논거들을 보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확실히 인류의 시작지점에서부터 이루어져 왔던 인간의 진화적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부터는 문화라는 집단적 지식의 축적 없이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순수하게 궁금점이 들었던 것은, 이러한 문화적, 혹은 축적되어 온 지식들을 진화적 관점에 연관시키기는 점점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생존에 유리하게 혹은 우연적으로 발견되어서 생존에 유리했던 지식들도 그 당시에는 그런 지식들이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시대와 사회적 환경이 변하면서 일종의 쓸모없는 지식과 그저 관습적으로 수행되어지는 지식이 되기도 한다. 또 점차 다른 사회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어쩌면 생존에 유리했던 한 사회의 문화적 지식이 다른 사회로 옮겨져 사용되고, 특히 현재와 같이 모든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서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지식이 옮겨지고, 확산되어. 진화적 문화적 맥락과 관계없이 오로지 그 지식의 가치만으로 사용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기하급수적인 축적과 확산, 결합이 일어나고 있는 현대 사회와 앞으로의 사회를 이 책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해주듯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과 교육을 통해 배워온,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지식의 전달은 상당 부분 우리의 무의식에 내면화되어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러한 문화적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런 맥락에 맞추어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그런 내재화된 문화적, 규범적 요소들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생애 초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과 학습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에 대한 제언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순수하게 궁금점이 들었던 것은, 이러한 문화적, 혹은 축적되어 온 지식들을 진화적 관점에 연관시키기는 점점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생존에 유리하게 혹은 우연적으로 발견되어서 생존에 유리했던 지식들도 그 당시에는 그런 지식들이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시대와 사회적 환경이 변하면서 일종의 쓸모없는 지식과 그저 관습적으로 수행되어지는 지식이 되기도 한다. 또 점차 다른 사회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어쩌면 생존에 유리했던 한 사회의 문화적 지식이 다른 사회로 옮겨져 사용되고, 특히 현재와 같이 모든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서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지식이 옮겨지고, 확산되어. 진화적 문화적 맥락과 관계없이 오로지 그 지식의 가치만으로 사용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기하급수적인 축적과 확산, 결합이 일어나고 있는 현대 사회와 앞으로의 사회를 이 책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해주듯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과 교육을 통해 배워온,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지식의 전달은 상당 부분 우리의 무의식에 내면화되어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러한 문화적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런 맥락에 맞추어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그런 내재화된 문화적, 규범적 요소들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생애 초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과 학습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에 대한 제언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조용수2021-06-09 22:38
재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축적된 지식이 점점 진화로 연결되기 어려워진다는 주장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또 타당한 주장인 것 같습니다. 이전에 「신호와 소음」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 시대에 절대적인 정보의 양은 많아졌으나 그 정보 중 대부분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소음'이기 때문에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훨씬 어려운 시대가 되어간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과거에는 정말 유용한 지식만이 남겨져서 후대에게 전해졌다면 오늘날에는 다소 의미없는 정보들 역시 디지털로 기록되고 전파되는 경우가 많아 진화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개인적인 생각도 드네요. 마지막에 제시한 문화와 교육의 연관성도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축적된 지식이 점점 진화로 연결되기 어려워진다는 주장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또 타당한 주장인 것 같습니다. 이전에 「신호와 소음」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 시대에 절대적인 정보의 양은 많아졌으나 그 정보 중 대부분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소음'이기 때문에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훨씬 어려운 시대가 되어간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과거에는 정말 유용한 지식만이 남겨져서 후대에게 전해졌다면 오늘날에는 다소 의미없는 정보들 역시 디지털로 기록되고 전파되는 경우가 많아 진화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개인적인 생각도 드네요. 마지막에 제시한 문화와 교육의 연관성도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채수형2021-06-09 23:47
좋은 글 감사합니다 :D
재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 아주 오래전에는 지식의 축적이 정말 생존과 직결되거나 한 문화의 존속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기에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지식의 축적과 문화의 축적은 정말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또한 하나의 지식축적의 양상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주 먼 과거에는 다른 부족(or동물)들과의 싸움에서 생존해야 했고, 시간이 흘러서 한 국가나 문화집단의 틀을 만든 후부터는 다른 국가나 문화와의 싸움에서 생존해야했던 인류는 시간이 흘러 '생존 해야 한다'라는 것을 제1목적으로 두지 않는 세상이 왔습니다. 적자생존을 첫 목적으로 두며 진화해온 때와 달리 현재의 인류는 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목적을 두며 집단두뇌를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배경과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전 세계의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한 무차별한(?) 문화의 공급과 축적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활용하고, 향후 후손의 공진화에도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인류 모두가 다 같이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재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 아주 오래전에는 지식의 축적이 정말 생존과 직결되거나 한 문화의 존속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기에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지식의 축적과 문화의 축적은 정말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또한 하나의 지식축적의 양상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주 먼 과거에는 다른 부족(or동물)들과의 싸움에서 생존해야 했고, 시간이 흘러서 한 국가나 문화집단의 틀을 만든 후부터는 다른 국가나 문화와의 싸움에서 생존해야했던 인류는 시간이 흘러 '생존 해야 한다'라는 것을 제1목적으로 두지 않는 세상이 왔습니다. 적자생존을 첫 목적으로 두며 진화해온 때와 달리 현재의 인류는 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목적을 두며 집단두뇌를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배경과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전 세계의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한 무차별한(?) 문화의 공급과 축적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활용하고, 향후 후손의 공진화에도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인류 모두가 다 같이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연주2021-06-09 23:47
지식의 축적이 진화로 연결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홍수에 가까운 지식의 생성과 확산이 분명 문화인 것은 맞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을 어떤 식으로 진화시킬지, 진화가 맞긴 할 지 상상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 다루어보면 흥미로울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정빈2021-06-10 13:59
안녕하세요, 재우님의 글을 읽으면서 연상되는 궁금증이 있어 적어봅니다.
책에서는 인간이 생존에 유리한 정보를 축적하고, 본보기 학습 등을 통해 선택적으로 학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현대의 인간은 과거의 인간과 달리 정말로 '생존'의 문제가 절박하게 와닿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예전의 인간처럼 생명 부지를 위한 생존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생존이 현대의 생존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적 성공이라는 것은 꼭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치라 하기 어려우며, 그 정의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에 분명 생존에 유리한 정보의종류라던지 정보 선택의 매커니즘이 점점 더 빠르게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에서의 큰 특징은 굳이 문화적 도구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할 필요 없이 도구의 사용법만 익히기만 하면 되도록 변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어 처리가 좀 더 발전된 세상에서는 굳이 언어의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 번역기를 사용하는 법만 안다면 n개국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에서는 점점 더 문화적 지식의 학습이 인간의 신체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기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을 변화시키기보단 기계를 발전시키려고 할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인간이 생존에 유리한 정보를 축적하고, 본보기 학습 등을 통해 선택적으로 학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현대의 인간은 과거의 인간과 달리 정말로 '생존'의 문제가 절박하게 와닿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예전의 인간처럼 생명 부지를 위한 생존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생존이 현대의 생존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적 성공이라는 것은 꼭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치라 하기 어려우며, 그 정의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에 분명 생존에 유리한 정보의종류라던지 정보 선택의 매커니즘이 점점 더 빠르게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에서의 큰 특징은 굳이 문화적 도구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할 필요 없이 도구의 사용법만 익히기만 하면 되도록 변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어 처리가 좀 더 발전된 세상에서는 굳이 언어의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 번역기를 사용하는 법만 안다면 n개국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에서는 점점 더 문화적 지식의 학습이 인간의 신체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기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을 변화시키기보단 기계를 발전시키려고 할 것 같습니다.
박혜송2021-06-09 22:01
“서로 모방하는 중에 있거나, 아니면 현재 모방하지는 않더라도 서로가 비슷하며, 아울러 그들의 공통된 특징들이 예전에 동일한 본보기를 모방한 데서 유래하는 존재들의 집합체”, 19세기에 《모방의 법칙》을 저술한 프랑스 사회학자 타르드가 보는 사회 집단의 모습이다. [1]
이처럼, 인류 집단이 이룬 사회문화와 그 힘의 근원을 ‘모방’으로 보는 관점은 여러 학자에 의해 뒷받침되어왔다.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은 이 같은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문화-유전자 공진화, 즉 상호 간의 모방으로부터 축적되어 온 문화가 유전과 상호작용하며 인류를 진화시켜온 과정을 서술한다. 저서 전반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젖먹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타자를 모방하며, 생존을 위해서는 문화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간이 문화에 ‘중독되도록’ 진화되었다는 저자의 표현은 아마 이 같은 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 아닌가 짐작한다.(22쪽) 이토록 인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친 문화가 모방을 통해 세대 간 전수된다는 점에서, 모방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방의 가치를 통해, 우리는 모방의 대상이 되는 '본보기'의 중요성과 여러 사람들의 모방이 모여 이루는 '집단 두뇌'의 힘을 역설할 수 있다.
1. 본보기의 중요성에 관하여
우리는 문화-유전자 공진화 과정을 통해 자발적이고 자동적인 모방자이자, 친사회적이고,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으로 진화되어왔다. 인간은 젖먹이 때부터 모방할 대상을 본능적으로 인식하며 행동한다. 책에 나오는 한 흥미로운 실험에 따르면, 젖먹이 아기들은 특정 환경(엄마에게도 새로운 환경)에서는 엄마가 아닌 다른 낯선 사람을 더 참조하는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모방 능력을 가지고 있다. (78쪽) 나아가, 아이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무관한 동작까지도 충실하게 모방하는 ‘과잉모방’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모방되는 자, 즉 본보기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본보기는 선생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잠재적 본보기의 단서들을 고려한다면, 본보기로서의 교육자는 기량, 실력과 인격을 갖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저자 헨릭에 따르면, 아이들은 ‘자신과 맞는’ 선생, 교수를 더 효과적으로 본받으며, 선생 또한 자신과 성별이나 민족적 표지를 공유하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돕는 편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앞으로의 교육에서 선생과 학생 간의 유사성 또한 주요 요소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육자는 행정편의주의에 의한 무작위적인 방식보다는 각 학생이 자신의 본보기로 삼아,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블렌디드 교육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학생과 선생을 매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방으로서의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본보기의 중요성은 교육계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에서도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책의 한 실험결과에 따르면, 본보기들이 관대함을 보이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이를 모방하여 자신도 관대한 행동을 한다. 이처럼 자신이 흠모하는 사람들(본보기)과 유사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유전적 경향을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의 본보기들이 선행하여, 관대함을 비롯한 사회적 가치를 지키고, 창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 능력 있고, 명망 높은 사람들이 '갑질' 등으로 종종 논란이 되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2. 집단두뇌에 관하여
책의 저자에 따르면, 혁신은 개별 두뇌의 선천적 창의력과 지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현 상태에 대한 개선과 발명은 개인들의 상호 연결망을 기반으로 한 집단두뇌에서 온다. 가령, 산업혁명을 촉발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개인의 발명이 아닌, 이전의 증기기관의 효율성을 높인 모방이었고, 이는 또다른 누군가의 모방이 되었다. 상호 연결성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에게서 모방한 요소들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재조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무한한 문화 진화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또한, 집단두뇌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완화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기술개발이나 혁신이 사실 집단 두뇌에서 모방이 축적되어 온 결과라면, 마지막 한 사람이 더한 아이디어에 대해 얼마만큼 인정해줄 수 있을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러한 발명에 대해, 지적 재산권 제도 등으로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것은 좋은 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승자의 오만을 느끼고, 추앙받을만한 정도의 공을 세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집단 두뇌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개인들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어야 하며 낯선 사람을 신뢰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상하 위계 서열이 강하여 자유로운 상호작용이 거의 불가능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도 또한 매우 낮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집단 두뇌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을 통해 자유롭게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혁신의 스파크가 터질 수 있지만, 오히려 대면 상호작용의 절대적 양을 줄이고, 사람들 간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지점 중 하나이다.
[1] 가브리엘 타르드, 《모방의 법칙》, 이상률 역, 서울: 문예출판사, 2012.
이처럼, 인류 집단이 이룬 사회문화와 그 힘의 근원을 ‘모방’으로 보는 관점은 여러 학자에 의해 뒷받침되어왔다.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은 이 같은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문화-유전자 공진화, 즉 상호 간의 모방으로부터 축적되어 온 문화가 유전과 상호작용하며 인류를 진화시켜온 과정을 서술한다. 저서 전반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젖먹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타자를 모방하며, 생존을 위해서는 문화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간이 문화에 ‘중독되도록’ 진화되었다는 저자의 표현은 아마 이 같은 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 아닌가 짐작한다.(22쪽) 이토록 인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친 문화가 모방을 통해 세대 간 전수된다는 점에서, 모방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방의 가치를 통해, 우리는 모방의 대상이 되는 '본보기'의 중요성과 여러 사람들의 모방이 모여 이루는 '집단 두뇌'의 힘을 역설할 수 있다.
1. 본보기의 중요성에 관하여
우리는 문화-유전자 공진화 과정을 통해 자발적이고 자동적인 모방자이자, 친사회적이고,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으로 진화되어왔다. 인간은 젖먹이 때부터 모방할 대상을 본능적으로 인식하며 행동한다. 책에 나오는 한 흥미로운 실험에 따르면, 젖먹이 아기들은 특정 환경(엄마에게도 새로운 환경)에서는 엄마가 아닌 다른 낯선 사람을 더 참조하는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모방 능력을 가지고 있다. (78쪽) 나아가, 아이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무관한 동작까지도 충실하게 모방하는 ‘과잉모방’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모방되는 자, 즉 본보기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본보기는 선생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잠재적 본보기의 단서들을 고려한다면, 본보기로서의 교육자는 기량, 실력과 인격을 갖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저자 헨릭에 따르면, 아이들은 ‘자신과 맞는’ 선생, 교수를 더 효과적으로 본받으며, 선생 또한 자신과 성별이나 민족적 표지를 공유하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돕는 편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앞으로의 교육에서 선생과 학생 간의 유사성 또한 주요 요소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육자는 행정편의주의에 의한 무작위적인 방식보다는 각 학생이 자신의 본보기로 삼아,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블렌디드 교육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학생과 선생을 매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방으로서의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본보기의 중요성은 교육계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에서도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책의 한 실험결과에 따르면, 본보기들이 관대함을 보이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이를 모방하여 자신도 관대한 행동을 한다. 이처럼 자신이 흠모하는 사람들(본보기)과 유사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유전적 경향을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의 본보기들이 선행하여, 관대함을 비롯한 사회적 가치를 지키고, 창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 능력 있고, 명망 높은 사람들이 '갑질' 등으로 종종 논란이 되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2. 집단두뇌에 관하여
책의 저자에 따르면, 혁신은 개별 두뇌의 선천적 창의력과 지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현 상태에 대한 개선과 발명은 개인들의 상호 연결망을 기반으로 한 집단두뇌에서 온다. 가령, 산업혁명을 촉발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개인의 발명이 아닌, 이전의 증기기관의 효율성을 높인 모방이었고, 이는 또다른 누군가의 모방이 되었다. 상호 연결성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에게서 모방한 요소들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재조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무한한 문화 진화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또한, 집단두뇌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완화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기술개발이나 혁신이 사실 집단 두뇌에서 모방이 축적되어 온 결과라면, 마지막 한 사람이 더한 아이디어에 대해 얼마만큼 인정해줄 수 있을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러한 발명에 대해, 지적 재산권 제도 등으로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것은 좋은 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승자의 오만을 느끼고, 추앙받을만한 정도의 공을 세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집단 두뇌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개인들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어야 하며 낯선 사람을 신뢰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상하 위계 서열이 강하여 자유로운 상호작용이 거의 불가능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도 또한 매우 낮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집단 두뇌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을 통해 자유롭게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혁신의 스파크가 터질 수 있지만, 오히려 대면 상호작용의 절대적 양을 줄이고, 사람들 간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지점 중 하나이다.
[1] 가브리엘 타르드, 《모방의 법칙》, 이상률 역, 서울: 문예출판사, 2012.
채수형2021-06-09 22:15
책에서는 우리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다른 영장류와 달리 진화를 하였고 생존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까지 왔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단순히 다른 동물들보다 똑똑하고 지능이 높아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사회적 능력, ‘집단 두뇌’의 능력이 이를 가능케 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인 인간은 서로에게 배우고, 경험을 쌓고, 이를 통해 ‘문화’를 만들고 활용해나가며 자연선택에서 살아남게 된다. 또한 이 문화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인류에는 유전적 진화역시 발생했으며 이를 ‘문화-유전자 공진화’라 설명하며 이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성공하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화-유전자 공진화에 관련된 설명은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큰 요인들 중 하나인 ‘인간의 협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집단두뇌’가 계속해서 커진 것도 문화적으로 물려받은 여러 노하우와 관행을 담기 위해 유전자가 따라 진화했다는 점에서 설명이 가능해진다.
책에서는 이러한 공진화가 여전히 인류 사이에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렇다면 미래의 인류도 유전자가 변화되어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될까?”라는 의문점이 생겼다. 현재 인류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와 경험이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인류의 집단두뇌도 무한대로 확산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쌓이는 문화(정보 덩어리)로 인해 미래의 인류의 유전적 진화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할까?
(위의 질문에 대해서 책이 곳곳 부분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뭔가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류가 4차 산업혁명뿐만 아니라 이제는 ‘판데믹 사회’를 맞이하면서 더욱 커진 인류문화의 축적은 미래의 유전적 진화를 어떤 방향으로 진화시킬지에 대한 학우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문화-유전자 공진화에 관련된 설명은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큰 요인들 중 하나인 ‘인간의 협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집단두뇌’가 계속해서 커진 것도 문화적으로 물려받은 여러 노하우와 관행을 담기 위해 유전자가 따라 진화했다는 점에서 설명이 가능해진다.
책에서는 이러한 공진화가 여전히 인류 사이에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렇다면 미래의 인류도 유전자가 변화되어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될까?”라는 의문점이 생겼다. 현재 인류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와 경험이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인류의 집단두뇌도 무한대로 확산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쌓이는 문화(정보 덩어리)로 인해 미래의 인류의 유전적 진화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할까?
(위의 질문에 대해서 책이 곳곳 부분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뭔가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류가 4차 산업혁명뿐만 아니라 이제는 ‘판데믹 사회’를 맞이하면서 더욱 커진 인류문화의 축적은 미래의 유전적 진화를 어떤 방향으로 진화시킬지에 대한 학우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조용수2021-06-09 22:40
이 책은 인간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며 학습하는, 이른바 ‘문화적 학습’을 통해 진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개념은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책 「넛지」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람은 주변에 주어진 환경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문화는 각 개개인에게 매우 큰 영향을 줄 것이며, 또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가 직접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까닭에 인류는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책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하나는 명망이다. 다분히 지위적•기능적 측면이 강한 권력에 비해 명망이란 요소는 특별한 강제력 없이도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힘이 있다.(학계에서 이런 신선한 이론이 나왔을 때 이것이 얼마나 잘 받아들여지는가도 결코 저자의 명망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문화적 학습이 단순히 지식의 습득을 빠르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끔씩은 논리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이론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러한 점에서 문화적 학습은 지식적 학습보다 훨씬 큰 개념이며 그 영향 역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책의 내용이 대부분 먼 과거에 있는 다소 의도를 찾기 쉬운 제도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현대 사회에 있는 제도들 대부분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지 모른다는 점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한다.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집단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생기는 집단지성의 효과가 진화의 원동력이고, 따라서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의견의 공유가 편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떻게 이런 문화를 조성할 것인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고,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책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하나는 명망이다. 다분히 지위적•기능적 측면이 강한 권력에 비해 명망이란 요소는 특별한 강제력 없이도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힘이 있다.(학계에서 이런 신선한 이론이 나왔을 때 이것이 얼마나 잘 받아들여지는가도 결코 저자의 명망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문화적 학습이 단순히 지식의 습득을 빠르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끔씩은 논리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이론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러한 점에서 문화적 학습은 지식적 학습보다 훨씬 큰 개념이며 그 영향 역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책의 내용이 대부분 먼 과거에 있는 다소 의도를 찾기 쉬운 제도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현대 사회에 있는 제도들 대부분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지 모른다는 점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한다.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집단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생기는 집단지성의 효과가 진화의 원동력이고, 따라서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의견의 공유가 편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떻게 이런 문화를 조성할 것인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고,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경제웅2021-06-10 11:19
용수 님 안녕하세요!
저도 책에서 이야기하는 점술의 사례처럼, 때로는 논리적 인과관계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게 더 좋다는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지적하신 대로 '지식'의 형태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도 같아요. 문화는 이면의 원리를 명확히 이해하고 따른다기보다는 표면의 관행에 익숙해지는 부분이 강하니까요. 물론 이런 습성의 부작용으로, 한 문화권에서는 통용되지만 인류 보편의 윤리에 비추어 부적합할 문화까지 반성되지 못한 채 전승될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더라도, 논리나 당위가 분명한 개념들이 촘촘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문화적으로 학습되는 것도 참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불완전한 이성을 수용의 틀로 내세워 자신이 '완전'히 납득하는 것만 삼키고, 납득하지 않는 것은 뱉는다면 그는 한 생애를 아집 속에서 살아가게 될 터기 때문입니다. 역시 제 인간관일 뿐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허술하고, 엉망진창이고, 온 곳에 구멍이 뚫린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끼리는 비합리적인 상호작용이, 즉 말씀하신 '지식적 학습'의 여집합이 꼭 필요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멋있어 보여서 따라해 보는 것, 저 사람이 좋으니까 같이해 보는 것, 반신반의하면서 그냥 해 보는 것. 그러면서 우연히 구멍을 메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고방식이 용납하는 파형만 가산한다면 보강간섭이 될 뿐, 골을 채울 수는 없겠죠. 그래서 낯설고, 불투명하고, 의아한 문화들이 앞으로 더 풍부해지기를 소망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도 책에서 이야기하는 점술의 사례처럼, 때로는 논리적 인과관계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게 더 좋다는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지적하신 대로 '지식'의 형태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도 같아요. 문화는 이면의 원리를 명확히 이해하고 따른다기보다는 표면의 관행에 익숙해지는 부분이 강하니까요. 물론 이런 습성의 부작용으로, 한 문화권에서는 통용되지만 인류 보편의 윤리에 비추어 부적합할 문화까지 반성되지 못한 채 전승될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더라도, 논리나 당위가 분명한 개념들이 촘촘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문화적으로 학습되는 것도 참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불완전한 이성을 수용의 틀로 내세워 자신이 '완전'히 납득하는 것만 삼키고, 납득하지 않는 것은 뱉는다면 그는 한 생애를 아집 속에서 살아가게 될 터기 때문입니다. 역시 제 인간관일 뿐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허술하고, 엉망진창이고, 온 곳에 구멍이 뚫린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끼리는 비합리적인 상호작용이, 즉 말씀하신 '지식적 학습'의 여집합이 꼭 필요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멋있어 보여서 따라해 보는 것, 저 사람이 좋으니까 같이해 보는 것, 반신반의하면서 그냥 해 보는 것. 그러면서 우연히 구멍을 메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고방식이 용납하는 파형만 가산한다면 보강간섭이 될 뿐, 골을 채울 수는 없겠죠. 그래서 낯설고, 불투명하고, 의아한 문화들이 앞으로 더 풍부해지기를 소망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문지수2021-06-09 22:57
작년 주제탐구세미나 네트워크 수업시간에 장대익 교수님의 진화심리학 수업을 들었었다. 인간의 눈과 다른 영장류의 눈을 비교하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흰자와 검은자(동공)이 뚜렷하게 분리되어있는 종은 인간 뿐이었다. 그리고 혹성탈출의 포스터를 보면 시저의 눈은 일반 유인원과 다르게 흰자와 검은자가 분리되어 있다. 감독의 무지로 인한 실수일까? 그렇지 않다. 흰자와 검은자가 분리되어 있는 인간은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시선을 통해 감정을 읽는다. 여러모로 진화심리학 수업은 인상적이었다.
인류가 다른 종과 다르게 지금까지 살아나고 번성한 이유는 사회적인 동물이고(위에서 제시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읽고 행동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조직'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 종은 나머지 영장목 전체가 가진것보다 더 많은 형태의 사회조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33쪽) 이는 틀린 주장은 아니다. 이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책에서 인류 번영의 핵심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문화-유전자 공진화이다. 지난 블렌디드 책은 현재 교육의 변화를 이야기했고, 이 책은 아주 오래 전부터 문화가 전해지는 과정을 다룬 것으로, 오래된 교육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142쪽에서는 늘 궁금했던 술의 기원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숙취가 없는 편인데 ADH1B의 음주억제변이체에 대한 진화적인 관점에서 이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유는 전세계 성인의 68%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고, 특히나 아시아에서는 유당분해 효소 지속증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우유가 건강 식품으로 장려되는 이유는 일단 관행을 물려받고, 별다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 관행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예전 미국의 관행을 가져와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우유를 제공했다.
교육 방식도 마찬가지다. 이전부터 계속해서 전해져 내려온 관행은 별다른 평가없이 전해졌고 100년전 교실의 모습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현상을 낳았다. 우리는 후대에게 어떤 문화를 물려주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인류가 다른 종과 다르게 지금까지 살아나고 번성한 이유는 사회적인 동물이고(위에서 제시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읽고 행동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조직'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 종은 나머지 영장목 전체가 가진것보다 더 많은 형태의 사회조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33쪽) 이는 틀린 주장은 아니다. 이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책에서 인류 번영의 핵심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문화-유전자 공진화이다. 지난 블렌디드 책은 현재 교육의 변화를 이야기했고, 이 책은 아주 오래 전부터 문화가 전해지는 과정을 다룬 것으로, 오래된 교육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142쪽에서는 늘 궁금했던 술의 기원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숙취가 없는 편인데 ADH1B의 음주억제변이체에 대한 진화적인 관점에서 이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유는 전세계 성인의 68%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고, 특히나 아시아에서는 유당분해 효소 지속증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우유가 건강 식품으로 장려되는 이유는 일단 관행을 물려받고, 별다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 관행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예전 미국의 관행을 가져와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우유를 제공했다.
교육 방식도 마찬가지다. 이전부터 계속해서 전해져 내려온 관행은 별다른 평가없이 전해졌고 100년전 교실의 모습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현상을 낳았다. 우리는 후대에게 어떤 문화를 물려주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임채미2021-06-09 23:47
지수님이 제시해주신 관행에 대한 통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특히 문화 및 가치의 전달이 충분한 검증없이 후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편향이라는 점이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별일이 없는한 우리의 문화가 후세대로 전달될 것이기에, 무조건 관행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다소 보수적인 태도보다는 논리적, 비판적 사고를 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제도의 개혁이 요구된다고 생각했으며, 세상을 편하게 살려고 하기 보단 작은 것에라도 불편함을 느끼며 적극적, 능동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단2021-06-10 01:15
지수 학우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술에 관한 내용입니다. 숙취가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술 마실 때는 잘 안 취하고 마시는데 다음날 아침에 침대에서 못 나올 정도로 골골 대서 너무 힘듭니다ㅜㅜ 우유 급식에 관한 문제는 저 역시 공감합니다. '우유는 칼슘이 많아서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다'는 과학적인 연구 하나에 의해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일률적으로 우유 급식을 받아야하는 현실이 21세기와는 너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점점 우유 급식에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요즘 학교에서는 일반 흰우유 말고 초코우유, 딸기우유, 요거트, 주스. 커피 등 본인이 원하는 음료를 미리 선택해서 배급받을 수 있게 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습을 고치려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결국 후대에게 좋은 문화만을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최민정2021-06-09 23:04
우리, 인류는 “남을 본받으며 적절한 규범을 활용해 폭넓게 상호 연결된 커다란 집단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다. 지금껏 인류가 결코 생존에 가장 유리한 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비결은 집단적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 상황을 이와 같은 화자의 주장에 대입해보자. 지금의 집단은 무엇이며, 그 집단의 공유 문화는 무엇인가?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 이전의 본받을 대상은 교사나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이었을지 모른다. 코로나19 이후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환경에서 본받을 남은 어디 있는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나 홀로 수업을 듣는 대신, 온라인 환경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학우들이 있고 가상현실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사회에서 정의되는 규범은 그 이전의 것과 확연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호 연결되는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그 커다란 집단도 전례 없는 양상일 것이다.
인간의 진화 방향에서 1) 본받을 남, 2) 적절한 규범, 3) 폭넓게 상호 연결된 커다란 집단이 달라지고 있다. 이에 맞게 교육이 변화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이전 교육과정에서 정보 과목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스크래치와 한글 프로그램을 쓸 수 있도록 가르쳤다면, 최근에는 과학 혹은 기타 보충 과목을 통해 3D 프린터를 사용하고 코딩을 배운다. 이 흐름에 맞게 곧 AI를 학교에서 배우는 시점에까지 왔다. 한편, 갑자기 변화한 환경에 온전한 준비 없이 뛰어든 온라인 수업은 학습 결손과 학업 불평등 격차를 악화시켰다. 이번 위기에서도 인간이 유리하지 않아도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최근 상황을 이와 같은 화자의 주장에 대입해보자. 지금의 집단은 무엇이며, 그 집단의 공유 문화는 무엇인가?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 이전의 본받을 대상은 교사나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이었을지 모른다. 코로나19 이후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환경에서 본받을 남은 어디 있는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나 홀로 수업을 듣는 대신, 온라인 환경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학우들이 있고 가상현실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사회에서 정의되는 규범은 그 이전의 것과 확연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호 연결되는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그 커다란 집단도 전례 없는 양상일 것이다.
인간의 진화 방향에서 1) 본받을 남, 2) 적절한 규범, 3) 폭넓게 상호 연결된 커다란 집단이 달라지고 있다. 이에 맞게 교육이 변화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이전 교육과정에서 정보 과목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스크래치와 한글 프로그램을 쓸 수 있도록 가르쳤다면, 최근에는 과학 혹은 기타 보충 과목을 통해 3D 프린터를 사용하고 코딩을 배운다. 이 흐름에 맞게 곧 AI를 학교에서 배우는 시점에까지 왔다. 한편, 갑자기 변화한 환경에 온전한 준비 없이 뛰어든 온라인 수업은 학습 결손과 학업 불평등 격차를 악화시켰다. 이번 위기에서도 인간이 유리하지 않아도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박서원2021-06-10 10:37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민정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코로나19 학교가 아닌 집에서 수업을 들어야하는 상황에서 본받을 남, 적절한 규범, 폭 넓게 상호 연결괸 커다란 집단이 달라지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 세개의 요소들을 집에서 혼자 교육을 받는 상황에서 충족할 수 없어 기존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고 저 역시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알려줄지 고민하는 것보다 지금은 전과는 연결되어있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할지에 더 초점을 두고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민정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코로나19 학교가 아닌 집에서 수업을 들어야하는 상황에서 본받을 남, 적절한 규범, 폭 넓게 상호 연결괸 커다란 집단이 달라지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 세개의 요소들을 집에서 혼자 교육을 받는 상황에서 충족할 수 없어 기존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고 저 역시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알려줄지 고민하는 것보다 지금은 전과는 연결되어있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할지에 더 초점을 두고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원재희2021-06-09 23:04
인류학 및 진화에 관련하여 많은 책을 읽어보았다고 자부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읽어보았던 해당 분야의 책 중, 이번에 읽은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은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받은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연대의식과 희망’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개별적으로 다른 종보다 더 뛰어난 능력 또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끊임없이 문화-유전자 공진화를 통해 인간 집단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꾸준히 증진해 왔다. 특히 본 책의 p. 483에 있는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가 영리한 것은 맞지만, 그 이유는 우리가 거인이 어깨 위에 서 있어서도 아니고 우리 자신이 거인이어서도 아니다. 우리는 난쟁이들로 세워진 커다란 피라미드의 어깨 위에 서 있다. 난쟁이도 피라미드가 올라가는 동안 조금 자라기는 하지만, 우리가 더 멀리 보게 해주는 것은 여전히 난쟁이의 숫자이지, 특정한 난쟁이의 키가 아니다.” 즉 인간은 끊임없이 상호 의존의 방식으로 발전해왔으며, 그것이 인간 ‘집단’을 영리한 존재로 만들었고 그 지점이 바로 다른 종들과 인간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사회적 지위를 여러 개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며 지식으로 축적하는 것들은 대개가 내가 직접 생각해낸 것들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와 같은 집단에 속한 선조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아온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만약 창의적 아이디어를 낸다 해도 그것은 결국 ‘기존의 것’을 개선 및 수정하려는 과정에서 발달한 아이디어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의 본보기를 은연중에 모방하고 집단의 사회적 규범을 지킴으로써 집단의 문화를 내면화하고 집단에 융화되어 살아간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은 나를 구성하는 문화적 요소들을 빼놓고 이야기될 수 없고, 이것을 깨달아가니 겸손해지고 내가 속한 집단, 나아가 내가 속한 인간이라는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 연대의식이 형성됨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이 끊임없이 문화-유전자 공진화를 통해 조금씩 더 영리해졌다면(물론 p.480에 따르면 어떤 측면에서는 이전보다 더 영리해졌다고 말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인류가 더 영리하게 발전해나갈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아도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는 책에 소개되지 않은 문화적 방식이 새로이 나타나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인간이 이렇게 동적인 문화적 ‘과정’을 통해 다른 종들과는 구별되는 존재가 되어왔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인간만이 내재적이고 선천적으로 갖는 정적 특성(이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도 인류의 차별화에 기여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인간이 그러한 과정을 겪어올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인간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어떠한 내재적 동력이라는 정적 특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간이 문화-유전자 공진화를 통해 집단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해 발전해왔다는 행위(편의상 행위라고 부름)가 단순히 ‘발생’(이는 인간의 의지나 의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단어)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하기에는, 우리가 인간을 그들과 구별하는 정도가 지나치다. 우리는 그러한 근거가 정당화하는 정도 이상으로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그렇기에 이렇게 여기는 것에 대한 추가적 근거 제시가 필요하고, 그 추가적이고 주요한 근거 중 하나는 이 단락에서 내가 제시하는 바이다. 이에 대해 다른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받은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연대의식과 희망’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개별적으로 다른 종보다 더 뛰어난 능력 또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끊임없이 문화-유전자 공진화를 통해 인간 집단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꾸준히 증진해 왔다. 특히 본 책의 p. 483에 있는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가 영리한 것은 맞지만, 그 이유는 우리가 거인이 어깨 위에 서 있어서도 아니고 우리 자신이 거인이어서도 아니다. 우리는 난쟁이들로 세워진 커다란 피라미드의 어깨 위에 서 있다. 난쟁이도 피라미드가 올라가는 동안 조금 자라기는 하지만, 우리가 더 멀리 보게 해주는 것은 여전히 난쟁이의 숫자이지, 특정한 난쟁이의 키가 아니다.” 즉 인간은 끊임없이 상호 의존의 방식으로 발전해왔으며, 그것이 인간 ‘집단’을 영리한 존재로 만들었고 그 지점이 바로 다른 종들과 인간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사회적 지위를 여러 개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며 지식으로 축적하는 것들은 대개가 내가 직접 생각해낸 것들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와 같은 집단에 속한 선조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아온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만약 창의적 아이디어를 낸다 해도 그것은 결국 ‘기존의 것’을 개선 및 수정하려는 과정에서 발달한 아이디어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의 본보기를 은연중에 모방하고 집단의 사회적 규범을 지킴으로써 집단의 문화를 내면화하고 집단에 융화되어 살아간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은 나를 구성하는 문화적 요소들을 빼놓고 이야기될 수 없고, 이것을 깨달아가니 겸손해지고 내가 속한 집단, 나아가 내가 속한 인간이라는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 연대의식이 형성됨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이 끊임없이 문화-유전자 공진화를 통해 조금씩 더 영리해졌다면(물론 p.480에 따르면 어떤 측면에서는 이전보다 더 영리해졌다고 말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인류가 더 영리하게 발전해나갈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아도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는 책에 소개되지 않은 문화적 방식이 새로이 나타나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인간이 이렇게 동적인 문화적 ‘과정’을 통해 다른 종들과는 구별되는 존재가 되어왔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인간만이 내재적이고 선천적으로 갖는 정적 특성(이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도 인류의 차별화에 기여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인간이 그러한 과정을 겪어올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인간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어떠한 내재적 동력이라는 정적 특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간이 문화-유전자 공진화를 통해 집단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해 발전해왔다는 행위(편의상 행위라고 부름)가 단순히 ‘발생’(이는 인간의 의지나 의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단어)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하기에는, 우리가 인간을 그들과 구별하는 정도가 지나치다. 우리는 그러한 근거가 정당화하는 정도 이상으로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그렇기에 이렇게 여기는 것에 대한 추가적 근거 제시가 필요하고, 그 추가적이고 주요한 근거 중 하나는 이 단락에서 내가 제시하는 바이다. 이에 대해 다른 학우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조단2021-06-09 23:26
제 12장 <우리의 집단 두뇌> 파트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들을 안겨준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이 이루지 못한 엄청난 문명을 이룩한데에 있어 단지 인간이 더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실제로 침팬지, 돌고래, 코끼리 등 인간과 아이큐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동물이 꽤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다른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이 책에서는 집단두뇌를 집는다. 개인들이 충분한 정확도로 서로에게 배울 만큼 진화한 순간,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적 집단은 집단두뇌라 부를 만한 것을 발달시킨다. 한가지 예시로, 천재로 구성된 집단과 바보로 구성된 집단을 비교하는 내용이 책에 나온다. 사회성이 부족한 머리 좋은 사람보다 다소 지능이 떨어지더라고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혁신을 더욱 더 빠르게 접한다는 내용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든 예시지만 나는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학력자들, 대표적으로 서울대 출신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엘리트주의를 지지한다. 국평오(국민 평균이 오등급)이라는 용어를 하나의 밈처럼 만들어서 대중들은 우매해서 선동에 잘 휘둘리므로 우리 같이 배운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한다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소통 없는 엘리트주의는 무지한 사람들 여려명보다 못할 수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이 마냥 세상의 전부인 듯 생각하다보면 독선과 오만에 빠질 수 있다. 우리에게 모방, 교육, 사회성이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고 내가 아는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집단두뇌를 집는다. 개인들이 충분한 정확도로 서로에게 배울 만큼 진화한 순간,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적 집단은 집단두뇌라 부를 만한 것을 발달시킨다. 한가지 예시로, 천재로 구성된 집단과 바보로 구성된 집단을 비교하는 내용이 책에 나온다. 사회성이 부족한 머리 좋은 사람보다 다소 지능이 떨어지더라고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혁신을 더욱 더 빠르게 접한다는 내용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든 예시지만 나는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학력자들, 대표적으로 서울대 출신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엘리트주의를 지지한다. 국평오(국민 평균이 오등급)이라는 용어를 하나의 밈처럼 만들어서 대중들은 우매해서 선동에 잘 휘둘리므로 우리 같이 배운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한다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소통 없는 엘리트주의는 무지한 사람들 여려명보다 못할 수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이 마냥 세상의 전부인 듯 생각하다보면 독선과 오만에 빠질 수 있다. 우리에게 모방, 교육, 사회성이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고 내가 아는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정빈2021-06-09 23:33
학습자가 광범위한 단서를 활용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늘려줄 정보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을 선택해 본받는다는 ‘본보기 기반’ 문화적 학습 기제에 대한 주장은 매우 흥미롭고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특히 4장에서는 개인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성공, 명망, 나이 등의 단서와 자기유사성을 기준으로 자신에게 유용할 문화적 형질을 배워나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10장으로 넘어가면 집단 간에도 더 성공한 집단의 개인들에 주목해 그들의 문화를 학습하는 ‘명망 편항된 집단 전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따라서 본보기 기반 문화적 학습은 개인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본보기 기반 학습과 관련해 생겼던 궁금증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먼저 4장에서는 어린아이가 동성 본보기를 모방해 성 역할을 배우거나 민족적 표지를 공유하는 사람을 모방 대상으로 삼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읽고 자기유사성의 판단 기준은 인간의 감각 경험에만 기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타인과 자신의 특징을 구분지을 수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가졌다면(혹은 그런 환경에서 길러졌다고 가정할 경우) 그 때도 자기유사성이라는 기준이 유효할지, 아니면 감각 이외의 어떤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편 아이들은 자신의 성별과 성 역할을 타인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깨달을 것인데, 만약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내 아이 취급을 받으며 자라온 여아라면 자신의 본보기로 남성을 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자기유사성’이라는 것이 정말 객관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조건을 가진 대상을 택하는 것일지, 사회적으로 타인에 의해 자신과 유사하다고 인식되는 대상을 택하는 것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먼저 4장에서는 어린아이가 동성 본보기를 모방해 성 역할을 배우거나 민족적 표지를 공유하는 사람을 모방 대상으로 삼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읽고 자기유사성의 판단 기준은 인간의 감각 경험에만 기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타인과 자신의 특징을 구분지을 수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가졌다면(혹은 그런 환경에서 길러졌다고 가정할 경우) 그 때도 자기유사성이라는 기준이 유효할지, 아니면 감각 이외의 어떤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편 아이들은 자신의 성별과 성 역할을 타인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깨달을 것인데, 만약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내 아이 취급을 받으며 자라온 여아라면 자신의 본보기로 남성을 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자기유사성’이라는 것이 정말 객관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조건을 가진 대상을 택하는 것일지, 사회적으로 타인에 의해 자신과 유사하다고 인식되는 대상을 택하는 것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박혜송2021-06-10 12:31
안녕하세요, 정빈님! 저 역시 본보기를 선택할 때의 단서로서 유사성과 관련된 부분을 재밌게 읽어, 정빈님이 제시해주신 두 궁금증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관련 지식이 짧고 과학적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관련해서 제 추측을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첫번째 궁금증에 관해서는, 자기유사성 단서를 고르는 목적이 '훗날 자신에게 필요할 사회규범, 상징, 관행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에서, 저는 이 '자신에게 필요한 관행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 본인이 본능적으로 추측할 수도 있지만, 사실 학습의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환경적으로 만약, 자신의 특징을 구분지을 수 없도록 길러지거나, 유전적으로 구분할 수 없을 경우에도, 아이들이 자기유사성이라는 기준을 포기하기보다는, 부모 혹은 양육자가 제공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단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서라도 자신과 유사하여 더 도움이 될 본보기를 가려낼 것 같습니다. 특히, 영유아기에는 부모의 말을 100% 신뢰하고 의존하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본보기를 고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혈액형은 대표적으로 아이들이 감각적으로는 모르지만, 부모의 말로부터 알게 되는 자신의 특성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감각기관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의 말과 환경을 통해서도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약 감각을 사용할 수 없다면, 유의미한 타인, 특히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특성을 깨달아가고 이에 근거해 본보기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대체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번째 궁금증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정체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특성)에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가 더 큰 영향을 미칠지, 아니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더 큰 영향을 미칠지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연구를 찾아보아야 답할 수 있는 문제이겠지만, 저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여아가 아닌 사내아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았다면 정빈님이 말씀해주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 때 상호작용하는 '타인'은 아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양육자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먼저 첫번째 궁금증에 관해서는, 자기유사성 단서를 고르는 목적이 '훗날 자신에게 필요할 사회규범, 상징, 관행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에서, 저는 이 '자신에게 필요한 관행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 본인이 본능적으로 추측할 수도 있지만, 사실 학습의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환경적으로 만약, 자신의 특징을 구분지을 수 없도록 길러지거나, 유전적으로 구분할 수 없을 경우에도, 아이들이 자기유사성이라는 기준을 포기하기보다는, 부모 혹은 양육자가 제공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단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서라도 자신과 유사하여 더 도움이 될 본보기를 가려낼 것 같습니다. 특히, 영유아기에는 부모의 말을 100% 신뢰하고 의존하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본보기를 고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혈액형은 대표적으로 아이들이 감각적으로는 모르지만, 부모의 말로부터 알게 되는 자신의 특성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감각기관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의 말과 환경을 통해서도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약 감각을 사용할 수 없다면, 유의미한 타인, 특히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특성을 깨달아가고 이에 근거해 본보기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대체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번째 궁금증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정체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특성)에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가 더 큰 영향을 미칠지, 아니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더 큰 영향을 미칠지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연구를 찾아보아야 답할 수 있는 문제이겠지만, 저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여아가 아닌 사내아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았다면 정빈님이 말씀해주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 때 상호작용하는 '타인'은 아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양육자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임채미2021-06-09 23:40
이 책은 인간 문화사와 유전,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정리를 통해 교육이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동일시에 대한 문제이다. 아이들은 이성보다는 동성을 본보기로 삼고 그것을 모방하여 자신의 성 역할을 배운다고 한다. 이것에서 왜 우리 사회에서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고착화된 성역할이 어떻게 세대를 거쳐가며 현재까지 전달되어왔는지 생물학적인 관점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해본 적이 있었는데,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모방하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되어 왔으며 그것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었기에 그랬던 것이라고 오늘에서야 그 오랜 의문의 해답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일 때 역사를 배우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한국사를 배우면서 그 위인들의 성취에 내 자신을 대입해 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 당시 나는 역사가 남성을 중심으로 서술되었기에 내가 그들에게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주변의 남학생들만 봐도 삼국지와 같은 역사서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학생들은 역사서를 별로 즐기지 않았는데, 그러한 역사서에서 여성은 남성의 아내이자 딸의 역할만 하였기에 그것에 오롯이 몰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성별간의 차이를 넘어서 나는 다양한 특질은 가진 사람들(인종, 장애의 유무, 사회적 계급 등) 역시 동일시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환경에서 성장한 위인들이 멘토나 롤모델로써 기능한다면 그것이 다양성을 기르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어떠한 다양성도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할당 정책(비례대표제와 같은)이 이런 의미로 역차별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가지는 함의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책에서도 나오듯, 학생들이 문화적 학습심리, 즉 자신과 성별과 인종이 비슷한 선생님 밑에서 학습 효율이 높았고 그것은 성적, 전공 선택 직업 선호로 이어진다고 한 만큼 문화는 교육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이후 기말발표에서 학생들의 꿈-자본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교육에 있어서 각 문화 별로 학생들이 동일시할 수 있는 롤모델을 제공해 준다면, 큰 꿈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판단했다.
김윤빈2021-06-10 13:12
안녕하세요!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특히 저도 사회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동일시라는 진화 메커니즘을 연결하시면서 자세한 사례까지 언급해주신 채미님의 글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은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구성들의 태도로부터 출발할 것 같습니다. 사회가 작동하면서 권력이 생기지 않을 수 없으며 '동일시'라는 강력한 진화적 메커니즘도 작동하고 있기에 권력의 영향과 입김을 배제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더욱더 절실해 보입니다. 글의 끝 부분에서 롤모델을 제공하는 것이 유의미한 교육 효과를 줄 것이라는 채미님의 의견에도 매우 동의합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가 학생들의 롤모델이 된다면 학생들은 "나도 할 수 있다!" 와 같은 마음가짐을 갖게 되면서 교육의 본질적인 부분인 자기효능감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연주2021-06-09 23:43
인간은 문화적 학습을 통해 성장한다. 그리고 문화는 사회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데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문화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일까? 한국의 교육문화, 특히 수시 vs 정시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공정성 문화는 사실 소위 "인서울" 대학을 노리는 중산층 학생과 학부모의 문화라고 지적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경쟁문화, 서열화 등의 문화들도 생각해보면 주로 교육열이 어느 정도 있는 가정의 학생들 위주의 문화이다. 경쟁에서 밀리거나 등수가 낮은 학생들은 그 문화로부터 아예 벗어나버리는 (이탈하는) 경우도 많다. 비단 교육 뿐만 아니라 요즘 문화라고 부를 법할 정도로 주식과 코인 열풍이 대단한데, 이 역시 어딘가에 투자를 할 자금이 있는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이다. 즉, 문화라는 것은 굉장히 보편적이고 만연해 보이지만 사실 늘 누군가를 배제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문화적 학습을 통해 성장한다는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 학습이 가능한 사람과 (즉, 그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과) "보편적" 문화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나뉘는 상황에서 늘 저 말이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태민2021-06-10 00:39
연주 학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문화를 집단 전체로 해석하는 것의 위험성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 역시 같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본 책에서 말하는 문화적 학습의 이면에는,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도태된 이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책 또한 한 편의 '승리자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다만 역사를 개괄한 인류학 서적은 보편적인 형태를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그것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는 우리들은 그러면 안됩니다. 도태된 이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배제된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제가 범해온 실수를 연주 학우님이 제기해주신 참신한 관점 덕분에 일깨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양승훈2021-06-10 03:15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과연 문화가 모든 사회 구성원이 만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만약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문화라면 (그리고 저자의 주장처럼 문화가 사람과 유전적 틀을 바꾸는 게 맞다면) 이는 기득권층에게 맞는 속성들이 선택되도록 하여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도태되는 사회를 만들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접한 중국영화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도 이와 비슷하게 공부를 잘하는 기득권층 학생과 그 부모는 더 많은 것을 느끼지만 이로부터 도태되면 빈민층으로 가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인간이 문화적 학습을 통해 성장한다는 게 올바른 주장이라 한다면 사회가 문화의 형성에 특정 구성원들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문보설2021-06-09 23:55
저자는 인류가 성공적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유전자와 행동, 문화, 규범의 공진화에서 찾는다.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회 규범의 등장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약간의 진화론적 윤리학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내가 주목한 부분은 223p에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한 일탈자를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하게끔 학습된다는 언급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부정적 감정이, 사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에 대해 느끼는 뭔가 모를 불편한 감정(도덕감)과 질적으로 동일하고, 실제로 그런 감정이 도덕적 구속력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저자는 '규범'이라는 단어를 통해 도덕 규범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우리 환경이 게임이론에서의 선택 상황과 유사했고, 따라서 최적의 결과(사회 안정, 생존)를 위해 이러한 도덕 규범이 등장했다면, 도덕 규범의 정당성 역시 그 규범이 그 자체로 자신의 목적에 충실했는가를 따짐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나는 이런 지점들에서 저자의 입장이 진화론적 윤리학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진화론적 윤리학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입장은 무어가 말한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어떤 자연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으로부터 그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선’이나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방학 중에 논문을 찾아보려고 하지만…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마구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나도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생각 중에 앞서 언급한 자연주의의 오류라는 한계점에 도달해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화론은 거의 모든 개념을 유전자의 이익으로 환원시킬 수 있으므로 상당한 설명력을 가지는 입장이지만 광범위하게 그러한 환원주의적 시도를 하기에는 몇 가지 장애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나와 비슷하게 진화론적 환원의 또 다른 어려움을 발견한 학우들은 나에게 의견을 주길 바란다.
박서원2021-06-09 23:56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인간이 다른 종과 비교했을 때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문화라고 한다. 인간의 지능은 정신능력이나 본능에서 오는 것이 아닌 문화적으로 대대로 물려 받은 것으로부터 누적된 목록으로 온 것이고, 이것으로 인간이 다른 종들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던 것이다. 특히 다른 정신적 검사에서는 유인원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지만 사회적 학습 검사에서는 거의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이며 인간이 완전한 모방자임을 보여줬다.
인간의 사회적 학습 척도는 높지만 실제로 침팬지가 더 효과적으로, 필요 없는 것을 걸러내면서 사회적 학습을 한다고 한다. 즉 인간은 불필요한 것까지 모방하는 것이다. 실제로 Horner & Whiten 실험은 아래 위로 나눠진 투명한 상자와 불투명한 상자를 이용해 어린아이와 침팬지의 모방 행위를 보여줬다. 실험자가 불투명한 상자에서 먹이를 꺼내는 것을 보여줬 때에는 침팬티와 아이들 둘 다 실험자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했다. 그러나 위 아래가 나눠져 있는게 보이는 투명한 상자에서 실험자가 먹이를 꺼내는 것을 보여줬을 때에는 침팬지 같은 경우 필요 없는 행동은 생략하고 바로 아래로 먹이를 꺼냈지만 어린아이는 불필요한 행동까지 그대로 다 따라했다. 이 실험을 보면 침팬지는 똑똑하고 인간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반대로 인간은 사소한 것까지 더 정교하게 모방을 할 수 있었기에 문화를 만들어내며 축적된 지식, 축적된 생존방식을 통해 인류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과 교육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해봤을 때 인간의 이러한 강한 사회적 학습 능력, 모방 능력 때문에 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고 느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현재는 물론 미래 인류를 유지하는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포스트 코로나 교육 문제에 대해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Horner, Victoria, and Whiten, Andrew. "Causal Knowledge and Imitation/emulation Switching in Chimpanzees (Pan Troglodytes) and Children (Homo Sapiens)." Animal Cognition 8.3 (2005): 164-81.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인간이 다른 종과 비교했을 때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문화라고 한다. 인간의 지능은 정신능력이나 본능에서 오는 것이 아닌 문화적으로 대대로 물려 받은 것으로부터 누적된 목록으로 온 것이고, 이것으로 인간이 다른 종들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던 것이다. 특히 다른 정신적 검사에서는 유인원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지만 사회적 학습 검사에서는 거의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이며 인간이 완전한 모방자임을 보여줬다.
인간의 사회적 학습 척도는 높지만 실제로 침팬지가 더 효과적으로, 필요 없는 것을 걸러내면서 사회적 학습을 한다고 한다. 즉 인간은 불필요한 것까지 모방하는 것이다. 실제로 Horner & Whiten 실험은 아래 위로 나눠진 투명한 상자와 불투명한 상자를 이용해 어린아이와 침팬지의 모방 행위를 보여줬다. 실험자가 불투명한 상자에서 먹이를 꺼내는 것을 보여줬 때에는 침팬티와 아이들 둘 다 실험자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했다. 그러나 위 아래가 나눠져 있는게 보이는 투명한 상자에서 실험자가 먹이를 꺼내는 것을 보여줬을 때에는 침팬지 같은 경우 필요 없는 행동은 생략하고 바로 아래로 먹이를 꺼냈지만 어린아이는 불필요한 행동까지 그대로 다 따라했다. 이 실험을 보면 침팬지는 똑똑하고 인간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반대로 인간은 사소한 것까지 더 정교하게 모방을 할 수 있었기에 문화를 만들어내며 축적된 지식, 축적된 생존방식을 통해 인류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과 교육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해봤을 때 인간의 이러한 강한 사회적 학습 능력, 모방 능력 때문에 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고 느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현재는 물론 미래 인류를 유지하는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포스트 코로나 교육 문제에 대해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Horner, Victoria, and Whiten, Andrew. "Causal Knowledge and Imitation/emulation Switching in Chimpanzees (Pan Troglodytes) and Children (Homo Sapiens)." Animal Cognition 8.3 (2005): 164-81.
송혜민2021-06-09 23:56
이 책에서는 인류가 현재와 같은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집단 간 사회적 교육이 중요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논지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의 호기심을 유발했는데, 첫번째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연관성이다. 이 책에서 빈곤을 탈출하게 만드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와 정치 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포용적 제도가 '파괴적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나는 기술의 발전을 통한 생산력의 증가로만 이해해왔는데, '저자의 주장대로 인간의 번영에 집단지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면, 포용적인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가능다면, 인적 자본도 증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실제로 3T이론은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Tolerance, 즉 다름에 대한 관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만약 배움과 결합된다면,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저자의 주장과 약간 상충이 되는 것은 아닌가?
다른 한 방향은 '익명성'을 만연한 사회를 예상해보는 것이었다. 온라인으로 접촉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우리의 뇌는 '사회적인 활동'이라고 인지하고 있을까? 특히, 익명성을 부여하여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울 경우라면? 만약 4장에서 다룬 자기 유사성이 배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어렸을 때부터 '익명'이라는 문화에 대해 익숙해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특정한 기준으로 정의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이 이론은 어떻게 수정될 수 있을까?
이러한 저자의 논지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의 호기심을 유발했는데, 첫번째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연관성이다. 이 책에서 빈곤을 탈출하게 만드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와 정치 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포용적 제도가 '파괴적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나는 기술의 발전을 통한 생산력의 증가로만 이해해왔는데, '저자의 주장대로 인간의 번영에 집단지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면, 포용적인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가능다면, 인적 자본도 증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실제로 3T이론은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Tolerance, 즉 다름에 대한 관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만약 배움과 결합된다면,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저자의 주장과 약간 상충이 되는 것은 아닌가?
다른 한 방향은 '익명성'을 만연한 사회를 예상해보는 것이었다. 온라인으로 접촉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우리의 뇌는 '사회적인 활동'이라고 인지하고 있을까? 특히, 익명성을 부여하여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울 경우라면? 만약 4장에서 다룬 자기 유사성이 배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어렸을 때부터 '익명'이라는 문화에 대해 익숙해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특정한 기준으로 정의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이 이론은 어떻게 수정될 수 있을까?
이엘리엇2021-06-10 00:16
개인적으로 본능, 자연선택, 진화와 같은 류의 논의를 접하면 부정적인 인식부터 떠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로 개인의 특성보다는 주류에 대해 논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목표를 지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에서 불편함을 느낍니다 . 또한 자연의 법칙 자체를 인간에 대한 담론에 억지로 적용하는 사례들(자연주의적 오류로 대표되는)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책은 진화를 기존의 서술보다는 심리, 문화, 역사 등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하여 여러모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발전에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은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물론 더 나은 상태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 희생하는 것들에 대해 관용적인, 심지어 이를 장려하는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인류의 발전을 살피는 과정이 '인간도 자연 속에서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라는 겸허한 인식을 공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특별함을 과장하여 우리의 오만한 마음을 부추길 위험을 가지지는 않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인류의 발전을 살피는 과정이 '인간도 자연 속에서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라는 겸허한 인식을 공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특별함을 과장하여 우리의 오만한 마음을 부추길 위험을 가지지는 않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손지우2021-06-10 00:37
안녕하세요 엘리엇님 :) 인상적인 코멘트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 첫 문단의 '발전을 위한 희생은 옳은가'라는 부분과 두 번째 문단의 '인간의 특별함을 과장해 우리의 오만한 마음을 부추기 위험성을 주지는 않을까' 질문을 던지신 부분에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발전해야 하고, 인류의 진보를 위한 일부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라는 사회의 집착에 가까운 풍조는 일종의 염증을 느끼게 하는 듯도 합니다. 하지만 현 세대, 어쩌면 코로나가 그 계기가 되어준 것일지, 우리는 조금은 다시 그것들이 정말 옳은가 혹은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이 옳은가 돌아보고 질문 던지게 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반가운 변화인 듯 한데요,
이러한 경각심을 잊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진정 옳은 방향성으로 '나아감'을 실현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첫 문단의 '발전을 위한 희생은 옳은가'라는 부분과 두 번째 문단의 '인간의 특별함을 과장해 우리의 오만한 마음을 부추기 위험성을 주지는 않을까' 질문을 던지신 부분에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발전해야 하고, 인류의 진보를 위한 일부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라는 사회의 집착에 가까운 풍조는 일종의 염증을 느끼게 하는 듯도 합니다. 하지만 현 세대, 어쩌면 코로나가 그 계기가 되어준 것일지, 우리는 조금은 다시 그것들이 정말 옳은가 혹은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이 옳은가 돌아보고 질문 던지게 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반가운 변화인 듯 한데요,
이러한 경각심을 잊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진정 옳은 방향성으로 '나아감'을 실현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태민2021-06-10 00:21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로 일컬어지는 인간의 성공적인 진화를 분석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타 종(種)과의 비교를 통해 기존 관념인 '지능'이 인간 성공의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하고, 중반부~후반부 동안 문화-진화의 공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흔히 인류학과 진화론의 서적이 그렇듯, 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다방면의 풍부한 사료가 그 근거가 되고 있다. 다방면이지만 각 방면에서 꽤 깊은 전문성을 갖춘 덕분에 문화가 인류 진화의 핵심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문화가 진화에 미치는 주요한 영향보다는 오히려 그토록 다양한 요인들로 설명되어질 수밖에 없는 진화 과정의 복잡함에 매료되었다. 조교님이 말씀하신 '교육은 인류의 문화 전달이라는 큰 관점'에서 봤을 때, 앞서 진화 과정이 무수한 갈래와 여러 층위로 설명되어야 하듯이 교육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우들과 논의하고 싶은 부분은 다음이다. 문화를 넘어 호모 사피엔스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공통의 특성은 무엇일까? 본 책에서 주장하는 집단 지능은 한 개체가 문화적 학습을 통해 터득한 그 집단만의 특성이다. 이 책은 인간이 '종'으로서 보편적으로 갖는 특성과, '문화적 집단인'으로서 차별적으로 갖는 특성을 다소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인간이 문화적으로 학습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책이 제시하는 인류 보편의 특성일 것이다. 이 보편의 특성으로부터 파생적이고 차별적인 특성이 생겨난다. 하지만 학습이라는 능력 외에 호모 사피엔스로서 갖는 공통의 특성은 어떤 점이 있을까? 이 점은 인류사를 관통해온 오랜 질문이고, 특히 동양 고전의 철학자들이 관련해서 수많은 키워드들을 던졌다. 학우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특히 교육적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집단을 배제하고 인류가 보편적으로 자신의 세대에서 지니고 있었으며 다시 다음 세대에 교육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
학우들과 논의하고 싶은 부분은 다음이다. 문화를 넘어 호모 사피엔스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공통의 특성은 무엇일까? 본 책에서 주장하는 집단 지능은 한 개체가 문화적 학습을 통해 터득한 그 집단만의 특성이다. 이 책은 인간이 '종'으로서 보편적으로 갖는 특성과, '문화적 집단인'으로서 차별적으로 갖는 특성을 다소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인간이 문화적으로 학습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책이 제시하는 인류 보편의 특성일 것이다. 이 보편의 특성으로부터 파생적이고 차별적인 특성이 생겨난다. 하지만 학습이라는 능력 외에 호모 사피엔스로서 갖는 공통의 특성은 어떤 점이 있을까? 이 점은 인류사를 관통해온 오랜 질문이고, 특히 동양 고전의 철학자들이 관련해서 수많은 키워드들을 던졌다. 학우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특히 교육적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집단을 배제하고 인류가 보편적으로 자신의 세대에서 지니고 있었으며 다시 다음 세대에 교육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
손지우2021-06-10 00:50
책은 인류 성공적인 진화와 번영의 답을 사회적 교육과 문화에서 찾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근거를 뒷받침할 근거를 다방면으로 들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금 학기 종교학 및 인류학의 수업의 들으며 개인적으로 생각해보았던 것들에 대한 또 다른 정보들을 얻을 수 있던 기회이기도 했던 듯 합니다.
그저 함께 들게 된 궁금증은 '우리는 정말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릴 적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변한 것이 느껴집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가능해진 오늘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정말 옳게 나아온 것이 맞는지 하는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 듯 합니다. 특히 요즘 각광받는 것들, 사회적 가치 등에 주목하고 우리가 그간 당연스럽게 나눠왔던 기준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들이 이슈가 되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발전'이라는 건 무엇일지, 인류는 앞으로 어떤 방향성과 가치를 추구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다른 학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감사합니다.
그저 함께 들게 된 궁금증은 '우리는 정말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릴 적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변한 것이 느껴집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가능해진 오늘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정말 옳게 나아온 것이 맞는지 하는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 듯 합니다. 특히 요즘 각광받는 것들, 사회적 가치 등에 주목하고 우리가 그간 당연스럽게 나눠왔던 기준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들이 이슈가 되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발전'이라는 건 무엇일지, 인류는 앞으로 어떤 방향성과 가치를 추구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다른 학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감사합니다.
김하연2021-06-10 01:42
지우 학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셔서 덕분에 저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발전'의 사전적 의미는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감'인데, 우리 사회와 인류가 항상 '발전'하고 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관점을 나누어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계속해서 발전해왔을지 모르지만, 효율성을 가장 중시하는 자본주의 속에서 형평성, 환경친화와 같은 다른 가치들이 다소 외면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가령 과잉생산이 되고 있는 오늘날, 생산된 것들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구조 때문에 아직도 어디에선가 절대적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고, 또 절대적 빈곤이 아니더라도,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상대적 빈곤, 인간소외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경적 관점에서도 과연 꾸준히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든 관점에서 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지만, 과연 가치 간 충돌 없이 전반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셔서 덕분에 저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발전'의 사전적 의미는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감'인데, 우리 사회와 인류가 항상 '발전'하고 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관점을 나누어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계속해서 발전해왔을지 모르지만, 효율성을 가장 중시하는 자본주의 속에서 형평성, 환경친화와 같은 다른 가치들이 다소 외면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가령 과잉생산이 되고 있는 오늘날, 생산된 것들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구조 때문에 아직도 어디에선가 절대적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고, 또 절대적 빈곤이 아니더라도,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상대적 빈곤, 인간소외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경적 관점에서도 과연 꾸준히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든 관점에서 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지만, 과연 가치 간 충돌 없이 전반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서장원2021-06-10 11:06
지우 학우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나겨주신 발전에 대한 의문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코멘트 남깁니다.
우리는 최근 '발전'이 '성장'이고 그렇기에 사회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더 많은 것을 가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이러한 주장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위에서 하연 학우님께서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질적 성장의 가치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분배의 문제가, 라이프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면서 논의했던 가치관이나 교육, 환경의 문제 역시 커지기보다 넓어지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여서 제가 이번 학기 수강했던 행정학서론이라는 과목에서 과연 공익이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교수님과 여러 학우분들과 의견을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공익이 무엇인지를 평가하는 기준 중에서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이라는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는데, 이 둘의 차이는 개인들의 이익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갖느냐였습니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집약적인 성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효율성과 형평성을 모두 강조했다면 역사 속에 남을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2010년대, 아니 2020년대까지 이어져오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곧 공익이라는 주장은 이제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제는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제도와 정책, 사회의 가치관이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면밀히 분석해보고, 상충되는 이해관계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서 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나겨주신 발전에 대한 의문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코멘트 남깁니다.
우리는 최근 '발전'이 '성장'이고 그렇기에 사회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더 많은 것을 가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이러한 주장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위에서 하연 학우님께서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질적 성장의 가치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분배의 문제가, 라이프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면서 논의했던 가치관이나 교육, 환경의 문제 역시 커지기보다 넓어지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여서 제가 이번 학기 수강했던 행정학서론이라는 과목에서 과연 공익이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교수님과 여러 학우분들과 의견을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공익이 무엇인지를 평가하는 기준 중에서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이라는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는데, 이 둘의 차이는 개인들의 이익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갖느냐였습니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집약적인 성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효율성과 형평성을 모두 강조했다면 역사 속에 남을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2010년대, 아니 2020년대까지 이어져오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곧 공익이라는 주장은 이제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제는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제도와 정책, 사회의 가치관이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면밀히 분석해보고, 상충되는 이해관계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서 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하연2021-06-10 01:25
다소 두꺼운 책이라 읽는 데 3일이 꼬박 걸렸습니다. 이 책은 가장 약한 인간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갈 수 있었던 이유를 ‘문화’로 꼽습니다. 지식과 정보를 언어라는 매체를 통하여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이것이 점차 누적되고 축적되어 문화를 형성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문화를 학습하여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가능성을 높이는 동력이 되었다가 핵심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어려운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보다는 이미 축적된 지식을 학습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진화, 발전해왔다(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를 이끌어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집단지성’, ‘연결’, ‘전달’... 그리고 오늘날에도 많이 강조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연결을 돕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생각 및 정보를 공유하면서 점점 지식의 파이를 키워나가고 문화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이러한 문화적 진화의 연장선 상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어르신들로부터 지식을 전달받았던 것을(그래서 책에서도 전통적으로 노인 공경의 원인을 오래된 경험의 축적으로부터 나온 노하우가 긴히 쓰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발달된 인터넷 상에서 온라인으로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세대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면서 그 지역에 적응하기 위한 생활양식으로서 문화를 형성 및 발전시키고 공유하면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문화의 차이(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 관습, 종교, 언어 등)는 연결을 방해하는 분리, 갈등, 대립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에 문화를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나갈 것인지가 구성원의 생존과 행복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학우분들의 관련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집단지성’, ‘연결’, ‘전달’... 그리고 오늘날에도 많이 강조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연결을 돕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생각 및 정보를 공유하면서 점점 지식의 파이를 키워나가고 문화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이러한 문화적 진화의 연장선 상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어르신들로부터 지식을 전달받았던 것을(그래서 책에서도 전통적으로 노인 공경의 원인을 오래된 경험의 축적으로부터 나온 노하우가 긴히 쓰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발달된 인터넷 상에서 온라인으로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세대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면서 그 지역에 적응하기 위한 생활양식으로서 문화를 형성 및 발전시키고 공유하면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문화의 차이(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 관습, 종교, 언어 등)는 연결을 방해하는 분리, 갈등, 대립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에 문화를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나갈 것인지가 구성원의 생존과 행복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학우분들의 관련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탈퇴한 회원2021-06-10 01:43
하연님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하연님이 말씀하신 연결이라는 부분에 굉장히 공감이 갔습니다. 인류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있어 다른 사람과의 연결, 관계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이 듭니다. 생존에 있어서도 말씀해주신 예시처럼 노인이라는 지혜와 정보가 많은 사람과의 관계, 그들에 대한 공경은 굉장히 중요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또 언급해주신 플랫폼이나 커뮤니티와 같은 온라인 상에서의 매체들을 그런 부분에서 보신 것도 굉장히 재밌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앞으로는 기존의 진화론적인 관점에서의 문화와 지식 축적이 점차 나라간 국가간 개인간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서 희석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화적 영향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됨에 따라 우리는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연결을 접근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연결 관계를 맺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하연님이 말씀하신 연결이라는 부분에 굉장히 공감이 갔습니다. 인류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있어 다른 사람과의 연결, 관계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이 듭니다. 생존에 있어서도 말씀해주신 예시처럼 노인이라는 지혜와 정보가 많은 사람과의 관계, 그들에 대한 공경은 굉장히 중요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또 언급해주신 플랫폼이나 커뮤니티와 같은 온라인 상에서의 매체들을 그런 부분에서 보신 것도 굉장히 재밌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앞으로는 기존의 진화론적인 관점에서의 문화와 지식 축적이 점차 나라간 국가간 개인간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서 희석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화적 영향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됨에 따라 우리는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연결을 접근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연결 관계를 맺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은비2021-06-10 03:01
안녕하세요 하연님!
비대면 사회가 지속되고 플랫폼 발달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현재 각기 다른 문화들이 서로 융화되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오래된 예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먹방'이 국가 구분 없이 유튜브에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잡은 현상같은 경우에는 인류 진화의 원인이자 인간의 특징인 '모방'의 결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고요!
이렇듯 다양한 메타버스적 요소들 덕분에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거부감 없이 이해하고 심지어 모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 다른 문화를 다양한 플랫폼 상에서 조금씩 접하고 이해하게끔 하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대면 사회가 지속되고 플랫폼 발달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현재 각기 다른 문화들이 서로 융화되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오래된 예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먹방'이 국가 구분 없이 유튜브에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잡은 현상같은 경우에는 인류 진화의 원인이자 인간의 특징인 '모방'의 결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고요!
이렇듯 다양한 메타버스적 요소들 덕분에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거부감 없이 이해하고 심지어 모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 다른 문화를 다양한 플랫폼 상에서 조금씩 접하고 이해하게끔 하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은비2021-06-10 02:42
인간은 가장 약한 동물이지만 동시에 생태계의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집단 두뇌로 축적된 문화’에서 찾아내고 있다. 전체 에너지의 1/20~1/10을 뇌에 사용하는 다른 종들과는 달리 인간은 무려 1/4을 뇌에 사용한다고 한다. 즉, 인간은 머리를 쓰도록 진화되어 온 것이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주위 사람들을 보며 모방했고, 특히 ‘언어’를 사용하여 문화적 학습 능력을 누적해나갔다. 나아가 인간은 실험이나 학습 오류 등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이를 활용하여 더 발전된 형태의 무언가를 얻기까지 한다.
인간이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갖추게 된 계기에 대해 흥미로운 예시를 든 글이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 불의 개념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이를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것은 굉장한 난제였을 것이다. 인간이 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사고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 능력이 점차 타인에게 전이되며 학습 능력이 생겼다. 곧이어 학습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각 문화 속 언어 체계가 구축되었고, 언어는 교육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발전해온 것이다.”
즉, 인류의 진화는 교육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osmjack/222248969964
인간이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갖추게 된 계기에 대해 흥미로운 예시를 든 글이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 불의 개념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이를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것은 굉장한 난제였을 것이다. 인간이 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사고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 능력이 점차 타인에게 전이되며 학습 능력이 생겼다. 곧이어 학습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각 문화 속 언어 체계가 구축되었고, 언어는 교육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발전해온 것이다.”
즉, 인류의 진화는 교육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osmjack/222248969964
김윤빈2021-06-10 06:12
자연 생태계에서 가장 약했던 생명체인 인간은 현재 지구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책의 표현처럼 유일하게 루비콘 강을 건널 수 있었던 존재였던 인간은 분명 다른 생명체들과는 다른 특징의 진화과정을 거쳐왔을 것이며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은 유전적 – 문화적 공진성인데,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처럼 단순히 자연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문화적 노하우를 획득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꾸준히 진화해왔던 만큼 앞으로의 진화도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진화 과정에서 인류가 지녀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분명 과거와는 많이 상이한 환경이지만 문화적 공진성, 타인과의 상호작용, 연대는 언제든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또 앞으로 일어날 인류의 진화에 ‘다양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세계가 빠르고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만큼 문화적 다양성은 훼손될 위험성이 커 보입니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진화의 관점에서도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인류가 앞으로의 문화적 노하우를 터득해가는 과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결된 사회를 지향하되 주류문화를 중심으로 권력이 작용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문화적 변이를 보존하는 방향을 추구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꾸준히 진화해왔던 만큼 앞으로의 진화도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진화 과정에서 인류가 지녀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분명 과거와는 많이 상이한 환경이지만 문화적 공진성, 타인과의 상호작용, 연대는 언제든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또 앞으로 일어날 인류의 진화에 ‘다양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세계가 빠르고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만큼 문화적 다양성은 훼손될 위험성이 커 보입니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진화의 관점에서도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인류가 앞으로의 문화적 노하우를 터득해가는 과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결된 사회를 지향하되 주류문화를 중심으로 권력이 작용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문화적 변이를 보존하는 방향을 추구해야할 것 같습니다.
박지유2021-06-10 13:29
안녕하세요 윤빈님, 앞으로 인류의 진화에 필요한 것은 '다양성'이라는 관점에 크게 동감합니다. 책에서는 집단 간 경쟁이 문화적 진화의 틀을 만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인류는 친족 기반 이타주의와 호혜성을 발전시켜왔다고 말하지만, 오늘날은 집단 간 경계짓기가 아닌 경계 허물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집단 간 경계 허물기가 주류 문화에 나머지가 흡수되는 과정이 되지 않도록, 가치있는 '문화적 변이'를 보존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서장원2021-06-10 10:57
“사피엔스”라는 베스트셀러도 읽어보지 않을 정도로 인류학과 진화생물학에 큰 흥미가 없는 나였다. 그렇기에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이라는 조지프 헨릭의 책을 읽는 것은 라이프아카데미 수업을 통해 다른 주제에 대한 글을 읽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려웠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한국 사회에 대한 싶도 깊은 논의와 더불어 현대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회적 규범과 관련된 논의였다. 제9장은 사돈, 근친상간 금기와 의례라는 한국적이지 않은 제목으로 시작하였는데, 오히려 이 장을 읽고 나서 한국의 유교 문화, 직장 문화 등을 설명하는 가장 한국스러운 설명이라는 역설적인 생각이 들었다. 취직을 걱정하고 있는 나로써 특정 기업 혹은 직장의 문화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40대 직장인들 중 약 35%가 코로나로 인한 통금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한 상위 3가지 만족 이유가 ‘내키지 않는 모임 취소 용이’, ‘과도한 음주를 하지 않게 됨’, ‘직장 회식이 사라짐’으로 꼽혔다. 이처럼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는 것은 자신의 능력 발휘보다 “사회 생활”에 더 익숙해지고 노력을 쏟는 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개인의 능력이 업무의 최우선 과제가 되기보다 남들에게 잘 보이는 것, 인맥을 얻는 것을 성공하는 방법으로 인식되는 기성 세대의 직장 문화는 한국 사회의 성장 동력을 저해하는 과장을 더하면 민족지학적인 사회규범으로 평가하고 싶다.
덧붙여서, 한국의 경쟁 문화가 과연 향후 한국 사회의 동력이 될 것인지 브레이크가 될 것인지에 대한 학우님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책 261쪽에 적혀있는 “모든 친사회적 제도는 집단 간 경쟁의 역학에 의해 새로워지지 않는 한, 시간이 가면 낡아서 마침내 이기심의 손에 무너진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이기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교육, 정치, 행정 등의 여러 분야에서 최선을 선택하기 보다 ‘00보다 더 나은’을 선택하고 있다. 새로운 정책 혹은 제도가 이 사회 전반에 그리고 미래 세대에 어떤 파급력을 지닐 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은 과열된 경쟁 속에 힘겹게 숨쉬고 있는 한국 사회를 보면, 집단 간 경쟁이 과연 성공의 비결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참고자료
김하경 기자, 2021.03.22., '40대 절반, 코로나 통금에 만족… “회식 줄고 개인시간 늘었다”',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321/106006395/1.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회적 규범과 관련된 논의였다. 제9장은 사돈, 근친상간 금기와 의례라는 한국적이지 않은 제목으로 시작하였는데, 오히려 이 장을 읽고 나서 한국의 유교 문화, 직장 문화 등을 설명하는 가장 한국스러운 설명이라는 역설적인 생각이 들었다. 취직을 걱정하고 있는 나로써 특정 기업 혹은 직장의 문화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40대 직장인들 중 약 35%가 코로나로 인한 통금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한 상위 3가지 만족 이유가 ‘내키지 않는 모임 취소 용이’, ‘과도한 음주를 하지 않게 됨’, ‘직장 회식이 사라짐’으로 꼽혔다. 이처럼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는 것은 자신의 능력 발휘보다 “사회 생활”에 더 익숙해지고 노력을 쏟는 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개인의 능력이 업무의 최우선 과제가 되기보다 남들에게 잘 보이는 것, 인맥을 얻는 것을 성공하는 방법으로 인식되는 기성 세대의 직장 문화는 한국 사회의 성장 동력을 저해하는 과장을 더하면 민족지학적인 사회규범으로 평가하고 싶다.
덧붙여서, 한국의 경쟁 문화가 과연 향후 한국 사회의 동력이 될 것인지 브레이크가 될 것인지에 대한 학우님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책 261쪽에 적혀있는 “모든 친사회적 제도는 집단 간 경쟁의 역학에 의해 새로워지지 않는 한, 시간이 가면 낡아서 마침내 이기심의 손에 무너진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이기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교육, 정치, 행정 등의 여러 분야에서 최선을 선택하기 보다 ‘00보다 더 나은’을 선택하고 있다. 새로운 정책 혹은 제도가 이 사회 전반에 그리고 미래 세대에 어떤 파급력을 지닐 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은 과열된 경쟁 속에 힘겹게 숨쉬고 있는 한국 사회를 보면, 집단 간 경쟁이 과연 성공의 비결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참고자료
김하경 기자, 2021.03.22., '40대 절반, 코로나 통금에 만족… “회식 줄고 개인시간 늘었다”',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321/106006395/1.
문보설2021-06-10 13:45
서장원님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과하게 경쟁적인 문화는 한국 사회의 동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기말고사 기간인데(눈물..) 개인적으로 경쟁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성격이라 정신적인 고통이 크기 때문에... 이런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경쟁적 문화의 나쁜 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경쟁적인 문화가 생겨났을까요? 사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 이런 경쟁적 문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때까지는 한국 사회라는 집단이 타국 집단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은 집단 내의 경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룬 지금은, 그러한 경쟁 전략에서 탈피하여 개개인의 고통을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사회나, 경제 문제를 잘 모르지만 그런 필요성 정도는 느낄 수 있었던 코멘트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윤창2021-06-10 11:47
인간이 생태계 우점종이 된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문화적 유산이라고 규정한 점이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핑커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을 가장 사랑하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 연결지을 점이 많았다. 위 책은 지금까지 인간들이 서로간의 폭력성을 어떻게 줄여왔는지 역사적, 진화적 증거들을 다양한 분류로 나누어서 보여준다. 이 폭력성을 줄인 것이 결국 서로 협력이 가능한 공동체의 사이즈를 점점 키웠고 임계점을 넘어서 결국 지금에 이르렀지 싶다. 사회적으로 이미 조성된 환경이 여기서도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로마시대에 촘촘하게 깔린 도로망이 상업활동을 촉진시켰고 각 공동체 간의 교류, 외교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박지유2021-06-10 13:19
진화생물학 책을 접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었는데, 흥미로운 관점이 여럿 소개돼 있었다. 저자 조지프 헨릭은 인간의 '집단두뇌'와 '문화-유전자 공진화'라는 키워드로 인류 번영의 열쇠를 제시한다. 그런데 진화론적 관점은 어쩌면 교육을 인류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릭에 따르면 교육은 보다 유용한 문화를 활용하는 학습자가 살아남는 '자연선택'의 과정과 결부된 것인데, 이는 오히려 교육의 다양성과 학습자의 폭넓은 자기인식을 저해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클릭은 '집단 간 경쟁'과 사회규범을 내면화하는 '자기길들이기'의 과정을 소개하는데, 친족 기반 이타주의, 내집단 호혜가 초국경적인 사회에 살아가는 오늘날 권장할 만한 것일까. 오히려 효율성을 반감시키거나 집단 간 갈등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문화가 ‘호모속’을 완전히 ‘신종 동물’로 만들었다!
――문화-유전자의 공진화, 집단두뇌의 누적적인 문화적 진화로 풀어내는
우리 심리와 행동의 본성, 그리고 그 놀라운 성공의 비밀!
자, 침팬지와 인간의 대결이다. 나무를 타거나 트럭을 끄는 시합은 피하고, 라이프치히에 있는 진화인류학연구소의 헤르만, 토마셀로 등이 침팬지 106마리, 독일 어린이 105명, 오랑우탄 32마리를 맞붙인 38가지 인지능력 대결부터 살펴보자. 공간, 수량, 인과, 사회적 학습과 관련된 능력을 파악하는 하위검사들로 구성된 이 대결의 결과는, 두 살 반 먹은 아이들은 훨씬 큰 뇌를 지녔음에도 침팬지와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100점 대 0점이라는 극단적 대조를 보인 ‘사회적 학습’ 검사를 빼면 말이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학습 능력을 갖고 있는데도.
더 원초적이고 종합적인 대결: 당신을 포함한 직장인 동료 40명과 중앙아메리카 코스타리카의 꼬리감는원숭이 40마리를 아무것도 없이 아프리카의 외딴 열대림에 던져놓고 2년 동안 어느 쪽이 더 많이 살아남는가를 겨룬다. 누가 이길까? 커다란 뇌와 흘러넘치는 자만심을 가진 당신네가, 깨져도 형편없이 깨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 종이 진화한 대륙인 아프리카에서 수렵채취인으로 살아남는 데에도 보탬이 안 된다면, 그 커다란 뇌는 어디에 쓰자는 걸까? 툰드라에서 사막까지, 지구상의 온갖 다양한 환경으로 퍼져나간 인간의 생태적 성공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단 말인가?
그전에 잠깐! 혹시 침팬지가 이왕 겨룬 김에 레슬링이나 한판 하자고 나오거든, 당신은 그거 말고 바늘구멍에 실 꿰기(또는 바느질 시합?), 강속구 던지기, 오래달리기 같은 종목을 제안하는 게 좋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수수께끼 같은 영장류
제2장 지능은 답이 아니다
제3장 길 잃은 유럽인 탐험가들
제4장 문화적인 종을 만드는 법
제5장 커다란 뇌가 무슨 소용? 혹은, 문화는 어떻게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었는가?
제6장 왜 어떤 사람들은 눈이 파랄까
제7장 신뢰의 기원에 관하여
제8장 명망과 권력, 그리고 폐경
제9장 외척과 근친상간 금기, 그리고 의례
제10장 집단 간 경쟁이 문화적 진화의 틀을 형성한다
제11장 자기길들이기
제12장 우리의 집단두뇌
제13장 규칙이 있는 의사소통 도구
제14장 문화에 동화된 뇌와 명예를 아는 호르몬
제15장 우리가 루비콘강을 건넜을 때
제16장 왜 우리였을까?
제17장 새로운 종류의 동물
후주/ 참고문헌/ 도판 출처/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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